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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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색소포니스트 송정훈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송정훈이 2월 6일 오후 7시30분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귀국 독주회를 연다. 풍 부한 울림과 폭넓은 다이내믹으로 깊은 음악적 색채를 표현하는 그는 선화예술고등학교, 국민대학교 예술대학을 거쳐 색소폰의 종주국인 벨기에서 브뤼셀 왕립음악원을 나왔다. 제80회 조선일보 신인 음악회 공식 데뷔를 시작으로 인천시향, 디토, 프라임필하모닉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국민대학교, 삼육대학교에 출강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길도 모색하고 있다. 연주자이자 교육 자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싶다는 송정훈을 지난 1월 17일 그의 연습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전문은 월간색소폰 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Interview
    2024-03-04
  • [Classique] "작곡가의 영혼이 살아 숨 쉬도록" 색소포니스트 우에노 코헤이
    일본의 유명 클래식 색소포니스트이자 야마하 아티스트인 우에노 코헤이가 최근 첫 내한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마스터 클래스부터 국내 연주자들과의 협연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한 그. 지난 9월에는 새 앨범을 공개하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인 그와 서면 인터뷰로 만나 한국 방문의 소회와 신보 소개, 그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중략 - Q. 우에노 코헤이씨가 추구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색소폰 연주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듣고 싶어요. A. 작곡가의 작품을 지금 이 순간 현재의 공간에서 다시 살아 숨 쉬게 하는 게 음악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서 만족스러운 음악이 나올 때 최고의 행복을 느껴요. 현시대에 존재할 수 없는 작곡가가 현장에 나타난 느낌이랄까요. 색소폰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그래서 제가 지금 그 역사의 일부분을 장식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재미를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인터뷰 전문은 월간색소폰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Interview
    2023-11-01
  • 색소포니스트 김원태
    Q. 안녕하세요. 김원태 연주자님.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동대문구에서 서앤김 색소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색소포니스트 김원태라고 합니다. 현재 교육 활동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온·오프라인에서 솔로, 듀엣, 4중주 등 클래식과 대중음악 연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교육을 위주로 활동을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유로 그렇게하고 계시나요? A. 아무래도 제가 연주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색소폰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야하고 그런 분들이 많아지려면 관심을 가지고 연주하는 분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걸 느꼈던 계기가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하며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섰을 때 관객들의 거의 대부분은 색소폰 연주를 하는 분들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Q. 유튜브 활동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콘텐츠를 다루시나요? A. 지금 현재로서는 연주 영상을 위주로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젊은 세대 분들도 색소폰에 관심을 많이 가지셔서 특정 세대에 치우치지 않는 선곡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차후에는 악기에 관련된 리뷰라든지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하는 소통 콘텐츠 같은 것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Q. 온라인에서 대중음악 장르를 연주하기로 한 계기가 있을까 요? A. 제가 처음 색소폰을 취미로 연주했을 때는 클래식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가요나 팝 같은 대중음악 장르를 위주 로 연주를 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중음악에 대한 로망을 품고 언젠가 대중음악 장르도 프로의 수준으로 연주하는 연 주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대학을 졸업하면서 현재는 그 목표를 이루어 나가고 있어요. 취미로 색소폰을 했을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음대를 나왔다는 것 혹은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것에 대한 괜한 부담감이 느껴지긴 하더라고 요. 그래서 대중음악 연주에 진지하게 임하게 되고 음악적인욕심도 큰 것 같습니다. Q. 음악적으로 알아가는 부분이 많다고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점들을 느끼셨나요? A. 클래식 음악은 라이브 연주 위주로 연구하게 되거든요. 무대에서 관객들한테 어떻게 연주가 들리게 될까를 고민하는 데,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유튜브 촬영을 하면서 녹음이 어떻게 되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덕분에 녹 음하는 기술을 어깨너머로나마 배우게 되는 부분도 있었고또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작 곡가의 의도를 얼마나 잘 반영을 해서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한 부분인데, 대중음악에서는 이 곡을 통해서 나의 개성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 유튜브에 영상을 올렸을 때는 사실 지우고 싶은 영상도 몇 개 있었죠.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악보대로 연주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부족한 점을 느꼈거든요. 그래도 시 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현재도 그 부분을 가장 깊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연주적인 측면에서 클래식과 대중음악 장르를 어떻게 접목시 키는 편인가요? A. 처음 대중가요 연주를 시작할 때 두 장르의 색깔이 명확하게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확실하게 다르게 구분 지어서 연주하다 나중에 두 개를 접목하면 좀 더 확실한 나의 색깔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두 가지 장르를 다 연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클래식 연주를 할 때는 대중음악 연주자의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고 대중음악을 연주할 때는 이 사람이 클래식을 전공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칭찬처럼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농담 삼아서 이중인격자 같다는 얘기도 들었죠(웃음). 다 연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는 “클래식 연주를 할 때는 대중음악 연주자의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고 대중음악을 연주할 때는 이 사람이 클래식을 전공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칭찬처럼 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농담 삼아서 이중인격자 같다는 얘기도 들었죠(웃음). 연주를 하는 게 중요하죠. 또한, 음악은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고 감동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힘든 시기에도 음악을 통해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그런 음악이요.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Q.김원태 색소포니스트는 어떤 스타일로 연주하는 연주자인가요? A. 클래식 연주에 있어서는 저는 주변 동료 연주자들에 비해서 약간 화려하게 연주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비브라토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조금 더 빠르거나 폭이 깊거나 하는 움직임이 많은 연주를 선호하는 편이었고요. 선곡에 있어서도 아주 잔잔하거나 서정적인 곡들을 위주로 하기보다는 조금 볼륨감을 나타낼 수 있는 음악이나 움직임이 화려한 음악들을 주로 연주하길 좋아했습니다. 아티큘레이션도 조금 명확하게 하는 편이었어요. 아주 난해한 현대 음악 같은 학문적 가치가 높은 연주 스타일보다는 관객이 듣기 좋은 그런 음악들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Q. 연주를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성도를 높이는 편인가요? A. 일정 기간 정도 색소폰에 미쳐서 살았던 시간이 있었어요. 음악성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기술적인 면을 많이 연습하고 그걸 기반으로 음악적인 면을 개발하는 편이에요. 기본이 탄탄한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연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테크닉과 음악 공통적인 부분에서 스스로 녹음을 해보고 자신의 연주를 많이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제가 색소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이 정도면 들어줄 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녹음을 해서 들어보았는데, 그 충격은 잊을 수가 없어요(웃음). 녹음을 하다 보면 연주하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적나라하게 들리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연주를 하고 있구나 하는 부분이 처음에는 굉장히 괴롭습니다. 연주를 하면서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어떤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도 모니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제가 하는 활동들이 대부분 연주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걸로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연주 활동을 지속하고 싶다는 이것 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어떤 피드백이 오는 것을 제가 즐거워 하는 것 같아요. 연주가 너무 좋았다거나 연주를 통해서 힐링 을 받았다거나 이런 피드백을 받았을 때 굉장히 즐거움을 느끼고 직업적인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혹시나 다른 일 로 바빠서 연주력이 떨어지거나 하더라도 관객 중 누구라도감동을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진심을 다해서 연습하고 준비 한 부분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나가고 싶어요. 또, 젊은 세대에게서 색소폰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활동을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어요. 젊은 분들이 찾아주실 만한 연주곡들을 선곡해 유튜브 연주 영상으로 업로드할 예정이고 교육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수업을 진행 과정들을 정리를 해서 교재를 제작해볼 생각입니다. 교육하는 스타일이 선생님마다 다르다 보니 제가 수업하는 스타일 혹은 제가 만든 커리큘럼이 잘 맞는 분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잘 만들어보려고 노력을 할 것 같고요. 현재 연주 활동은 오프라인에서는 클래식, 온라인에서는 대중음악 위주로 활동을 하고있는데, 추후에는 둘을 섞어볼 생각이에요. 유튜브에서는 클래식 음악도 더 많이 업로드 해볼 생각이고 오프라인에서는 대중음악 연주 비중을 더 늘려갈 생각이입니다. 둘 다 챙긴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욕심을 내볼 생각입니다.
    • Interview
    2023-07-01
  • 색소포니스트 최희훈
    전국 각지의 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최희훈 연주자는 야마하색소폰 글로벌 사이트에 등록된 아티스트이며, ㈜엘프프로페셔널반주기 전속 모델, 다다리오 우드윈드 아티스트 등의 업체에서 색소폰계의 아이돌로 불리며 사랑받는 연주자로 정평이 나있다. 그밖에 〈최희훈색소폰CCM〉 1집 발매로 갓피플 차트 1위, 각종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행사로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근래에는 강남대학교 색소폰 아카데미 최연소 교수로 지난 3월에 첫 개강을 가졌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연주를 통해 크로스오버가 아닌 ‘크로스오버형’ 연주자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글 안지인 기자 최희훈 연주자는 일전에 본지 3주년 기념 인터뷰로 출연한 적이있다. (2019년 7월호 참조) 그때의 출연이 4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업체의 러브콜과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바쁘게 살 수 있었던 기점이 됐다고 말하는 그는 창간 7주년을 맞이한 〈월간색소폰〉과 다시 한번 만나 인터뷰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Q. 안녕하세요. 최희훈 연주자님.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야마하색소폰 글로벌 사이트에 등록된 아티스트이며, 엘프 반주기 전속 모델, 다다리오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최희훈 색소폰 스튜디오 1·2호점을 운영하며 강남대학교 색소폰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요즘 바쁘게 활동하시는 걸로 압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A. 클래식, 팝, 대중가요 세 가지 장르를 다 연주하는 크로스오버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세 가지 장르를 다 잘하려고 하다 보니 바빠지더라고요. 색소폰이라는 악기도 알리고, 색소폰의 매력 또는 색소폰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음악이 있다는 걸을 알리려고 하다 보니 전국 각지를 오가며 바쁘게 활동하게 되는 것같습니다. Q. 2019년도 3주년 인터뷰 이후로 꼭 4년 만에 다시 나오셨네요. A. 사실 그때는 제가 월간색소폰을 잘 몰랐어요. 저한테 수업을 받으러 오시는 분이 월간색소폰이라는 잡지가 있다고 소개해주셔서 당시 요즘 뜨고 있는 차세대 젊은 연주자로 소개가 됐었거든요. 그때 제가 우러러보던 분들과 같이 나와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걸로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색소폰 반주기 회사 ㈜엘프에서 관심을 주셨고 그게 잘 돼서 녹음도 하고 전속 모델이 됐죠. 이후에 엘프 송년의 밤 행사 때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그 모습을 통해 야마하와도 인연이 생기게 되었고, 다다리오와도 콘택트가 되어서 아티스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월간색소폰〉이 제게는 불이 붙을 수 있었던 시발점이라고 생각해서 굉장히 뜻깊죠. 그래서 이렇게 7주년 인터뷰도 하고 싶었고, 구독자분들과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Q.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간 어떤 점들이 많이 변한 것 같나요? A. 일단은 연주가 많이 바뀌었어요. 아무래도 기업들과의 계약으로 인해서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제 연주가 누군가에게 표본이 될 수 있게 퀄리티 있는 연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전에 비해서 조금 더 고급스럽고 전문적인 연주로 변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연주 콘셉트도 무대에 올라서 보이는 행동이나 퍼포먼스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등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됐어요. 내가 열심히만 하면 좋은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느껴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시기가 만들어졌죠. Q. 클래식 연주자에서 크로스오버 연주자가 되기까지 난관이 많았을 것 같아요. A. 모든 사람이 저를 실용음악 전공을 한 연주자로 보거든요. 그런데 저는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했어요(웃음). 사실 클래식 색소폰을 하면서 대중음악을 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얘기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크로스오버형 연주자가 되고 싶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대중음악의 느낌을 내는 뉘앙스가 안 나와정말 힘들었는데, 제가 바뀌기 위해서 정말 여러 연주자들의 연주를 많이 듣고 카피하며 독학으로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재즈 용어부터 시작해서 유튜브 강의를 참고해 어떻게 연습해야하는지 모든 것을 스스로 찾으며 열심히 했는데, 그 시간이 한 4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Q. 클래식 연주자 출신이다 보니, 그에 대한 질타 섞인 시선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근래에는 다들 절 좋아해주시지만 전에는 클래식 연주자면 본인 영역에서 활동해야지라는 인식도 있었어요. 하지만 색소폰이라는 어떤 하나의 악기가 여러 가지의 장르로 구사되는 건 당연하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 다양한 장르를 섭렵할 수 있다는 건 연주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처음에 클래식처럼 대중음악에 다가가지만 않으면 저한테 질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질타를 받았던 건 제가 가요나 팝이라는 장르를 클래식화 시켰기 때문이었던 거죠. 처음에는 솔직히 그런 질타가 약이 됐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죠. Q. 자신은 어떤 매력을 가진 연주자라고 생각하나요? A. 저는 색소폰이라는 악기로 다양한 장르를 도전하는 연주자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크로스오버형 연주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게 제가 하고 있는 음악이고 제가 앞으로도 노력을 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저의 음악에서는 팝스러우면서도 클래식한 느낌이 묻어나기 때문에 기존에 듣던 소리가아니라 독보적이라는 평도 받았어요. 세미클래식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믹스가 잘 된 편인 것 같습니다(웃음). Q. 앞으로의 목표, 계획, 이루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얘기해주세요. A. 당장은 진주에 있는 행사부터 해서 10월에는 제주 국제 관악제에 방문해서 연주가 있고요. 청소년 관악제 콩쿠르 심사도 가고 현재 제가 교수로 있는 강남대학교에서도 콘서트가 잡혀있습니다.야마하 뮤직 코리아에서 야마하 클리닉이라는 행사를 하거든요. 전국 각지의 동호회를 돌아다니면서 무료로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고 쉽게 레슨을 받지 못하는 먼 지방을 다니면서 악기 시연회와 연주와 악기를 무상점검해주는 야마하뮤직코리아만의 행사에요.이 행사를 통해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색소폰의 매력이 무궁무진하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훗날 제가 바라는 게 있다면 색소폰을 장르로 구분 짓지 않는 시장이 도래하면 좋겠어요. 클래식 재즈 따질 거 없이 그냥 색소폰이라는 악기 자체로 여러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거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올해 10월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최희훈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색소폰 독주회를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1부는 클래식 연주, 2부는 재즈 또는 팝, 3부는 대중가요 이렇게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스타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연주를 모든 분들께보여드리고 싶어요. Saxophone Setting 테너 색소폰야마하 82Z ASP 마우스피스과데라 MB2 리드다다리오 재즈 셀렉터 2호 H Saxophone Setting 알토 색소폰야마하 875EXGP 마우스피스비츨러 ARB 6호 리드다다리오 재즈 셀렉터 3S
    • Interview
    2023-07-01
  • [Classicque] 색소포니스트 빈재현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색소포니스트 빈재현 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색소폰콰르텟 ‘앤’의 리더와 ‘일방통행 색소폰앙상블’에서 테너 색소폰을 맡고 있습니다. 대중과 더가까워질 수 있는 연주를 하기 위해서 팀 연주를 많이 하고 있고 제자들 양성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의 음악적 확립을 위해 현재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 프랑스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A. 제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제 스스로가 이곡을 안 해봤고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설 때가 있어요. 다 른 새로운 곡을 접했을 때, 혹은 남한테 알려줄 때 어떠한 근거로 알려줘야 할 지 판단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의 음악적 스타일을 확립하고자 프랑스 유학을 가려고 마음먹게되었습니다. Q. 현재 유학 준비 중이신데 어떤 과정이 필요한 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입학 설명에 관련해 학교 측에 입학시험 의뢰 메일을 보냈더니 학교 사이트를 참고하라고 하더라고요. 사이트가 친절하지 않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베르사유음악원 시험을 영상으로 볼 수 있었어요. 영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촬영을 해야 하고 총 30분에 달하는 곡을 세 개 연주했습니다. 영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촬영을 해야 하고, 특별한 지정곡은 없지만 난이도가 좀 떨어지는 곡을 하면 메리트가 없을 것 같아 그에 맞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Q. 음악교육신문사 콩쿠르 색소폰 부문 1등.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콩쿠르 최우수 1등, 국제 학생 콩쿠르 색소폰 부문 2등,대한민국 관악콩쿠르 색소폰 최우수, 서울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콩쿠르 1등, 음악교육신문사 콩쿠르 관악 전체 대상 등 다양한 콩쿠르에서 수상 이력이 있는데. 콩쿠르에 많이 나가려고 한 이유가 있나요? 또한 콩쿠르 출전 통해서 들었던 생각은 무엇이며, 그런 과정에서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 궁금합니다. A. 모든 콩쿠르의 경험이 너무나도 신중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제가 상을 타려고 콩쿠르를 나가는 것은 아니었고 요. 콩쿠르를 하나씩 경험할 때마다 한 곡씩 완성된 곡을 얻을 수 있었죠. 실수를 할 때는 좌절을 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배 웠고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무대에서의 제 자신을 바라보고 곡 해석을 하나씩 해나가면 서 어느덧 성숙한 연주자로 거듭나 있었어요. 그렇게 곡에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연주하다 보니 저절로 상도 타게 되었고요. 진심을 다하면 그 진심이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Q.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곡이 있다면 어떤 곡을 꼽을 수 있을까요? A. 프랑스 작곡가 자크 이베르(Jacques Ibert)의 〈ConcertinoDa Camera〉라는 작품입니다. 작곡가 이베르의 곡은 굉장히 리드미컬하면서 음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이곡을 좋아하고 저를 표현할 수있는 곡이 아닐까 생각해요. Q. 빈재현 연주자는 어떤 스타일의 연주를 하는 사람인가요? A. 연주자는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확고해야 해요. 확립이 안 된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가면 객석에서는 저 연주자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거든요. 설득력 있는연주를 하는 게 중요하죠. 또한, 음악은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고 감동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힘든 시기에도 음악을 통해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그런 음악이요. 그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Q. 좋아하는 작곡가 또는 음악가가 있나요?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현재까지 너무나 무수한 작곡가와 음악가들이 많은데요. 그중 가장 궁금한 음악가는 울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제가 조카를 두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제가 이 위대한 분을 만났다면, 혹은 그분이 색소폰 을 알았다면 무슨 곡을 썼을지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거든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모차르트의 곡을 제대로 해석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합니다. 모차르트의 곡은 어린아이들의 장난스러운 음악 같기도 해서 그런지 장난감 노래나 심지어 세탁기의 끝 나는 음악 등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편안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노래들인데 색소폰 곡이 나오면 과 연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색소폰으로 모차르트의 곡을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표현을 할 수 있을지 너무 궁금해요. Q. 고마웠던 사람들이 있나요? A. 제 모교인 군포고등학교에서 1학년 때부터 관악부 생활을 했어요. 덕분에 인문계 고등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연습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죠. 그런 부분에서 감사하게 생각하고,제 바로 한 학년 위 선배였던 황도현 색소포니스트라고 그분 께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제가 졸업한 한예종 선배님이기도 했던 안왕식 선생님께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Q. 월간색소폰 구독자에게 마지막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힘드신 분이 있다면 제 색소폰 연주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해 좋은 연주로 만나 뵙겠습니다. 하루는 라디오에서 하루는 텔레비전에서 하루는 매거진에서 한국의 빛나는 빈재현 연주자로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Interview
    2023-06-01
  • [Classicque] 색소포니스트 조준형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색소폰 연주자 조준형입니다. 클래식 색소폰 전공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가요, CCM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 앨범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앨범에 대한 소개 부 탁드립니다. A. 이번 앨범은 저의 첫 앨범으로 제가 좋아하는 CCM 장르의 곡을 담았습니다. 앨범 이름은 〈축복〉으로 타이틀 곡인 〈축복〉과 같고요. 총 4개의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타이틀 곡인 〈축복〉 같은 경우는 서울예대 출신 재즈 색소포니스트 인 제 동생이 작곡한 곡을 가지고 편곡해서 만든 곡이에요. 우리가 세상 살기 각박하고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생각보다 많은 축복이 있기에 더 도전하고 노력하며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Q. 클래식 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초등학생 3학년에 색소폰을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색소폰을 하셔서 그 영향으로 저도 자연스레 색소폰을 하게 되었죠. 아버지는 경희대에서 클래식 바순을 전공하셨어요. 동시에 색소폰도 하셨는데, 경음악이나 실용음악과 같은 대중음악도 연주하셨어서 제가 처음 색소폰을 배울 때 실용 음악에서 배우는 코드 톤, 재즈, 가요, 팝과 같은 장르의 음악을 주로 연습했었어요. 그러다 예고에 들어가면서 클래식 색소폰을 배우게 되었는데, 톤이나 사용하는 마우스피스, 연습 방법등 다른 부분이 많았죠. 근데 저는 이 클래식 색소폰의 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클래식 색소폰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음악에 있어 가지고 있는 신념 또는 가치관이 있나요? A. 음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음악적 스타일이 일정 부분 획일화가 돼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클래식은 더더욱 그렇죠. 정해진 틀에 맞춰 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를들면 클래식 색소폰 소리에도 유행이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 색소폰을 배울 때는 어둡고 무겁고 웅장한 느낌의 소리가 선호됐었는데, 요즘은 밝고 예쁜 느낌이 선호되거든요. 그 유행에 따라가다 보니 10명의 색소폰 연주자가 있으면 10명의 소리가 비슷해지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부분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어 저만의 색깔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같이 하면서 저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음악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많이 느낀 것 같아요. Q. 스스로 어떤 소리를 가진 연주자라 생각하나요? A. 저는 소리가 세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화려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대개 색소폰 소리를 연상해보라고 하면 재지(Jazzy) 하면서 센 소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거기에서 가져올 건 가져오되 제가 가진 노하우를 섞어서 저만의 색깔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그걸 부드러우면서 화려하다고 저는 표현하는 거고요. 저의 그런 소리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또 저는 색소폰 연주에 있어서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화려한 것보다는 박자와 음정이 칼같이 맞는 거에 기점을 두고 감정 표현이나 기교를 적당히 넣어서 고요 속의 외침 같은 그런 음악을 선호합니다. Q. 헬스장에서 연주하는 모습의 영상을 재밌게 보았습니다. 어떤 취지로 그런 영상을 찍게 되셨나요? A. 스물한 살 때 허리 디스크로 운동을 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거든요. 그걸 계기로 헬스를 엄청 좋아하게 됐어요. 제가 유튜브를 하다 보니 헬스장에서 영상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인스타 그램에서 어떤 친구가 색소폰을 헬스장에서 불고 있는 영상을 보게 된 거예요. 연락을 해서 같이 찍어도 되겠냐 했더니 그 친구도 좋다고 해서 바로 같이 영상을 찍게 됐죠. 둘이 처음으로 찍은 영상이 징징이 해파리 춤이라고 인스타에서 유행하던 걸 아무 생각 없이 찍었는데, 그게 조회수 400만을 넘겼거든요. 그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여기저기서 협찬도 들어오고 자동차 광고에도 출연하게 됐죠. 색소폰과 헬스의 조화처럼 뭔가를 섞어야 대중들이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현재는 그 영상을 통해 알게된 관악기 하는 친구들과 ‘철사랑근악대’라는 팀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헬스 나시를 입고 라이브 버스킹을 나갈 생각이에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하고 인스타그램도 만들고, 아이디어 회의와 연습도 계속 하고 있죠. Q. 앨범 발매 및 유튜브 활동 등 개인 마케팅에 무게를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제 나이가 올해 스물아홉이거든요. 학교를 다닐 때는 색소폰에 미쳐서 연습만 했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지금의 제 실력이 있는 거겠지만 그렇다 보니 시야가 좁은 거예요. 예술가는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데 연습실에서 연습만 하면 실력이야 늘겠지만 그밖에 다른 무엇이 없잖아요. 특히 클래식 연주자는 더더욱 그런 환경이에요. 저는 그런 정해진 틀이 정말 싫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에 다녀와서 평생 레슨이라는 틀안에서 살고 모든 사람들이 그거를 향해서 간다는 게 제 기준에서는 별로인 거죠. 그럼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음악으로 뭔가 이뤄낸 사람들을 다 따라 해보기로 생각했어요. 주변에 돈을 많이 벌었거나 유명해졌거나 했던 사람들을 따라 하면서 개인 마케팅을 했던 거죠. <CCM 악보집>, <추억의 인기가요> 악보집도 내고 작년에는 독주회도 가졌죠. 유튜브도 그렇게 시작했던 거고요. 예술가는 유명해져야 하잖아요. 실력도 중요하지만 개인 마케팅을 잘 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을 해서 유명해지기 위한 방법이라면 뭐든지 시도하고 있어요. 그렇게 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이제야 조금 피부로 와닿게느껴지고 있거든요. ‘내가 그래도 열심히 한 게 헛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더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신념을 가지고 원하는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 또는 목표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A. 궁극적으로는 클래식과 실용음악 두 가지의 장르를 다 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형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제가 실용음악 을 정통으로 배웠던 만큼의 수준의 느낌까지는 못 내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두 가지 장르를 다 해왔기 때문에 제 스타일 안에서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각각의 분야에 대해서 연습을 많이 하고 있고요. 또 근래에 만든 머슬브라스 팀과 저의 유튜브 채널 색무드를 통해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요. 저는 케니지 같은 사람도 인플루언서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연주를 잘하고 연주자이긴 하지만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느낌의 SNS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요. 작년부터 음악 기획 같은 것도 하고 있고 유튜브를 하다 보니 촬영이랑 녹음 실력이 늘어서 외주도 다니고 있고요. 오프라인으로 버스킹을 많이 하겠지만 12월에 대관 공연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되던 안 되던 꾸준하게 밀고 나가는 성격이고 주관이 뚜렷해서 앞으로도 성장해 나갈 거라고 생각해요.마지막으로 저희 유튜브 Saxophone mood 색무드에 많이 찾아와주세요
    • Interview
    2023-05-01
  • 예찬악기 대표 장홍상
    예찬악기 장홍상 대표(이하 장 대표)는 2006년 엘로이 시리즈1 개발을 시작으로 2007년 엘로이 시리즈2, 2008년 엘로이 시리즈3 프로페셔널, 2011 제네시스마스터 시리즈6 헤머링 그리고 2014년 제네시스마스터 시리즈 7 커스텀 아크를 직접 설계와 개발을 통해 중국·대만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국내외 프로 연주자들과의 소통으로 인해 만들어진 예찬악기의 색소폰은 입문자부터 프로 연주자까지 스펙트럼이 넓으며, ‘국내 유일의 색소폰 개발 회사’라는 프로모션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예찬악기가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다는데.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장 대표가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다니던 직장에 작별을 고하며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다양한 악기를 접하며 자랐던 그는 유년 시절을 생각하며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직장 생활이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사 나오고 나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궁리하다 큰돈을 벌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었으니까 음악 관련된 일을 해보기로 한 거죠. 색소폰 시장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시장에 뭔가 있다는 게 느껴졌죠. 원래 회사에 있을 때 영업 관련된 마케팅을 했었거든요. 색소폰이 분명히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처음 거래를 시작한 회사가 중국 상해에 있는 큐피드라는 회사였어요. 그때는 자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무역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책이나 인터넷에 있는 중국 원문 같은 자료들을 뒤져 회사를 찾아 컨택해서 모아놓은 퇴직금으로 색소폰 100대를 수입해 집에 가져다 놓고 팔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들여온 100대 중에서 1대 나갔어요. 그것도 아주 어렵게 말이죠. 그러더니 바로 반품되더라고요(웃음). 정말 암울했어요.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지만 색소폰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든요. 굉장히 심각했죠. 그런 간절함이 발현됐나봐요. 다급하게 여기저기 다니며 발품을 팔다 보니 한 3주 지났을까, 30대가 하루에 한 번에 나가더라고요. 며칠 있다가 또 다른 곳에서 연락 오고. 그러면서 또 100대를 들여왔죠. 그랬더니 이것도 마찬가지로 불과 한 달도 안 돼서 다 나갔어요. 그다음에는 200대씩 수입을 했었죠. 그러면서 매장도 얻게 되고 직원도 들어오고 한 거죠.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시리즈Ⅰ을 30만 원 대로 수입하기 시작해서 6개월 지난 시점에 시리즈Ⅱ를 60만 원에 그리고 1년 돼가는 즈음에 시리즈Ⅲ 80만 원대로 점점 발전시켰어요. 그러다 여기서 더 좋은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만으로 건너가 고가 브랜드를 만들게 된 거죠. 전 세계 자체 공장을 가진 셀마와 야나기사와를 제외하고 OEM 공장 중에서 가장 잘 만드는 공장이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악기를 설계해 제작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장 대표는 업계에서도 중국어를 잘 하기로 소문났다. 2012 중국 상하이 국제 전시회, 2014 중국 상하이 국제 전시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전시회 등 세계 시장을 누비며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모습이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남달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력 뒤에는 그가 중국어를 그렇게 잘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있었다. “중국과 거래를 하면서 정말 100번도 넘게 간 것 같아요. 여권을 세 번 바꿨으니까요. 그 정도로 중국을 많이 오가다 보니 중국어는 그냥 알아서 잘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준비하던 초창기 때는 시간이 많아 중국어 회화책 여러 권을 사서 7, 8번은 읽고 또 읽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책으로 공부해도 막상 중국에 가니 중국어가 안 들리더라고요. 방언이 많은 중국의 지역적 특색도 있었지만 결국은 언어는 노출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됐죠. 횟수로 중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자주 듣고 말하게 되니 어느 순간 들리더라고요. 또 악기를 한 달에 200대씩 들여오다 보니 현지에서 검수 작업을 꼼꼼히 해야만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도 중국어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많았죠(웃음).” 장 대표는 “악기는 소리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소리에 대해 진심이다. 그렇기에 더 좋은 색소폰 소리를 위한 공법에 대해 연구하고 또 그에 추가적으로 따라오는 악기 외의 부가적인 것들을 같이 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양한 연주자들의 체감을 통해 얻어진 연구 결과물들을 통해서도 한국인의 대중적 정서에 맞는 소리로 합의점을 찾아 실제로 구현하기 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다. “색소폰을 배우고 알게 되다 보니 다양한 방면으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해외에 나갔을 때 기술자나 엔지니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들이 하는 것들을 보며 같이 개발하게 됐죠. 결국 악기는 소리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소리와 편안하게 움직이는 운지에 대해 배제하고 생각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희는 헤머링 공법, 옛날 방식 그대로 악기를 만들고 있어요. 또,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 외에도 마우스피스, 리드, 리가처 같은 부가적인 것들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같이 개발하게 된 거죠.” “연주자들이 원하는 소리가 가지각색인데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쉽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색소포니스트 케니 지가 원하는 소리로 악기를 만들면 무조건 반응이 좋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시장이 원하는 소리는 따로 있죠. 한국에서 색소폰을 소비하는 주된 연령층이 6·70대잖아요. 그분들이 즐겨 들으시는 음악 장르가 트로트이기 때문에 주로 트로트 연주에 많이 나오는 따뜻한 소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죠. 한정된 자원으로 투자해서 시장 전반의 기조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사업적으로 중요했던 순간을 뽑으라면 색소폰 붐이 중반부에서 후반으로 가던 시기였어요. 그때 도전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양한 악기 시리즈가 있지만 저가대로 좋은 악기 개발을 많이 했거든요. 더 좋은 악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연주자들에게 “이 악기 좋은데요?”라는 말을 듣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제가 존경하는 김원용 선생님께 색소폰도 배우기 시작했던 거고 그밖에 다양한 선생님들이나 연주자들에게 의견을 수용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며 개발했죠. 그런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 상처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행복했던 것 같아요. ‘여태까지 성장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 대표는 앞으로 색소폰 시장에 대해 “개개인이 성장하는 깊이 있는 문화로 가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바뀐 문화적 양상이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알리도록 돕는데 힘쓰고 싶다는 그는 ‘행복한 일을 하겠다’는 면에서 첫 사업을 떠올리던 그때의 가치관과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잖아요. 코로나 이전과 같은 양적 팽창이 다시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모이는 문화였던 전과 반대로 지금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다양한 취미가 생겼죠. 그런 양적 측면에서 색소폰의 큰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깊이는 더 있어질 것 같아요. 일본 같은 경우는 취미 생활의 깊이 정도가 수준이 높은 편이에요. 우리나라 프로 연주자들보다 잘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굉장히 많죠. 악기 연주를 통해 어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거를 집에서 ‘플레이’하고 놀더라고요. 한국도 점점 그런 문화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개인이 성장하는 문화로 말이죠. 그런 성장의 개념으로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귀고 배우며 성장하는 부분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게 정말 가치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앞으로도 편하고 따뜻한 소리가 나는 악기를 만들어나갈 예정이고요. 또,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알리도록 돕고 싶어요.”
    • Interview
    2023-03-01
  • [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정기왕
    Q. 안녕하세요. 〈월간색소폰〉 구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과 일본 도쿄예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최근 12월에 귀국 독주회를 가진 색소포니스트 정기왕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지난 12월 귀국 독주회를 하셨는데, 연주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을까요? A. 클래식 색소폰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라 프로그램 선정에 있어서 ‘대중에게 어떻게 하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Edvard Grieg의 서정 소곡집에 있는 피아노곡이나 비제의 〈Carmen Fantasy〉와 같은 대중의 귀에도 친숙한 곡을 넣었습니다. 또,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현대적인 악기이기 때문에 색소폰을 하는 전공자라면 현대곡 하나쯤은 프로그램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Water Shadows〉라는 곡도 프로그램에 넣어 초연하게 되었습니다. 〈Once Upon A Time〉, 〈Peace Of The Woods〉는 Edvard Grieg의 서정 소곡집에 있는 피아노곡으로 이 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한다는 것 자체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대중들이 귀에 익숙한 피아노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하면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Carmen Fantasy〉같은 경우는 편곡 버전이 여러 가지 있는데, 아츠시 야마나카 편곡 버전은 제가 처음으로 연주했습니다. 특히, 이 버전은 굉장히 어렵게 편곡된 곡으로 저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어려웠던 곡이었던 것 같습니다. Q. 독주회 프로그램 중 〈Water Shadows〉라는 곡을 한국에서 초연했는데, 곡에 대한 소개와 어떤 해석으로 연주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Water Shadows〉의 작곡자인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에 대해 소개하자면, 오사카 출신이시고 현재 도쿄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자 윤이상 선생님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이케노우치 토모지로 선생님과 같은 클래스셨죠. 제가 학교 다닐 때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을 만나 곡에 대해 얘기 나누던 중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는데, 색소폰 소리를 ‘속이 빈 물줄기’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Water Shadows〉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물의 그림자라는 뜻이에요. 물의 진동하는 흐름을 생성하는 곡이고 물은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물로 이 자체는 영혼이지만 그 영혼의 그림자라는 것은 물과 같은 우주 속에서 물이라는 것에 둘러싸여 있고 그 자체가 흔들려서 그림자를 일으키며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이미지로 작곡된 곡입니다. 이 곡의 특이점은 ‘미분음’이라는 음이 많이 나와요. 미분음은 반음 간격보다 더 세밀한 간격을 가진 음이라고 하거든요. 예를 들어 도 다음에는 도#이 나오는데 도와 도# 사이에 음이 하나 있는 거죠. 그거를 미분음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표현이 많이 들어간 곡이고 섬세한 컨트롤이 요구되어 까다롭고 어려운 곡이기도 합니다. 제 스승님인 노부야 스가와 선생님에게 헌정된 곡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이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곡 자체가 너무나 멋이 있었고 까다로운 테크닉이나 색소폰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에 대해 한국에서 초연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Q. 정기왕 색소포니스트는 어떤 해석관을 가지고 연주에 임하는 편인가요? A. 연주나 곡에 대한 해석을 할 때 항상 모든 방법을 열어놓는 편입니다.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고 넓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연주하면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관객 입장에서는 제가 의도한 표현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입견을 제 기준으로 정해놓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물어보는 편입니다. 음악을 할 때에는 타인과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남들이 말하는 것을 잘 경청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Q. 한예종 졸업 후 일본 도쿄예술대학원 색소폰 전공을 한국인 최초로 입학하고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색소폰 공부를 일본에서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었나요? 또 그곳에서 공부하시면서 어떤 점들이 인상 깊었나요? A. 노부야 스가와라라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연주자가 일본에 계셨어요.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라면 누구나 다 알죠. 그분에게 꼭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누구도 일본으로 색소폰 유학을 간 적이 없었거든요. 도쿄예술대학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는데, 시험을 보기 전에 선생님께 레슨을 한 번 받을 수가 있어요. 레슨을 받는데 저한테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한국에만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다행히 좋게 봐주신 것 같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음악이 좋고 이런저런 것을 보완해서 시험을 보라고 하셔서 최대한 준비해서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합격했죠. 일본 도쿄에 센조쿠 가쿠엔이라는 음악 대학이 있는데, 거기는 색소폰 전공자만 100명이 넘어요.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수업을 할 정도예요. 한국에 비해 시장이 굉장히 크죠. 또, 일본 색소폰 연주자들 같은 경우는 거의 8, 9살부터 시작을 해요. 제가 17살부터 시작을 했다고 하니까 스가와라 선생님도 깜짝 놀라더라고요. 시작하는 속도도 다르고, 어린 나이부터 배우는 만큼 체계적으로 배울 수가 있잖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타국에 비해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는 면에서 부족한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는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더 앞을 보았을 때 좋은 연주자를 얻기는 어려운 거죠. 일본의 학생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미스도 나고 틀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지만 연주 내용은 너무 좋거든요. 음악의 흐름 자체가 다르고 조금 틀리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반면 한국은 연주 내용은 엉망이어도 일단 안 틀리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그곳 학생들만큼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정말 힘들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야말로 인내의 시간이었죠. 선생님도 그걸 알고 따로 말씀하시더라고요. “인내심을 가져라”, “인내심을 가지고 해라” 그 말씀대로 꾸준히 하다 보니까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지금도 그 말이 제게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간혹 힘들 때 그 말을 많이 떠올리거든요. 음악을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일본에서 아마추어 연주자는 어떻게 색소폰을 접하나요? A. 일본에서 색소폰 한다고 하면 너무나 멋지다는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색소폰에 대해 잘 아는 편이죠. 일본의 아마추어 색소폰 시장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겪어보지는 않고 누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악기사라는 기본 개념에 대해 생각할 때 보통 물건을 사고팔고 수리하는 개념이잖아요. 일본은 그런 기능과 동시에 색소폰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포함되어 있어요. 색소폰을 배우기 위해서 악기사로 가는 거죠. 그 악기사에 색소폰 선생님이 두세 명 등록이 되어있어서 선생님들의 프로필을 보고 선택해서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어요. 거기서 선생님을 선택하면 악기사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레슨을 진행하는 거죠. 색소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색소폰을 배우는 데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 A. 색소폰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연주자들이 연주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 여쭤본게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클래식 색소폰을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요. 선생님도 똑같이 연주를 많이 해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주를 많이 하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요. 또 처음부터 너무 딱딱하고 무거운 곡들 말고 듣기 좋은 곡들로 연주하고, 아마추어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올라가라고 세 가지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1, 2년에 한 번씩은 독주회를 꾸준하게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라면 누구나 아는 곡, 입시곡,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드는 누구나 다 아는 곡 등 도전적인 곡들을 많이 연주해보고 싶고요. 또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며 같은 클래스 선후배 출신들로 구성된 앙상블 팀을 만들었어요. 올해 11월에 공연 예정 중에 있습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는 확실히 다른 악기보다는 표현 방법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현대 작곡자들이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대해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하죠. 여담으로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이 색소폰은 어느 계절의 악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너무 어려워서 대답을 잘 못했어요. 선생님은 겨울의 악기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흥미로웠죠. 색소폰은 정말 다양한 표현력과 가능성을 가진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연주자로써 색소폰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연주를 통해 관객과 소통해나가고 싶습니다.
    • Interview
    2023-03-01
  • ‘색소폰은 내 삶의 활력소’ 꽃숙이 김호숙씨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겨울의 문을 열고 활짝 핀 꽃 속의 화원에 들어서는데 “어서 오세요?”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반갑게 나를 이끌었다. 여기가 “꽃숙이네 꽃집인가요?” 묻는 소리에 정겹게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하고 다소곳한 모습이다. ‘꽃숙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색소폰을 하는 사람이라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하며 대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호인들과 교류를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오감을 모두 즐기고 사는 색소폰 연주자로, 차분한 성품에 겸손함이 몸에 뵈어 만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며 꽃과 나무 향기 속에서 사계절을 모두 봄처럼 살고 있는 그녀의 색소폰 사랑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본인 및 가족 소개를 해 주세요. A. 대전에서 40여 년 동안 꽃집을 운영하며 꽃과 나무와 함께 살아오다가 10여 년 전에 색소폰을 만나서 지금은 꽃보다 색소폰을 더 사랑하게 된 올해 67세 김호숙(꽃숙이)입니다. 가족은 함께 꽃집을 하고 있는 남편과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아들(김다흰)은 연극배우인데 현재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주말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전종렬 역)이며 수학교사로, 일타 강사(최치열 역)인 배우 정경호의 대학 동기 역할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딸(김다별)은 대전에서 연극 연출 활동을 하며 지난해에 대전지역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Q. 가족이 모두 예능에 소질이 있고 끼가 많은가 봅니다. 색소폰은 언제부터 시작하고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친가 쪽에 끼가 있는 분이 계셨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진로까지 이어졌나 봅니다. 저는 원래 음악을 듣기 좋아하고 악기는 다루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지인이 하는 동호회에 함께 들렀다가 드럼을 치는 지인의 소개로 2010년 1월 음악 학원에 등록하고 드럼을 배웠습니다. 드럼을 치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신나게 연습하는 중 지역 행사에 구경 갔다가 무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여서 행사 진행 요원에게 “저도 배우면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나요?”라고 여쭤보니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배우던 드럼을 뒤로하고 색소폰으로 악기를 바꿔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색소폰을 배우고 1년 뒤부터 지금까지 매년 마을 행사에 초대되어 연주하고 있습니다. Q.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무대에 처음 서게 되었을 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실력도 없는데 자신감이 충천하여 신나게 부르다가 음 이탈이 여러 번 났는데 창피함에 두고두고 생각이 나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왕초보로 얼굴이 화끈거릴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주하며 전국 각지의 여러 동호회나 프로 연주자 모임 등에 바쁘게 쫓아다니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코피가 멎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는 색소폰을 불면 압력 때문에 또 코피가 날 수 있다고 당분간 연주를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습관처럼 불었습니다. 그런데 코피가 멎지 않아 밤에 응급실에 실려갔고, 결국 수술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색소폰 연주가 너무 좋아서 무모하게 행동했던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Q. 평소에 색소폰 연습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나요? A. 색소폰이 너무 좋아서 동호회 연습실과 각종 색소폰 모임에 쫓아다니다 보니 꽃집 일을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집에 60평 규모의 음악실과 무대를 만들어 주어서 꽃집 일이 끝나면 혼자서 연습을 하며 즐기고, 가끔 동호회나 연주자 모임 장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남편이 저의 색소폰 사랑에 적극 지원해 주며 든든한 외조를 하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활동했던 동호회 모임이나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A. 2010년 처음 색소폰을 만난 이후로 색소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말 많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대전 지역 동호회 모임인 ‘고운소리’를 시작으로 대전 지역 연주자 모임, 대전 색소폰 동호회 ‘소리 한마당’, 옥천 향수 색소폰 앙상블, 색소피아 전국모임 대전지역장, 색소폰 나라, 우송정보대 평생교육원 색소폰 CEO 과정 수료, 지역 봉사활동과 발표회, 색소폰 라이브 방송(임민택, 찰리박 100회 특집, 왕상근, 버나드 마틴, 박재영 색소폰 TV 등) 출연 등 색소폰 연주를 통해 온라인, 오프라인 교류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Q. 예명이 꽃숙이인데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불리게 되었나요? A. 꽃집만 할 때는 남편이 노래 제목에 있는 꽃순이로 불렀는데, 색소폰을 시작하면서 전국 색소폰 카페에 ‘꽃숙이’라는 닉네임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Q. 색소폰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나에게 색소폰이란?) A. 저에게 색소폰은 삶의 활력소이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꽃집을 운영하는 제게 꽃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과 좋은 향기로 눈과 코를 즐겁게 해 주지만 색소폰은 멋진 연주로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제겐 노래하듯이 연주하는 색소폰이 아주 매력적인 악기로 다가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색소폰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색소폰 연주라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및 만남이 정말 좋습니다. 동호회 모임이나 공연을 통해 교류하고 공연을 하고 난 뒤의 만족감과 성취감은 색소폰을 하면서 느끼는 소중한 경험이고 행복입니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제겐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색소폰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쭉 이어가길 바랍니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데, 아직도 색소폰을 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면 하루라도 빨리 도전해서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무엇인가요? A. 저는 오직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색소폰 연주를 오래오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Interview
    2023-03-01
  • 색소포니스트 박동준
    제천하면 떠오르는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은 제철을 비롯한 강릉, 춘천, 원주 등 20년째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주관하며 색소폰 업계와 지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자신만의 고유 감성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의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을 선사하고 싶다는 그는 연주자로서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을 만나 그의 ‘감성’이야기를 들어봤다.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은 18살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다. 친구이자 동료인 가수 최호섭과 가수 변진섭 콘서트 무대에 참여하며 무대의 진가를 알게 됐다. 오랜 시간을 다양한 연주자들과 무대에 올랐기에 지금도 그룹사운드 음악을 참 좋아한다는 그다. “올해로 음악을 한 지는 41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저는 어렸을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에 비해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던 학생이었어요. 그런 저에게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만난 음악은 거부할 수 없는 세계였죠. 그렇게 음악의 세계에 발을 디디며 무대에 올랐죠. 그러다 훗날 가수 최호섭 씨 그리고 가수 변진섭 씨 콘서트 무대에 같이 오르게 되면서 공연의 진가가 뭔지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저는 고작 가수 변진섭 밴드의 일원이었는데도 팬레터를 수십 통씩 받았죠. 공연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웃음). 그렇게 18살부터 실전 음악을 해오다 보니 지금도 그룹사운드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죠.” 박동준은 매년 자신의 이름을 건 디너콘서트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경연 대회 행사 및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서며 관객과 호흡해오고 있다.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기 위해 지갑을 열만큼 매력적인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관객이 객석에서 연주자를 바라봤을 때 무대가 차 보이는 느낌이 들 만큼 무대를 장악해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무대 연출도 직접 하게 되는 것 같고요. 대중들이 와서 봤을 때 ‘돈을 내고 표를 사서 가볼 만한 공연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제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마음을 읽고 만족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박동준 연주자와 음악적인 얘기를 나누며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바로 ‘감성’이라는 단어다. 그가 말하는 감성의 의미는 정성을 다한다는 데에 있다. 솔직한 연주, 영혼이 실린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어떻게 정성껏 음으로 담아내느냐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영혼이 실린 연주는 음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고유 감성을 담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거죠. 듣는 사람은 그걸 느껴요. 연주자가 음 하나를 내는 데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말이죠. 설령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 거죠. 타고난 자신만의 감성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연주해야하는지 아는 게 연주자에게는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감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단지 그 부분에만 치우쳐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감성에는 기본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감정이 과잉되면 오버 필이 되거든요. 하지만 기본이 잘 잡힌 상태에서 감성이 입혀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겠죠. 케니지가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수 있었던건 음악을 모르는 대중들의 마음에도 파고드는 듣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감성 있는 연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저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가 들어도 느낄 수 있는 저만의 감성 연주, 영혼이 있는 연주를 하는 게 제 소망이죠. 음악인 중 저처럼 질곡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한마디로 애환이 깊죠. 그렇기에 그 삶 자체가 색소폰 연주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박동준 연주자는 안양대학교에서 색소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강좌 시간에는 박동준 연주자 특유의 유머와 핵심을 찌르는 강의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아 즐거우면서도 다음이 기대되는 수업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안양대학교 수업은 18주 기간의 수업을 한 기수로 쳐서 현재 4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좌 인원은 스무 명이 넘고요. 수업은 학생들의 공통 관심사를 위주로 해서 해당 주제에 대한 강의를 진행 후 실전으로 대입할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수업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꼭 가르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학생이 수업을 받기 위해 나오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죠. 학교에 가면 재미있고, 빠지기 싫다는 느낌 같이요. 가르치겠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학생에게 다 쏟아내려 한다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박동준은 다양한 공연 행사와 더불어 3월, 영흥도에서 개최하는 〈제1회 전국 시니어 색소폰 경연대회〉와 10월, 〈제천 아마추어 색소폰 경연대회〉 진행 기획 및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경연대회에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며 어떤 연주자가 상을 탈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심사위원들이 듣는 귀가 어느 정도 일정한 편이며, 앞으로의 심사에 있어서도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색소폰과 같은 악기든, 사람의 목소리든 일단은 소리가 좋아야 합니다. 거기에 음이 적합하게 맞으면 됩니다. 자신이 가진 실력보다 넘치는 기술을 구사하려고 하면 오히려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됩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가 어려운 노래를 간신히 연주하는 것보다 쉬운 노래를 멋지게 잘 부는 것을 대체로 선호합니다. 무난하게 감정 표현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감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노래로 도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동준 연주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자산”이라며 자신이 남에게 주는 것에 비해서 받는 게 많은 것 같다고 인터뷰 중 말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인복이 많다는 얘기도 왕왕 듣는다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에 대해 겸손으로 일관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주변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연주하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며 박동준 연주자의 매력이 느껴지는 소탈한 대답으로 웃음을 남겼다. “연주자에게는 연주가 언제나 최고의 생명이죠. 음악 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가장 원하는 일은 자신의 무대를 갖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관객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좋은 공연을 하고 싶고요. 음악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해나가고 싶죠. 또, 마지막으로 주위에서 도와준다면 소망이 하나 있는데요. 제천에서 정기적으로 색소폰 축제를 열어 제천하면 색소폰이 떠오르게 하고 싶은 겁니다. 더불어 연주자로써 혹은 인간적으로써 주변 선후배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욕심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자는 박동준 연주자의 ‘결혼’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지금의 아내 될 사람과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 지금은 너무나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그. 인터뷰에서 차마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던 고난과 시련을 거쳐 왔다는 박동준 연주자에게 ‘평범’이라는 가치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식을 넘어 색소폰 계의 축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전국 각지의 색소폰 관계자들이 그의 결혼식을 축하하고 있다. 그의 앞길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라며,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드린다.
    • Interview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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