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1(월)
 

 

윤여민(44) 박사는 2014년 12월 12일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박사논문 “The Sound of Saxophone from South Korea: A Performer’s Guide to Young Jo Lee’s Sori No.10 for alto saxophone”으로 한국인 최초로 색소폰 전공 박사학위(Doctor of Musical Arts)를 받았다. 당시 한국인으로 최초이며 최연소 나이로 발표한 색소폰 박사논문은 아직도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

 

2015년 귀국 후 경주대 조교수로 재직하다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음악전임교원으로 임용됐고 2019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인문예술학부 학부장을 맡아 교육과 행정을 맡아 일했고, 현재는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연주활동

 

윤여민 박사는 다양한 연주활동을 했다. 귀국 후 2016, 2018, 2021년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총 3회의 개인 독주회를 가졌다. “한국인 최초로 2012년 스코틀랜드에서 개최된 3년마다 열리는 세계색소폰총회에 매회 참석하며, 2018년 크로아티아에서 개최된 제 18회 세계색소폰총회에 초청받아 연주했습니다.

 

2017년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신시내티대학에서 저의 지도교수였던 Rick VanMatre를 초청해 학생들에게 재즈의 즉흥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2019년 한국과학영재학교 글로벌 문화의 날 행사에 LA City College의 Tina Raymond 교수를 초청해 함께 공연했고, 그밖에도 청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 한국뉴욕주립대학교 초청 독주회, 신시내티대학 동문음악회, 경주교향악단, 경주문화재단, 목포시립교향악단, 경주시립합창단, 부산의용소방대합창단, 제주서귀포관악단, 제주클라리넷앙상블, 유니버셜색소폰앙상블, 국립합창단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 권유로 기타 시작

 

윤여민 박사의 아버지께서 윤여민 박사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악기 하나 정도 다루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며 기타를 배워보라고 권했다. “아버지께서 통기타를 입학선물로 사주셨고, 기타학원도 등록해주셨어요. 학원에서 몇 달 배운 후,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습니다. 쉬운 가요를 시작해서 팝송도 연주하며 취미로 음악을 접했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음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TV광고에서 색소폰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기회가 되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그 당시는 악기이름도 몰랐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식 날, 브라스 밴드의 연주를 듣고 다음 날 주저 없이 브라스 밴드에 가입했습니다. 관악부에 가입한 첫 날, 저는 악기 이름을 몰라서 선배에게 다짜고짜 TV 광고에 나오는 길쭉하게 생긴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선배가 ‘아~ 케니 지(Kenny G)가 연주하는 색소폰!’이라고 말해줬고, 저는 그 날부터 색소폰을 시작했습니다.

 

1학년 첫 학기까지 부모님 몰래 색소폰을 했습니다. 색소폰이 너무 좋아서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집에 가면 부모님은 제가 공부하다 늦는 줄 아셨어요. 1학년 2학기 무렵, 하교 후 집에 오니 부모님께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으셨다며 앉아보라고 하셨어요. 부모님은 저에게 관악부 활동을 하는지 물었고, 저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이제 관악부 활동은 다 끝났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음악선생님께서 색소폰에 소질이 있다고 전공을 시켜보라고 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는 얼마 안돼서 색소폰을 사주고, 레슨도 받게 해 주셨습니다. 음악 선생님의 전화 한 통이 제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어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색소폰을 연주하고 음악을 가르치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과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늘 생각하고 노력합니다.”

 

두드려라, 꿈이 열릴 것이다

 

윤여민 박사가 한국예술종합학교(약칭, 한예종)에 입학하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있었고, 집안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음악을 시작하고 경제적 상황이 늘 넉넉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제가 다닌 대학이 국립대학이라 학비가 저렴했습니다. 저는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색소폰을 지도하고, 식당에서 연주하고,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활동하는 등 주경야독하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음대학생회에서 부회장도 하고, 총장님 상도 받으며, 2, 3학년은 성적장학금과 4학년에 전액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저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한예종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다니면서 더 높은 꿈과 세계의 무대에 도전하고자 유학을 선택한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미국 남가주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약칭 USC)에 다니는 선배와 전화를 했고, 선배의 도움으로 USC 대학의 제임스 로터 교수님께 오디션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제 연주를 듣고 교수님께서 유학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장학금이 필요했고, 교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믿기지 않게 몇 달 후 합격통지서와 전액장학금서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유학을 떠날 수 있었고, 2년 동안 USC에서 많은 연주 경험과 음악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임스 로터 교수님께서 한국인 중에 색소폰박사는 없다면서 저에게 박사과정을 권유하셨어요. 사실 저는 자신이 없었는데 전공교수님과 다른 두 분의 교수님께서 추천서를 잘 써주신 덕분에 다섯 곳의 대학에서 입학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음악과 예술분야로는 최고의 대학인 신시내티대학교를 입학을 하였고 〈The Sound of Saxophone from South Korea:A Performer’s Guide to Young Jo Lee’s Sori No.10 for alto saxophone〉 박사논문으로 2014년 12월 12일에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소통할 수 있는 연주자

 

윤여민 박사는 귀국 후 세 번의 독주회와 여러 협연 등 다양한 장르를 연주했다. 클래식에서 색소폰 독주곡 외 전자음악, 합창음악, 오케스트라, 한국현대음악 등 시대와 스타일을 넘어선 연주를 했다. 독주회에서 후반부에 재즈 스탠다드를 비롯해 자신이 작곡한 재즈곡을 연주했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 기독교 음악)을 비롯해서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며 음악의 경계를 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는 어떤 음악을 하거나 어떤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2015년 2월 말에 귀국해 3월부터 2021년 8월까지 경주대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저에게 매우 보람되고 감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어 지역 축제 및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이때 학생들과 많이 소통할 수 있었고, 대학생 이외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재능기부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재능 기부로 제가 배운 것과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추어 색소폰 동호회 〈색소폰을 알려 달라〉 20명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배움에 열정이 있는 그분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만들어 강의했고, 제주관악제에서 연주도 했습니다. 색소폰 동호회 대부분은 비전공자이지만, 그분들과 함께 하는 수업과 연주활동은 매우 보람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코로나 직전까지 지금도 5회에 걸친 정기연주회를 하였고 코로나가 끝나면 정기연주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윤여민 박사는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색소폰으로 만나고 연주하며, 음악에는 벽이 없고, 하나로 소통이 가능하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며,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서로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색소폰과의 특별한 사연

 

윤여민 박사는 2005년 첫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많은 연주를 했는데, 영국의 작곡가 Thomas Ades의 〈오페라 Powder Her Face〉를 USC 오페라와 LA 필하모닉과 합동 공연도 기억에 남고 USC 오케스트라에서 라벨의 볼레로 연주 등이 생각난다고 했다.

 

“신시내티 다운타운 OTR 교회에서 어려운 흑인 가정을 위해 연주하고 봉사하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좋아하는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는 노부야 스가와, 아론 보르캄프, 클라우드 드랑글, 프레드릭 헴키, 유진 로소, 도날드 신타와가 있습니다. 특히, 대학시절 노부야 스가와, 아론 보르캄프 선생님의 마스터 클래스를 받았습니다. 학창시절이라 기술적인 것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그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하며 좋아하며 존경하게 됐습니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는 폴 데스몬드, 찰리 파커, 스탄 개츠, 소니 스팃 등이 있습니다.

 

예술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스승이신 김대우 선생님과 미국의 지도 교수님 제임스 번티, 릭 벤마이어 교수님이 있습니다. 김대우 선생님께 오랜 기간 사사 받았습니다. 한예종에서 개인레슨, 색소폰 콰르텟, 색소폰 앙상블 등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충분한 연습 (200% 이상 연습)

 

윤여민 박사는 연주하면서 “무대에서 연주를 하면서 음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음악이 나를 따라오고, 관객에게 흘러가도록 연주합니다. 무대에서 이것저것 신경 쓸 부분이 있지만, 결국 연습한 만큼 무대에서 표현됩니다. 연습이 실력이고, 자신감입니다. 제가 성공적으로 연주하면 관객도 느낍니다.”

 

윤여민 박사님께 자신만의 연습방법에 대해 묻자, “저는 다양한 패턴으로 스케일을 연습합니다. 아티큘레이션을 슬러, 스타카토, 테누토 등을 쓰고, 음의 패턴도 Prime, Retrograde, Inversion, Retrograde-Inversion 등 다양하게 패턴화해서 연습하고, Indiana Bebop Scale, Blues Scale, Pentatonic Scale 등도 연습합니다. 이것만 연습해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죠.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스케일을 한 시간정도 연습하고, 곡을 연습하는데 연습방법도 크게 세 가지로 전체 연습(템포, 텅잉과 패턴 변화), 특정 부분 연습(어려운 부분, 느린 부분, 암기부분 등), 믹스 연습(음원, 녹음, 반주) 등 음악을 만들기 위해 기술적인 부분과 예술적인 부분을 고민하면서 연습합니다.”

 

색소폰은 쉬운 악기

 

윤여민 박사는 “색소폰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악기입니다. 특히 클래식 색소폰 곡은 연주도 어렵고, 처음 듣는 분들에게 쉽지 않습니다. 클래식 색소폰의 현대 음악을 듣기 보다는 편안하고 이해하기 쉽게 색소폰으로 편곡된 클래식 곡을 듣는다면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아졸라의 탱고 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한다면, 아주 매력적이고 공감이 되며 편안하게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악기에 비해 접근이 용이하고, 듣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악기로 악기를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기 좋은 악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색소폰은 대중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죠. 그래서 더 사랑받고 쉽게 접하는데 아무래도 색소폰 소리자체가 호소력이 있고, 표현력이 강한 악기이라 감정이 잘 표현되고 대중과 소통이 잘 되는 악기입니다.

 

세계색소폰총회

 

윤여민 박사는 2012년부터 세계색소폰총회(World Saxophone Congress)에 매회 참석하고 있다. 세계색소폰총회는 3년마다 개최되는데, 다음 개최국은 일본이다. 윤여민 박사는 세계색소폰총회에서 많은 연주자들을 만나고 네트워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네트워킹하고, 어떤 소중한 경험을 하셨는지 기자가 묻자, 윤여민 교수는 “세 가지로 말씀드릴게요. 제가 초청받아 연주회를 하며 관객과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 후에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명함, SNS, 연락처(이메일)등을 주고받고 음악적인 이야기 뿐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합니다. 세계색소폰총회에는 악기전람회가 있습니다. 세계 수많은 색소폰 관련 악기회사가 참여하는데 그 시간에도 다양한 색소폰 가족들과 만나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교수님의 소개로 다른 여러 분들을 만나 저녁식사도 같이 하고, 다양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추천하고 싶은 색소폰 여행 명소

 

윤여민 박사님께 색소폰 여행 명소를 추천받고자 묻자, “미국 아이오와에 〈Tenor Madness〉 색소폰 악기점이 있습니다. Mr. Randy라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매장인데, 자신의 가정집에 붙어있는 가게로 한국에서 찾지 못한 빈티지 악기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 많은 셀마 마크 식스가 이곳을 거쳐 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도 두어 번 매장을 방문했고, 사장님과는 신시내티와 북미색소폰컨퍼런스에서 여러 번 만났습니다. 예전에 만났을 때 많은 한국 분들에게 빈티지 악기를 판매했다고 들었습니다. 방문 계획이 있으시다면, 사전에 확인하고 방문해보길 바랍니다. 시골이라 여행보다는 빈티지 색소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윤여민 박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연주 기회가 많지 않다며,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며 답한다고 했다. “나는 언제까지 연주를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나의 음악은 단지 잘 연주하는 기술적인 소리인가? 아니면 내 삶과 주변을 담아내는 예술인가?”, “나는 누구인가?”, “단지 최초 색소폰 박사인가?”

 

그는 “많은 중년의 음악가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학교라는 직장에 얽매이고 수업을 하고 보직을 맡아 일을 하다보면, 내가 음악가인지 예술가인지 그냥 선생님인지 직장인인지 등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수업준비를 하다 학생들에게 보여줄 5분 정도의 영화 〈비긴어게인〉의 영상을 찾았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지금 이순간이 진주이며 바로 음악이 나의 진주이고,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진주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저의 고민은 진주로 변했습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학생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진주이고, 음악을 연습하고 연주하는 순간도 진주이며, 교육자로 살아가는 순간도 진주이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이 모두 진주이고, 감사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순간을 진주라고 생각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음악가, 예술가, 교육자로서 혹은 최초 색소폰 박사로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합니다.”

 

 

활동 계획

 

윤여민 박사는 올해 10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향후 계획에 대해 박사님은 많은 계획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코로나가 종식되면 수원 화성 성벽에서 10,000명의 색소폰 연주자들과 함께 성벽을 이루고 색소폰을 연주하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날짜를 정해서 전국의 색소폰 연주자들을 모아 수원 성벽 북문, 동문, 남문, 서장대, 서문까지 연결된 성벽 위에 포지션을 정해 각 지역별 혹은 단체별 혹은 개인별로 위치를 잡고 정해진 시간에(만약 오후 3시라고 한다면, 정각 오후 3시) 똑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입니다. 템포는 미리 정해서 약속하고, 3~4곡정도, 예를 들어 애국가도 가능하고 가요를 쉽게 편곡하는 등 연주곡은 사전에 배포해서 연습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음악은 시간예술이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편곡을 한다면 단선율이 아닌 화음으로도 연주가 가능합니다.”

 

윤여민 박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일에 감사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며, “가르치는 세상과 소통하는 연주자, 교육자,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말했다.

 

(월간색소폰)박현주 기자= msp@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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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최연소 색소폰 전공 박사학위를 받은 윤여민 색소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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