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26(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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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초입에 들어선 7월의 어느 날, 1박2일 간의 일정으로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장애를 안고 있지만 음악으로 이겨낸 고등학생, 색소폰을 사랑하다 못해 리가처 제작까지 하게 된 자동세차장 사장님, 그리고 음악과 함께 인생 2막을 연 왕년의 ‘일잘러(일을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까지. 색소폰과 더불어 사는 이들의 일상을 엿보며, 음악을 향한 진심 앞에서 기술에 대한 잣대는 무의미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는 사람들. 소소하지만 강렬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수더분한 인상, 투박한 손. 한눈에 보기에도 기술자의 느낌이 물씬 나는 김준석(63)씨는 광주에서 자동세차장을 운영한다. 전남공업중학교에 들어가 대학에서 기계공학과를 전공했고, 대기업에서 직장생활도 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몇 해 전까지 공업사를 운영하는 등 평생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자신 있었다. 기술자로 외길을 걸어온 그가 색소폰에 푹 빠진 것은 10년 전. 우연히 찾아온 손님이 알고 보니 색소폰 프로 연주자였다. “김 선생님, 색소폰 한 번 배워볼래요?”라는 ‘사부님’의 말에 김씨는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저는 콩나물 머리(음표)도 볼 줄 몰라요”라며 거절했지만, 그냥 즐기면 된다는 말에 색소폰을 잡아봤다는 김씨. 그렇게 색소폰과 사랑에 빠져 이제는 ‘리가처’까지 제작하게 됐다는 김씨를 7월 8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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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찾아온 ‘소리’

사장과 고객으로 시작된 사부님과의 인연은 지독한 연습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사부님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2년 동안 기초 연습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남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는 연습이었지만, 김씨에게는 마냥 재밌는 일이었다. 덕분에 ‘듣는 귀’도 트였다. 흔들림 없고, 매끄러운, 그러면서도 듣기에 편안한, 이른바 ‘좋은 소리’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소리의 매개체인 색소폰 그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 마침, 당시 김씨가 속한 동호회에서 ‘리가처가 소리에 영향을 미치는가, 미치지 않는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이때 김씨의 기술자 본능이 발휘됐다. “막연하게 추측하지 말고 내가 직접 실험해보자”라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1년, 꼬박 리가처 제작에 매달렸다. 홈의 개수를 바꿔보고, 나사의 모양을 고쳐보며 소리의 변화에 집중했다고 한다. 리가처의 모양이 바뀔 때마다 더 굵은 소리, 더 맑은 소리 등 매번 다양한 소리가 났다. ‘리가처도 소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이 생긴 김씨는 소리에 일가견이 있는 유명 연주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내 검토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그냥 괜찮은 정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기가 생긴 김씨는 “몇 번을 다시 만들던 간에 반드시 인정받고 말겠다”는 결심으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고, 끝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는 답변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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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선입견 벗고 최고를 향해

김씨는 “리가처를 만든 지 벌써 5년쯤 됐다. 그동안 1,000개 이상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다른 제품을 모방하는 대신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연구에 의존하며 지금의 모델을 완성했다. 이 모델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워 점차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다. 현재 동호회 위주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지만, 제품의 품질을 누구보다 자신하기에 더 많은 고객이 찾아줄 것이라고 김씨는 확신한다. 100% 수작업인 만큼 고객의 요구에 따라 맞춤형 리가처 제작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김씨는 “색소포니스트 ‘제프리’님이 제 제품을 써 보고 크게 만족하며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며 이후 구입 문의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고객 만족도도 높았다고 말했다. 

 

“가끔 상처받을 때도 있어요. 제품을 써 보기도 전에 단지 해외의 고가 브랜드 제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입견을 갖는 사람을 만날 때죠. 그래도 저는 개의치 않고, 제 스스로가 장인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좋은 리가처’를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에게 좋은 리가처란 무엇일까. “소리가 편안하게 흘러나오도록 돕는 리가처”라고 김씨는 말했다. 거듭된 연구 끝에 일부 리가처는 소리의 저항을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쳐, 연주를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안하게 음악하자’는 그의 색소폰 철학과도 닿아 있다. 어차피 색소폰과 평생 함께할 테니 연주가 잘 안 되면 좀 쉬었다가, 잘 되면 힘껏 내달렸다가, 그렇게 삶이라는 여정을 걸어가듯 색소폰을 즐기겠다는 것. 앞으로도 리가처 연구를 계속할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더 힘내봐야죠”라며 웃는 김씨의 미소가 유독 편안해 보였다.

  

K-TOP 리가처 구입 문의

대표 김준석 010-3602-2636

 

리가처에 만족하지 못한 분이나 더 다양한 음색을 원하는 분은 마우스피스와 함께 연락해 주시면 만족하실 때까지 제작해 드립니다.

 

글·사진 박은주 기자 msp@keri.or.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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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사람들②] 음표도 몰랐던 공업사 사장, 리가처 제작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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