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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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최보윤
    Q. 안녕하세요. 먼저 〈월간색소폰〉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최보윤 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학 후 한국에 들어온 지 9년차이고 현재 모교인 이화여대와 울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밖에는 여성 색소폰콰르텟 울림색소폰앙상블 대표로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지난 12월, 독주회를 가진 것으로 압니다. A. 네. 저는 이번 독주회가 세 번째 독주회였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에 비해 관객 여러분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보니 관객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초점이 관객 입장에서의 즐거움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 독주회의 제목도 ‘어느 저녁의 유희'로 이름 붙였는데요. 클래식이라는 무거운 느낌의 거리감을 좁히고 또, 관객들이 모처럼 연주회 오셔서 음악이 주는 감성과 감동을 누리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프로그램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Q. 개인적으로 독주회 프로그램 중 어떤 곡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A. 이번 연주회는 1부는 피아노 반주에 독주를 하였고 2부는 색소폰 사중주에 독주를 하였는데요. 1부에서는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의 〈Chant du ménestnel〉, 2부에서는 비발디 〈사계〉중 ‘겨울’ 전악장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글라주노프의 〈Chant du ménestnel〉은 해석하면 '음유시인의 노래’인데 원래는 첼로 독주를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프레이징의 길이가 현악기에 맞춰지다 보니 감정 선의 연결 자체가 매우 길고 표현 면에서는 깊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게다가 러시아 작곡가 특유의 넓고 웅장한 느낌이 있어서 한 곡 안에 그것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연주해 내는 것이 저한테는 몰입력을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많이 아시는 비발디〈사계〉중 ‘겨울’은 바이올린 솔로 원곡인데,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하였고요. 화려한 테크닉이 돋보이고, 고전 작품임에도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부분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네요. 함께 반주해준 사중주 색소포니스트들이 저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한국에서 입시를 치르고 연주 활동하며 프랑스에서도 함께 유학한 친구들로 구성해 제 개인적으로도 소회가 남달랐습니다. Q. 최보윤 색소포니스트는 어떤 스타일의 연주를 어떤 해석으로 하는 연주자인가요? A. 고전부터 현대음악까지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작곡가들의 곡을 주로 연주하고요, 그 외에 팝이나 뮤지컬 음악 뉴에이지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을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톤의 무드를 가지고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연주자는 곧 좋은 전달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연주할 곡이 선정되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작품의 방향성을 정확히 표현해야 해서 작곡가의 마음 혹은 의도 파악을 위해 시대적 배경 및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을 위해 사용된 음악적 수사들을 숙련된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연습의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제가 어설프게 알아서는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거든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몸에 온전히 체화가 돼야 세세한 표현들이 무대에 녹아들어 관객들이 제가 만든 세계관에 초대되어 음악을 충분히 느낄 수 있거든요. Q.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A.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부분이 유독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가져지는 그런 단점들이 있다는 거예요. 내성적이고 음악이 갇혀 있는 어떤 그런 부분이요. 클래식은 높은 감정을 가지고 절제하는 법을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표현과 감정들이 많고 커야 돼요. 한국의 교육적인 실태가 입시 위주로 많이 맞춰져 있고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다 보니 그런 부분이 많이 결여돼 있어요. 음악을 해석하는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하는 지 모르겠다는 친구들도 많죠. 그래서 제가 공부한대로 작곡가와 시대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테크닉으로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다이내믹의 폭을 더 넓히고 표현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도 학생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악보대로 연주하는 법에 초점을 맞추는 편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 A. 가깝게는 3월 5일에 살롱드무지크에서 독주와 듀오로 연주회가 있어요. 관객을 최소한의 인원으로 프라이빗한 살롱 연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인데, 관객과의 거리가 앞 열과는 거의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클래식 색소폰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악기 소리로만 전달을 하는데, 저도 그 정도로 가까이에서 독주는 처음이라 기대가 더욱 많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소속되어 있는 앙상블 팀이 ‘울림’과 ‘더 모던’ 두 팀인데요. 두 팀 모두 올해 정기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더 모던’은 저의 대학 때 사사이신 이범훈 선생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팀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8~12명 구성으로 최고의 루키들로 모아 창단한 색소폰 앙상블 팀입니다. 첫 정기연주회를 올 11월 29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고요. 울림색소폰앙상블 이번 정기연주회는 국내 작곡가 네 분께 곡을 의뢰하여 창작곡으로 무대를 꾸미는 계획을 스케치 중입니다. 울림색소폰앙상블로 활동하는 [울림시스타즈] 유튜브 활동은 지금도 계속 업로드 중이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Q.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A. 제가 귀국 후에 한국 길거리에 있는 많은 색소폰 동호회 간판들을 보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자들의 저변이 이렇게 확장되었구나’를 그때 느꼈죠. 색소폰 콘텐츠를 소비하는 층이 두꺼워지고 다양해지면 저희 같은 연주자나 선생님이 많은 활동이 가능해져요. 또한 그것을 공급해 주는 많은 악기사와 수입사들 악보와 반주 콘텐츠 업체 등이 발전하고 이 세 가지를 촘촘히 묶어주는 네트워크들 가령 밴드 및 카페 커뮤니티 그리고 이렇게 〈월간색소폰〉 같은 좋은 잡지사가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면 대한민국 색소폰 시장이 선진 대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쁘게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께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늘 부탁드립니다. 또 많은 색소폰 연주회에 발걸음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늘 무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Interview
    2023-02-01
  • 신성윈드오케스트라와 주승진 선생님
    2009년에 창단해 올해로 12년 차를 맞이한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신성중학교 내 최초로 구성된 윈드 오케스트라로 약 74명의 청소년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통 클래식부터 국악, 무용, 팝, 오페라 등 다양한 곡 프로그램을 기획해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며, 1인 1악기 시대에 ‘즐겁게 음악하기’의 표본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10월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제10회 정기연주회&예술드림거점학교 합동 연주〉를 마쳤다. 합동 연주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였으며, 100여 명이 넘는 인원에게서 뿜어내는 웅장한 선율이 연주홀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캐리비안 해적 OST〉와 같은 친숙한 선곡으로 성인 오케스트라도 소화하기 힘든 다양한 연주를 선보이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1학년부터 3학년, 총 74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관악부는 관악기, 타악기 등 11개 파트로 세분화되어 있다. 동아리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며, 모든 악기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앙상블, 솔로, 합주 위주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지도자 교육을 통해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 활동과 많은 연습과 교육, 노력이 더해져 창단 다음 해인 2011년에는 〈안양과천예능경연대회〉에서 2015년까지 4년 연속 1위를 하며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인 2011년 경기도 교육청 주최 〈경기도 학생 예능 경연대회〉 안양·과천 대표로 우수입상작발표회에 출연하였고, 2011년부터 12년 연속 〈대한민국관악경연대회〉 수상을 비롯해 경인일보 주최 〈전국 학생 오케스트라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2017년 〈제16회 안양시민축제〉에 초청되어 메인 공연과 안양과천 학생어울림한마당에 참가하기도 하는 등 교외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경기도청소년관악제에서 3년 연속 대상 및 각종 대회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명실상부 전국구 관악부로 거듭났다. 신성윈드오케스트라가 있는 신성중학교는 ‘꿈과 끼, 열정이 있는 행복한 학교’라는 교육 목표 로 개인지도 및 합주와 맞춤형 교육을 통해서 세계를 무대로 폭넓게 나아갈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윈드오케스트라를 통해 악기 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예술고로 진학하여 각종 콩쿠르 입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차세대 음악 예술인을 육성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 교육부가 지정한 예술드림거점학교로써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2009년부터 신성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윈드오케스트라(관악부)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관현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트롬본을, 대학원에서는 음악교육을 전공했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 창립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제가 고등학교 때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관악부에 들어가보는게 어떠냐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악기를 시작하며 비롯된 것입니다. 관악부에 들어가 같이 연주하는 게 즐거웠고 꿈을 꾸게 되고 밝아지는 스스로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좋았던 경험을 토대로 저와 같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싶었습니다. 2009년에 신성중학교에 부임하여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5층, 자그만 한 음악실에서 시작하였고, 당시 악기 하는 아이들은 있는데 예술 동아리와 같은 활동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당시 활동했던 아이들은 10여 명 남짓. 지금은 74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윈드 오케스트라 연주 동아리가 됐고, 단원 중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전에 악기를 배웠던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악기 연주에 초보인 학생들이 관악합주부에서 함께 하모니를 맞추며 연주를 할 수 있는 꽤 수준 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2010년 창단한 신성중학교 윈드오케스트라 관악부를 시작으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아리 이름뿐만 아니라 학교의 이름까지 널리 알리며 신성중의 자랑으로 성장해왔습니다. Q. 관악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오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A. 1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당시 처음 가르쳤던 아이들이 대학 졸업생이 됐습니다. 여러 상위권 대학에 입학해 악기를 전공하는 친구도 있고, 여전히 취미로 연주하는 제자도 있습니다. 연주가 있을 때면 졸업한 제자들이 와서 도와주고, 간식도 사들고 오는 모습을 보면 어려워도 어떻게든 오케스트라를 운영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연주하는 게 참 재밌었다고, 좋았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감회가 남다릅니다. Q. 앞으로 어떤 단체를 만들어 나가고 싶나요? A. 아이들이 여기서 음악을 하는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대규모로, 거창하게 운영하는 것보다는 내실 있게 지금처럼 아이들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단체로 남고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다수의 연주와 재능기부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며 성장해왔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윈드 앙상블을 연주하여 발전시키고 그 음악을 많은 학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연주자로서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또 교육자로서도 배워왔던 것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2009년에 부임하여 신성관악부를 창단하고 신성중에서만 13년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는 게 좋아요.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웃음) Q. 윈드오케스트라에 대한 개인적인 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지도 교사로서 앞으로 교육 목표라 하면 윈드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개성과 독창성을 기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시대 흐름에 맞는 인재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창의성과 지적 호기심을 함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음악중점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프로그램과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무대를 발전시켜 나갈 것을 소망하고 신성 관악부의 연주가 앞으로 다양한 계층이 음악을 경험하면서 나눔의 음악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Q.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저희 관악부가 추구하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소통입니다. 이는 단원들 간의 소통도 의미하고 연주를 할 때는 파트너와의 소통, 그리고 청중들과의 소통 등 전부 포함됩니다. 이러한 소통들이 합쳐져 음악을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저희 관악부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관악부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더 발전하는 더 열정 있는 동아리가 되겠습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제가 5살~6살 정도 되었을 때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악기 연주가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A.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고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떤 곡을 연주해야 이 악기에 어울리는지 등 다양한 생각이 듭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A. 저희 관악 오케스트라 활동은 다양한 곳에 저희 학교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꿈을 보여주는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이지만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은 후배들이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역할을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A. 저는 주승진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지금은 신성중학교의 학생이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다시 신성중학교의 선생님으로 오는 것이 꿈이고 계획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악기 연주는 제가 신성중학교를 입학하고 한참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빠져있었는데, 마침 신성중학교에 관악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바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색소폰의 다양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인이라는 꿈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A.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 활동은 저에게 배움이 되는 활동이며 오케스트라의 도움이 되는 역할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저의 꿈은 훌륭한 색소폰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유튜브에서 우연히 드럼 영상을 보게 되면서 드럼 학원을 다니면서 레슨을 받았는데, 신성중학교에 관악부가 있어 다양한 타악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저는 악기 연주를 하며 인생을 살며 쉽게 경험하지 못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 스스로가 노력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A. 저희 오케스트라 활동을 많은 친구들이 협력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대회를 나가 상을 타고 저희만의 연주회를 개최해서 그동안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습한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졸업을 앞두고 있어 이제 신성윈드오케스트라 안에서의 활동은 못하겠지만 종종 학교에 와서 후배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중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신성윈드오케스트라가 신입생 환영음악회를 했는데, 그때 연주하는 선배들이 너무나 멋있게 보여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선택하게 된 건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소화할 수 있고 1846년 낭만주의 시대에 개발된 현대 악기이다 보니 슬랩 텅잉이나 오버톤과 같은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제가 색소폰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색소폰이 클래식에 쓰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클래식 색소폰을 하다 보니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에 매료되어 신기하였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A.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저에게 꿈을 심어준 존재입니다. 대중들이 접하는 일반 오케스트라처럼 현악 위주가 아닌 관악, 타악 총 1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일반 오케스트라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윈드 오케스트라 만에 매력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이 다 같이 모여 아름답고 웅장한 곡들을 완성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제 일상에서 어느 순간 음악 없이는 저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제 자신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매일 7시에 학교에 나와 연습을 하며 저에게 연주자라는 꿈을 심어준 윈드오케스트라는 제게 가장 소중한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인 브랜든최 연주자님처럼 클래식 색소폰으로 다양한 곡들을 연주하면서 대중들에게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들려주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또 저의 꿈은 클래식 색소폰 불모지인 한국에 클래식 색소폰 대중화를 위해 기여하고 싶고, 브랜든최 연주자님처럼 클래식 색소폰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습니다. Q.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저에게 처음 클래식 색소폰에 대해 알려주신 현재 제가 사사하고 있는 정순섭 선생님 덕분에 클래식 색소폰을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색소폰의 매력에 대해 더 깊이 접할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합니다. 클래식 색소폰 많이 사랑해 주시고 〈월간 색소폰〉 많이 사랑해 주세요!
    • Interview
    2023-01-01
  • 색소포니스트 임민택
    임민택이라는 이름을 모르면 간첩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는 색소폰 업계의 대명사가 되었다.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하고 재즈를 연주하던 한 젊은 연주자가 내디딘 새로운 길은 동 연령대의 색소폰 연주자들에게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트로트, 가요 음악을 재해석해 연주하고 그로 인한 인지도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그. 최근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리얼색소폰’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색소폰 커뮤니티 단체로 크게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를 알려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곳은 송파구에 위치한 임민택 연주자의 스튜디오. 그곳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 진행되는 영상 장비와 음향 장비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었다. 개인 연주를 비롯한 이른 오전부터 늦은 저녁까지 진행되는 레슨과 매주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 준비, 네이버 밴드 ‘리얼색소폰’ 운영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음악과 하는 삶이기에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그다. 임민택 연주자가 트로트, 가요씬에서 활동을 한 지는 14년째다. 20대 후반, 재즈를 전공한 그가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무대는 가수 세션 무대 혹은 한국에 몇 안되는 재즈 클럽에서의 공연이 전부였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하면 보통 재즈를 연주하거든요. 졸업하고 가수 세션도 하고 그렇게 지내는데, 제가 가수 세션을 하면서 느낀 게 뒤에서 백밴드인데 내가 연주자로서 음악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저는 기다리고 있다가 잠깐 나오고…. 연습한 건 수도 없이 많은데 실제 필드에 나와 보니 실상이 다른 거죠. 그래서 내가 뭘 연주하더라도 연주자로서 활동을 해야겠다 싶어서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어요. 돈은 조금 받아도 거기에서 연주하면 연주자로서 연주할 수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내 연주를 집중해서 듣고, 오랫동안 연습한 것들에 대한 내 연주를 발산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연주자로서의 삶을 영위하게 만들어준 클럽 공연이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른에 가까워진 나이로 자신의 길을 찾고 싶었던 그는 온라인 채널에 자신의 연주를 이것저것 올리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주를 이루었던 색소폰 업계에 당시의 젊은 연주자로는 임민택 연주자가 거의 최초로 발을 담그며 그만의 입지를 다져가게 된다. “색소폰 나라에 연주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가요도 하고 재즈도 하고 다양하게 올렸죠. 그러다 어느 날은 영창이라는 업체에서 저의 연주를 듣고 같이 해볼 생각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영창 알버트 웨버 제품으로 가요 연주를 해보면 어떻냐는 제안이었죠. 그래서 바로 좋다고 그랬죠. 해본 적은 없었지만 가요면 어때요, 해보겠다고 했죠. 그때 공식적으로 가요를 처음 연주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연주했던 가요 곡을 들어보면 멜로디보다는 애드리브가 훨씬 많아요. 지금은 오히려 그렇지 않죠(웃음). 그때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게 굉장히 신선했던 것 같아요. 보통 가요 연주와는 좀 다른 재즈 같은 느낌의 가요였으니까요. 가요나 팝 음악에 재즈에서 했던 것들을 녹여냈죠. 아마도 후배들은 저 때문에 용기가 났을 거예요. “저 형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재즈 연주자에게는 (가요 씬에서 활동하는 게)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음악에 귀천이 어딨겠냐는 마인드로 간 거죠. 주변에서 질타는 없었지만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겠죠. “쟤가 왜 저런 걸 하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까요. 그런데 저는 ‘저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길을 만들어 가는 건 연주자의 몫이거든요” 임민택 연주자가 개설한 네이버 밴드 ‘리얼색소폰’은 현재 4300명이 넘는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임민택 연주자가 직접 편곡한 악보를 보기위해 가입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며 지금은 하나의 커다란 단체로 성장했다. 각종 리얼색소폰 모임과 캠프를 통해 꾸준한 친목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러한 네트워크를 더욱 키워나가고 활성화해나갈 예정이다. “리얼색소폰은 공연도 하고 모임도 하는 커뮤니티에요.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제 이름으로 된 유튜브 채널명에서 리얼색소폰으로 이름을 바꾸고 회원들 연주도 올리고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계획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정보나 리뷰 같은 것들을 접할 수 있는 유익한 채널로 내년부터 키워나가는 게 큰 목표죠. 제가 편곡한 악보를 리얼색소폰 밴드에 공유하다 보니 회원수가 4300명에 이르렀어요. 제가 편곡한 악보들을 다운로드하거나 보기 위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모인 인원들이 그 안에서 친해지면서 모임도 갖고 행사도 하게 됐어요. 하나의 단체로서 발전해나가고 있다 보니 유튜브 채널명도 리얼색소폰으로 커뮤니티 단체로서 유익한 내용들을 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임민택 연주자는 유튜브 채널 또한 [리얼색소폰]으로 기존에 있던 유튜브 채널 [임민택]에서 채널명을 변경할 예정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정보를 소개하고 기존 회원들의 연주도 업데이트하는 등 커뮤니티 채널로서의 입지를 다져갈 예정이다. “라이브 방송에는 프로 연주자만 나오는 게 아니고 리얼색소폰에 가입된 모든 아마추어·프로 연주자들이 같이 참여합니다. 보통은 프로연주자들만 방송에 나와 공연을 하는데 리얼색소폰 회원이라면 프로, 아마추어 구분 없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거죠. 개인 방송이 확장된 형태이다 보니 대본도 없이 진행하는데 그래도 많이 봐주시고 재미있다고 해주세요. 색소폰 강의와 제품 리뷰,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 그리고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해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도 많이 소개해 저변을 확대해나가고 싶고 기존에 색소폰 하시는 분들이 유익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로 키워가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임민택 연주자는 음향 관련 공부를 통해 직접 색소폰 앨범을 만드는 것이라 답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앨범 작업을 해왔지만 색소폰 소리를 잡는 데에 있어 연주자인 그의 기대에 미치기 어려웠다는 점을 토로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가장 좋은 소리를 아는 것은 연주자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믹싱, 마스터링 작업을 직접 하여 좋은 색소폰 소리를 직접 녹음하는 게 그의 목표다. “일반 믹싱, 마스터링 엔지니어들 대부분이 접하는 음악들이 보컬 위주의 음악이에요. 그래서 노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데, 색소폰 음악 자체는 한 번도 안 접해본 엔지니어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거예요. 색소폰의 좋은 소리를 잘 잡았느냐에 대한 레퍼런스는 저같이 색소폰을 오랜 시간 연주한 연주자들이 가지고 있는데 연주자는 그 소리를 믹스할 수 있는 기술이 없잖아요. 그래서 최근 3년 동안 음향 관련 장비들도 구입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저도 연주하고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한 것들을 프로세싱도 해보고 믹스도 해보고 마스터링도 해보고 이런 식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분야를 더 넓혀나가고 싶어요.” 그토록 바쁜 일정을 다 소화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략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잠을 잔다고 답했다. 레슨, 연주 등이 없는 틈이 나는 시간에는 무조건 연습을 하려고 하고,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난 후에도 연습 또는 음향 공부를 하는 데에 개인 시간을 투자한다고. “틀에 박히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요. 대신 열심히 해야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해야겠죠. 색소폰 불면서 성공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그래도 음악을 하면서, 내가 즐거운 것들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거면 그걸로 엄청나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잘해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연주하고 더 연습하고 하면서 저만의 메리트를 만들어 가야죠.”
    • Interview
    2023-01-01
  • 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대상 수상자 이주연
    제3회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의 영예의 대상 수상자가 나왔다. 소프라노로 연주하는 〈조각배〉의 선율과 새하얀 한복을 입은 무용수의 한국적인 무대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기억됐다. 경연대회에 대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며 색소폰을 공부한 지 어느덧 12년차인 그녀. 색소폰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기에 그 의미가 더 남다르다. 제3회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 대상 이주연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주연 씨(이하 이 씨)는 취미 생활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우연치 않게 색소폰의 소리를 듣고 첫눈에 반해 악기를 시작했다. 이 씨는 색소폰을 하기 전에 록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 주자로 활동해 7080 연주곡은 바로 듣고 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타는 혼자서 연주할 수 없는 악기이기에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우연히 색소폰 연주를 듣게 되었는데, 소리가 너무나 맑아 제게는 천상의 소리로 들렸어요. 순간적으로 “이건 내가 해야 할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원래 그전에는 록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었어요. 지금도 밴드팀을 계속하고 있죠. 제가 노래는 잘 못하지만 선율 자체를 좋아해요. 베이스 기타도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는데, 베이스는 혼자 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잖아요. 고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색소폰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던거죠. 색소폰 소리에는 감동도 있고 소리에서 주는 시원한 느낌도 있고요. 지금까지도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악기인 것 같아요.” 이 씨는 색소폰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색소폰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욱더 궁금한 게 많아졌고 그것은 곧 그녀에게 재미와 도전으로 다가왔다. “기타를 연주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색소폰 운지를 잡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소리에 있어서는 제가 들었던 그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처음에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하다가 조금 더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색소폰사관학교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입학하면서 기본적인 것들을 다지게 됐던 것 같아요. 내가 처음 들었던 천상의 소리를 다질 때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으로 연습을 했더니 실력이 많이 상승됐어요. 색소폰사관학교는 내가 설령 하기 싫더라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이왕 시작했으면 내가 최고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되더라고요(웃음).” 누구에게나 살다보면 한 번쯤 찾아오는 시련이 있다. 이 씨의 색소폰 인생에도 예외는 없었다. 수백 번을 연습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은 연습 방법도 알고 어려운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는 그다. “(색소폰을 연습하면서) 힘들 때가 있었어요. 한 마디를 가지고 몇 달을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부분이 안 된다는 것은 안 되는 만큼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죠. 제 경우에는 연습을 하면 안 되는 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제가 500번을 불어도 안 되는 구간도 있었어요. 이번 겨울에는 그걸 다시 시작할 생각이에요. 제가 아마추어 연주자이다 보니까 안되는 게 분명히 있죠. 원하는 만큼의 좋은 소리가 안 난다든지 하는 부분이 있는데, 하나하나 어려운 걸 극복하면 기쁨이 엄청나더라고요. 안됐을 때 스트레스 받았던 게 한 번에 날아가면서 공중에 뜬 것처럼 행복해져요. 그런 맛에 어려울 때마다 넘어가고 하는 것 같아요.” 〈골든페스타〉 본선 부대에서 선보인 〈조각배〉는 이 씨의 평소 취향이 반영된 곡이다. 이번 대회 무대에 한국 무용을 함께 선보이게 된 것도 평소 한국 무용을 해오며 색소폰과 한국 전통 무용의 콜라보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생각에서 기반이 됐다. “제 스스로 밝은 곡만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연주를 하다 보니 〈조각배〉라든가 〈야상곡〉, 〈비나리〉 같은 한국적인 음악을 좋아하더라고요. 특히 그냥 음악을 들었을 때보다 연주를 했을 때 제 삶이 치유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제가 한국 무용도 하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색소폰 연주와 같이 콜라보 해보니 현대 악기인 색소폰과 전통 무용의 만남이 굉장히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이 무대를 가지고 경연대회에서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골든페스타〉에서 그런 기회가 만들어져 너무 좋았습니다.” 이 씨는 〈골든페스타〉 경연대회를 준비하며 음정에 가장 많은 신경을 쏟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녀는 대상을 수상하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기쁜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함께 생겼다고 한다. “소프라노로 연주를 하나 보니까 하이톤 음정에 신경을 많이 썼고, 대회 무대에서 어떤 제스처를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구든지 대회에 나갈 때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죠. 막상 대회장에 가보니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대상을 수상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한국 무용과 같이 콜라보 무대를 해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저의 대상 수상 소식으로 저희 음악실 식구들과 친구들이 정말 많이 축하해주고 좋아해주셨는데, 기분도 좋았지만 부담감이 동시에 생기더라고요. 연주를 더 꼼꼼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어요.” 나이 먹어서 시작한 색소폰으로 이 씨는 치유의 경험을 했다. 그렇다 보니 주변인에게도 악기를 많이 권하게 되고 실제로도 이 씨를 통해 악기를 시작한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색소폰은 마음을 다스리기에 너무나 좋은 악기에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도 색소폰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보통 색소폰은 연령대 높은 분들의 악기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더욱 대중화돼서 청소년들에게도 홍보가 많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정서적으로 너무나 좋은 악기거든요. 제가 공황장애도 좀 있었는데, 악기를 통해서 치유가 됐어요. 그렇다 보니 젊은 사람들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배우라고 권유하게 되네요.” 이 씨는 앞으로 음악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그곳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든지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찾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끝으로 자신은 어떤 연주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 씨는 답했다. “진정성 있는 연주자요. 모든 음 하나하나를 마음을 담아서 불고 싶어요. 오선 악보에 그려진 단순 멜로디를 소리 내는 게 아닌 선율에 감정을 담아서 살아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요. 제 마음이 무지개 타듯 휩쓸려 가는 살아있는 음악이요.”
    • Interview
    2022-12-01
  • 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금상 수상자 김재학
    제3회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 금상을 수상한 김재학 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색소폰을 연주한 지 올해로 8년이 됐다. 어머님 앞에서 살아생전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색소폰이 그의 삶을 지휘할 만큼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 같은 존재다. 직장 가요제를 통해 만난 음악적 기회 김재학 씨(이하 김 씨)는 20대 중반 직장 생활을 하며 “내가 음악을 해도 될까?”하는 생각의 계기를 만났다. 당시 매년 근로자의 날 ‘직장 가요제’라는 회사 행사가 있었는데, 출전해 입상하며 주변에서 “노래 좀 하나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진짜로 제가 잘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러다 이후에는 제가 작곡을 하기 까지 이르렀죠. 트로트 장르의 〈청풍명월〉이라는 곡이었는데, 그 곡으로 전국구 단위의 가요제에도 몇 번 나갔었어요. 물론 다 낙방했습니다(웃음).” 김재학 씨는 못다 이룬 가수의 꿈을 뒤로하고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모님과 장모님의 병세 소식을 듣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악기를 배워 부모님들께 연주해드려야 겠다는 마음에 그는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은 계속 좋아했으니까…, 악기를 하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저의 부모님과 장모님이 뇌 관련 질환 판정을 받으면서 든 생각이 “악기라도 하나 배워서 저분들께 연주해드리고 싶다”였죠. 그때가 2014년 6월 1일이었어요. 그런 이유로 시작을 했지만 훗날 연주를 보여드리려고 했을 때는 부모님들이 이미 세상에 안 계셨어요.”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만든 배움의 시간들 색소폰을 배운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는 더욱 전문적인 배움의 기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평소 대충 하기 싫어하는 성향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맞물려 상황에 맞는다면 무엇이든 찾아서 하려는 그였다. “처음 색소폰을 배웠기 때문에 그전에 제가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악기를 연주했던 것도 아니어서 배움의 기회가 필요했어요. 아무래도 혼자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찾은 곳이 서울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이었죠. 거기서 한 학기 정도 공부를 해보고 이후 색소폰사관학교 2년 정규 과정에도 등록해보았습니다. 프로 연주자들의 원 포인트 레슨 공지가 올라오면 찾아가서 배우기도 했죠.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아무리 주변을 다니며 배워 봐도 제 자신이 많이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죠. 그렇게 사이버대학 실용음악과로 올해 8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처음에 부모님 때문에 시작을 했다가 결국 여기까지 달려오게 되었네요.” “〈매기의 추억〉 슬픈 감성 표현하려 MR 편곡 직접 바꿨다” 김재학 씨는 이번 경연 대회에서 〈매기의 추억〉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색소폰을 갓 시작했던 시기 유튜브에서 한 초등학생이 이 곡을 기막히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는 학생의 부모님과도 수소문에 연락했을 정도로 흠뻑 빠져서 연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사한 연주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한마디씩 늘려가며 반복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정성 들인 곡으로 김재학 씨는 결국 수상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곡의 배경을 설명하며 자신이 연주로 어떤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연습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 곡을 연주하기로 마음먹고 〈매기의 추억〉이 쓰인 시대적 배경이나 이 곡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찾아봤어요. 이 곡은 1800년 후반에 발표된 곡으로 불행한 사랑에 대한 얘기거든요. 캐나다에 어느 교사가 학교에 입학한 매기라는 제자와 사랑하게 되고 아내가 졸업한 후 결혼을 해요. 그리고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를 낳고 살다가 어느 날 아내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되죠. 교사는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에 사랑했던 추억들을 생각하며 시를 썼어요. 그리고 그의 작곡가인 친구가 그가 써놓은 시를 보고 그에 맞는 감성으로 곡을 만들어 발표한 게 〈매기의 추억〉이거든요. 그렇다보니 이번 대회 때는 원곡의 슬픈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어서 제가 직접 만든 MR을 임민택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다시 만들었어요. 원래 기존에 연주했던 곡은 빠르고 경쾌하게 경음악으로 편곡해놓은 버전이었거든요. 편곡을 통해 슬픈 느낌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대회를 위해서 제 자신에게 혹독하게 했던 것 같아요. 평소 암보로 연주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저에게는 무한반복하는 방법밖에 없었거든요. 악기 잡고 반주가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핑거링이 될 수 있게 연습했던 거 외에는 없는 것 같아요. 연습을 안 하면 앙부슈어나 기본 자세들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항상 근육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평소에도 연습은 평균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매일 하려고 하고 30분 정도는 기본적인 워밍업, 롱톤, 스케일을 연습하고 나머지 시간은 곡에서 안 되는 부분들만 집중적으로 연습해요.” “〈골든페스타〉를 통해 만난 새로운 인연, 너무나 값진 시간” 김재학 씨는 이번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를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됐다며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경연대회 참여 계기를 묻는 질문에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을 만큼 그는 평소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윤정현(황금나팔) 연주자와의 새로운 인연을 쌓았다. “평소에 황금나팔 선생님을 너무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골든페스타 멘토링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소 듣지 못했던 연주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는데 감명 깊었어요. 〈골든페스타〉를 하며 얻은 게 많아요. 수상도 하게 됐고 새로운 인연도 만나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저같이 처음 색소폰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초기의 길잡이를 잡아드리도록 지도하고 싶어요. 이러한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되었고,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코스를 밟아오고 있어요. 비록 사이버대학이지만 대학 과정을 통해 음악을 더 심도있게 공부해 봤고, 앞으로 향후 3년간 더 제 자신을 다듬고 매몰차게 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더 단단해진 다음에 색소폰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70대 이상만 참여하는 실버 앙상블을 만들고 싶어요. 제 어머님, 장모님이 70대에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그 생각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노력해 나가야죠.” “제가 색소폰을 하면서 고마운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색소폰 처음 잡고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 색소폰 연주자 과정 할 때 지도해 주셨던 임희승 선생님, 색소폰 사관학교 박정일 교장선생님과 담임이셨던 이병주 선생님, 그리고 지금 제게 가르침을 주고 계신 임민택 선생님, 늘 마음속 멘토로 자리하고 있는 박동준 선생님과 박광식 선생님, 그리고 이외에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온 점에 대해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어요.” 김재학 씨는 색소폰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 “마에스트로 같은 존재”라 답했다. 그는 “색소폰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자꾸 연주하게 되고 공부하게 되고 인생 계획을 세우게 됐다”며 절반이 지난 자신의 인생을 색소폰이 이토록 진두지휘한다는 사실에 불현듯 마에스트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김재학 씨에게 있어 친구이자 스승 같은 색소폰. 지금처럼 언제나 음악을 벗 삼아 늘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길 응원한다.
    • Interview
    2022-12-01
  • 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은상 수상자 봉용섭
    봉용섭 수상자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색소폰 연주를 하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색소폰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아버지와 듀엣 연주를 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봉용섭 씨 자신이 더 색소폰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봉용섭 수상자(이하 봉 씨)는 국악기인 대금을 전공했다. 현재 성남시립국악악단에 상임 단원으로 재직 중이며 청소년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성남에 위치한 실버타운, 병원 등 봉사 연주와 더불어 축제 공연 및 정기 연주회 활동을 해오고있다. 봉 씨는 음악을 전공하였기에 색소폰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 이론적 지식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으나 대금과 색소폰의 소리를 내는 매커니즘적 방식이 달라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대금 같은 경우는 입술의 힘을 빼야 소리가 나는 원리라 소리내는 방식에 있어서 색소폰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색소폰을 불다가 대금을 불면 소리가 전혀 안 나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좀 어려운 지점이었으나 악보를 본다거나 전체적인 음악의 흐름을 잡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일반인에 비해 수월했던 부분이 컸던 것 같습니다.” 봉 씨는 이번 경연대회 본선에 〈Magia〉라는 곡으로 출전했다. 평소 유튜브에 나오는 색소폰 연주를 찾아보다가 좋은 곡이 있거나 해보고 싶은 곡이 있으면 연습하여 연주하곤 하는데 〈Magia〉도 그렇게 채택된 곡이다. 봉 씨는 음악을 전공했고 음악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있어서는 비전공자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아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연습들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제가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기초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본 연주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스케일과 톤 연습을 30분씩 이상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연대회를 준비하고 곡을 연주하는 데에 있어 봉 씨는 ‘감정 전달’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연주라는 건 자기만족이 아닌 타인에게 좋게 들려야 한다는 취지다. “제가 곡을 연주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건 곡에 맞는 감정 전달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연주라는 건 나만 즐겁자고 하는 것이 아닌 남이 들었을 때, 누가 들어도 좋은 연주여야 하는 거죠. 그런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수단은 누구든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 됐건, 취미 생활이 됐건 그 종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봉 씨에게는 색소폰이 그런 존재다. 색소폰은 행복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그의 삶에 자리 잡았다. 봉 씨는 인터뷰에서 “저에게 색소폰이라는 의미는 제 삶의 질을 높여주는 행복 전도사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라며 자신에게 색소폰이 어떤 의미인지 답했다. 봉 씨는 앞으로 색소폰을 좀 더 심층적으로 배워볼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현재 청소년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실버타운, 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봉사 연주를 해오고 있는 봉 씨지만,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통해서도 음악을 찾는 곳에 봉사 연주를 할 계획이다. “앞으로 색소폰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렇게 실력을 키워서 음악을 찾는 곳에 봉사 연주도 하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서며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 무대에 색소폰이 가장 적합한 악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은 삶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악기로 표현하면 그 음악이 마음을 다스려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 Interview
    2022-12-01
  •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은 지난 10월 8일 〈제8회 경기도 우수시장 박람회〉에서 열린 첫 번째 색소폰 앙상블 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가져간 첫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토요일은 밤이 좋아〉를 하나의 하모니로 연주하며 심사위원과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이미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는 이들은 각자가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감사하다고….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의 합주 연습이 있던 날, 그들을 만나 경연대회 우승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하모니란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은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다. 이흥원 단원은 “결과물을 냈을 때 거기에서 오는 희열도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크게 와닿는다”며 그 과정들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대답했다. 또한 “살다 보면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입장도 달라 불협화음이 날 수도 있는데, 앙상블을 하면서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고 무대에 서는 즐거움이 더욱 생겼다”며 팀 이름처럼 하모니를 이뤄가는 과정에 지금의 단원들이 함께 있어 즐겁다고 덧붙였다. 또한 앙상블에 입단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냐는 기자의 질문에 황성열 단원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앙상블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면 좋겠다”라며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의 생각을 반영하기도 했다. 재밌어서 나가는 경연대회, 우승 비결은 따로 있다? 이번 양평시 용문에서 있었던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의 무대를 살펴보면 자리 구도부터 간격까지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대에 들어가는 순서, 서는 자세, 인사 방법, 색소폰에서 입을 떼는 타이밍 등 경연대회를 위한 공연 외의 것들도 세심하게 살폈다고 한다. 반면, 이번 경연대회에서 연주한 〈토요일은 밤이 좋아〉같은 경우는 무대에 오르기 까지 단 세 번밖에 연습을 할 수 없었다고. 물론 일전에 타 대회를 위해 기본적으로 연습해놓은 부분들이 있지만, 이번 경연대회를 위해서는 무대에 오른 게 네 번 째 연주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결에는 반복된 훈련과 벌금 제도가 있었다며 김진배 지휘자가 덧붙였다. “저희에게는 반복된 훈련과 벌금 제도가 있습니다. (벌금을) 한 번도 걷은 적은 없지만 눈에 안보이게 쌓여있어요. 틀린 사람은 엄포를 줘서 집중하게 하는 거죠(웃음). 앞 얘기는 농담이고요, 음악이라는 건 사실 앞에서 이끌어가는 지휘자의 손짓 하나에 피아노도 될 수 있고 안단테, 칸타빌레도 될 수 있고 포르테도 될 수 있어요. 강약을 만드는 게 지휘자의 손이고 지휘봉이거든요. 정확한 비트로 우리 단원들한테 신호를 주고 단원들은 집중력 있게 저를 쳐다보고…, 무엇보다 반복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만의 특별한 점을 묻는 질문에 단원들은 김진배 지휘자와 함께한다는 점을 꼽았다. 김영이 단원은 “김진배 지휘자님은 음의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능력을 누구에게나 길러주는 특별함이 있다”며 소프라노부터 바리톤까지 폭넓은 음역대를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답했다. 김진배 지휘자는 이천하모니색소폰앙상블의 음악 감독 겸 지휘자로 대회 당일에도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로 장내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앙상블 연습이 있던 인터뷰 당일에도 진지한 모습으로 단원들의 소리를 다듬어 나갔는데, 러시아 그네신 음악원 석사, 강릉시립교향악단 오보에 상임수석 역임, 이천시 교향악단 상임 지휘 및 음악 감독 등으로 이력 또한 화려하다.
    • Interview
    2022-11-01
  • 색소포니스트 네이슨 전
    1990년대는 아날로그 매체의 최전성기 시절이자 디지털의 태동기로 1980년대부터 이어진 아날로그 문화가 파급력의 절정에 달했던 시대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김건모, 신승훈 등의 아티스트가 등장하며 새로운 시대의 스타로 거듭났고 그 이후부터는 서태지의 영향을 받은 H.O.T.를 필두로 한 1세대 아이돌 음악의 홍수가 시작되었다. 그때가 추억이 된 지금의 3·40대에게 90년대의 음악은 타임머신처럼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매개체이자 기억으로 남았는데, 색소포니스트 네이슨 전은 편안한 감성으로 그때의 음악을 들려주며 자신만의 색깔을 그려나가고 있다. 네이슨 전은 서울장신대학교 교회음악과 작곡을 전공하고 이후 백석 콘서바토리 실용음악과로 편입하여 색소폰 전공으로 졸업했다. 어린 시절부터 플롯을 연주하며 음악가의 길을 걷겠노라 다짐한 그는 노래를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껴 작곡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 음악에 치중 된 클래식 작곡의 길이 자신과 맞지 않다 느껴 이후 색소폰 전공으로 편입해 지금까지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는 호주에 거주하며 파티가 활성화 된 현지 문화에 따라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동시에 ‘NJ 뮤직’ 대표로 교육 회사를 운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호주 같은 경우는 파티 문화가 일상적이라 연주도 주로 파티에서 많이 합니다. 대부분의 파티 특히 웨딩 파티 같은 경우는 DJ를 많이 섭외하는데, DJ만으로는 아쉬울 때 거기에 색소폰을 추가해서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팝 음악이나 일렉트로닉 같은 음악에 제가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는 거죠. 교육 활동으로는 제가 ‘NJ 뮤직’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호주는 한국처럼 음악 학원과 같은 개념이 없다 보니 방과후 특별활동처럼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잠이 올 정도로 편한 음악, 유튜브 채널 [네이슨 TV] 평소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밤에 들었을 때 눈물을 찔끔 흘릴 수 있는 감성 발라드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차분하면서도 편안한 매력을 가진 연주자 네이슨 전과 어울리는 대답이었다. 네이슨 전은 현재 유튜브 채널[네이슨 TV]를 운영하며 한국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특히 90년대 감성의 편안한 음악들을 들려주는 연주뿐만 아니라 현재는 잠시 중단된 상태이지만 신청곡을 받아 즉흥으로 연주하는 라이브 방송도 곧 다시 재개할 예정이다. “저는 들었을 때 잠이 올 정도로 편한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 감정을 최대한 잘 전달할 수 있게 연주하는 편이고 또 들었을 때 편안한 곡으로 많이 선곡하는 편입니다. [네이슨 TV]에도 주로 그런 음악들이 많고, 제가 아무래도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음악을 즐겨들었기 때문에 그때의 감성적인 음악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간단한 장비 리뷰 영상을 올리기도 하고요, 그밖에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지 2년 정도 되었는데요. 올해 초부터 쉬고 있기는 하지만 전에는 매주 한두번씩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곡을 하기도 하고 신청곡을 받아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노래들을 즉흥적으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곡을 연주한다는 건 하나의 스토리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 연주자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대에는 연주, 편곡, 퍼포먼스 등 다양한데, 특히 색소폰 연주에 있어서는 악기 세팅에 따라 소리와 음색을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어, 더더욱 연주자만의 개성이 두드러진다. 그런 부분에서 네이슨 전의 연주는 그만의 스타일로 다양한 느낌을 통일감 있게 전한다. 이러한 점은 색소폰 세팅, 편곡, 음악적 스토리텔링 전반에 있어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진 연주자의 특성이 기반된 것으로 보인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애드리브를 넣더라도 최대한 원곡의 감성과 멜로디 혹은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그래서 곡을 커버하기 전에 원곡을 많이 들어봐요. 그러고 나서 원곡의 감성과 원곡이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제가 마음·생각으로 느끼고 난 후에 커버곡 녹음을 합니다. 저는 한 곡을 연주한다는 건 하나의 스토리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연주하는 게 아니라 기승전결을 넣어 곡의 분위기와 진행에 따른 감정 변화들을 주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색소폰 세팅은 특별하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음색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감성적인 음악에는 부드럽게 연주하려고 노력하고요. 빠른 곡이나 댄스곡 같은 류의 음악들은 좀 더 파워풀하고 세게 연주하려고 합니다. 그런 느낌적인 것들을 많이 바꾸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한 것과 다른 장르의 앨범 선보일 것” 네이슨 전은 디지털 싱글 1집 〈Miracle〉, 2집 〈Nostalgia〉, 3집 〈Reminisce, Wind, Hello〉에 이어 새로운 개인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추구하던 감성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음악적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아무래도 연주자이다 보니 앨범 녹음이라든지 개인 앨범 발표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욕심도 많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제 개인 싱글 앨범을 냈던 게 벌써 일 년이 지났거든요. 그래서 또 새로운 앨범으로 곡을 녹음하고 앨범을 내서 들려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제가 감성적인 음악과 느린 발라드풍의 편안한 곡 위주의 앨범들을 많이 냈어요. 그런데 이번에 새롭게 보여드릴 앨범은 뭔가 리드미컬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한 것과는 좀 다른 장르의 곡을 작업을 해서 여러분들에게 소개시켜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네이슨이 이런 음악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앨범 작업은 아직 준비 단계에 있지만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만나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채널에 보면 여러 가지 커버 영상들이 있기도 하고요, 원하시면 여러 뮤직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제 앨범을 찾아서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제가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 밴드가 있거든요. 디 엉클(The Uncle)이라고. 그 앨범도 찾아서 들을 수 있습니다. 추천 드리고 싶은 곡이 있다면 디 엉클의 〈Home〉이라는 곡이 있고요. 제 앨범도 뭔가 하나를 빼놓기 어려울 만큼 다 좋은데, 그 중에서도 감성적인 음악을 추천하자면 〈Nostalgia〉라는 제 디지털 싱글 2집으로 소프라노로 연주했던 곡이에요. 제가 호주에 거주하다 보니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해 직접 작곡하고 연주했던 곡인데, 한번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호주에 거주하고 있고,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유튜브 밖에 없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 같은데요. 호주에서 활동하는 한국 연주자이지만 한국에 계신 여러 아마추어 연주자 분들과 색소폰 시장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 드리기 위해 열심히 연주하고 노력하는 연주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다른 분들에게 소개 많이 해주세요(웃음).”
    • Interview
    2022-11-01
  • 색소포니스트 박정훈
    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2016 제4회 CBS 전국 청소년 실용음악 콩쿠르〉 악기 부문 1등, 〈2021 제4회 엘프 색소폰 콘테스트〉 대상, 〈JungHun Park Concert With Funk U〉, 〈경기도 하남시 무지개 콘서트〉, Funk U 밴드 세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온 박정훈 색소포니스트가 〈월간색소폰〉과 만났다. 색소포니스트 워렌 힐처럼 자신만의 편곡으로 독보적 장르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그는 스탠더드 재즈와 대중가요의 거리를 좁힐 미래 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색소폰 시작 박정훈은 프로 색소포니스트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처음 색소폰을 시작했다. 어린 그에게 색소폰은 숙명으로 다가왔으나 시작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께서 색소폰을 권유하셔서 저를 데려다 연습을 시키셨어요. 교본을 보면서 하나씩 똑바로 안 하면 혼나면서 배웠다는데, 그렇게 한 달 정도 배우다 울면서 그만두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웃음).” 이후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박정훈은 색소폰을 다시 시작해보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권유에 2년 만에 색소폰을 들었다. “제가 어린 시절 너무 무서워했던 탓인지 그때부터는 아버지께서 교본보다 연주곡 위주로 편하게 접근하도록 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는 예술고등학교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죠.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일은 내 직업” 박정훈은 시험을 준비할 때보다 시험에 붙었다는 문자를 받고 오히려 걱정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음악을 시작한 자신이 진심으로 간절하게 음악을 원하는 친구들과 비교될 것만 같아 걱정됐던 것. “당시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에 한두 시간씩 부담 없이 연습하던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학교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 약 두세 달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을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런데 막상 학교 들어가 보니 꼭 제 생각 같지만은 않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극소수였죠(웃음).” 학교생활을 열심히 한 결과로 박정훈은 서울예술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스무 살이 되니 성인으로서 제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색소폰을 연주하는 일은 나의 직업이다’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스탠더드 재즈와 가요는 밀접한 관계” 서울예술대학교의 실용음악을 전공으로 입학해 일반적으로 배우는 스탠더드 재즈는 가요로 점철된 한국 색소폰 시장과는 너무나도 정반대의 것이었다. 이러한 간극 속에서 박정훈은 배운 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키워나갔다. “국내 색소폰 시장의 모든 것을 제가 다 파악한 것은 아니겠지만 국내에서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가요 시장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대부분 스탠더드 재즈를 가르쳐주고 또 그걸 해서 전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국내 색소폰 시장과는 반대되는 분위기이니까요. 그럼에도 스탠더드 재즈 연주를 할 줄 아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요즘은 가요에 스탠더드 재즈의 맛을 살짝 가미를 해주는 게 유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반대이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밀접한 관계이기도 합니다.” “20대, 새로운 장르 만들어나갈 주역 될 것” “세월이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장르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요 연주에 재즈가 접목되는 요즘 같은 시대가 자연스럽게 온 것처럼 또 새로운 장르가 나타날 거고 그걸 제가 해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 재즈를 접목시킨 가요의 유행이 단 한 사람만의 영향은 아니겠지만, 제가 봤을 때는 소수의 선생님들이 먼저 끌어가셨고 소수의 연주자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흐름이 있는 시장에서 같은 스타일로 연주하기에는 기존 스타일로 연주하는 훌륭한 연주자들이 너무나 많고 또 애지간해서 그만큼 인정받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그래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가면 그러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기준에서 분류했을 때 50대, 60대, 70대 선생님들이 1세대, 30대, 40대가 2세대라면 3세대인 저희 20대가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할 세상의 주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장르에 대한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워렌 힐 영향으로 찾은 전환점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가 있냐는 질문에 박정훈은 주저 없이 워렌 힐이라고 말했다. 처음 워렌 힐의 곡을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당장 카피하기에 이르렀고, 훗날에는 그처럼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주하고 편곡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중학생 때 아버지를 통해 워렌 힐이라는 연주자의 〈Hey Jude〉를 듣게 됐어요. 처음 듣자마자 색소폰 톤에서 압도가 됐고 ‘이 사람처럼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곡의 진행이 기승전결, 솔로 구간 등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1년 동안 그 곡에 빠져서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에 그 사람이 나오는 모든 영상과 연주들을 찾아 듣고 엘프 반주기에 없는 곡들도 카피해서 연주해보기도 했고요. 지금도 워렌 힐처럼 연주할 수 있고, 편곡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어떤 곡을 들어도 이거는 박정훈이 편곡한 곡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저만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에너지 있는 연주’ 하는 사람” 박정훈은 어떤 연주를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 ‘에너지 있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라 답했다. 젊은 연주자의 당연한 면모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에겐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제 나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에너지 있는 연주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이 에너지를 줄이라고 그러시는데 쉽게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연주라는 것은 연주자마다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멜로디만 연주하는 연주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멜로디를 얼마나 예쁘고 깊이 있게 연주하냐는 연주자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곡의 중간중간에 나오는 간주나 멜로디 후주 같은 부분에서 애드리브를 곡과 어울리게 접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그렇게 연주하고 있습니다.” “공연으로 보여드리는 연주자 될 것” 박정훈은 현재 네이버 밴드와 유튜브 ‘박정훈’S 올댓색소폰‘ 라이브 생방송을 통해서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현재는 라이브 방송만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나갈 예정이다. 훗날에는 국내에서 인정해주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모아 큰 행사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박정훈은 답했다. “레슨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저는 ‘현장에서 보여드리고 싶은 연주자’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 연주는 관객이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실내 무대보다는 큰 공연장이나 야외무대에서 들었을 때 관객이 더 만족감을 느끼고 감동받는 것 같습니다. 저도 현장에서 연주를 하다 보면 평소와 다른 연주가 나오기도 하고 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연주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공연으로 보여드리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또 제가 23년 11월 중으로 서울 강동구에 박정훈’s 올댓색소폰 스튜디오를 오픈합니다. 개인레슨, 영상 촬영과 녹음도 멋지게 준비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저와 같은 연주자들과 색소폰 시장을 위해 힘써주시는 대표 기업 〈월간색소폰〉과 ㈜엘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Interview
    2022-10-01
  • 25년 만에 재회한 ‘서울재즈쿼텟’
    1990년대 초중반에 한국 재즈의 중흥기를 연 '서울 재즈 쿼텟' 원년 멤버들이 25년 만에 뭉쳤다. 지난 6월 작가 남무성이 운영하는 재즈 카페 가우초에서의 소규모 클럽 공연으로 재회를 가진 이들은 8월 26일 마포아트센터 공연이 전석 매진되며 새로운 출발 신호탄을 날렸다. 재즈팬들의 성원으로 오는 21일에는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앙코르 공연을 가질 예정이며,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과 음악에 대해 그들을 만나 이야기해보았다. 영등포에 위치한 ‘김희현의 드럼스쿨’에 네 명의 주인공들이 인터뷰를 위해 모였다. 오랜 시간 각자 따로 했던 시간이 25년이나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같이 활동해온 것처럼 퍽 자연스러웠다. 서울재즈쿼텟은 1990년대 초중반 젊은 재즈 뮤지션들이 퓨전재즈, 팝재즈 등 다양한 레퍼토리와 화려한 연주력을 뽐내던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실력파 밴드였다. 시대를 풍미한 색소포니스트 이정식(61) 외에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이자 〈2003 대한민국 연예대상〉 연주상을 수상한 김희현(70), 1980년대 한국 모던재즈의 선구자인 양준호(58), 많은 음악 학도의 교재인 〈재즈 베이스 교본〉의 장응규(68)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수장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당시에 우리가 처음 모였을 때는 20대였죠. 희현 형님은 이미 고수의 반열에 올라계셨고 응규 형님도 희현 형님과 같이 KBS에서 20년 넘게 계셨죠. 준호는 군대 가기도 전에 우리랑 만나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거고요. 그렇게 만나 활동하면서 재즈 부흥기가 찾아오니 다들 바빠지는 거예요. 그때는 재즈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다 잘 됐으니까.” 서울재즈쿼텟이 활발한 활동을 했던 시기는 1990년대, 한국에서 유례없던 재즈의 바람이 불 때였다. 각종 방송이나 대중매체에서는 재즈 음악이 배경으로 흘렀으며, TV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1994)〉에서 큰 인기를 끈 배우 차인표의 색소폰 소리는 당시 많은 소녀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들은 한국 재즈의 중흥기를 이끈 대표 밴드로 당시 해외에서 들어오는 유명 재즈곡을 그대로 카피하는 국내 재즈 밴드들과는 달리 새로운 음악에 대해 도전적이었다. “그때 시기가 6·25 끝나고 대중들이 팝송을 먼저 즐기다 더 자유스럽고 자유분방한 음악을 찾았는데 그게 재즈와 록 음악이었어요. 재즈 붐이 있어나면서 마니아 층도 생성되기 시작했던 시기였어요(김희현). 당시에 서울재즈쿼텟만의 색깔이 있었죠. 그때는 재즈 밴드도 잘 없었지만 창작곡을 만들고, 기존에 있던 곡을 재해석하여 연주하는 팀은 우리밖에 없었어요. 시대적으로도 운 때가 잘 맞은 것도 있죠. 또 그때는 모르고 그냥 열심히만 했어요.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까 아 우리가 큰 징검다리 역할을 한 거구나 싶죠(이정식).” 재즈 부흥기를 맞은 이후 각자 활동이 바빠지면서 그들의 쿼텟 활동은 1997년에 멈췄다. 이후 그들이 다시 모인 건 작가 남무성이 운영하는 재즈 카페 가우초에서의 소규모 클럽 공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남무성 씨한테 연락이 왔어요. 클럽에서 공연을 해줄 수 있냐 묻더라고요. “밴드 모아서 한번 해볼게” 흔쾌히 대답하고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서울재즈쿼텟 원년 멤버를 다시 소환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큰형님부터 전화를 돌렸죠. 아니나 다를까 다들 오케이 해서 모이게 됐죠. 저도 마찬가지지만 사실 모두 근질근질했던 거죠(웃음).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제대로 연주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또 예전에 같이하며 누렸던 영광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하면 멋진 결과물이 있겠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거죠(이정식). 전화 오기 전에는 재즈라는 장르는 내 인생에서 끝난 줄 알았어요(웃음). 그냥 듣고 만족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런 전화를 받은 거예요. 그냥 조그맣게 클럽에서 한번 할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공연이 너무나 성황리에 끝나고, 사람들이 성원해주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니까 정말 감사했죠. 그동안 안에 잠자고 있던 재즈가 다시 꽃이 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김희현).” 클럽 공연을 성황으로 마치며 이들은 25년이라는 서로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다 같이 연주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다. 처음에는 서로 삐거덕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이 그간의 공백을 메울 좋은 기름칠이 됐다. “여행지에서 연주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확실하게 설정했어요. 한국적인 재즈 그러니까 K-재즈를 한 번 만들어 보자는 게 취지였죠. 우리의 소리와 얼을 재즈로 만들어 우리만의 색깔을 내보자고요(이정식). 옛날에는 진짜 모험적인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또 그 시대에는 그런 모험 음악을 사람들이 돈을 내고 들어줬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희한해요. 그래서 안 해봤던 음악, 새로운 형태의 음악 그런 것들을 추구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은 많이 변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이전에는 방향을 월드 뮤직에서 찾으려고 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우리나라 전통 음악에서 찾겠다는 거죠. 아직도 개척해야할 게 많이 있는 것 같고 또 지난 여행에서도 많은 의견의 일치도 보고 일단 우리가 서울재즈쿼텟 산조부터 만들어 보자고 얘기했는데 얼마나 어떻게 진행될지는 조금 두고 봐야겠죠(장응규). 우연히 하와이에 이주한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여서 기념하는 축제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안숙선 선생님하고 88 서울 올림픽 폐막식 엔딩곡으로 유명한 〈뱃노래〉라는 판소리를 드럼으로 반주를 하러 갔었죠. 연주하는데, 처음에는 중머리 장단으로 가다가 리듬 변화를 해요. 박자가 뭔가 흐트러진 것 같으면서, 안 맞은 것 같은데 또 딱 맞아떨어지니까 드라마틱한 무언가가 나오는 거예요. 연주 끝나고 대기실에서 외국인들이 저한테 오더니 아까 그거 악보 채보 좀 해줄 수 있냐며 엄지를 치켜 올리는데, 어깨도 좀 으쓱해지고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죠. “아, 이거구나. 이걸 좀 연구해 봐야겠다.” 근데 이게 혼자서 안 되겠더라고요. 앙상블을 같이 하면 좋은데 서로가 바쁘다 보니 마음만 있지 만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근데 이번에 우연한 기회로 한국적인 뿌리를 두고 우리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팀 방향을 가지게 돼서 정말 아우님들한테 고맙고 감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사 같아 보이네요(김희현).” 서울재즈쿼텟은 앞으로의 공연에서 국악과 재즈를 접목시킨 곡들을 한두 곡씩 선보일 예정이며, 다가오는 21일 공연 외에도 연말까지 꾸준한 활동으로 새로운 발자취를 그려나갈 계획이다. “공연 활동 외에 우리의 레퍼토리를 위한 창작 작업을 별개로 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발자취를 보고 따라오는 후배 뮤지션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런 밴드가 되고 싶은 거죠(이정식). 앞으로 열심히 해야죠. 이정식 씨의 말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방향을 설정해줄 수 있는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정말 우리로써는 보람 있고 의미 깊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장응규). 저는 이 형님들이 제가 음악 처음 할 때 만난 분들이거든요. 지금 제 나이도 어딜 가든 제가 항상 큰형님이거든요?(웃음) 형님들이 에너지와 힘이 진짜 좋으세요. 그때나 지금이나 떨어지질 않으셨어요. 어떻게 저보다 체력이 더 좋으세요?(웃음) 어찌됐건 이분들 모시고 같이 해서 저는 너무나 좋고, 이 형님들이 건강하셔서 계속 오래 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음악도 만들고요(양준호). 서울재즈콰르텟은 우리가 이거 해서 돈을 벌자는 취지보다도 희현 형님 말씀대로 뭔가를 제시해 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선물하고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걸 계속하고 있구나’,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다시 뭔가를 해볼 수 있겠구나’하는 메시지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후배들에게는 ‘저 선배님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음악을 한다면 저는 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이정식).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범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잖아요(웃음). 우리가 후배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남기고 간다면 더없이 행복한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해야 될 사명이고요(김희현).” “이번에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하는데 끝나고 마지막에 앞으로 나와서 인사하잖아요. 인사하는데 관객이 하나 둘 다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더니 기립 박수를 치더라고요. 사람들의 그 환희에 찬 모습이…, 너무나 놀라고 감동이었죠. 원래 재즈 공연에는 그런 게 잘 없어요. 진짜 힘들어요. 특히 한국 재즈 연주인들 공연하는데 그렇게 기립 박수 받기가 쉽지 않거든요(이정식).” 재결성 후 두 번째로 가진 공연은 티켓 전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25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을 뚫고 모인 재즈 어밴져스의 소식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것. 지난 과거의 향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90년대 재즈 선구자들에 대한 격려와 기대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그냥 서울재즈쿼텟의 음악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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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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