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1(월)

월간색소폰
Home >  월간색소폰

실시간뉴스

실시간 월간색소폰 기사

  • [JAZZ CLUB] 재즈 향 가득한 비밀공간 '라 끌레(La cle)'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삼청동의 좁은 길 어느 골목에 아늑히 들어앉은 <라끌레>. 삐걱삐걱 내려가는 나무 계단 소리는 마치 과거로 안내해 주는 주문 같다. 각자의 추억을 가지고 오르내렸을 나무 계단에는 세월이 묻어있다. <라끌레>는 프랑스어로 ‘열쇠ʼ라는 뜻이다. 어쩐지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 공간과 잘 맞는 이름이다.​영감이 절로 떠오르는 편안한 공간너무 모던한 느낌의 재즈바가 살짝 부담스럽다면 라끌레를 추천한다. 라끌레는 너무 편한 나머지 그 공간에 들어가는 즉시 나를 놓아두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에 과거의 언저리에 두었던 기억들까지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두운 실내에 오직 테이블에만 조명이 비쳐, 모든 것을 잊고 음악감상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좋다.매일 흘러나오는 라이브 재즈라끌레는 매일 라이브로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즈 클럽 중 하나이다. 재즈클럽이라면 매일매일 라이브음악이 들려야 한다는 사장님의 신념 때문이다. 주로 젊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데, 클럽의 빈티지한 정경과 묘한 세대의 어울림이 형성된다. 무대와 테이블이 가까워 연주자의 숨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공연은 매일 저녁 8시 반에 시작되어 10시 반에 끝난다. 빈티지한 감성의 소품과 인테리어라끌레가 주는 따뜻함은 나무로 이루어진 내부 인테리어의 몫도 있다. 손길이 자주 닿아 반들 거려진 테이블 앞에는 마치 비비킹이 시가를 들고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가죽시트 의자가 놓여 있다. 주인장의 손길이 닿은 작은 소품들도 마치 전시되어 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느껴질 정도.가끔은 세상의 모든 게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정지한 시간 속에서 오직 나만이 유유자적 거리를 누비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를 감독하는 시간은 잠시 뒤로 두자. 그리고 라끌레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의 음 하나하나에 귀를 맡기고 와인의 향기와 치즈의 부드러움에 모든 감각기관을 맡겨보라. 당신은 어느새멈춰진 시간 속에 와있을 것이다. 글 | 안지인 기자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0
  • [SEASONAL SOUND] Michael Brecker의 'Nearness of You' 를 들으며 함께하는 따뜻한 봄
    (월간색소폰)이은용 칼럼니스트= [Nearness of You : Michael Brecker]이 앨범에는 모두 열한 개의 트랙을 다섯 곡씩 CHAPTER ONE과 CHAPTER TWO 로 나누어 놓았고, 마지막 한 곡은 EPILOGUE로 남겨두었다 첫 번째 CHAPTER에서 두 곡의 트랙에 게스트로서 제임스 테일러가 참여하였으며, 팝 보컬리스트로서 마이클 브레커의 테너 색소폰사운드가 잘 어울린다. 또 나머지 뮤지션들의 백업에도 전혀 튀지 않는 따뜻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마치 옆에서 이야기 하듯 편하게 다가온다. 이 앨범에서 마이클 브레커의 테너 색소폰을 더욱 빛날 수 있게 서포트 하고 있는 뮤지션들인 재즈계의 전설 찰리 헤이든, 허비 행콕, 잭 디 조넷 그리고 펫메스니가 함께 하고 있다. 이 앨범은 함께 연주하는 뮤지션들과 수십 년에 걸친 단순한 음악적 만남을 넘어서 음악으로 통하는 우정으로 그누구보다 마이클 브레커가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하는 뮤지션들이라 표한바 있다. 앨범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우정이 음악 안에서 깊이 느껴지는것 같아 마음을 울린다. Michael Brecker의 또 다른 주요 작품들마이클 브레커의 소중한 명반들 중 여섯 번째 솔로 앨범에해당하는 가 유난히 손에 간다. 이미 마이클 브레커와 많은레코딩을 연주해왔던 팻 메스니의 참여가 도드라지는 앨범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팻메스니는 그가 솔로를 할 때 뿐만 아니라 그저 사이드맨으로서의 역할도 최고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베이스가 없는 대신 팻 메스니가 베이스의 중요한 역할을 채우기도 하는데, 그 라인들은 마이클 브레스의 연주를 더욱 돋보일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오르간 연주자 래리 골딩스는 마이클 브레커와 팻 메 스니의 긴장감 넘치는 연주가 더 돋보일 수 있게 그 백그라운드를 잘 조성하고 있다. 그의 오르간 연주는 무게감도 있지만, 상당히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팻 메스니와 함께 베이스의 주 역할은 래리 골딩스이기도하다. 마이클 브래커의 앨범은 1996년 발매되었다. 그가 발표한 8장의 정규 앨범 가운데 재즈의 전통에 가장 충실한 연주를 담고 있는 것으로 팻 메스니, 잭드 조넥, 데이브 홀랜드, 조이 칼데라조를 기본 라인업에 맥코이 타이너가 게스트로 참여했다.재즈 기타의 판도를 바꾸어 버린 팻 메스니, 키스 자렛 트리오의 멤버로빌 에반스가 본격화시킨 피아노 트리오의 완성을 이룬 잭 드 조넷, 베이스연주자로 그리고 밴드의 리더로 대중보다는 연주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데이브 홀랜드, 1987년부터 마이클 브레커의 피아니스트로 참여한 조이 칼데라조, 여기에 존 콜트레인의 피아니스트로 활약해 온 멕코이 대표타이너와 에어토 모레이라, 레이 바레토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타악기 연주자로 인정받는 돈 알라이아스 등 막강 멤버들의 참여는 이번 앨범의 완성도를 의심할 여지없이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마이클 브레커의 강렬한 블로잉이 담긴 “Sling And Arrows” 를 비롯하여 색소폰, 기타, 피아노의 솔로가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MidnightVoyage”, 팻 메스니의 장기 가운데 하나인 신스 기타의 매력적인 사운드와 맥코이 타이너의 힘찬 연주가 일품인 “Song For Bilbao” 등 수록된 9곡은 마이클 브레커가 왜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색소폰 연주자였는지를 분명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테너 뿐 아니라 소프라노 색소폰까지 연주하는 그의 연주 스타일은 존 콜트레인의 초기와 중기의 스타일에 바탕을 둔 것이 분명하지만 또한 젊은테너 색소폰 연주자들에게 콜트레인과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내가 보스턴 유학을 선택한 이유도 그들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턴에서 유학 시절 기회만 있으면 마이클 브레커의 공연은 빠지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마이클 브레커의 연주 안에서 참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데 2007년 마이클 브레커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찬바람 속에서 찰스 강을 거닐며 눈물을 훔쳤던 그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글 | 이은용 MCMI 음악학원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0
  • [SEASONAL SOUND] Michael Brecker의 'Nearness of You'를 들으며 함께하는 따뜻한 봄
    [Nearness of You : Michael Brecker]이 앨범에는 모두 열한 개의 트랙을 다섯 곡씩 CHAPTER ONE과 CHAPTER TWO 로 나누어 놓았고, 마지막 한 곡은 EPILOGUE로 남겨두었다 첫 번째 CHAPTER에서 두 곡의 트랙에 게스트로서 제임스 테일러가 참여하였으며, 팝 보컬리스트로서 마이클 브레커의 테너 색소폰사운드가 잘 어울린다. 또 나머지 뮤지션들의 백업에도 전혀 튀지 않는 따뜻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마치 옆에서 이야기 하듯 편하게 다가온다. 이 앨범에서 마이클 브레커의 테너 색소폰을 더욱 빛날 수 있게 서포트 하고 있는 뮤지션들인 재즈계의 전설 찰리 헤이든, 허비 행콕, 잭 디 조넷 그리고 펫메스니가 함께 하고 있다. 이 앨범은 함께 연주하는 뮤지션들과 수십 년에 걸친 단순한 음악적 만남을 넘어서 음악으로 통하는 우정으로 그누구보다 마이클 브레커가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하는 뮤지션들이라 표한바 있다. 앨범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우정이 음악 안에서 깊이 느껴지는것 같아 마음을 울린다. Michael Brecker의 또 다른 주요 작품들마이클 브레커의 소중한 명반들 중 여섯 번째 솔로 앨범에해당하는 가 유난히 손에 간다. 이미 마이클 브레커와 많은레코딩을 연주해왔던 팻 메스니의 참여가 도드라지는 앨범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팻메스니는 그가 솔로를 할 때 뿐만 아니라 그저 사이드맨으로서의 역할도 최고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베이스가 없는 대신 팻 메스니가 베이스의 중요한 역할을 채우기도 하는데, 그 라인들은 마이클 브레스의 연주를 더욱 돋보일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오르간 연주자 래리 골딩스는 마이클 브레커와 팻 메 스니의 긴장감 넘치는 연주가 더 돋보일 수 있게 그 백그라운드를 잘 조성하고 있다. 그의 오르간 연주는 무게감도 있지만, 상당히 경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팻 메스니와 함께 베이스의 주 역할은 래리 골딩스이기도하다. 마이클 브래커의 앨범은 1996년 발매되었다. 그가 발표한 8장의 정규 앨범 가운데 재즈의 전통에 가장 충실한 연주를 담고 있는 것으로 팻 메스니, 잭드 조넥, 데이브 홀랜드, 조이 칼데라조를 기본 라인업에 맥코이 타이너가 게스트로 참여했다.재즈 기타의 판도를 바꾸어 버린 팻 메스니, 키스 자렛 트리오의 멤버로빌 에반스가 본격화시킨 피아노 트리오의 완성을 이룬 잭 드 조넷, 베이스연주자로 그리고 밴드의 리더로 대중보다는 연주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데이브 홀랜드, 1987년부터 마이클 브레커의 피아니스트로 참여한 조이 칼데라조, 여기에 존 콜트레인의 피아니스트로 활약해 온 멕코이 대표타이너와 에어토 모레이라, 레이 바레토와 더불어 가장 뛰어난 타악기 연주자로 인정받는 돈 알라이아스 등 막강 멤버들의 참여는 이번 앨범의 완성도를 의심할 여지없이 감상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마이클 브레커의 강렬한 블로잉이 담긴 “Sling And Arrows” 를 비롯하여 색소폰, 기타, 피아노의 솔로가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MidnightVoyage”, 팻 메스니의 장기 가운데 하나인 신스 기타의 매력적인 사운드와 맥코이 타이너의 힘찬 연주가 일품인 “Song For Bilbao” 등 수록된 9곡은 마이클 브레커가 왜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색소폰 연주자였는지를 분명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테너 뿐 아니라 소프라노 색소폰까지 연주하는 그의 연주 스타일은 존 콜트레인의 초기와 중기의 스타일에 바탕을 둔 것이 분명하지만 또한 젊은테너 색소폰 연주자들에게 콜트레인과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내가 보스턴 유학을 선택한 이유도 그들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턴에서 유학 시절 기회만 있으면 마이클 브레커의 공연은 빠지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마이클 브레커의 연주 안에서 참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데 2007년 마이클 브레커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찬바람 속에서 찰스 강을 거닐며 눈물을 훔쳤던 그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글 | 이은용 MCMI 음악학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0
  • [SONG STORY] 이난영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 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 가는데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지나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1935년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오래 전해 온 곡은 오래 이어져간다. 이런 노래가 애창곡이고 국민가요다. 애창곡은 히트곡과 명곡과는 다르다. 선율과 멜로디가 통속적이고 대중성을는 띠는것이 그 특징인데, 1935년 불려진 이래로 세기를 이어져 오는 ‘목포의 눈물’은 당시 시대상황과 민족 감성을 가장 잘 아우른 노래다. 단연코 색소폰 연주곡의 백미 (白眉)라 해도 된다.‘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목포의 눈물, 1·2절)이 노래는 1934년 전국 6대 도시 애향가사모집에서,함흥 출신으로 일본유학을 하고 돌아와 목포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던 문일석이 ‘목포의 사랑’으로 출품하여 1등한 가사다. 여기에다 손목인의 ‘갈매기 우는 항구’ 멜로디를 입히고, 일제의 검열에 통과하지 못한 제목, ‘목포의 사랑’을 ‘목포의 눈물’로 고쳐서 이난영이 불러서 대히트를 한다. 당시 일본에 본사를 둔 오케레코드 조선지사장 이철 사장의 기획 산물이다.당시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25년째 이어지던 시기다. 무단통치(武斷統治)와 문화통치(文化通治)를 거쳐,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꾀하던 시절.이난영은 18세, 문일석(본명 윤재희)은 20세, 손목인(본명 손득렬, 1913~1999)은 22세였다.‘목포의 눈물’ 노랫말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궤를 같이한다.춘원 이광수는 1921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이순신(李舜臣)을 연재하였으며, 1930년대 초반에도 성웅 이순신을 연재했었다. 1591년 전라좌수사 부임으로부터 1598년 순직하여 안장되기까지 7년 동안을 망라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 이것이이 노랫말을 작사한 시대적 배경이다. 2절에 ‘삼백년 원한 품은’ 구절은 임진왜란 종전 336년이 지나서 다시 나라를 빼앗긴 식민치하의 한을 노랫말로 읊은 것. ‘님자취’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16일 명량대첩(13척:133척의 승리)으로 왜적을 물리친 후, 목포 앞바다 고하도(보하도)에 진을 치고, 노적봉에서 지휘를 하던 흔적을 말한다. 노적봉에 가면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게 목포해역을 굽어보고 있다. 그해 10월 29일부터 1598년 2월 17일 완도 고금도로 이진을해갈 때까지 107일 동안 8천 여 조선수군과 1천 여 가구의 피란민이 이곳에 주둔했었다.본명 이옥례, 이옥순. 이난영은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나 목포공립보통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가 엄마와 함께 제주도로 이주를 한다. 이때 극장을 경영하는 주인집 아이를 돌보면서 흥얼거리는 노래실력을 높게 평가한주인이 그녀를 막간 가수로 활동하게 해주었으며, 이때가 1932년 열여섯 살 때였다.그녀는 비음창법이 특징이며, 1935년 ‘목포의 눈물’로 엘리지의 여왕이 된 후 1936년 오카란코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하며, 그해 KPK악단장 김해송과 결혼하였다. 목포가요제에서 만난 두 살 연하의 첫사랑 남인수와의 생이별이었다. 김해송과 이난영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김시스터즈(숙자, 애자)와 김보이스가 그들이다.1968년부터 목포에서 난영가요제가 열렸다. 1965년 49세로생을 마감한 이옥례를 추모하는 행사다. 2006년부터는 삼학도 부지에 조성된 난영공원에서 개최한다. 그녀의 타계일, 4월 11일과 연계하여 이난영의 유해는 3월 25일 파주에서 4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안장됐다. 600여 평의 부지에 마련된 공원에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고 그녀의 유해를 품은 난영나무가 자라고 있다.글 | 유차영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28
  • [SONG STORY]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 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 가는데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지나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 1935년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오래 전해 온 곡은 오래 이어져간다. 이런 노래가 애창곡이고 국민가요다. 애창곡은 히트곡과 명곡과는 다르다. 선율과 멜로디가 통속적이고 대중성을는 띠는것이 그 특징인데, 1935년 불려진 이래로 세기를 이어져 오는 ‘목포의 눈물’은 당시 시대상황과 민족 감성을 가장 잘 아우른 노래다. 단연코 색소폰 연주곡의 백미 (白眉)라 해도 된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목포의 눈물, 1·2절) 이 노래는 1934년 전국 6대 도시 애향가사모집에서,함흥 출신으로 일본유학을 하고 돌아와 목포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던 문일석이 ‘목포의 사랑’으로 출품하여 1등한 가사다. 여기에다 손목인의 ‘갈매기 우는 항구’ 멜로디를 입히고, 일제의 검열에 통과하지 못한 제목, ‘목포의 사랑’을 ‘목포의 눈물’로 고쳐서 이난영이 불러서 대히트를 한다. 당시 일본에 본사를 둔 오케레코드 조선지사장 이철 사장의 기획 산물이다. 당시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25년째 이어지던 시기다. 무단통치(武斷統治)와 문화통치(文化通治)를 거쳐,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꾀하던 시절.이난영은 18세, 문일석(본명 윤재희)은 20세, 손목인(본명 손득렬, 1913~1999)은 22세였다. ‘목포의 눈물’ 노랫말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궤를 같이한다. 춘원 이광수는 1921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이순신(李舜臣)을 연재하였으며, 1930년대 초반에도 성웅 이순신을 연재했었다. 1591년 전라좌수사 부임으로부터 1598년 순직하여 안장되기까지 7년 동안을 망라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 이것이이 노랫말을 작사한 시대적 배경이다. 2절에 ‘삼백년 원한 품은’ 구절은 임진왜란 종전 336년이 지나서 다시 나라를 빼앗긴 식민치하의 한을 노랫말로 읊은 것. ‘님자취’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16일 명량대첩(13척:133척의 승리)으로 왜적을 물리친 후, 목포 앞바다 고하도(보하도)에 진을 치고, 노적봉에서 지휘를 하던 흔적을 말한다. 노적봉에 가면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게 목포해역을 굽어보고 있다. 그해 10월 29일부터 1598년 2월 17일 완도 고금도로 이진을해갈 때까지 107일 동안 8천 여 조선수군과 1천 여 가구의 피란민이 이곳에 주둔했었다. 본명 이옥례, 이옥순. 이난영은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나 목포공립보통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가 엄마와 함께 제주도로 이주를 한다. 이때 극장을 경영하는 주인집 아이를 돌보면서 흥얼거리는 노래실력을 높게 평가한주인이 그녀를 막간 가수로 활동하게 해주었으며, 이때가 1932년 열여섯 살 때였다. 그녀는 비음창법이 특징이며, 1935년 ‘목포의 눈물’로 엘리지의 여왕이 된 후 1936년 오카란코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하며, 그해 KPK악단장 김해송과 결혼하였다. 목포가요제에서 만난 두 살 연하의 첫사랑 남인수와의 생이별이었다. 김해송과 이난영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김시스터즈(숙자, 애자)와 김보이스가 그들이다. 1968년부터 목포에서 난영가요제가 열렸다. 1965년 49세로생을 마감한 이옥례를 추모하는 행사다. 2006년부터는 삼학도 부지에 조성된 난영공원에서 개최한다. 그녀의 타계일, 4월 11일과 연계하여 이난영의 유해는 3월 25일 파주에서 4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안장됐다. 600여 평의 부지에 마련된 공원에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고 그녀의 유해를 품은 난영나무가 자라고 있다. 글 | 유차영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28
  • [JAZZ AGE] 세계 재즈의 역사 본격적인 스윙시대의 개막, 1930년대
    (월간색소폰)이종우 칼럼니스트= 영화 “Farewell to Storyville” from film “New Orleans” 중에서 (1947) 시카고(Chicago) 재즈시대1917년 세계1차대전 발발로 뉴올리언스가 군사도시로 지정되면서 스토리빌의 많은 업소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자,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은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북쪽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 도시들 중의 하나가 바로 시카고이다. 당시 시카고는 산업이 발달한 대도시였으며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클럽이 발달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재즈 사에서는1925년~1930년대를 시카고(Chicago) 재즈시대라 하는데,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집단 즉흥연주보다는 좀 더 세련된 스타일로 바꾸어 나가는 것,즉 뉴올리언스 재즈의 기본 포맷은 유지하되 화성적 사운드를 좀 더 세련되게 발전시키고 2박과 4박에 강세를 두어 스윙감(Swing Fill)을 배가시키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또한 뛰어난 연주자인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의 영향으로 백인 연주자들의 참여 또한 변화된 특징 중의 하나였다. 재즈의 대중화1920년대 미국의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은 소비사회를 만들게 된다. 소비사회와 함께 광고산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대중매체였던 라디오를 통해 재즈는 전 세계적인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게 된다. 20년대 후반에는 레코드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방송국이 있는 뉴욕으로 재즈의 중심지가 옮겨 가게 된다. NBC, ABC 등의 매체가 맨해튼에 본사를 두고 있고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보드빌(Vaudevile, 히극 뮤지컬)이 큰 유행을 타고있었다. 코튼 클럽(Cotton Club)쇼 문화와 엔터테인먼트가 뉴욕을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브로드웨이와 할렘 부근에 많은 클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 규모가 큰 곳이 코튼 클럽(Cotton Club)이다. 코튼 클럽은 1923년에 개장해 현재까지도 영업 중인 가장 오래된 나이트클럽이다. 재즈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백인만 입장이 가능했으나 스윙재즈의 유행으로 흑인 재즈뮤지션 출연이 가능하게 되었다. 1927년에는 듀크 엘링턴(DukeEllington) 오케스트라가 재즈와 블루스를 오랜 기간 연주하였다. ​ 출처 http://www.nyc-architecture.com/HAR/HAR055.htm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1899~1974)재즈사를 통해 가장 많은 곡을 작곡하고(1,500~2,000여 곡 혹은5,000여 곡이 넘는다는 설도 있음) 클래식과 더불어 재즈를 예술 음악으로 격상시킨 인물이 바로 듀크 엘링턴이다. 본명은 애드워드 케네디 엘링턴이고 현재도 그의 곡들이 전 세계 재즈클럽에서 연주되고 있다. 7살에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0살 때 이미 작곡했을 정도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한 유명한 미술학교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17살 때 자신의 악단을 만들어 고향인 워싱턴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하고, 1920년대뉴욕에 진출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했다. 1927년과 1931년에는 코튼 클럽에서 자신의 빅밴드를 지휘하며 스윙시대 전국구 스타가 된다.쿠티 윌리엄스(Cootie Williams,1945-1955)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1899-1974)자니 하지스(Johnny Hodges,1907-1970)​듀크 엘링턴 악단은 악기력이 뛰어난 솔리스트들을 많이 배출하게 된다.트럼펫 쿠티 윌리엄스(Cootie Williams)는 당대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고 색소폰의 자니 하지스(Johnny Hodges) 등이 듀크 악단의 솔리스트였다.듀크 엘링턴은 자신의 곡을 연주할 연주자를 연상하며 작곡하는 스타일이었다. 기량이 뛰어나고 개성이 강한 연주자가 솔로 연주를 하면 뒤에 오케스트라가 받쳐주는 스타일의 곡이 많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코튼 클럽의 경영이 어려워지며 코튼을 떠난 듀크 엘링턴은 잠시 유럽에 진출하기도 하였으며, 뉴딜정책(루스벨트경제개혁)으로 다시 미국 사회의 경제가 활기를 찾자 방송을 통한 활발한활동으로 더욱더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경제 대공황의 우울한 시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신나고 경쾌한 음악에 열광했으며 듀크 엘링턴의 음악은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중음악이었다. 재즈 리얼북(Real book, 재즈 스탠다드 곡 모음집)에 가장 많은 곡이 실려 있으며 오늘날에도 재즈맨들이 가장 선호하고 좋아하는 곡들이기도 하다. 캔자스시티(Kansas City)금주법(1920-1933)과 경제 대공황(1929-1933) 시대에도 캔자스시티는 정부의 간섭과 경제 대공황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곳이었다. 농업과축산업이 발달한 곡창지대라는 이점은 상업 도시로 크게 번창할 수 있는 요건을 마련해 주었고, 돈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밤 문화도 자연스레 발달 할 수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갱스터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은 밀주를 만들어 부를 축적하였고, 도박과 범죄가 성행하는 무법 지대는 중앙정부의 세력권이 미치지 못하는 최고의 환락 도시를 만들어 놓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사회적 상황은 경제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뮤지션들을 캔자스로 모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캔자스시티(Kansas City)의 재즈 뮤지션들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재즈는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 스윙시대를 열었고 캔자스의 재즈는 비밥(Be bop) 재즈의 시작을 알렸다. 찰리 파커(Charles Parker, 1920-1955)가 캔자스 출신이며 레스터 영(Lesteryoung, 1909–1959)이 캔자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1904–1984)도 캔자스에서 피아노로 데뷔하였으며 후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을 이끌게 된다. 트럼펫에 클락 테리, 마일스 데이비스도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출신이다. 재즈사에서 캔자스가 중요한 이유는 스윙시대와 더불어 비밥의 시대로 가는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금주법, 대공황 시대임에도 밤새도록 잼 세션을 할 수 있었으며 연주자들끼리의 배틀 형식의 연주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법을 자연스럽게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캔자스시티’에서 조슈아 레드맨이 연기한 레스터 영과 제임스 카터가 연기한 콜맨 호킨스(영화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정황이 콜맨 호킨스라 생각된다)의 잼 세션 씬에서처럼 캔자스의 재즈 스타일은 나이트클럽 음악을 벗어나 예술적인 영역으로 올라서는 시발점으로 보인다. 찰리 파커(Charles Parker, 1920-1955)레스터 영(Lester young, 1909–1959)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1904–1984)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캔자스시티를 대표하는 빅밴드이다. 듀크 엘링턴이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카운트 베이시는 캔자스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최고의 연주자들이 그의 밴드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본래 카운트 베이시는 월터 페이지 밴드인 ‘블루 데블즈’(Blue Devils)의 피아노 주자였다. 블루 데블즈는 당시 캔자스시티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밴드였고 탁월한 연주 기량을 가진 멤버들이 많았다. 후에 베니 모턴이 이끄는 악단으로 흡수되며 캔자스 최고의 악단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베니 모턴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카운트베이시가 악단을 이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이 만들어지게 된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듀크 엘링턴 빅밴드와 비교가 되곤 했다. 곡 전면에 짜임새 있는 편곡으로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는 듀크 엘링턴의 밴드와는 다르게 간결한 편곡과 리프(Riff) 스타일(한 악절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며주고받는 형식의 편곡, Call&Response 스타일)이 뉴욕의 스타일과는 다른 점이었다.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1904–1984)​1937년 뉴욕으로 입성한 베이시 악단은 쇼 비즈니스의 도시인 뉴욕에서의 성공으로 ‘스윙의왕’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캔자스 출신 연주자로서의 첫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직 베니 굿맨, 레스터 영 등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내지 못할 만큼 30년대 스윙시대에는많은 뮤지션들이 즐비하다. 재즈가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얻으며 황금기를 맞이하던시대가 이때였으며 예술적인 범주에 속하는 시작점도 이때라 생각한다. 재즈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시점도 여기서부터일까? 다음 회에 베니 굿맨과 다른 연주자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글 | 이종우 경성대 동주대 외래 교수, 사진ㅣ구글이미지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26
  • [JAZZ AGE] 세계 재즈의 역사 본격적인 스윙시대의 개막, 1930년대
    시카고(Chicago) 재즈시대 1917년 세계1차대전 발발로 뉴올리언스가 군사도시로 지정되면서 스토리빌의 많은 업소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자,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은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북쪽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 도시들 중의 하나가 바로 시카고이다. 당시 시카고는 산업이 발달한 대도시였으며 자연스럽게 크고 작은클럽이 발달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재즈 사에서는1925년~1930년대를 시카고(Chicago) 재즈시대라 하는데,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집단 즉흥연주보다는 좀 더 세련된 스타일로 바꾸어 나가는 것,즉 뉴올리언스 재즈의 기본 포맷은 유지하되 화성적 사운드를 좀 더 세련되게 발전시키고 2박과 4박에 강세를 두어 스윙감(Swing Fill)을 배가시키는 특징을 가지게 된다. 또한 뛰어난 연주자인 빅스 바이더벡(Bix Beiderbecke, 트럼펫)의 영향으로 백인 연주자들의 참여 또한 변화된 특징 중의 하나였다. 재즈의 대중화 1920년대 미국의 경제 성장과 생활 수준의 향상은 소비사회를 만들게 된다. 소비사회와 함께 광고산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대중매체였던 라디오를 통해 재즈는 전 세계적인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게 된다. 20년대 후반에는 레코드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방송국이 있는 뉴욕으로 재즈의 중심지가 옮겨 가게 된다. NBC, ABC 등의 매체가 맨해튼에 본사를 두고 있고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보드빌(Vaudevile, 히극 뮤지컬)이 큰 유행을 타고있었다. 코튼 클럽(Cotton Club) 쇼 문화와 엔터테인먼트가 뉴욕을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브로드웨이와 할렘 부근에 많은 클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 규모가 큰 곳이 코튼 클럽(Cotton Club)이다. 코튼 클럽은 1923년에 개장해 현재까지도 영업 중인 가장 오래된 나이트클럽이다. 재즈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백인만 입장이 가능했으나 스윙재즈의 유행으로 흑인 재즈뮤지션 출연이 가능하게 되었다. 1927년에는 듀크 엘링턴(DukeEllington) 오케스트라가 재즈와 블루스를 오랜 기간 연주하였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1899~1974) 재즈사를 통해 가장 많은 곡을 작곡하고(1,500~2,000여 곡 혹은5,000여 곡이 넘는다는 설도 있음) 클래식과 더불어 재즈를 예술 음악으로 격상시킨 인물이 바로 듀크 엘링턴이다. 본명은 애드워드 케네디 엘링턴이고 현재도 그의 곡들이 전 세계 재즈클럽에서 연주되고 있다. 7살에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0살 때 이미 작곡했을 정도로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한 유명한 미술학교에서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기도 했다. 17살 때 자신의 악단을 만들어 고향인 워싱턴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하고, 1920년대뉴욕에 진출해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했다. 1927년과 1931년에는 코튼 클럽에서 자신의 빅밴드를 지휘하며 스윙시대 전국구 스타가 된다. 듀크 엘링턴 악단은 악기력이 뛰어난 솔리스트들을 많이 배출하게 된다.트럼펫 쿠티 윌리엄스(Cootie Williams)는 당대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고 색소폰의 자니 하지스(Johnny Hodges) 등이 듀크 악단의 솔리스트였다.듀크 엘링턴은 자신의 곡을 연주할 연주자를 연상하며 작곡하는 스타일이었다. 기량이 뛰어나고 개성이 강한 연주자가 솔로 연주를 하면 뒤에 오케스트라가 받쳐주는 스타일의 곡이 많다. 1929년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코튼 클럽의 경영이 어려워지며 코튼을 떠난 듀크 엘링턴은 잠시 유럽에 진출하기도 하였으며, 뉴딜정책(루스벨트경제개혁)으로 다시 미국 사회의 경제가 활기를 찾자 방송을 통한 활발한활동으로 더욱더 명성을 쌓아가게 된다. 경제 대공황의 우울한 시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신나고 경쾌한 음악에 열광했으며 듀크 엘링턴의 음악은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중음악이었다. 재즈 리얼북(Real book, 재즈 스탠다드 곡 모음집)에 가장 많은 곡이 실려 있으며 오늘날에도 재즈맨들이 가장 선호하고 좋아하는 곡들이기도 하다. 캔자스시티(Kansas City) 금주법(1920-1933)과 경제 대공황(1929-1933) 시대에도 캔자스시티는 정부의 간섭과 경제 대공황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곳이었다. 농업과축산업이 발달한 곡창지대라는 이점은 상업 도시로 크게 번창할 수 있는 요건을 마련해 주었고, 돈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밤 문화도 자연스레 발달 할 수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갱스터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은 밀주를 만들어 부를 축적하였고, 도박과 범죄가 성행하는 무법 지대는 중앙정부의 세력권이 미치지 못하는 최고의 환락 도시를 만들어 놓게 되었다. 이러한 독특한 사회적 상황은 경제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잃은 뮤지션들을 캔자스로 모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캔자스시티(Kansas City)의 재즈 뮤지션들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재즈는 시카고를 거쳐 뉴욕에 스윙시대를 열었고 캔자스의 재즈는 비밥(Be bop) 재즈의 시작을 알렸다. 찰리 파커(Charles Parker, 1920-1955)가 캔자스 출신이며 레스터 영(Lesteryoung, 1909–1959)이 캔자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1904–1984)도 캔자스에서 피아노로 데뷔하였으며 후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을 이끌게 된다. 트럼펫에 클락 테리, 마일스 데이비스도 미주리 세인트루이스 출신이다. 재즈사에서 캔자스가 중요한 이유는 스윙시대와 더불어 비밥의 시대로 가는시작점이 되기 때문이다. 금주법, 대공황 시대임에도 밤새도록 잼 세션을 할 수 있었으며 연주자들끼리의 배틀 형식의 연주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법을 자연스럽게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캔자스시티’에서 조슈아 레드맨이 연기한 레스터 영과 제임스 카터가 연기한 콜맨 호킨스(영화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정황이 콜맨 호킨스라 생각된다)의 잼 세션 씬에서처럼 캔자스의 재즈 스타일은 나이트클럽 음악을 벗어나 예술적인 영역으로 올라서는 시발점으로 보인다.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1904–1984)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캔자스시티를 대표하는 빅밴드이다. 듀크 엘링턴이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카운트 베이시는 캔자스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최고의 연주자들이 그의 밴드에서 많이 배출되었다. 본래 카운트 베이시는 월터 페이지 밴드인 ‘블루 데블즈’(Blue Devils)의 피아노 주자였다. 블루 데블즈는 당시 캔자스시티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밴드였고 탁월한 연주 기량을 가진 멤버들이 많았다. 후에 베니 모턴이 이끄는 악단으로 흡수되며 캔자스 최고의 악단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베니 모턴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카운트베이시가 악단을 이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이 만들어지게 된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은 듀크 엘링턴 빅밴드와 비교가 되곤 했다. 곡 전면에 짜임새 있는 편곡으로 다소 복잡해 보일 수 있는 듀크 엘링턴의 밴드와는 다르게 간결한 편곡과 리프(Riff) 스타일(한 악절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며주고받는 형식의 편곡, Call&Response 스타일)이 뉴욕의 스타일과는 다른 점이었다. 1937년 뉴욕으로 입성한 베이시 악단은 쇼 비즈니스의 도시인 뉴욕에서의 성공으로 ‘스윙의왕’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캔자스 출신 연주자로서의 첫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직 베니 굿맨, 레스터 영 등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내지 못할 만큼 30년대 스윙시대에는많은 뮤지션들이 즐비하다. 재즈가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얻으며 황금기를 맞이하던시대가 이때였으며 예술적인 범주에 속하는 시작점도 이때라 생각한다. 재즈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시점도 여기서부터일까? 다음 회에 베니 굿맨과 다른 연주자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글 | 이종우 경성대 동주대 외래 교수
    • 월간색소폰
    2018-07-26
  • [SPECIAL] 학생과 시민이 함께 즐긴 따뜻한 시간 '인천대학교 송년의 밤'
    (인천대학교 색소폰 오케스트라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ʼ을 지휘하는 곽재성 교수)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소극장에서 ‘평생교육원 송년의 밤’ 행사가 진행되었다. 평생교육원 관계자들과 교수진, 학생들이 한마음으로 주도하여 포근한 열기로 막을 내린 인천대학교 송년의 밤. 2018년에는 더욱 풍부한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거리로 진행될 예정이다.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은 주도적이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교과목 과정에 대하여 다양한 배움과 무대의 기회를 제공한다. (쇄도하는 앙코르 요청에 진행된 색소폰 연주와 출연진들과 함께한 무대) 색소폰 과정 소규모 모임에서 발전된 송년의 밤 인천대학교 송년의 밤 행사는 평생교육원 색소폰 과정 1, 2기 소모임 연주회가 발단으로 모든 교과목의 축제로 기획되었다.송년의 밤은 색소폰 수업을 지도하는 곽재성 교수의 오프닝 연주로 화려한 막을 열었다.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선보인 곽 교수는 사회자의 화려한 소개에도 자신은 ‘다른 수식어보다는 음악과 색소폰을 사랑하는 청년’이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봉사인으로서 살아가겠다’라는 겸손한 말을 남겼다. 그의 겸손한 태도는 또 한번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를 자아냈다.이후 초등부의 월드뉴스, 김태형 교수 시낭송, 박리아 탈북가수 독창, 신재명 미술관장의 기타 연주, 인천색소폰오케스트라의 앙상블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으며 마지막 순서인한국무용 우원교 교수, 색소폰 곽재성 교수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관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앙코르를외치는 관객들을 위하여 한번 더 선보인 이들의 콜라보레이션 공연은 무대 출연진들과 관객들이 하나 된 광경을 보였다.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의 효자과목, ‘곽재성 색소폰마스터 클래스’색소포니스트 곽재성 교수는 2016년 대전 지역의 우송대학교에서 색소폰 과정을 지도하였다. 본인이 거주하는 인천 지역 대학교에도 색소폰 강좌가 개설되기를 바랐는데, 지난해 방문한 인천대학교 측과 뜻이 맞아 색소폰 과정이 신설되었다.이후 개설된 ‘곽재성 색소폰 마스터 클래스’는 홍보와 함께 1주일 만에 정원 20명이 마감되었다. 신청하지 못한 이들의쇄도하는 증원 요청에도 불구, 심도 깊은 학습을 위하여 정원20인으로 마감하고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제1기 색소폰반이 개설된다. 2017년 2기생 모집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마감되었으며 평생교육원의 16개학과 중 가장 뜨거운 호응을얻었다.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색소폰 과정은 외부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며 사제 간, 학생들 간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평생교육원 관계자들은 색소폰 과정이 효자과목이라며이들의 활동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격려하며 지원하고자 한다.초보자부터 10년 경력자까지 만족하는 수업색소폰 과정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제물포 캠퍼스에서 진행되었다. 평생교육원 관계자들은 특히 색소폰 반의 열의가 강하다고 입을 모았다. 곽재성 교수의 색소폰을 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초보자를 비롯, 10년 경력의 수준급 실력을 갖춘이들이 한 반에서 3시간을 꽉 채워 진행된다,평생교육원 이규한 과장은 초보자와 경력자가 한 공간에서 수업을 듣지만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며 운을뗐다. ‘곽재성 색소폰마스터클래스’의 개강만을 기다린 수강생들 중 10년 경력의 인천대학교 교수는 첫 수업을 듣고 “곽재성 교수의 수업이 진정한 색소폰 지식이다”며 감탄했다고한다. 열정적인 곽 교수의 맞춤형 강의는 학생들에게도 높은만족도와 강렬한 학습열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학교 측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상했다.색소폰 과정을 지도하는 곽재성 교수의 ‘곽재성 색소폰 마스터 클래스’는 1학기에 1강좌씩 진행된다. 그는 추후 몇 강좌의 수업을 진행한 후 100명의 학생을 선발하여 ‘인천대학교색소폰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이후 꾸준한 연습을 통해 대학 공식 행사 무대에서도 웅장하고 멋진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송년의 밤에서 1, 2기 수강생들 중 일부 학생을 선발하여 색소폰 오케스트라의 초기 모형을 선보이며 그 시작을 알렸다.75,000명 인천시민과 함께한 평생교육원 홍보전 인천지하철 개통 1주년을 맞이하여 인천지하철 주안역과 시민공원역에서 2017년 7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평생교육원 홍보전을 진행하였다. 역사 내에 서예반, 서각반, 서양화반, 명리학반, 꽃꽂이반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총 2회의 색소폰 연주회를 진행하였다. 곽재성 교수의 연주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목적지를 잠시 잊고 춤을 추게 하였고 관람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앙코르를 외치는 장관을 펼쳤다. 일가량 진행된 홍보전에서는 75,000명의 시민들의 대대적인 환호를 받으며 여름날의 화려한 연주를 선사하는 값진 시간을 보냈다.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은 색소폰 과정 외에도 캘리그라피, 한국화, 한국무용, 난타, 명리학, 문학치료, 골프, 사격, 서예지도사 등 다양한 과정이 있다. (월간색소폰)박세정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23
  • [SPECIAL] 학생과 시민이 함께 즐긴 따뜻한 시간 '인천대학교 송년의 밤'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 소극장에서 ‘평생교육원 송년의 밤’ 행사가 진행되었다. 평생교육원 관계자들과 교수진, 학생들이 한마음으로 주도하여 포근한 열기로 막을 내린 인천대학교 송년의 밤. 2018년에는 더욱 풍부한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거리로 진행될 예정이다.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은 주도적이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교과목 과정에 대하여 다양한 배움과 무대의 기회를 제공한다. 색소폰 과정 소규모 모임에서 발전된 송년의 밤 인천대학교 송년의 밤 행사는 평생교육원 색소폰 과정 1, 2기 소모임 연주회가 발단으로 모든 교과목의 축제로 기획되었다. 송년의 밤은 색소폰 수업을 지도하는 곽재성 교수의 오프닝 연주로 화려한 막을 열었다.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연주를 선보인 곽 교수는 사회자의 화려한 소개에도 자신은 ‘다른 수식어보다는 음악과 색소폰을 사랑하는 청년’이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봉사인으로서 살아가겠다’라는 겸손한 말을 남겼다. 그의 겸손한 태도는 또 한번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를 자아냈다. 이후 초등부의 월드뉴스, 김태형 교수 시낭송, 박리아 탈북가수 독창, 신재명 미술관장의 기타 연주, 인천색소폰오케스트라의 앙상블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으며 마지막 순서인 한국무용 우원교 교수, 색소폰 곽재성 교수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관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앙코르를외치는 관객들을 위하여 한번 더 선보인 이들의 콜라보레이션 공연은 무대 출연진들과 관객들이 하나 된 광경을 보였다.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의 효자과목, ‘곽재성 색소폰마스터 클래스’색소포니스트 곽재성 교수는 2016년 대전 지역의 우송대학교에서 색소폰 과정을 지도하였다. 본인이 거주하는 인천 지역 대학교에도 색소폰 강좌가 개설되기를 바랐는데, 지난해 방문한 인천대학교 측과 뜻이 맞아 색소폰 과정이 신설되었다.이후 개설된 ‘곽재성 색소폰 마스터 클래스’는 홍보와 함께 1주일 만에 정원 20명이 마감되었다. 신청하지 못한 이들의쇄도하는 증원 요청에도 불구, 심도 깊은 학습을 위하여 정원 20인으로 마감하고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제1기 색소폰반이 개설된다. 2017년 2기생 모집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마감되었으며 평생교육원의 16개학과 중 가장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색소폰 과정은 외부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진행하며 사제 간, 학생들 간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평생교육원 관계자들은 색소폰 과정이 효자과목이라며이들의 활동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격려하며 지원하고자 한다.초보자부터 10년 경력자까지 만족하는 수업색소폰 과정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제물포 캠퍼스에서 진행되었다. 평생교육원 관계자들은 특히 색소폰 반의 열의가 강하다고 입을 모았다. 곽재성 교수의 색소폰을 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초보자를 비롯, 10년 경력의 수준급 실력을 갖춘이들이 한 반에서 3시간을 꽉 채워 진행된다,평생교육원 이규한 과장은 초보자와 경력자가 한 공간에서 수업을 듣지만 불만이나 요구사항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며 운을뗐다. ‘곽재성 색소폰마스터클래스’의 개강만을 기다린 수강생들 중 10년 경력의 인천대학교 교수는 첫 수업을 듣고 “곽재성 교수의 수업이 진정한 색소폰 지식이다”며 감탄했다고한다. 열정적인 곽 교수의 맞춤형 강의는 학생들에게도 높은만족도와 강렬한 학습열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학교 측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상했다.색소폰 과정을 지도하는 곽재성 교수의 ‘곽재성 색소폰 마스터 클래스’는 1학기에 1강좌씩 진행된다. 그는 추후 몇 강좌의 수업을 진행한 후 100명의 학생을 선발하여 ‘인천대학교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이후 꾸준한 연습을 통해 대학 공식 행사 무대에서도 웅장하고 멋진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송년의 밤에서 1, 2기 수강생들 중 일부 학생을 선발하여 색소폰 오케스트라의 초기 모형을 선보이며 그 시작을 알렸다.75,000명 인천시민과 함께한 평생교육원 홍보전 인천지하철 개통 1주년을 맞이하여 인천지하철 주안역과 시민공원역에서 2017년 7월 27일부터 8월 2일까지 평생교육원 홍보전을 진행하였다. 역사 내에 서예반, 서각반, 서양화반, 명리학반, 꽃꽂이반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총 2회의 색소폰 연주회를 진행하였다. 곽재성 교수의 연주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목적지를 잠시 잊고 춤을 추게 하였고 관람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앙코르를 외치는 장관을 펼쳤다. 일가량 진행된 홍보전에서는 75,000명의 시민들의 대대적인 환호를 받으며 여름날의 화려한 연주를 선사하는 값진 시간을 보냈다.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은 색소폰 과정 외에도 캘리그라피, 한국화, 한국무용, 난타, 명리학, 문학치료, 골프, 사격, 서예지도사 등 다양한 과정이 있다. (월간색소폰)박세정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23
  • [CLOSE UP] 색소폰 연주가 우리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색소폰을 연주할 때 호흡과 자세에 따라 우리의 신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연주 시 풍부한 음량을 내는 데 필수적인 복식호흡은 폐 기능 활성화와 복근 운동 효과로 육체적인 측면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심신이 안정되어 정신적인 건강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오염된 악기로 연주한다면 오히려 폐질환 등의 건강 이상을 초래할 수 있기에 청결한 악기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불편한 연주 자세가 습관이 되면 근육의 긴장과 디스크를 유발한다. 오랜 시간 연주하기 위하여 나에게 맞는 편안한 자세를 찾고, 연주 전 . 후 스트레칭을 통해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는 건강한 연주 습관을 들이자. 다양한 운동과 악기 연주에 활용되는 복식호흡호흡은 흉식과 복식이 함께 이루어진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호흡의 경우 흉곽운동 비율이 높으며 이를 ‘흉식호흡’이라고 한다. 복부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어 복압으로 호흡하는 것을 ‘복식호흡’이라고 한다. 흉식은 복식호흡에 비하여 공기 유입이 적기 때문에, 연주 시에는 구강 내 많은 공기를 불어 넣기 위한 복식호흡이 필요하다. 복식호흡은 연주 시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심신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평소 잘 쓰지 않던 등 근육도 활용되며, 무의식중에 하는 호흡과 달리 횡경막을 크게 움직여 폐에 많은 공기를 담아 폐활량을 늘린다. 관악기를 연주할 때 크게 들이마시고 미세하게 내뱉는 호흡은 폐 운동을 활성화한다. 이러한 이유로 관악기를 배우는 어린이 천식 환자의 증상이 개선되었다는 사례도 많다. 평소에도 의식적으로 복식호흡을 하여 습관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연주 시 복식호흡의 방법복식호흡은 배의 근육을 활용하여 호흡 시 복압이 느껴진다. 복식호흡을 중점적으로 하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확인 방법이 있다. 서 있는 상태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숨을 들이마시면 자연스럽게 복부에 힘이 들어간다. 이때 코로 숨을 최대한 많이 들이마시고 잠시 멈추었다가 입으로 천천히 길게 내뱉는다. 배꼽 밑의 단전에 힘을 주어 숨을 최대한 소량으로 긴 시간 내뿜어보자. 연주 시 관의 압력을 이겨내며 호흡을 모아 색소폰을 부는 원리와 같다. 악기의 청결 관리를 통한 폐질환 예방복식호흡은 폐 기능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지만 오염된 악기로 연주한다면 오히려 폐질환 유발 가능성이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보건센터(University of Connecticut Health Center)와 텍사스대학보건과학센터(University of Texas Health Science Center)의 과학자들은 35세 트롬본 연주자의 폐질환 사례를 분석하여 문서화했다. 사례자는 15년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침이 지속되는 증세를 호소했는데, 2주 동안 연주를 중단하자 기침은 사라졌다. 기침의 원인은 곰팡이 및 박테리아에 오염된 그의 악기로 밝혀졌다. 연구원들은 대부분의 황동과 관악기에 많은 곰팡이와 박테리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뉴욕대학의학부 전염병 전문의 마틴 블레이저(Martin Blaser)박사는 이 사례가 연주자들의 악기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흔한 경우라고 전한다. 악기를 청결하게 관리하지 않는 연주자들은 폐질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폐 기능은 한번 나빠지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고 호흡이 짧아져 연주 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동호인들이 지하 연습실에서 색소폰을 보관하는 경우, 습도에 의하여 악기에 세균이 증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소홀한 관리로 인하여 침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지 않은 오염된 피스를 사용하면 세균 막대를 입에 넣는 것과 같다. 곰팡이가 핀 리드를 사용한다면 콧물과 재채기, 감기에 걸릴 수 있으며 심하면 두통과 폐질환을 유발한다. 평소에 할 수 있는 간단한 관리를 통해 청결을 유지하고 폐질환을 예방하자. (월간색소폰)박세정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2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