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전체기사보기

  • 색소폰과 함께 숲속에서 펼쳐지는 한여름 밤의 콘서트 '2018 평창색소폰페스티벌'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8월 10일과 11일 이틀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있는 ‘음악 치유의 숲’ 야외무대에서 ‘꿈 같은 한여름 밤의 콘서트’와 ‘평화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뮤즈 人 포레스트>와 <2018 평창색소폰페스티벌> 콘서트가 열렸다. ‘음악 치유의 숲’ 야외무대구불구불한 산길을 1.3km정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음악 치유의 숲’ 야외무대는 공연과는 별개로 또 다른 특별함을 선사했다. 상쾌한 숲 공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공연을 더욱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 산 길목에 드문드문 안내판이 걸려있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열광의 무대11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2018 평창색소폰페스티벌>에서는 대한민국의 유명 색소포니스트들이 수준 높은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울림과 감동을 선물하였다. 저녁 7시 30분부터 열린 본무대에서는 색소포니스트 ‘김원용’과 가수 ‘양수경’이 함께 무대에 올랐고 그 밖에 가수 ‘마야’, ‘김국찬’이 출연하여 숲을 울리는 가창력과 능숙한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평화의 하모니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음악 치유의 숲을 찾은 색소폰 동호인들과 관객, 출연 뮤지션들이 다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며 평화의 하모니를 이루는 장관을 연출하였는데, 1,000여명의 색소폰 연주자가 일제히 같은 곡을 연주하는 기록으로 기네스북 등재에도 도전하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 Review
    2018-09-01
  • 색소폰과 함께 숲속에서 펼쳐지는 한여름 밤의 콘서트 '2018 평창색소폰페스티벌'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8월 10일과 11일 이틀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있는 ‘음악 치유의 숲’ 야외무대에서 ‘꿈 같은 한여름 밤의 콘서트’와 ‘평화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뮤즈 人 포레스트>와 <2018 평창색소폰페스티벌> 콘서트가 열렸다. ‘음악 치유의 숲’ 야외무대구불구불한 산길을 1.3km정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음악 치유의 숲’ 야외무대는 공연과는 별개로 또 다른 특별함을 선사했다. 상쾌한 숲 공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공연을 더욱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 산 길목에 드문드문 안내판이 걸려있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열광의 무대11일 오후 2시부터 진행된 <2018 평창색소폰페스티벌>에서는 대한민국의 유명 색소포니스트들이 수준 높은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울림과 감동을 선물하였다. 저녁 7시 30분부터 열린 본무대에서는 색소포니스트 ‘김원용’과 가수 ‘양수경’이 함께 무대에 올랐고 그 밖에 가수 ‘마야’, ‘김국찬’이 출연하여 숲을 울리는 가창력과 능숙한 무대매너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평화의 하모니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음악 치유의 숲을 찾은 색소폰 동호인들과 관객, 출연 뮤지션들이 다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며 평화의 하모니를 이루는 장관을 연출하였는데, 1,000여명의 색소폰 연주자가 일제히 같은 곡을 연주하는 기록으로 기네스북 등재에도 도전하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기억될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 Review
    2018-09-01
  • [JAZZ CLUB]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청정 재즈공간 'CAFE JAZZDA'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재즈다의 무대가 음악 창작소라는 공간을 자처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카페 ‘재즈다’(JAZZDA)는 음악만을 연구하며 창작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트럼펫터 ‘김예중’이 만든 라이브 재즈카페이다. 트럼펫을 분 지 올해로 31년째 접어든 베테랑이다 보니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과 젊은 연주자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존중하여 무대에 담아주려 애쓰는 사장님의 상냥한 마음씨가 엿보인다. 이날 재즈다(JAZZDA)에서는 무려 세 팀의 공연이 있었다. 관악 11인조 재즈 앙상블팀인 <이창민 스몰앙상블>과 현재 초등학교 3학년으로 싱글 앨범 <다경몽>을 발표하고 천재 트럼펫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우리나라 최연소 jazz 뮤지션 ‘곽다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 ‘이한샘’, 베이시스트 ‘우희창’, 드러머 ‘김기원’이 결성한 재즈트리오 의 연주가 연이어졌다. 이 세 팀 모두 앞으로 한국 재즈 음악을 이끌어나갈 젊은 신예들로 절대로 얕볼 수 없는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재즈다(JAZZDA)의 특징 중 하나는 여느 다른 재즈바들과는 다르게 술을 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술과 담배는 정신과 건강을 해치니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익하다고 생각하며 순수한 재즈의 정신은 맨 정신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미래의 교육적인 차원으로 봤을 때도 이렇게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밝은 희망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장님의 신념이 지금의 재즈다(JAZZDA)를 만들었다. 대신 재즈다(JAZZDA)에서는 가지각색의 커피와 논알코올 맥주, 논알코올 칵테일 그리고 차를 즐길 수가 있는데, 막상 이 조화를 겪어 본다면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재즈다(JAZZDA)에 들어선 순간 눈에 띄는 점은 내부의 벽면에 걸린 그림들이었다. 심지어 입구 벽면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귀가 잘린 자화상>이 그려져 있어 사장님께 물어보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년 5개월 된 동생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와 함께 유럽의 정취를 내뿜으며 재즈 음악과의 오묘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독특한 문화공간이 아닐 수 없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9-01
  • [JAZZ CLUB]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청정 재즈공간 'CAFE JAZZDA'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재즈다의 무대가 음악 창작소라는 공간을 자처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카페 ‘재즈다’(JAZZDA)는 음악만을 연구하며 창작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트럼펫터 ‘김예중’이 만든 라이브 재즈카페이다. 트럼펫을 분 지 올해로 31년째 접어든 베테랑이다 보니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과 젊은 연주자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존중하여 무대에 담아주려 애쓰는 사장님의 상냥한 마음씨가 엿보인다. 이날 재즈다(JAZZDA)에서는 무려 세 팀의 공연이 있었다. 관악 11인조 재즈 앙상블팀인 <이창민 스몰앙상블>과 현재 초등학교 3학년으로 싱글 앨범 <다경몽>을 발표하고 천재 트럼펫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은 우리나라 최연소 jazz 뮤지션 ‘곽다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 ‘이한샘’, 베이시스트 ‘우희창’, 드러머 ‘김기원’이 결성한 재즈트리오 의 연주가 연이어졌다. 이 세 팀 모두 앞으로 한국 재즈 음악을 이끌어나갈 젊은 신예들로 절대로 얕볼 수 없는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재즈다(JAZZDA)의 특징 중 하나는 여느 다른 재즈바들과는 다르게 술을 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술과 담배는 정신과 건강을 해치니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무익하다고 생각하며 순수한 재즈의 정신은 맨 정신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미래의 교육적인 차원으로 봤을 때도 이렇게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밝은 희망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장님의 신념이 지금의 재즈다(JAZZDA)를 만들었다. 대신 재즈다(JAZZDA)에서는 가지각색의 커피와 논알코올 맥주, 논알코올 칵테일 그리고 차를 즐길 수가 있는데, 막상 이 조화를 겪어 본다면 빠져들게 될 것이다. 재즈다(JAZZDA)에 들어선 순간 눈에 띄는 점은 내부의 벽면에 걸린 그림들이었다. 심지어 입구 벽면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귀가 잘린 자화상>이 그려져 있어 사장님께 물어보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년 5개월 된 동생의 작품들이라고 한다.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와 함께 유럽의 정취를 내뿜으며 재즈 음악과의 오묘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독특한 문화공간이 아닐 수 없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9-01
  • 재즈의 선율을 빌려 색소폰으로 말하는 '색소포니스트 구민상'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재즈 색소폰 잘 부는 사람 누가 있어?” 이 질문의 대답에 “구민상”이라는 이름이 들려온다. 색소포니스트 구민상은 현재의 재즈씬에서 유서가 깊다.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이하 ANU 표기)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후 현재 백석대학교 콘서바토리 실용음악과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고, 관객과 소통하는 연주자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자신을 성찰하는 부지런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색소폰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하루 중 말을 하는 시간보다 색소폰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기에 이제는 제 목소리보다 더 편한 의미전달의 도구죠.” 라고 말하는 소통하는 연주자 구민상을 만났다. 색소폰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고등학생 때 메탈 음악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남학생들에게 메탈음악이라는 것은 로망 그 자체였다. 어머니를 졸라 낙원상가로 가서 기타를 사서 독학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 음악에 발을 들여놓은 첫걸음이었다. 이후 밴드부에 들어가 이런저런 악기를 만지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색소폰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색소폰을 잡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흘러온 것이다.재즈 색소폰을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우리 때에는 재즈라는 이름조차도 생소했었다. 재즈를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아카데미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연습하고자 구하는 교재들도 클래식을 다루는 교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클래식 쪽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생각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찰리 파커의 음반을 듣게 되었는데, 당시의 내게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장난치는 것 내지는 음을 틀리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색소폰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것들을 신기하게 생각하다가 점점 더 궁금증이 생겨 조금씩 그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재즈라는 말도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빠져들게 되었다.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찰리 파커의 음악이 난해하게 다가오진 않았었나.당시에는 ‘꼭 전공해야지ʼ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 악기라는 것을 편안하게 하기 시작했고, 그냥 하다 보니 찰리 파커를 알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찰리 파커의 음악이 좋은 음악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고 들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내게는 신기한 음악이었고, 궁금증이 생겨 더 파고들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음악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음대 진학을 준비하였나. 그때는 재즈과라는 학과가 없었다. 실용음악과는 한 두 개 정도 있었는데, 알아보면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학을 가기에 앞서 군대를 다녀와야 했었기에 군악대 시험에 지원하여 합격 후 군악대에 가게 된 것이다.군대에서의 생활은 어땠었나.군악대에서는 연습했던 기억밖에 안 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었던 시대도 아니었고, 약간 과장을 보태 말하면 턴테이블 시대였기 때문에 연습 교재 같은 것은 정말 구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그런 교재를 갖고 있다 하면 그것이 색소폰교재가 아닐지라도 그것으로 연습할 정도로 뭐든 닥치는 대로 연습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습관으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잠을 많이 자지 않는 것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 시절까지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만 자면서 연습했다. 그런 부분에서 군악대가 일조를 많이 했고, 또한 지금의 주춧돌이 되었다고도 생각한다.호주에서 유학했다 들었다. 처음 호주로 건너갔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었나.유학가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내 스스로가 정말 연주를 잘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유학길에 임했었다. 그러나 막상 나가보니 내 수준은 정말 유치원 수준에 불과했다. 어학연수 기간을 좀 갖다가 시험을 쳐서 실기는 합격했으나 IELTS(국제영어능력시험) 시험점수가 부족하여 교수님에게 2, 3개월 정도 유예를 구해 그 기간 동안 준비를 해 시험을 쳤던 기억이 난다. 1학년 첫 수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찰리 파커와 같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친구들의 연주 실력에 ‘내가 정말 여기서 할 수 있을까?ʼ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 이후 연습을 거듭하며 조금씩 수업을 따라잡았다.재즈과라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실용음악학과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점이 있나.예전에 만들어져 그런지 몰라도 실용음악과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알고 있다. 해외는 클래식 아니면 재즈과만 존재한다. 내가 공부하러 호주에 갔을 당시만 해도 한국의 실용음악학과 커리큘럼과 재즈과 커리큘럼이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한 다른 많은 교수 및 강사진들이 해외에서 공부하고 들어오다 보니 대체로 본인들이 배웠던 커리큘럼 대로 수업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흡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호주에서 공부하면서 호주인들은 재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나.무엇보다 재즈를 편하게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자라다 보니 어디선가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면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고, 혹은 결혼식에서 신부와 아버지가 스윙 음악에 춤을 추기도 하고, 그런 것을 보면 재즈는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 그네 문화인 것처럼 삶에 녹아 있었던 것 같다.호주에서 공부하며 있었던 일화가 있나.ANU 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하면 빅밴드 오디션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 빅밴드 오디션에 합격하여 학과 시간 이후에 연습하며 공연준비를 하고 명절이나 방학시즌에 버스를 타고 호주의 먼 지방으로 투어를 가거나 재즈페스티벌에서 연주했었던 기억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본인이 생각하는 재즈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재즈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자유로움이지 않나.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내가 어떤 표현을 하더라도 그것이 다 통용된다는 자유로움이다. 대신 한 가지 덧붙인다면 아무래도 그 자유로움 안에는 책임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가끔 어떤 친구들은 재즈는 자유로워도 된다 생각해서 무조건적인 자유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곤 한데, 실제로는 내가 자유스러워질 수 있는 만큼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한다. 그 전제만 가지고 간다면 재즈만큼 매력적인 음악이 없는 것 같다. 재즈를 표현하는 데에 색소폰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재즈를 얘기할 때 색소폰을 빼고 얘기할 수 없지 않나. 만약 누군가 내게 “재즈를 말할 때 재즈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해보아라”라고 얘기한다면 아마도 색소폰이라는 단어가 재즈를 대신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 혹은 그런 역할을 하고있진 않겠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호흡으로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는 ‘색소폰이 목소리보다 그 표현 범위가 ​더 넓다ʼ라는 생각도 든다.자신만의 음악 철학이 있나.“어떤 순간에나 어떤 곳에서든 즐기면서 연주하자”이다. 일전에 Y 악기사 브랜드 데몬 디렉터를 몇 년 정도 했었다. 그쪽에서 악기를 홍보하는 공간들은 주로 불특정 다수들이 모이는 곳, 예를 들면 코엑스 광장 혹은 백화점의 넓은 공간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연주해서 Y 악기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했던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잘 몰랐던 부분도 있어서 무대에 올라가는 일이 즐겁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일적인 마인드로만 무대에 올랐더니 관객들도 잘 모이지도 않고, 모이더라도 연주가 끝났을 때의 호응도가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 ‘환경이 이러니까’, ‘공연장 혹은 시스템이 안 좋으니까’ 등의 여러 가지 핑곗거리를 만들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점을 나에게서 찾기 시작하면서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이것을 하기 싫어하는구나, 그렇다면 다음 무대에선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 해 보자ʼ라고 마음먹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곡으로, 그러나 진심으로 즐기면서 연주해 보았다. 관객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50명이 모였으면 그 다음에는 100명이 모이고, 이전에 박수 소리가 작았었다면 다음에는 박수소리가 훨씬 더 커지고… 곡이 끝났을 때는 관객들의 표정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그런 변화를 한 번 느끼고 나서는 열명이 있는 재즈클럽에서 공연하던, 천 명이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하던 항상 나 스스로가 먼저 그 음악을 즐기려고 노력한다.많은 팀에서 연주 활동을 했는데 몇 팀 소개한다면.유학 초반에 선후배끼리 만나서 결성되었던 ‘모던스팟’이라는 팀은 가벼운 퓨전 음악을 주로 했던 팀이었고, 주로 많이 활동했던 팀은 ‘구민상 스윙스텝’이라고 해서 좀 특이한 컨셉으로 만든 팀이다. 이 팀을 만들게 된 경위가 처음에 우연한 기회로 연주를 하러 갔는데 스윙 댄스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 서울 시내에 스윙 댄스만을 위해서 모여 스윙 댄스를 추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라이브 음악에 춤추는 것을 정말 좋아하신다. 그렇게 스윙 댄서들을 위해서 앨범을 내게 된 것이 스윙스텝 앨범이었다. 신나는 스윙 춤곡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금도 ‘스윙스텝’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빅밴드는 <서울재즈 빅밴드>라는 곳과 <코리아 재즈오케스트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 코리아 재즈오케스트라는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접은 상태다. 이토록 한 길만을 걷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관객들의 호응이다. 무대에서 한 시간 반, 두 시간 반 동안에 받은 관객들의 에너지가 몇 날 며칠을 연습하고 또 정진하게 만든다. 덧붙여 음악 생활이라는 게 아주 환상적이지만은 않을 때가 많은데, 연주자가 연주 중심으로 살다 보면 어떤 때에는 연주 기회가 적을 때도 있고,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들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어깨 토닥여주는 와이프와 음악을 할 수 있게 초반에 길을 잘 닦아 주셨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해서 혹은 내가 실력이 좋아서라는 말보다 결국은 관객과 가족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도 일각에선 재즈가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따라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보이나. 단순하게 대답한다면 ‘노출ʼ인 것 같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재즈 음악을 접하게 되면 그 음악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음악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재즈 음악의 노출이 적거나 거의 없게 되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재즈라고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비밥일 것이다. 비밥 이후의 어려운 음악들 혹은 음악 공부하는 친구들도 어려워할 정도의 난이도가 있는 그런 것들을 먼저 떠올린다는 거다. 재즈1세대 때부터라고 쳐도 그 당시도 마찬가지로 재즈 음악이 저변에 퍼졌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즈라는 것은 이제 조금씩 서서히 퍼져가고 있는 상태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듣는 사람들 입장에선 재즈가 어렵게 느껴지고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스컴 혹은 다양한 곳에서 재즈라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한 번 노출되고 두 번 노출되다보면, 지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재즈라는 음악이 어려운 음악이 아닌 편하고 일상적인 음악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20년 전부터 편지나 문자를 할 때에 ‘Saxoholic 민상ʼ이라는 꼬리말을 붙여 써오고 있다. (가끔 웃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고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다. 색소폰을 좋아해서 색소폰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단순히 ‘해보고 싶다’ 혹은 ‘무대 위에서 누군가 하는 걸 보니 멋져 보여 나도 해봐야겠다ʼ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만큼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많은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9-01
  • 재즈의 선율을 빌려 색소폰으로 말하는 '색소포니스트 구민상'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재즈 색소폰 잘 부는 사람 누가 있어?” 이 질문의 대답에 “구민상”이라는 이름이 들려온다. 색소포니스트 구민상은 현재의 재즈씬에서 유서가 깊다.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이하 ANU 표기)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후 현재 백석대학교 콘서바토리 실용음악과에 출강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고, 관객과 소통하는 연주자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자신을 성찰하는 부지런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색소폰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하루 중 말을 하는 시간보다 색소폰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기에 이제는 제 목소리보다 더 편한 의미전달의 도구죠.” 라고 말하는 소통하는 연주자 구민상을 만났다. 색소폰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고등학생 때 메탈 음악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남학생들에게 메탈음악이라는 것은 로망 그 자체였다. 어머니를 졸라 낙원상가로 가서 기타를 사서 독학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 음악에 발을 들여놓은 첫걸음이었다. 이후 밴드부에 들어가 이런저런 악기를 만지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색소폰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색소폰을 잡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흘러온 것이다.재즈 색소폰을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우리 때에는 재즈라는 이름조차도 생소했었다. 재즈를 전문적으로 가르쳐 주는 아카데미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연습하고자 구하는 교재들도 클래식을 다루는 교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클래식 쪽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생각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찰리 파커의 음반을 듣게 되었는데, 당시의 내게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장난치는 것 내지는 음을 틀리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떻게 색소폰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 것들을 신기하게 생각하다가 점점 더 궁금증이 생겨 조금씩 그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재즈라는 말도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 빠져들게 되었다.당시 고등학생이었는데, 찰리 파커의 음악이 난해하게 다가오진 않았었나.당시에는 ‘꼭 전공해야지ʼ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 악기라는 것을 편안하게 하기 시작했고, 그냥 하다 보니 찰리 파커를 알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찰리 파커의 음악이 좋은 음악인지 아닌지에 대해 알고 들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내게는 신기한 음악이었고, 궁금증이 생겨 더 파고들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음악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음대 진학을 준비하였나. 그때는 재즈과라는 학과가 없었다. 실용음악과는 한 두 개 정도 있었는데, 알아보면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유학을 가기에 앞서 군대를 다녀와야 했었기에 군악대 시험에 지원하여 합격 후 군악대에 가게 된 것이다.군대에서의 생활은 어땠었나.군악대에서는 연습했던 기억밖에 안 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었던 시대도 아니었고, 약간 과장을 보태 말하면 턴테이블 시대였기 때문에 연습 교재 같은 것은 정말 구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그런 교재를 갖고 있다 하면 그것이 색소폰교재가 아닐지라도 그것으로 연습할 정도로 뭐든 닥치는 대로 연습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습관으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가 잠을 많이 자지 않는 것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유학 시절까지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만 자면서 연습했다. 그런 부분에서 군악대가 일조를 많이 했고, 또한 지금의 주춧돌이 되었다고도 생각한다.호주에서 유학했다 들었다. 처음 호주로 건너갔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었나.유학가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내 스스로가 정말 연주를 잘하는 줄로 알았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유학길에 임했었다. 그러나 막상 나가보니 내 수준은 정말 유치원 수준에 불과했다. 어학연수 기간을 좀 갖다가 시험을 쳐서 실기는 합격했으나 IELTS(국제영어능력시험) 시험점수가 부족하여 교수님에게 2, 3개월 정도 유예를 구해 그 기간 동안 준비를 해 시험을 쳤던 기억이 난다. 1학년 첫 수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찰리 파커와 같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친구들의 연주 실력에 ‘내가 정말 여기서 할 수 있을까?ʼ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그 이후 연습을 거듭하며 조금씩 수업을 따라잡았다.재즈과라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실용음악학과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점이 있나.예전에 만들어져 그런지 몰라도 실용음악과라는 말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단어로 알고 있다. 해외는 클래식 아니면 재즈과만 존재한다. 내가 공부하러 호주에 갔을 당시만 해도 한국의 실용음악학과 커리큘럼과 재즈과 커리큘럼이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를 포함한 다른 많은 교수 및 강사진들이 해외에서 공부하고 들어오다 보니 대체로 본인들이 배웠던 커리큘럼 대로 수업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은 거의 흡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호주에서 공부하면서 호주인들은 재즈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하나.무엇보다 재즈를 편하게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자라다 보니 어디선가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면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고, 혹은 결혼식에서 신부와 아버지가 스윙 음악에 춤을 추기도 하고, 그런 것을 보면 재즈는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 그네 문화인 것처럼 삶에 녹아 있었던 것 같다.호주에서 공부하며 있었던 일화가 있나.ANU 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을 하면 빅밴드 오디션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 빅밴드 오디션에 합격하여 학과 시간 이후에 연습하며 공연준비를 하고 명절이나 방학시즌에 버스를 타고 호주의 먼 지방으로 투어를 가거나 재즈페스티벌에서 연주했었던 기억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본인이 생각하는 재즈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재즈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자유로움이지 않나.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내가 어떤 표현을 하더라도 그것이 다 통용된다는 자유로움이다. 대신 한 가지 덧붙인다면 아무래도 그 자유로움 안에는 책임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가끔 어떤 친구들은 재즈는 자유로워도 된다 생각해서 무조건적인 자유로만 생각하는 경우도 있곤 한데, 실제로는 내가 자유스러워질 수 있는 만큼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한다. 그 전제만 가지고 간다면 재즈만큼 매력적인 음악이 없는 것 같다. 재즈를 표현하는 데에 색소폰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나.재즈를 얘기할 때 색소폰을 빼고 얘기할 수 없지 않나. 만약 누군가 내게 “재즈를 말할 때 재즈라는 단어를 빼고 설명해보아라”라고 얘기한다면 아마도 색소폰이라는 단어가 재즈를 대신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있지 않을까 혹은 그런 역할을 하고있진 않겠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호흡으로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는 ‘색소폰이 목소리보다 그 표현 범위가 ​더 넓다ʼ라는 생각도 든다.자신만의 음악 철학이 있나.“어떤 순간에나 어떤 곳에서든 즐기면서 연주하자”이다. 일전에 Y 악기사 브랜드 데몬 디렉터를 몇 년 정도 했었다. 그쪽에서 악기를 홍보하는 공간들은 주로 불특정 다수들이 모이는 곳, 예를 들면 코엑스 광장 혹은 백화점의 넓은 공간 같은 곳이다. 그런 곳에 무대를 설치하고 연주해서 Y 악기 브랜드를 홍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했던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잘 몰랐던 부분도 있어서 무대에 올라가는 일이 즐겁지 않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일적인 마인드로만 무대에 올랐더니 관객들도 잘 모이지도 않고, 모이더라도 연주가 끝났을 때의 호응도가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 스스로 ‘환경이 이러니까’, ‘공연장 혹은 시스템이 안 좋으니까’ 등의 여러 가지 핑곗거리를 만들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점을 나에게서 찾기 시작하면서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내가 이것을 하기 싫어하는구나, 그렇다면 다음 무대에선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 해 보자ʼ라고 마음먹고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곡으로, 그러나 진심으로 즐기면서 연주해 보았다. 관객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50명이 모였으면 그 다음에는 100명이 모이고, 이전에 박수 소리가 작았었다면 다음에는 박수소리가 훨씬 더 커지고… 곡이 끝났을 때는 관객들의 표정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그런 변화를 한 번 느끼고 나서는 열명이 있는 재즈클럽에서 공연하던, 천 명이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하던 항상 나 스스로가 먼저 그 음악을 즐기려고 노력한다.많은 팀에서 연주 활동을 했는데 몇 팀 소개한다면.유학 초반에 선후배끼리 만나서 결성되었던 ‘모던스팟’이라는 팀은 가벼운 퓨전 음악을 주로 했던 팀이었고, 주로 많이 활동했던 팀은 ‘구민상 스윙스텝’이라고 해서 좀 특이한 컨셉으로 만든 팀이다. 이 팀을 만들게 된 경위가 처음에 우연한 기회로 연주를 하러 갔는데 스윙 댄스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 서울 시내에 스윙 댄스만을 위해서 모여 스윙 댄스를 추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라이브 음악에 춤추는 것을 정말 좋아하신다. 그렇게 스윙 댄서들을 위해서 앨범을 내게 된 것이 스윙스텝 앨범이었다. 신나는 스윙 춤곡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지금도 ‘스윙스텝’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빅밴드는 <서울재즈 빅밴드>라는 곳과 <코리아 재즈오케스트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 코리아 재즈오케스트라는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접은 상태다. 이토록 한 길만을 걷게 한 원동력이 무엇인가.관객들의 호응이다. 무대에서 한 시간 반, 두 시간 반 동안에 받은 관객들의 에너지가 몇 날 며칠을 연습하고 또 정진하게 만든다. 덧붙여 음악 생활이라는 게 아주 환상적이지만은 않을 때가 많은데, 연주자가 연주 중심으로 살다 보면 어떤 때에는 연주 기회가 적을 때도 있고,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들을 묵묵히 지켜봐 주고 어깨 토닥여주는 와이프와 음악을 할 수 있게 초반에 길을 잘 닦아 주셨던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해서 혹은 내가 실력이 좋아서라는 말보다 결국은 관객과 가족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도 일각에선 재즈가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에 따라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보이나. 단순하게 대답한다면 ‘노출ʼ인 것 같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재즈 음악을 접하게 되면 그 음악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음악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재즈 음악의 노출이 적거나 거의 없게 되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어느 정도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재즈라고 얘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비밥일 것이다. 비밥 이후의 어려운 음악들 혹은 음악 공부하는 친구들도 어려워할 정도의 난이도가 있는 그런 것들을 먼저 떠올린다는 거다. 재즈1세대 때부터라고 쳐도 그 당시도 마찬가지로 재즈 음악이 저변에 퍼졌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즈라는 것은 이제 조금씩 서서히 퍼져가고 있는 상태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듣는 사람들 입장에선 재즈가 어렵게 느껴지고 머리가 아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스컴 혹은 다양한 곳에서 재즈라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한 번 노출되고 두 번 노출되다보면, 지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재즈라는 음악이 어려운 음악이 아닌 편하고 일상적인 음악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20년 전부터 편지나 문자를 할 때에 ‘Saxoholic 민상ʼ이라는 꼬리말을 붙여 써오고 있다. (가끔 웃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고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다. 색소폰을 좋아해서 색소폰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단순히 ‘해보고 싶다’ 혹은 ‘무대 위에서 누군가 하는 걸 보니 멋져 보여 나도 해봐야겠다ʼ라는 막연한 생각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만큼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많은 발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9-01
  •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
    야탑동에 위치한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색소폰 연주자 이성만이 만든 지 올해로 8, 9년이 되어가는 이름난 동호회다. 3,40대 젊은 연령대부터 7, 80대 고연령층까지 두루두루 활발하게 활동하는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이 일대는 물론이고 서울 저 멀리에서 오는 사람들로 빈번하다. 회원 수 50명을 가까이 바라보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이성만 원장)동호회를 운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동호회를 운영하는 데에 나의 역할은 우리 회원님들이 즐겁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본다. 회원님들의 즐겁고 다채로운 경험을 위해서 동영상이나 연주회를 만들어 재미있는 상황들을 자꾸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즐거운 부담감이 있다.색소폰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레슨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항상 상주하면서 매일 레슨을 한다. 금요일에는 좀 특이하게 오전반을 만들어 오전에만 시간이 가능하신 분들을 모아서 연주회를 한다. 보통 우리가 음악회를 한다고 하면 저녁에 하지 않나. 저녁 시간대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오전 연주반을 만들었다. 오전연주회는 오전 11시에 모여 1시간 정도 하고 근처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또한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회원님들을 대상으로 격주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동영상 촬영을 하는 것이 동호회 운영에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많이 작용한다. 인터넷을 보면 많은 동호인들이 사진도 올리고 동영상도 올리고 하는데 사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몇 군데 정도밖에 없더라. 이전에 사진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 예쁜 사진, 정확한 동영상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편집기술을 익혀서 동영상을 예쁘게 편집한다거나 소리를 만드는 법을 배워서 우리 회원들이 연주하는 것을 깔끔한 음질로 녹음해 유튜브나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혹은 핸드폰으로 전송해드리면 회원님들이 간직하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하면 다들 좋아하신다.자료화가 굉장히 잘 돼 있을 것 같다.얼마 전에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수를 따져보니 1,300개 정도를 올렸더라. 회원님 중에 한 분은 자신의 동영상을 100개 넘게 갖고 계신 분도 있다. 그 정도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자료화하여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고 회원님들과도 잘 공유가 되는 편이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회원님들 또한 고마움을 많이 표현하신다.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녹음하고 동영상을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처음에는 틀리면 끊고 “어우 나 다시 갈게!”이러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틀려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그냥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한 점도 있는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도 관객이라고 생각해라. 우리가 앉아서 구경하고 듣고 있는 만큼 그만큼의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마이크 꽂고 뿌뿌 불어 보는 것도 자제를 시키는 편인데,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목을 가다듬지 않지 않나. 이제는 우리 회원님들도 앞에 몇 명이 앉아 있지 않더라도 무대라고 생각을 하고 관객에 대한 예의를 철저하게 지킨다.(올뮤직색소폰 최연장자 ‘한종희’ 회원)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평상시에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당시 70, 80년도였을 때 길호균 씨나 이봉조씨가 색소폰 연주하는 것을 보고 많이 좋아했었고, 소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직접적으로 색소폰을 만난 것은 일본에 살았던 동생과 서로 색소폰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생일선물로 색소폰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당시에는 하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주변에 한 두 명씩 색소폰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나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색소폰을 연주하며 어떤 것들을 느끼나?좋아하는 노래를 색소폰으로 연주할 수 있어 재미있고 보람을 느낀다. 또 올뮤직색소폰 동호회에서 연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고, 부가적으로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치매 예방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있다. 여가 활동으로는 최적인 것 같다.색소폰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고, 올뮤직동호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색소폰을 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처음부터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서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와서 연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향상음악회’에 참여하여 연주한다. 또 동호회 회장님이 특별히 만든 실버들 모임이 있어 그 실버 멤버들이 모여서 분기별로 야유​회를 나가기도 한다.연주회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매주 금요일 무대에서 연주하고, 녹화는 2주에 한 번씩 한다. 녹화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많이 떨렸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떨리는데다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나머지 손가락도 엄청 아팠었다. 그렇게 녹화한 것을 보면 부끄러운 부분, 고쳐야 하는 부분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그것이 피드백되어 실력증진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그렇게 잘 안 되다가 2년 정도 지나니 자연적으로 힘이 빠지고 호흡 조절도 좀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특별히 연습하고 있는 곡이나 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요즘은 새로 나온 곡 ‘소풍 같은 인생’ 등 여러 가지를 연습하는데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곡은 가수 ‘조용필’의 <친구여>이다.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가슴에 와 닿는게 많고 느낌이 남다르다. 같이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예전에 산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 하나둘씩 나보다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많이 생각난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먼저 간 경우가 있다. 보기에는 엄청 건강할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먼저 그렇게 가면 “참 아쉽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 올해로 여든 살이다. 팔순 잔치를 하게 되면 가족들을 위해 색소폰을 연주할 계획을 갖고있다. 곡명은 <동해>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해요> 이렇게 두 곡을 하고 싶다.(동호회장 ‘박준우’)동호회 회장을 맡게 된 사연이 있나?보시다시피 우리 동호회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다. 나와 띠동갑인 분들도 있고 일흔이 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이 형님들을 위해서 할 게 뭐가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동호회 회장을 맡았다.회원들끼리의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데?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야외로 나간다. 야외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연주도 하고 그런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편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다. 다만 우리 동호회가 사람이 많다 보니 어느 정도의 트러블은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잘 중재하는 것이 동호회 회장으로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말에는 여느 동호회와 다르지 않게 장소를 빌려 모두의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색소폰의 즐거움이 언제 느껴지나?처음에는 도레미의 도자도 몰랐었다. 내가 속한 모임에 있는 형님들 네댓 명이 색소폰을 하는데 그게 정말 좋아 보였다. 그래서 색소폰을 배우게 된 거다. 배운 지 1년 만에 악기를 들고 제주도에 여행까지 갔었다. 색소폰 부시는 분하고 3박 4일 동안 신나게 놀았다. 온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하니까 정말 좋더라. 지금은 그렇게 색소폰 분 지 6년차 정도 된 것 같다.밖에서 연주할 때 무섭거나 떨리진 않았나?밖에서 연주하는 건 무섭지가 않다. 이곳 앞에 서서 연주하는 게 최고로 무섭다. 우리가 서로의 실력을 다 알고 있어서인지 여기에만서면 자꾸 버벅거리는데 일단 나가면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나가서 무대에 서면 거기서는 신이 나는데 여기에 있는 오 센티미터짜리 무대에서는 덜덜덜 떨게 된다.(김종빈, 김명숙 회원 부부)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김종빈 회원) 탄천에 운동을 나갔다가 탄천에서 누군가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색소폰을 할 만한 가까운 곳이 어디에 있나 찾다가 우연히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 들르게 되어 그 날 바로 등록을 하고 악기를 구입하여 시작했다.(김명숙 회원) 남편이 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지켜보다 같이 하게 되었다. 옆에서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쳐 기본적인 음감이 있어서 즐겁게 색소폰을 배울 수있었던 것 같다.색소폰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나?(김종빈 회원) 나는 노력을 많이 하는 노력형이다. 지금 현재 같은 경우는 녹음기를 사서 연주할 때마다 꼭 녹음한다. 오늘 연주하며 녹음한 곡들을 매일 출퇴근하면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 또 녹음하는 식으로 계속 연습을 한다.(김명숙 회원) 남편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인터넷 강의 같은 것을 항상 찾아보고 그것을 바로 해보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연습실로 간다. 그런 모습에 나 또한 저절로 그렇게 연습하게 되는 것 같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꼭 와서 연습하려고 한다.<2015년 야마하 아마추어 색소폰대회> 금상을 받은 이력이 있던데?(김명숙 회원) 이성만 선생님의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만한 실력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만류하다가 선생님의 거듭된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가서 본의 아니게 금상을 타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상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지금은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악보도 외우고, 또 그것을 변형해서 악보를 직접 그리면서 연습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올뮤직색소폰동호회를 위한 이성만 원장의 ‘기록’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단지 색소폰의 소리나 음색이 아닌 그들의 추억과 존재의 향기를 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열정과 사랑으로 뭉친 이성만 원장 그리고 올뮤직색소폰동호회 회원 모두를 응원한다. 글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사진Ι이성만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9-01
  •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
    야탑동에 위치한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색소폰 연주자 이성만이 만든 지 올해로 8, 9년이 되어가는 이름난 동호회다. 3,40대 젊은 연령대부터 7, 80대 고연령층까지 두루두루 활발하게 활동하는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이 일대는 물론이고 서울 저 멀리에서 오는 사람들로 빈번하다. 회원 수 50명을 가까이 바라보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이성만 원장)동호회를 운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동호회를 운영하는 데에 나의 역할은 우리 회원님들이 즐겁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본다. 회원님들의 즐겁고 다채로운 경험을 위해서 동영상이나 연주회를 만들어 재미있는 상황들을 자꾸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즐거운 부담감이 있다.색소폰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레슨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항상 상주하면서 매일 레슨을 한다. 금요일에는 좀 특이하게 오전반을 만들어 오전에만 시간이 가능하신 분들을 모아서 연주회를 한다. 보통 우리가 음악회를 한다고 하면 저녁에 하지 않나. 저녁 시간대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오전 연주반을 만들었다. 오전연주회는 오전 11시에 모여 1시간 정도 하고 근처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또한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회원님들을 대상으로 격주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동영상 촬영을 하는 것이 동호회 운영에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많이 작용한다. 인터넷을 보면 많은 동호인들이 사진도 올리고 동영상도 올리고 하는데 사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몇 군데 정도밖에 없더라. 이전에 사진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 예쁜 사진, 정확한 동영상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편집기술을 익혀서 동영상을 예쁘게 편집한다거나 소리를 만드는 법을 배워서 우리 회원들이 연주하는 것을 깔끔한 음질로 녹음해 유튜브나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혹은 핸드폰으로 전송해드리면 회원님들이 간직하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하면 다들 좋아하신다.자료화가 굉장히 잘 돼 있을 것 같다.얼마 전에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수를 따져보니 1,300개 정도를 올렸더라. 회원님 중에 한 분은 자신의 동영상을 100개 넘게 갖고 계신 분도 있다. 그 정도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자료화하여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고 회원님들과도 잘 공유가 되는 편이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회원님들 또한 고마움을 많이 표현하신다.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녹음하고 동영상을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처음에는 틀리면 끊고 “어우 나 다시 갈게!”이러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틀려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그냥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한 점도 있는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도 관객이라고 생각해라. 우리가 앉아서 구경하고 듣고 있는 만큼 그만큼의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마이크 꽂고 뿌뿌 불어 보는 것도 자제를 시키는 편인데,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목을 가다듬지 않지 않나. 이제는 우리 회원님들도 앞에 몇 명이 앉아 있지 않더라도 무대라고 생각을 하고 관객에 대한 예의를 철저하게 지킨다.(올뮤직색소폰 최연장자 ‘한종희’ 회원)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평상시에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당시 70, 80년도였을 때 길호균 씨나 이봉조씨가 색소폰 연주하는 것을 보고 많이 좋아했었고, 소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직접적으로 색소폰을 만난 것은 일본에 살았던 동생과 서로 색소폰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생일선물로 색소폰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당시에는 하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주변에 한 두 명씩 색소폰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나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색소폰을 연주하며 어떤 것들을 느끼나?좋아하는 노래를 색소폰으로 연주할 수 있어 재미있고 보람을 느낀다. 또 올뮤직색소폰 동호회에서 연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고, 부가적으로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치매 예방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있다. 여가 활동으로는 최적인 것 같다.색소폰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고, 올뮤직동호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색소폰을 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처음부터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서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와서 연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향상음악회’에 참여하여 연주한다. 또 동호회 회장님이 특별히 만든 실버들 모임이 있어 그 실버 멤버들이 모여서 분기별로 야유​회를 나가기도 한다.연주회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매주 금요일 무대에서 연주하고, 녹화는 2주에 한 번씩 한다. 녹화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많이 떨렸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떨리는데다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나머지 손가락도 엄청 아팠었다. 그렇게 녹화한 것을 보면 부끄러운 부분, 고쳐야 하는 부분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그것이 피드백되어 실력증진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그렇게 잘 안 되다가 2년 정도 지나니 자연적으로 힘이 빠지고 호흡 조절도 좀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특별히 연습하고 있는 곡이나 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요즘은 새로 나온 곡 ‘소풍 같은 인생’ 등 여러 가지를 연습하는데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곡은 가수 ‘조용필’의 <친구여>이다.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가슴에 와 닿는게 많고 느낌이 남다르다. 같이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예전에 산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 하나둘씩 나보다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많이 생각난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먼저 간 경우가 있다. 보기에는 엄청 건강할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먼저 그렇게 가면 “참 아쉽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 올해로 여든 살이다. 팔순 잔치를 하게 되면 가족들을 위해 색소폰을 연주할 계획을 갖고있다. 곡명은 <동해>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해요> 이렇게 두 곡을 하고 싶다.(동호회장 ‘박준우’)동호회 회장을 맡게 된 사연이 있나?보시다시피 우리 동호회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다. 나와 띠동갑인 분들도 있고 일흔이 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이 형님들을 위해서 할 게 뭐가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동호회 회장을 맡았다.회원들끼리의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데?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야외로 나간다. 야외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연주도 하고 그런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편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다. 다만 우리 동호회가 사람이 많다 보니 어느 정도의 트러블은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잘 중재하는 것이 동호회 회장으로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말에는 여느 동호회와 다르지 않게 장소를 빌려 모두의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색소폰의 즐거움이 언제 느껴지나?처음에는 도레미의 도자도 몰랐었다. 내가 속한 모임에 있는 형님들 네댓 명이 색소폰을 하는데 그게 정말 좋아 보였다. 그래서 색소폰을 배우게 된 거다. 배운 지 1년 만에 악기를 들고 제주도에 여행까지 갔었다. 색소폰 부시는 분하고 3박 4일 동안 신나게 놀았다. 온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하니까 정말 좋더라. 지금은 그렇게 색소폰 분 지 6년차 정도 된 것 같다.밖에서 연주할 때 무섭거나 떨리진 않았나?밖에서 연주하는 건 무섭지가 않다. 이곳 앞에 서서 연주하는 게 최고로 무섭다. 우리가 서로의 실력을 다 알고 있어서인지 여기에만서면 자꾸 버벅거리는데 일단 나가면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나가서 무대에 서면 거기서는 신이 나는데 여기에 있는 오 센티미터짜리 무대에서는 덜덜덜 떨게 된다.(김종빈, 김명숙 회원 부부)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김종빈 회원) 탄천에 운동을 나갔다가 탄천에서 누군가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색소폰을 할 만한 가까운 곳이 어디에 있나 찾다가 우연히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 들르게 되어 그 날 바로 등록을 하고 악기를 구입하여 시작했다.(김명숙 회원) 남편이 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지켜보다 같이 하게 되었다. 옆에서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쳐 기본적인 음감이 있어서 즐겁게 색소폰을 배울 수있었던 것 같다.색소폰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나?(김종빈 회원) 나는 노력을 많이 하는 노력형이다. 지금 현재 같은 경우는 녹음기를 사서 연주할 때마다 꼭 녹음한다. 오늘 연주하며 녹음한 곡들을 매일 출퇴근하면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 또 녹음하는 식으로 계속 연습을 한다.(김명숙 회원) 남편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인터넷 강의 같은 것을 항상 찾아보고 그것을 바로 해보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연습실로 간다. 그런 모습에 나 또한 저절로 그렇게 연습하게 되는 것 같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꼭 와서 연습하려고 한다.<2015년 야마하 아마추어 색소폰대회> 금상을 받은 이력이 있던데?(김명숙 회원) 이성만 선생님의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만한 실력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만류하다가 선생님의 거듭된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가서 본의 아니게 금상을 타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상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지금은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악보도 외우고, 또 그것을 변형해서 악보를 직접 그리면서 연습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올뮤직색소폰동호회를 위한 이성만 원장의 ‘기록’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단지 색소폰의 소리나 음색이 아닌 그들의 추억과 존재의 향기를 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열정과 사랑으로 뭉친 이성만 원장 그리고 올뮤직색소폰동호회 회원 모두를 응원한다. 글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사진Ι이성만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9-01
  • 2018년 09월(27호)
    -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 - 재즈의 선율을 빌려 색소폰으로 말하는 '색소포니스트 구민상' - [MUSIC ESSAY]벨기에 디낭에서 아돌프 삭스를 만나다. - [JAZZ CLUB]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청정 재즈공간 'CAFE JAZZDA' - 색소폰과 함께 숲속에서 펼쳐지는 한여름 밤의 콘서트 '2018 평창색소폰페스티벌' - 서울 광화문 광장에 울려퍼진 하모니카 선율 '제6회 서울국제하모니카페스티벌' - 대한민국 소비자만족도 1위 수상기념 '2018 경연대회' - [MATCHING PARTNER] 하늘을 뚫는 악기 ‘트롬본(Trombone)’
    • 지난 호
    • 2018년
    • 09월
    2018-09-01
  • 트로트와 함께하는 색소폰 연주 – 꿈꾸는 백마강
    이번 호에는 트로트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프리원 뮤직의 [강승용 명품 무드 색소폰] 열 번째 곡이자 가수 배호의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라 칭송받는 <꿈꾸는 백마강>(조명암 작사, 임근식 작곡)으로 알토색소폰(Alto Saxophone) 연주를 설명합니다. 이 노래를 처음 발표한 가수는 이인권 씨이고, 배호는 후에 재발표 한 곡입니다.다음 페이지의 악보는 제가 리코딩 때 사용한 그 악보입니다. 반드시 가수 배호의 노래를 들어본 후 연주하시기 바랍니다. 못갖춘 마디인 첫 번째 소절 F♯음은 서브 톤으로 시작합니다. 4소절의 첫 음 (C♯)도 서브 톤을 사용하였고, 5번째 소절의 넷째 박자 (F♯)도 서브 톤입니다. 10번째 소절의 첫 음 (G♯) 앞에 (F♯)음을 장식음으로 사용하였고, 16번째 소절의 첫 음인 (D♯)음 앞에는 (D)음을 장식음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1절의 8번째 소절 첫째 박자 (G♯)와 둘째 박자 (F♯, D♯)은 밴딩의 드롭(drop)을 사용한 것이고, 2절의 10번째 소절 셋째 박자 (B)에서 11번째 소절의 첫째 박자 (G♯)을 연결하는 주법은 하행 글리산도(Glissando) 주법이라 합니다. 이때는 물론 핑거링(Fingering)도 사용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홈페이지의 기사내용은 일부 내용만 보여지며 전체기사(내용과 사진, 악보)는 월간색소폰에 실려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월간색소폰)강승용 KSA대한민국색소폰연주자협회 명예회장= suyeon@keri.or.kr
    • Lesson
    • 트로트
    2018-08-0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