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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소폰으로 새 삶을 사는 기분 "안양 호계동 신바람색소폰 동호회"
    혼자일 때 더 무겁다. 사람이기에 때때로 느끼는 공허감은 세상을 더욱 크게 그려낸다. 외로움은 고통이다. 그러나 고독은 홀로 즐거울 수 있다. 어쩌면 세상에 홀로 던져진다는 것이 참으로 희망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실상 그리 대단한 계기가 많지 않다. 삶의 무게를 던져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색소폰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들의 애정 어린 이야기를 접했다. 안양 호계동의 신바람색소폰에서 색소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삼월(三月), 뿌연 하늘이 아쉬운 가운데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 오후 한 지하 연습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직업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색소폰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후 3시 기다란 탁자를 두고 모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차 한 잔 하러 커피숍에 온 듯 푸근함이 느껴진다고들 한다. 24시간 개방된 곳이기에 자정이 넘어 홀로 잠옷 차림으로 들르는 이도 있다. 함께 마주보며 즐거움을 나누는 공간에서 더욱 행복한 사람들이다. 공들여 갖춘 연주 환경으로 회원들의 성취·만족감 높여지하 연습실로 들어서자 깨끗한 인테리어와 쾌적한 공기가 먼저 반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개인 연습실이 3개씩 나뉘어져 있다. 안쪽에는 열 명 정도 들어갈 법한 공간으로 앰프와 스피커가 눈에 띈다. 동호회 내에서 가장 크다는 공간에 들어서자 널찍한 무대와 색소폰이 진열된 모습이 보인다. 왼쪽에는 악보를 볼 수 있게 만든 크고 작은 스크린이 걸려있고 오른편으로는 바(Bar)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품 선반들이 눈에 띈다. 무대 반대편에는 길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어 열 명 남짓의 회원들이 둘러앉아 함께 있기에 적합했다. 이곳을 대표하는 신금호 원장은 회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해 동호회 공간 중 가장 큰 부분인 무대정비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공들여 작업하였는지 무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스피커와 앰프 등의 음향시설이 많이 갖춰져 있지만, 복잡하게 전선 등이 나와 있는 게 보이지 않고 깔끔한 무대에서 오롯이 연주를 즐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및 부품을 만드는 사업체의 대표이기도 한 신금호 원장은 “무대를 만들어 함께 색소폰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대부분 지하에 위치한 색소폰 연습실. 그만큼 답답한 환경을 예상하지만 신바람색소폰 동호회는 그러한 불편 요소를 제거했다. “건물 자체 내에서는 지하이지만 한쪽 밖에서 보았을 때 지상 1층에 위치한 독특한 구조입니다. 색소폰 연습실이 지하인 곳이 많습니다. 방음과 공기 정화 시설에 꼼꼼하게 신경 쓰고자 했습니다. 보통 지하에서 제습기를 사용하지만 이곳은 지상 13층의 공기를 끌어와 지하 연습실에 공급하고 있습니다.”무대 또한 조명과 음향 시설을 최고급으로 갖추어 회원들이 함께 연주를 듣고 고쳐나가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원장은 작년 9월 신바람색소폰을 창단하고 무대 재정비를 위해 최근까지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무대 위를 화려한 조명으로 비추기까지, 복잡하게 얽힌 음향과 관련된 전기선들을 정리하는 데 그의 꼼꼼한 성격이 한몫했다. 연습실과 연습실 사이마다 개인 연주 시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방음 시설 또한 잘 갖추었다. 빔 프로젝트를 사용하여 스크린으로 악보를 보며 무대에서 연주하면 카메라로 촬영 후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바쁜 일정 가운데 신 원장이 영상을 손수 편집하는 등 회원들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배려했다. 회원 이시안 씨는 “전국에서 제일 좋은 인테리어와 실력파 원장님이 계신 동호회를 선택했습니다”라고 칭찬했다. 매주 목요일 공개수업 통해 상호 피드백신바람색소폰의 동호인들은 40대 초·중반부터 70대의 회원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운수업, 개인사업, 직장인 등 퇴직 후에 오시는 분들도 계시다. 신 원장은 이에 덧붙여 “평소에 음악에 관심이 많거나 일상에 지쳐 돌파구를 찾던 분들께서 찾아오신다”고 전했다. 동호회원들은 연습을 위해 자유롭게 시간을 할애해 연습실을 찾을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개인별 실력 향상을 위한 공개 수업을 진행하는데, 인원수에 따라 격주로 나누어 공개수업에 참여하고 2주간 연습한 곡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회원 간 연주를 비교하여 들어보고 하는 등 개인 연습시간과는 또 다른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신 원장은 동호회 회원들이 모두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들을 함께 공유하는 분위기로 나아간다고 한다. “할수록 어려운 게 음악이더군요. 음을 해석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신금호 원장은 색소폰에 대한 자신만의 의미를 “혼자 연주하지만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 같다”고 표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소폰의 매력이 더해진다는 그의 만족감에 동호인들 모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친구가 색소폰 연주를 멋지게 하는 모습을 보고 색소폰을 시작했다는 신 원장. 공통 관심사 덕분에 색소포니스트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등 더욱 새로운 내용의 소통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로 색소폰의 또 다른 영향력을 짐작케 했다. 오감만족 감성 충족으로 신바람 난 동호회 동호회 회원들이 최근 자주 연주하는 곡이 무엇인지 묻자 신 원장은 “유행곡을 주로 한다. 작년에는 ‘안동역’을 많이 연주했다. 연령대나 개인의 취향이 모두 다르다. 트로트나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색소폰 연주를 듣고 따라 연주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답했다. 과거 권위적이며 일방통행의 선택만 하던 본인의 성격이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평소 여가시간에 색소폰 외에도 강인한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신 원장은 하루가 서른 시간이면 좋겠다고 행복한 투정을 한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 등 오감을 충족시킬만한 준비가 다 된 곳이다. 회원들이 악기를 잘 연주하고 때가 되면 시간을 맞추어 좋은 곳에 가서 연주회를 열고 싶다”며 올 가을 제주도로 회원들과 함께 야외 연주회를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는 신금호 원장. 동호인에만 그치지 않고 원하는 이들 모두 참가하는 방식으로 할 예정이다. 나눔을 중시하고 그와 맞는 방향으로 동호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신바람색소폰 회원 모두 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색소폰 입문자 강습을 비롯하여 동호회 전체의 관리를 맡고 있는 이효녀 실장은 “좋은 환경, 좋은 음향을 갖춘 시스템과 원장님의 직강으로 많은 이들이 좋은 조건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많이 찾아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동호인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신금호 원장의 연주를 들었다. 빔 프로젝트로 악보를 살펴가며 유려한 연주를 선보이는 신 원장. 그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석진산 회원과 연주를 귀담아 듣는 회원들의 표정이 온화하다. 신바람 나도록 즐거운 색소폰 연주와 회원들의 여유로운 마음이 모두 담긴 안양 호계동의 이곳에 한번쯤 들러보고 싶지 않은가. 글. 남은별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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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01
  • 색소폰으로 새 삶을 사는 기분 "안양 호계동 신바람색소폰 동호회"
    혼자일 때 더 무겁다. 사람이기에 때때로 느끼는 공허감은 세상을 더욱 크게 그려낸다. 외로움은 고통이다. 그러나 고독은 홀로 즐거울 수 있다. 어쩌면 세상에 홀로 던져진다는 것이 참으로 희망적인 건지도 모르겠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실상 그리 대단한 계기가 많지 않다. 삶의 무게를 던져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위기를 극복하고 삶을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색소폰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들의 애정 어린 이야기를 접했다. 안양 호계동의 신바람색소폰에서 색소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삼월(三月), 뿌연 하늘이 아쉬운 가운데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 오후 한 지하 연습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각기 다른 직업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색소폰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후 3시 기다란 탁자를 두고 모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차 한 잔 하러 커피숍에 온 듯 푸근함이 느껴진다고들 한다. 24시간 개방된 곳이기에 자정이 넘어 홀로 잠옷 차림으로 들르는 이도 있다. 함께 마주보며 즐거움을 나누는 공간에서 더욱 행복한 사람들이다. 공들여 갖춘 연주 환경으로 회원들의 성취·만족감 높여지하 연습실로 들어서자 깨끗한 인테리어와 쾌적한 공기가 먼저 반긴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개인 연습실이 3개씩 나뉘어져 있다. 안쪽에는 열 명 정도 들어갈 법한 공간으로 앰프와 스피커가 눈에 띈다. 동호회 내에서 가장 크다는 공간에 들어서자 널찍한 무대와 색소폰이 진열된 모습이 보인다. 왼쪽에는 악보를 볼 수 있게 만든 크고 작은 스크린이 걸려있고 오른편으로는 바(Bar)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소품 선반들이 눈에 띈다. 무대 반대편에는 길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어 열 명 남짓의 회원들이 둘러앉아 함께 있기에 적합했다. 이곳을 대표하는 신금호 원장은 회원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소중해 동호회 공간 중 가장 큰 부분인 무대정비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공들여 작업하였는지 무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스피커와 앰프 등의 음향시설이 많이 갖춰져 있지만, 복잡하게 전선 등이 나와 있는 게 보이지 않고 깔끔한 무대에서 오롯이 연주를 즐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전자제품 및 부품을 만드는 사업체의 대표이기도 한 신금호 원장은 “무대를 만들어 함께 색소폰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대부분 지하에 위치한 색소폰 연습실. 그만큼 답답한 환경을 예상하지만 신바람색소폰 동호회는 그러한 불편 요소를 제거했다. “건물 자체 내에서는 지하이지만 한쪽 밖에서 보았을 때 지상 1층에 위치한 독특한 구조입니다. 색소폰 연습실이 지하인 곳이 많습니다. 방음과 공기 정화 시설에 꼼꼼하게 신경 쓰고자 했습니다. 보통 지하에서 제습기를 사용하지만 이곳은 지상 13층의 공기를 끌어와 지하 연습실에 공급하고 있습니다.”무대 또한 조명과 음향 시설을 최고급으로 갖추어 회원들이 함께 연주를 듣고 고쳐나가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원장은 작년 9월 신바람색소폰을 창단하고 무대 재정비를 위해 최근까지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무대 위를 화려한 조명으로 비추기까지, 복잡하게 얽힌 음향과 관련된 전기선들을 정리하는 데 그의 꼼꼼한 성격이 한몫했다. 연습실과 연습실 사이마다 개인 연주 시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방음 시설 또한 잘 갖추었다. 빔 프로젝트를 사용하여 스크린으로 악보를 보며 무대에서 연주하면 카메라로 촬영 후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바쁜 일정 가운데 신 원장이 영상을 손수 편집하는 등 회원들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배려했다. 회원 이시안 씨는 “전국에서 제일 좋은 인테리어와 실력파 원장님이 계신 동호회를 선택했습니다”라고 칭찬했다. 매주 목요일 공개수업 통해 상호 피드백신바람색소폰의 동호인들은 40대 초·중반부터 70대의 회원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운수업, 개인사업, 직장인 등 퇴직 후에 오시는 분들도 계시다. 신 원장은 이에 덧붙여 “평소에 음악에 관심이 많거나 일상에 지쳐 돌파구를 찾던 분들께서 찾아오신다”고 전했다. 동호회원들은 연습을 위해 자유롭게 시간을 할애해 연습실을 찾을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개인별 실력 향상을 위한 공개 수업을 진행하는데, 인원수에 따라 격주로 나누어 공개수업에 참여하고 2주간 연습한 곡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회원 간 연주를 비교하여 들어보고 하는 등 개인 연습시간과는 또 다른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 신 원장은 동호회 회원들이 모두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들을 함께 공유하는 분위기로 나아간다고 한다. “할수록 어려운 게 음악이더군요. 음을 해석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신금호 원장은 색소폰에 대한 자신만의 의미를 “혼자 연주하지만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 같다”고 표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소폰의 매력이 더해진다는 그의 만족감에 동호인들 모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친구가 색소폰 연주를 멋지게 하는 모습을 보고 색소폰을 시작했다는 신 원장. 공통 관심사 덕분에 색소포니스트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등 더욱 새로운 내용의 소통이 가능해졌다는 이야기로 색소폰의 또 다른 영향력을 짐작케 했다. 오감만족 감성 충족으로 신바람 난 동호회 동호회 회원들이 최근 자주 연주하는 곡이 무엇인지 묻자 신 원장은 “유행곡을 주로 한다. 작년에는 ‘안동역’을 많이 연주했다. 연령대나 개인의 취향이 모두 다르다. 트로트나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색소폰 연주를 듣고 따라 연주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답했다. 과거 권위적이며 일방통행의 선택만 하던 본인의 성격이 색소폰 연주를 시작하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평소 여가시간에 색소폰 외에도 강인한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신 원장은 하루가 서른 시간이면 좋겠다고 행복한 투정을 한다.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 등 오감을 충족시킬만한 준비가 다 된 곳이다. 회원들이 악기를 잘 연주하고 때가 되면 시간을 맞추어 좋은 곳에 가서 연주회를 열고 싶다”며 올 가을 제주도로 회원들과 함께 야외 연주회를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는 신금호 원장. 동호인에만 그치지 않고 원하는 이들 모두 참가하는 방식으로 할 예정이다. 나눔을 중시하고 그와 맞는 방향으로 동호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은 신바람색소폰 회원 모두 같은 생각이라고 한다. 색소폰 입문자 강습을 비롯하여 동호회 전체의 관리를 맡고 있는 이효녀 실장은 “좋은 환경, 좋은 음향을 갖춘 시스템과 원장님의 직강으로 많은 이들이 좋은 조건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 많이 찾아주셨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동호인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신금호 원장의 연주를 들었다. 빔 프로젝트로 악보를 살펴가며 유려한 연주를 선보이는 신 원장. 그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하는 석진산 회원과 연주를 귀담아 듣는 회원들의 표정이 온화하다. 신바람 나도록 즐거운 색소폰 연주와 회원들의 여유로운 마음이 모두 담긴 안양 호계동의 이곳에 한번쯤 들러보고 싶지 않은가. 글. 남은별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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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01
  • 색소폰이 좋아서 모인 좋은 사람들, '굿피플동호회'
    2018년 5월 18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혹시 공연이 취소되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며 도착했던 영동5교다리. 궂은 날씨 속에서도 떨리는 호흡과 손끝으로 몰입하며 오히려 내리는 비가 고마울 정도로 운치 있었던 음악회를 선사했었던 <굿피플동호회>에 대한 기억이 내게 선명하다. 무엇이 그들을 그런 진지함 속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개포동에 자리한 <굿피플동호회>의 연습실은 그야말로 깔끔했다. 뭔가 모범생 같은 분위기라고 하면 맞을까. 실제로 연습실에 들어가서 바로 눈에 보였던 풍경은 학습의 현장이었다. 둥그렇게 정렬하여 앉은 머리 희끗희끗한 학생들이 태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새로웠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연스레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모습을 담고자 셔터를 눌러댔다. 간혹 플래시도 터뜨리고, 자리를 이리저리 이동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그들에게는 방해가 됐을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선생님만을 응시했다. 그런 분위기가 익숙해 보이는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의 기대에 하나하나 응하고, 대답해주며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수업내용을 물어보니 앙상블수업 중이었다고 한다) 자칫 방해되진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던 와중에 앙상블 수업이 끝났고, 동호회 회원들은 제각기 자신의 악기를 소중하게 닦고 점검했다. 하루 이틀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의 행동이 자유스러우면서도 지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단순히 어떤 단체나 모임에 존속되고자 사람들이 이곳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굿피플동호회는 2014년 11월에 만들어진 동호회다. 마음이 맞아서 시작한 13명의 회원이 뜻을 모아 선생님을 초빙하여 지금의 굿피플동호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주주회원이 22명이고, 일반회원이 13명으로 총 35명이 굿피플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굿피플이 가진 특징이라면 단연 ‘순수 동호회’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 학원 형태가 아니다 보니 아는 지인들이나 혹은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는 동호회 회원들끼리 별다른 말썽 없이 잘 지내 왔다고 한다. 봄이 되면 강남 양재천에서 5월부터 10월까지 매년 한 달에 한 번씩 공연하고, 연말에는 동호인들과 동호인들의 가족들이 모두 참석하여 무려 백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송년 연주회를 한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공연을 거듭한 지 6년 차 정도 되니 ‘진짜 음악’에 대한 갈증을 더 느끼게 되고, 반주기에 의존하지 않고 굿피플동호회만의 음악을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듀엣부터 트리오, 그리고 앙상블까지 공연하기에 충분한 레퍼토리와 음악성을 키워서 관객들이 보기에 지루하지 않은 무대를 구성하고, 자신들끼리도 색소폰을 가지고 흥겹게 놀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종연 동호회 회장)색소폰을 어떻게 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어떻게 해오고 있는지 말해 달라. 1998년도에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였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어느 유명악기점에서 색소폰을 세일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언젠가 불겠지 싶어 세일 가격으로 천 불 정도에 구입했었다. 그러나 혼자 불려다 보니 좀 아니다 싶은 감이 있어 현지에 있는 색소폰 선생님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선생님 연세가 75세 정도였는데, 5살 때부터 악기를 배워 그때까지도 악단에서 활동하고 계신 베테랑이셨다. 그런 분에게 처음부터 색소폰을 배운 것은 행운이었지만, 미국인이다 보니 우리나라 가요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직접 일반 가요 교재를 한국에서 사다가 색소폰 악보로 이조해서 직접 수기로 악보를 써나가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음악 이론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98년도에는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불러보는 수준이었으니 색소폰을 열심히 했다고 볼 수 없다. 한국에 귀국했던 시점인 2000년도에는 회사 일에 매진하느라 색소폰을 불 기회조차도 만들지 못했었다. 2001년, 개인 사업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불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2009년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색소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연습해오고 있다. 그에 비해선 색소폰 실력은 아직 미흡하지만 말이다.원래에도 음악을 좋아했었나. 학교 다닐 때부터 팝송은 다 꿰고 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었다. 특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음치에 속했다.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면 음이 틀렸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 편이었다. 목소리로 음악을 잘 표현하지 못했기에 악기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음악과 점점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악기점에서 악기를 우연히 사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색소폰이 눈에 더 들어온 이유가 있었나. 평소에도 색소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있었지만, 단순히 그냥 눈에 가장 들어온 것이 색소폰이었다. 당시에 색소폰뿐만 아니라 젬베라는 악기도 같이 샀었는데, 젬베에 그려진 문양들이 너무 예뻐서 산 것이다. 그 젬베도 여기에 가져다 놓았다.젬베도 잘 연주하나. 반주기만 가지고 색소폰을 불다보니 박자에 문제가 생기더라. 박자 공부를 하기 위해드럼 선생님을 찾아가 젬베를 배웠었다. 덕분에 박자를 이제 간신히 알겠다 싶은 정도에 온 것 같기는 하다.바쁜 일상 속에서 색소폰을 하게 되는 원천이 무엇인가. 대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한 지는 상당히 오래됐었다. 그때는 7시에 출근해서 새벽 한 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마음속 어디엔가 잠재해 있던 것들을 표출하고, 그런 자유를 활성화하게 되는 것이 악기를 불게 하는 원동력이 되더라. 사실 색소폰을 불기 전에는 와이프와 같이 스포츠 댄스를 15년 정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내게 낯설지는 않았다. 지금은 댄스스포츠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색소폰으로 블루스나 룸바 장르의 곡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이렇게 색소폰과 스포츠 댄스를 같이 접목해서 하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색소폰을 배우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없었나. 생각했던 것처럼 연습이 되지 않거나, 또는 연주한 것을 녹음해서 들어보았는데 스스로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를 때 색소폰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좌절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레슨을 받거나, 혹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접하여 도전함으로써 슬럼프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 어떤 곡을 완성해야지 하는 것 보다는 어떤 곡을 하든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은 것이 꿈이자 바람이다. 과연 평생 한 번 이루어 볼 수 있을지….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될 수도 있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 (최용인 사무총장)동호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일반 학원이 아닌 동호회 회원들이 연습실을 다 같이 운영하고 있다 보니 누군가는 회비도 받고 지출도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총무, 회계 이런 것들을 도맡아 한다. 금년에 총무가 새로 생기면서 나는 회계를 주로 하고, 동시에 동호회 운영에 있어서 상의할 부분들 혹은 연락 사항들을 관리한다. 나이가 있다 보니 총무라고 안 하고 사무총장이라고 불러준다(웃음).자신만의 색소폰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가수들이 무대에 서려면 천 번 이상 연습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완성도는 높겠지만 본인에게는 고통이다. 계속 같은 것을 연습해야 하니 말이다. 나 같은 경우 그렇게 는 안 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이것저것 따라하면서 편안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곡으로 따지면 아마 우리 동호회 회원들 중에 여러 가지 곡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손에 꼽힐 것 같다. 특별히 어느 한 곡을 잘하진 않지만 여러 곡을 두루두루 한다. 무대에 설 때 떨리지는 않았는가.무대에 섰던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해달라.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무대에서면 악보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연습할 때에는 조금만 딴 생각하면 악보가 지나가 버리는데, 무대에서 연주할 때에는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한번은 공연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적이 있었다. 그때문에 우리도 못 가고, 관중도 못 가고 했던 일이 있었다. (이석재 동호회 회원)색소폰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색소폰을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가요와 트로트를 즐겨듣고 좋아하는데, 색소폰이 가요와 트로트 장르에 맞는 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색소폰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나. 색소폰을 불고있는 시간에는 색소폰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 음악을 잘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악보를 보게 되고, 색소폰으로 노래가 된다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색소폰을 하는 데에 있어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보통 사람들이 다 하는 만큼의 거북하지 않고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일 년 정도 불었을 때는 내가 제일 잘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음악의 깊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다.목표로 하는 곡은 따로 없나. 꼭 하나만 집어 말해 달라.<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라는 곡을 예전에 하긴 했었는데, 지금도 잘 못 한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고, <홍도야 울지마라> 같은 빠르고 경쾌하면서 여러 가지 애드리브가 들어가는 곡들도 해보고 싶다. 글·사진 Ι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7-01
  • 색소폰이 좋아서 모인 좋은 사람들, '굿피플동호회'
    2018년 5월 18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다. 혹시 공연이 취소되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며 도착했던 영동5교다리. 궂은 날씨 속에서도 떨리는 호흡과 손끝으로 몰입하며 오히려 내리는 비가 고마울 정도로 운치 있었던 음악회를 선사했었던 <굿피플동호회>에 대한 기억이 내게 선명하다. 무엇이 그들을 그런 진지함 속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게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개포동에 자리한 <굿피플동호회>의 연습실은 그야말로 깔끔했다. 뭔가 모범생 같은 분위기라고 하면 맞을까. 실제로 연습실에 들어가서 바로 눈에 보였던 풍경은 학습의 현장이었다. 둥그렇게 정렬하여 앉은 머리 희끗희끗한 학생들이 태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새로웠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연스레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모습을 담고자 셔터를 눌러댔다. 간혹 플래시도 터뜨리고, 자리를 이리저리 이동하며 사진을 찍었던 터라 그들에게는 방해가 됐을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선생님만을 응시했다. 그런 분위기가 익숙해 보이는 선생님은 그런 학생들의 기대에 하나하나 응하고, 대답해주며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수업내용을 물어보니 앙상블수업 중이었다고 한다) 자칫 방해되진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던 와중에 앙상블 수업이 끝났고, 동호회 회원들은 제각기 자신의 악기를 소중하게 닦고 점검했다. 하루 이틀 그렇게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의 행동이 자유스러우면서도 지키는 것이 명확해 보였다. 단순히 어떤 단체나 모임에 존속되고자 사람들이 이곳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굿피플동호회는 2014년 11월에 만들어진 동호회다. 마음이 맞아서 시작한 13명의 회원이 뜻을 모아 선생님을 초빙하여 지금의 굿피플동호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주주회원이 22명이고, 일반회원이 13명으로 총 35명이 굿피플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굿피플이 가진 특징이라면 단연 ‘순수 동호회’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 학원 형태가 아니다 보니 아는 지인들이나 혹은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는 동호회 회원들끼리 별다른 말썽 없이 잘 지내 왔다고 한다. 봄이 되면 강남 양재천에서 5월부터 10월까지 매년 한 달에 한 번씩 공연하고, 연말에는 동호인들과 동호인들의 가족들이 모두 참석하여 무려 백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송년 연주회를 한다. 그렇게 정기적으로 공연을 거듭한 지 6년 차 정도 되니 ‘진짜 음악’에 대한 갈증을 더 느끼게 되고, 반주기에 의존하지 않고 굿피플동호회만의 음악을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듀엣부터 트리오, 그리고 앙상블까지 공연하기에 충분한 레퍼토리와 음악성을 키워서 관객들이 보기에 지루하지 않은 무대를 구성하고, 자신들끼리도 색소폰을 가지고 흥겹게 놀 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종연 동호회 회장)색소폰을 어떻게 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어떻게 해오고 있는지 말해 달라. 1998년도에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였다.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어느 유명악기점에서 색소폰을 세일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언젠가 불겠지 싶어 세일 가격으로 천 불 정도에 구입했었다. 그러나 혼자 불려다 보니 좀 아니다 싶은 감이 있어 현지에 있는 색소폰 선생님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선생님 연세가 75세 정도였는데, 5살 때부터 악기를 배워 그때까지도 악단에서 활동하고 계신 베테랑이셨다. 그런 분에게 처음부터 색소폰을 배운 것은 행운이었지만, 미국인이다 보니 우리나라 가요를 배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직접 일반 가요 교재를 한국에서 사다가 색소폰 악보로 이조해서 직접 수기로 악보를 써나가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음악 이론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 좋은 계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98년도에는 고작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불러보는 수준이었으니 색소폰을 열심히 했다고 볼 수 없다. 한국에 귀국했던 시점인 2000년도에는 회사 일에 매진하느라 색소폰을 불 기회조차도 만들지 못했었다. 2001년, 개인 사업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불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2009년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색소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연습해오고 있다. 그에 비해선 색소폰 실력은 아직 미흡하지만 말이다.원래에도 음악을 좋아했었나. 학교 다닐 때부터 팝송은 다 꿰고 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었다. 특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음치에 속했다.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면 음이 틀렸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 편이었다. 목소리로 음악을 잘 표현하지 못했기에 악기로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음악과 점점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악기점에서 악기를 우연히 사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색소폰이 눈에 더 들어온 이유가 있었나. 평소에도 색소폰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있었지만, 단순히 그냥 눈에 가장 들어온 것이 색소폰이었다. 당시에 색소폰뿐만 아니라 젬베라는 악기도 같이 샀었는데, 젬베에 그려진 문양들이 너무 예뻐서 산 것이다. 그 젬베도 여기에 가져다 놓았다.젬베도 잘 연주하나. 반주기만 가지고 색소폰을 불다보니 박자에 문제가 생기더라. 박자 공부를 하기 위해드럼 선생님을 찾아가 젬베를 배웠었다. 덕분에 박자를 이제 간신히 알겠다 싶은 정도에 온 것 같기는 하다.바쁜 일상 속에서 색소폰을 하게 되는 원천이 무엇인가. 대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한 지는 상당히 오래됐었다. 그때는 7시에 출근해서 새벽 한 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좋아하는 음악을 통해 마음속 어디엔가 잠재해 있던 것들을 표출하고, 그런 자유를 활성화하게 되는 것이 악기를 불게 하는 원동력이 되더라. 사실 색소폰을 불기 전에는 와이프와 같이 스포츠 댄스를 15년 정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이 내게 낯설지는 않았다. 지금은 댄스스포츠 파티가 열리는 날이면 색소폰으로 블루스나 룸바 장르의 곡을 연주하며 흥을 돋우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이렇게 색소폰과 스포츠 댄스를 같이 접목해서 하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색소폰을 배우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없었나. 생각했던 것처럼 연습이 되지 않거나, 또는 연주한 것을 녹음해서 들어보았는데 스스로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를 때 색소폰을 과연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좌절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레슨을 받거나, 혹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접하여 도전함으로써 슬럼프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 어떤 곡을 완성해야지 하는 것 보다는 어떤 곡을 하든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은 것이 꿈이자 바람이다. 과연 평생 한 번 이루어 볼 수 있을지….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될 수도 있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 (최용인 사무총장)동호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 일반 학원이 아닌 동호회 회원들이 연습실을 다 같이 운영하고 있다 보니 누군가는 회비도 받고 지출도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총무, 회계 이런 것들을 도맡아 한다. 금년에 총무가 새로 생기면서 나는 회계를 주로 하고, 동시에 동호회 운영에 있어서 상의할 부분들 혹은 연락 사항들을 관리한다. 나이가 있다 보니 총무라고 안 하고 사무총장이라고 불러준다(웃음).자신만의 색소폰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가수들이 무대에 서려면 천 번 이상 연습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완성도는 높겠지만 본인에게는 고통이다. 계속 같은 것을 연습해야 하니 말이다. 나 같은 경우 그렇게 는 안 하는 편이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이것저것 따라하면서 편안하게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곡으로 따지면 아마 우리 동호회 회원들 중에 여러 가지 곡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손에 꼽힐 것 같다. 특별히 어느 한 곡을 잘하진 않지만 여러 곡을 두루두루 한다. 무대에 설 때 떨리지는 않았는가.무대에 섰던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해달라. 긴장해서 그런 것인지 무대에서면 악보가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연습할 때에는 조금만 딴 생각하면 악보가 지나가 버리는데, 무대에서 연주할 때에는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한번은 공연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 적이 있었다. 그때문에 우리도 못 가고, 관중도 못 가고 했던 일이 있었다. (이석재 동호회 회원)색소폰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색소폰을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가요와 트로트를 즐겨듣고 좋아하는데, 색소폰이 가요와 트로트 장르에 맞는 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색소폰의 어떤 부분에 매력을 느꼈나. 색소폰을 불고있는 시간에는 색소폰에만 몰두할 수 있어서 좋다. 음악을 잘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악보를 보게 되고, 색소폰으로 노래가 된다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색소폰을 하는 데에 있어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보통 사람들이 다 하는 만큼의 거북하지 않고 좋은 소리로 연주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일 년 정도 불었을 때는 내가 제일 잘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는데, 하면 할수록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음악의 깊이라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다.목표로 하는 곡은 따로 없나. 꼭 하나만 집어 말해 달라.<이별의 부산 정거장>이라는 곡을 예전에 하긴 했었는데, 지금도 잘 못 한다. 그래서 더 해보고 싶고, <홍도야 울지마라> 같은 빠르고 경쾌하면서 여러 가지 애드리브가 들어가는 곡들도 해보고 싶다. 글·사진 Ι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7-01
  • 색소폰과 함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사람들,'안양어울림동호회'
    누구에게나 도전이라는 것은 어렵고도 낯설게 그리고 멀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느껴지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화려하고 찬란했던 제1의 인생을 뒤로하고, 이제는 색소폰과 함께 인생 제2막을 써내려가는, 또 다른 삶의 무대에 뛰어든 사람들이 모인 어울림 동호회를 만났다. (박 정 호 동호회 원장)어울림동호회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이곳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원장이다. 학원이 아닌 동호회 형식을 띤 이 공간의 전체 운영을 맡고 있다.어울림동호회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원래는 개인 음악실을 가지고 있었다. 4명이 같이 운영을 했고, 취지는 은퇴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음악을 한 번 해보자였다. 당시에는 기타나 드럼, 색소폰 여러종류의 악기를 구상했었는데, 색소폰만 10년 넘게 불다 보니 색소폰 동호회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동호회가 만들어진 지 5년 정도 되었다.아무리 취미라지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색소폰을 불었다면 취미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원래 음악에 대해 잘 몰랐었다. 그러다 보니 악기를 통해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 닿더라. 색소폰을 불면 불수록 점점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기초를 튼튼하게 하자는 주의라 레슨도 많이 받고, 전공생들이 하는 스케일 연습도 했다. 이론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는 서점에서 작곡 관련 책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저 어려울 것만 같던 이론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더러 있더라. 그렇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 반주기에도 맞춰서 하다 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지고, 깊이 빠져들더라. 그런 것들이 여태까지 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동호회 회원 수는 몇명인가, 회원 규모가 늘어나게 된 계기가 있나.회원은 대략 45~50여 명 된다. 어울림 동호회에는 기본적으로 연습실은 오로지 음악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원칙이 있다. 알코올 섭취시 연습실 출입금지는 당연하고, 간혹 다과 같은 것을 먹는 것도 되도록이면 금지하고 있다. 그저 놀고먹기 위한 동호회가 아닌 서로 기초를 다져가며 커가는 온전한 동호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런 방향성을 띠고 가다 보니 4년 정도 후엔 지역사회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더라. 실제로 우리 동호회에 계신 많은 분이 그런 원칙에 부합하고 또 존중해주는 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인원 변동이 별로 없는 편이다.연습실이 많아 보이던데. 그렇다. 개인 공간을 대기 시간 없이 연습할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연습을 하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되어 있어 연습실이 많아야 한다. 낮에는 직장 혹은 집안일이 있어 주로 저녁에 연습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녁에 와도 연습실이 겹치는 경우가 없다. 기본기 연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였는데, 아무래도 단체이다 보니 다 같이 해나가기에 힘든 부분이 있지 않나. 그래서 프로그램을 짰다. 레슨하는 프로그램, 전체적인 강의, 그리고 앙상블. 이렇게 세 개로 구분 지었다. 레슨 프로그램은 개인별로 신청을 받아 실용음악과 출신의 전공자분들에게 체계적으로 레슨받을 수 있다. 전체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 기초적인 강의를 한다. 초급, 중급, 고급을 나누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알려주려고 한다. 그러면서 늘 회원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체계적으로 연습하고, 이론을 아는 뮤지션이 되자”이다. 반주기에만 그저 도취되는 것이 아닌, 알고 음악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특별히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나. 아마추어가 뮤지션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처음 음악을 접할 때 기초가 없으면 3년~5년 정도 되면 권태기가 와서 중간에 포기하더라. 기초가 튼튼하면 그걸 넘어설 수 있다. 그래서 간혹 권태기가 온 회원님들이 있다고 하면 레슨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권유를 한다. 색소폰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누구나 색소폰을 부는 모습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나. 그런 분들에게 무조건 도전하라고 말한다. 우리 동호회에 여든 되신 분이 두 분이나 계신다. 두 분 모두 굉장히 잘 부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처럼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김 양 수 동호회 회장)어울림동호회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 원장님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어서 오게 된 것은 아니다. 8년 전에는 다른 동호회에 있었다. 지금 실장님이 어울림동호회에 한 번 와주십사 하여 와봤는데, 동호회의 취지가 나와 아주 잘 맞기도 해서 과감히 바꿨다.동호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신데 어울림동호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동호회 회장직을 올해로 4년째 맡고 있다. 3년 정도 하고 회장 자리를 내어놓겠다 했는데, 원장님과 회원들이 1년만 더 해줬으면 좋겠다 해서 일단 올해까지는 회장직을 유지할 예정이다. 나보다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시고, 다양한 분들이 한 번씩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이다. 4년이나 하면 장기집권 아닌가. 아시다시피 조직에 10명만 모여도 말썽이 많다. 이 주변에 색소폰동호회만해도 10개가 넘는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 어울림동호회만 말썽이 없다. 내가 주장하는 부분도 일단은 사람 관계 중심으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편이다. 얼굴 찌푸리는 일 없고, 좋은 말 많이 하고, 칭찬 많이 하고,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아주 높다. 그런 것들의 밑바탕이 아마도, 우리 동호회 41명의 인성이 훌륭하시고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훌륭한 분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분들도 한 번씩 회장직을 맡아서 직접 다른 분위기로 조성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일하면서 색소폰을 겸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꼭 연습실에 온다. 사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낸다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동호회에서 맡은 직책도 있고, 동호회 돌아가는 것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에 자주 나오려 하는 편이다.연습은 보통 어떤 방법으로 하나. 기본기를 많이 연습하는 편이다. 소화하는 곡들이 그래도 많은 편인데, 그걸 계속하다 보니 연주에 치중하는 것보다는 원장님께서 주시는 악보, 멜로디, 리듬, 코드 등을 머릿속에 담으려고 노력한다.색소폰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나. 나는 주로 듣는 쪽이다. 부는 것보다는 듣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듣는 귀가 열려야 내가 불 수 있는 환경이 맞춰지는 것이지 나만 즐거우면 안 되지 않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즐거워야지 나만 만족해서는 음악이라고 보기 힘들다.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지만 음악활동을 통해서 내 행복을 먼저 찾고, 무대가 마련된 연주 초청이 오면 기꺼이 나가서 봉사해야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도 많이 듣는다.기억에 남았던 동호회 연주가 있나.3년 전에 갔던 맹아학교가 기억에 남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의 강당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다. 그게 우리 회원 중에 여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 가르치는 학생과 인연이 닿아 가게 되었다. 그전에는 맹아학교가 서울에 몇 군데 있었는지도 몰랐었다. 연주를 한 두번 나가다보니 주변에 맹아학교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감동적이었던 것이 일단 연주를 하면 대부분 관객의 반응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냥 박수 정도에서 끝나는게 아니고, 가슴으로 감동이 느껴지게끔 표현을 해주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 맑게 같이 동참해 주었던 그 모습이 너무나 남더라. (김 윤 분 회원)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는. 댄스 스포츠 강사로 18년 이상을 수업했었는데,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색소폰을 배워서 어디 가서 연주도 하고, 뭐도 하고 그런다고 굉장히 자랑하시더라. 마침 일전에 아들이 색소폰을 배운다고 사다 놓은 악기가 있었던 터라 흥미를 갖고 어르신들 동호회에 구경을 갔었다. 거기 계신 분들 연령대가 70대 이상이셨다. 그 중에 한 분이 멋지게 자랑할 요량으로 열정적으로 세 곡을 내리 연주하셨는데, 그때 든 생각이 ‘저분 나이 75세에 저렇게 할 정도면, 내가 지금 배워서 저 나이가 되면 훨씬 낫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이어서 색소폰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사는 기분이다. 이걸 안 배웠으면 내가 뭘 했을까 할 정도로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3, 4년 전에 동호회에서 연주를 나갔는데, 그때 솔로 연주 할 기회가 있었다. 남 앞에 서서 연주한다는 것이 긴장도 많이 되고 어려웠던 터라 무대에서 달달 떨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삑삑” 소리만 나다가 끝났었다. 그게 내 첫 무대였다. 그때 당시 ‘이걸 계속 해야 하나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는 잊지 못할 창피한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때 같이 하던 회원이 무대에 다시 올라가서 한 번 더 해보라더라. 한 번 더 하다가는 숨이 멎겠다고 얘기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이 지금 한 번 더 안하면 영영 사람들 앞에서 못 설 것이니 괜찮으니까 한 번 더 해보라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내 쌌던 가방을 풀고 무대에 다시 올라가서 하니 그때는 괜찮더라. 아마 그때 한 번만 하고 안했더라면, 지금까지도 사람들 앞에 서는게 굉장히 두려웠을 거다. 동호회 회원 덕분에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어울림동호회는 어떤 동호회인가. 이곳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공부하는 분위기를 가진 동호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하다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또 서로 알려주고 그런다. 그렇게 서로 공부하며 잘 어울리는 부분이 이곳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정 인 숙 회원)개인적인 일이 많을 텐데 어떻게 시간을 쪼개서 동호회 활동을 하나. 자투리시간을 이용하는 편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 보니 몸이 피곤해도 심지어 아침이어도 꼭 와서 한다. 만약 아침에 일이 있을 때는 일 끝난 후 저녁에 잠깐이라도 와서 연습하고 간다. 그렇게 중간중간이라도 들러 연습하지 않았으면 아마 포기했을 거다. 그렇게 바빠도 짬을 내어서 오다 보니 부족하지만, 연주도 하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어울림동호회 활동을 하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나. 한 번은 원장님이 색소폰을 부는데 “깨굴깨굴깨굴” 소리가 나더라. 그 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냐고 물었더니 원장님이 내가 표현하는 게 너무 웃기다며 엄청 웃으시더라. 알고 보니 그게 주법이더라. 저 “깨굴깨굴깨굴” 소리를 나는 언제 내나 싶더라.어울림동호회 회원으로서 이런 건 참 좋다 하는 부분이 있나. 일단 원장님이 동호회를 위해 항상 열심히 하신다. 색소폰에 입문한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신다. 그리고 회원들도 어울림 동호회라는 이름처럼 서로 잘 어우러진다. 서로가 이해하고, 배려하고, 모르는 부분은 알려주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 이동호회에 들어 온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잘 되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서로 알려주고 도와주고 하는 부분이 정말 좋다. 이런 걸 보면 동호회가 이름 따라가나보다 싶다. (조 승 환 회원)색소폰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인생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전성기와 황금기로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던 시기를 전성기로 친다면, 퇴직 후부터 76세까지는 황금기라고 말하고 싶다.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 놓았던 것들을 가지고 취미 생활도 즐기고, 평소에 못 했던 것들도 하고 싶고, 좀 더 보람되게 살고 싶다. 이제는 백세 시대 아닌가. 그저 무의미하게 사는 것보다는 이렇게 색소폰과 함께한다면 앞으로의 노후가 더 즐겁지 아니하겠는가.동호회 활동을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주는 편인가. 그렇다. 교회에서 간혹 연주라도 하면 아주 좋아하더라. 올해 10월에 딸이 결혼하는데,결혼할 때 축가로 색소폰 연주를 해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던 중에 상견례를 했는데, 사돈어른 되실 분도 색소폰을 하신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이들 결혼식 할 때 같이 색소폰 연주를 하는 게 어떻겠냐 제안을 하니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래서 요즘 종종 같이 만나 연습하고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도 보람된다.어울림동호회에 또 어떤 사람들이 있나. 우리 동호회에 스님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신다. 두 분 모두 아주 연주를 잘하신다. 특히 스님같은 경우 승려복에 색소폰을 멘 모습이 굉장히 특별했다. 두 분의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두 분 모두 트로트 연주를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노 재 홍, 권 현 숙 부부)어떻게 부부가 같이 색소폰을 불게 되었나. 여기 어울림동호회에도 두, 세팀 정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1년 정도 드럼을 하다가 우연히 연습실에서 아주머니들이 색소폰을 부는 모습을 보고 그게 멋져 보여 입문하게 되었다. 악보 보는 것에 자신이 없었던 터라 고민을 했는데, 3개월 정도 하니 악보가 조금씩 보이더라. 악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무섭게 재미가 붙어 그때부터 정말 즐기면서 열심히 하게 된 것 같다.어울림동호회에는 남편의 추천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가. 처음 색소폰을 배웠을 때는 학원을 먼저 다녔었다. 학원 같은 경우는 정해진 레슨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나에겐 시간을 맞추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한참동안 차에 악기를 싣고 다녔었다. 그러다 남편의 추천과 이 동호회에서 먼저 활동하고 있었던 언니의 추천으로 오게 되었는데, 들어와 보니 연습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학원보다 훨씬 수월하더라. 못할 것 같았던 마음도 언니와 남편이 힘을 실어줘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재미가 많이 붙어 직장도 관두고 색소폰만 불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어느새 8개월째다.부부가 취미가 같아서 어떤 부분이 좋은가. 색소폰에 관해서 대화가 잘 통하다 보니 얘깃거리가 많다. 유튜브에서 음악도 같이 찾아서듣고, 녹음도 해보고, 서로의 연주를 들려주면서 틀린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 주고, 의견을 나누며 하다 보니 지루하지도 않고 같이 성장할 수 있어서 좋다. 글 |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6-01
  • 색소폰과 함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사람들,'안양어울림동호회'
    누구에게나 도전이라는 것은 어렵고도 낯설게 그리고 멀게 다가온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설렘으로 느껴지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화려하고 찬란했던 제1의 인생을 뒤로하고, 이제는 색소폰과 함께 인생 제2막을 써내려가는, 또 다른 삶의 무대에 뛰어든 사람들이 모인 어울림 동호회를 만났다. (박 정 호 동호회 원장)어울림동호회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이곳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원장이다. 학원이 아닌 동호회 형식을 띤 이 공간의 전체 운영을 맡고 있다.어울림동호회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원래는 개인 음악실을 가지고 있었다. 4명이 같이 운영을 했고, 취지는 은퇴한 사람들끼리 뭉쳐서 음악을 한 번 해보자였다. 당시에는 기타나 드럼, 색소폰 여러종류의 악기를 구상했었는데, 색소폰만 10년 넘게 불다 보니 색소폰 동호회를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동호회가 만들어진 지 5년 정도 되었다.아무리 취미라지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색소폰을 불었다면 취미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원래 음악에 대해 잘 몰랐었다. 그러다 보니 악기를 통해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와 닿더라. 색소폰을 불면 불수록 점점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기초를 튼튼하게 하자는 주의라 레슨도 많이 받고, 전공생들이 하는 스케일 연습도 했다. 이론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는 서점에서 작곡 관련 책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저 어려울 것만 같던 이론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더러 있더라. 그렇게 하면서 시간이 지나 반주기에도 맞춰서 하다 보니 더 재미있게 느껴지고, 깊이 빠져들더라. 그런 것들이 여태까지 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동호회 회원 수는 몇명인가, 회원 규모가 늘어나게 된 계기가 있나.회원은 대략 45~50여 명 된다. 어울림 동호회에는 기본적으로 연습실은 오로지 음악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원칙이 있다. 알코올 섭취시 연습실 출입금지는 당연하고, 간혹 다과 같은 것을 먹는 것도 되도록이면 금지하고 있다. 그저 놀고먹기 위한 동호회가 아닌 서로 기초를 다져가며 커가는 온전한 동호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런 방향성을 띠고 가다 보니 4년 정도 후엔 지역사회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더라. 실제로 우리 동호회에 계신 많은 분이 그런 원칙에 부합하고 또 존중해주는 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인원 변동이 별로 없는 편이다.연습실이 많아 보이던데. 그렇다. 개인 공간을 대기 시간 없이 연습할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연습을 하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되어 있어 연습실이 많아야 한다. 낮에는 직장 혹은 집안일이 있어 주로 저녁에 연습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녁에 와도 연습실이 겹치는 경우가 없다. 기본기 연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였는데, 아무래도 단체이다 보니 다 같이 해나가기에 힘든 부분이 있지 않나. 그래서 프로그램을 짰다. 레슨하는 프로그램, 전체적인 강의, 그리고 앙상블. 이렇게 세 개로 구분 지었다. 레슨 프로그램은 개인별로 신청을 받아 실용음악과 출신의 전공자분들에게 체계적으로 레슨받을 수 있다. 전체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 기초적인 강의를 한다. 초급, 중급, 고급을 나누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알려주려고 한다. 그러면서 늘 회원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체계적으로 연습하고, 이론을 아는 뮤지션이 되자”이다. 반주기에만 그저 도취되는 것이 아닌, 알고 음악을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특별히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나. 아마추어가 뮤지션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처음 음악을 접할 때 기초가 없으면 3년~5년 정도 되면 권태기가 와서 중간에 포기하더라. 기초가 튼튼하면 그걸 넘어설 수 있다. 그래서 간혹 권태기가 온 회원님들이 있다고 하면 레슨을 좀 받았으면 좋겠다고 권유를 한다. 색소폰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누구나 색소폰을 부는 모습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나. 그런 분들에게 무조건 도전하라고 말한다. 우리 동호회에 여든 되신 분이 두 분이나 계신다. 두 분 모두 굉장히 잘 부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나.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처럼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김 양 수 동호회 회장)어울림동호회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 원장님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어서 오게 된 것은 아니다. 8년 전에는 다른 동호회에 있었다. 지금 실장님이 어울림동호회에 한 번 와주십사 하여 와봤는데, 동호회의 취지가 나와 아주 잘 맞기도 해서 과감히 바꿨다.동호회 회장직을 맡고 있으신데 어울림동호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동호회 회장직을 올해로 4년째 맡고 있다. 3년 정도 하고 회장 자리를 내어놓겠다 했는데, 원장님과 회원들이 1년만 더 해줬으면 좋겠다 해서 일단 올해까지는 회장직을 유지할 예정이다. 나보다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시고, 다양한 분들이 한 번씩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이다. 4년이나 하면 장기집권 아닌가. 아시다시피 조직에 10명만 모여도 말썽이 많다. 이 주변에 색소폰동호회만해도 10개가 넘는다. 그런데 유일하게 우리 어울림동호회만 말썽이 없다. 내가 주장하는 부분도 일단은 사람 관계 중심으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편이다. 얼굴 찌푸리는 일 없고, 좋은 말 많이 하고, 칭찬 많이 하고,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아주 높다. 그런 것들의 밑바탕이 아마도, 우리 동호회 41명의 인성이 훌륭하시고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훌륭한 분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분들도 한 번씩 회장직을 맡아서 직접 다른 분위기로 조성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일하면서 색소폰을 겸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꼭 연습실에 온다. 사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낸다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동호회에서 맡은 직책도 있고, 동호회 돌아가는 것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에 자주 나오려 하는 편이다.연습은 보통 어떤 방법으로 하나. 기본기를 많이 연습하는 편이다. 소화하는 곡들이 그래도 많은 편인데, 그걸 계속하다 보니 연주에 치중하는 것보다는 원장님께서 주시는 악보, 멜로디, 리듬, 코드 등을 머릿속에 담으려고 노력한다.색소폰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나. 나는 주로 듣는 쪽이다. 부는 것보다는 듣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듣는 귀가 열려야 내가 불 수 있는 환경이 맞춰지는 것이지 나만 즐거우면 안 되지 않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즐거워야지 나만 만족해서는 음악이라고 보기 힘들다. 우리가 전문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니지만 음악활동을 통해서 내 행복을 먼저 찾고, 무대가 마련된 연주 초청이 오면 기꺼이 나가서 봉사해야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도 많이 듣는다.기억에 남았던 동호회 연주가 있나.3년 전에 갔던 맹아학교가 기억에 남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의 강당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다. 그게 우리 회원 중에 여교수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 가르치는 학생과 인연이 닿아 가게 되었다. 그전에는 맹아학교가 서울에 몇 군데 있었는지도 몰랐었다. 연주를 한 두번 나가다보니 주변에 맹아학교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감동적이었던 것이 일단 연주를 하면 대부분 관객의 반응이라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냥 박수 정도에서 끝나는게 아니고, 가슴으로 감동이 느껴지게끔 표현을 해주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나 맑게 같이 동참해 주었던 그 모습이 너무나 남더라. (김 윤 분 회원)색소폰을 하게 된 계기는. 댄스 스포츠 강사로 18년 이상을 수업했었는데,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색소폰을 배워서 어디 가서 연주도 하고, 뭐도 하고 그런다고 굉장히 자랑하시더라. 마침 일전에 아들이 색소폰을 배운다고 사다 놓은 악기가 있었던 터라 흥미를 갖고 어르신들 동호회에 구경을 갔었다. 거기 계신 분들 연령대가 70대 이상이셨다. 그 중에 한 분이 멋지게 자랑할 요량으로 열정적으로 세 곡을 내리 연주하셨는데, 그때 든 생각이 ‘저분 나이 75세에 저렇게 할 정도면, 내가 지금 배워서 저 나이가 되면 훨씬 낫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이어서 색소폰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사는 기분이다. 이걸 안 배웠으면 내가 뭘 했을까 할 정도로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3, 4년 전에 동호회에서 연주를 나갔는데, 그때 솔로 연주 할 기회가 있었다. 남 앞에 서서 연주한다는 것이 긴장도 많이 되고 어려웠던 터라 무대에서 달달 떨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삑삑” 소리만 나다가 끝났었다. 그게 내 첫 무대였다. 그때 당시 ‘이걸 계속 해야 하나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는 잊지 못할 창피한 순간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때 같이 하던 회원이 무대에 다시 올라가서 한 번 더 해보라더라. 한 번 더 하다가는 숨이 멎겠다고 얘기했더니, 그 친구 하는 말이 지금 한 번 더 안하면 영영 사람들 앞에서 못 설 것이니 괜찮으니까 한 번 더 해보라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내 쌌던 가방을 풀고 무대에 다시 올라가서 하니 그때는 괜찮더라. 아마 그때 한 번만 하고 안했더라면, 지금까지도 사람들 앞에 서는게 굉장히 두려웠을 거다. 동호회 회원 덕분에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어울림동호회는 어떤 동호회인가. 이곳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공부하는 분위기를 가진 동호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하다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물어보고, 또 서로 알려주고 그런다. 그렇게 서로 공부하며 잘 어울리는 부분이 이곳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정 인 숙 회원)개인적인 일이 많을 텐데 어떻게 시간을 쪼개서 동호회 활동을 하나. 자투리시간을 이용하는 편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 보니 몸이 피곤해도 심지어 아침이어도 꼭 와서 한다. 만약 아침에 일이 있을 때는 일 끝난 후 저녁에 잠깐이라도 와서 연습하고 간다. 그렇게 중간중간이라도 들러 연습하지 않았으면 아마 포기했을 거다. 그렇게 바빠도 짬을 내어서 오다 보니 부족하지만, 연주도 하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어울림동호회 활동을 하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나. 한 번은 원장님이 색소폰을 부는데 “깨굴깨굴깨굴” 소리가 나더라. 그 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냐고 물었더니 원장님이 내가 표현하는 게 너무 웃기다며 엄청 웃으시더라. 알고 보니 그게 주법이더라. 저 “깨굴깨굴깨굴” 소리를 나는 언제 내나 싶더라.어울림동호회 회원으로서 이런 건 참 좋다 하는 부분이 있나. 일단 원장님이 동호회를 위해 항상 열심히 하신다. 색소폰에 입문한 사람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하신다. 그리고 회원들도 어울림 동호회라는 이름처럼 서로 잘 어우러진다. 서로가 이해하고, 배려하고, 모르는 부분은 알려주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 이동호회에 들어 온 지 1년도 채 안 되었는데, 그런 부분이 굉장히 잘 되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서로 알려주고 도와주고 하는 부분이 정말 좋다. 이런 걸 보면 동호회가 이름 따라가나보다 싶다. (조 승 환 회원)색소폰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인생을 두 가지로 나눈다면 전성기와 황금기로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던 시기를 전성기로 친다면, 퇴직 후부터 76세까지는 황금기라고 말하고 싶다.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 놓았던 것들을 가지고 취미 생활도 즐기고, 평소에 못 했던 것들도 하고 싶고, 좀 더 보람되게 살고 싶다. 이제는 백세 시대 아닌가. 그저 무의미하게 사는 것보다는 이렇게 색소폰과 함께한다면 앞으로의 노후가 더 즐겁지 아니하겠는가.동호회 활동을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주는 편인가. 그렇다. 교회에서 간혹 연주라도 하면 아주 좋아하더라. 올해 10월에 딸이 결혼하는데,결혼할 때 축가로 색소폰 연주를 해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던 중에 상견례를 했는데, 사돈어른 되실 분도 색소폰을 하신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아이들 결혼식 할 때 같이 색소폰 연주를 하는 게 어떻겠냐 제안을 하니 흔쾌히 수락하셨다. 그래서 요즘 종종 같이 만나 연습하고있다. 아이들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도 보람된다.어울림동호회에 또 어떤 사람들이 있나. 우리 동호회에 스님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신다. 두 분 모두 아주 연주를 잘하신다. 특히 스님같은 경우 승려복에 색소폰을 멘 모습이 굉장히 특별했다. 두 분의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는데, 두 분 모두 트로트 연주를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노 재 홍, 권 현 숙 부부)어떻게 부부가 같이 색소폰을 불게 되었나. 여기 어울림동호회에도 두, 세팀 정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1년 정도 드럼을 하다가 우연히 연습실에서 아주머니들이 색소폰을 부는 모습을 보고 그게 멋져 보여 입문하게 되었다. 악보 보는 것에 자신이 없었던 터라 고민을 했는데, 3개월 정도 하니 악보가 조금씩 보이더라. 악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무섭게 재미가 붙어 그때부터 정말 즐기면서 열심히 하게 된 것 같다.어울림동호회에는 남편의 추천으로 들어오게 된 것인가. 처음 색소폰을 배웠을 때는 학원을 먼저 다녔었다. 학원 같은 경우는 정해진 레슨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는 나에겐 시간을 맞추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한참동안 차에 악기를 싣고 다녔었다. 그러다 남편의 추천과 이 동호회에서 먼저 활동하고 있었던 언니의 추천으로 오게 되었는데, 들어와 보니 연습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학원보다 훨씬 수월하더라. 못할 것 같았던 마음도 언니와 남편이 힘을 실어줘서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재미가 많이 붙어 직장도 관두고 색소폰만 불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어느새 8개월째다.부부가 취미가 같아서 어떤 부분이 좋은가. 색소폰에 관해서 대화가 잘 통하다 보니 얘깃거리가 많다. 유튜브에서 음악도 같이 찾아서듣고, 녹음도 해보고, 서로의 연주를 들려주면서 틀린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 주고, 의견을 나누며 하다 보니 지루하지도 않고 같이 성장할 수 있어서 좋다. 글 |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6-01
  • 어둠속에서 전해져오는 빛의 소리, '소리울림색소폰동호회'
    헬렌 켈러는 이러한 명언을 남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것들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천 중구 어느 지하 연습실에서는 이 말의 가치를 삶으로 배우게 된 사람들이 모여서 색소폰을 분다. 여느 동호회와 다른 바 없이 쿵짝이는 기계 반주 소리가 문밖까지 전해져 왔다. 마음으로 보고 색소폰으로 노래하는 시각장애인 색소폰동호회 소리울림을 만났다. (박영숙 단장)색소폰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나?어느 날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컴퓨터를 배우러 갔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너무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게아닌가. 그래서 귀에 들리는 음을 더듬더듬 찾아갔다. 가보니 여기 계신 선배님들이 색소폰을 불고 계셨다. 그 당시 너무나 놀랐었다. 악기를 시각장애인이 불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 계시던 김영철 선배님이 색소폰을 주며 소리가 나는지 한 번 불어보라더라. 그래서 불어보니 소리가 삑-하고 났다. 뭐소리가 제대로 났겠나? 그래도 선배님이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며 힘을 실어 주셨다. 악기가 당장 없었기에 선배님들이 불던 악기로 그때부터 귀동냥으로 배우기 시작했다.악기를 배우는 과정의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일단 우리는 악보를 볼 수 없다.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점자 악보를 배우지만 우리같이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중도 실명을 하게 된 사람들은 점자 악보를 익히기 어렵다. 점자가 된다 한들 악보를 볼 정도는 안 된다. 그래서 악보를 테이프나 녹음기에 녹취하여 음을 하나하나 익힌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동호회를 하며 힘든 부분이나 난관이 있었다면?아무래도 우리끼리만 이 동호회를 발전시키고 끌고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지역적인 부분이나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때문에 나가신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로 명맥을 이어가기 힘든 난관들이 많았다.스스로에게 색소폰은 어떤 의미인가?색소폰은 나의 애인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색소폰을 불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색소폰이 자유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어딘가로 자유롭게 갈 수 없는 답답함을 가지고 항상 살아가는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많이 됐다. (김영철 회원)소리울림 초창기 회원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소리울림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원래 하고 있던 프로그램을 그만하게 되어 당장 연습할 공간이 사라졌다. 그러던 중에 박 단장님이 사무실을 하나 제의하면서 그동안 같이 색소폰을 불었던 회원님들과 같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 연습하고 있는 이 장소이다. 같이 연습하고 모이다 보니 이름도 만들게 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정안인이어서 색소폰을 배우는 데에 힘든 점이 있었다면?처음에 색소폰을 시작할 때에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안 좋은 점이 있다. 소리를 내기 위해 호흡을 세게 불어야 하는데 정안인이다 보니 안압이 와서 머리가 아프다. 호흡을 늘리고 안정을 찾는 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또 한 가지는 시각장애인에게 맞는 교습을 받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그분의 커리큘럼대로 우리가 수업을 받고 있지만, 그 이전에 다녔던 학원의 원장님이 워낙 프로인 분이라 나 같은 정안인은 그분께 배우는 것이 처음에는 버거웠었다.​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색소폰을 추천할만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점들을 꼽을 수 있을까?일단은 편리성을 들 수 있다. 손가락의 위치와 간격만 잘 습득하면 된다. 시각장애인들은 손가락이 예민한 편이라 그런 부분에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운동량이 적다 보니 폐활량이 많이 떨어지는데 색소폰으로 인해서 폐활량도 늘릴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색소폰을 불면서 성격이 차분해졌다.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었는데, 반주기에 맞춰 색소폰을 불려니 기다림이라는 것이 절로 배워지더라.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색소폰이 제격이다. 지금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도 있고 예전보다 일반인과의 거리를 많이 좁혔다지만 그래도 아직 장애인을 보는 시각에 틈이 있다. 가뜩 이나 장애까지 있는 사람이 어디 가서 소리 지르고 그러면, 남들이 볼 때 중증장애인인 줄 안다.(웃음) 그렇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색소폰을 세게 분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색소폰을 시작하려는 정안인 혹은 일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미리 겁먹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 같은 사람도 하고 있는데, 용기를 내면 못할 것이 없다. 나는 안마사로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색소폰을 연습한다. 안마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음악이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내가 색소폰을 부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성회 회원)색소폰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나?봉사하는 것이 좋아 여기저기서 연주를 많이 하게 된다. 요즘은 요양원에서 트로트나 가요를 많이 연주하는데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좋아해 주신다. 같이 손뼉쳐 주실 때마다 옛 추억을 선물해 드린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이런 것이 색소폰 연주의 묘미가 아닐까 하고 느끼게 된다.색소폰에 대한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곡을 조금씩 외워서 하다 보니, 지금 150곡 정도는 머릿속에 있는 것 같다. 올해는 200곡까지 외우는게 목표다. 그러면 어딜 가든 색소폰 하나로 다양하게 연주할 수 있다. 그렇게 80세 넘어서까지 나만의 색소폰을 완성시키고 싶다. 하얀 백발을 가진 멋진 노신사가 색소폰을 부는 모습…. 생각만 해도멋지지 않나?정안인들만의 특별한 색소폰 학습능력이 있다면?외우는 걸 잘하게 된다. 어느 단체 공연 행사 같은 곳에서 다른 팀과 공연을 하게 되면 가끔대가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 우리는 강한 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색소폰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어려서는 눈이 나빠지게 된 것이 하늘의 탓, 조상 탓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를원망하는 것이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40세 넘은 나이에 색소폰을 시작하게 되었다. (박각규 선생님)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레슨 방법이 있나?레슨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입으로 계명을 박자에 맞춰 불러주면, 회원분들이 녹음기로 녹음해서 듣고 연습하신다. 어떻게 소리울림 동호회에 선생님으로 오게 되었나?인천에서 동호회를 운영하다 보니, 인연이 닿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색소폰을 하며 즐거워하시고, 배우려는 열정에 반해 급료에 관계없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시각장애인들을 레슨할 때 힘들었다거나, 혹은 실수했던 부분은 없었나?처음엔 실수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단 힘들지 않았다. 비장애인분들 중에서도 악보를 못 보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지금처럼 계명으로 수업을 진행했었다. 수업방식 자체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의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이런종류의 실수는 있었다. 올림픽 시즌이었었는데, 축구를 보고 다음 날 뵙자마자 축구 보셨냐고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이런 종류의 실수를 몇 번 했던 것 같다.자신만의 교육관이 있나?‘쉽고 빠르게ʼ 이다. 색소폰을 배우는 연령대가 주로 40대 이상이다 보니 최대한 재밌고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욕심도 많이 냈었다. 소리울림 동호회 같은 경우, 이분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연주력을 많이 올린 다음 국내 최고의 시각장애인 색소폰 동호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3성부로 편곡해 앙상블도 하고, 이것저것 주문했던 게 많았다.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 또한 색소폰을 쉽게 접하려면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지자체의 투자 및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연습실을 가지지 못한 장애인 동호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장애인을 위한 레슨 프로그램과 강사도 많아졌으면 한다. 이분들은 일반 사람처럼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색소폰을 배울 수 없다. 그런 현실이 씁쓸하다. 그들에게도 배우고 즐길 권리가 당연히 있다. 그들이 우리처럼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사회의 배려가 지금보다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시련을 겪는다. 또 어쩌면 아직 그 시련과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시련과 맞닥뜨렸을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리울림 동호회원들처럼 색소폰에 희망을 담아 노래할 수 있을까? 원망을 넘어선 겸허함과 또 그것을 넘어서 즐기게 되는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잔잔한 울림을 응원한다. 글 |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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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5-01
  • 어둠속에서 전해져오는 빛의 소리, '소리울림색소폰동호회'
    헬렌 켈러는 이러한 명언을 남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것들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천 중구 어느 지하 연습실에서는 이 말의 가치를 삶으로 배우게 된 사람들이 모여서 색소폰을 분다. 여느 동호회와 다른 바 없이 쿵짝이는 기계 반주 소리가 문밖까지 전해져 왔다. 마음으로 보고 색소폰으로 노래하는 시각장애인 색소폰동호회 소리울림을 만났다. (박영숙 단장)색소폰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나?어느 날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컴퓨터를 배우러 갔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너무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게아닌가. 그래서 귀에 들리는 음을 더듬더듬 찾아갔다. 가보니 여기 계신 선배님들이 색소폰을 불고 계셨다. 그 당시 너무나 놀랐었다. 악기를 시각장애인이 불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 계시던 김영철 선배님이 색소폰을 주며 소리가 나는지 한 번 불어보라더라. 그래서 불어보니 소리가 삑-하고 났다. 뭐소리가 제대로 났겠나? 그래도 선배님이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며 힘을 실어 주셨다. 악기가 당장 없었기에 선배님들이 불던 악기로 그때부터 귀동냥으로 배우기 시작했다.악기를 배우는 과정의 어떤 부분이 힘들었나?일단 우리는 악보를 볼 수 없다.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은 어렸을 때부터 점자 악보를 배우지만 우리같이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중도 실명을 하게 된 사람들은 점자 악보를 익히기 어렵다. 점자가 된다 한들 악보를 볼 정도는 안 된다. 그래서 악보를 테이프나 녹음기에 녹취하여 음을 하나하나 익힌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일반인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동호회를 하며 힘든 부분이나 난관이 있었다면?아무래도 우리끼리만 이 동호회를 발전시키고 끌고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지역적인 부분이나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때문에 나가신 분들도 있고…. 여러 가지로 명맥을 이어가기 힘든 난관들이 많았다.스스로에게 색소폰은 어떤 의미인가?색소폰은 나의 애인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다. 색소폰을 불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색소폰이 자유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어딘가로 자유롭게 갈 수 없는 답답함을 가지고 항상 살아가는데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많이 됐다. (김영철 회원)소리울림 초창기 회원이라는 얘길 들었는데, 소리울림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원래 하고 있던 프로그램을 그만하게 되어 당장 연습할 공간이 사라졌다. 그러던 중에 박 단장님이 사무실을 하나 제의하면서 그동안 같이 색소폰을 불었던 회원님들과 같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지금 연습하고 있는 이 장소이다. 같이 연습하고 모이다 보니 이름도 만들게 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정안인이어서 색소폰을 배우는 데에 힘든 점이 있었다면?처음에 색소폰을 시작할 때에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안 좋은 점이 있다. 소리를 내기 위해 호흡을 세게 불어야 하는데 정안인이다 보니 안압이 와서 머리가 아프다. 호흡을 늘리고 안정을 찾는 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또 한 가지는 시각장애인에게 맞는 교습을 받기가 힘들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그분의 커리큘럼대로 우리가 수업을 받고 있지만, 그 이전에 다녔던 학원의 원장님이 워낙 프로인 분이라 나 같은 정안인은 그분께 배우는 것이 처음에는 버거웠었다.​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색소폰을 추천할만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점들을 꼽을 수 있을까?일단은 편리성을 들 수 있다. 손가락의 위치와 간격만 잘 습득하면 된다. 시각장애인들은 손가락이 예민한 편이라 그런 부분에선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운동량이 적다 보니 폐활량이 많이 떨어지는데 색소폰으로 인해서 폐활량도 늘릴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색소폰을 불면서 성격이 차분해졌다.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이었는데, 반주기에 맞춰 색소폰을 불려니 기다림이라는 것이 절로 배워지더라.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색소폰이 제격이다. 지금은 장애인 차별 금지법도 있고 예전보다 일반인과의 거리를 많이 좁혔다지만 그래도 아직 장애인을 보는 시각에 틈이 있다. 가뜩 이나 장애까지 있는 사람이 어디 가서 소리 지르고 그러면, 남들이 볼 때 중증장애인인 줄 안다.(웃음) 그렇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는 색소폰을 세게 분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색소폰을 시작하려는 정안인 혹은 일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미리 겁먹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 같은 사람도 하고 있는데, 용기를 내면 못할 것이 없다. 나는 안마사로서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색소폰을 연습한다. 안마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음악이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내가 색소폰을 부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성회 회원)색소폰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나?봉사하는 것이 좋아 여기저기서 연주를 많이 하게 된다. 요즘은 요양원에서 트로트나 가요를 많이 연주하는데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좋아해 주신다. 같이 손뼉쳐 주실 때마다 옛 추억을 선물해 드린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이런 것이 색소폰 연주의 묘미가 아닐까 하고 느끼게 된다.색소폰에 대한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곡을 조금씩 외워서 하다 보니, 지금 150곡 정도는 머릿속에 있는 것 같다. 올해는 200곡까지 외우는게 목표다. 그러면 어딜 가든 색소폰 하나로 다양하게 연주할 수 있다. 그렇게 80세 넘어서까지 나만의 색소폰을 완성시키고 싶다. 하얀 백발을 가진 멋진 노신사가 색소폰을 부는 모습…. 생각만 해도멋지지 않나?정안인들만의 특별한 색소폰 학습능력이 있다면?외우는 걸 잘하게 된다. 어느 단체 공연 행사 같은 곳에서 다른 팀과 공연을 하게 되면 가끔대가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 우리는 강한 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색소폰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어려서는 눈이 나빠지게 된 것이 하늘의 탓, 조상 탓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를원망하는 것이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40세 넘은 나이에 색소폰을 시작하게 되었다. (박각규 선생님)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레슨 방법이 있나?레슨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입으로 계명을 박자에 맞춰 불러주면, 회원분들이 녹음기로 녹음해서 듣고 연습하신다. 어떻게 소리울림 동호회에 선생님으로 오게 되었나?인천에서 동호회를 운영하다 보니, 인연이 닿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색소폰을 하며 즐거워하시고, 배우려는 열정에 반해 급료에 관계없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시각장애인들을 레슨할 때 힘들었다거나, 혹은 실수했던 부분은 없었나?처음엔 실수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생각했던 것보단 힘들지 않았다. 비장애인분들 중에서도 악보를 못 보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지금처럼 계명으로 수업을 진행했었다. 수업방식 자체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의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만 이런종류의 실수는 있었다. 올림픽 시즌이었었는데, 축구를 보고 다음 날 뵙자마자 축구 보셨냐고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이런 종류의 실수를 몇 번 했던 것 같다.자신만의 교육관이 있나?‘쉽고 빠르게ʼ 이다. 색소폰을 배우는 연령대가 주로 40대 이상이다 보니 최대한 재밌고 효율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욕심도 많이 냈었다. 소리울림 동호회 같은 경우, 이분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연주력을 많이 올린 다음 국내 최고의 시각장애인 색소폰 동호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그래서 3성부로 편곡해 앙상블도 하고, 이것저것 주문했던 게 많았다.시각장애인을 포함해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 또한 색소폰을 쉽게 접하려면 어떤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지자체의 투자 및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연습실을 가지지 못한 장애인 동호회가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장애인을 위한 레슨 프로그램과 강사도 많아졌으면 한다. 이분들은 일반 사람처럼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색소폰을 배울 수 없다. 그런 현실이 씁쓸하다. 그들에게도 배우고 즐길 권리가 당연히 있다. 그들이 우리처럼 똑같이 누릴 수 있는 사회의 배려가 지금보다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시련을 겪는다. 또 어쩌면 아직 그 시련과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시련과 맞닥뜨렸을 때 우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소리울림 동호회원들처럼 색소폰에 희망을 담아 노래할 수 있을까? 원망을 넘어선 겸허함과 또 그것을 넘어서 즐기게 되는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잔잔한 울림을 응원한다. 글 |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5-01
  • 색소폰의 랜드마크를 향해,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음역과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색소폰은 연주특성에 맞게 골라 사용할 수 있는 매력 넘치는 악기다. 소프라노,알토, 테너, 바리톤…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은 색소폰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색소폰 선율에 이끌려 들어온 동호회에서 행복한 삶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회원들. 깊은 색소폰의 음색처럼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귀를 기울여보자.1년,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비상(飛翔)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은 창립한지 1년을 갓 넘긴 동호회다. 새내기 동호회이지만, 짧은기간에 펼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날개짓은 어느 동호회보다 화려한 모양새다. 창립한 지 1년 만에 60여 명의회원으로 늘어났고, 색소폰과 드럼 회원을 확보한 대형 동호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유석정 대표와 고창성 교육원장, 이선균 동호회장을 비롯한 다수의 임원진은 꼼꼼한 회원 관리와 함께 공개 리듬강좌 교육과 다채로운 행사등을 진행해, 활력이 넘치는 동호회 운영에 큰 힘을 보태고있다. 또한 강기만 프로와 박광식 프로 연주자 등을 섭외해 질적으로도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현재까지 송도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월미도 학공연장과 인천시립박물관 등지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길거리 공연을 30여 차례 진행하고, 매월 향상음악회와 재능기부까지 펼치는 등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열정은 끝이 없다.미약하지만 원대한 시작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시작은 유석정 대표와 고창성 교육원장, 이선균 동호회장, 단 세 명이었다. 그들은 색소폰을 접한 계기는 달랐지만, 색소폰에 대한 같은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유석정 대표는 안팎을 아우르며 섬세하지만 강단 있는 모습으로 동호회를 이끌었고, 색소폰 전공자인 고창성 교육원장은 회원들의 교육을 전담했다. 이선균 동호회장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 역할을 하며, 자칫 소홀할 수 있는 회원들의 마음을 살피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이들의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1년 만에 회원 수는 3명에서 60여 명으로 늘어났고, 개인 연습룸 30여 개와 공연장을 보유한 70평 규모의 대형 연습실을 갖추게 되었다.길거리 예술가들이 들려주는 행복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에서 진행하는 활동 중 버스킹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버스킹을 하기 좋은 시즌인 4~10월에는 매주 토요일에 저마다 악기와 장비를 짊어지고 거리로 향한다. 또 여름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청량산호불사에 있는 병풍바위 앞에서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야외라는 특성상 비가 내리는 등의 제약이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빠짐없이 연주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활발한 버스킹 활동 덕분에 동호회에 들어온 회원 중 거리에서 공연을 보고 들어온 경우도 많다. 2017년에는 인천광역시 문화예술과에서 지정한 길거리 예술활동가 팀으로 선정, 같은 해 연말에는 인천시장 표창까지 받는 등 차곡차곡 수확을 거두고 있다.봉사를 넘어 음악과 꿈을 나누다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은 현재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복지시설 소망의 집과 요양병원에서 연주 봉사활동을 한다. 여느 동호회의 봉사활동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야심 찬 꿈이 숨겨져 있다. 머지않아 <송도글로벌 MUSIC & DREAM>이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재능기부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하고 싶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꿈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음악이 먼 이야기가 아닌,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어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라는 명칭처럼, 음악에 대해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실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회원, 한솥밥을 먹는 식구동호회 창립 1년 만에 인천을 대표할 만한 규모로 성장했다는 것은 운영진과 회원들의 마음이 한데 모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의미다. 유석정 대표는 아침마다 직접 준비한 밥과 찌개로 회원들의 마음을 배불리 채웠다. 말 그대로 함께 지내면서 밥을 먹는 ‘식구’가 된 것이다. 다른 운영진들 역시 맡은 업무 외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솔선수범했다. 회원들 역시 본인들의 삶 속에서 동호회 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운영진의 역할도 컸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지금의 동호회 모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회원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동호회를 비약적으로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밑거름이 되었다.색소폰으로 바뀐 삶, 유석정 대표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대표이자 색소폰랜드의 본부 운영사무국장인 유석정대표. 그녀에게 색소폰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든 시기에 우연히 접한 색소폰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색소폰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고, 좋은 사람들과 음악적인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적인 성장면에서도 어릴 적 리코더를 곧잘 불었던 재능이 나타났기 때문인지, 처음 연주하는 색소폰인데도 수월하게 소리가 났다. 덕분에 길거리 연주 활동에 이어 오케스트라 입단까지 단 1년이 걸렸다.원래 유 대표는 종합건설 재무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 와중에 고창성 교육원장, 이선균 동호회장과 의기투합하여 동호회를 창단하고, 회원들을 위해 아침일찍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일과 동호회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관리가 원활히 되지 않음을 느꼈다. 결국 26년 차 때 일을 그만두고 동호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동호회에 들어와 새 삶을 살고 계신 회원, 악보를 펼쳐 놓고 함께 음악 공부를 하는 열정적인 회원들의 모습을 볼 때면, 힘들었던 과정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유 대표의 최종 목표다. 돌고 돌아 되찾은 열정, 고창성 교육원장고창성 교육원장은 초등학교 브라스밴드부에서 접한 클라리넷으로 음악과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고등학교 브라스밴드부의 트럼펫과 대학교 그룹사운드 동아리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 음악 전공은 부유한 자녀들이 아니면 하기 힘들었다. 일찍이 꿈을 접고 취업이 잘 되는 토목공학과에 진학해 인천시 토목직 공무원이 됐지만, 점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이 들었다.퇴직 후 10년 동안 건축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중, 2008년에 우연히 색소폰에 입문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깨웠다. 마흔네 살 때 다시 실용음악 전공으로 대학교에 진학하고, 음악 학원을차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 열정과는 달리 학원 운영은 쉽지 않았고, 하던 사업을 접고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삶이 반복되었다. 당시 인천 주안에서 색소폰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고 원장은 색소폰랜드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유석정 대표와 만난것을 계기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다시금 음악 인생에 불을 지필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하며, 최고의 동호회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회원들의 대변자, 이선균 동호회장이선균 동호회장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악기는 전문가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는데, 8년 전 선배의 연말 동호회 음악회에서 아마추어들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연을 본 후 다음날 바로 음악 학원에 등록해 색소폰을 배웠다. 그러던 중 유석정 대표, 고창성 교육원장과 만나게 되었고, 함께 학원 자리를 알아보는 등 셋이 힘을 합해 동호회를 설립했다. 또한 동호회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회원과 운영자 간의 중재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인생의 한가지 꿈을 이룬 그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회원들과 재미있는 동호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또 다른 꿈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다. 색소폰을 통한 투병 극복기, 유성옥 회원유성옥 회원은 2010년 9월에 유방암 진단을 받아 1년이 넘는 투병생활을 했다.약을 한 주먹씩 먹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그녀에게 설상가상 우울증마저 찾아왔다.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의 권유로 부부가 함께 색소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동호회에서 5개월 동안 색소폰을 배웠지만, 독학으로 배운 탓인지 실력이 잘 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현재는 건강까지 회복해서 행복한 삶을살고 있다. 색소폰을 배운 지 이제 겨우 7개월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연주 봉사 활동도 다니고 싶다.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이 있다는 사실에 고맙게 생각하며,건강이 따라줄 때까지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할 예정이다.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창립 1주년 기념행사2018년 3월 1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한 파티하우스에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창립 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향상음악회와 장기자랑으로 이루어진 회원들만의 무대가 꾸며졌다. 오후 6시부터는 본격적인 2부 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창립 1주년과 색소폰랜드 프랜차이즈 현판수여식이 함께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색소폰랜드의 대표이기도 한 강기만 대표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유석정 대표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고창성 교육원장의 환영사, 강기만 대표의 축사와 현판수여식이진행되었고, 축하 케이크 절단식과 건배 제의가 이어졌다.음악 동호회답게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연주회였다. 7080 월드팝 가수 한키의 기타 연주를 시작으로, 송도글로벌앙상블단이 <라밤바>, <베사메무쵸>,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하며 무대를 달궜다. 뒤를 이어 유석정 대표의 벗이기도 한인천시립합창단원 이양희 씨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며 1주년을 축하했다. 이후 우종문 회원과 오민숙 회원을 필두로 다수의 회원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바쁜 와중에 뒤늦게 행사에 참석한 서현진 연주자는 현란한 연주 솜씨로 회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축하의 대미는 강기만 대표가 장식했다. <축배의 노래>, <스페인> 등을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열정적으로 연주해 함성을 이끌어냈다. 모든 공연을 마친 후, 참석자들이 함께 한1주년 기념 단체사진 촬영을 마지막으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회원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글 | 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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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01
  • 색소폰의 랜드마크를 향해,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음역과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색소폰은 연주특성에 맞게 골라 사용할 수 있는 매력 넘치는 악기다. 소프라노,알토, 테너, 바리톤…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은 색소폰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색소폰 선율에 이끌려 들어온 동호회에서 행복한 삶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회원들. 깊은 색소폰의 음색처럼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하모니에 귀를 기울여보자.1년,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비상(飛翔)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있는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은 창립한지 1년을 갓 넘긴 동호회다. 새내기 동호회이지만, 짧은기간에 펼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날개짓은 어느 동호회보다 화려한 모양새다. 창립한 지 1년 만에 60여 명의회원으로 늘어났고, 색소폰과 드럼 회원을 확보한 대형 동호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유석정 대표와 고창성 교육원장, 이선균 동호회장을 비롯한 다수의 임원진은 꼼꼼한 회원 관리와 함께 공개 리듬강좌 교육과 다채로운 행사등을 진행해, 활력이 넘치는 동호회 운영에 큰 힘을 보태고있다. 또한 강기만 프로와 박광식 프로 연주자 등을 섭외해 질적으로도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현재까지 송도 센트럴파크를 비롯해 월미도 학공연장과 인천시립박물관 등지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길거리 공연을 30여 차례 진행하고, 매월 향상음악회와 재능기부까지 펼치는 등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열정은 끝이 없다.미약하지만 원대한 시작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시작은 유석정 대표와 고창성 교육원장, 이선균 동호회장, 단 세 명이었다. 그들은 색소폰을 접한 계기는 달랐지만, 색소폰에 대한 같은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유석정 대표는 안팎을 아우르며 섬세하지만 강단 있는 모습으로 동호회를 이끌었고, 색소폰 전공자인 고창성 교육원장은 회원들의 교육을 전담했다. 이선균 동호회장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 역할을 하며, 자칫 소홀할 수 있는 회원들의 마음을 살피는데 정성을 기울였다. 이들의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1년 만에 회원 수는 3명에서 60여 명으로 늘어났고, 개인 연습룸 30여 개와 공연장을 보유한 70평 규모의 대형 연습실을 갖추게 되었다.길거리 예술가들이 들려주는 행복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에서 진행하는 활동 중 버스킹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다. 버스킹을 하기 좋은 시즌인 4~10월에는 매주 토요일에 저마다 악기와 장비를 짊어지고 거리로 향한다. 또 여름에는 매주 일요일마다 청량산호불사에 있는 병풍바위 앞에서 <찾아가는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야외라는 특성상 비가 내리는 등의 제약이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빠짐없이 연주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활발한 버스킹 활동 덕분에 동호회에 들어온 회원 중 거리에서 공연을 보고 들어온 경우도 많다. 2017년에는 인천광역시 문화예술과에서 지정한 길거리 예술활동가 팀으로 선정, 같은 해 연말에는 인천시장 표창까지 받는 등 차곡차곡 수확을 거두고 있다.봉사를 넘어 음악과 꿈을 나누다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은 현재 매월 첫째 주 토요일에 복지시설 소망의 집과 요양병원에서 연주 봉사활동을 한다. 여느 동호회의 봉사활동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야심 찬 꿈이 숨겨져 있다. 머지않아 <송도글로벌 MUSIC & DREAM>이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재능기부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음악을 하고 싶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꿈을 포기한 사람들이 대상이다. 음악이 먼 이야기가 아닌,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어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이라는 명칭처럼, 음악에 대해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실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회원, 한솥밥을 먹는 식구동호회 창립 1년 만에 인천을 대표할 만한 규모로 성장했다는 것은 운영진과 회원들의 마음이 한데 모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의미다. 유석정 대표는 아침마다 직접 준비한 밥과 찌개로 회원들의 마음을 배불리 채웠다. 말 그대로 함께 지내면서 밥을 먹는 ‘식구’가 된 것이다. 다른 운영진들 역시 맡은 업무 외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솔선수범했다. 회원들 역시 본인들의 삶 속에서 동호회 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운영진의 역할도 컸지만 생동감이 넘치는 지금의 동호회 모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회원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동호회를 비약적으로 키우는 계기가 되었고, 자부심을 느낄만한 밑거름이 되었다.색소폰으로 바뀐 삶, 유석정 대표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대표이자 색소폰랜드의 본부 운영사무국장인 유석정대표. 그녀에게 색소폰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든 시기에 우연히 접한 색소폰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색소폰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고, 좋은 사람들과 음악적인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적인 성장면에서도 어릴 적 리코더를 곧잘 불었던 재능이 나타났기 때문인지, 처음 연주하는 색소폰인데도 수월하게 소리가 났다. 덕분에 길거리 연주 활동에 이어 오케스트라 입단까지 단 1년이 걸렸다.원래 유 대표는 종합건설 재무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 와중에 고창성 교육원장, 이선균 동호회장과 의기투합하여 동호회를 창단하고, 회원들을 위해 아침일찍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일과 동호회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관리가 원활히 되지 않음을 느꼈다. 결국 26년 차 때 일을 그만두고 동호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동호회에 들어와 새 삶을 살고 계신 회원, 악보를 펼쳐 놓고 함께 음악 공부를 하는 열정적인 회원들의 모습을 볼 때면, 힘들었던 과정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고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유 대표의 최종 목표다. 돌고 돌아 되찾은 열정, 고창성 교육원장고창성 교육원장은 초등학교 브라스밴드부에서 접한 클라리넷으로 음악과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고등학교 브라스밴드부의 트럼펫과 대학교 그룹사운드 동아리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 음악 전공은 부유한 자녀들이 아니면 하기 힘들었다. 일찍이 꿈을 접고 취업이 잘 되는 토목공학과에 진학해 인천시 토목직 공무원이 됐지만, 점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느낌이 들었다.퇴직 후 10년 동안 건축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중, 2008년에 우연히 색소폰에 입문하면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다시 일깨웠다. 마흔네 살 때 다시 실용음악 전공으로 대학교에 진학하고, 음악 학원을차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 열정과는 달리 학원 운영은 쉽지 않았고, 하던 사업을 접고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삶이 반복되었다. 당시 인천 주안에서 색소폰 아카데미를 운영하던 고 원장은 색소폰랜드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유석정 대표와 만난것을 계기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다시금 음악 인생에 불을 지필 수 있게 된 사실에 감사하며, 최고의 동호회가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회원들의 대변자, 이선균 동호회장이선균 동호회장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악기는 전문가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는데, 8년 전 선배의 연말 동호회 음악회에서 아마추어들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연을 본 후 다음날 바로 음악 학원에 등록해 색소폰을 배웠다. 그러던 중 유석정 대표, 고창성 교육원장과 만나게 되었고, 함께 학원 자리를 알아보는 등 셋이 힘을 합해 동호회를 설립했다. 또한 동호회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회원과 운영자 간의 중재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인생의 한가지 꿈을 이룬 그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회원들과 재미있는 동호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또 다른 꿈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다. 색소폰을 통한 투병 극복기, 유성옥 회원유성옥 회원은 2010년 9월에 유방암 진단을 받아 1년이 넘는 투병생활을 했다.약을 한 주먹씩 먹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이어가던 그녀에게 설상가상 우울증마저 찾아왔다. 이를 보다 못한 남편의 권유로 부부가 함께 색소폰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른 동호회에서 5개월 동안 색소폰을 배웠지만, 독학으로 배운 탓인지 실력이 잘 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현재는 건강까지 회복해서 행복한 삶을살고 있다. 색소폰을 배운 지 이제 겨우 7개월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연주 봉사 활동도 다니고 싶다.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이 있다는 사실에 고맙게 생각하며,건강이 따라줄 때까지 동호회 활동도 열심히 할 예정이다.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창립 1주년 기념행사2018년 3월 1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한 파티하우스에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의 창립 1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향상음악회와 장기자랑으로 이루어진 회원들만의 무대가 꾸며졌다. 오후 6시부터는 본격적인 2부 행사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창립 1주년과 색소폰랜드 프랜차이즈 현판수여식이 함께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색소폰랜드의 대표이기도 한 강기만 대표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유석정 대표의 개회선언을 시작으로 고창성 교육원장의 환영사, 강기만 대표의 축사와 현판수여식이진행되었고, 축하 케이크 절단식과 건배 제의가 이어졌다.음악 동호회답게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연주회였다. 7080 월드팝 가수 한키의 기타 연주를 시작으로, 송도글로벌앙상블단이 <라밤바>, <베사메무쵸>,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하며 무대를 달궜다. 뒤를 이어 유석정 대표의 벗이기도 한인천시립합창단원 이양희 씨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며 1주년을 축하했다. 이후 우종문 회원과 오민숙 회원을 필두로 다수의 회원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바쁜 와중에 뒤늦게 행사에 참석한 서현진 연주자는 현란한 연주 솜씨로 회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축하의 대미는 강기만 대표가 장식했다. <축배의 노래>, <스페인> 등을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열정적으로 연주해 함성을 이끌어냈다. 모든 공연을 마친 후, 참석자들이 함께 한1주년 기념 단체사진 촬영을 마지막으로 송도글로벌색소폰클럽 회원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글 | 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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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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