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05(금)
 


한국 6,70년대에 색소폰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의 풍경은 어땠을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이켜보면 빛바랜 듯 서글픈 그 시절에 대한 감상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열정이었고, 꿈이었고, 사랑이었기에 가슴 아픈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전쟁과 해방을 겪으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로 인해 피어난 미8군에서의 한국 대중가요 전성기는 우리 음악의 뿌리이자 우리 음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최종수(76) 색소포니스트는 인천고등학교 밴드부에서 1학년에 알토색소폰을 처음 불었고, 2학년에 테너색소폰을 불었다. 그 당시 대학교에서 색소폰을 알려주는 곳은 없었다. 음악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클라리넷을 연주해야 하는데, 클라리넷을 익히지 못했다.

“흑백 TV속에서 봤던 이봉조 선생님의 영향으로 대학진학 대신 색소폰 연주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196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연주자로 활동하기 위해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색소폰 음악학원을 다녔습니다. 다양한 악기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실용음악학원이었습니다. 저의 첫 색소폰 악기는 인천에서 구입한 미국브랜드 올드의 테너색소폰으로 부모님께서 대학교 입학금 대신 사주셨죠. 학원에서 몇 개월 익힌 후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외인부대에서 팝송 연주자로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 악기는 활동하는 클럽에 두고 다녔는데, 6개월 활동했는데 악기를 도둑맞게 됩니다. 부모님께 다시 악기를 구매해달라고 말하기 죄송한 마음에 6개월의 연주생활을 접고, 군악대에 입대합니다. 2군 사령부에서 활동했습니다. 군악대 빅밴드에서 테너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했는데, 대장님이 저의 테너색소폰 연주를 좋아하셨어요. 다양한 국군의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대구에 위치한 K2 비행장에 있는 미8군 클럽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군복무 시절 1968년 1월 21일에 북한 무장간첩이 청와대를 기습한 일명 '김신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있던 군수지원 목적인 십자성부대의 군악대에 지원해서 1년 근무했습니다. 제대 후 인천에 위치한 올림푸스 호텔의 나이트클럽에서 캄보밴드로 1년 정도 활동하고 상경하게 됩니다. 캄보밴드는 4~5명의 연주자가 활동하는 밴드로 소그룹 밴드로 그 당시 클럽은 12명 정도의 연주자가 활동하는 빅밴드 한 팀과 캄보밴드 1~2 팀이 활동했습니다. 저는 솔리스트로 저의 소리를 내고 싶어서 캄보밴드를 선호했습니다. 이봉조 선생님의 동년배와 같이 캄보밴드에서 활동했는데, 선배의 소개로 서울 무교동의 빅밴드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패티김 밴드

1974년 최종수 선생님은 패티김 밴드의 테너색소폰 연주자 자리가 생겨서 5년 정도 활동하게 된다. “손청균 드럼 연주자가 리더로 강위권 피아노 연주자, 김종환 기타 연주자, 윤정남 베이스 연주자와 저로 총 5명이 한 팀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패티김은 미군부대 출연자 중 최고 등급인 더블A로 가장 많은 돈을 받으며 활동했습니다. 패티김 밴드는 패티김이 미국에서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거주하거나 다른 공연이 없을 때는 극동호텔, 조선호텔 갤럭시와 투머로우 클럽과 국제호텔 블루룸 나이트 클럽 등에서 연주활동을 했습니다.

패티김 밴드 활동을 그만두고, 최정환 색소포니스트 소개로 김희갑 악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시절은 지인 소개로 악단에 입단했습니다. 안건마 테너색소폰 연주자이자 작곡가가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그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후에 트럼본 이상민 연주자와 함께 캄보밴드를 만들어서 서울 시청 뒤에 위치한 뉴서울호텔 클럽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보컬시대

1970년 후반이 되면서 클럽문화가 바뀐다. 연주음악에서 보컬음악으로 바뀌면서 팝송위주에서 빠른 템포음악으로 바뀐다. 그 시기에 검은나비, 10 파이브 등 유명 보컬 팀이 많이 생긴다. “제가 운영하던 밴드도 트렌드를 반영해서 보컬 한 명을 추가했습니다. 보컬이 없으면 연주자가 직접 노래를 했습니다. 주로 리듬악기인 기타나 베이스 연주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으며, 그 당시 그것을 반보컬이라고 불렀습니다.”

캄보밴드는 4개의 리듬악기(기타, 베이스, 드럼과 피아노(건반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와 1개의 멜로디악기(색소폰, 클라리넷)와 보컬 한 명이 팀을 이뤘다. 멜로디악기는 코드를 읽고, 애드립도 할 수 있어야 해서 신입보다는 경험이 있는 연주자를 선호했다.

기획사

최종수 선생님은 1980년대 이성일 사장이 운영하는 아시아 기획사의 연주자로 활동한다. 주로 호텔과 유명 가수 연주활동을 기획사를 통해 활동했다.


“당시 호텔에서 팝송을 연주하고 불렀습니다. 영어가 가능한 필리핀 연주팀이 기획사를 통해 활동했습니다. 아시아기획을 통해 조영남 콘서트와 1992년 5월 연형무 북한총리가 방한했을 때 하얏트호텔에서 연주하고, 신라호텔 로비에서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트리오로 활동했습니다. 박용호 피아노 연주자, 사성일 베이스 연주자와 함께 활동했습니다. 로비에서 오후 6시부터 초저녁까지 연주하고, 오후 8시가 되면 신라호텔 지하에 있는 아미가에서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신라호텔 로비에서 연주하던 시절 김종필 전 국무총리이자 국회의원이 중식당에 가기 전에 제가 연주하는 2곡을 꼭 듣고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고급음악

1990년대 대다수의 호텔에서 화려한 음악을 하는 디스코 클럽을 운영했다.

“저는 보컬 없이 조용한 음악을 연주하는 국제호텔 블루룸, 아미가호텔, 코리안호텔과 서울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재즈바 문라이트에서 13년 동안 고정연주자로 활동했습니다.

이인표 기타 연주자가 악단장으로 저를 포함해서 6명의 연주자가 밴드를 만들어서 카튼 클럽에서 2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카튼클럽 인근에 정영남 사장이 운영하는 투머로우클럽에서 최성준 테너색소폰 연주자가 활동했습니다. 최성준 연주자가 한번 놀러오라고 했고, 제가 방문해서 연주를 했는데 정영남 사장이 제 연주를 듣고 섭외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클럽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의리

“저는 고급음악을 연주하는 알토르클럽에서 연주제안을 받게 됩니다. 정영남 사장님이 운영하는 샤토 클럽과 비슷한 느낌으로 연주제안을 받습니다. 샤토클럽은 가수대신 트럼펫 연주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선배 트럼펫 연주자를 포함해서 5명으로 새 팀을 만들어서 활동하게 됩니다. 새 팀으로 몇 달 연주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트럼펫 연주자를 제외하고 연주해달라고 했어요. 저는 선배 트럼펫 연주자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마침 팔레스호텔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던 최인규 사장님이 팔레스 호텔을 접고, 다른 곳에서 매장을 오픈하니 활동해달라고 제안해주셨어요. 그곳에서 새로 만든 팀과 함께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 입사

최종수 색소포니스트는 1992년, 45세라는 나이에 방송국에 입사하게 된다. 우연한 기회였다.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카바레에서 이틀 동안 엑스트라 연주자로 연주했는데, 그 연주자가 방송국 악단에서 활동하는 분이셨죠. 피아노 연주자가 플룻을 연주할 수 있냐고 물으면서 방송국에서 연주해보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패티김 악단에서 활동할 때 플룻을 익혔고, 방송국에 이력서를 냈고 오디션을 통과해서 테너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KBS 라디오에 소속돼 김인배 악단과 김광석 악단에서 활동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연주자를 채용할 때 1960년에서 1970년까지 오디션보다는 지인 소개로 입사했습니다. 방송국과 라디오로 나눠져 있던 악단이 방송국 악단으로 통합되면서 라디오 악단의 연주자는 대부분 퇴사했습니다. 당시 라디오 악단에서 활동했던 오동원 알토색소폰 연주자와 저만 방송국 악단에 합류하게 됩니다. KBS 전국노래자랑은 라디오 소속 악단이 연주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등 방송국에서 활동하면서 국내와 하와이, 모스크바, 오스트리아 등 해외에서 연주했습니다.”


최종수 선생님은 방송국 악단에서 테너색소폰 연주자로 솔로파트를 연주하면서 관객의 호응을 한 몸에 받았던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특히, 해외 방송공연에서 〈머나먼 고향〉을 테너색소폰 연주자로 간주를 솔로로 연주할 때 현장에서 많은 분들의 호응은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아내의 내조

최종수 선생님은 17년 동안 근무하던 방송국에서 2008년 62세에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방송국은 주3회 출근했고, 그외의 다른 날에는 밤무대 등 다양한 무대에서 연주했다. 재즈바 문라이트에서 65세까지 연주활동을 했다. 문라이트에서 연주하면서 강남구청에서 운영하는 12인조 강남실버밴드 활동도 병행했다. 문라이트는 허우열 피아노 연주자, 국성환 드럼 연주자, 사성일 베이스 연주자와 함께 13년을 활동했다.

“저는 60대까지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항상 선배와 후배를 챙겼습니다. 잘 나갈 때 잘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실천했습니다. 경조사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쉬고 있는 선, 후배들은 제가 활동하는 클럽에 초대해서 술 한 잔을 대접하고 차비도 항상 손에 쥐어서 보냈습니다. 제가 60대까지 연주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매니저로 활동해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내는 방송국에서 야간업소 등 어디든 함께했습니다. 문라이트는 새벽까지 연주했는데, 무더운 여름과 추운 한 겨울에 차에서 9시간 이상 저를 기다려줬습니다. 그래서 선후배의 경조사와 술을 마셔도 안전하게 귀가하면서 오랫동안 연주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일찍 귀가하면 새벽3시로 4시간 이상 잔 날이 많지 않았습니다.”


느낌 전달이 관건

최종수 색소포니스트는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연주하는 것은 바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색소폰 연주를 화려한 꾸밈보다는 적당한 선을 지키면서 정직하게 연주하고자 합니다. 연주는 연주자가 곡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달라집니다. 악보 밑에 가사와 같이 노래처럼 표현하고자 합니다. 특히 텅잉을 중요시 여깁니다. 가사에 텅잉이 있어도 청중에게 들키지 않게 연주합니다. 하지만 느낌은 전달합니다. 세련되고 멋지게 나만의 멋으로 전달하고자 늘 노력하고 연습합니다.

색소폰을 연습하면 소리도 다듬어지지만 사람의 심성도 다듬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연주할 때 음색에 혼이 들어갑니다. 음악을 하면서 마음이 정화됩니다.”

그는 일산에서 색소폰 연습실을 운영하다 파주로 옮겨서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가 있는 바로 전날 경기도 용인에서 연주요청을 받고, 연주를 다녀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아내가 매니저로 동행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인터뷰 하는 동안 그의 아내가 옆자리를 지켜주는 모습을 보니 행복한 노후가 부러웠다.


최종수 Profile

1974년 패티김 밴드(드럼이 마스터 손청균, 베이스 윤정남, 기타 김종환, 피아노 강위권과 활동)

도쿄호텔에서 김희갑 악단에서 활동

1992년 kbs 라디오 김인배 악단에서 활동

1994년 kbs 방송국에서 활동

- 최종수 캄보밴드로 코리아나호텔, 신라호텔, 문라이트 등에서 활동

 

(월간색소폰)박현주 기자= msp@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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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최종수 색소포니스트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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