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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인 색소폰 동호회의 희망! 'ESENS'
    어느 한 기관에서 직장인 399명을 대상으로 ‘사내 동호회’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현재 사내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질문의 응답자 49.4%가 “사내 동호회가 없다.”라고 답했고, 이들에게 “만약 회사 내 동호회가 생긴다면 참여하겠나?”를 묻자 무려 88.8%가 “참여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참여 이유인 즉 업무의 능률 향상과 삶의 질 개선을 예로 들었는데, 그만큼 직장동호회의 존재감이 이전보다 커지고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ETRI에 입성직장인 동호회 ESENS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약 두 시간 여의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었다. 마침 마중 나와 계셨던 동호회장님의 차를 타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캠퍼스를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는데, 대학캠퍼스를방불케 할 만큼 넓은 대지 곳곳에 자리한 각종 편의 시설과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장인 동호회를취재하는 것이다 보니 점심시간만을 허락받아 촬영할 수 있었고,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라서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호회원들의 친절한 안내로 어떤 어려움도 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연구소원의 집ETRI에 속한 색소폰동호회 ESENS의 연습실은 ‘연구소원의 집’이라는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다양한 악기 소리는 “이곳이 색소폰 연습만 하는 곳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눈치채게 했다. 누군가는 강당에서 이어폰을 꽂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건물 2층에서 선생님에게 첼로를 레슨 받고 있었다. 오늘 취재하기로 한 ESENS동호회를 비롯한 관현악 동호회, 즉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 동호회는 또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텅잉연습으로 시작하는 합주지하 연습실로 내려가는 계단 초입부터 들리는 색소폰 소리는 여느 동호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실 직장인 동호회를 취재하기로 생각했을 때는 합주 실력이나 음악에 대한 질문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게사실이다. 주어지는 점심시간 동안에 식사도 하고, 또 그 시간에 색소폰 연습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각자 연습하다가 합주 한 두어 번 맞춰보고 끝나지 않겠냐는 나의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이기명’ 선생님의 지휘 아래 시작한 텅잉연습은 꽤 긴 시간 이어졌다.흔하지 않은 합주곡텅잉연습이 끝난 후 이어진 합주 연습은 곡목 선택부터 흥미로웠다. 필자의 짧은 경험상 일반적인 동호회 합주곡으로는잘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고, “이런 곡을 색소폰앙상블로 들으니 꽤 좋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좋은 곡이 떠오르면 자정에도 선생님에게 연락해 상담할 정도로 열정적이라는 ‘함영택’ 동호회 회장의 기지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조금씩 진화하는 ESENS 동호회ESENS 동호회는 현재 30명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함영택 회장과 임성호 총무를 필두로 28명의 회원들이 각자의 파트를 맡아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여성 회원 2명이 각고의 노력 끝에 초빙되어 합류, 더욱 화사한분위기의 ESENS 동호회가 되었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몇년 전 정년 퇴임하신 전임 회장 두 분이 2010년에 주축이되어 만든 색소폰 동호회를 현재의 동호회 회장인 ‘함영택’이 받아 2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일전에는 아무래도 연령대가 좀 높았던지라 주로 가요나 트로트를 위주로 연주하고, 또 반주기 사용이 빈번했었다면, 동호회 회장과 합주 선생님이 바뀌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반주기 사용을 줄이고 악보 위주로 된 연습을 하게 되고, 곡 스타일 또한 클래식 팝이나, 연주곡 위주로 선정하여 연주해 오고 있다. 도전하는 자세근래 ESENS 동호회의 눈에 띄는 활동은 <청양사랑 전국 아마추어 색소폰앙상블 경연대회> 참가 이력이다.라는 곡명으로 15명의 인원이 출전하는 놀랍도록 적극적인 활동 이력에 ESENS 색소폰 동호회가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2018년도 참가가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참가라고 하니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물론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어떻게 첫술부터 배가 부르겠는가. 하지만 이 정도의 열정과 기량이라면 언젠가 좋은 소식도 들리지 않을까?ESENS 동호회 회원들과의 인터뷰는 아무래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해야 했기에 조금 정신없이 이어진 감도 없긴 했지만, 굉장히 유쾌했다. 당사자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기에 음악에 대한 질문에도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호회 회장 함영택동호회 회장님이 ESENS에 큰 노력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동호회를 만들고 그전까지 이끌어 주신 세 분의 전임 회장님들께 감사드린다. 당시 제가 동호회 내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지만 2016년 말에, 회장으로 선출되면서우리 동호회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기에, 동호회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ETRI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가에서 과학기술 분야별로 정부출연연구소를 설립하였는데, ETRI는 ICT분야 연구원이다. 1976년에 설립되었고, 1인 1전화 시대를 연 TDX(전전자교환기),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혁명을 이룩한 4M,16M, 64M DRAM, 휴대폰 강국의 초석이 된 CDMA(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 DMB(디지털멀티미디어 방송), 휴대인터넷 WiBro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우리나라 IT 발전에 획기적인 이바지를 해 온 국내 최대의 정보통신 국책연구기관이다.합주하는 곡이 흥미로웠다. 곡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약간은 고전적이면서도 앙상블에 적합한 곡을 선택하려고 한다. 더불어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곡을 선곡해서 대회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곡씩 곡을 늘려 열 곡이 넘는레퍼토리를 잘 소화하게 되면 외부의 큰 무대에서 연주회를 가져볼까 생각 중이다.가족을 위한 연주를 한 적이 있었나? 색소폰을 2010년 8월에 시작했는데, 아내에게 악기를 시작한다는 말을 안 했다. 레슨도 연습실에서 받고, 악기도 연습실에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내가 악기를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연습을 해서 그 다음 해인 3월 1일 결혼기념일 때 파티장을 하나 잡아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와 CCM 몇 곡을 연주했다. 아들 둘이 준비한 편지와 함께 이벤트를 하니 아내가 정말 기뻐하더라. 그런데, 작년에는 아내가 저의 생일에 고가의 색소폰을 저 몰래 구매해서 깜짝 선물해 줘서 늘 고맙게 생각한다.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동호회나 회원들 측면에서는 첫째, 동호회원들의 한분 한분의 실력이 더욱 향상되면 좋겠고, 색소폰을 통해 삶의 활력과 기쁨을 맛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둘째, 동호회 합주 실력을 좀 더 키워 전국 앙상블 대회에 나가서 수상했으면 하는 목표가 있고, 셋째, 양로원이나 요양 보호시설, 보육원 같은 곳을 방문해서 우리의재능을 나누고 봉사하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제 실력을 더 연마해서 나중에 개인 연주 CD를 제작하고 싶은 꿈이 있다.총무 임성호ESENS 색소폰 동호회는 어떤 연주 활동을 하고 있나? 동호회 정기 연주회는 일년에 두 번 정도발표회식으로 하는데, 6월 말에 한 번, 12월 연말에 송년 연주회로 한다. 가끔 연구소 행사 같은 것들이 있을 때는 동호회 소개 차원 또는 직원들의 힐링을 위한 이벤트성 공연을 하기도 한다. 작년 가을에는 연구원에 있는 작은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가을 단풍과 함께 색소폰의 웅장하면서멋진 선율을 들려 주어 직원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다.동호회 내에서 있었던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2010년 10월 중순쯤에 동호회에 가입하였는데 몇 주 지나서 연말 연주회를 준비하라고 하더라. 안될 것 같다고 만류하는 나에게 다 똑같다고 그냥 하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때는 이기명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 선생님으로 계실 때였다. 배운 지 한 달 정도에 연주회 날이 다가오니 합주곡 두 곡에 개인곡 연습까지 소화는 커녕 삑사리가 더 심하게 나는 거다. 그래서 곡에 따라 삑사리가 잘 안 나는 리드 조합을 밤을 새워가며 찾았었다. 다음날 그 얘기를 선생님께 했더니 엄청 화를 내시며 가버리시는 거다. 물론 나중에는 미안하셨는지 다시돌아오시긴 했지만 내 딴에는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하드트레이닝하다 안 되니 찾아낸 것인데 아마 꼼수를 부린 것으로생각하신 것 같다. 그 촉박한 시간 동안 연주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청양고추, 구기자 축제에서 있었던 앙상블대회에서 탈락한 요인이 무엇인가?우리가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대비를 못했었다. 드럼 연주자와 같이 대회를 준비했었는데 아무래도 드럼 연주자가 외부인이라 많이 맞춰보지를 못했었다. 첫 박자 들어가는 것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여러 번 시도하다 한 가지를 실패했다. 지휘자 없이 출전하다 보니 대회 당일에 대다수 사람이 들어가는 박자를 놓쳐버린 거다. 한 세 명 정도 제대로 들어갔으려나…, 그때 모두 멘붕이 왔었다.앞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ESENS 동호회의 모습이 있다면? 직장에서 오래 일한 연장자들이 젊은 동료들에게 모범이되고, 활기찬 직장 생활에 이바지할 수 있는 ESENS로 더 많이 성장했으면 좋겠다.동호회원 박상년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악기를 하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쉽게 접근을 못 하겠더라. 다른 회사의 후배가 색소폰을 하는 것을 보고 한 번쯤 나도 색소폰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아내에게 꺼냈는데, 바로 그 다음날 색소폰을 선물 받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색소폰 동호회가 개인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된다 생각하나? 동호회 활동을 통해 연구원 내 회원들과 어울리면서 서로친하게 되어 좋고, 연구원 내 업무수행 하는 데 있어서도 ESENS 회원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어서 좋다. 그리고, 아무래도 ETRI라는 직장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외부에서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가 드물지 않나? 그런데 색소폰으로 인해타 동호회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사회 친구이고, 선배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된다 생각한다.색소폰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테너 색소폰 저음의 중후한 소리에 매력을 많이 느낀다. 색소폰 연주는 자신이표현하는 그대로 소리로 들려주기에 더욱 매력이 있다.선생님 이기명ESENS 색소폰 동호회만의 장점과 매력이 있다면 어떤 것들을 들 수 있나? 다른 외부 동호회 같은 경우에는 처음 동호회를 들어가면 사람들과 서먹하고 또 누군가를 사귀어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이곳은 모두 동료들이다 보니 서로의 의사소통적인 측면에서 수월하다. 모이기도 쉽고, 전달하기도 쉽다. 또한 연습을 위한 환경이 회사 내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근무 중에도 간혹 시간이 생기게 되면 연습실에 가서 연습할 수 있다는 게 이 곳 분들에게는 이점인 것 같다. 퇴근 후에 레슨을 받거나 혹은 연습하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무시 못하는데, 여기 분들은 퇴근 후 잠깐 들려서 연습할 수 있고 하니 그런 부분에서 편리하다고 하시더라.이기명 선생님이 ESENS 색소폰 동호회에 오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다. 일전에는 합주를 하더라도 반주기를 틀어놓고 합주를 했다고 들었다. 합주라는 게 서로의 소리를 듣고 같이 어울리는 것인데 반주기를 틀어놓고 연습을 하다 보니 반주기 소리에 휩싸여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부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렇기에 일단 반주기를 다 빼고, 악보를 가지고 연습하되 악보를 최대한 충실하게 지키며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연습을 시켰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어떻게 부는지 어느 박자에 연습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맛이 생겼다고 하더라. 아마 그런 부분들이 많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합주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합주라는 것 자체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여러 개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음 맞추는 연습을 계속 해오고 있다. 한 문장을 여럿이 읽을 때 각자의 단어가 연달아서 나오는 일이 없어야 해서 발음을 맞추기 위한, 즉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텅잉 연습을 꼭 시킨다 색소폰 앙상블대회 이력을 봤다. 대회를 준비하며 어떤 변화가 있었나? 원래 금요일에 한 번 정도만 모여 합주 연습을 하다가 대회 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더 많이 모이게 되더라. 그렇게 여러 번 모이고 하다 보니 서로가어떻게 부는지, 누가 어떻게 부는지 소리를 알게 되고 합주라는 단어에 걸맞는 합주가 만들어져 가더라. 사실 일주일에한 번 정도 모여서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도 여러 과정을 겪다 보니 한단계한단계 조금씩 성장하는 게 내 눈에도 보였었다.앞으로 ESENS 색소폰 동호회 선생님으로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음악적으로는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합주는 합주답게’라는 목적으로 최대한 자신의 소리를 줄이고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나가는 게 최종 목적이다. 성취감에 있어서는 대회에 나가 일등도 해보고 싶고, 또 더 나아가 우리 ‘ESENS’라는 이름을 걸고 연주회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동호회원 오행석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ETRI에 있는 관현악 동호회에서 클라리넷을 7년 정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관현악동호회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좀 더 흘러간 팝송이나 트로트를 연주할 수 있는 색소폰 동호회로 옮겼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공계열들이라 따지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은샵이 하나 있고 두 개 있고 해도 그냥 넘어가는데, 나는 그냥 넘어가 지지 않더라. 무슨 조가 되고, 왜 이런 조성이 되고 하는 원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 때문에 사이버대학 중에서도 음대가 있다는 얘길 들어서 신청해 배워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요즘은 일본어에 관심이 많아서 색소폰으로 <고이비토>와 같은 일본의 엔가를 주로연습한다. 예전에 영어에 관심이 많았을 때는 영어 노래를 통해서 공부를 많이 했었는데, 음악에 어학을 접목시켜 공부하면 많은 도움이 됐었다.색소폰 혹은 음악을 하는 부분에서 나만의 목표가 있나?은퇴가 1년 남았다. 은퇴 후에는 재능기부를 하며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고, 또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도 많이 알아가고 싶다.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종 목표는 작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까지는 주로 모방을 해왔는데, 언젠가는 창작에 대한 꿈도 이룰 수있지 않겠나. 아주 먼 꿈이긴 하지만 나의 삶 혹은 자서전 같은 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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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8
  • 직장인 색소폰 동호회의 희망! 'ESENS'
    어느 한 기관에서 직장인 399명을 대상으로 ‘사내 동호회’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현재 사내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질문의 응답자 49.4%가 “사내 동호회가 없다.”라고 답했고, 이들에게 “만약 회사 내 동호회가 생긴다면 참여하겠나?”를 묻자 무려 88.8%가 “참여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참여 이유인 즉 업무의 능률 향상과 삶의 질 개선을 예로 들었는데, 그만큼 직장동호회의 존재감이 이전보다 커지고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ETRI에 입성 직장인 동호회 ESENS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약 두 시간 여의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었다. 마침 마중 나와 계셨던 동호회장님의 차를 타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캠퍼스를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는데, 대학캠퍼스를방불케 할 만큼 넓은 대지 곳곳에 자리한 각종 편의 시설과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장인 동호회를취재하는 것이다 보니 점심시간만을 허락받아 촬영할 수 있었고,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이라서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호회원들의 친절한 안내로 어떤 어려움도 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 연구소원의 집ETRI에 속한 색소폰동호회 ESENS의 연습실은 ‘연구소원의 집’이라는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건물에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다양한 악기 소리는 “이곳이 색소폰 연습만 하는 곳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눈치채게 했다. 누군가는 강당에서 이어폰을 꽂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건물 2층에서 선생님에게 첼로를 레슨 받고 있었다. 오늘 취재하기로 한 ESENS동호회를 비롯한 관현악 동호회, 즉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 동호회는 또 따로 존재한다고 한다. 텅잉연습으로 시작하는 합주지하 연습실로 내려가는 계단 초입부터 들리는 색소폰 소리는 여느 동호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실 직장인 동호회를 취재하기로 생각했을 때는 합주 실력이나 음악에 대한 질문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게사실이다. 주어지는 점심시간 동안에 식사도 하고, 또 그 시간에 색소폰 연습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각자 연습하다가 합주 한 두어 번 맞춰보고 끝나지 않겠냐는 나의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이기명’ 선생님의 지휘 아래 시작한 텅잉연습은 꽤 긴 시간 이어졌다. 흔하지 않은 합주곡텅잉연습이 끝난 후 이어진 합주 연습은 곡목 선택부터 흥미로웠다. 필자의 짧은 경험상 일반적인 동호회 합주곡으로는 잘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고, “이런 곡을 색소폰앙상블로 들으니 꽤 좋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좋은 곡이 떠오르면 자정에도 선생님에게 연락해 상담할 정도로 열정적이라는 ‘함영택’ 동호회 회장의 기지가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조금씩 진화하는 ESENS 동호회ESENS 동호회는 현재 30명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함영택 회장과 임성호 총무를 필두로 28명의 회원들이 각자의 파트를 맡아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여성 회원 2명이 각고의 노력 끝에 초빙되어 합류, 더욱 화사한분위기의 ESENS 동호회가 되었다는 희소식을 접했다. 몇년 전 정년 퇴임하신 전임 회장 두 분이 2010년에 주축이되어 만든 색소폰 동호회를 현재의 동호회 회장인 ‘함영택’이 받아 2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일전에는 아무래도 연령대가 좀 높았던지라 주로 가요나 트로트를 위주로 연주하고, 또 반주기 사용이 빈번했었다면, 동호회 회장과 합주 선생님이 바뀌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반주기 사용을 줄이고 악보 위주로 된 연습을 하게 되고, 곡 스타일 또한 클래식 팝이나, 연주곡 위주로 선정하여 연주해 오고 있다. 도전하는 자세근래 ESENS 동호회의 눈에 띄는 활동은 <청양사랑 전국 아마추어 색소폰앙상블 경연대회> 참가 이력이다.라는 곡명으로 15명의 인원이 출전하는 놀랍도록 적극적인 활동 이력에 ESENS 색소폰 동호회가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2018년도 참가가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참가라고 하니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물론 좋은 결과가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어떻게 첫술부터 배가 부르겠는가. 하지만 이 정도의 열정과 기량이라면 언젠가 좋은 소식도 들리지 않을까?ESENS 동호회 회원들과의 인터뷰는 아무래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어 해야 했기에 조금 정신없이 이어진 감도 없긴 했지만, 굉장히 유쾌했다. 당사자들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기에 음악에 대한 질문에도 거리낌 없는 모습이었다. 동호회 회장 함영택 동호회 회장님이 ESENS에 큰 노력을 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먼저, 동호회를 만들고 그전까지 이끌어 주신 세 분의 전임 회장님들께 감사드린다. 당시 제가 동호회 내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지만 2016년 말에, 회장으로 선출되면서우리 동호회를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기에, 동호회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고 열심히 하게 되었다. ETRI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가에서 과학기술 분야별로 정부출연연구소를 설립하였는데, ETRI는 ICT분야 연구원이다. 1976년에 설립되었고, 1인 1전화 시대를 연 TDX(전전자교환기),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혁명을 이룩한 4M,16M, 64M DRAM, 휴대폰 강국의 초석이 된 CDMA(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 DMB(디지털멀티미디어 방송), 휴대인터넷 WiBro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우리나라 IT 발전에 획기적인 이바지를 해 온 국내 최대의 정보통신 국책연구기관이다. 합주하는 곡이 흥미로웠다. 곡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약간은 고전적이면서도 앙상블에 적합한 곡을 선택하려고 한다. 더불어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곡을 선곡해서 대회에 도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 곡씩 곡을 늘려 열 곡이 넘는레퍼토리를 잘 소화하게 되면 외부의 큰 무대에서 연주회를 가져볼까 생각 중이다. 가족을 위한 연주를 한 적이 있었나? 색소폰을 2010년 8월에 시작했는데, 아내에게 악기를 시작한다는 말을 안 했다. 레슨도 연습실에서 받고, 악기도 연습실에 가져다 놓았기 때문에 내가 악기를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연습을 해서 그 다음 해인 3월 1일 결혼기념일 때 파티장을 하나 잡아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와 CCM 몇 곡을 연주했다. 아들 둘이 준비한 편지와 함께 이벤트를 하니 아내가 정말 기뻐하더라. 그런데, 작년에는 아내가 저의 생일에 고가의 색소폰을 저 몰래 구매해서 깜짝 선물해 줘서 늘 고맙게 생각한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동호회나 회원들 측면에서는 첫째, 동호회원들의 한분 한분의 실력이 더욱 향상되면 좋겠고, 색소폰을 통해 삶의 활력과 기쁨을 맛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둘째, 동호회 합주 실력을 좀 더 키워 전국 앙상블 대회에 나가서 수상했으면 하는 목표가 있고, 셋째, 양로원이나 요양 보호시설, 보육원 같은 곳을 방문해서 우리의재능을 나누고 봉사하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제 실력을 더 연마해서 나중에 개인 연주 CD를 제작하고 싶은 꿈이 있다. 총무 임성호 ESENS 색소폰 동호회는 어떤 연주 활동을 하고 있나? 동호회 정기 연주회는 일년에 두 번 정도발표회식으로 하는데, 6월 말에 한 번, 12월 연말에 송년 연주회로 한다. 가끔 연구소 행사 같은 것들이 있을 때는 동호회 소개 차원 또는 직원들의 힐링을 위한 이벤트성 공연을 하기도 한다. 작년 가을에는 연구원에 있는 작은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했었는데, 가을 단풍과 함께 색소폰의 웅장하면서멋진 선율을 들려 주어 직원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다. 동호회 내에서 있었던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2010년 10월 중순쯤에 동호회에 가입하였는데 몇 주 지나서 연말 연주회를 준비하라고 하더라. 안될 것 같다고 만류하는 나에게 다 똑같다고 그냥 하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때는 이기명 선생님이 아닌 다른 분이 선생님으로 계실 때였다. 배운 지 한 달 정도에 연주회 날이 다가오니 합주곡 두 곡에 개인곡 연습까지 소화는 커녕 삑사리가 더 심하게 나는 거다. 그래서 곡에 따라 삑사리가 잘 안 나는 리드 조합을 밤을 새워가며 찾았었다. 다음날 그 얘기를 선생님께 했더니 엄청 화를 내시며 가버리시는 거다. 물론 나중에는 미안하셨는지 다시 돌아오시긴 했지만 내 딴에는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하드트레이닝하다 안 되니 찾아낸 것인데 아마 꼼수를 부린 것으로생각하신 것 같다. 그 촉박한 시간 동안 연주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청양고추, 구기자 축제에서 있었던 앙상블대회에서 탈락한 요인이 무엇인가? 우리가 경험이 별로 없다 보니 대비를 못했었다. 드럼 연주자와 같이 대회를 준비했었는데 아무래도 드럼 연주자가 외부인이라 많이 맞춰보지를 못했었다. 첫 박자 들어가는 것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여러 번 시도하다 한 가지를 실패했다. 지휘자 없이 출전하다 보니 대회 당일에 대다수 사람이 들어가는 박자를 놓쳐버린 거다. 한 세 명 정도 제대로 들어갔으려나…, 그때 모두 멘붕이 왔었다. 앞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ESENS 동호회의 모습이 있다면? 직장에서 오래 일한 연장자들이 젊은 동료들에게 모범이되고, 활기찬 직장 생활에 이바지할 수 있는 ESENS로 더 많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동호회원 박상년 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악기를 하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쉽게 접근을 못 하겠더라. 다른 회사의 후배가 색소폰을 하는 것을 보고 한 번쯤 나도 색소폰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아내에게 꺼냈는데, 바로 그 다음날 색소폰을 선물 받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색소폰 동호회가 개인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된다 생각하나? 동호회 활동을 통해 연구원 내 회원들과 어울리면서 서로친하게 되어 좋고, 연구원 내 업무수행 하는 데 있어서도 ESENS 회원들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어서 좋다. 그리고, 아무래도 ETRI라는 직장에서만 생활하다 보면 외부에서 사람들과 소통할 기회가 드물지 않나? 그런데 색소폰으로 인해타 동호회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사회 친구이고, 선배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된다 생각한다. 색소폰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테너 색소폰 저음의 중후한 소리에 매력을 많이 느낀다. 색소폰 연주는 자신이표현하는 그대로 소리로 들려주기에 더욱 매력이 있다. 선생님 이기명 ESENS 색소폰 동호회만의 장점과 매력이 있다면 어떤 것들을 들 수 있나? 다른 외부 동호회 같은 경우에는 처음 동호회를 들어가면 사람들과 서먹하고 또 누군가를 사귀어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게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이곳은 모두 동료들이다 보니 서로의 의사소통적인 측면에서 수월하다. 모이기도 쉽고, 전달하기도 쉽다. 또한 연습을 위한 환경이 회사 내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근무 중에도 간혹 시간이 생기게 되면 연습실에 가서 연습할 수 있다는 게 이 곳 분들에게는 이점인 것 같다. 퇴근 후에 레슨을 받거나 혹은 연습하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시간도 무시 못하는데, 여기 분들은 퇴근 후 잠깐 들려서 연습할 수 있고 하니 그런 부분에서 편리하다고 하시더라. 이기명 선생님이 ESENS 색소폰 동호회에 오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다. 일전에는 합주를 하더라도 반주기를 틀어놓고 합주를 했다고 들었다. 합주라는 게 서로의 소리를 듣고 같이 어울리는 것인데 반주기를 틀어놓고 연습을 하다 보니 반주기 소리에 휩싸여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부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렇기에 일단 반주기를 다 빼고, 악보를 가지고 연습하되 악보를 최대한 충실하게 지키며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연습을 시켰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어떻게 부는지 어느 박자에 연습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맛이 생겼다고 하더라. 아마 그런 부분들이 많이 달라진 게 아닌가 싶다. 합주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합주라는 것 자체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여러 개의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음 맞추는 연습을 계속 해오고 있다. 한 문장을 여럿이 읽을 때 각자의 단어가 연달아서 나오는 일이 없어야 해서 발음을 맞추기 위한, 즉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텅잉 연습을 꼭 시킨다 색소폰 앙상블대회 이력을 봤다. 대회를 준비하며 어떤 변화가 있었나? 원래 금요일에 한 번 정도만 모여 합주 연습을 하다가 대회 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더 많이 모이게 되더라. 그렇게 여러 번 모이고 하다 보니 서로가어떻게 부는지, 누가 어떻게 부는지 소리를 알게 되고 합주라는 단어에 걸맞는 합주가 만들어져 가더라. 사실 일주일에한 번 정도 모여서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도 여러 과정을 겪다 보니 한단계한단계 조금씩 성장하는 게 내 눈에도 보였었다. 앞으로 ESENS 색소폰 동호회 선생님으로서의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음악적으로는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합주는 합주답게’라는 목적으로 최대한 자신의 소리를 줄이고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나가는 게 최종 목적이다. 성취감에 있어서는 대회에 나가 일등도 해보고 싶고, 또 더 나아가 우리 ‘ESENS’라는 이름을 걸고 연주회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호회원 오행석 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ETRI에 있는 관현악 동호회에서 클라리넷을 7년 정도 했었는데, 아무래도 관현악동호회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좀 더 흘러간 팝송이나 트로트를 연주할 수 있는 색소폰 동호회로 옮겼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이공계열들이라 따지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은샵이 하나 있고 두 개 있고 해도 그냥 넘어가는데, 나는 그냥 넘어가 지지 않더라. 무슨 조가 되고, 왜 이런 조성이 되고 하는 원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 때문에 사이버대학 중에서도 음대가 있다는 얘길 들어서 신청해 배워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요즘은 일본어에 관심이 많아서 색소폰으로 <고이비토>와 같은 일본의 엔가를 주로연습한다. 예전에 영어에 관심이 많았을 때는 영어 노래를 통해서 공부를 많이 했었는데, 음악에 어학을 접목시켜 공부하면 많은 도움이 됐었다. 색소폰 혹은 음악을 하는 부분에서 나만의 목표가 있나? 은퇴가 1년 남았다. 은퇴 후에는 재능기부를 하며 내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고, 또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도 많이 알아가고 싶다.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종 목표는 작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까지는 주로 모방을 해왔는데, 언젠가는 창작에 대한 꿈도 이룰 수있지 않겠나. 아주 먼 꿈이긴 하지만 나의 삶 혹은 자서전 같은 것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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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8
  • 음악은 재미있게! 인생은 멋지게 '버디색소폰앙상블'
    김한수 단장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버디색소폰앙상블은 아마추어로 구성된 순수 색소폰만으로 이루어진 앙상블팀으로 수준 높은 합주를 목표로 한다. 버디색소폰앙상블이라는 명칭으로는 2015년에 창단되어 작년에 첫 정식공연을 가졌지만, 사실은 10여 년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지기들이 오랜 시간 함께 해오며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팀이기도 하다. 또한 버디색소폰앙상블의 버디(Buddy)라는 말은 절친한 친구, 벗이라는 뜻으로 프렌드(friend)라는 단어와 유사하지만, 보다 더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 해당이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버디색소폰앙상블 멤버 모두는 연령과 경력, 현 위치를 뛰어넘는 진정한 음악적 우정을 지향하고 있다. 버디색소폰앙상블의 구성버디색소폰 앙상블은 알토Ⅰ, 알토Ⅱ, 테너Ⅰ, 테너Ⅱ, 바리톤으로 총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앙상블 팀에서와는 달리 3명의 바리톤 주자를 보유하고 있다. 세 대의 바리톤에서 나오는 묵직한 베이스 소리는 버디색소폰앙상블의 음악을 한층 더 깊게 끌어 올려준다. 멤버들의 연주경력은 짧게는 3년부터 길게는 10년까지 다양한 사회경험을 가진 멤버들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멤버 대부분은 50~60대로 구성되어 있다. 또 멤버 중 절반가량은직장생활에서 은퇴하여 악기 연주로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고 하니 버디색소폰앙상블의 즐거운 열정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 합주를 지도하고 있는 김한수 단장) 김 한 수 단장버디색소폰앙상블의 단장이자 지휘와 편곡 또한 담당하고있다고.오랜 시간 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합창 및 합주 지휘를 35년 넘게 해왔었다. 지금은 퇴직한 지 3년 되었지만 20대 때부터 해왔던 일이라 지휘는 내게 익숙한 일이었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버디색소폰앙상블 이전부터 지휘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 편곡 또한 일전에 교사 리코더 합주단 지휘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했었던 악보들을 쉽게 색소폰 곡으로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다가 지금까지 온전히 내 몫으로 해오고 있다.초창기부터 합주단을 꾸려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것 같은데.예전에는 오늘같이 바로바로 연주를 못 했었다. 한 악보를나누어 주면 거의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어떤 곡은 일년 동안 연습해야 겨우 한 곡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예전에 비해 실력들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는 것을 느낀다.앙상블을 지휘하는 데에 있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관악기는 일단 텅잉이 중요하다. 텅잉을 길게 하든지, 스타카토로 짧게 하든지 호흡을 섞어서 울릴 수 있는 테크닉이필요하다. 그런 텅잉 테크닉을 중요시하고,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셈여림에 중점을 두고 음악의 흐름을 잡는 편이다.그밖에 파트와 파트간의 밸런스, 멜로디, 호흡 등 이래저래신경 쓸 부분이 많긴 하다.버디색소폰앙상블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화기애애하고 화목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누구 하나 화내는 사람이 없다. 나부터도 합주 지도를 하면서 화를 내는 경우는 없다. 앙상블을 하며 아름다움을 남기고자 해서 모인 사람들인데 이곳에 와서 스트레스도 풀고 마음에 충만한 기를 얻어가야 하지않겠나. 나를 비롯한 버디색소폰앙상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다양한 곡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선정하는 이유가 있나.우리 앙상블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고, 또 음악적 취향 또한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팝송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연령대에맞는 음악과 장르를 최대한 골고루 넣으려는 취지이다.앞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나.전국에서 규모도 가장 크고, 또 어딜 가도 연주 잘하는 톱클래스 합주단 소리를 들을 만큼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우리 팀에 20대부터 시작했던 사람이 지금 30대 중반이다.나 또한 50대 초반에 시작하여 지금은 어느덧 60대 중반이됐다. 젊은 사람들 혹은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꾸 로테이션 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또한 노력이필요하다. 외부에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활동을 보여줘야 하고 또 그러면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색소폰앙상블에대한 흥미를 갖지 않겠나.김 치 형 운영실장음악을 하면서 어떤 생활의 변화가 있었나.학교를 졸업한 이래 무언가를 처음부터 배워서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이먹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굉장한 즐거움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많이 권하는데, 굳이색소폰이 아니어도 악기 하나 정도는 배우는 것은 좋다고생각한다.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색소폰을 오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색소폰을 바꾼다고 느닷없이 악기를 내게 주며 불어보라고 하더라. 그렇게 색소폰을 선물 받아 집에 보관만 하고 있다가 어느 날 딸이 왜 악기를 안 하냐고 물어보더라. 음악을 전공한 딸의적극적인 권유와 더불어 놀고 있는 악기가 측은하여 시작하게 된 색소폰이 지금 와서는 안 배웠으면 어쩔 뻔했나 싶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앙상블의 장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먼저 같이 모여 화음을 맞춘다는 것이 즐겁다. 음악, 더 나아가 색소폰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이 곳처럼 수준이 어느 정도 있는 앙상블 같은 경우에는 음악적인 공유가 더 잘된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오셨고, 더 잘하는 분들 혹은 여러 주변인에게 배우는 점 또한 많다.김 형 섭 테너 팀장색소폰의 어떤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연주하게 되었나.테너 색소폰 소리에 매료되어 시작하게 된 것이 어느덧 9년정도 되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테너가 맨 처음 시작할 때산 악기이다. 그 이전에는 드럼을 5년 가량 배웠었는데, 5년 정도 하고 보니 한 10년은 해야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에 비해 색소폰은 연주하는 데 있어 훨씬 더 쉬웠다.색소폰이 특히 중장년층에게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분당에서만 백 개가 넘는 동호회가 있어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집 앞어디에서는 배울 수 있지 않나. 또 일요일마다 공원에 나가면 흔하게 색소폰 공연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론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우리 가요와 트로트를 구수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고생각한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트로트를 많이 듣고 자라지않았나. 그런 추억이 깃든 음악을 내가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매력 또한 크게 작용할 것 같다.버디색소폰앙상블에서 트로트가 아닌 다양한 장르의 곡을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려움은 없었나.정말로 전혀 모르는 음악도 많았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곡이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배우게 되는 점이 있다.이 명 순 총무버디색소폰앙상블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연습실에서 혼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연습하는 것도 몇 년지나니 지겨워지는 때가 오더라. 그런 때에 앙상블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처음 접하는 곡들을 하고, 반주기가 아닌 악보에 맞춰 연주하고, 혼자서 마음대로 넣는 감정이 아닌 전체의 악상에 맞춰 노래해야 하는 부분이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생소했던 부분이 좋아서 앙상블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작년에 성남아트센터에서 버디색소폰앙상블의 창단연주가 있었다고.그때 정말 모두가 열심히 연습했던 만큼 청중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었다. 공연 당일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밖에서 “어디 후진 데 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더라. 날 보기 위해 가족들도 왔었는데 생각보다 공연이 너무 좋았다고 얘기해줘 열심히 했던 보람을 느꼈다.버디색소폰앙상블에서 굉장히 많은 곡을 연습하는 것으로알고 있는데, 어떻게 다 외워서 하나.여기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한곡이 책 한 권을 넘겼다. 곡을 암기하듯이 줄줄 외우지는 못하지만, 악보를 보면 기억이 난다. 한번 완벽하게 연습을 했던 곡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악보를 보면 다시 기억이 나연주하게 되더라. 그렇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곡들을 꾸준히 할 수가 있다.최 인 곤 최연소 단원30대 젊은 동호인으로서 색소폰의 어떤 매력에 악기를 시작하게 되었나.회사에 같이 다니는 분이 연세가 좀 있는 분이었는데, 그분의제안으로 연습실도 같이 다니고 하면서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 음악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던 터라 악보를 보는 것부터 조금씩 공부하며 시작한 것이 어느새 10년째가 되었다.색소폰동호회에서 2, 30대의 젊은 연령대를 찾아보기 힘든 까닭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악기를 쉽게 구입하기에는 비싸다는 인식도 있고, 아무래도 올드하다는 인식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신이 어떤 곡을 연주하는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올드하다는 인식은 그저 인식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 찾아보면 홍대 클럽에서 활동하거나 혹은재즈 음악을 하며 색소폰을 즐기는 젊은 색소폰 동호인들이 많다.버디색소폰동호회 자랑을 해본다면.버디색소폰동호회는 편하다. 다른 동호회 같은 경우 가보면사람들끼리 트러블도 있고, 혹은 음악 외적으로 친하게 지낸다거나 사이가 안 좋아서 해체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곳은 처음 연습을 시작한 때, 그러니까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사람들이 꾸준히 사이좋게 지내오고 있다. 물론 중간에 멤버도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트러블 없이 인간적으로 가는 그룹을 본 적이 없다.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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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01
  • 음악은 재미있게! 인생은 멋지게 '버디색소폰앙상블'
    김한수 단장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버디색소폰앙상블은 아마추어로 구성된 순수 색소폰만으로 이루어진 앙상블팀으로 수준 높은 합주를 목표로 한다. 버디색소폰앙상블이라는 명칭으로는 2015년에 창단되어 작년에 첫 정식 공연을 가졌지만, 사실은 10여 년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지기들이 오랜 시간 함께 해오며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팀이기도 하다. 또한 버디색소폰앙상블의 버디(Buddy)라는 말은 절친한 친구, 벗이라는 뜻으로 프렌드(friend)라는 단어와 유사하지만, 보다 더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 해당이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버디색소폰앙상블 멤버 모두는 연령과 경력, 현 위치를 뛰어넘는 진정한 음악적 우정을 지향하고 있다. 버디색소폰앙상블의 구성버디색소폰 앙상블은 알토Ⅰ, 알토Ⅱ, 테너Ⅰ, 테너Ⅱ, 바리톤으로 총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앙상블 팀에서와는 달리 3명의 바리톤 주자를 보유하고 있다. 세 대의 바리톤에서 나오는 묵직한 베이스 소리는 버디색소폰앙상블의 음악을 한층 더 깊게 끌어올려준다. 멤버들의 연주 경력은 짧게는 3년부터 길게는 10년까지 다양한 사회경험을 가진 멤버들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멤버 대부분은 50~60대로 구성되어 있다. 또 멤버 중 절반가량은 직장 생활에서 은퇴하여 악기 연주로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고 하니 버디색소폰앙상블의 즐거운 열정의 원천이 아닐 수 없다. 김 한 수 단장버디색소폰앙상블의 단장이자 지휘와 편곡 또한 담당하고 있다고.오랜 시간 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합창 및 합주 지휘를 35년 넘게 해왔었다. 지금은 퇴직한 지 3년 되었지만 20대 때부터 해왔던 일이라 지휘는 내게 익숙한 일이었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버디색소폰앙상블 이전부터 지휘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 편곡 또한 일전에 교사 리코더 합주단 지휘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했었던 악보들을 쉽게 색소폰 곡으로 바꾸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다가 지금까지 온전히 내 몫으로 해오고 있다.초창기부터 합주단을 꾸려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예전에는 오늘같이 바로바로 연주를 못 했었다. 한 악보를 나누어 주면 거의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어떤 곡은 일 년 동안 연습해야 겨우 한 곡이 완성되는 경우도 있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예전에 비해 실력들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앙상블을 지휘하는 데에 있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관악기는 일단 텅잉이 중요하다. 텅잉을 길게 하든지, 스타카토로 짧게 하든지 호흡을 섞어서 울릴 수 있는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런 텅잉 테크닉을 중요시하고,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셈여림에 중점을 두고 음악의 흐름을 잡는 편이다.그밖에 파트와 파트 간의 밸런스, 멜로디, 호흡 등 이래저래 신경 쓸 부분이 많긴 하다. 버디색소폰앙상블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화기애애하고 화목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누구 하나 화내는 사람이 없다. 나부터도 합주 지도를 하면서 화를 내는 경우는 없다. 앙상블을 하며 아름다움을 남기고자 해서 모인 사람들인데 이곳에 와서 스트레스도 풀고 마음에 충만한 기를 얻어 가야 하지 않겠나. 나를 비롯한 버디색소폰앙상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다양한 곡을 연습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선정하는 이유가 있나.우리 앙상블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있고, 또 음악적 취향 또한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팝송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연령대에맞는 음악과 장르를 최대한 골고루 넣으려는 취지이다. 앞으로 목표하는 바가 있나.전국에서 규모도 가장 크고, 또 어딜 가도 연주 잘하는 톱클래스 합주단 소리를 들을 만큼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우리 팀에 20대부터 시작했던 사람이 지금 30대 중반이다.나 또한 50대 초반에 시작하여 지금은 어느덧 60대 중반이 됐다. 젊은 사람들 혹은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꾸 로테이션 되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또한 노력이 필요하다. 외부에 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활동을 보여줘야 하고 또 그러면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색소폰 앙상블에 대한 흥미를 갖지 않겠나. 김 치 형 운영실장음악을 하면서 어떤 생활의 변화가 있었나.학교를 졸업한 이래 무언가를 처음부터 배워서 매일매일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이 먹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굉장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많이 권하는데, 굳이 색소폰이 아니어도 악기 하나 정도는 배우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색소폰을 오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색소폰을 바꾼다고 느닷없이 악기를 내게 주며 불어보라고 하더라. 그렇게 색소폰을 선물받아 집에 보관만 하고 있다가 어느 날 딸이 왜 악기를 안 하냐고 물어보더라. 음악을 전공한 딸의 적극적인 권유와 더불어 놀고 있는 악기가 측은하여 시작하게 된 색소폰이 지금 와서는 안 배웠으면 어쩔 뻔했나 싶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앙상블의 장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나.먼저 같이 모여 화음을 맞춘다는 것이 즐겁다. 음악, 더 나아가 색소폰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고, 이곳처럼 수준이 어느 정도 있는 앙상블 같은 경우에는 음악적인 공유가 더 잘 된다.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오셨고, 더 잘하는 분들 혹은 여러 주변인에게 배우는 점 또한 많다. 김 형 섭 테너 팀장색소폰의 어떤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연주하게 되었나.테너 색소폰 소리에 매료되어 시작하게 된 것이 어느덧 9년 정도 되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이 테너가 맨 처음 시작할 때 산 악기이다. 그 이전에는 드럼을 5년가량 배웠었는데, 5년 정도 하고 보니 한 10년은 해야 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에 비해 색소폰은 연주하는 데 있어 훨씬 더 쉬웠다. 색소폰이 특히 중장년층에게 각광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분당에서만 백 개가 넘는 동호회가 있어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집 앞 어디에서는 배울 수 있지 않나. 또 일요일마다 공원에 나가면 흔하게 색소폰 공연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론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우리 가요와 트로트를 구수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어렸을 때부터 트로트를 많이 듣고 자라지 않았나. 그런 추억이 깃든 음악을 내가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매력 또한 크게 작용할 것 같다. 버디색소폰앙상블에서 트로트가 아닌 다양한 장르의 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려움은 없었나.정말로 전혀 모르는 음악도 많았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곡이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배우게 되는 점이 있다. 이 명 순 총무버디색소폰앙상블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연습실에서 혼자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연습하는 것도 몇 년 지나니 지겨워지는 때가 오더라. 그런 때에 앙상블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처음 접하는 곡들을 하고, 반주기가 아닌 악보에 맞춰 연주하고, 혼자서 마음대로 넣는 감정이 아닌 전체의 악상에 맞춰 노래해야 하는 부분이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생소했던 부분이 좋아서 앙상블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작년에 성남아트센터에서 버디색소폰앙상블의 창단연주가 있었다고.그때 정말 모두가 열심히 연습했던 만큼 청중들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었다. 공연 당일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밖에서 “어디 후진 데 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정말 기분이 좋더라. 날 보기 위해 가족들도 왔었는데 생각보다 공연이 너무 좋았다고 얘기해 줘 열심히 했던 보람을 느꼈다. 버디색소폰앙상블에서 굉장히 많은 곡을 연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다 외워서 하나.여기가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됐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한 곡이 책 한 권을 넘겼다. 곡을 암기하듯이 줄줄 외우지는 못하지만, 악보를 보면 기억이 난다. 한번 완벽하게 연습을 했던 곡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악보를 보면 다시 기억이 나 연주하게 되더라. 그렇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곡들을 꾸준히 할 수가 있다. 최 인 곤 최연소 단원30대 젊은 동호인으로서 색소폰의 어떤 매력에 악기를 시작하게 되었나.회사에 같이 다니는 분이 연세가 좀 있는 분이었는데, 그분의 제안으로 연습실도 같이 다니고 하면서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 음악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던 터라 악보를 보는 것부터 조금씩 공부하며 시작한 것이 어느새 10년째가 되었다. 색소폰 동호회에서 2, 30대의 젊은 연령대를 찾아보기 힘든 까닭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악기를 쉽게 구입하기에는 비싸다는 인식도 있고, 아무래도 올드하다는 인식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신이 어떤 곡을 연주하는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올드하다는 인식은 그저 인식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잘 찾아보면 홍대 클럽에서 활동하거나 혹은 재즈 음악을 하며 색소폰을 즐기는 젊은 색소폰 동호인들이 많다. 버디색소폰동호회 자랑을 해본다면.버디색소폰동호회는 편하다. 다른 동호회 같은 경우 가보면 사람들끼리 트러블도 있고, 혹은 음악 외적으로 친하게 지낸다거나 사이가 안 좋아서 해체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곳은 처음 연습을 시작한 때, 그러니까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꾸준히 사이좋게 지내오고 있다. 물론 중간에 멤버도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트러블 없이 인간적으로 가는 그룹을 본 적이 없다.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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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01
  • 색소폰을 불며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분당 해피색소폰클럽'
    해피색소폰 앙상블의 구조는 매우체계적이다. 65세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된 골드앙상블, 64세 미만으로 구성된 그랜드앙상블,이 모든 회원을 총집합한 해피앙상블 세 가지로 나뉘어 지역공연 및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해피색소폰 앙상블의 연주 활동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오고 있는데, 매년 중앙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정기연주회를 하는가 하면 매주 금요일에는 요양원을 방문하여 봉사 연주를 해오고 있다. 한 요양원 같은 경우는 이들이 10년 동안 봉사를 해오고 있고, 2016년도부터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에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봉사연주를 한다고하니 이들이 지역 발전과 사회문화 증진에 이바지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동호회 회장 곽 병 도해피색소폰클럽에는 어떤 계기로 가입하게 되었나.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었고, 대학교 때에는 밴드에서 기타를 쳤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잠시 놓았다가 6년 5개월 정도 전부터 이곳을 다니며 알토색소폰을 배우게 되었다.색소폰을 시작하고 나서 찾아온 변화가 있다면.일단은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자체가 즐겁다는 것이다. 반주기를 틀어놓고 색소폰을 연주하다 보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심취가 된다. 그 순간에는 모든 잡생각이 사라져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여 나만의 사색에 잠길 수가 있다. 또한색소폰을 통해서 건강을 찾은 부분도 크다. 일전 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한 부정맥이 온적이 있었다. 갑자기 앞이 깜깜해진다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든지 증상이 심각했고, 또한 담배도 하루에 두 갑 가까이 피웠었다. 색소폰을 배우면서 호흡이 가쁜 증상을 경험하며, 담배를 단칼에 끊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도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는 내기 어려웠던 롱톤 또한 1분 넘게 낼 수 있게 되었다. 건강이 좋아진 것은 색소폰을 통한 계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해피색소폰클럽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첫째로 마음이 잘 맞는다. 우린 앙상블 연습을 주로 하다 보니 서로의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데, 그런 부분에서 서로의 마음이잘 맞는다고 느낀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조화롭게 소리를 내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개인 모두가 솔선수범한다는 것이다. 앙상블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서로 모르면 잘 알려주고,클럽 활동에 있어 모두가 적극적인 편이다.박 재 식 단원해피색소폰클럽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색소폰은 분 지 10년 정도 되었고 이곳에서 활동한 것은 5년 정도 되었다.해피색소폰 활동 전엔 어떻게 색소폰을 했었나.해군에서 건축 장교를 하고 있을 때에 군악대가가까이 있어 군악대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군에서 5년 정도 하고 제대 후에는 집에서 연습을 못하기 때문에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집 근처 가까운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보다 분당해피색소폰동호회로 오게 되었다.합주를 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나.처음에는 반주기를 틀어놓고 하다 보니 반주기가없으면 악보도 볼 줄 모르고, 그저 반주기만 따라가고 했었는데. 앙상블을 하니까 박자를 정확히 맞춰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박자 감각도생기고 여럿이서 하다 보니 더 재미가 있다.기억에 남는 공연을 한 적이 있나.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할 때 서울에 있는 해군해관에서 가족과 친척들을 모아놓고 전역기념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다. 곡 제목에 맞춰 스토리를 만들어 스토리텔링 콘서트로 기획했었는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스토리텔링 음악회에 대해 더 얘기해 달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해군사관 학교에들어갔을 적에 아마 그곳에 왔던 대부분의 사람이 이 노래를 듣고 갔을 것입니다.” 하면서 첫 곡으로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사관 학교 다닐적의 우리들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살았다. 바로이 노래처럼 말이다.” 하며 ‘남궁옥분’의 꿈을 먹는 젊은이를 기타로 연주했다. 한 가지 악기로만하면 지루할까 봐 색소폰, 기타, 오카리나 이렇게 세 가지 악기로 연주를 했는데, 오카리나로는2개월씩 배를 타고 다니다가 항구로 들어가는 불빛을 기억하며 ‘등대지기’를 연주했었다. 마지막곡으로는 “35년간 몸담았던 해군을 떠나는데, 해군은 내게 정말 행복한 군이었고, 나를 완성되게해준 곳이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하며 ‘나훈아’의 <영영>까지 총 14곡을 연주했었다.김 현 숙 단원색소폰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본래 나는 음악하고는 정말로 거리가 멀었었다.어느 날 우연찮게 공원에서 연주하는 것을 듣게되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 속으로는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마음은 금세 “나는 나이가 많은데…”라는 말로 좌절되기일쑤였다.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해피색소폰 원장님이 “나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첫걸음을 뗐었다. 나와는 절대 인연이없으리라 생각했던 색소폰을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빨리 배우게 되고 적응하게 되었다. 나는 절대 못 할 것이라고 계속 접어 두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색소폰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내고 싶은 소리를 마음대로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래 같은 경우는 목소리를 타고나서 잘하는경우가 많지 않나. 따라 하고 싶어도 소리가 안올라간다든지 하는 경우 말이다. 색소폰은 내 목소리를 대신해서 노래를 할 수 있다. 내고 싶었던 혹은 하고 싶었던 소리를 시원하게 내 지르면 희열이 느껴질 정도로 정말 통쾌하다. 조금 더 실력이 올라간다면 더 통쾌하지 않을까 기대가된다.색소폰을 하며 찾아온 일상의 변화가 있나.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에 맞춰 내가 색소폰을 분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TV에서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를 보다가도 ‘저 노래를 색소폰으로불면 정말 멋있겠다.’든가, ‘가을에는 저 곡을 연주하면 좋겠구나…’, ‘겨울에 눈 올 때 저 노래가좋겠구나…’같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예사로 들렸던 음악이 지금은 하고 싶은 음악들로 들려서 너무 신기하다. 그냥 듣기만 하는 음악과 내가 악기를 다룰 수 있으면서 듣는 음악은다른 것 같다.나이 때문에 색소폰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일전에 어떤 여든 되신 어르신이 “5년만 젊었어도 정말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씀하시는것을 듣는데 가슴이 정말 짠했다. 그분이 말하는 5년 전은 75세인데 그렇게 따지면 내게는 그분보다 십 년도 더 넘게 일찍 색소폰을 접하는 것이 아닌가. “늦었다고 할 때가 빠른 거구나”라는것을 새삼 실감했다. 나이, 환경 이런 것 저런 것생각하지 말고 못 해본 것, 혹은 하고 싶었던 것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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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1
  • 색소폰을 불며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 '분당 해피색소폰클럽'
    해피색소폰 앙상블의 구조는 매우체계적이다. 65세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된 골드앙상블, 64세 미만으로 구성된 그랜드앙상블,이 모든 회원을 총집합한 해피앙상블 세 가지로 나뉘어 지역공연 및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해피색소폰 앙상블의 연주 활동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오고 있는데, 매년 중앙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정기연주회를 하는가 하면 매주 금요일에는 요양원을 방문하여 봉사 연주를 해오고 있다. 한 요양원 같은 경우는 이들이 10년 동안 봉사를 해오고 있고, 2016년도부터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본부’에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봉사연주를 한다고하니 이들이 지역 발전과 사회문화 증진에 이바지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동호회 회장 곽 병 도 해피색소폰클럽에는 어떤 계기로 가입하게 되었나. 어렸을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었고, 대학교 때에는 밴드에서 기타를 쳤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잠시 놓았다가 6년 5개월 정도 전부터 이곳을 다니며 알토색소폰을 배우게 되었다. 색소폰을 시작하고 나서 찾아온 변화가 있다면. 일단은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자체가 즐겁다는 것이다. 반주기를 틀어놓고 색소폰을 연주하다 보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심취가 된다. 그 순간에는 모든 잡생각이 사라져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여 나만의 사색에 잠길 수가 있다. 또한색소폰을 통해서 건강을 찾은 부분도 크다. 일전 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한 부정맥이 온적이 있었다. 갑자기 앞이 깜깜해진다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든지 증상이 심각했고, 또한 담배도 하루에 두 갑 가까이 피웠었다. 색소폰을 배우면서 호흡이 가쁜 증상을 경험하며, 담배를 단칼에 끊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지금까지도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는 내기 어려웠던 롱톤 또한 1분 넘게 낼 수 있게 되었다. 건강이 좋아진 것은 색소폰을 통한 계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해피색소폰클럽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첫째로 마음이 잘 맞는다. 우린 앙상블 연습을 주로 하다 보니 서로의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데, 그런 부분에서 서로의 마음이잘 맞는다고 느낀다. 서로의 소리를 듣고 조화롭게 소리를 내는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잘 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개인 모두가 솔선수범한다는 것이다. 앙상블을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서로 모르면 잘 알려주고,클럽 활동에 있어 모두가 적극적인 편이다. 박 재 식 단원 해피색소폰클럽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 색소폰은 분 지 10년 정도 되었고 이곳에서 활동한 것은 5년 정도 되었다. 해피색소폰 활동 전엔 어떻게 색소폰을 했었나. 해군에서 건축 장교를 하고 있을 때에 군악대가가까이 있어 군악대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군에서 5년 정도 하고 제대 후에는 집에서 연습을 못하기 때문에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집 근처 가까운 곳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보다 분당해피색소폰동호회로 오게 되었다. 합주를 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나. 처음에는 반주기를 틀어놓고 하다 보니 반주기가없으면 악보도 볼 줄 모르고, 그저 반주기만 따라가고 했었는데. 앙상블을 하니까 박자를 정확히 맞춰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 박자 감각도생기고 여럿이서 하다 보니 더 재미가 있다. 기억에 남는 공연을 한 적이 있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할 때 서울에 있는 해군해관에서 가족과 친척들을 모아놓고 전역기념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다. 곡 제목에 맞춰 스토리를 만들어 스토리텔링 콘서트로 기획했었는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스토리텔링 음악회에 대해 더 얘기해 달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해군사관 학교에들어갔을 적에 아마 그곳에 왔던 대부분의 사람이 이 노래를 듣고 갔을 것입니다.” 하면서 첫 곡으로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사관 학교 다닐적의 우리들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살았다. 바로이 노래처럼 말이다.” 하며 ‘남궁옥분’의 꿈을 먹는 젊은이를 기타로 연주했다. 한 가지 악기로만하면 지루할까 봐 색소폰, 기타, 오카리나 이렇게 세 가지 악기로 연주를 했는데, 오카리나로는2개월씩 배를 타고 다니다가 항구로 들어가는 불빛을 기억하며 ‘등대지기’를 연주했었다. 마지막곡으로는 “35년간 몸담았던 해군을 떠나는데, 해군은 내게 정말 행복한 군이었고, 나를 완성되게해준 곳이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말하며 ‘나훈아’의 <영영>까지 총 14곡을 연주했었다. 김 현 숙 단원 색소폰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본래 나는 음악하고는 정말로 거리가 멀었었다.어느 날 우연찮게 공원에서 연주하는 것을 듣게되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좋았다. 속으로는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마음은 금세 “나는 나이가 많은데…”라는 말로 좌절되기일쑤였다.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해피색소폰 원장님이 “나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라. 그래야 후회가 없다”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첫걸음을 뗐었다. 나와는 절대 인연이없으리라 생각했던 색소폰을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빨리 배우게 되고 적응하게 되었다. 나는 절대 못 할 것이라고 계속 접어 두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색소폰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내고 싶은 소리를 마음대로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래 같은 경우는 목소리를 타고나서 잘하는경우가 많지 않나. 따라 하고 싶어도 소리가 안올라간다든지 하는 경우 말이다. 색소폰은 내 목소리를 대신해서 노래를 할 수 있다. 내고 싶었던 혹은 하고 싶었던 소리를 시원하게 내 지르면 희열이 느껴질 정도로 정말 통쾌하다. 조금 더 실력이 올라간다면 더 통쾌하지 않을까 기대가된다. 색소폰을 하며 찾아온 일상의 변화가 있나.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에 맞춰 내가 색소폰을 분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TV에서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를 보다가도 ‘저 노래를 색소폰으로불면 정말 멋있겠다.’든가, ‘가을에는 저 곡을 연주하면 좋겠구나…’, ‘겨울에 눈 올 때 저 노래가좋겠구나…’같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예사로 들렸던 음악이 지금은 하고 싶은 음악들로 들려서 너무 신기하다. 그냥 듣기만 하는 음악과 내가 악기를 다룰 수 있으면서 듣는 음악은다른 것 같다. 나이 때문에 색소폰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전에 어떤 여든 되신 어르신이 “5년만 젊었어도 정말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씀하시는것을 듣는데 가슴이 정말 짠했다. 그분이 말하는 5년 전은 75세인데 그렇게 따지면 내게는 그분보다 십 년도 더 넘게 일찍 색소폰을 접하는 것이 아닌가. “늦었다고 할 때가 빠른 거구나”라는것을 새삼 실감했다. 나이, 환경 이런 것 저런 것생각하지 말고 못 해본 것, 혹은 하고 싶었던 것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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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1
  •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
    야탑동에 위치한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색소폰 연주자 이성만이 만든 지 올해로 8, 9년이 되어가는 이름난 동호회다. 3,40대 젊은 연령대부터 7, 80대 고연령층까지 두루두루 활발하게 활동하는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이 일대는 물론이고 서울 저 멀리에서 오는 사람들로 빈번하다. 회원 수 50명을 가까이 바라보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이성만 원장)동호회를 운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동호회를 운영하는 데에 나의 역할은 우리 회원님들이 즐겁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본다. 회원님들의 즐겁고 다채로운 경험을 위해서 동영상이나 연주회를 만들어 재미있는 상황들을 자꾸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즐거운 부담감이 있다.색소폰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레슨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항상 상주하면서 매일 레슨을 한다. 금요일에는 좀 특이하게 오전반을 만들어 오전에만 시간이 가능하신 분들을 모아서 연주회를 한다. 보통 우리가 음악회를 한다고 하면 저녁에 하지 않나. 저녁 시간대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오전 연주반을 만들었다. 오전연주회는 오전 11시에 모여 1시간 정도 하고 근처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또한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회원님들을 대상으로 격주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동영상 촬영을 하는 것이 동호회 운영에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많이 작용한다. 인터넷을 보면 많은 동호인들이 사진도 올리고 동영상도 올리고 하는데 사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몇 군데 정도밖에 없더라. 이전에 사진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 예쁜 사진, 정확한 동영상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편집기술을 익혀서 동영상을 예쁘게 편집한다거나 소리를 만드는 법을 배워서 우리 회원들이 연주하는 것을 깔끔한 음질로 녹음해 유튜브나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혹은 핸드폰으로 전송해드리면 회원님들이 간직하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하면 다들 좋아하신다.자료화가 굉장히 잘 돼 있을 것 같다.얼마 전에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수를 따져보니 1,300개 정도를 올렸더라. 회원님 중에 한 분은 자신의 동영상을 100개 넘게 갖고 계신 분도 있다. 그 정도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자료화하여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고 회원님들과도 잘 공유가 되는 편이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회원님들 또한 고마움을 많이 표현하신다.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녹음하고 동영상을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처음에는 틀리면 끊고 “어우 나 다시 갈게!”이러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틀려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그냥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한 점도 있는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도 관객이라고 생각해라. 우리가 앉아서 구경하고 듣고 있는 만큼 그만큼의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마이크 꽂고 뿌뿌 불어 보는 것도 자제를 시키는 편인데,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목을 가다듬지 않지 않나. 이제는 우리 회원님들도 앞에 몇 명이 앉아 있지 않더라도 무대라고 생각을 하고 관객에 대한 예의를 철저하게 지킨다.(올뮤직색소폰 최연장자 ‘한종희’ 회원)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평상시에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당시 70, 80년도였을 때 길호균 씨나 이봉조씨가 색소폰 연주하는 것을 보고 많이 좋아했었고, 소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직접적으로 색소폰을 만난 것은 일본에 살았던 동생과 서로 색소폰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생일선물로 색소폰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당시에는 하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주변에 한 두 명씩 색소폰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나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색소폰을 연주하며 어떤 것들을 느끼나?좋아하는 노래를 색소폰으로 연주할 수 있어 재미있고 보람을 느낀다. 또 올뮤직색소폰 동호회에서 연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고, 부가적으로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치매 예방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있다. 여가 활동으로는 최적인 것 같다.색소폰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고, 올뮤직동호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색소폰을 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처음부터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서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와서 연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향상음악회’에 참여하여 연주한다. 또 동호회 회장님이 특별히 만든 실버들 모임이 있어 그 실버 멤버들이 모여서 분기별로 야유​회를 나가기도 한다.연주회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매주 금요일 무대에서 연주하고, 녹화는 2주에 한 번씩 한다. 녹화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많이 떨렸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떨리는데다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나머지 손가락도 엄청 아팠었다. 그렇게 녹화한 것을 보면 부끄러운 부분, 고쳐야 하는 부분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그것이 피드백되어 실력증진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그렇게 잘 안 되다가 2년 정도 지나니 자연적으로 힘이 빠지고 호흡 조절도 좀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특별히 연습하고 있는 곡이나 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요즘은 새로 나온 곡 ‘소풍 같은 인생’ 등 여러 가지를 연습하는데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곡은 가수 ‘조용필’의 <친구여>이다.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가슴에 와 닿는게 많고 느낌이 남다르다. 같이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예전에 산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 하나둘씩 나보다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많이 생각난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먼저 간 경우가 있다. 보기에는 엄청 건강할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먼저 그렇게 가면 “참 아쉽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 올해로 여든 살이다. 팔순 잔치를 하게 되면 가족들을 위해 색소폰을 연주할 계획을 갖고있다. 곡명은 <동해>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해요> 이렇게 두 곡을 하고 싶다.(동호회장 ‘박준우’)동호회 회장을 맡게 된 사연이 있나?보시다시피 우리 동호회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다. 나와 띠동갑인 분들도 있고 일흔이 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이 형님들을 위해서 할 게 뭐가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동호회 회장을 맡았다.회원들끼리의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데?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야외로 나간다. 야외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연주도 하고 그런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편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다. 다만 우리 동호회가 사람이 많다 보니 어느 정도의 트러블은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잘 중재하는 것이 동호회 회장으로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말에는 여느 동호회와 다르지 않게 장소를 빌려 모두의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색소폰의 즐거움이 언제 느껴지나?처음에는 도레미의 도자도 몰랐었다. 내가 속한 모임에 있는 형님들 네댓 명이 색소폰을 하는데 그게 정말 좋아 보였다. 그래서 색소폰을 배우게 된 거다. 배운 지 1년 만에 악기를 들고 제주도에 여행까지 갔었다. 색소폰 부시는 분하고 3박 4일 동안 신나게 놀았다. 온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하니까 정말 좋더라. 지금은 그렇게 색소폰 분 지 6년차 정도 된 것 같다.밖에서 연주할 때 무섭거나 떨리진 않았나?밖에서 연주하는 건 무섭지가 않다. 이곳 앞에 서서 연주하는 게 최고로 무섭다. 우리가 서로의 실력을 다 알고 있어서인지 여기에만서면 자꾸 버벅거리는데 일단 나가면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나가서 무대에 서면 거기서는 신이 나는데 여기에 있는 오 센티미터짜리 무대에서는 덜덜덜 떨게 된다.(김종빈, 김명숙 회원 부부)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김종빈 회원) 탄천에 운동을 나갔다가 탄천에서 누군가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색소폰을 할 만한 가까운 곳이 어디에 있나 찾다가 우연히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 들르게 되어 그 날 바로 등록을 하고 악기를 구입하여 시작했다.(김명숙 회원) 남편이 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지켜보다 같이 하게 되었다. 옆에서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쳐 기본적인 음감이 있어서 즐겁게 색소폰을 배울 수있었던 것 같다.색소폰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나?(김종빈 회원) 나는 노력을 많이 하는 노력형이다. 지금 현재 같은 경우는 녹음기를 사서 연주할 때마다 꼭 녹음한다. 오늘 연주하며 녹음한 곡들을 매일 출퇴근하면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 또 녹음하는 식으로 계속 연습을 한다.(김명숙 회원) 남편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인터넷 강의 같은 것을 항상 찾아보고 그것을 바로 해보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연습실로 간다. 그런 모습에 나 또한 저절로 그렇게 연습하게 되는 것 같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꼭 와서 연습하려고 한다.<2015년 야마하 아마추어 색소폰대회> 금상을 받은 이력이 있던데?(김명숙 회원) 이성만 선생님의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만한 실력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만류하다가 선생님의 거듭된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가서 본의 아니게 금상을 타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상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지금은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악보도 외우고, 또 그것을 변형해서 악보를 직접 그리면서 연습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올뮤직색소폰동호회를 위한 이성만 원장의 ‘기록’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단지 색소폰의 소리나 음색이 아닌 그들의 추억과 존재의 향기를 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열정과 사랑으로 뭉친 이성만 원장 그리고 올뮤직색소폰동호회 회원 모두를 응원한다. 글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사진Ι이성만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9-01
  •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
    야탑동에 위치한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색소폰 연주자 이성만이 만든 지 올해로 8, 9년이 되어가는 이름난 동호회다. 3,40대 젊은 연령대부터 7, 80대 고연령층까지 두루두루 활발하게 활동하는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이 일대는 물론이고 서울 저 멀리에서 오는 사람들로 빈번하다. 회원 수 50명을 가까이 바라보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이성만 원장)동호회를 운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동호회를 운영하는 데에 나의 역할은 우리 회원님들이 즐겁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본다. 회원님들의 즐겁고 다채로운 경험을 위해서 동영상이나 연주회를 만들어 재미있는 상황들을 자꾸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즐거운 부담감이 있다.색소폰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레슨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항상 상주하면서 매일 레슨을 한다. 금요일에는 좀 특이하게 오전반을 만들어 오전에만 시간이 가능하신 분들을 모아서 연주회를 한다. 보통 우리가 음악회를 한다고 하면 저녁에 하지 않나. 저녁 시간대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오전 연주반을 만들었다. 오전연주회는 오전 11시에 모여 1시간 정도 하고 근처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또한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회원님들을 대상으로 격주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동영상 촬영을 하는 것이 동호회 운영에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많이 작용한다. 인터넷을 보면 많은 동호인들이 사진도 올리고 동영상도 올리고 하는데 사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몇 군데 정도밖에 없더라. 이전에 사진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 예쁜 사진, 정확한 동영상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편집기술을 익혀서 동영상을 예쁘게 편집한다거나 소리를 만드는 법을 배워서 우리 회원들이 연주하는 것을 깔끔한 음질로 녹음해 유튜브나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혹은 핸드폰으로 전송해드리면 회원님들이 간직하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하면 다들 좋아하신다.자료화가 굉장히 잘 돼 있을 것 같다.얼마 전에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수를 따져보니 1,300개 정도를 올렸더라. 회원님 중에 한 분은 자신의 동영상을 100개 넘게 갖고 계신 분도 있다. 그 정도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자료화하여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고 회원님들과도 잘 공유가 되는 편이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회원님들 또한 고마움을 많이 표현하신다.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녹음하고 동영상을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처음에는 틀리면 끊고 “어우 나 다시 갈게!”이러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틀려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그냥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한 점도 있는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도 관객이라고 생각해라. 우리가 앉아서 구경하고 듣고 있는 만큼 그만큼의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마이크 꽂고 뿌뿌 불어 보는 것도 자제를 시키는 편인데,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목을 가다듬지 않지 않나. 이제는 우리 회원님들도 앞에 몇 명이 앉아 있지 않더라도 무대라고 생각을 하고 관객에 대한 예의를 철저하게 지킨다.(올뮤직색소폰 최연장자 ‘한종희’ 회원)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평상시에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당시 70, 80년도였을 때 길호균 씨나 이봉조씨가 색소폰 연주하는 것을 보고 많이 좋아했었고, 소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직접적으로 색소폰을 만난 것은 일본에 살았던 동생과 서로 색소폰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생일선물로 색소폰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당시에는 하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주변에 한 두 명씩 색소폰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나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색소폰을 연주하며 어떤 것들을 느끼나?좋아하는 노래를 색소폰으로 연주할 수 있어 재미있고 보람을 느낀다. 또 올뮤직색소폰 동호회에서 연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고, 부가적으로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치매 예방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있다. 여가 활동으로는 최적인 것 같다.색소폰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고, 올뮤직동호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색소폰을 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처음부터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서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와서 연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향상음악회’에 참여하여 연주한다. 또 동호회 회장님이 특별히 만든 실버들 모임이 있어 그 실버 멤버들이 모여서 분기별로 야유​회를 나가기도 한다.연주회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매주 금요일 무대에서 연주하고, 녹화는 2주에 한 번씩 한다. 녹화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많이 떨렸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떨리는데다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나머지 손가락도 엄청 아팠었다. 그렇게 녹화한 것을 보면 부끄러운 부분, 고쳐야 하는 부분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그것이 피드백되어 실력증진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그렇게 잘 안 되다가 2년 정도 지나니 자연적으로 힘이 빠지고 호흡 조절도 좀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특별히 연습하고 있는 곡이나 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요즘은 새로 나온 곡 ‘소풍 같은 인생’ 등 여러 가지를 연습하는데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곡은 가수 ‘조용필’의 <친구여>이다.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가슴에 와 닿는게 많고 느낌이 남다르다. 같이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예전에 산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 하나둘씩 나보다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많이 생각난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먼저 간 경우가 있다. 보기에는 엄청 건강할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먼저 그렇게 가면 “참 아쉽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 올해로 여든 살이다. 팔순 잔치를 하게 되면 가족들을 위해 색소폰을 연주할 계획을 갖고있다. 곡명은 <동해>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해요> 이렇게 두 곡을 하고 싶다.(동호회장 ‘박준우’)동호회 회장을 맡게 된 사연이 있나?보시다시피 우리 동호회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다. 나와 띠동갑인 분들도 있고 일흔이 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이 형님들을 위해서 할 게 뭐가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동호회 회장을 맡았다.회원들끼리의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데?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야외로 나간다. 야외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연주도 하고 그런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편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다. 다만 우리 동호회가 사람이 많다 보니 어느 정도의 트러블은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잘 중재하는 것이 동호회 회장으로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말에는 여느 동호회와 다르지 않게 장소를 빌려 모두의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색소폰의 즐거움이 언제 느껴지나?처음에는 도레미의 도자도 몰랐었다. 내가 속한 모임에 있는 형님들 네댓 명이 색소폰을 하는데 그게 정말 좋아 보였다. 그래서 색소폰을 배우게 된 거다. 배운 지 1년 만에 악기를 들고 제주도에 여행까지 갔었다. 색소폰 부시는 분하고 3박 4일 동안 신나게 놀았다. 온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하니까 정말 좋더라. 지금은 그렇게 색소폰 분 지 6년차 정도 된 것 같다.밖에서 연주할 때 무섭거나 떨리진 않았나?밖에서 연주하는 건 무섭지가 않다. 이곳 앞에 서서 연주하는 게 최고로 무섭다. 우리가 서로의 실력을 다 알고 있어서인지 여기에만서면 자꾸 버벅거리는데 일단 나가면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나가서 무대에 서면 거기서는 신이 나는데 여기에 있는 오 센티미터짜리 무대에서는 덜덜덜 떨게 된다.(김종빈, 김명숙 회원 부부)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김종빈 회원) 탄천에 운동을 나갔다가 탄천에서 누군가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색소폰을 할 만한 가까운 곳이 어디에 있나 찾다가 우연히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 들르게 되어 그 날 바로 등록을 하고 악기를 구입하여 시작했다.(김명숙 회원) 남편이 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지켜보다 같이 하게 되었다. 옆에서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쳐 기본적인 음감이 있어서 즐겁게 색소폰을 배울 수있었던 것 같다.색소폰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나?(김종빈 회원) 나는 노력을 많이 하는 노력형이다. 지금 현재 같은 경우는 녹음기를 사서 연주할 때마다 꼭 녹음한다. 오늘 연주하며 녹음한 곡들을 매일 출퇴근하면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 또 녹음하는 식으로 계속 연습을 한다.(김명숙 회원) 남편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인터넷 강의 같은 것을 항상 찾아보고 그것을 바로 해보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연습실로 간다. 그런 모습에 나 또한 저절로 그렇게 연습하게 되는 것 같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꼭 와서 연습하려고 한다.<2015년 야마하 아마추어 색소폰대회> 금상을 받은 이력이 있던데?(김명숙 회원) 이성만 선생님의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만한 실력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만류하다가 선생님의 거듭된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가서 본의 아니게 금상을 타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상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지금은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악보도 외우고, 또 그것을 변형해서 악보를 직접 그리면서 연습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올뮤직색소폰동호회를 위한 이성만 원장의 ‘기록’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단지 색소폰의 소리나 음색이 아닌 그들의 추억과 존재의 향기를 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열정과 사랑으로 뭉친 이성만 원장 그리고 올뮤직색소폰동호회 회원 모두를 응원한다. 글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사진Ι이성만
    • 월간색소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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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01
  • 클래식 색소폰 오케스트라 명가(名家) '코리아색소폰하모니'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의 적막을 깨우며 색소폰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연습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방음시설이 갖추어진 녹음실과 연습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스튜디오였다. 아직 다 시들지도 않은 꽃을 버려놓았다며 한 송이씩 꽃병에 꽃을 꽂는 정미정 단원의 마음처럼 내부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색소폰을 통해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그들과의 인터뷰가 더욱 기대되었다.​동호회? NO! 아카데미? YES!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2004년에 창단한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에서부터 시작했다. 2013년에 단명을 코리아색소폰하모니로 변경하면서 한국종합예술학교 석좌교수인 ‘박경삼’ 초대단장과 새 출발을 했다. 이곳만의 특이점이라면 단연 수석 단원제를 도입하였다는 것인데, 수석 단원들로부터 파트별로 지도를 받고 난 다음에 전체 합주 연습을 하여 전체적인 밸런스를 밀도 있게 끌어 올렸다. 또한 그밖에 스케일 연습, 화성학, 스윙과 블루스 리듬 같은 재즈 이론도 같이 공부를 한다. 이런 부분으로 미루어 볼 때 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동호회라기보다는 색소폰 스쿨 혹은 색소폰 아카데미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KSH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어떤 음악 단체든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유니크한 구성의 합주단 같은 경우는 레퍼토리 확보에 더 많은 공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코리아색소폰하모니같은 경우는 이런 부분이 아주 잘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편곡료를 따로 지불하여 코리아색소폰하모니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을 발간한 것.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주는 이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는 독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프로와 아마추어의 조화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양쪽 모두의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휘자와 단원들의 생각이다. 아마추어의 저변이 넓어져야 프로들이 설 자리도 많아지고, 서로 적극적으로 다가가 도움을 주고 받아야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프로색소포니스트로 구성된 서울색소폰앙상블과 교류하고 있다. 이들이 수석 단원으로 합주연습 때 각 파트를 지도하고 필요시에 개인레슨을 진행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연령대어떤 단체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이토록 조화롭게 갈 수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이곳의 연령대는 꽤 차이가 난다. 20대 초반부터 80세가 넘은 단원까지 세대 스펙트럼이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음악이나 연습하는 과정을 볼 때 세대차이의 갭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팀의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성연욱 단장)많은 악기중에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유독 매력을 느꼈던 이유가 있는가. 색소폰은 연주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연주환경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난다. 그래서 감정표현이 자유롭다. 관악기는 연주자의 호흡기관과 연결되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연주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몸통도 악기가 된다. 그래서 색소폰을 연주할 때는 악기의 소리가 곧 나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고, 나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매력이 있다.일본의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의 협연을 한 적이 있다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식해서 용감했었다는 생각만 든다. 2003년도에 오사카 교민 행사에 초청되어서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 협연을 했는데, 미베몰앙상블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앙상블인지도 모르고 갔었다.어떤 계기로 진행되었는가. 2002년도부터 여기저기서 색소폰을 배우던 사람들이 모여서 아마추어 색소폰 앙상블을 창단했는데 아마 국내 최초일 것이다. 실력보다는 의욕이 대단했었다. 정기연주회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관악축제에도 참여했고, 부산 MBC에도 초청되었다. 실력이 받쳐줘서 초청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색소폰 앙상블이었고 또 단원 중에는 사회 각 처에 발이 넓은 분이 많았다.일본 공연은 어땠었나.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미베몰앙상블의 소리는 아름답고 깨끗했으며, 속삭이듯 잔잔하다가도 격정적인 울림을 주기도 하는 환상적인 화음이었는데 반해, 우리는 그저 크게만 불면 되는 줄 알고 거친 소리를 마구 불어댄 것이다. 우리 가요를 연주했기 때문에 교민들에게 박수는 더 받았지만,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 충격과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앙상블이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2004년에 단원 중의 서울대 ‘성굉모’ 교수님이 서울음대에서 색소폰을 전공하신 분들을 지휘자로 모셔왔고, 클래식을 연주하는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를 창단했다. 그때부터 비로소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워가면서 제대로 된 앙상블을 하게 되었다. 단명은 2013년도에 코리아색소폰하모니(KSH)로 변경하였다.자신만의 음악 철학이 있나. 처음에는 음악이든 악기연주든 혼자 즐기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도 혼자 했고 스스로 즐기는 수준까지만 하면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나쁜 습관이 들었고 그게 아직도 고쳐지질 않아서 애를 먹고 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연주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남에게 들려주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기쁨과 여럿이 같이 연주하면서 화음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기쁨과 행복, 이런 것들이 훨씬 보람이 있다.색소폰과 관련된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있나.10여 년 전에 ‘정인채’ 회원과 둘이서 토요일 저녁마다 양재천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가로등이 켜진 양재천의 가을밤, 밤안개 하얗게 낀 봄날 저녁, 물소리 풀벌레 소리 합창하던 여름밤, 심지어 흰 눈 내린 겨울밤에도 언 손을 녹여가며 토요일마다 다리 밑에서 연주했다. 지금은 너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문화가 없었다. 그때 양재천에서의 연주는 우리나라 길거리 연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산책하던 사람들이 가로등 밑에 둘러앉아 조용히 듣고 가기도 하고, 우리 연주를 듣고 색소폰을 사서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근처에 살던 전문연주자들도 가끔 나와서 듣곤 했는데, 연주가 끝나면 다가와서 참 잘 들었다며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본인들은 직업의식을 갖고 연주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의 연속이지 행복하게 연주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점이 바로 아마추어 연주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행복이 아닌가 싶다. (정미정 단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37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교직에 있다가 작년에 명예퇴직했다. 지금은 외손자 보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색소폰은 12, 13년 전에 둔촌고등학교에 있었을 때 체육 선생님으로 계셨던 분을 만나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고 전부터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굉장히 잘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교를 목적으로 색소폰을 배워두면 앞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노후에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야마하 색소폰을 구입하여 배우기 시작했다.색소폰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느 날 교회에서 캄보디아로 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가서 색소폰으로 복음성가를 연주했었고, 마지막 돌아오기 전날은 프놈펜 광장에서 현지 교인들의 워십과 함께 복음성가를 연주했었다. 그게 지금까지도 스스로 의미가 컸고 은혜로웠다. 색소폰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고, 그 은혜를 음악을 통해 나눈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KSH 단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SH 여러분과 함께해서 감사드린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번은 아프리카 여행 때 어느 공항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천천히 멀리 가고 싶으면 친구와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인데, 그 말이 매우 와 닿았었다. KSH도 함께라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있을 것 같다. 이종택 단원 교향곡을 주로 많이 연습할 텐데 연습하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 상대방 소리를 듣고 음의 폭이 큰지 작은지를 잘 봐가면서 조절을 해야 하는데 연습 부족이나 어떤 한계로 인해서 제대로 조화를 못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개인 연습을 더 하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맞춰지는데, 그래도 차이는 있다.앞으로 KSH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그 단체가 오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개 그 구성원들 모두가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연습, 혹은 규정을 잘 따르는 것 등이다. 그래야 그 조직이 오래 유지되고 또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즐겁지 않으면 나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기본인 그런 자세를 가져야 오래갈 수 있고, 스스로 더 잘하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하모니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현재 알토색소폰 파트를 맡고 있는데, 소프라노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 KSH 단원들 각자 모두가 건강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잘 이루어 갔으면 좋겠고, 나 또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정인채 단원) 색소폰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해달라. 38세 때이다. 일도 많이 하고 여유도 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이른 나이에 일찍 안정을 찾았었다. 그러다 보면 술을 마신다든지 담배를 핀다든지 조금 엇나가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런 것보다는 건전하고 좋은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었다. 한번은 아내에게 농담으로 “내가 나이도 40도 다 돼가고 색소폰이나 좀 배워볼까?”하며 색소폰 이야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는 곧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내 말을 기억했던 아내가 감사하게도 미국여행 길에 색소폰을 사 온 거다. 그래서 색소폰 배울 만한 곳을 찾다 마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색소폰 강좌가 있어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단장님을 처음 만났다.색소폰을 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단장님하고 둘이서 매주 토요일마다 학여울역 다리 밑에서 8시부터 10시, 어떤 때에는 1시까지도 연습을 했었다. 거기가 12차선이라 다리가 굉장히 넓고,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보니 밑에서 색소폰을 불면 소리가 올라가 공명이 생기면서 맑은소리가 나온다. 아는 교수님이 우리 얘기를 듣고 오셔서 소리를 들어보시더니 그 다리에 대해 칼럼을 쓸 정도로 소리가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연습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VJ특공대가 찾아와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지역별로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관한 내용으로 나왔는데, 우리는 서울 편에서 다리 밑에서 색소폰을 불며 여름을 나는 것으로 나갔다. (차은경 단원) KSH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좋은가. 일단 배워간다는 즐거움이 크다. 사실 클래식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면 잘 안 듣게 되고 그랬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면서 클래식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또 더 잘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이전에는 전체적인 멜로디만 들었다면, 여기서 앙상블을 하면서 다른 파트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한 달에 한 번씩 꼭 직접 음악당에 가서 교향곡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취미를 또 하나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KSH에서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부분이 증진되었는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화음을 맞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 소리만 더 크게 들리고 혹은 내 소리만 들렸었다. 그러나 타인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음악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절로 생기게 된 것 같다. 글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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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 클래식 색소폰 오케스트라 명가(名家) '코리아색소폰하모니'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의 적막을 깨우며 색소폰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연습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방음시설이 갖추어진 녹음실과 연습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스튜디오였다. 아직 다 시들지도 않은 꽃을 버려놓았다며 한 송이씩 꽃병에 꽃을 꽂는 정미정 단원의 마음처럼 내부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색소폰을 통해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그들과의 인터뷰가 더욱 기대되었다. 동호회? NO! 아카데미? YES!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2004년에 창단한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에서부터 시작했다. 2013년에 단명을 코리아색소폰하모니로 변경하면서 한국종합예술학교 석좌교수인 ‘박경삼’ 초대단장과 새 출발을 했다. 이곳만의 특이점이라면 단연 수석 단원제를 도입하였다는 것인데, 수석 단원들로부터 파트별로 지도를 받고 난 다음에 전체 합주 연습을 하여 전체적인 밸런스를 밀도 있게 끌어 올렸다. 또한 그밖에 스케일 연습, 화성학, 스윙과 블루스 리듬 같은 재즈 이론도 같이 공부를 한다. 이런 부분으로 미루어 볼 때 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동호회라기보다는 색소폰 스쿨 혹은 색소폰 아카데미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KSH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어떤 음악 단체든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유니크한 구성의 합주단 같은 경우는 레퍼토리 확보에 더 많은 공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코리아색소폰하모니같은 경우는 이런 부분이 아주 잘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편곡료를 따로 지불하여 코리아색소폰하모니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을 발간한 것.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주는 이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는 독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조화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양쪽 모두의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휘자와 단원들의 생각이다. 아마추어의 저변이 넓어져야 프로들이 설 자리도 많아지고, 서로 적극적으로 다가가 도움을 주고 받아야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프로색소포니스트로 구성된 서울색소폰앙상블과 교류하고 있다. 이들이 수석 단원으로 합주연습 때 각 파트를 지도하고 필요시에 개인레슨을 진행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연령대어떤 단체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이토록 조화롭게 갈 수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이곳의 연령대는 꽤 차이가 난다. 20대 초반부터 80세가 넘은 단원까지 세대 스펙트럼이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음악이나 연습하는 과정을 볼 때 세대차이의 갭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팀의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성연욱 단장) 많은 악기중에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유독 매력을 느꼈던 이유가 있는가. 색소폰은 연주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연주환경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난다. 그래서 감정표현이 자유롭다. 관악기는 연주자의 호흡기관과 연결되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연주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몸통도 악기가 된다. 그래서 색소폰을 연주할 때는 악기의 소리가 곧 나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고, 나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매력이 있다. 일본의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의 협연을 한 적이 있다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식해서 용감했었다는 생각만 든다. 2003년도에 오사카 교민 행사에 초청되어서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 협연을 했는데, 미베몰앙상블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앙상블인지도 모르고 갔었다. 어떤 계기로 진행되었는가. 2002년도부터 여기저기서 색소폰을 배우던 사람들이 모여서 아마추어 색소폰 앙상블을 창단했는데 아마 국내 최초일 것이다. 실력보다는 의욕이 대단했었다. 정기연주회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관악축제에도 참여했고, 부산 MBC에도 초청되었다. 실력이 받쳐줘서 초청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색소폰 앙상블이었고 또 단원 중에는 사회 각 처에 발이 넓은 분이 많았다. 일본 공연은 어땠었나.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미베몰앙상블의 소리는 아름답고 깨끗했으며, 속삭이듯 잔잔하다가도 격정적인 울림을 주기도 하는 환상적인 화음이었는데 반해, 우리는 그저 크게만 불면 되는 줄 알고 거친 소리를 마구 불어댄 것이다. 우리 가요를 연주했기 때문에 교민들에게 박수는 더 받았지만,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 충격과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앙상블이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2004년에 단원 중의 서울대 ‘성굉모’ 교수님이 서울음대에서 색소폰을 전공하신 분들을 지휘자로 모셔왔고, 클래식을 연주하는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를 창단했다. 그때부터 비로소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워가면서 제대로 된 앙상블을 하게 되었다. 단명은 2013년도에 코리아색소폰하모니(KSH)로 변경하였다. 자신만의 음악 철학이 있나. 처음에는 음악이든 악기연주든 혼자 즐기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도 혼자 했고 스스로 즐기는 수준까지만 하면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나쁜 습관이 들었고 그게 아직도 고쳐지질 않아서 애를 먹고 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연주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남에게 들려주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기쁨과 여럿이 같이 연주하면서 화음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기쁨과 행복, 이런 것들이 훨씬 보람이 있다. 색소폰과 관련된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있나.10여 년 전에 ‘정인채’ 회원과 둘이서 토요일 저녁마다 양재천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가로등이 켜진 양재천의 가을밤, 밤안개 하얗게 낀 봄날 저녁, 물소리 풀벌레 소리 합창하던 여름밤, 심지어 흰 눈 내린 겨울밤에도 언 손을 녹여가며 토요일마다 다리 밑에서 연주했다. 지금은 너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문화가 없었다. 그때 양재천에서의 연주는 우리나라 길거리 연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산책하던 사람들이 가로등 밑에 둘러앉아 조용히 듣고 가기도 하고, 우리 연주를 듣고 색소폰을 사서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근처에 살던 전문연주자들도 가끔 나와서 듣곤 했는데, 연주가 끝나면 다가와서 참 잘 들었다며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본인들은 직업의식을 갖고 연주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의 연속이지 행복하게 연주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점이 바로 아마추어 연주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행복이 아닌가 싶다. (정미정 단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37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교직에 있다가 작년에 명예퇴직했다. 지금은 외손자 보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색소폰은 12, 13년 전에 둔촌고등학교에 있었을 때 체육 선생님으로 계셨던 분을 만나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고 전부터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굉장히 잘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교를 목적으로 색소폰을 배워두면 앞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노후에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야마하 색소폰을 구입하여 배우기 시작했다. 색소폰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느 날 교회에서 캄보디아로 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가서 색소폰으로 복음성가를 연주했었고, 마지막 돌아오기 전날은 프놈펜 광장에서 현지 교인들의 워십과 함께 복음성가를 연주했었다. 그게 지금까지도 스스로 의미가 컸고 은혜로웠다. 색소폰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고, 그 은혜를 음악을 통해 나눈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KSH 단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SH 여러분과 함께해서 감사드린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번은 아프리카 여행 때 어느 공항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천천히 멀리 가고 싶으면 친구와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인데, 그 말이 매우 와 닿았었다. KSH도 함께라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있을 것 같다. 이종택 단원 교향곡을 주로 많이 연습할 텐데 연습하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 상대방 소리를 듣고 음의 폭이 큰지 작은지를 잘 봐가면서 조절을 해야 하는데 연습 부족이나 어떤 한계로 인해서 제대로 조화를 못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개인 연습을 더 하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맞춰지는데, 그래도 차이는 있다. 앞으로 KSH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 단체가 오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개 그 구성원들 모두가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연습, 혹은 규정을 잘 따르는 것 등이다. 그래야 그 조직이 오래 유지되고 또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즐겁지 않으면 나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기본인 그런 자세를 가져야 오래갈 수 있고, 스스로 더 잘하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하모니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현재 알토색소폰 파트를 맡고 있는데, 소프라노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 KSH 단원들 각자 모두가 건강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잘 이루어 갔으면 좋겠고, 나 또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정인채 단원) 색소폰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해달라. 38세 때이다. 일도 많이 하고 여유도 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이른 나이에 일찍 안정을 찾았었다. 그러다 보면 술을 마신다든지 담배를 핀다든지 조금 엇나가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런 것보다는 건전하고 좋은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었다. 한번은 아내에게 농담으로 “내가 나이도 40도 다 돼가고 색소폰이나 좀 배워볼까?”하며 색소폰 이야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는 곧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내 말을 기억했던 아내가 감사하게도 미국여행 길에 색소폰을 사 온 거다. 그래서 색소폰 배울 만한 곳을 찾다 마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색소폰 강좌가 있어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단장님을 처음 만났다. 색소폰을 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단장님하고 둘이서 매주 토요일마다 학여울역 다리 밑에서 8시부터 10시, 어떤 때에는 1시까지도 연습을 했었다. 거기가 12차선이라 다리가 굉장히 넓고,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보니 밑에서 색소폰을 불면 소리가 올라가 공명이 생기면서 맑은소리가 나온다. 아는 교수님이 우리 얘기를 듣고 오셔서 소리를 들어보시더니 그 다리에 대해 칼럼을 쓸 정도로 소리가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연습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VJ특공대가 찾아와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지역별로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관한 내용으로 나왔는데, 우리는 서울 편에서 다리 밑에서 색소폰을 불며 여름을 나는 것으로 나갔다. (차은경 단원) KSH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좋은가. 일단 배워간다는 즐거움이 크다. 사실 클래식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면 잘 안 듣게 되고 그랬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면서 클래식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또 더 잘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이전에는 전체적인 멜로디만 들었다면, 여기서 앙상블을 하면서 다른 파트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한 달에 한 번씩 꼭 직접 음악당에 가서 교향곡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취미를 또 하나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KSH에서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부분이 증진되었는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화음을 맞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 소리만 더 크게 들리고 혹은 내 소리만 들렸었다. 그러나 타인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음악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절로 생기게 된 것 같다. 글 Ι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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