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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악기 대표 장홍상
예찬악기 장홍상 대표(이하 장 대표)는 2006년 엘로이 시리즈1 개발을 시작으로 2007년 엘로이 시리즈2, 2008년 엘로이 시리즈3 프로페셔널, 2011 제네시스마스터 시리즈6 헤머링 그리고 2014년 제네시스마스터 시리즈 7 커스텀 아크를 직접 설계와 개발을 통해 중국·대만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국내외 프로 연주자들과의 소통으로 인해 만들어진 예찬악기의 색소폰은 입문자부터 프로 연주자까지 스펙트럼이 넓으며, ‘국내 유일의 색소폰 개발 회사’라는 프로모션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예찬악기가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다는데.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장 대표가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다니던 직장에 작별을 고하며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다양한 악기를 접하며 자랐던 그는 유년 시절을 생각하며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직장 생활이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사 나오고 나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궁리하다 큰돈을 벌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었으니까 음악 관련된 일을 해보기로 한 거죠. 색소폰 시장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시장에 뭔가 있다는 게 느껴졌죠. 원래 회사에 있을 때 영업 관련된 마케팅을 했었거든요. 색소폰이 분명히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처음 거래를 시작한 회사가 중국 상해에 있는 큐피드라는 회사였어요. 그때는 자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무역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책이나 인터넷에 있는 중국 원문 같은 자료들을 뒤져 회사를 찾아 컨택해서 모아놓은 퇴직금으로 색소폰 100대를 수입해 집에 가져다 놓고 팔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들여온 100대 중에서 1대 나갔어요. 그것도 아주 어렵게 말이죠. 그러더니 바로 반품되더라고요(웃음). 정말 암울했어요.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지만 색소폰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든요. 굉장히 심각했죠. 그런 간절함이 발현됐나봐요. 다급하게 여기저기 다니며 발품을 팔다 보니 한 3주 지났을까, 30대가 하루에 한 번에 나가더라고요. 며칠 있다가 또 다른 곳에서 연락 오고. 그러면서 또 100대를 들여왔죠. 그랬더니 이것도 마찬가지로 불과 한 달도 안 돼서 다 나갔어요. 그다음에는 200대씩 수입을 했었죠. 그러면서 매장도 얻게 되고 직원도 들어오고 한 거죠.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시리즈Ⅰ을 30만 원 대로 수입하기 시작해서 6개월 지난 시점에 시리즈Ⅱ를 60만 원에 그리고 1년 돼가는 즈음에 시리즈Ⅲ 80만 원대로 점점 발전시켰어요. 그러다 여기서 더 좋은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만으로 건너가 고가 브랜드를 만들게 된 거죠. 전 세계 자체 공장을 가진 셀마와 야나기사와를 제외하고 OEM 공장 중에서 가장 잘 만드는 공장이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악기를 설계해 제작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장 대표는 업계에서도 중국어를 잘 하기로 소문났다. 2012 중국 상하이 국제 전시회, 2014 중국 상하이 국제 전시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전시회 등 세계 시장을 누비며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모습이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남달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력 뒤에는 그가 중국어를 그렇게 잘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있었다. “중국과 거래를 하면서 정말 100번도 넘게 간 것 같아요. 여권을 세 번 바꿨으니까요. 그 정도로 중국을 많이 오가다 보니 중국어는 그냥 알아서 잘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준비하던 초창기 때는 시간이 많아 중국어 회화책 여러 권을 사서 7, 8번은 읽고 또 읽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책으로 공부해도 막상 중국에 가니 중국어가 안 들리더라고요. 방언이 많은 중국의 지역적 특색도 있었지만 결국은 언어는 노출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됐죠. 횟수로 중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자주 듣고 말하게 되니 어느 순간 들리더라고요. 또 악기를 한 달에 200대씩 들여오다 보니 현지에서 검수 작업을 꼼꼼히 해야만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도 중국어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많았죠(웃음).” 장 대표는 “악기는 소리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소리에 대해 진심이다. 그렇기에 더 좋은 색소폰 소리를 위한 공법에 대해 연구하고 또 그에 추가적으로 따라오는 악기 외의 부가적인 것들을 같이 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양한 연주자들의 체감을 통해 얻어진 연구 결과물들을 통해서도 한국인의 대중적 정서에 맞는 소리로 합의점을 찾아 실제로 구현하기 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다. “색소폰을 배우고 알게 되다 보니 다양한 방면으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해외에 나갔을 때 기술자나 엔지니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들이 하는 것들을 보며 같이 개발하게 됐죠. 결국 악기는 소리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소리와 편안하게 움직이는 운지에 대해 배제하고 생각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희는 헤머링 공법, 옛날 방식 그대로 악기를 만들고 있어요. 또,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 외에도 마우스피스, 리드, 리가처 같은 부가적인 것들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같이 개발하게 된 거죠.” “연주자들이 원하는 소리가 가지각색인데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쉽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색소포니스트 케니 지가 원하는 소리로 악기를 만들면 무조건 반응이 좋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시장이 원하는 소리는 따로 있죠. 한국에서 색소폰을 소비하는 주된 연령층이 6·70대잖아요. 그분들이 즐겨 들으시는 음악 장르가 트로트이기 때문에 주로 트로트 연주에 많이 나오는 따뜻한 소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죠. 한정된 자원으로 투자해서 시장 전반의 기조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사업적으로 중요했던 순간을 뽑으라면 색소폰 붐이 중반부에서 후반으로 가던 시기였어요. 그때 도전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양한 악기 시리즈가 있지만 저가대로 좋은 악기 개발을 많이 했거든요. 더 좋은 악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연주자들에게 “이 악기 좋은데요?”라는 말을 듣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제가 존경하는 김원용 선생님께 색소폰도 배우기 시작했던 거고 그밖에 다양한 선생님들이나 연주자들에게 의견을 수용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며 개발했죠. 그런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 상처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행복했던 것 같아요. ‘여태까지 성장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 대표는 앞으로 색소폰 시장에 대해 “개개인이 성장하는 깊이 있는 문화로 가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바뀐 문화적 양상이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알리도록 돕는데 힘쓰고 싶다는 그는 ‘행복한 일을 하겠다’는 면에서 첫 사업을 떠올리던 그때의 가치관과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잖아요. 코로나 이전과 같은 양적 팽창이 다시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모이는 문화였던 전과 반대로 지금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다양한 취미가 생겼죠. 그런 양적 측면에서 색소폰의 큰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깊이는 더 있어질 것 같아요. 일본 같은 경우는 취미 생활의 깊이 정도가 수준이 높은 편이에요. 우리나라 프로 연주자들보다 잘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굉장히 많죠. 악기 연주를 통해 어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거를 집에서 ‘플레이’하고 놀더라고요. 한국도 점점 그런 문화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개인이 성장하는 문화로 말이죠. 그런 성장의 개념으로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귀고 배우며 성장하는 부분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게 정말 가치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앞으로도 편하고 따뜻한 소리가 나는 악기를 만들어나갈 예정이고요. 또,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알리도록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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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정기왕
Q. 안녕하세요. 〈월간색소폰〉 구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과 일본 도쿄예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최근 12월에 귀국 독주회를 가진 색소포니스트 정기왕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지난 12월 귀국 독주회를 하셨는데, 연주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을까요? A. 클래식 색소폰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라 프로그램 선정에 있어서 ‘대중에게 어떻게 하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Edvard Grieg의 서정 소곡집에 있는 피아노곡이나 비제의 〈Carmen Fantasy〉와 같은 대중의 귀에도 친숙한 곡을 넣었습니다. 또,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현대적인 악기이기 때문에 색소폰을 하는 전공자라면 현대곡 하나쯤은 프로그램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Water Shadows〉라는 곡도 프로그램에 넣어 초연하게 되었습니다. 〈Once Upon A Time〉, 〈Peace Of The Woods〉는 Edvard Grieg의 서정 소곡집에 있는 피아노곡으로 이 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한다는 것 자체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대중들이 귀에 익숙한 피아노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하면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Carmen Fantasy〉같은 경우는 편곡 버전이 여러 가지 있는데, 아츠시 야마나카 편곡 버전은 제가 처음으로 연주했습니다. 특히, 이 버전은 굉장히 어렵게 편곡된 곡으로 저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어려웠던 곡이었던 것 같습니다. Q. 독주회 프로그램 중 〈Water Shadows〉라는 곡을 한국에서 초연했는데, 곡에 대한 소개와 어떤 해석으로 연주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Water Shadows〉의 작곡자인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에 대해 소개하자면, 오사카 출신이시고 현재 도쿄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자 윤이상 선생님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이케노우치 토모지로 선생님과 같은 클래스셨죠. 제가 학교 다닐 때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을 만나 곡에 대해 얘기 나누던 중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는데, 색소폰 소리를 ‘속이 빈 물줄기’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Water Shadows〉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물의 그림자라는 뜻이에요. 물의 진동하는 흐름을 생성하는 곡이고 물은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물로 이 자체는 영혼이지만 그 영혼의 그림자라는 것은 물과 같은 우주 속에서 물이라는 것에 둘러싸여 있고 그 자체가 흔들려서 그림자를 일으키며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이미지로 작곡된 곡입니다. 이 곡의 특이점은 ‘미분음’이라는 음이 많이 나와요. 미분음은 반음 간격보다 더 세밀한 간격을 가진 음이라고 하거든요. 예를 들어 도 다음에는 도#이 나오는데 도와 도# 사이에 음이 하나 있는 거죠. 그거를 미분음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표현이 많이 들어간 곡이고 섬세한 컨트롤이 요구되어 까다롭고 어려운 곡이기도 합니다. 제 스승님인 노부야 스가와 선생님에게 헌정된 곡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이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곡 자체가 너무나 멋이 있었고 까다로운 테크닉이나 색소폰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에 대해 한국에서 초연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Q. 정기왕 색소포니스트는 어떤 해석관을 가지고 연주에 임하는 편인가요? A. 연주나 곡에 대한 해석을 할 때 항상 모든 방법을 열어놓는 편입니다.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고 넓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연주하면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관객 입장에서는 제가 의도한 표현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입견을 제 기준으로 정해놓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물어보는 편입니다. 음악을 할 때에는 타인과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남들이 말하는 것을 잘 경청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Q. 한예종 졸업 후 일본 도쿄예술대학원 색소폰 전공을 한국인 최초로 입학하고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색소폰 공부를 일본에서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었나요? 또 그곳에서 공부하시면서 어떤 점들이 인상 깊었나요? A. 노부야 스가와라라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연주자가 일본에 계셨어요.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라면 누구나 다 알죠. 그분에게 꼭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누구도 일본으로 색소폰 유학을 간 적이 없었거든요. 도쿄예술대학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는데, 시험을 보기 전에 선생님께 레슨을 한 번 받을 수가 있어요. 레슨을 받는데 저한테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한국에만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다행히 좋게 봐주신 것 같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음악이 좋고 이런저런 것을 보완해서 시험을 보라고 하셔서 최대한 준비해서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합격했죠. 일본 도쿄에 센조쿠 가쿠엔이라는 음악 대학이 있는데, 거기는 색소폰 전공자만 100명이 넘어요.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수업을 할 정도예요. 한국에 비해 시장이 굉장히 크죠. 또, 일본 색소폰 연주자들 같은 경우는 거의 8, 9살부터 시작을 해요. 제가 17살부터 시작을 했다고 하니까 스가와라 선생님도 깜짝 놀라더라고요. 시작하는 속도도 다르고, 어린 나이부터 배우는 만큼 체계적으로 배울 수가 있잖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타국에 비해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는 면에서 부족한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는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더 앞을 보았을 때 좋은 연주자를 얻기는 어려운 거죠. 일본의 학생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미스도 나고 틀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지만 연주 내용은 너무 좋거든요. 음악의 흐름 자체가 다르고 조금 틀리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반면 한국은 연주 내용은 엉망이어도 일단 안 틀리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그곳 학생들만큼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정말 힘들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야말로 인내의 시간이었죠. 선생님도 그걸 알고 따로 말씀하시더라고요. “인내심을 가져라”, “인내심을 가지고 해라” 그 말씀대로 꾸준히 하다 보니까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지금도 그 말이 제게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간혹 힘들 때 그 말을 많이 떠올리거든요. 음악을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일본에서 아마추어 연주자는 어떻게 색소폰을 접하나요? A. 일본에서 색소폰 한다고 하면 너무나 멋지다는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색소폰에 대해 잘 아는 편이죠. 일본의 아마추어 색소폰 시장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겪어보지는 않고 누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악기사라는 기본 개념에 대해 생각할 때 보통 물건을 사고팔고 수리하는 개념이잖아요. 일본은 그런 기능과 동시에 색소폰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포함되어 있어요. 색소폰을 배우기 위해서 악기사로 가는 거죠. 그 악기사에 색소폰 선생님이 두세 명 등록이 되어있어서 선생님들의 프로필을 보고 선택해서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어요. 거기서 선생님을 선택하면 악기사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레슨을 진행하는 거죠. 색소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색소폰을 배우는 데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 A. 색소폰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연주자들이 연주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 여쭤본게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클래식 색소폰을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요. 선생님도 똑같이 연주를 많이 해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주를 많이 하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요. 또 처음부터 너무 딱딱하고 무거운 곡들 말고 듣기 좋은 곡들로 연주하고, 아마추어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올라가라고 세 가지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1, 2년에 한 번씩은 독주회를 꾸준하게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라면 누구나 아는 곡, 입시곡,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드는 누구나 다 아는 곡 등 도전적인 곡들을 많이 연주해보고 싶고요. 또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며 같은 클래스 선후배 출신들로 구성된 앙상블 팀을 만들었어요. 올해 11월에 공연 예정 중에 있습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는 확실히 다른 악기보다는 표현 방법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현대 작곡자들이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대해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하죠. 여담으로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이 색소폰은 어느 계절의 악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너무 어려워서 대답을 잘 못했어요. 선생님은 겨울의 악기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흥미로웠죠. 색소폰은 정말 다양한 표현력과 가능성을 가진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연주자로써 색소폰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연주를 통해 관객과 소통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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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은 내 삶의 활력소’ 꽃숙이 김호숙씨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겨울의 문을 열고 활짝 핀 꽃 속의 화원에 들어서는데 “어서 오세요?”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반갑게 나를 이끌었다. 여기가 “꽃숙이네 꽃집인가요?” 묻는 소리에 정겹게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하고 다소곳한 모습이다. ‘꽃숙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색소폰을 하는 사람이라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하며 대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호인들과 교류를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오감을 모두 즐기고 사는 색소폰 연주자로, 차분한 성품에 겸손함이 몸에 뵈어 만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며 꽃과 나무 향기 속에서 사계절을 모두 봄처럼 살고 있는 그녀의 색소폰 사랑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본인 및 가족 소개를 해 주세요. A. 대전에서 40여 년 동안 꽃집을 운영하며 꽃과 나무와 함께 살아오다가 10여 년 전에 색소폰을 만나서 지금은 꽃보다 색소폰을 더 사랑하게 된 올해 67세 김호숙(꽃숙이)입니다. 가족은 함께 꽃집을 하고 있는 남편과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아들(김다흰)은 연극배우인데 현재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주말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전종렬 역)이며 수학교사로, 일타 강사(최치열 역)인 배우 정경호의 대학 동기 역할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딸(김다별)은 대전에서 연극 연출 활동을 하며 지난해에 대전지역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Q. 가족이 모두 예능에 소질이 있고 끼가 많은가 봅니다. 색소폰은 언제부터 시작하고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친가 쪽에 끼가 있는 분이 계셨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진로까지 이어졌나 봅니다. 저는 원래 음악을 듣기 좋아하고 악기는 다루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지인이 하는 동호회에 함께 들렀다가 드럼을 치는 지인의 소개로 2010년 1월 음악 학원에 등록하고 드럼을 배웠습니다. 드럼을 치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신나게 연습하는 중 지역 행사에 구경 갔다가 무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여서 행사 진행 요원에게 “저도 배우면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나요?”라고 여쭤보니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배우던 드럼을 뒤로하고 색소폰으로 악기를 바꿔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색소폰을 배우고 1년 뒤부터 지금까지 매년 마을 행사에 초대되어 연주하고 있습니다. Q.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무대에 처음 서게 되었을 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실력도 없는데 자신감이 충천하여 신나게 부르다가 음 이탈이 여러 번 났는데 창피함에 두고두고 생각이 나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왕초보로 얼굴이 화끈거릴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주하며 전국 각지의 여러 동호회나 프로 연주자 모임 등에 바쁘게 쫓아다니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코피가 멎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는 색소폰을 불면 압력 때문에 또 코피가 날 수 있다고 당분간 연주를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습관처럼 불었습니다. 그런데 코피가 멎지 않아 밤에 응급실에 실려갔고, 결국 수술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색소폰 연주가 너무 좋아서 무모하게 행동했던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Q. 평소에 색소폰 연습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나요? A. 색소폰이 너무 좋아서 동호회 연습실과 각종 색소폰 모임에 쫓아다니다 보니 꽃집 일을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집에 60평 규모의 음악실과 무대를 만들어 주어서 꽃집 일이 끝나면 혼자서 연습을 하며 즐기고, 가끔 동호회나 연주자 모임 장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남편이 저의 색소폰 사랑에 적극 지원해 주며 든든한 외조를 하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활동했던 동호회 모임이나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A. 2010년 처음 색소폰을 만난 이후로 색소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말 많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대전 지역 동호회 모임인 ‘고운소리’를 시작으로 대전 지역 연주자 모임, 대전 색소폰 동호회 ‘소리 한마당’, 옥천 향수 색소폰 앙상블, 색소피아 전국모임 대전지역장, 색소폰 나라, 우송정보대 평생교육원 색소폰 CEO 과정 수료, 지역 봉사활동과 발표회, 색소폰 라이브 방송(임민택, 찰리박 100회 특집, 왕상근, 버나드 마틴, 박재영 색소폰 TV 등) 출연 등 색소폰 연주를 통해 온라인, 오프라인 교류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Q. 예명이 꽃숙이인데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불리게 되었나요? A. 꽃집만 할 때는 남편이 노래 제목에 있는 꽃순이로 불렀는데, 색소폰을 시작하면서 전국 색소폰 카페에 ‘꽃숙이’라는 닉네임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Q. 색소폰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나에게 색소폰이란?) A. 저에게 색소폰은 삶의 활력소이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꽃집을 운영하는 제게 꽃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과 좋은 향기로 눈과 코를 즐겁게 해 주지만 색소폰은 멋진 연주로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제겐 노래하듯이 연주하는 색소폰이 아주 매력적인 악기로 다가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색소폰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색소폰 연주라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및 만남이 정말 좋습니다. 동호회 모임이나 공연을 통해 교류하고 공연을 하고 난 뒤의 만족감과 성취감은 색소폰을 하면서 느끼는 소중한 경험이고 행복입니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제겐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색소폰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쭉 이어가길 바랍니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데, 아직도 색소폰을 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면 하루라도 빨리 도전해서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무엇인가요? A. 저는 오직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색소폰 연주를 오래오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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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박동준
제천하면 떠오르는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은 제철을 비롯한 강릉, 춘천, 원주 등 20년째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주관하며 색소폰 업계와 지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자신만의 고유 감성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의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을 선사하고 싶다는 그는 연주자로서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을 만나 그의 ‘감성’이야기를 들어봤다.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은 18살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다. 친구이자 동료인 가수 최호섭과 가수 변진섭 콘서트 무대에 참여하며 무대의 진가를 알게 됐다. 오랜 시간을 다양한 연주자들과 무대에 올랐기에 지금도 그룹사운드 음악을 참 좋아한다는 그다. “올해로 음악을 한 지는 41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저는 어렸을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에 비해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던 학생이었어요. 그런 저에게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만난 음악은 거부할 수 없는 세계였죠. 그렇게 음악의 세계에 발을 디디며 무대에 올랐죠. 그러다 훗날 가수 최호섭 씨 그리고 가수 변진섭 씨 콘서트 무대에 같이 오르게 되면서 공연의 진가가 뭔지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저는 고작 가수 변진섭 밴드의 일원이었는데도 팬레터를 수십 통씩 받았죠. 공연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웃음). 그렇게 18살부터 실전 음악을 해오다 보니 지금도 그룹사운드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죠.” 박동준은 매년 자신의 이름을 건 디너콘서트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경연 대회 행사 및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서며 관객과 호흡해오고 있다.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기 위해 지갑을 열만큼 매력적인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관객이 객석에서 연주자를 바라봤을 때 무대가 차 보이는 느낌이 들 만큼 무대를 장악해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무대 연출도 직접 하게 되는 것 같고요. 대중들이 와서 봤을 때 ‘돈을 내고 표를 사서 가볼 만한 공연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제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마음을 읽고 만족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박동준 연주자와 음악적인 얘기를 나누며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바로 ‘감성’이라는 단어다. 그가 말하는 감성의 의미는 정성을 다한다는 데에 있다. 솔직한 연주, 영혼이 실린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어떻게 정성껏 음으로 담아내느냐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영혼이 실린 연주는 음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고유 감성을 담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거죠. 듣는 사람은 그걸 느껴요. 연주자가 음 하나를 내는 데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말이죠. 설령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 거죠. 타고난 자신만의 감성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연주해야하는지 아는 게 연주자에게는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감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단지 그 부분에만 치우쳐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감성에는 기본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감정이 과잉되면 오버 필이 되거든요. 하지만 기본이 잘 잡힌 상태에서 감성이 입혀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겠죠. 케니지가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수 있었던건 음악을 모르는 대중들의 마음에도 파고드는 듣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감성 있는 연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저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가 들어도 느낄 수 있는 저만의 감성 연주, 영혼이 있는 연주를 하는 게 제 소망이죠. 음악인 중 저처럼 질곡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한마디로 애환이 깊죠. 그렇기에 그 삶 자체가 색소폰 연주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박동준 연주자는 안양대학교에서 색소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강좌 시간에는 박동준 연주자 특유의 유머와 핵심을 찌르는 강의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아 즐거우면서도 다음이 기대되는 수업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안양대학교 수업은 18주 기간의 수업을 한 기수로 쳐서 현재 4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좌 인원은 스무 명이 넘고요. 수업은 학생들의 공통 관심사를 위주로 해서 해당 주제에 대한 강의를 진행 후 실전으로 대입할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수업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꼭 가르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학생이 수업을 받기 위해 나오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죠. 학교에 가면 재미있고, 빠지기 싫다는 느낌 같이요. 가르치겠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학생에게 다 쏟아내려 한다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박동준은 다양한 공연 행사와 더불어 3월, 영흥도에서 개최하는 〈제1회 전국 시니어 색소폰 경연대회〉와 10월, 〈제천 아마추어 색소폰 경연대회〉 진행 기획 및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경연대회에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며 어떤 연주자가 상을 탈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심사위원들이 듣는 귀가 어느 정도 일정한 편이며, 앞으로의 심사에 있어서도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색소폰과 같은 악기든, 사람의 목소리든 일단은 소리가 좋아야 합니다. 거기에 음이 적합하게 맞으면 됩니다. 자신이 가진 실력보다 넘치는 기술을 구사하려고 하면 오히려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됩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가 어려운 노래를 간신히 연주하는 것보다 쉬운 노래를 멋지게 잘 부는 것을 대체로 선호합니다. 무난하게 감정 표현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감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노래로 도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동준 연주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자산”이라며 자신이 남에게 주는 것에 비해서 받는 게 많은 것 같다고 인터뷰 중 말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인복이 많다는 얘기도 왕왕 듣는다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에 대해 겸손으로 일관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주변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연주하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며 박동준 연주자의 매력이 느껴지는 소탈한 대답으로 웃음을 남겼다. “연주자에게는 연주가 언제나 최고의 생명이죠. 음악 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가장 원하는 일은 자신의 무대를 갖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관객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좋은 공연을 하고 싶고요. 음악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해나가고 싶죠. 또, 마지막으로 주위에서 도와준다면 소망이 하나 있는데요. 제천에서 정기적으로 색소폰 축제를 열어 제천하면 색소폰이 떠오르게 하고 싶은 겁니다. 더불어 연주자로써 혹은 인간적으로써 주변 선후배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욕심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자는 박동준 연주자의 ‘결혼’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지금의 아내 될 사람과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 지금은 너무나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그. 인터뷰에서 차마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던 고난과 시련을 거쳐 왔다는 박동준 연주자에게 ‘평범’이라는 가치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식을 넘어 색소폰 계의 축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전국 각지의 색소폰 관계자들이 그의 결혼식을 축하하고 있다. 그의 앞길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라며,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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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최보윤
Q. 안녕하세요. 먼저 〈월간색소폰〉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최보윤 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학 후 한국에 들어온 지 9년차이고 현재 모교인 이화여대와 울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밖에는 여성 색소폰콰르텟 울림색소폰앙상블 대표로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지난 12월, 독주회를 가진 것으로 압니다. A. 네. 저는 이번 독주회가 세 번째 독주회였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에 비해 관객 여러분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보니 관객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초점이 관객 입장에서의 즐거움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 독주회의 제목도 ‘어느 저녁의 유희'로 이름 붙였는데요. 클래식이라는 무거운 느낌의 거리감을 좁히고 또, 관객들이 모처럼 연주회 오셔서 음악이 주는 감성과 감동을 누리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프로그램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Q. 개인적으로 독주회 프로그램 중 어떤 곡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A. 이번 연주회는 1부는 피아노 반주에 독주를 하였고 2부는 색소폰 사중주에 독주를 하였는데요. 1부에서는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의 〈Chant du ménestnel〉, 2부에서는 비발디 〈사계〉중 ‘겨울’ 전악장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글라주노프의 〈Chant du ménestnel〉은 해석하면 '음유시인의 노래’인데 원래는 첼로 독주를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프레이징의 길이가 현악기에 맞춰지다 보니 감정 선의 연결 자체가 매우 길고 표현 면에서는 깊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게다가 러시아 작곡가 특유의 넓고 웅장한 느낌이 있어서 한 곡 안에 그것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연주해 내는 것이 저한테는 몰입력을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많이 아시는 비발디〈사계〉중 ‘겨울’은 바이올린 솔로 원곡인데,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하였고요. 화려한 테크닉이 돋보이고, 고전 작품임에도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부분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네요. 함께 반주해준 사중주 색소포니스트들이 저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한국에서 입시를 치르고 연주 활동하며 프랑스에서도 함께 유학한 친구들로 구성해 제 개인적으로도 소회가 남달랐습니다. Q. 최보윤 색소포니스트는 어떤 스타일의 연주를 어떤 해석으로 하는 연주자인가요? A. 고전부터 현대음악까지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작곡가들의 곡을 주로 연주하고요, 그 외에 팝이나 뮤지컬 음악 뉴에이지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을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톤의 무드를 가지고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연주자는 곧 좋은 전달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연주할 곡이 선정되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작품의 방향성을 정확히 표현해야 해서 작곡가의 마음 혹은 의도 파악을 위해 시대적 배경 및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을 위해 사용된 음악적 수사들을 숙련된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연습의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제가 어설프게 알아서는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거든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몸에 온전히 체화가 돼야 세세한 표현들이 무대에 녹아들어 관객들이 제가 만든 세계관에 초대되어 음악을 충분히 느낄 수 있거든요. Q.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A.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부분이 유독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가져지는 그런 단점들이 있다는 거예요. 내성적이고 음악이 갇혀 있는 어떤 그런 부분이요. 클래식은 높은 감정을 가지고 절제하는 법을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표현과 감정들이 많고 커야 돼요. 한국의 교육적인 실태가 입시 위주로 많이 맞춰져 있고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다 보니 그런 부분이 많이 결여돼 있어요. 음악을 해석하는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하는 지 모르겠다는 친구들도 많죠. 그래서 제가 공부한대로 작곡가와 시대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테크닉으로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다이내믹의 폭을 더 넓히고 표현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도 학생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악보대로 연주하는 법에 초점을 맞추는 편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 A. 가깝게는 3월 5일에 살롱드무지크에서 독주와 듀오로 연주회가 있어요. 관객을 최소한의 인원으로 프라이빗한 살롱 연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인데, 관객과의 거리가 앞 열과는 거의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클래식 색소폰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악기 소리로만 전달을 하는데, 저도 그 정도로 가까이에서 독주는 처음이라 기대가 더욱 많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소속되어 있는 앙상블 팀이 ‘울림’과 ‘더 모던’ 두 팀인데요. 두 팀 모두 올해 정기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더 모던’은 저의 대학 때 사사이신 이범훈 선생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팀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8~12명 구성으로 최고의 루키들로 모아 창단한 색소폰 앙상블 팀입니다. 첫 정기연주회를 올 11월 29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고요. 울림색소폰앙상블 이번 정기연주회는 국내 작곡가 네 분께 곡을 의뢰하여 창작곡으로 무대를 꾸미는 계획을 스케치 중입니다. 울림색소폰앙상블로 활동하는 [울림시스타즈] 유튜브 활동은 지금도 계속 업로드 중이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Q.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A. 제가 귀국 후에 한국 길거리에 있는 많은 색소폰 동호회 간판들을 보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자들의 저변이 이렇게 확장되었구나’를 그때 느꼈죠. 색소폰 콘텐츠를 소비하는 층이 두꺼워지고 다양해지면 저희 같은 연주자나 선생님이 많은 활동이 가능해져요. 또한 그것을 공급해 주는 많은 악기사와 수입사들 악보와 반주 콘텐츠 업체 등이 발전하고 이 세 가지를 촘촘히 묶어주는 네트워크들 가령 밴드 및 카페 커뮤니티 그리고 이렇게 〈월간색소폰〉 같은 좋은 잡지사가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면 대한민국 색소폰 시장이 선진 대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쁘게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께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늘 부탁드립니다. 또 많은 색소폰 연주회에 발걸음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늘 무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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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윈드오케스트라와 주승진 선생님
2009년에 창단해 올해로 12년 차를 맞이한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신성중학교 내 최초로 구성된 윈드 오케스트라로 약 74명의 청소년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통 클래식부터 국악, 무용, 팝, 오페라 등 다양한 곡 프로그램을 기획해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며, 1인 1악기 시대에 ‘즐겁게 음악하기’의 표본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10월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제10회 정기연주회&예술드림거점학교 합동 연주〉를 마쳤다. 합동 연주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였으며, 100여 명이 넘는 인원에게서 뿜어내는 웅장한 선율이 연주홀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캐리비안 해적 OST〉와 같은 친숙한 선곡으로 성인 오케스트라도 소화하기 힘든 다양한 연주를 선보이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1학년부터 3학년, 총 74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관악부는 관악기, 타악기 등 11개 파트로 세분화되어 있다. 동아리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며, 모든 악기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앙상블, 솔로, 합주 위주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지도자 교육을 통해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 활동과 많은 연습과 교육, 노력이 더해져 창단 다음 해인 2011년에는 〈안양과천예능경연대회〉에서 2015년까지 4년 연속 1위를 하며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인 2011년 경기도 교육청 주최 〈경기도 학생 예능 경연대회〉 안양·과천 대표로 우수입상작발표회에 출연하였고, 2011년부터 12년 연속 〈대한민국관악경연대회〉 수상을 비롯해 경인일보 주최 〈전국 학생 오케스트라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2017년 〈제16회 안양시민축제〉에 초청되어 메인 공연과 안양과천 학생어울림한마당에 참가하기도 하는 등 교외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경기도청소년관악제에서 3년 연속 대상 및 각종 대회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명실상부 전국구 관악부로 거듭났다. 신성윈드오케스트라가 있는 신성중학교는 ‘꿈과 끼, 열정이 있는 행복한 학교’라는 교육 목표 로 개인지도 및 합주와 맞춤형 교육을 통해서 세계를 무대로 폭넓게 나아갈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윈드오케스트라를 통해 악기 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예술고로 진학하여 각종 콩쿠르 입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차세대 음악 예술인을 육성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 교육부가 지정한 예술드림거점학교로써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2009년부터 신성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윈드오케스트라(관악부)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관현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트롬본을, 대학원에서는 음악교육을 전공했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 창립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제가 고등학교 때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관악부에 들어가보는게 어떠냐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악기를 시작하며 비롯된 것입니다. 관악부에 들어가 같이 연주하는 게 즐거웠고 꿈을 꾸게 되고 밝아지는 스스로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좋았던 경험을 토대로 저와 같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싶었습니다. 2009년에 신성중학교에 부임하여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5층, 자그만 한 음악실에서 시작하였고, 당시 악기 하는 아이들은 있는데 예술 동아리와 같은 활동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당시 활동했던 아이들은 10여 명 남짓. 지금은 74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윈드 오케스트라 연주 동아리가 됐고, 단원 중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전에 악기를 배웠던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악기 연주에 초보인 학생들이 관악합주부에서 함께 하모니를 맞추며 연주를 할 수 있는 꽤 수준 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2010년 창단한 신성중학교 윈드오케스트라 관악부를 시작으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아리 이름뿐만 아니라 학교의 이름까지 널리 알리며 신성중의 자랑으로 성장해왔습니다. Q. 관악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오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A. 1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당시 처음 가르쳤던 아이들이 대학 졸업생이 됐습니다. 여러 상위권 대학에 입학해 악기를 전공하는 친구도 있고, 여전히 취미로 연주하는 제자도 있습니다. 연주가 있을 때면 졸업한 제자들이 와서 도와주고, 간식도 사들고 오는 모습을 보면 어려워도 어떻게든 오케스트라를 운영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연주하는 게 참 재밌었다고, 좋았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감회가 남다릅니다. Q. 앞으로 어떤 단체를 만들어 나가고 싶나요? A. 아이들이 여기서 음악을 하는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대규모로, 거창하게 운영하는 것보다는 내실 있게 지금처럼 아이들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단체로 남고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다수의 연주와 재능기부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며 성장해왔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윈드 앙상블을 연주하여 발전시키고 그 음악을 많은 학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연주자로서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또 교육자로서도 배워왔던 것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2009년에 부임하여 신성관악부를 창단하고 신성중에서만 13년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는 게 좋아요.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웃음) Q. 윈드오케스트라에 대한 개인적인 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지도 교사로서 앞으로 교육 목표라 하면 윈드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개성과 독창성을 기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시대 흐름에 맞는 인재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창의성과 지적 호기심을 함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음악중점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프로그램과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무대를 발전시켜 나갈 것을 소망하고 신성 관악부의 연주가 앞으로 다양한 계층이 음악을 경험하면서 나눔의 음악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Q.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저희 관악부가 추구하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소통입니다. 이는 단원들 간의 소통도 의미하고 연주를 할 때는 파트너와의 소통, 그리고 청중들과의 소통 등 전부 포함됩니다. 이러한 소통들이 합쳐져 음악을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저희 관악부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관악부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더 발전하는 더 열정 있는 동아리가 되겠습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제가 5살~6살 정도 되었을 때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악기 연주가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A.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고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떤 곡을 연주해야 이 악기에 어울리는지 등 다양한 생각이 듭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A. 저희 관악 오케스트라 활동은 다양한 곳에 저희 학교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꿈을 보여주는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이지만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은 후배들이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역할을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A. 저는 주승진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지금은 신성중학교의 학생이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다시 신성중학교의 선생님으로 오는 것이 꿈이고 계획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악기 연주는 제가 신성중학교를 입학하고 한참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빠져있었는데, 마침 신성중학교에 관악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바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색소폰의 다양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인이라는 꿈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A.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 활동은 저에게 배움이 되는 활동이며 오케스트라의 도움이 되는 역할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저의 꿈은 훌륭한 색소폰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유튜브에서 우연히 드럼 영상을 보게 되면서 드럼 학원을 다니면서 레슨을 받았는데, 신성중학교에 관악부가 있어 다양한 타악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저는 악기 연주를 하며 인생을 살며 쉽게 경험하지 못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 스스로가 노력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A. 저희 오케스트라 활동을 많은 친구들이 협력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대회를 나가 상을 타고 저희만의 연주회를 개최해서 그동안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습한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졸업을 앞두고 있어 이제 신성윈드오케스트라 안에서의 활동은 못하겠지만 종종 학교에 와서 후배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중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신성윈드오케스트라가 신입생 환영음악회를 했는데, 그때 연주하는 선배들이 너무나 멋있게 보여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선택하게 된 건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소화할 수 있고 1846년 낭만주의 시대에 개발된 현대 악기이다 보니 슬랩 텅잉이나 오버톤과 같은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제가 색소폰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색소폰이 클래식에 쓰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클래식 색소폰을 하다 보니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에 매료되어 신기하였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A.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저에게 꿈을 심어준 존재입니다. 대중들이 접하는 일반 오케스트라처럼 현악 위주가 아닌 관악, 타악 총 1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일반 오케스트라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윈드 오케스트라 만에 매력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이 다 같이 모여 아름답고 웅장한 곡들을 완성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제 일상에서 어느 순간 음악 없이는 저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제 자신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매일 7시에 학교에 나와 연습을 하며 저에게 연주자라는 꿈을 심어준 윈드오케스트라는 제게 가장 소중한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인 브랜든최 연주자님처럼 클래식 색소폰으로 다양한 곡들을 연주하면서 대중들에게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들려주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또 저의 꿈은 클래식 색소폰 불모지인 한국에 클래식 색소폰 대중화를 위해 기여하고 싶고, 브랜든최 연주자님처럼 클래식 색소폰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습니다. Q.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저에게 처음 클래식 색소폰에 대해 알려주신 현재 제가 사사하고 있는 정순섭 선생님 덕분에 클래식 색소폰을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색소폰의 매력에 대해 더 깊이 접할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합니다. 클래식 색소폰 많이 사랑해 주시고 〈월간 색소폰〉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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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악기 대표 장홍상
- 예찬악기 장홍상 대표(이하 장 대표)는 2006년 엘로이 시리즈1 개발을 시작으로 2007년 엘로이 시리즈2, 2008년 엘로이 시리즈3 프로페셔널, 2011 제네시스마스터 시리즈6 헤머링 그리고 2014년 제네시스마스터 시리즈 7 커스텀 아크를 직접 설계와 개발을 통해 중국·대만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국내외 프로 연주자들과의 소통으로 인해 만들어진 예찬악기의 색소폰은 입문자부터 프로 연주자까지 스펙트럼이 넓으며, ‘국내 유일의 색소폰 개발 회사’라는 프로모션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예찬악기가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던 과정이 있었다는데.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장 대표가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다니던 직장에 작별을 고하며 시작됐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다양한 악기를 접하며 자랐던 그는 유년 시절을 생각하며 돈은 많이 못 벌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당시 직장 생활이 안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사 나오고 나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궁리하다 큰돈을 벌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었으니까 음악 관련된 일을 해보기로 한 거죠. 색소폰 시장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시장에 뭔가 있다는 게 느껴졌죠. 원래 회사에 있을 때 영업 관련된 마케팅을 했었거든요. 색소폰이 분명히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서 처음 거래를 시작한 회사가 중국 상해에 있는 큐피드라는 회사였어요. 그때는 자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무역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책이나 인터넷에 있는 중국 원문 같은 자료들을 뒤져 회사를 찾아 컨택해서 모아놓은 퇴직금으로 색소폰 100대를 수입해 집에 가져다 놓고 팔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들여온 100대 중에서 1대 나갔어요. 그것도 아주 어렵게 말이죠. 그러더니 바로 반품되더라고요(웃음). 정말 암울했어요.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다지만 색소폰에 대해서는 잘 몰랐거든요. 굉장히 심각했죠. 그런 간절함이 발현됐나봐요. 다급하게 여기저기 다니며 발품을 팔다 보니 한 3주 지났을까, 30대가 하루에 한 번에 나가더라고요. 며칠 있다가 또 다른 곳에서 연락 오고. 그러면서 또 100대를 들여왔죠. 그랬더니 이것도 마찬가지로 불과 한 달도 안 돼서 다 나갔어요. 그다음에는 200대씩 수입을 했었죠. 그러면서 매장도 얻게 되고 직원도 들어오고 한 거죠.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시리즈Ⅰ을 30만 원 대로 수입하기 시작해서 6개월 지난 시점에 시리즈Ⅱ를 60만 원에 그리고 1년 돼가는 즈음에 시리즈Ⅲ 80만 원대로 점점 발전시켰어요. 그러다 여기서 더 좋은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만으로 건너가 고가 브랜드를 만들게 된 거죠. 전 세계 자체 공장을 가진 셀마와 야나기사와를 제외하고 OEM 공장 중에서 가장 잘 만드는 공장이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악기를 설계해 제작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장 대표는 업계에서도 중국어를 잘 하기로 소문났다. 2012 중국 상하이 국제 전시회, 2014 중국 상하이 국제 전시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전시회 등 세계 시장을 누비며 유창한 언어를 구사하는 그의 모습이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남달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력 뒤에는 그가 중국어를 그렇게 잘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들이 있었다. “중국과 거래를 하면서 정말 100번도 넘게 간 것 같아요. 여권을 세 번 바꿨으니까요. 그 정도로 중국을 많이 오가다 보니 중국어는 그냥 알아서 잘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준비하던 초창기 때는 시간이 많아 중국어 회화책 여러 권을 사서 7, 8번은 읽고 또 읽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책으로 공부해도 막상 중국에 가니 중국어가 안 들리더라고요. 방언이 많은 중국의 지역적 특색도 있었지만 결국은 언어는 노출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됐죠. 횟수로 중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자주 듣고 말하게 되니 어느 순간 들리더라고요. 또 악기를 한 달에 200대씩 들여오다 보니 현지에서 검수 작업을 꼼꼼히 해야만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도 중국어를 잘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많았죠(웃음).” 장 대표는 “악기는 소리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소리에 대해 진심이다. 그렇기에 더 좋은 색소폰 소리를 위한 공법에 대해 연구하고 또 그에 추가적으로 따라오는 악기 외의 부가적인 것들을 같이 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양한 연주자들의 체감을 통해 얻어진 연구 결과물들을 통해서도 한국인의 대중적 정서에 맞는 소리로 합의점을 찾아 실제로 구현하기 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들이 있었다. “색소폰을 배우고 알게 되다 보니 다양한 방면으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해외에 나갔을 때 기술자나 엔지니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들이 하는 것들을 보며 같이 개발하게 됐죠. 결국 악기는 소리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소리와 편안하게 움직이는 운지에 대해 배제하고 생각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저희는 헤머링 공법, 옛날 방식 그대로 악기를 만들고 있어요. 또,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 외에도 마우스피스, 리드, 리가처 같은 부가적인 것들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들도 같이 개발하게 된 거죠.” “연주자들이 원하는 소리가 가지각색인데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쉽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색소포니스트 케니 지가 원하는 소리로 악기를 만들면 무조건 반응이 좋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시장이 원하는 소리는 따로 있죠. 한국에서 색소폰을 소비하는 주된 연령층이 6·70대잖아요. 그분들이 즐겨 들으시는 음악 장르가 트로트이기 때문에 주로 트로트 연주에 많이 나오는 따뜻한 소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죠. 한정된 자원으로 투자해서 시장 전반의 기조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사업적으로 중요했던 순간을 뽑으라면 색소폰 붐이 중반부에서 후반으로 가던 시기였어요. 그때 도전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양한 악기 시리즈가 있지만 저가대로 좋은 악기 개발을 많이 했거든요. 더 좋은 악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연주자들에게 “이 악기 좋은데요?”라는 말을 듣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제가 존경하는 김원용 선생님께 색소폰도 배우기 시작했던 거고 그밖에 다양한 선생님들이나 연주자들에게 의견을 수용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며 개발했죠. 그런 과정에서 배운 것도 많았고 상처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행복했던 것 같아요. ‘여태까지 성장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 대표는 앞으로 색소폰 시장에 대해 “개개인이 성장하는 깊이 있는 문화로 가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바뀐 문화적 양상이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이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알리도록 돕는데 힘쓰고 싶다는 그는 ‘행복한 일을 하겠다’는 면에서 첫 사업을 떠올리던 그때의 가치관과 달라지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서 문화 자체가 바뀌었잖아요. 코로나 이전과 같은 양적 팽창이 다시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모이는 문화였던 전과 반대로 지금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다양한 취미가 생겼죠. 그런 양적 측면에서 색소폰의 큰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깊이는 더 있어질 것 같아요. 일본 같은 경우는 취미 생활의 깊이 정도가 수준이 높은 편이에요. 우리나라 프로 연주자들보다 잘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굉장히 많죠. 악기 연주를 통해 어떤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거를 집에서 ‘플레이’하고 놀더라고요. 한국도 점점 그런 문화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개개인이 성장하는 문화로 말이죠. 그런 성장의 개념으로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사귀고 배우며 성장하는 부분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게 정말 가치있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앞으로도 편하고 따뜻한 소리가 나는 악기를 만들어나갈 예정이고요. 또,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을 알리도록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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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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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악기 대표 장홍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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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정기왕
- Q. 안녕하세요. 〈월간색소폰〉 구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과 일본 도쿄예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최근 12월에 귀국 독주회를 가진 색소포니스트 정기왕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지난 12월 귀국 독주회를 하셨는데, 연주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을까요? A. 클래식 색소폰이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느낌이라 프로그램 선정에 있어서 ‘대중에게 어떻게 하면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Edvard Grieg의 서정 소곡집에 있는 피아노곡이나 비제의 〈Carmen Fantasy〉와 같은 대중의 귀에도 친숙한 곡을 넣었습니다. 또,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현대적인 악기이기 때문에 색소폰을 하는 전공자라면 현대곡 하나쯤은 프로그램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Water Shadows〉라는 곡도 프로그램에 넣어 초연하게 되었습니다. 〈Once Upon A Time〉, 〈Peace Of The Woods〉는 Edvard Grieg의 서정 소곡집에 있는 피아노곡으로 이 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한다는 것 자체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대중들이 귀에 익숙한 피아노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하면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Carmen Fantasy〉같은 경우는 편곡 버전이 여러 가지 있는데, 아츠시 야마나카 편곡 버전은 제가 처음으로 연주했습니다. 특히, 이 버전은 굉장히 어렵게 편곡된 곡으로 저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어려웠던 곡이었던 것 같습니다. Q. 독주회 프로그램 중 〈Water Shadows〉라는 곡을 한국에서 초연했는데, 곡에 대한 소개와 어떤 해석으로 연주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Water Shadows〉의 작곡자인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에 대해 소개하자면, 오사카 출신이시고 현재 도쿄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자 윤이상 선생님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이케노우치 토모지로 선생님과 같은 클래스셨죠. 제가 학교 다닐 때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을 만나 곡에 대해 얘기 나누던 중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는데, 색소폰 소리를 ‘속이 빈 물줄기’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Water Shadows〉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물의 그림자라는 뜻이에요. 물의 진동하는 흐름을 생성하는 곡이고 물은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물로 이 자체는 영혼이지만 그 영혼의 그림자라는 것은 물과 같은 우주 속에서 물이라는 것에 둘러싸여 있고 그 자체가 흔들려서 그림자를 일으키며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다는 이미지로 작곡된 곡입니다. 이 곡의 특이점은 ‘미분음’이라는 음이 많이 나와요. 미분음은 반음 간격보다 더 세밀한 간격을 가진 음이라고 하거든요. 예를 들어 도 다음에는 도#이 나오는데 도와 도# 사이에 음이 하나 있는 거죠. 그거를 미분음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표현이 많이 들어간 곡이고 섬세한 컨트롤이 요구되어 까다롭고 어려운 곡이기도 합니다. 제 스승님인 노부야 스가와 선생님에게 헌정된 곡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이 곡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곡 자체가 너무나 멋이 있었고 까다로운 테크닉이나 색소폰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에 대해 한국에서 초연으로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Q. 정기왕 색소포니스트는 어떤 해석관을 가지고 연주에 임하는 편인가요? A. 연주나 곡에 대한 해석을 할 때 항상 모든 방법을 열어놓는 편입니다.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고 넓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연주하면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관객 입장에서는 제가 의도한 표현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입견을 제 기준으로 정해놓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물어보는 편입니다. 음악을 할 때에는 타인과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남들이 말하는 것을 잘 경청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Q. 한예종 졸업 후 일본 도쿄예술대학원 색소폰 전공을 한국인 최초로 입학하고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색소폰 공부를 일본에서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었나요? 또 그곳에서 공부하시면서 어떤 점들이 인상 깊었나요? A. 노부야 스가와라라는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명한 연주자가 일본에 계셨어요.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라면 누구나 다 알죠. 그분에게 꼭 배워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누구도 일본으로 색소폰 유학을 간 적이 없었거든요. 도쿄예술대학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준비하는데, 시험을 보기 전에 선생님께 레슨을 한 번 받을 수가 있어요. 레슨을 받는데 저한테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한국에만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다행히 좋게 봐주신 것 같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음악이 좋고 이런저런 것을 보완해서 시험을 보라고 하셔서 최대한 준비해서 시험을 봤는데 운 좋게 합격했죠. 일본 도쿄에 센조쿠 가쿠엔이라는 음악 대학이 있는데, 거기는 색소폰 전공자만 100명이 넘어요.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수업을 할 정도예요. 한국에 비해 시장이 굉장히 크죠. 또, 일본 색소폰 연주자들 같은 경우는 거의 8, 9살부터 시작을 해요. 제가 17살부터 시작을 했다고 하니까 스가와라 선생님도 깜짝 놀라더라고요. 시작하는 속도도 다르고, 어린 나이부터 배우는 만큼 체계적으로 배울 수가 있잖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입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타국에 비해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는 면에서 부족한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는 입시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더 앞을 보았을 때 좋은 연주자를 얻기는 어려운 거죠. 일본의 학생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어보면 미스도 나고 틀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지만 연주 내용은 너무 좋거든요. 음악의 흐름 자체가 다르고 조금 틀리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요. 반면 한국은 연주 내용은 엉망이어도 일단 안 틀리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그곳 학생들만큼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정말 힘들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야말로 인내의 시간이었죠. 선생님도 그걸 알고 따로 말씀하시더라고요. “인내심을 가져라”, “인내심을 가지고 해라” 그 말씀대로 꾸준히 하다 보니까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지금도 그 말이 제게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간혹 힘들 때 그 말을 많이 떠올리거든요. 음악을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는 일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Q. 일본에서 아마추어 연주자는 어떻게 색소폰을 접하나요? A. 일본에서 색소폰 한다고 하면 너무나 멋지다는 반응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일반 사람들도 전반적으로 색소폰에 대해 잘 아는 편이죠. 일본의 아마추어 색소폰 시장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겪어보지는 않고 누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우리가 기본적으로 악기사라는 기본 개념에 대해 생각할 때 보통 물건을 사고팔고 수리하는 개념이잖아요. 일본은 그런 기능과 동시에 색소폰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포함되어 있어요. 색소폰을 배우기 위해서 악기사로 가는 거죠. 그 악기사에 색소폰 선생님이 두세 명 등록이 되어있어서 선생님들의 프로필을 보고 선택해서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어요. 거기서 선생님을 선택하면 악기사에 마련된 연습실에서 레슨을 진행하는 거죠. 색소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색소폰을 배우는 데 있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 A. 색소폰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연주자들이 연주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선생님한테 여쭤본게 있었어요. 한국에 돌아가면 클래식 색소폰을 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요. 선생님도 똑같이 연주를 많이 해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연주를 많이 하면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요. 또 처음부터 너무 딱딱하고 무거운 곡들 말고 듣기 좋은 곡들로 연주하고, 아마추어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올라가라고 세 가지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1, 2년에 한 번씩은 독주회를 꾸준하게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라면 누구나 아는 곡, 입시곡,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드는 누구나 다 아는 곡 등 도전적인 곡들을 많이 연주해보고 싶고요. 또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며 같은 클래스 선후배 출신들로 구성된 앙상블 팀을 만들었어요. 올해 11월에 공연 예정 중에 있습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는 확실히 다른 악기보다는 표현 방법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서 현대 작곡자들이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대해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하죠. 여담으로 니시무라 아키라 선생님이 색소폰은 어느 계절의 악기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너무 어려워서 대답을 잘 못했어요. 선생님은 겨울의 악기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하시더라고요. 흥미로웠죠. 색소폰은 정말 다양한 표현력과 가능성을 가진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연주자로써 색소폰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연주를 통해 관객과 소통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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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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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정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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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은 내 삶의 활력소’ 꽃숙이 김호숙씨
-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겨울의 문을 열고 활짝 핀 꽃 속의 화원에 들어서는데 “어서 오세요?”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반갑게 나를 이끌었다. 여기가 “꽃숙이네 꽃집인가요?” 묻는 소리에 정겹게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하고 다소곳한 모습이다. ‘꽃숙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색소폰을 하는 사람이라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하며 대전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호인들과 교류를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오감을 모두 즐기고 사는 색소폰 연주자로, 차분한 성품에 겸손함이 몸에 뵈어 만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며 꽃과 나무 향기 속에서 사계절을 모두 봄처럼 살고 있는 그녀의 색소폰 사랑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본인 및 가족 소개를 해 주세요. A. 대전에서 40여 년 동안 꽃집을 운영하며 꽃과 나무와 함께 살아오다가 10여 년 전에 색소폰을 만나서 지금은 꽃보다 색소폰을 더 사랑하게 된 올해 67세 김호숙(꽃숙이)입니다. 가족은 함께 꽃집을 하고 있는 남편과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아들(김다흰)은 연극배우인데 현재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주말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전종렬 역)이며 수학교사로, 일타 강사(최치열 역)인 배우 정경호의 대학 동기 역할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딸(김다별)은 대전에서 연극 연출 활동을 하며 지난해에 대전지역 젊은 연극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Q. 가족이 모두 예능에 소질이 있고 끼가 많은가 봅니다. 색소폰은 언제부터 시작하고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친가 쪽에 끼가 있는 분이 계셨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런 경험이 진로까지 이어졌나 봅니다. 저는 원래 음악을 듣기 좋아하고 악기는 다루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지인이 하는 동호회에 함께 들렀다가 드럼을 치는 지인의 소개로 2010년 1월 음악 학원에 등록하고 드럼을 배웠습니다. 드럼을 치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신나게 연습하는 중 지역 행사에 구경 갔다가 무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여서 행사 진행 요원에게 “저도 배우면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나요?”라고 여쭤보니 기회를 주겠다고 해서 배우던 드럼을 뒤로하고 색소폰으로 악기를 바꿔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색소폰을 배우고 1년 뒤부터 지금까지 매년 마을 행사에 초대되어 연주하고 있습니다. Q.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무대에 처음 서게 되었을 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실력도 없는데 자신감이 충천하여 신나게 부르다가 음 이탈이 여러 번 났는데 창피함에 두고두고 생각이 나서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왕초보로 얼굴이 화끈거릴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연주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주하며 전국 각지의 여러 동호회나 프로 연주자 모임 등에 바쁘게 쫓아다니다 보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코피가 멎지 않았어요. 병원에서는 색소폰을 불면 압력 때문에 또 코피가 날 수 있다고 당분간 연주를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습관처럼 불었습니다. 그런데 코피가 멎지 않아 밤에 응급실에 실려갔고, 결국 수술을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색소폰 연주가 너무 좋아서 무모하게 행동했던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Q. 평소에 색소폰 연습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있나요? A. 색소폰이 너무 좋아서 동호회 연습실과 각종 색소폰 모임에 쫓아다니다 보니 꽃집 일을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집에 60평 규모의 음악실과 무대를 만들어 주어서 꽃집 일이 끝나면 혼자서 연습을 하며 즐기고, 가끔 동호회나 연주자 모임 장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남편이 저의 색소폰 사랑에 적극 지원해 주며 든든한 외조를 하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활동했던 동호회 모임이나 현재 진행 중인 활동을 소개해 주세요. A. 2010년 처음 색소폰을 만난 이후로 색소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말 많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대전 지역 동호회 모임인 ‘고운소리’를 시작으로 대전 지역 연주자 모임, 대전 색소폰 동호회 ‘소리 한마당’, 옥천 향수 색소폰 앙상블, 색소피아 전국모임 대전지역장, 색소폰 나라, 우송정보대 평생교육원 색소폰 CEO 과정 수료, 지역 봉사활동과 발표회, 색소폰 라이브 방송(임민택, 찰리박 100회 특집, 왕상근, 버나드 마틴, 박재영 색소폰 TV 등) 출연 등 색소폰 연주를 통해 온라인, 오프라인 교류를 정기적으로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Q. 예명이 꽃숙이인데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불리게 되었나요? A. 꽃집만 할 때는 남편이 노래 제목에 있는 꽃순이로 불렀는데, 색소폰을 시작하면서 전국 색소폰 카페에 ‘꽃숙이’라는 닉네임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불리게 되었습니다. Q. 색소폰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나에게 색소폰이란?) A. 저에게 색소폰은 삶의 활력소이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꽃집을 운영하는 제게 꽃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과 좋은 향기로 눈과 코를 즐겁게 해 주지만 색소폰은 멋진 연주로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제겐 노래하듯이 연주하는 색소폰이 아주 매력적인 악기로 다가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색소폰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색소폰 연주라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및 만남이 정말 좋습니다. 동호회 모임이나 공연을 통해 교류하고 공연을 하고 난 뒤의 만족감과 성취감은 색소폰을 하면서 느끼는 소중한 경험이고 행복입니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제겐 삶의 활력소가 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색소폰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 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이라 생각하며 오늘도 내일도 쭉 이어가길 바랍니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데, 아직도 색소폰을 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들이 계신다면 하루라도 빨리 도전해서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무엇인가요? A. 저는 오직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색소폰 연주를 오래오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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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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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은 내 삶의 활력소’ 꽃숙이 김호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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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박동준
- 제천하면 떠오르는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은 제철을 비롯한 강릉, 춘천, 원주 등 20년째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행사를 기획·주관하며 색소폰 업계와 지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자신만의 고유 감성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의 돈이 아깝지 않은 공연을 선사하고 싶다는 그는 연주자로서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을 만나 그의 ‘감성’이야기를 들어봤다. 색소폰 연주자 박동준은 18살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을 했다. 친구이자 동료인 가수 최호섭과 가수 변진섭 콘서트 무대에 참여하며 무대의 진가를 알게 됐다. 오랜 시간을 다양한 연주자들과 무대에 올랐기에 지금도 그룹사운드 음악을 참 좋아한다는 그다. “올해로 음악을 한 지는 41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저는 어렸을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에 비해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던 학생이었어요. 그런 저에게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만난 음악은 거부할 수 없는 세계였죠. 그렇게 음악의 세계에 발을 디디며 무대에 올랐죠. 그러다 훗날 가수 최호섭 씨 그리고 가수 변진섭 씨 콘서트 무대에 같이 오르게 되면서 공연의 진가가 뭔지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여담으로 저는 고작 가수 변진섭 밴드의 일원이었는데도 팬레터를 수십 통씩 받았죠. 공연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웃음). 그렇게 18살부터 실전 음악을 해오다 보니 지금도 그룹사운드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죠.” 박동준은 매년 자신의 이름을 건 디너콘서트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의 경연 대회 행사 및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서며 관객과 호흡해오고 있다.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기 위해 지갑을 열만큼 매력적인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관객이 객석에서 연주자를 바라봤을 때 무대가 차 보이는 느낌이 들 만큼 무대를 장악해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니 무대 연출도 직접 하게 되는 것 같고요. 대중들이 와서 봤을 때 ‘돈을 내고 표를 사서 가볼 만한 공연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제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마음을 읽고 만족을 드리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박동준 연주자와 음악적인 얘기를 나누며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바로 ‘감성’이라는 단어다. 그가 말하는 감성의 의미는 정성을 다한다는 데에 있다. 솔직한 연주, 영혼이 실린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으로 어떻게 정성껏 음으로 담아내느냐에 대한 의미가 담겨 있다. “영혼이 실린 연주는 음 하나하나에 자신만의 고유 감성을 담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거죠. 듣는 사람은 그걸 느껴요. 연주자가 음 하나를 내는 데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말이죠. 설령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상하게 알 수 없는 여운이 남는 거죠. 타고난 자신만의 감성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연주해야하는지 아는 게 연주자에게는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감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단지 그 부분에만 치우쳐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감성에는 기본이 뒷받침되어야 하죠.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감정이 과잉되면 오버 필이 되거든요. 하지만 기본이 잘 잡힌 상태에서 감성이 입혀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거겠죠. 케니지가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수 있었던건 음악을 모르는 대중들의 마음에도 파고드는 듣기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감성 있는 연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저 역시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가 들어도 느낄 수 있는 저만의 감성 연주, 영혼이 있는 연주를 하는 게 제 소망이죠. 음악인 중 저처럼 질곡 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한마디로 애환이 깊죠. 그렇기에 그 삶 자체가 색소폰 연주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박동준 연주자는 안양대학교에서 색소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강좌 시간에는 박동준 연주자 특유의 유머와 핵심을 찌르는 강의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아 즐거우면서도 다음이 기대되는 수업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안양대학교 수업은 18주 기간의 수업을 한 기수로 쳐서 현재 4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좌 인원은 스무 명이 넘고요. 수업은 학생들의 공통 관심사를 위주로 해서 해당 주제에 대한 강의를 진행 후 실전으로 대입할 수 있게 합니다. 제가 수업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꼭 가르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학생이 수업을 받기 위해 나오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죠. 학교에 가면 재미있고, 빠지기 싫다는 느낌 같이요. 가르치겠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학생에게 다 쏟아내려 한다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 것 같아요.” 박동준은 다양한 공연 행사와 더불어 3월, 영흥도에서 개최하는 〈제1회 전국 시니어 색소폰 경연대회〉와 10월, 〈제천 아마추어 색소폰 경연대회〉 진행 기획 및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다수의 경연대회에 심사위원 및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며 어떤 연주자가 상을 탈지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심사위원들이 듣는 귀가 어느 정도 일정한 편이며, 앞으로의 심사에 있어서도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 “색소폰과 같은 악기든, 사람의 목소리든 일단은 소리가 좋아야 합니다. 거기에 음이 적합하게 맞으면 됩니다. 자신이 가진 실력보다 넘치는 기술을 구사하려고 하면 오히려 본인에게 마이너스가 됩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가 어려운 노래를 간신히 연주하는 것보다 쉬운 노래를 멋지게 잘 부는 것을 대체로 선호합니다. 무난하게 감정 표현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감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노래로 도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동준 연주자는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자산”이라며 자신이 남에게 주는 것에 비해서 받는 게 많은 것 같다고 인터뷰 중 말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인복이 많다는 얘기도 왕왕 듣는다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이유에 대해 겸손으로 일관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주변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연주하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며 박동준 연주자의 매력이 느껴지는 소탈한 대답으로 웃음을 남겼다. “연주자에게는 연주가 언제나 최고의 생명이죠. 음악 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가장 원하는 일은 자신의 무대를 갖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관객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좋은 공연을 하고 싶고요. 음악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해나가고 싶죠. 또, 마지막으로 주위에서 도와준다면 소망이 하나 있는데요. 제천에서 정기적으로 색소폰 축제를 열어 제천하면 색소폰이 떠오르게 하고 싶은 겁니다. 더불어 연주자로써 혹은 인간적으로써 주변 선후배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욕심 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자는 박동준 연주자의 ‘결혼’이라는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지금의 아내 될 사람과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 지금은 너무나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는 그. 인터뷰에서 차마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던 고난과 시련을 거쳐 왔다는 박동준 연주자에게 ‘평범’이라는 가치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축하 인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식을 넘어 색소폰 계의 축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전국 각지의 색소폰 관계자들이 그의 결혼식을 축하하고 있다. 그의 앞길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라며,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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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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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박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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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최보윤
- Q. 안녕하세요. 먼저 〈월간색소폰〉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 최보윤 입니다. 프랑스에서 유학 후 한국에 들어온 지 9년차이고 현재 모교인 이화여대와 울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밖에는 여성 색소폰콰르텟 울림색소폰앙상블 대표로 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지난 12월, 독주회를 가진 것으로 압니다. A. 네. 저는 이번 독주회가 세 번째 독주회였는데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에 비해 관객 여러분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보니 관객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초점이 관객 입장에서의 즐거움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 독주회의 제목도 ‘어느 저녁의 유희'로 이름 붙였는데요. 클래식이라는 무거운 느낌의 거리감을 좁히고 또, 관객들이 모처럼 연주회 오셔서 음악이 주는 감성과 감동을 누리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프로그램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Q. 개인적으로 독주회 프로그램 중 어떤 곡이 가장 인상 깊었나요. A. 이번 연주회는 1부는 피아노 반주에 독주를 하였고 2부는 색소폰 사중주에 독주를 하였는데요. 1부에서는 러시아 작곡가 글라주노프의 〈Chant du ménestnel〉, 2부에서는 비발디 〈사계〉중 ‘겨울’ 전악장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글라주노프의 〈Chant du ménestnel〉은 해석하면 '음유시인의 노래’인데 원래는 첼로 독주를 위한 곡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프레이징의 길이가 현악기에 맞춰지다 보니 감정 선의 연결 자체가 매우 길고 표현 면에서는 깊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곡입니다. 게다가 러시아 작곡가 특유의 넓고 웅장한 느낌이 있어서 한 곡 안에 그것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연주해 내는 것이 저한테는 몰입력을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많이 아시는 비발디〈사계〉중 ‘겨울’은 바이올린 솔로 원곡인데,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하였고요. 화려한 테크닉이 돋보이고, 고전 작품임에도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부분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많이 남네요. 함께 반주해준 사중주 색소포니스트들이 저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한국에서 입시를 치르고 연주 활동하며 프랑스에서도 함께 유학한 친구들로 구성해 제 개인적으로도 소회가 남달랐습니다. Q. 최보윤 색소포니스트는 어떤 스타일의 연주를 어떤 해석으로 하는 연주자인가요? A. 고전부터 현대음악까지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장르의 작곡가들의 곡을 주로 연주하고요, 그 외에 팝이나 뮤지컬 음악 뉴에이지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들을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톤의 무드를 가지고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연주자는 곧 좋은 전달자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연주할 곡이 선정되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작품의 방향성을 정확히 표현해야 해서 작곡가의 마음 혹은 의도 파악을 위해 시대적 배경 및 상황을 관찰하고 그것을 위해 사용된 음악적 수사들을 숙련된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연습의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제가 어설프게 알아서는 관객들이 이해할 수 없거든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몸에 온전히 체화가 돼야 세세한 표현들이 무대에 녹아들어 관객들이 제가 만든 세계관에 초대되어 음악을 충분히 느낄 수 있거든요. Q.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A.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부분이 유독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가져지는 그런 단점들이 있다는 거예요. 내성적이고 음악이 갇혀 있는 어떤 그런 부분이요. 클래식은 높은 감정을 가지고 절제하는 법을 표현해야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표현과 감정들이 많고 커야 돼요. 한국의 교육적인 실태가 입시 위주로 많이 맞춰져 있고 기능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다 보니 그런 부분이 많이 결여돼 있어요. 음악을 해석하는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하는 지 모르겠다는 친구들도 많죠. 그래서 제가 공부한대로 작곡가와 시대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테크닉으로 표현하고 어떻게 하면 다이내믹의 폭을 더 넓히고 표현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면서도 학생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악보대로 연주하는 법에 초점을 맞추는 편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 A. 가깝게는 3월 5일에 살롱드무지크에서 독주와 듀오로 연주회가 있어요. 관객을 최소한의 인원으로 프라이빗한 살롱 연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인데, 관객과의 거리가 앞 열과는 거의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클래식 색소폰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악기 소리로만 전달을 하는데, 저도 그 정도로 가까이에서 독주는 처음이라 기대가 더욱 많이 됩니다. 그리고 제가 소속되어 있는 앙상블 팀이 ‘울림’과 ‘더 모던’ 두 팀인데요. 두 팀 모두 올해 정기연주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더 모던’은 저의 대학 때 사사이신 이범훈 선생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팀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8~12명 구성으로 최고의 루키들로 모아 창단한 색소폰 앙상블 팀입니다. 첫 정기연주회를 올 11월 29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하고요. 울림색소폰앙상블 이번 정기연주회는 국내 작곡가 네 분께 곡을 의뢰하여 창작곡으로 무대를 꾸미는 계획을 스케치 중입니다. 울림색소폰앙상블로 활동하는 [울림시스타즈] 유튜브 활동은 지금도 계속 업로드 중이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Q.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A. 제가 귀국 후에 한국 길거리에 있는 많은 색소폰 동호회 간판들을 보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자들의 저변이 이렇게 확장되었구나’를 그때 느꼈죠. 색소폰 콘텐츠를 소비하는 층이 두꺼워지고 다양해지면 저희 같은 연주자나 선생님이 많은 활동이 가능해져요. 또한 그것을 공급해 주는 많은 악기사와 수입사들 악보와 반주 콘텐츠 업체 등이 발전하고 이 세 가지를 촘촘히 묶어주는 네트워크들 가령 밴드 및 카페 커뮤니티 그리고 이렇게 〈월간색소폰〉 같은 좋은 잡지사가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면 대한민국 색소폰 시장이 선진 대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기쁘게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께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늘 부탁드립니다. 또 많은 색소폰 연주회에 발걸음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늘 무대에서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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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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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In Artist] 색소포니스트 최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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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윈드오케스트라와 주승진 선생님
- 2009년에 창단해 올해로 12년 차를 맞이한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신성중학교 내 최초로 구성된 윈드 오케스트라로 약 74명의 청소년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통 클래식부터 국악, 무용, 팝, 오페라 등 다양한 곡 프로그램을 기획해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며, 1인 1악기 시대에 ‘즐겁게 음악하기’의 표본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10월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제10회 정기연주회&예술드림거점학교 합동 연주〉를 마쳤다. 합동 연주 무대에 올라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였으며, 100여 명이 넘는 인원에게서 뿜어내는 웅장한 선율이 연주홀을 가득 채웠다고 한다. 〈캐리비안 해적 OST〉와 같은 친숙한 선곡으로 성인 오케스트라도 소화하기 힘든 다양한 연주를 선보이며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1학년부터 3학년, 총 74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관악부는 관악기, 타악기 등 11개 파트로 세분화되어 있다. 동아리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며, 모든 악기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앙상블, 솔로, 합주 위주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지도자 교육을 통해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 활동과 많은 연습과 교육, 노력이 더해져 창단 다음 해인 2011년에는 〈안양과천예능경연대회〉에서 2015년까지 4년 연속 1위를 하며 눈길을 끌었다. 같은 해인 2011년 경기도 교육청 주최 〈경기도 학생 예능 경연대회〉 안양·과천 대표로 우수입상작발표회에 출연하였고, 2011년부터 12년 연속 〈대한민국관악경연대회〉 수상을 비롯해 경인일보 주최 〈전국 학생 오케스트라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또한, 2017년 〈제16회 안양시민축제〉에 초청되어 메인 공연과 안양과천 학생어울림한마당에 참가하기도 하는 등 교외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며칠 전에는 경기도청소년관악제에서 3년 연속 대상 및 각종 대회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명실상부 전국구 관악부로 거듭났다. 신성윈드오케스트라가 있는 신성중학교는 ‘꿈과 끼, 열정이 있는 행복한 학교’라는 교육 목표 로 개인지도 및 합주와 맞춤형 교육을 통해서 세계를 무대로 폭넓게 나아갈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윈드오케스트라를 통해 악기 전공을 하는 학생들이 예술고로 진학하여 각종 콩쿠르 입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차세대 음악 예술인을 육성하고 있으며, 2019년부터 교육부가 지정한 예술드림거점학교로써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2009년부터 신성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윈드오케스트라(관악부)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중앙대학교 관현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교에서는 트롬본을, 대학원에서는 음악교육을 전공했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 창립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건 제가 고등학교 때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관악부에 들어가보는게 어떠냐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악기를 시작하며 비롯된 것입니다. 관악부에 들어가 같이 연주하는 게 즐거웠고 꿈을 꾸게 되고 밝아지는 스스로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좋았던 경험을 토대로 저와 같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고 싶었습니다. 2009년에 신성중학교에 부임하여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5층, 자그만 한 음악실에서 시작하였고, 당시 악기 하는 아이들은 있는데 예술 동아리와 같은 활동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당시 활동했던 아이들은 10여 명 남짓. 지금은 74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윈드 오케스트라 연주 동아리가 됐고, 단원 중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전에 악기를 배웠던 경험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악기 연주에 초보인 학생들이 관악합주부에서 함께 하모니를 맞추며 연주를 할 수 있는 꽤 수준 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2010년 창단한 신성중학교 윈드오케스트라 관악부를 시작으로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아리 이름뿐만 아니라 학교의 이름까지 널리 알리며 신성중의 자랑으로 성장해왔습니다. Q. 관악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오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나요? A. 1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당시 처음 가르쳤던 아이들이 대학 졸업생이 됐습니다. 여러 상위권 대학에 입학해 악기를 전공하는 친구도 있고, 여전히 취미로 연주하는 제자도 있습니다. 연주가 있을 때면 졸업한 제자들이 와서 도와주고, 간식도 사들고 오는 모습을 보면 어려워도 어떻게든 오케스트라를 운영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연주하는 게 참 재밌었다고, 좋았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감회가 남다릅니다. Q. 앞으로 어떤 단체를 만들어 나가고 싶나요? A. 아이들이 여기서 음악을 하는 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대규모로, 거창하게 운영하는 것보다는 내실 있게 지금처럼 아이들이 즐겁게 연주할 수 있는 단체로 남고 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다수의 연주와 재능기부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며 성장해왔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윈드 앙상블을 연주하여 발전시키고 그 음악을 많은 학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연주자로서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또 교육자로서도 배워왔던 것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2009년에 부임하여 신성관악부를 창단하고 신성중에서만 13년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는 게 좋아요.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웃음) Q. 윈드오케스트라에 대한 개인적인 꿈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지도 교사로서 앞으로 교육 목표라 하면 윈드만의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목표 달성을 위한 실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개성과 독창성을 기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예술인으로서의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시대 흐름에 맞는 인재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창의성과 지적 호기심을 함양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음악중점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프로그램과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무대를 발전시켜 나갈 것을 소망하고 신성 관악부의 연주가 앞으로 다양한 계층이 음악을 경험하면서 나눔의 음악회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Q.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저희 관악부가 추구하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소통입니다. 이는 단원들 간의 소통도 의미하고 연주를 할 때는 파트너와의 소통, 그리고 청중들과의 소통 등 전부 포함됩니다. 이러한 소통들이 합쳐져 음악을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행사한다면 그것이 저희 관악부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관악부의 영광에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더 발전하는 더 열정 있는 동아리가 되겠습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제가 5살~6살 정도 되었을 때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던 악기 연주가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나요? A.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고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떤 곡을 연주해야 이 악기에 어울리는지 등 다양한 생각이 듭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A. 저희 관악 오케스트라 활동은 다양한 곳에 저희 학교를 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꿈을 보여주는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이지만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은 후배들이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역할을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A. 저는 주승진 선생님처럼 교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지금은 신성중학교의 학생이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다시 신성중학교의 선생님으로 오는 것이 꿈이고 계획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악기 연주는 제가 신성중학교를 입학하고 한참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빠져있었는데, 마침 신성중학교에 관악오케스트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바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색소폰의 다양한 매력을 알게 되었고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음악인이라는 꿈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나요? A.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 활동은 저에게 배움이 되는 활동이며 오케스트라의 도움이 되는 역할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저의 꿈은 훌륭한 색소폰 연주자가 되는 것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유튜브에서 우연히 드럼 영상을 보게 되면서 드럼 학원을 다니면서 레슨을 받았는데, 신성중학교에 관악부가 있어 다양한 타악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저는 악기 연주를 하며 인생을 살며 쉽게 경험하지 못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 스스로가 노력하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A. 저희 오케스트라 활동을 많은 친구들이 협력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대회를 나가 상을 타고 저희만의 연주회를 개최해서 그동안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연습한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졸업을 앞두고 있어 이제 신성윈드오케스트라 안에서의 활동은 못하겠지만 종종 학교에 와서 후배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Q. 악기 연주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요? A. 중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신성윈드오케스트라가 신입생 환영음악회를 했는데, 그때 연주하는 선배들이 너무나 멋있게 보여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선택하게 된 건 다양한 장르를 폭넓게 소화할 수 있고 1846년 낭만주의 시대에 개발된 현대 악기이다 보니 슬랩 텅잉이나 오버톤과 같은 다양한 기술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악기 연주를 하며 새롭게 느끼게 된 점이 있나요? A. 제가 색소폰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색소폰이 클래식에 쓰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클래식 색소폰을 하다 보니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색에 매료되어 신기하였습니다. Q. 신성중학교 관악 오케스트라는 어떤 활동을 하는 단체인가요? A. 신성윈드오케스트라는 저에게 꿈을 심어준 존재입니다. 대중들이 접하는 일반 오케스트라처럼 현악 위주가 아닌 관악, 타악 총 1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일반 오케스트라에서 표현하지 못하는 윈드 오케스트라 만에 매력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서로 다른 음색을 가진 악기들이 다 같이 모여 아름답고 웅장한 곡들을 완성할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제 일상에서 어느 순간 음악 없이는 저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제 자신이 음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매일 7시에 학교에 나와 연습을 하며 저에게 연주자라는 꿈을 심어준 윈드오케스트라는 제게 가장 소중한 한 부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에 대해 말해주세요. A.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인 브랜든최 연주자님처럼 클래식 색소폰으로 다양한 곡들을 연주하면서 대중들에게 클래식 색소폰의 매력을 들려주고 싶은 계획이 있습니다. 또 저의 꿈은 클래식 색소폰 불모지인 한국에 클래식 색소폰 대중화를 위해 기여하고 싶고, 브랜든최 연주자님처럼 클래식 색소폰을 사랑하는 아티스트로 남고 싶습니다. Q.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저에게 처음 클래식 색소폰에 대해 알려주신 현재 제가 사사하고 있는 정순섭 선생님 덕분에 클래식 색소폰을 더 깊이 있게 배우고 색소폰의 매력에 대해 더 깊이 접할 수 있어서 항상 감사합니다. 클래식 색소폰 많이 사랑해 주시고 〈월간 색소폰〉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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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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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윈드오케스트라와 주승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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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임민택
- 임민택이라는 이름을 모르면 간첩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는 색소폰 업계의 대명사가 되었다.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하고 재즈를 연주하던 한 젊은 연주자가 내디딘 새로운 길은 동 연령대의 색소폰 연주자들에게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트로트, 가요 음악을 재해석해 연주하고 그로 인한 인지도로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그. 최근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리얼색소폰’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색소폰 커뮤니티 단체로 크게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를 알려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곳은 송파구에 위치한 임민택 연주자의 스튜디오. 그곳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이 진행되는 영상 장비와 음향 장비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었다. 개인 연주를 비롯한 이른 오전부터 늦은 저녁까지 진행되는 레슨과 매주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 준비, 네이버 밴드 ‘리얼색소폰’ 운영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상황이지만 음악과 하는 삶이기에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그다. 임민택 연주자가 트로트, 가요씬에서 활동을 한 지는 14년째다. 20대 후반, 재즈를 전공한 그가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무대는 가수 세션 무대 혹은 한국에 몇 안되는 재즈 클럽에서의 공연이 전부였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하면 보통 재즈를 연주하거든요. 졸업하고 가수 세션도 하고 그렇게 지내는데, 제가 가수 세션을 하면서 느낀 게 뒤에서 백밴드인데 내가 연주자로서 음악이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저는 기다리고 있다가 잠깐 나오고…. 연습한 건 수도 없이 많은데 실제 필드에 나와 보니 실상이 다른 거죠. 그래서 내가 뭘 연주하더라도 연주자로서 활동을 해야겠다 싶어서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어요. 돈은 조금 받아도 거기에서 연주하면 연주자로서 연주할 수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내 연주를 집중해서 듣고, 오랫동안 연습한 것들에 대한 내 연주를 발산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연주자로서의 삶을 영위하게 만들어준 클럽 공연이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되지는 못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서른에 가까워진 나이로 자신의 길을 찾고 싶었던 그는 온라인 채널에 자신의 연주를 이것저것 올리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주를 이루었던 색소폰 업계에 당시의 젊은 연주자로는 임민택 연주자가 거의 최초로 발을 담그며 그만의 입지를 다져가게 된다. “색소폰 나라에 연주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가요도 하고 재즈도 하고 다양하게 올렸죠. 그러다 어느 날은 영창이라는 업체에서 저의 연주를 듣고 같이 해볼 생각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영창 알버트 웨버 제품으로 가요 연주를 해보면 어떻냐는 제안이었죠. 그래서 바로 좋다고 그랬죠. 해본 적은 없었지만 가요면 어때요, 해보겠다고 했죠. 그때 공식적으로 가요를 처음 연주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연주했던 가요 곡을 들어보면 멜로디보다는 애드리브가 훨씬 많아요. 지금은 오히려 그렇지 않죠(웃음). 그때 사람들이 봤을 때는 그게 굉장히 신선했던 것 같아요. 보통 가요 연주와는 좀 다른 재즈 같은 느낌의 가요였으니까요. 가요나 팝 음악에 재즈에서 했던 것들을 녹여냈죠. 아마도 후배들은 저 때문에 용기가 났을 거예요. “저 형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재즈 연주자에게는 (가요 씬에서 활동하는 게)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강했는데 음악에 귀천이 어딨겠냐는 마인드로 간 거죠. 주변에서 질타는 없었지만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겠죠. “쟤가 왜 저런 걸 하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까요. 그런데 저는 ‘저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길을 만들어 가는 건 연주자의 몫이거든요” 임민택 연주자가 개설한 네이버 밴드 ‘리얼색소폰’은 현재 4300명이 넘는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임민택 연주자가 직접 편곡한 악보를 보기위해 가입한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나며 지금은 하나의 커다란 단체로 성장했다. 각종 리얼색소폰 모임과 캠프를 통해 꾸준한 친목을 이어오고 있으며, 이러한 네트워크를 더욱 키워나가고 활성화해나갈 예정이다. “리얼색소폰은 공연도 하고 모임도 하는 커뮤니티에요. 현재 운영하고 있는 제 이름으로 된 유튜브 채널명에서 리얼색소폰으로 이름을 바꾸고 회원들 연주도 올리고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계획하고 있어요. 다양한 사람들의 정보나 리뷰 같은 것들을 접할 수 있는 유익한 채널로 내년부터 키워나가는 게 큰 목표죠. 제가 편곡한 악보를 리얼색소폰 밴드에 공유하다 보니 회원수가 4300명에 이르렀어요. 제가 편곡한 악보들을 다운로드하거나 보기 위해 가입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모인 인원들이 그 안에서 친해지면서 모임도 갖고 행사도 하게 됐어요. 하나의 단체로서 발전해나가고 있다 보니 유튜브 채널명도 리얼색소폰으로 커뮤니티 단체로서 유익한 내용들을 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임민택 연주자는 유튜브 채널 또한 [리얼색소폰]으로 기존에 있던 유튜브 채널 [임민택]에서 채널명을 변경할 예정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정보를 소개하고 기존 회원들의 연주도 업데이트하는 등 커뮤니티 채널로서의 입지를 다져갈 예정이다. “라이브 방송에는 프로 연주자만 나오는 게 아니고 리얼색소폰에 가입된 모든 아마추어·프로 연주자들이 같이 참여합니다. 보통은 프로연주자들만 방송에 나와 공연을 하는데 리얼색소폰 회원이라면 프로, 아마추어 구분 없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거죠. 개인 방송이 확장된 형태이다 보니 대본도 없이 진행하는데 그래도 많이 봐주시고 재미있다고 해주세요. 색소폰 강의와 제품 리뷰, 다양한 연주자들의 연주 그리고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해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도 많이 소개해 저변을 확대해나가고 싶고 기존에 색소폰 하시는 분들이 유익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로 키워가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임민택 연주자는 음향 관련 공부를 통해 직접 색소폰 앨범을 만드는 것이라 답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앨범 작업을 해왔지만 색소폰 소리를 잡는 데에 있어 연주자인 그의 기대에 미치기 어려웠다는 점을 토로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가장 좋은 소리를 아는 것은 연주자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믹싱, 마스터링 작업을 직접 하여 좋은 색소폰 소리를 직접 녹음하는 게 그의 목표다. “일반 믹싱, 마스터링 엔지니어들 대부분이 접하는 음악들이 보컬 위주의 음악이에요. 그래서 노래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데, 색소폰 음악 자체는 한 번도 안 접해본 엔지니어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거예요. 색소폰의 좋은 소리를 잘 잡았느냐에 대한 레퍼런스는 저같이 색소폰을 오랜 시간 연주한 연주자들이 가지고 있는데 연주자는 그 소리를 믹스할 수 있는 기술이 없잖아요. 그래서 최근 3년 동안 음향 관련 장비들도 구입하고 공부를 많이 했어요. 저도 연주하고 다른 연주자들이 연주한 것들을 프로세싱도 해보고 믹스도 해보고 마스터링도 해보고 이런 식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분야를 더 넓혀나가고 싶어요.” 그토록 바쁜 일정을 다 소화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략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 잠을 잔다고 답했다. 레슨, 연주 등이 없는 틈이 나는 시간에는 무조건 연습을 하려고 하고,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난 후에도 연습 또는 음향 공부를 하는 데에 개인 시간을 투자한다고. “틀에 박히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어요. 대신 열심히 해야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흔들리지 않고 꾸준하게 해야겠죠. 색소폰 불면서 성공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그래도 음악을 하면서, 내가 즐거운 것들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거면 그걸로 엄청나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잘해가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연주하고 더 연습하고 하면서 저만의 메리트를 만들어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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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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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포니스트 임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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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대상 수상자 이주연
- 제3회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의 영예의 대상 수상자가 나왔다. 소프라노로 연주하는 〈조각배〉의 선율과 새하얀 한복을 입은 무용수의 한국적인 무대가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기억됐다. 경연대회에 대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서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며 색소폰을 공부한 지 어느덧 12년차인 그녀. 색소폰을 통해 치유를 경험했기에 그 의미가 더 남다르다. 제3회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 대상 이주연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주연 씨(이하 이 씨)는 취미 생활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우연치 않게 색소폰의 소리를 듣고 첫눈에 반해 악기를 시작했다. 이 씨는 색소폰을 하기 전에 록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 주자로 활동해 7080 연주곡은 바로 듣고 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타는 혼자서 연주할 수 없는 악기이기에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매력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우연히 색소폰 연주를 듣게 되었는데, 소리가 너무나 맑아 제게는 천상의 소리로 들렸어요. 순간적으로 “이건 내가 해야 할 악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원래 그전에는 록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었어요. 지금도 밴드팀을 계속하고 있죠. 제가 노래는 잘 못하지만 선율 자체를 좋아해요. 베이스 기타도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는데, 베이스는 혼자 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잖아요. 고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색소폰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던거죠. 색소폰 소리에는 감동도 있고 소리에서 주는 시원한 느낌도 있고요. 지금까지도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악기인 것 같아요.” 이 씨는 색소폰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색소폰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욱더 궁금한 게 많아졌고 그것은 곧 그녀에게 재미와 도전으로 다가왔다. “기타를 연주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색소폰 운지를 잡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소리에 있어서는 제가 들었던 그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처음에는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하다가 조금 더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에 색소폰사관학교에 대한 정보를 듣고 입학하면서 기본적인 것들을 다지게 됐던 것 같아요. 내가 처음 들었던 천상의 소리를 다질 때까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으로 연습을 했더니 실력이 많이 상승됐어요. 색소폰사관학교는 내가 설령 하기 싫더라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이왕 시작했으면 내가 최고로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되더라고요(웃음).” 누구에게나 살다보면 한 번쯤 찾아오는 시련이 있다. 이 씨의 색소폰 인생에도 예외는 없었다. 수백 번을 연습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은 연습 방법도 알고 어려운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는 그다. “(색소폰을 연습하면서) 힘들 때가 있었어요. 한 마디를 가지고 몇 달을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부분이 안 된다는 것은 안 되는 만큼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죠. 제 경우에는 연습을 하면 안 되는 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제가 500번을 불어도 안 되는 구간도 있었어요. 이번 겨울에는 그걸 다시 시작할 생각이에요. 제가 아마추어 연주자이다 보니까 안되는 게 분명히 있죠. 원하는 만큼의 좋은 소리가 안 난다든지 하는 부분이 있는데, 하나하나 어려운 걸 극복하면 기쁨이 엄청나더라고요. 안됐을 때 스트레스 받았던 게 한 번에 날아가면서 공중에 뜬 것처럼 행복해져요. 그런 맛에 어려울 때마다 넘어가고 하는 것 같아요.” 〈골든페스타〉 본선 부대에서 선보인 〈조각배〉는 이 씨의 평소 취향이 반영된 곡이다. 이번 대회 무대에 한국 무용을 함께 선보이게 된 것도 평소 한국 무용을 해오며 색소폰과 한국 전통 무용의 콜라보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그녀의 생각에서 기반이 됐다. “제 스스로 밝은 곡만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연주를 하다 보니 〈조각배〉라든가 〈야상곡〉, 〈비나리〉 같은 한국적인 음악을 좋아하더라고요. 특히 그냥 음악을 들었을 때보다 연주를 했을 때 제 삶이 치유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제가 한국 무용도 하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색소폰 연주와 같이 콜라보 해보니 현대 악기인 색소폰과 전통 무용의 만남이 굉장히 잘 어우러지더라고요. 이 무대를 가지고 경연대회에서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골든페스타〉에서 그런 기회가 만들어져 너무 좋았습니다.” 이 씨는 〈골든페스타〉 경연대회를 준비하며 음정에 가장 많은 신경을 쏟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녀는 대상을 수상하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기쁜 마음이 드는 것과 동시에 더욱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도 함께 생겼다고 한다. “소프라노로 연주를 하나 보니까 하이톤 음정에 신경을 많이 썼고, 대회 무대에서 어떤 제스처를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누구든지 대회에 나갈 때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죠. 막상 대회장에 가보니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대상을 수상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한국 무용과 같이 콜라보 무대를 해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저의 대상 수상 소식으로 저희 음악실 식구들과 친구들이 정말 많이 축하해주고 좋아해주셨는데, 기분도 좋았지만 부담감이 동시에 생기더라고요. 연주를 더 꼼꼼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었어요.” 나이 먹어서 시작한 색소폰으로 이 씨는 치유의 경험을 했다. 그렇다 보니 주변인에게도 악기를 많이 권하게 되고 실제로도 이 씨를 통해 악기를 시작한 친구들이 많다고 한다. “색소폰은 마음을 다스리기에 너무나 좋은 악기에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도 색소폰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보통 색소폰은 연령대 높은 분들의 악기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더욱 대중화돼서 청소년들에게도 홍보가 많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정서적으로 너무나 좋은 악기거든요. 제가 공황장애도 좀 있었는데, 악기를 통해서 치유가 됐어요. 그렇다 보니 젊은 사람들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배우라고 권유하게 되네요.” 이 씨는 앞으로 음악을 통해 자신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어디든지 그곳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든지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찾아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끝으로 자신은 어떤 연주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 씨는 답했다. “진정성 있는 연주자요. 모든 음 하나하나를 마음을 담아서 불고 싶어요. 오선 악보에 그려진 단순 멜로디를 소리 내는 게 아닌 선율에 감정을 담아서 살아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요. 제 마음이 무지개 타듯 휩쓸려 가는 살아있는 음악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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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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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대상 수상자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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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금상 수상자 김재학
- 제3회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 금상을 수상한 김재학 씨는 직장 생활을 하며 색소폰을 연주한 지 올해로 8년이 됐다. 어머님 앞에서 살아생전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색소폰이 그의 삶을 지휘할 만큼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 같은 존재다. 직장 가요제를 통해 만난 음악적 기회 김재학 씨(이하 김 씨)는 20대 중반 직장 생활을 하며 “내가 음악을 해도 될까?”하는 생각의 계기를 만났다. 당시 매년 근로자의 날 ‘직장 가요제’라는 회사 행사가 있었는데, 출전해 입상하며 주변에서 “노래 좀 하나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하니까 진짜로 제가 잘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러다 이후에는 제가 작곡을 하기 까지 이르렀죠. 트로트 장르의 〈청풍명월〉이라는 곡이었는데, 그 곡으로 전국구 단위의 가요제에도 몇 번 나갔었어요. 물론 다 낙방했습니다(웃음).” 김재학 씨는 못다 이룬 가수의 꿈을 뒤로하고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부모님과 장모님의 병세 소식을 듣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악기를 배워 부모님들께 연주해드려야 겠다는 마음에 그는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은 계속 좋아했으니까…, 악기를 하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저의 부모님과 장모님이 뇌 관련 질환 판정을 받으면서 든 생각이 “악기라도 하나 배워서 저분들께 연주해드리고 싶다”였죠. 그때가 2014년 6월 1일이었어요. 그런 이유로 시작을 했지만 훗날 연주를 보여드리려고 했을 때는 부모님들이 이미 세상에 안 계셨어요.”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만든 배움의 시간들 색소폰을 배운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는 더욱 전문적인 배움의 기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평소 대충 하기 싫어하는 성향과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맞물려 상황에 맞는다면 무엇이든 찾아서 하려는 그였다. “처음 색소폰을 배웠기 때문에 그전에 제가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악기를 연주했던 것도 아니어서 배움의 기회가 필요했어요. 아무래도 혼자 공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찾은 곳이 서울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이었죠. 거기서 한 학기 정도 공부를 해보고 이후 색소폰사관학교 2년 정규 과정에도 등록해보았습니다. 프로 연주자들의 원 포인트 레슨 공지가 올라오면 찾아가서 배우기도 했죠.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 아무리 주변을 다니며 배워 봐도 제 자신이 많이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죠. 그렇게 사이버대학 실용음악과로 올해 8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처음에 부모님 때문에 시작을 했다가 결국 여기까지 달려오게 되었네요.” “〈매기의 추억〉 슬픈 감성 표현하려 MR 편곡 직접 바꿨다” 김재학 씨는 이번 경연 대회에서 〈매기의 추억〉이라는 곡을 연주했다. 색소폰을 갓 시작했던 시기 유튜브에서 한 초등학생이 이 곡을 기막히게 연주하는 것을 보고는 학생의 부모님과도 수소문에 연락했을 정도로 흠뻑 빠져서 연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사한 연주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한마디씩 늘려가며 반복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정성 들인 곡으로 김재학 씨는 결국 수상자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곡의 배경을 설명하며 자신이 연주로 어떤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연습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 곡을 연주하기로 마음먹고 〈매기의 추억〉이 쓰인 시대적 배경이나 이 곡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찾아봤어요. 이 곡은 1800년 후반에 발표된 곡으로 불행한 사랑에 대한 얘기거든요. 캐나다에 어느 교사가 학교에 입학한 매기라는 제자와 사랑하게 되고 아내가 졸업한 후 결혼을 해요. 그리고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를 낳고 살다가 어느 날 아내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게 되죠. 교사는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에 사랑했던 추억들을 생각하며 시를 썼어요. 그리고 그의 작곡가인 친구가 그가 써놓은 시를 보고 그에 맞는 감성으로 곡을 만들어 발표한 게 〈매기의 추억〉이거든요. 그렇다보니 이번 대회 때는 원곡의 슬픈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어서 제가 직접 만든 MR을 임민택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다시 만들었어요. 원래 기존에 연주했던 곡은 빠르고 경쾌하게 경음악으로 편곡해놓은 버전이었거든요. 편곡을 통해 슬픈 느낌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대회를 위해서 제 자신에게 혹독하게 했던 것 같아요. 평소 암보로 연주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저에게는 무한반복하는 방법밖에 없었거든요. 악기 잡고 반주가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핑거링이 될 수 있게 연습했던 거 외에는 없는 것 같아요. 연습을 안 하면 앙부슈어나 기본 자세들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항상 근육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평소에도 연습은 평균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매일 하려고 하고 30분 정도는 기본적인 워밍업, 롱톤, 스케일을 연습하고 나머지 시간은 곡에서 안 되는 부분들만 집중적으로 연습해요.” “〈골든페스타〉를 통해 만난 새로운 인연, 너무나 값진 시간” 김재학 씨는 이번 〈골든페스타〉 색소폰 경연대회를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됐다며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경연대회 참여 계기를 묻는 질문에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을 만큼 그는 평소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윤정현(황금나팔) 연주자와의 새로운 인연을 쌓았다. “평소에 황금나팔 선생님을 너무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골든페스타 멘토링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평소 듣지 못했던 연주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는데 감명 깊었어요. 〈골든페스타〉를 하며 얻은 게 많아요. 수상도 하게 됐고 새로운 인연도 만나 귀하고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 “저같이 처음 색소폰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초기의 길잡이를 잡아드리도록 지도하고 싶어요. 이러한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되었고,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다양한 코스를 밟아오고 있어요. 비록 사이버대학이지만 대학 과정을 통해 음악을 더 심도있게 공부해 봤고, 앞으로 향후 3년간 더 제 자신을 다듬고 매몰차게 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더 단단해진 다음에 색소폰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70대 이상만 참여하는 실버 앙상블을 만들고 싶어요. 제 어머님, 장모님이 70대에 유명을 달리하셨는데, 그 생각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노력해 나가야죠.” “제가 색소폰을 하면서 고마운 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색소폰 처음 잡고 총신대학교 평생교육원 색소폰 연주자 과정 할 때 지도해 주셨던 임희승 선생님, 색소폰 사관학교 박정일 교장선생님과 담임이셨던 이병주 선생님, 그리고 지금 제게 가르침을 주고 계신 임민택 선생님, 늘 마음속 멘토로 자리하고 있는 박동준 선생님과 박광식 선생님, 그리고 이외에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온 점에 대해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어요.” 김재학 씨는 색소폰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인지를 묻는 질문에 “마에스트로 같은 존재”라 답했다. 그는 “색소폰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자꾸 연주하게 되고 공부하게 되고 인생 계획을 세우게 됐다”며 절반이 지난 자신의 인생을 색소폰이 이토록 진두지휘한다는 사실에 불현듯 마에스트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김재학 씨에게 있어 친구이자 스승 같은 색소폰. 지금처럼 언제나 음악을 벗 삼아 늘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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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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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금상 수상자 김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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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은상 수상자 봉용섭
- 봉용섭 수상자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색소폰 연주를 하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색소폰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아버지와 듀엣 연주를 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봉용섭 씨 자신이 더 색소폰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봉용섭 수상자(이하 봉 씨)는 국악기인 대금을 전공했다. 현재 성남시립국악악단에 상임 단원으로 재직 중이며 청소년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성남에 위치한 실버타운, 병원 등 봉사 연주와 더불어 축제 공연 및 정기 연주회 활동을 해오고있다. 봉 씨는 음악을 전공하였기에 색소폰을 시작하는 데에 있어 이론적 지식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으나 대금과 색소폰의 소리를 내는 매커니즘적 방식이 달라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대금 같은 경우는 입술의 힘을 빼야 소리가 나는 원리라 소리내는 방식에 있어서 색소폰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색소폰을 불다가 대금을 불면 소리가 전혀 안 나더라고요. 그런 부분은 좀 어려운 지점이었으나 악보를 본다거나 전체적인 음악의 흐름을 잡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일반인에 비해 수월했던 부분이 컸던 것 같습니다.” 봉 씨는 이번 경연대회 본선에 〈Magia〉라는 곡으로 출전했다. 평소 유튜브에 나오는 색소폰 연주를 찾아보다가 좋은 곡이 있거나 해보고 싶은 곡이 있으면 연습하여 연주하곤 하는데 〈Magia〉도 그렇게 채택된 곡이다. 봉 씨는 음악을 전공했고 음악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있어서는 비전공자이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아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연습들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제가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기초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본 연주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스케일과 톤 연습을 30분씩 이상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연대회를 준비하고 곡을 연주하는 데에 있어 봉 씨는 ‘감정 전달’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연주라는 건 자기만족이 아닌 타인에게 좋게 들려야 한다는 취지다. “제가 곡을 연주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건 곡에 맞는 감정 전달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연주라는 건 나만 즐겁자고 하는 것이 아닌 남이 들었을 때, 누가 들어도 좋은 연주여야 하는 거죠. 그런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수단은 누구든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 됐건, 취미 생활이 됐건 그 종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봉 씨에게는 색소폰이 그런 존재다. 색소폰은 행복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그의 삶에 자리 잡았다. 봉 씨는 인터뷰에서 “저에게 색소폰이라는 의미는 제 삶의 질을 높여주는 행복 전도사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라며 자신에게 색소폰이 어떤 의미인지 답했다. 봉 씨는 앞으로 색소폰을 좀 더 심층적으로 배워볼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현재 청소년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실버타운, 병원 등 다양한 곳에서 봉사 연주를 해오고 있는 봉 씨지만,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는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통해서도 음악을 찾는 곳에 봉사 연주를 할 계획이다. “앞으로 색소폰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렇게 실력을 키워서 음악을 찾는 곳에 봉사 연주도 하고 싶고 사람들과 함께 무대에 서며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그런 무대에 색소폰이 가장 적합한 악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은 삶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악기로 표현하면 그 음악이 마음을 다스려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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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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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국제 색소폰 경연대회 〈골든페스타〉 은상 수상자 봉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