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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래식 색소폰 오케스트라 명가(名家) '코리아색소폰하모니'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의 적막을 깨우며 색소폰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연습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방음시설이 갖추어진 녹음실과 연습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스튜디오였다. 아직 다 시들지도 않은 꽃을 버려놓았다며 한 송이씩 꽃병에 꽃을 꽂는 정미정 단원의 마음처럼 내부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색소폰을 통해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그들과의 인터뷰가 더욱 기대되었다. 동호회? NO! 아카데미? YES!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2004년에 창단한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에서부터 시작했다. 2013년에 단명을 코리아색소폰하모니로 변경하면서 한국종합예술학교 석좌교수인 ‘박경삼’ 초대단장과 새 출발을 했다. 이곳만의 특이점이라면 단연 수석 단원제를 도입하였다는 것인데, 수석 단원들로부터 파트별로 지도를 받고 난 다음에 전체 합주 연습을 하여 전체적인 밸런스를 밀도 있게 끌어 올렸다. 또한 그밖에 스케일 연습, 화성학, 스윙과 블루스 리듬 같은 재즈 이론도 같이 공부를 한다. 이런 부분으로 미루어 볼 때 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동호회라기보다는 색소폰 스쿨 혹은 색소폰 아카데미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KSH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어떤 음악 단체든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유니크한 구성의 합주단 같은 경우는 레퍼토리 확보에 더 많은 공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코리아색소폰하모니같은 경우는 이런 부분이 아주 잘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편곡료를 따로 지불하여 코리아색소폰하모니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을 발간한 것.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주는 이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는 독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조화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양쪽 모두의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휘자와 단원들의 생각이다. 아마추어의 저변이 넓어져야 프로들이 설 자리도 많아지고, 서로 적극적으로 다가가 도움을 주고 받아야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프로색소포니스트로 구성된 서울색소폰앙상블과 교류하고 있다. 이들이 수석 단원으로 합주연습 때 각 파트를 지도하고 필요시에 개인레슨을 진행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연령대어떤 단체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이토록 조화롭게 갈 수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이곳의 연령대는 꽤 차이가 난다. 20대 초반부터 80세가 넘은 단원까지 세대 스펙트럼이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음악이나 연습하는 과정을 볼 때 세대차이의 갭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팀의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성연욱 단장) 많은 악기중에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유독 매력을 느꼈던 이유가 있는가. 색소폰은 연주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연주환경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난다. 그래서 감정표현이 자유롭다. 관악기는 연주자의 호흡기관과 연결되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연주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몸통도 악기가 된다. 그래서 색소폰을 연주할 때는 악기의 소리가 곧 나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고, 나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매력이 있다. 일본의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의 협연을 한 적이 있다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식해서 용감했었다는 생각만 든다. 2003년도에 오사카 교민 행사에 초청되어서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 협연을 했는데, 미베몰앙상블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앙상블인지도 모르고 갔었다. 어떤 계기로 진행되었는가. 2002년도부터 여기저기서 색소폰을 배우던 사람들이 모여서 아마추어 색소폰 앙상블을 창단했는데 아마 국내 최초일 것이다. 실력보다는 의욕이 대단했었다. 정기연주회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관악축제에도 참여했고, 부산 MBC에도 초청되었다. 실력이 받쳐줘서 초청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색소폰 앙상블이었고 또 단원 중에는 사회 각 처에 발이 넓은 분이 많았다. 일본 공연은 어땠었나.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미베몰앙상블의 소리는 아름답고 깨끗했으며, 속삭이듯 잔잔하다가도 격정적인 울림을 주기도 하는 환상적인 화음이었는데 반해, 우리는 그저 크게만 불면 되는 줄 알고 거친 소리를 마구 불어댄 것이다. 우리 가요를 연주했기 때문에 교민들에게 박수는 더 받았지만,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 충격과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앙상블이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2004년에 단원 중의 서울대 ‘성굉모’ 교수님이 서울음대에서 색소폰을 전공하신 분들을 지휘자로 모셔왔고, 클래식을 연주하는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를 창단했다. 그때부터 비로소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워가면서 제대로 된 앙상블을 하게 되었다. 단명은 2013년도에 코리아색소폰하모니(KSH)로 변경하였다. 자신만의 음악 철학이 있나. 처음에는 음악이든 악기연주든 혼자 즐기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도 혼자 했고 스스로 즐기는 수준까지만 하면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나쁜 습관이 들었고 그게 아직도 고쳐지질 않아서 애를 먹고 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연주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남에게 들려주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기쁨과 여럿이 같이 연주하면서 화음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기쁨과 행복, 이런 것들이 훨씬 보람이 있다. 색소폰과 관련된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있나.10여 년 전에 ‘정인채’ 회원과 둘이서 토요일 저녁마다 양재천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가로등이 켜진 양재천의 가을밤, 밤안개 하얗게 낀 봄날 저녁, 물소리 풀벌레 소리 합창하던 여름밤, 심지어 흰 눈 내린 겨울밤에도 언 손을 녹여가며 토요일마다 다리 밑에서 연주했다. 지금은 너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문화가 없었다. 그때 양재천에서의 연주는 우리나라 길거리 연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산책하던 사람들이 가로등 밑에 둘러앉아 조용히 듣고 가기도 하고, 우리 연주를 듣고 색소폰을 사서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근처에 살던 전문연주자들도 가끔 나와서 듣곤 했는데, 연주가 끝나면 다가와서 참 잘 들었다며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본인들은 직업의식을 갖고 연주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의 연속이지 행복하게 연주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점이 바로 아마추어 연주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행복이 아닌가 싶다. (정미정 단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37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교직에 있다가 작년에 명예퇴직했다. 지금은 외손자 보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색소폰은 12, 13년 전에 둔촌고등학교에 있었을 때 체육 선생님으로 계셨던 분을 만나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고 전부터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굉장히 잘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교를 목적으로 색소폰을 배워두면 앞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노후에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야마하 색소폰을 구입하여 배우기 시작했다. 색소폰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느 날 교회에서 캄보디아로 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가서 색소폰으로 복음성가를 연주했었고, 마지막 돌아오기 전날은 프놈펜 광장에서 현지 교인들의 워십과 함께 복음성가를 연주했었다. 그게 지금까지도 스스로 의미가 컸고 은혜로웠다. 색소폰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고, 그 은혜를 음악을 통해 나눈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 KSH 단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SH 여러분과 함께해서 감사드린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번은 아프리카 여행 때 어느 공항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천천히 멀리 가고 싶으면 친구와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인데, 그 말이 매우 와 닿았었다. KSH도 함께라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있을 것 같다. 이종택 단원 교향곡을 주로 많이 연습할 텐데 연습하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 상대방 소리를 듣고 음의 폭이 큰지 작은지를 잘 봐가면서 조절을 해야 하는데 연습 부족이나 어떤 한계로 인해서 제대로 조화를 못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개인 연습을 더 하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맞춰지는데, 그래도 차이는 있다. 앞으로 KSH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 단체가 오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개 그 구성원들 모두가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연습, 혹은 규정을 잘 따르는 것 등이다. 그래야 그 조직이 오래 유지되고 또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즐겁지 않으면 나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기본인 그런 자세를 가져야 오래갈 수 있고, 스스로 더 잘하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하모니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현재 알토색소폰 파트를 맡고 있는데, 소프라노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 KSH 단원들 각자 모두가 건강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잘 이루어 갔으면 좋겠고, 나 또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정인채 단원) 색소폰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해달라. 38세 때이다. 일도 많이 하고 여유도 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이른 나이에 일찍 안정을 찾았었다. 그러다 보면 술을 마신다든지 담배를 핀다든지 조금 엇나가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런 것보다는 건전하고 좋은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었다. 한번은 아내에게 농담으로 “내가 나이도 40도 다 돼가고 색소폰이나 좀 배워볼까?”하며 색소폰 이야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는 곧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내 말을 기억했던 아내가 감사하게도 미국여행 길에 색소폰을 사 온 거다. 그래서 색소폰 배울 만한 곳을 찾다 마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색소폰 강좌가 있어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단장님을 처음 만났다. 색소폰을 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단장님하고 둘이서 매주 토요일마다 학여울역 다리 밑에서 8시부터 10시, 어떤 때에는 1시까지도 연습을 했었다. 거기가 12차선이라 다리가 굉장히 넓고,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보니 밑에서 색소폰을 불면 소리가 올라가 공명이 생기면서 맑은소리가 나온다. 아는 교수님이 우리 얘기를 듣고 오셔서 소리를 들어보시더니 그 다리에 대해 칼럼을 쓸 정도로 소리가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연습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VJ특공대가 찾아와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지역별로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관한 내용으로 나왔는데, 우리는 서울 편에서 다리 밑에서 색소폰을 불며 여름을 나는 것으로 나갔다. (차은경 단원) KSH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좋은가. 일단 배워간다는 즐거움이 크다. 사실 클래식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면 잘 안 듣게 되고 그랬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면서 클래식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또 더 잘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이전에는 전체적인 멜로디만 들었다면, 여기서 앙상블을 하면서 다른 파트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한 달에 한 번씩 꼭 직접 음악당에 가서 교향곡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취미를 또 하나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KSH에서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부분이 증진되었는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화음을 맞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 소리만 더 크게 들리고 혹은 내 소리만 들렸었다. 그러나 타인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음악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절로 생기게 된 것 같다. 글 Ι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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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 [MUSIC ESSAY] 색소폰,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반하다
    (월간색소폰)박형섭 칼럼니스트= 안달루시아, 열정의 대지로스페인은 어디서나 거리 퍼포먼스로 활기차다. 악기를들고 떠돌아다니는 악사에겐 낙원이나 다름없다. 게다가버스킹은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던가. 나는 여행 중 색소폰 연주의 기회가 주어지면, 속내를 맘껏 발산하며 해방의 기분에 젖는다. 그것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나만의 방식이다. 길거리 악사들에게 출신이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다. 연주자라면 누구든지 사람의 왕래가 잦은 번화가나 광장을 무대로 삼으면 된다. 기타나 건반연주자가 대다수이지만 때론 현악 4중주나 라틴 타악기를이용한 살사밴드도 보인다.세비야의 카르멘과 돈 주앙안달루시아 지방은 지중해에 접해 있다. 남국정취가 물씬 풍기는 기후에 에스파냐 최대의 국립공원 도냐나를 품고 있다. 일년 내내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태양빛을 쬘 수 있다. 야자수와 오렌지 나무들이 널려있어 풍광도 뛰어나다. 이곳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느릿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 어느 곳을 가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볼거리가 넘쳐났다. 특히 안달루시아는 8세기에서 13세기까지 이슬람왕국이 지배했는데, 르네상스보다 먼저 근대 문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방은 아랍, 유대, 아프리카 등 다양성이 공존한다. 그리고 과거 스페인 번영의 주인공들의 후광도 여전히 남아있다. 세비야 대성당에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잠들어있으니 말이다.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이다. 대항해시대 무역의 관문이자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험가들의 발원지였다.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물품들이 이곳에 모였다. 돈이쌓이고 노동자가 넘쳐났다. 세비야의 번성은 무어인들이 세운 황금 탑이 증명한다. 가톨릭 세력들이 무어인을 몰아내고 세비야 대성당을 세웠다. 거대한 성당은 힘과 권위의 상징물이다. 그들은 동시대 최고의 성당을 건립해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자 했다. 원래 이슬람 모스크였는데 그것을 헐지 않고 그 위에 지었기 때문에 건축학적으로 이슬람과 고딕 두 양식이 섞여 있다. 한 지붕 아래 두 종교가 합쳐있는 것이다. 동시대 에스파냐 사람들은 타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포용해 자기화하는 지혜가 있었다. 다문화의 공존과 화합은 빛나는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는다.나는 인파로 붐비는 대성당 광장 앞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 관광객을 실은 옛 마차들이 지나가고,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이 소란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몇몇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보인다. 내 눈에 비친 모든 장면들이 영화 속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나도 이 영화 속으로 슬며시 끼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색소포니스트가 등장한다면 제법 괜찮은 장면이 나올 법도 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노래를 부를까. 우리 노래? 이들이 우리가락에 호응을 해줄까. 좋아, 멋들어지게 나의 애창곡을 불러보는 거야. 대성당의 히랄다 탑을 바라보며 케이팝(K-pop)을 힘차게 내뿜어보는 것이다! 뭇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어서 난 광장 한복판을 걸으면서 이문세의 <옛사랑>을 불렀다.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고 박수치며 환호했다.무엇보다도 세비야는 스페인의 주요 문화가 시작된 곳이다. 투우, 플라멩코, 롯시니의 오페라<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등이 이 도시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아름다운 과달키바르 강이 시내를 관통하고 있다. 야자수 아래 강변을 걷다보니 두 개의 멋진 동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나는 투우사이고, 다른 하나는 투우장을 응시하는 여인 카르멘이다. 담배공장 아가씨 카르멘이여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잡았다 생각하면 도망가고놓쳤다 생각하면 붙잡히지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노천카페 건너편의 세비야 대학은 옛 모습 그대로다. 이 고색창연한 대학건물은 원래 왕립담배공장이었다. 그곳이 바로 <카르멘>의 비극적 무대현장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 카르멘은 근위병으로 일하는 건장한 청년 호세를 만난다. 호세는 카르멘을 보자마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누구에게도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카르멘의 자유분방함은 호세를 서서히 타락의 길로 이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은 법,배반당한 호세는 카르멘을 죽이고 자살한다. “신중함은 내 성격과 어울리지 않아요. 정열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지요. 언제나 ‘예’라고 말하는 여성은 ‘아니오’라고 말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없어요. 결국 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남자에게 가장 많은 것을 주었답니다.” 오페라 <카르멘>의 테마곡 하바네라의 노랫말이다. 여주인공 카르멘은 길들지 않는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치명적 여인 팜 파탈(femmefatale)의 전형이다.오페라 속 인물들의 사연은 세월 속에 사라지고,담배공장은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의 캠퍼스가되었다. 세비야 대학 옆에는 조용하고 운치 있는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 있다. 학생들의 휴식공간이자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이다. 울창한 숲속의 호수에서 한가롭게 물새들이 노닌다. 가로수 길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하는 마차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간다. 어느새 난 중세귀족이 되어 달리는 마차 위에 올라타 호텔을 향하고 있었다.내가 투숙한 호텔의 산타크루스 지역은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엉켜있다. 익숙한 길인 듯 가다 가도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길 양편으로 비슷비슷한 하얀 벽의 집들이 화분들로 장식되어 있다. 뭔가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 유대인동네로구나! 겨우 골목을 빠져나와 오렌지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에 이르렀다. 그 한가운데 돈 주앙의 동상이 뽐내듯 서 있었다. 그는 세비야의 난봉꾼이자 희대의 바람둥이로 문학과 연극, 오페라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여자를유혹해서 욕망을 채운 후 버리기를 반복하는 인간, 그에게 사랑이란 정복의 대상일 뿐이고, 유혹의 기술은 전쟁의 기술과 같다. 그는 여자의아버지가 딸의 복수를 하려하자 그와의 결투도 마다하지 않는다.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돈 주앙을 지옥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세비야의 골목들은 돈 주앙이 여자를 농락하고 줄행랑치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 파렴치한의 동상을 세워놓다니 의아한 일이다. 그러나 스페인사람들은 그의 엽색행각(獵色行脚)을 돌부처(동상)로 단죄하는 동시에 기독교체제에 반항하는자유사상을 높이 평가하는 의미도 새겨놓았다.오호라, 돈 주앙은 단지 야비한 호색한이 아니었구나!플라멩코플라멩코는 집시의 춤이다. 다채로운 프릴(frill)장식의 의상을 입은 댄서의 힘차고 신속한 발놀림, 경쾌하고 현란한 동작이 일품이다. 집시들은 유랑생활하며 박해받는 세월을 사는 동안 자신들만의 정서를 담은 춤과 노래와 연주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오해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예속되기 싫어했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풀이로 발을 구르거나 손뼉을 치고 큰 소리로 노래했다. 플라멩코는 불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화려하고 뜨거운 춤이다. 플라멩코엔 춤, 노래, 기타연주의 세 요소가 필수다.마침내 집시들은 안달루시아에 정착하면서 긴 방황의 시간을 끝냈다. 지난날의 삶을 반영하듯 플라멩코는 사회비판이나 해학의 스토리를 품고있다.나는 호텔에서 추천한 산타크루즈 광장의 로스가요스(Los Gallos) 공연장을 예약해 두었다.세비야에서 가장 전통 있고 이름난 극장이란다.보통 쇼는 저녁에 하고, 러닝 타임은 한 시간 반정도다. 공연장에서는 음료수 샹그리아와 맥주만을 제공한다기에 간단하게 저녁식사 후 입장해야 했다. 입맛에 딱 맞는 저녁거리로 무엇을 먹을까. 그렇지, 파에야가 있지! 이 나라 전통음식으로 어느 식당에서건 먹을 수 있는 요리다. 해산물과 토마토 등 여러 재료들과 쌀을 섞어 프라이팬에 볶은 것이다. 파에야는 원래 바닥이 얇고 양쪽 손잡이가 있는 프라이팬을 의미한다. 쌀의 산지인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에서 유래했는데, 오늘날은 이 나라 전 지역에서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로스 가요스는 오십 명 정도의 객석을 갖춘 아담한 규모의 소극장이었다. 안내인을 따라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으니 이미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먼저 기타 연주가와 가수가 무대에 등장하여 한 사람은 기타를 치고 다른 한 사람은 손뼉을 치며 노래했다.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어 갔다. 이어서 또 다른 가수들과 무희가 등장해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무대 가까이서 무희들의표정까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댄서들의 애절하고 비장한 표정이 손끝에서 발끝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노래는 구성져 슬펐지만 무희의 관능적인 율동은 에너지가 넘쳤다. 나는 시간가는 줄모르고 무대에 푹 빠져버렸다. 혼신을 다한 무대, 어느새 객석과 무대는 하나가 되었고, 공연장은 도가니처럼 불꽃으로 달아올랐다.스페인 민족이 얼마나 정열적인가는 플라멩코 춤만 봐도 알 수 있다. 매년 축제 시즌에 이 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안달루시아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내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장을 누빈다. 밤이 되면 왁자지껄 노래와 춤판이 벌어진다. 여행자가 이런 흥겨운 축제의 현장을 경험한다면 더없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지금 여기’의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여행의 추억은 영원하다. 아름다운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의식 속에 행복한 시간으로 새겨진다.그라나다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의 추억>그라나다(Granada)는 ‘석류’란 뜻, 알람브라(Alhambra)는 ‘붉다’는 뜻이다. 따라서 알람브라 궁전은 ‘붉은 궁전’이다. 이 성채는 스페인의마지막 이슬람 왕국 나스리의 터전이다. 무슬림시인들은 이 궁전을 에메랄드 속의 진주로 불렀다. 아랍 건축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섬세한 장식이 돋보인다. 궁전 건축에만 100년 이상 걸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 부부는 나스리 왕국을 정복하여 스페인을 완벽한 가톨릭 국가로 만들 셈이었다.당시 무슬림 왕 무하마드가 저항을 포기한 것은 알람브라 궁전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의 현명한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알람브라 궁전 안뜰에는 분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수로를 따라 작고 예쁜 물줄기들이 끊임없이 솟구쳤다가 떨어진다. 기하학적으로 조경된 꽃과 나무들은 코란에 묘사된 낙원의 모습이다. 그 유명한 음악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여기서 착상되었다. 트레몰로, 즉 동일한 음을 규칙적으로 빠르게 반복하는 주법이 분수의 물방울에서 나왔다. 클래식 기타를 쳐본 사람은 누구나 이 곡을 알 것이다. 기타 현의 울림, 물방울이 튕기듯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선율이 청자의 영혼 속을 파고든다. 누군들 그 매혹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신비로운 물방울소리들은 프란시스코 타레카의 손끝에서 위대한악곡으로 완성됐다.웅장한 궁전의 정원엔 다양한 인종의 방문객들로 붐볐다. 궁내에서는 어떤 악기 연주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궁전 앞이나 주변의 빈터,오렌지 밭 등에서는 버스킹이 가능하다. 나는알람브라를 떠나기 앞서 색소폰의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나에게 연주 장소는 그 공간을 추억케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악기를 들고 서둘러 성 밖의 오렌지 숲으로 향했다. 악기를 세팅해 목에 걸고 건너편 성벽을 올려보았다.성안에서 사람들이 날 보고 손짓하는 듯했다.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모든 관악기의 음색은 호흡이 좌우한다. 색소폰은 호흡의 예술인 것이다. 나의 노래는 알람브라 궁전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새 허공으로 사라져갔다.안달루시아를 떠나며모든 인간은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을 들으면 서서히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다. 기분이 좋아지거나 옛 추억에 전율하기도 한다. 누구나 음악을 듣지만 직접 음악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정도다. 나처럼 아마추어 색소포니스트에게 음악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순수한 열정 하나로음악의 세계를 배회하는 것이다. 내게 색소폰 연주는 가벼운 유희에 불과하지만, 프로페셔널 연주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에게 음악은 직업이고 삶의 수단이다. 그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심층적인 느낌을 불러올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프로의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위대한 음악가는 언제나 아마추어에서 출발했다.나는 때로 기분에 따라 즉흥연주를 시도하기도한다. 우연이 주는 자유, 우연성의 음악도 있지않던가. 새들이 자신의 노래에 변화를 주며 흥미를 느끼듯이, 주요 테마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스케일을 덧붙여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혼돈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는 훌륭한 연주보다 행복한 연주가 낫다고 믿는다. 모든 색소폰 애호가들에게 적극 권장한다.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즐거움을 누려보시라고. 그것이 음악적 해프닝인들 어떠랴. 아마추어이기에 가능하다. 버스킹의두려움은 그 이상의 쾌락으로, 기쁨으로 반전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 짐을 꾸릴 때 제일 먼저 악기를 챙긴다. 나의 색소폰은 인생에 대한사랑과 열정의 징표다. 나는 안달루시아를 떠나지만 안달루시아에서의 연주는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글 | 박형섭 부산대 불문과 교수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1
  • [MUSIC ESSAY] 색소폰,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반하다
    안달루시아, 열정의 대지로 스페인은 어디서나 거리 퍼포먼스로 활기차다. 악기를들고 떠돌아다니는 악사에겐 낙원이나 다름없다. 게다가버스킹은 내 주요 관심사가 아니던가. 나는 여행 중 색소폰 연주의 기회가 주어지면, 속내를 맘껏 발산하며 해방의 기분에 젖는다. 그것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나만의 방식이다. 길거리 악사들에게 출신이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다. 연주자라면 누구든지 사람의 왕래가 잦은 번화가나 광장을 무대로 삼으면 된다. 기타나 건반연주자가 대다수이지만 때론 현악 4중주나 라틴 타악기를이용한 살사밴드도 보인다. 세비야의 카르멘과 돈 주앙안달루시아 지방은 지중해에 접해 있다. 남국정취가 물씬 풍기는 기후에 에스파냐 최대의 국립공원 도냐나를 품고 있다. 일년 내내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태양빛을 쬘 수 있다. 야자수와 오렌지 나무들이 널려있어 풍광도 뛰어나다. 이곳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느릿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다. 어느 곳을 가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볼거리가 넘쳐났다. 특히 안달루시아는 8세기에서 13세기까지 이슬람왕국이 지배했는데, 르네상스보다 먼저 근대 문명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방은 아랍, 유대, 아프리카 등 다양성이 공존한다. 그리고 과거 스페인 번영의 주인공들의 후광도 여전히 남아있다. 세비야 대성당에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잠들어있으니 말이다.세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이다. 대항해시대 무역의 관문이자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험가들의 발원지였다.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물품들이 이곳에 모였다. 돈이쌓이고 노동자가 넘쳐났다. 세비야의 번성은 무어인들이 세운 황금 탑이 증명한다. 가톨릭 세력들이 무어인을 몰아내고 세비야 대성당을 세웠다. 거대한 성당은 힘과 권위의 상징물이다. 그들은 동시대 최고의 성당을 건립해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자 했다. 원래 이슬람 모스크였는데 그것을 헐지 않고 그 위에 지었기 때문에 건축학적으로 이슬람과 고딕 두 양식이 섞여 있다. 한 지붕 아래 두 종교가 합쳐있는 것이다. 동시대 에스파냐 사람들은 타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포용해 자기화하는 지혜가 있었다. 다문화의 공존과 화합은 빛나는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명맥을 잇는다.나는 인파로 붐비는 대성당 광장 앞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 관광객을 실은 옛 마차들이 지나가고,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이 소란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몇몇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보인다. 내 눈에 비친 모든 장면들이 영화 속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나도 이 영화 속으로 슬며시 끼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색소포니스트가 등장한다면 제법 괜찮은 장면이 나올 법도 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어떤 노래를 부를까. 우리 노래? 이들이 우리가락에 호응을 해줄까. 좋아, 멋들어지게 나의 애창곡을 불러보는 거야. 대성당의 히랄다 탑을 바라보며 케이팝(K-pop)을 힘차게 내뿜어보는 것이다! 뭇 생각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어서 난 광장 한복판을 걸으면서 이문세의 <옛사랑>을 불렀다. 여행객들이 사진을 찍고 박수치며 환호했다.무엇보다도 세비야는 스페인의 주요 문화가 시작된 곳이다. 투우, 플라멩코, 롯시니의 오페라<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등이 이 도시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아름다운 과달키바르 강이 시내를 관통하고 있다. 야자수 아래 강변을 걷다보니 두 개의 멋진 동상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나는 투우사이고, 다른 하나는 투우장을 응시하는 여인 카르멘이다. 담배공장 아가씨 카르멘이여사랑은 길들지 않는 새잡았다 생각하면 도망가고놓쳤다 생각하면 붙잡히지내가 당신을 사랑하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노천카페 건너편의 세비야 대학은 옛 모습 그대로다. 이 고색창연한 대학건물은 원래 왕립담배공장이었다. 그곳이 바로 <카르멘>의 비극적 무대현장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 카르멘은 근위병으로 일하는 건장한 청년 호세를 만난다. 호세는 카르멘을 보자마자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누구에게도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카르멘의 자유분방함은 호세를 서서히 타락의 길로 이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은 법,배반당한 호세는 카르멘을 죽이고 자살한다. “신중함은 내 성격과 어울리지 않아요. 정열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지요. 언제나 ‘예’라고 말하는 여성은 ‘아니오’라고 말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없어요. 결국 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남자에게 가장 많은 것을 주었답니다.” 오페라 <카르멘>의 테마곡 하바네라의 노랫말이다. 여주인공 카르멘은 길들지 않는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치명적 여인 팜 파탈(femmefatale)의 전형이다.오페라 속 인물들의 사연은 세월 속에 사라지고,담배공장은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의 캠퍼스가되었다. 세비야 대학 옆에는 조용하고 운치 있는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 있다. 학생들의 휴식공간이자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이다. 울창한 숲속의 호수에서 한가롭게 물새들이 노닌다. 가로수 길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하는 마차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지나간다. 어느새 난 중세귀족이 되어 달리는 마차 위에 올라타 호텔을 향하고 있었다.내가 투숙한 호텔의 산타크루스 지역은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엉켜있다. 익숙한 길인 듯 가다 가도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길 양편으로 비슷비슷한 하얀 벽의 집들이 화분들로 장식되어 있다. 뭔가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 유대인동네로구나! 겨우 골목을 빠져나와 오렌지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에 이르렀다. 그 한가운데 돈 주앙의 동상이 뽐내듯 서 있었다. 그는 세비야의 난봉꾼이자 희대의 바람둥이로 문학과 연극, 오페라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여자를유혹해서 욕망을 채운 후 버리기를 반복하는 인간, 그에게 사랑이란 정복의 대상일 뿐이고, 유혹의 기술은 전쟁의 기술과 같다. 그는 여자의아버지가 딸의 복수를 하려하자 그와의 결투도 마다하지 않는다. 죽은 아버지의 유령이 돈 주앙을 지옥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세비야의 골목들은 돈 주앙이 여자를 농락하고 줄행랑치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런 파렴치한의 동상을 세워놓다니 의아한 일이다. 그러나 스페인사람들은 그의 엽색행각(獵色行脚)을 돌부처(동상)로 단죄하는 동시에 기독교체제에 반항하는자유사상을 높이 평가하는 의미도 새겨놓았다.오호라, 돈 주앙은 단지 야비한 호색한이 아니었구나! 플라멩코플라멩코는 집시의 춤이다. 다채로운 프릴(frill)장식의 의상을 입은 댄서의 힘차고 신속한 발놀림, 경쾌하고 현란한 동작이 일품이다. 집시들은 유랑생활하며 박해받는 세월을 사는 동안 자신들만의 정서를 담은 춤과 노래와 연주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오해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예속되기 싫어했고 남들과 똑같은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풀이로 발을 구르거나 손뼉을 치고 큰 소리로 노래했다. 플라멩코는 불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화려하고 뜨거운 춤이다. 플라멩코엔 춤, 노래, 기타연주의 세 요소가 필수다.마침내 집시들은 안달루시아에 정착하면서 긴 방황의 시간을 끝냈다. 지난날의 삶을 반영하듯 플라멩코는 사회비판이나 해학의 스토리를 품고있다.나는 호텔에서 추천한 산타크루즈 광장의 로스가요스(Los Gallos) 공연장을 예약해 두었다.세비야에서 가장 전통 있고 이름난 극장이란다.보통 쇼는 저녁에 하고, 러닝 타임은 한 시간 반정도다. 공연장에서는 음료수 샹그리아와 맥주만을 제공한다기에 간단하게 저녁식사 후 입장해야 했다. 입맛에 딱 맞는 저녁거리로 무엇을 먹을까. 그렇지, 파에야가 있지! 이 나라 전통음식으로 어느 식당에서건 먹을 수 있는 요리다. 해산물과 토마토 등 여러 재료들과 쌀을 섞어 프라이팬에 볶은 것이다. 파에야는 원래 바닥이 얇고 양쪽 손잡이가 있는 프라이팬을 의미한다. 쌀의 산지인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에서 유래했는데, 오늘날은 이 나라 전 지역에서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로스 가요스는 오십 명 정도의 객석을 갖춘 아담한 규모의 소극장이었다. 안내인을 따라 어둠 속에서 자리를 잡으니 이미 관객들로 꽉 차 있었다. 먼저 기타 연주가와 가수가 무대에 등장하여 한 사람은 기타를 치고 다른 한 사람은 손뼉을 치며 노래했다.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어 갔다. 이어서 또 다른 가수들과 무희가 등장해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무대 가까이서 무희들의표정까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댄서들의 애절하고 비장한 표정이 손끝에서 발끝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노래는 구성져 슬펐지만 무희의 관능적인 율동은 에너지가 넘쳤다. 나는 시간가는 줄모르고 무대에 푹 빠져버렸다. 혼신을 다한 무대, 어느새 객석과 무대는 하나가 되었고, 공연장은 도가니처럼 불꽃으로 달아올랐다.스페인 민족이 얼마나 정열적인가는 플라멩코 춤만 봐도 알 수 있다. 매년 축제 시즌에 이 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안달루시아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내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장을 누빈다. 밤이 되면 왁자지껄 노래와 춤판이 벌어진다. 여행자가 이런 흥겨운 축제의 현장을 경험한다면 더없는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지금 여기’의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지만 여행의 추억은 영원하다. 아름다운 추억은 세월이 흘러도 의식 속에 행복한 시간으로 새겨진다. 그라나다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의 추억>그라나다(Granada)는 ‘석류’란 뜻, 알람브라(Alhambra)는 ‘붉다’는 뜻이다. 따라서 알람브라 궁전은 ‘붉은 궁전’이다. 이 성채는 스페인의마지막 이슬람 왕국 나스리의 터전이다. 무슬림 시인들은 이 궁전을 에메랄드 속의 진주로 불렀다. 아랍 건축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섬세한 장식이 돋보인다. 궁전 건축에만 100년 이상 걸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 부부는 나스리 왕국을 정복하여 스페인을 완벽한 가톨릭 국가로 만들 셈이었다.당시 무슬림 왕 무하마드가 저항을 포기한 것은 알람브라 궁전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의 현명한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알람브라 궁전 안뜰에는 분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수로를 따라 작고 예쁜 물줄기들이 끊임없이 솟구쳤다가 떨어진다. 기하학적으로 조경된 꽃과 나무들은 코란에 묘사된 낙원의 모습이다. 그 유명한 음악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여기서 착상되었다. 트레몰로, 즉 동일한 음을 규칙적으로 빠르게 반복하는 주법이 분수의 물방울에서 나왔다. 클래식 기타를 쳐본 사람은 누구나 이 곡을 알 것이다. 기타 현의 울림, 물방울이 튕기듯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선율이 청자의 영혼 속을 파고든다. 누군들 그 매혹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신비로운 물방울소리들은 프란시스코 타레카의 손끝에서 위대한악곡으로 완성됐다.웅장한 궁전의 정원엔 다양한 인종의 방문객들로 붐볐다. 궁내에서는 어떤 악기 연주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궁전 앞이나 주변의 빈터,오렌지 밭 등에서는 버스킹이 가능하다. 나는알람브라를 떠나기 앞서 색소폰의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 나에게 연주 장소는 그 공간을 추억케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악기를 들고 서둘러 성 밖의 오렌지 숲으로 향했다. 악기를 세팅해 목에 걸고 건너편 성벽을 올려보았다.성안에서 사람들이 날 보고 손짓하는 듯했다.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모든 관악기의 음색은 호흡이 좌우한다. 색소폰은 호흡의 예술인 것이다. 나의 노래는 알람브라 궁전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새 허공으로 사라져갔다. 안달루시아를 떠나며모든 인간은 음악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을 들으면 서서히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다. 기분이 좋아지거나 옛 추억에 전율하기도 한다. 누구나 음악을 듣지만 직접 음악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정도다. 나처럼 아마추어 색소포니스트에게 음악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순수한 열정 하나로음악의 세계를 배회하는 것이다. 내게 색소폰 연주는 가벼운 유희에 불과하지만, 프로페셔널 연주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에게 음악은 직업이고 삶의 수단이다. 그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심층적인 느낌을 불러올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프로의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위대한 음악가는 언제나 아마추어에서 출발했다.나는 때로 기분에 따라 즉흥연주를 시도하기도한다. 우연이 주는 자유, 우연성의 음악도 있지않던가. 새들이 자신의 노래에 변화를 주며 흥미를 느끼듯이, 주요 테마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스케일을 덧붙여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혼돈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나는 훌륭한 연주보다 행복한 연주가 낫다고 믿는다. 모든 색소폰 애호가들에게 적극 권장한다.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즐거움을 누려보시라고. 그것이 음악적 해프닝인들 어떠랴. 아마추어이기에 가능하다. 버스킹의두려움은 그 이상의 쾌락으로, 기쁨으로 반전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 짐을 꾸릴 때 제일 먼저 악기를 챙긴다. 나의 색소폰은 인생에 대한사랑과 열정의 징표다. 나는 안달루시아를 떠나지만 안달루시아에서의 연주는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글 | 박형섭 부산대 불문과 교수
    • 월간색소폰
    2018-07-31
  • [LEGEND ICON] 소울풀한 연주의 퓨전재즈 낭만가 ‘스탠리 터렌타인’
    호수 위에 이는 파문처럼 잔잔한 듯 힘 있는 음색의 테너색소폰 연주자 스탠리 터렌타인. 1960년대 블루스와 소울재즈 뮤지션 가운데 그의 풍부한 음색과 편안한 스타일의 연주기법은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상적 연주 파트너이자 아내인 셜리 스콧과 주옥같은 리듬앤블루스 음반을 발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연주를 하는 그는 재즈 역사상 로맨티시즘을 가장 잘 표현한 색소포니스트로 평가된다. 음악 평론가 스티브 휴이는 스탠리의 음악을 “두터운 듯 잔잔한 울림을 주는, 독특한 색깔을 지녔다”는 찬사를 남겼다. 모태 음악가 스탠리 터렌타인, 음악가족의 위상을 과시하다스탠리 터렌타인(Stanley Turrentine, 1934~2000)은 1934년 4월 5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재즈의 메카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음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부모님의 영향 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아버지 토마스 터렌타인(Thomas Turrentine)은 알 쿠퍼(Al Cooper)의 레코드사 사보이 술탄(Savoy Sultans)의 색소폰 연주자였으며, 스탠리가 열세 살이 되던 해의 첫 번째 선생 님이었다. 또한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접한 독특한 블루스 느낌은 그에게 깊은 인상 을 남겨 음악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형 토미 터렌타인(Tommy Turrentine)은 트럼피터이자 작곡가로 디지 길레스피, 카운트 베이시, 빌리 엑스타인(Billy Eckstine), 베니 카터(Benny Carter)가 이끄는 빅밴드에서 활동 한 다재다능한 음악가였다. 열여섯 살의 스탠리 터렌타인은 형의 도움으로 피츠버그의 작 은 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스탠리는 드러머인 맥스 로취(Max Roach) 밴드의 단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이후 형제들과 같은 재즈그룹에서 연주를 한다. 그의 동생 또한 재즈 드러머 였으며, 스탠리의 아내는 재즈 오르간 연주자 셜리 스콧(Shirley Scott)이었다. 그녀와의 만 남으로 주옥같은 소울재즈 음반을 발매한다.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음악가족의 면모를 과 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적 소울메이트 레이 찰스와 셜리 스콧과의 만남스탠리 터렌타인은 1951년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로웰 풀슨(Lowell Fulson)의 블루 스 밴드에 입단한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레이 찰스를 만나 그가 결성한 첫 번째 밴드에서 연주하며 교류한다. 이후 태드 다메론(Tadd Dameron) 밴드 에서 활동한 후 1953∼1954년, 유명 색소포니스트자이자 미국 R&B의 선구자로 추앙 받는 얼 보스틱(Earl Bostic)의 리듬앤블루스 캄보밴드에 입단하여 존 콜트레인 대신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순회공연을 다닌다.1956년 말부터 1959년까지 육군에 복무하며 군밴드에서 연주한 당시는 그가 공식적으로 음악교육을 받던 시기다. 1959년에는 제대와 동시에 조지 콜맨(George Coleman)의 대타로 드러머 맥스 로치의 5중주 밴드에 합류하여 유럽을 순회했다. 당시 그의 형 토미도 함께하였으며 이듬해 여름, 스탠리는 자신의 밴드를 만들게 된다. 1960년 스탠리는 자신이 결성한 밴드에서 그만의 스타일로 마음껏 연주한다. 블루노트에서 제작한 그의 첫 솔로 음반은 데뷔하자마자 인기 반열에 오른다. 이후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자로 인기를 구가한 셜리 스콧과의 만남으로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수많은 음반을 발표한다. 또한 그의 이상적인 연주 파트너이자 인생의 파트너가 된 그녀와는 결혼을 하게 된다. 셜리 스콧 외에도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Jimmy Smith)와 영감을 교류하며 영혼을 울리는 곡들을 남긴다.스탠리는 자신의 앨범 뿐만 아니라 호레이스 팔란(Horace Parlan), 아트 테일러, 지미 스미스(Jimmy Smith), 듀크 조단(Duke Jordan),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의 앨범 제작에도 참여해 역량을 과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가장 빛나던 시절, 가장 영롱한 음악을 구가하다1970년대에는 스탠리의 영원할 것 같던 영혼의 연주자 셜리 스콧과 이혼을 하고,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음악스타일도 퓨전재즈로 바뀌게 된다. 이 시기 ‘시티아이 레코드(CTI Records)’의 설립자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와 만나 그의 레이블에서 녹음작업을 했다. 스탠리 터렌타인의 음악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낸 곳을 꼽으라면 CTI 레코드 시절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발매한 첫 번째 앨범 ‘슈거(Sugar)’는 그와 크리드에게 커다란 성공을 안겨주었다. 이후 ‘솔트 송(Salt Song)’은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이룬다. 스탠리와 CTI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동반 유명세를 타고 퓨전재즈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스탠리는 크리드와 함께 일하며 밀트 잭슨(Milt Jackson), 프레디 허바드(Freddie Hubbard), 조지 벤슨(George Benson), 론 카터(Ron Carter), 에릭 게일(Eric Gale)과 같은 명연주자들과도 협연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명반으로 손꼽히는 ‘Don't Mess with Mister T.’는 CTI 시절 발매한 마지막 음반으로 퓨전재즈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인 밥 제임스(Bob James)와 함께했다. CTI 레코드 시절은 스탠리의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 활동한 레이블과 비교해보면 그의 음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자악기를 도입하여 어떤 색깔을 드러냈는지 살펴보면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 CTI는 스탠리에게 그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음악적인 자유를 주었고, 보답이라도 하듯 스탠리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상의 재즈 음악을 탄생시켰다. 이는 그에게 10년 동안의 부와 인기를 모두 가져다주었다. ‘왓츠 고잉 온(What's Going on)’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울 가수이자 R&B 뮤지션 마빈 게이(Marvin Gaye)와 영화 ‘트러블 맨(Trouble Man)’의 사운드트랙 앨범 제작에 참여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한다. 상업적인 성공에 이어 소울재즈 연주자로의 귀환스탠리 터렌타인은 음악감독 미셀 르그랑(Michel Legrand)을 만나 로버트 포스터, 로렌 허튼 주연의 영화 ‘꿈의 조각들(Pieces of Dreams)’을 통해 동명의 주제곡인 ‘Pieces of Dreams’으로 또 한번 대중적인 성공을 이룬다. 그러나 스탠리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편집되는 판타지 레이블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스탠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기를 원했지만 음반 판매고가 그의 음악적 성취를 대신하진 못했다.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앨범 인플레이션(Inflation)은 타이틀 곡 ‘Is It You’를 피아니스트 시더 월튼(Cedar Walton)과 협업하여 기대를 모았지만, 안타깝게도 히트곡으로 기억되지 못한 채 대중에게 멀어졌다. 음악적으로 굴곡진 시간을 보내고 초심으로 돌아간 스탠리는 1984년, 블루노트 레코드로 귀환을 결심한다. 스트레이트 어헤드(Straight Ahead)의 음반 제작에 참여하고 1986년에는 원더랜드(Wonderland) 음반에 참여했다. 전곡이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작곡으로 유명한 원더랜드는 스탠리의 부드러운 색소폰 음색과 스티비 원더의 음악이 감미롭게 조화를 이룬다. 재즈의 메카, 피츠버그로 돌아오다1992년 스탠리는 시더 월튼, 론 카터(Ron Carter), 빌리 히긴스(Billy Higgins) 등 쟁쟁한 뮤지션들과 앨범 ‘More Than a Mood’을 제작한다. 재즈 음반에서만 볼 수 있는 제목처럼 스탠리 터렌타인은 이 음반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마음껏 드러낸다. 이후 1993년 플루트 연주자 휴버트 로스(Hubert Laws), 피아니스트 롤랜드 한나(Roland Hanna),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론 카터, 가수이자 재즈 연주자인 그래디 테이트(Grady Tate), 돈 세버스키(Don Sebesky) 등 뮤지션과도 폭넓은 활동을 재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는 1995년에 CTI 시절 만든 곡을 리메이크하여 앨범을 발매하고, 여러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소소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 기존에 발매한 그의 앨범을 콩코드 레이블에서 리메이크한 ‘Do You Have Any Sugar?’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 앨범을 녹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해 9월 12일, 스탠리는 뉴욕에서 뇌졸중으로 안타깝게 사망한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스탠리 터렌타인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낭만파 시대의 음악가 포스터가 잠든 곳이기도 한 피츠버그의 앨리게니 묘지에 묻힌다. 피츠버그의 ‘Hill District’는 재즈의 메카로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으며, 탄생과 죽음까지도 음악과 함께 한 스탠리 터렌타인은 재즈계의 낭만주의 음악가로 우리들에게 남았다. (월간색소폰)김광숙 칼럼니스트=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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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31
  • [LEGEND ICON] 소울풀한 연주의 퓨전재즈 낭만가 ‘스탠리 터렌타인’
    호수 위에 이는 파문처럼 잔잔한 듯 힘 있는 음색의 테너색소폰 연주자 스탠리 터렌타인. 1960년대 블루스와 소울재즈 뮤지션 가운데 그의 풍부한 음색과 편안한 스타일의 연주기법은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상적 연주 파트너이자 아내인 셜리 스콧과 주옥같은 리듬앤블루스 음반을 발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연주를 하는 그는 재즈 역사상 로맨티시즘을 가장 잘 표현한 색소포니스트로 평가된다. 음악 평론가 스티브 휴이는 스탠리의 음악을 “두터운 듯 잔잔한 울림을 주는, 독특한 색깔을 지녔다”는 찬사를 남겼다. 모태 음악가 스탠리 터렌타인, 음악가족의 위상을 과시하다스탠리 터렌타인(Stanley Turrentine, 1934~2000)은 1934년 4월 5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재즈의 메카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음악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부모님의 영향 으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아버지 토마스 터렌타인(Thomas Turrentine)은 알 쿠퍼(Al Cooper)의 레코드사 사보이 술탄(Savoy Sultans)의 색소폰 연주자였으며, 스탠리가 열세 살이 되던 해의 첫 번째 선생 님이었다. 또한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접한 독특한 블루스 느낌은 그에게 깊은 인상 을 남겨 음악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형 토미 터렌타인(Tommy Turrentine)은 트럼피터이자 작곡가로 디지 길레스피, 카운트 베이시, 빌리 엑스타인(Billy Eckstine), 베니 카터(Benny Carter)가 이끄는 빅밴드에서 활동 한 다재다능한 음악가였다. 열여섯 살의 스탠리 터렌타인은 형의 도움으로 피츠버그의 작 은 그룹에서 활동하게 된다. 스탠리는 드러머인 맥스 로취(Max Roach) 밴드의 단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이후 형제들과 같은 재즈그룹에서 연주를 한다. 그의 동생 또한 재즈 드러머 였으며, 스탠리의 아내는 재즈 오르간 연주자 셜리 스콧(Shirley Scott)이었다. 그녀와의 만 남으로 주옥같은 소울재즈 음반을 발매한다. 그의 일생은 그야말로 음악가족의 면모를 과 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적 소울메이트 레이 찰스와 셜리 스콧과의 만남스탠리 터렌타인은 1951년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로웰 풀슨(Lowell Fulson)의 블루 스 밴드에 입단한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레이 찰스를 만나 그가 결성한 첫 번째 밴드에서 연주하며 교류한다. 이후 태드 다메론(Tadd Dameron) 밴드 에서 활동한 후 1953∼1954년, 유명 색소포니스트자이자 미국 R&B의 선구자로 추앙 받는 얼 보스틱(Earl Bostic)의 리듬앤블루스 캄보밴드에 입단하여 존 콜트레인 대신 색소폰을 연주하면서 순회공연을 다닌다.1956년 말부터 1959년까지 육군에 복무하며 군밴드에서 연주한 당시는 그가 공식적으로 음악교육을 받던 시기다. 1959년에는 제대와 동시에 조지 콜맨(George Coleman)의 대타로 드러머 맥스 로치의 5중주 밴드에 합류하여 유럽을 순회했다. 당시 그의 형 토미도 함께하였으며 이듬해 여름, 스탠리는 자신의 밴드를 만들게 된다. 1960년 스탠리는 자신이 결성한 밴드에서 그만의 스타일로 마음껏 연주한다. 블루노트에서 제작한 그의 첫 솔로 음반은 데뷔하자마자 인기 반열에 오른다. 이후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자로 인기를 구가한 셜리 스콧과의 만남으로 리듬앤블루스 스타일의 수많은 음반을 발표한다. 또한 그의 이상적인 연주 파트너이자 인생의 파트너가 된 그녀와는 결혼을 하게 된다. 셜리 스콧 외에도 오르간 연주자 지미 스미스(Jimmy Smith)와 영감을 교류하며 영혼을 울리는 곡들을 남긴다.스탠리는 자신의 앨범 뿐만 아니라 호레이스 팔란(Horace Parlan), 아트 테일러, 지미 스미스(Jimmy Smith), 듀크 조단(Duke Jordan),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의 앨범 제작에도 참여해 역량을 과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다. 가장 빛나던 시절, 가장 영롱한 음악을 구가하다1970년대에는 스탠리의 영원할 것 같던 영혼의 연주자 셜리 스콧과 이혼을 하고, 이 일을 계기로 그의 음악스타일도 퓨전재즈로 바뀌게 된다. 이 시기 ‘시티아이 레코드(CTI Records)’의 설립자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와 만나 그의 레이블에서 녹음작업을 했다. 스탠리 터렌타인의 음악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낸 곳을 꼽으라면 CTI 레코드 시절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발매한 첫 번째 앨범 ‘슈거(Sugar)’는 그와 크리드에게 커다란 성공을 안겨주었다. 이후 ‘솔트 송(Salt Song)’은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이룬다. 스탠리와 CTI는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동반 유명세를 타고 퓨전재즈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하게 된다. 스탠리는 크리드와 함께 일하며 밀트 잭슨(Milt Jackson), 프레디 허바드(Freddie Hubbard), 조지 벤슨(George Benson), 론 카터(Ron Carter), 에릭 게일(Eric Gale)과 같은 명연주자들과도 협연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도 명반으로 손꼽히는 ‘Don't Mess with Mister T.’는 CTI 시절 발매한 마지막 음반으로 퓨전재즈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인 밥 제임스(Bob James)와 함께했다. CTI 레코드 시절은 스탠리의 음악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 활동한 레이블과 비교해보면 그의 음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자악기를 도입하여 어떤 색깔을 드러냈는지 살펴보면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 CTI는 스탠리에게 그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음악적인 자유를 주었고, 보답이라도 하듯 스탠리는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최상의 재즈 음악을 탄생시켰다. 이는 그에게 10년 동안의 부와 인기를 모두 가져다주었다. ‘왓츠 고잉 온(What's Going on)’으로 유명한 미국의 소울 가수이자 R&B 뮤지션 마빈 게이(Marvin Gaye)와 영화 ‘트러블 맨(Trouble Man)’의 사운드트랙 앨범 제작에 참여하는 등 전성기를 맞이한다. 상업적인 성공에 이어 소울재즈 연주자로의 귀환스탠리 터렌타인은 음악감독 미셀 르그랑(Michel Legrand)을 만나 로버트 포스터, 로렌 허튼 주연의 영화 ‘꿈의 조각들(Pieces of Dreams)’을 통해 동명의 주제곡인 ‘Pieces of Dreams’으로 또 한번 대중적인 성공을 이룬다. 그러나 스탠리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편집되는 판타지 레이블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스탠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기를 원했지만 음반 판매고가 그의 음악적 성취를 대신하진 못했다.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앨범 인플레이션(Inflation)은 타이틀 곡 ‘Is It You’를 피아니스트 시더 월튼(Cedar Walton)과 협업하여 기대를 모았지만, 안타깝게도 히트곡으로 기억되지 못한 채 대중에게 멀어졌다. 음악적으로 굴곡진 시간을 보내고 초심으로 돌아간 스탠리는 1984년, 블루노트 레코드로 귀환을 결심한다. 스트레이트 어헤드(Straight Ahead)의 음반 제작에 참여하고 1986년에는 원더랜드(Wonderland) 음반에 참여했다. 전곡이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작곡으로 유명한 원더랜드는 스탠리의 부드러운 색소폰 음색과 스티비 원더의 음악이 감미롭게 조화를 이룬다. 재즈의 메카, 피츠버그로 돌아오다1992년 스탠리는 시더 월튼, 론 카터(Ron Carter), 빌리 히긴스(Billy Higgins) 등 쟁쟁한 뮤지션들과 앨범 ‘More Than a Mood’을 제작한다. 재즈 음반에서만 볼 수 있는 제목처럼 스탠리 터렌타인은 이 음반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마음껏 드러낸다. 이후 1993년 플루트 연주자 휴버트 로스(Hubert Laws), 피아니스트 롤랜드 한나(Roland Hanna),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론 카터, 가수이자 재즈 연주자인 그래디 테이트(Grady Tate), 돈 세버스키(Don Sebesky) 등 뮤지션과도 폭넓은 활동을 재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전성기 시절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그는 1995년에 CTI 시절 만든 곡을 리메이크하여 앨범을 발매하고, 여러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등 소소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 기존에 발매한 그의 앨범을 콩코드 레이블에서 리메이크한 ‘Do You Have Any Sugar?’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 앨범을 녹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해 9월 12일, 스탠리는 뉴욕에서 뇌졸중으로 안타깝게 사망한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스탠리 터렌타인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그리고 낭만파 시대의 음악가 포스터가 잠든 곳이기도 한 피츠버그의 앨리게니 묘지에 묻힌다. 피츠버그의 ‘Hill District’는 재즈의 메카로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으며, 탄생과 죽음까지도 음악과 함께 한 스탠리 터렌타인은 재즈계의 낭만주의 음악가로 우리들에게 남았다. (월간색소폰)김광숙 칼럼니스트=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1
  • [HOT ISSUE]마음을 치유하는 뮤직 테라피 ‘건강한 색소폰’
    우리는 모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육체적 건강만이 아닌 정신적, 사회적, 영적, 경제적, 지적 건강 모두를 충족한 상태입니다. 중년층에서 가장 선호하는 악기 색소폰으로 다양한 측면의 건강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색소폰 연주를 통해 얻는 뮤직 테라피의 원리를 한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색소폰 연주를 통해서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고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충족, 나아가 자아실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포괄적 의미의 온전한 건강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과 허약함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완전한 ‘안녕(Well-being)’상태인 것을 말합니다. ‘신체적 건강’은 질병과 상처가 없고, 체력과 저항력, 항상성을 포함한 자가 치유력이 정상인 상태입니다. ‘정신적 건강’이 충족되면 감정 조절 능력과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습니다. 즐거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삶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며, 탐욕이 없는 긍정적인 사고로 평안한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심신(心身)이라는 단어는 신체적 건강상태가 개선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 오고, 마음의 변화는 몸의 변화를 가져와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지요. 마음의 상처가 신체의 질병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심신의학(心身醫學)이라고 합니다.‘사회적 건강’이 충족된 국가는 복지와 생활안정망이 보장되어 있고, 사회 활동의 기본 여건이 확보되어 행복도가 높습니다. 또한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종교적, 사회 구성원의 계층 간 갈등이 없으며 사고나 범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서 제시한 4가지의 건강과 ‘경제적 건강’, ‘지적 건강’ 두 가지를 포함하여 여섯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완전한 개념의 건강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의 이상향 ‘음양화평지인’건강(健康)이란 한자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한자로는 ‘굳셀 건(健)’과 ‘편안할 강(康)’으로 씁니다. 건강(健康)의 健은 육체적으로 튼튼함을 의미하고, 康이란 정신적인 평온함을 뜻하는 글자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조상들의 건강개념도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에 관한 속담을 하나 보겠습니다.“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우리의 삶에서 ‘건강’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중요한 가치이며 복 중에서 제일의 복입니다. 상당한 부를 누리거나 명예와 지위가 높고 색소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건강이 나빠져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한의학에서는 건강의 기준을 음양화평(陰陽和平)으로 표현합니다. 음과 양이 조화롭고 평안한 상태라는 의미이며 이를 이룬 사람을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들의 특징으로는 온화하고 점잖으며 성격이 유순하여 환경에 잘 적응하고, 엄숙한 태도에 품행이 단정하며 사람을 부드럽게 대합니다. 그리고 눈빛이 상냥하며 행동에 절도가 있고 일처리가 분명합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뮤직 테라피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색소폰 연주를 음악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음악은 인류가 등장한 이후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민요들이 그렇습니다. 동양의 고전 사서오경(四書五經)가운데 시경(詩經)은 공자가 중국 전역의 노래를 모은 책입니다. 당시에는 선율의 높이나 길이를 표시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노래 가사만을 모아 기록했습니다. 수많은 노래들을 간추린 300여 편의 시(詩)는 중국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민요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대중가요 가사를 모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음악에 대한 재능과 사랑은 전 세계에서 최고라고 평가받을 정도입니다. 모임과 야유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음악이 함께하고, 회식 후에는 반드시 노래방을 찾아 기분을 돋웁니다. 노래를 부르고 색소폰 연주를 하면 우리는 일상사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고 여가 시간을 더욱 재미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보다 능동적인 일입니다. 색소폰 연주자는 음악소비자가 아닌 음악생산자로서의 뿌듯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색소폰 연주처럼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심신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음악치료, 즉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의 기능입니다. 이는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막혀 있던 에너지를 분출시켜 각종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음양오행과 상통하는 펜타토닉 스케일좋은 음악은 마음을 치유하고 그것이 점점 발전하면 육체적인 치료까지 가능합니다. 음악을 통한 치유는 정서적인 면에서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질병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는 한의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심신(心身)의 의미와 같습니다. 필자는 한의학 기초를 공부하면서 위대한 건강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음양오행’과 ‘12경락’을 음악 이론에 연관시켜 12경락은 12스케일 또는 12달로 비유해 보았습니다. 하루가 낮 12시간, 밤 12시간으로 구분되어 24시간이 되는 것은 24스케일과도 일치합니다.수많은 선율과 화성, 리듬은 우리 인체 신경계의 흐름과 심장의 맥박, 혈액의 흐름과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경락은 메이저 스케일로, 음경락은 마이너 스케일로 비유할 수 있고, 오행은 5가지 음으로 구성된 펜타토닉 스케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펜타토닉 스케일은 우리 민요음악의 궁상각치우(음악의 오음)와 동일한 스케일입니다. 세계의 민요들은 대부분 펜타토닉 스케일입니다.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과 미국의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대표적입니다. 12경락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12스케일음악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이론은 5음계가 확장된 7음계가 있고, 이 7음계를 평균율로 나누면 12음계가 됩니다. 이를 다시 세분하면 12개의 메이저 스케일과 12개의 마이너 스케일로 분류됩니다. 12메이저 스케일이란 12개의 양경락, 12월의 양력(陽曆)을 뜻하고 12마이너 스케일이란 12개의 음경락, 12월의 음력(陰曆)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4스케일은 하루 24시간과 1년의 24절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경락은 우리 몸 구석구석을 일정하게 순환하는 기(氣)의 통로입니다. 손가락에는 12경락이 흐르고 있습니다. 연주할 때 핑거링을 일일이 하다보면 손가락을 자극하여 12경락의 흐름을 좋게 합니다. 즉, 색소폰을 연주하는 우리 몸의 컨디션을 회복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음악치료의 기본적인 역학 구조는, 12경락과 12스케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피아니스트들이 장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이론이 증명됩니다.따라서 12경락과 12스케일은 일맥상통하는 유무형적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입니다. 색소폰은 멜로디 악기이므로 스케일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됩니다. 색소폰을 불 때 건강해진다는 원리는 바로 원활한 12경락의 흐름 덕분입니다. 건강한 호흡을 통한 폐 기능의 활성화색소폰을 불 때 내쉬는 호흡은 소리를 낼뿐만 아니라 사기(邪氣, 질병을 일으키는 간사한 기운)도 배출됩니다. 몸속의 탁한 에너지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입니다. 색소폰을 부는 호흡은 단전호흡법과도 일치합니다. 호흡을 순간적으로 많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조금씩 내쉬면 폐 건강이 증진됩니다. 혹자는 색소폰을 불면 폐의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이런 말이 나온 연유를 짐작해보면, 선배 연주자들이 음주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영양이 결핍된 상태에서 어두컴컴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오랜시간 악기를 불어 결국 폐병에 걸리는 경우입니다. 이 때문에 관악기를 불면 폐가 안 좋아진다는 와전된 소문이 고착된 것 같습니다. 현재는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론이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인체기관은 퇴화된다는 말입니다. 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우리들의 운동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걷거나 뛰지 않고 대중교통과 자가용을 이용하여 폐가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색소폰 연주를 위한 호흡은 운동량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폐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단지 조심해야할 것은 색소폰을 연주할 때의 자세입니다.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는 폐 용적을 위축시키기에 어깨를 펴고, 허리를 뒤로 젖히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덧붙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신체 부위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뇌 운동으로 중년의 건강 증진색소폰은 우리나라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악기임에 틀림없으며, 중장년층에게는 동적(動的) 운동보다 정적(靜的) 운동이 좋습니다. 정적 운동에는 요가, 단전호흡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색소폰은 적당한 악기의 무게를 지탱하며 리듬에 몸을 맞추는 가벼운 육체 운동과 호흡, 악보를 보고 생각하는 뇌 운동을 겸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은 뮤직 테라피에 속합니다. 색소폰 연주는 건강증진과 치매 예방에도 특효가 있어 건강한 신체로 노후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악보를 눈으로 익히고 색소폰의 운지 위치를 알아야 하며, 또한 두뇌도 사용하여 손가락을 움직이니 저절로 뇌세포의 시냅스가 연결되어 치매 예방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12스케일의 색소폰 운지 위치를 알아야 연주가 가능하고 동일한 음이라도 멜로디의 앞뒤에 따라 운지가 달라짐을 판단해야합니다. 따라서 뇌의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올바른 생활습관에서 오는 욕구 충족육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올바른 식생활이 기본입니다. 무공해의 음식을 먹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각종 위험환경에 대한 노출이 적은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셔야 행복한 색소폰 연주가 가능합니다. 현재 일부의 색소폰 동호회는 모이기만 하면 음주를 즐기는데, 이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취미 생활이라고 봅니다.우리는 모두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고, 예뻐지고, 공부를 잘하기를 원하고, 더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진보(進步)와 향상(向上)의 욕구가 있습니다. 색소폰 애드리브 역시 연주를 더 잘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욕구에서 비롯합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노력의 필요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색소폰 연주 실력의 발전은 삶의 윤활유가 되고 매슬로우(Maslow)의 5단계 욕구 가운데 ‘최상위의 욕구’ 즉,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단계인 ‘자아실현’이 절로 이루어집니다. 본인이 즐겁게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덩달아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행복한 바이러스가 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색소폰을 열심히 연주하면 건강은 저절로 증진된다고 확신합니다. 소속감을 통해 사회적 건강 증진 색소폰 합주와 동호회 활동은 회원들 간 혼연일체의 동질감을 공유하여 소속감을 갖게 하고 사회적 건강을 증진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함께 어울리고 싶은 욕구로, 매슬로우가 말하는 ‘소속과 인정의 욕구’입니다. 조직이나 대학교의 동아리, 사회의 다양한 동호회는 이 욕구를 충족시켜 안정감을 느끼고 건강 증진에도 도움을 줍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 가운데 색소폰 동호회는 사회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호회 활동은 소속감을 갖게 하여 회원들 간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어 사회적인 건강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색소폰 음악은 무형적 감정소통의 매체로서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정신장애는 의사소통의 붕괴 또는 단절에 의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동호회 구성원들과 다른 동호회와의 의사소통은 음악치료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 간 연주 관점의 차이로 반목하거나 시기와 질투는 지양하고, 다른 동호회 회원들도 이해와 사랑으로 교류하고 소통해야합니다. 함께 상생하는 활기찬 에너지로 색소폰 연주 활동을 하는 것은 사회적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엔도르핀 분비연주를 통해 한 곡, 한 곡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반복되는 과정을 인내하면, 뿌듯한 마음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순간 엔도르핀(Endorphin)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기쁨의 감정을 느끼면 면역세포인 NK세포(Natural Killer Cell)가 증가 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엔도르핀 분비가 충분하다는 증거입니다. 타인을 위해 사랑으로 봉사를 할 때 몸은 건강해집니다. 암세포가 파괴되는 것이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원망하고 분노할 때 면역세포는 감소하고 암세포는 증식하기 시작합니다. 사랑받는 세포는 건강해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색소폰 연주는 심미적 욕구를 채워주기도 합니다. 심미적 욕구는 예술성을 추구하여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정서적이고 감성적이며 내적인 아름다움을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색소폰이나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술 활동이 신체의 면역성을 높여 주기 때문입니다. 색소폰 연주로 인한 자율신경계의 조화우리 몸의 신경계 중 ‘자율신경계’는 길항작용을 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감신경계는 척수신경에 의해 내장기관과 뇌를 연결시켜서 자극을 받으면 심장박동률이 증가하고 근육으로 흐르는 혈액량이 증가하는 반면, 피부로 흐르는 혈액량은 감소하며 소름이 돋는 긴장 상태가 됩니다. 부교감신경계는 스트레스가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활성화되며 가능한 신체의 에너지 이용을 최소화하여 보존하는 기능을 하고, 소화나 배설작용과 같은 인체의 대사 작용을 담당합니다. 혈압, 심박수, 호흡수를 정상보다 낮은 수치로 조절하여, 위장관의 활동을 증가시키고 피부를 따뜻하게 합니다. 동공을 수축시키고 시력이 좋아지도록 수정체가 조절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심경이 활성화됩니다. 반면 명상, 기도, 노래, 색소폰 연주와 7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는 활동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킵니다. 하지만 부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되면 무기력해지거나 우울감을 느끼고, 어두운 곳에서는 동공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아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부교감신경은 땀을 억제하는 역할을 관장하는데, 이 신경이 항진되면 체온 조절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교감신경계는 색소폰 연주의 메이저 스케일로, 부교감신경계는 마이너 스케일로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즐겨 연주하는 곡은 메이저 스케일로 만든 곡과 마이너 스케일로 만든 곡이 있습니다. 따라서 색소폰 연주를 통해 음양의 조화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이루며 건강한 신체로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카타르시스 체험으로 인한 온전한 건강상태서양의학에서도 음악을 듣거나 연주를 하면 맥박이 촉진되고, 심장이나 위 등의 순환기와 소화기 계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특히 신경계, 호흡기와 관련이 깊습니다. 색소폰 연주를 비롯한 음악 활동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생리적으로 진정시키는 효과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색소폰 연주를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타르시스는 억압되고 우울한 감정을 정화 혹은 배설함으로써 가슴속을 시원하게 하는 청량제와 같은 효과를 줍니다. 대중들 앞에서 멋진 독주 그리고 합주를 마치고 난 후,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 차는 감정이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순간입니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무형의 음악적 가치입니다. 카타르시스는 천연 마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색소폰 연주와 동호회 활동을 통해서 개인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과 사회적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은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고, 온전한 건강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음양화평,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조화로움으로 인해 행복이 증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간색소폰)최종운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1
  • [HOT ISSUE]마음을 치유하는 뮤직 테라피 ‘건강한 색소폰’
    우리는 모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육체적 건강만이 아닌 정신적, 사회적, 영적, 경제적, 지적 건강 모두를 충족한 상태입니다. 중년층에서 가장 선호하는 악기 색소폰으로 다양한 측면의 건강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색소폰 연주를 통해 얻는 뮤직 테라피의 원리를 한의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색소폰 연주를 통해서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고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충족, 나아가 자아실현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포괄적 의미의 온전한 건강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과 허약함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으로 완전한 ‘안녕(Well-being)’상태인 것을 말합니다. ‘신체적 건강’은 질병과 상처가 없고, 체력과 저항력, 항상성을 포함한 자가 치유력이 정상인 상태입니다. ‘정신적 건강’이 충족되면 감정 조절 능력과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습니다. 즐거움과 감사한 마음으로 삶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며, 탐욕이 없는 긍정적인 사고로 평안한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심신(心身)이라는 단어는 신체적 건강상태가 개선되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 오고, 마음의 변화는 몸의 변화를 가져와 상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지요. 마음의 상처가 신체의 질병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심신의학(心身醫學)이라고 합니다.‘사회적 건강’이 충족된 국가는 복지와 생활안정망이 보장되어 있고, 사회 활동의 기본 여건이 확보되어 행복도가 높습니다. 또한 지리적,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종교적, 사회 구성원의 계층 간 갈등이 없으며 사고나 범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서 제시한 4가지의 건강과 ‘경제적 건강’, ‘지적 건강’ 두 가지를 포함하여 여섯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완전한 개념의 건강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의 이상향 ‘음양화평지인’건강(健康)이란 한자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한자로는 ‘굳셀 건(健)’과 ‘편안할 강(康)’으로 씁니다. 건강(健康)의 健은 육체적으로 튼튼함을 의미하고, 康이란 정신적인 평온함을 뜻하는 글자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조상들의 건강개념도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에 관한 속담을 하나 보겠습니다.“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우리의 삶에서 ‘건강’은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중요한 가치이며 복 중에서 제일의 복입니다. 상당한 부를 누리거나 명예와 지위가 높고 색소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도, 건강이 나빠져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한의학에서는 건강의 기준을 음양화평(陰陽和平)으로 표현합니다. 음과 양이 조화롭고 평안한 상태라는 의미이며 이를 이룬 사람을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이라고 일컫습니다. 이들의 특징으로는 온화하고 점잖으며 성격이 유순하여 환경에 잘 적응하고, 엄숙한 태도에 품행이 단정하며 사람을 부드럽게 대합니다. 그리고 눈빛이 상냥하며 행동에 절도가 있고 일처리가 분명합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뮤직 테라피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색소폰 연주를 음악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음악은 인류가 등장한 이후 집단생활을 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민요들이 그렇습니다. 동양의 고전 사서오경(四書五經)가운데 시경(詩經)은 공자가 중국 전역의 노래를 모은 책입니다. 당시에는 선율의 높이나 길이를 표시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노래 가사만을 모아 기록했습니다. 수많은 노래들을 간추린 300여 편의 시(詩)는 중국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민요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늘날 대중가요 가사를 모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음악에 대한 재능과 사랑은 전 세계에서 최고라고 평가받을 정도입니다. 모임과 야유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음악이 함께하고, 회식 후에는 반드시 노래방을 찾아 기분을 돋웁니다. 노래를 부르고 색소폰 연주를 하면 우리는 일상사에서 여유로움을 느끼고 여가 시간을 더욱 재미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보다 능동적인 일입니다. 색소폰 연주자는 음악소비자가 아닌 음악생산자로서의 뿌듯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색소폰 연주처럼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심신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음악치료, 즉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의 기능입니다. 이는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막혀 있던 에너지를 분출시켜 각종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음양오행과 상통하는 펜타토닉 스케일좋은 음악은 마음을 치유하고 그것이 점점 발전하면 육체적인 치료까지 가능합니다. 음악을 통한 치유는 정서적인 면에서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질병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는 한의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심신(心身)의 의미와 같습니다. 필자는 한의학 기초를 공부하면서 위대한 건강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음양오행’과 ‘12경락’을 음악 이론에 연관시켜 12경락은 12스케일 또는 12달로 비유해 보았습니다. 하루가 낮 12시간, 밤 12시간으로 구분되어 24시간이 되는 것은 24스케일과도 일치합니다.수많은 선율과 화성, 리듬은 우리 인체 신경계의 흐름과 심장의 맥박, 혈액의 흐름과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경락은 메이저 스케일로, 음경락은 마이너 스케일로 비유할 수 있고, 오행은 5가지 음으로 구성된 펜타토닉 스케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펜타토닉 스케일은 우리 민요음악의 궁상각치우(음악의 오음)와 동일한 스케일입니다. 세계의 민요들은 대부분 펜타토닉 스케일입니다.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과 미국의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대표적입니다. 12경락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12스케일음악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이론은 5음계가 확장된 7음계가 있고, 이 7음계를 평균율로 나누면 12음계가 됩니다. 이를 다시 세분하면 12개의 메이저 스케일과 12개의 마이너 스케일로 분류됩니다. 12메이저 스케일이란 12개의 양경락, 12월의 양력(陽曆)을 뜻하고 12마이너 스케일이란 12개의 음경락, 12월의 음력(陰曆)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4스케일은 하루 24시간과 1년의 24절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경락은 우리 몸 구석구석을 일정하게 순환하는 기(氣)의 통로입니다. 손가락에는 12경락이 흐르고 있습니다. 연주할 때 핑거링을 일일이 하다보면 손가락을 자극하여 12경락의 흐름을 좋게 합니다. 즉, 색소폰을 연주하는 우리 몸의 컨디션을 회복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음악치료의 기본적인 역학 구조는, 12경락과 12스케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피아니스트들이 장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이론이 증명됩니다.따라서 12경락과 12스케일은 일맥상통하는 유무형적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입니다. 색소폰은 멜로디 악기이므로 스케일의 중요성이 특히 강조됩니다. 색소폰을 불 때 건강해진다는 원리는 바로 원활한 12경락의 흐름 덕분입니다. 건강한 호흡을 통한 폐 기능의 활성화색소폰을 불 때 내쉬는 호흡은 소리를 낼뿐만 아니라 사기(邪氣, 질병을 일으키는 간사한 기운)도 배출됩니다. 몸속의 탁한 에너지가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입니다. 색소폰을 부는 호흡은 단전호흡법과도 일치합니다. 호흡을 순간적으로 많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조금씩 내쉬면 폐 건강이 증진됩니다. 혹자는 색소폰을 불면 폐의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이런 말이 나온 연유를 짐작해보면, 선배 연주자들이 음주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영양이 결핍된 상태에서 어두컴컴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오랜시간 악기를 불어 결국 폐병에 걸리는 경우입니다. 이 때문에 관악기를 불면 폐가 안 좋아진다는 와전된 소문이 고착된 것 같습니다. 현재는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론이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인체기관은 퇴화된다는 말입니다. 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명의 발달로 인해 우리들의 운동량은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걷거나 뛰지 않고 대중교통과 자가용을 이용하여 폐가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색소폰 연주를 위한 호흡은 운동량이 부족한 현대인들의 폐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단지 조심해야할 것은 색소폰을 연주할 때의 자세입니다. 앞으로 구부정한 자세는 폐 용적을 위축시키기에 어깨를 펴고, 허리를 뒤로 젖히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덧붙여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신체 부위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뇌 운동으로 중년의 건강 증진색소폰은 우리나라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악기임에 틀림없으며, 중장년층에게는 동적(動的) 운동보다 정적(靜的) 운동이 좋습니다. 정적 운동에는 요가, 단전호흡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색소폰은 적당한 악기의 무게를 지탱하며 리듬에 몸을 맞추는 가벼운 육체 운동과 호흡, 악보를 보고 생각하는 뇌 운동을 겸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활동은 뮤직 테라피에 속합니다. 색소폰 연주는 건강증진과 치매 예방에도 특효가 있어 건강한 신체로 노후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악보를 눈으로 익히고 색소폰의 운지 위치를 알아야 하며, 또한 두뇌도 사용하여 손가락을 움직이니 저절로 뇌세포의 시냅스가 연결되어 치매 예방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12스케일의 색소폰 운지 위치를 알아야 연주가 가능하고 동일한 음이라도 멜로디의 앞뒤에 따라 운지가 달라짐을 판단해야합니다. 따라서 뇌의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올바른 생활습관에서 오는 욕구 충족육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올바른 식생활이 기본입니다. 무공해의 음식을 먹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각종 위험환경에 대한 노출이 적은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셔야 행복한 색소폰 연주가 가능합니다. 현재 일부의 색소폰 동호회는 모이기만 하면 음주를 즐기는데, 이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취미 생활이라고 봅니다.우리는 모두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고, 예뻐지고, 공부를 잘하기를 원하고, 더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진보(進步)와 향상(向上)의 욕구가 있습니다. 색소폰 애드리브 역시 연주를 더 잘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욕구에서 비롯합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노력의 필요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색소폰 연주 실력의 발전은 삶의 윤활유가 되고 매슬로우(Maslow)의 5단계 욕구 가운데 ‘최상위의 욕구’ 즉,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 단계인 ‘자아실현’이 절로 이루어집니다. 본인이 즐겁게 연주하면 다른 사람이 덩달아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행복한 바이러스가 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색소폰을 열심히 연주하면 건강은 저절로 증진된다고 확신합니다. 소속감을 통해 사회적 건강 증진 색소폰 합주와 동호회 활동은 회원들 간 혼연일체의 동질감을 공유하여 소속감을 갖게 하고 사회적 건강을 증진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는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함께 어울리고 싶은 욕구로, 매슬로우가 말하는 ‘소속과 인정의 욕구’입니다. 조직이나 대학교의 동아리, 사회의 다양한 동호회는 이 욕구를 충족시켜 안정감을 느끼고 건강 증진에도 도움을 줍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 가운데 색소폰 동호회는 사회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호회 활동은 소속감을 갖게 하여 회원들 간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 주어 사회적인 건강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색소폰 음악은 무형적 감정소통의 매체로서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정신장애는 의사소통의 붕괴 또는 단절에 의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동호회 구성원들과 다른 동호회와의 의사소통은 음악치료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 간 연주 관점의 차이로 반목하거나 시기와 질투는 지양하고, 다른 동호회 회원들도 이해와 사랑으로 교류하고 소통해야합니다. 함께 상생하는 활기찬 에너지로 색소폰 연주 활동을 하는 것은 사회적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면역력을 높이는 엔도르핀 분비연주를 통해 한 곡, 한 곡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반복되는 과정을 인내하면, 뿌듯한 마음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순간 엔도르핀(Endorphin) 호르몬이 분비됩니다. 기쁨의 감정을 느끼면 면역세포인 NK세포(Natural Killer Cell)가 증가 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엔도르핀 분비가 충분하다는 증거입니다. 타인을 위해 사랑으로 봉사를 할 때 몸은 건강해집니다. 암세포가 파괴되는 것이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원망하고 분노할 때 면역세포는 감소하고 암세포는 증식하기 시작합니다. 사랑받는 세포는 건강해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색소폰 연주는 심미적 욕구를 채워주기도 합니다. 심미적 욕구는 예술성을 추구하여 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정서적이고 감성적이며 내적인 아름다움을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색소폰이나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예술 활동이 신체의 면역성을 높여 주기 때문입니다. 색소폰 연주로 인한 자율신경계의 조화우리 몸의 신경계 중 ‘자율신경계’는 길항작용을 하는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 두 종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교감신경계는 척수신경에 의해 내장기관과 뇌를 연결시켜서 자극을 받으면 심장박동률이 증가하고 근육으로 흐르는 혈액량이 증가하는 반면, 피부로 흐르는 혈액량은 감소하며 소름이 돋는 긴장 상태가 됩니다. 부교감신경계는 스트레스가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활성화되며 가능한 신체의 에너지 이용을 최소화하여 보존하는 기능을 하고, 소화나 배설작용과 같은 인체의 대사 작용을 담당합니다. 혈압, 심박수, 호흡수를 정상보다 낮은 수치로 조절하여, 위장관의 활동을 증가시키고 피부를 따뜻하게 합니다. 동공을 수축시키고 시력이 좋아지도록 수정체가 조절됩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심경이 활성화됩니다. 반면 명상, 기도, 노래, 색소폰 연주와 7시간 이상 숙면을 취하는 활동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킵니다. 하지만 부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항진되면 무기력해지거나 우울감을 느끼고, 어두운 곳에서는 동공의 확장이 일어나지 않아 사물을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부교감신경은 땀을 억제하는 역할을 관장하는데, 이 신경이 항진되면 체온 조절에도 어려움이 생깁니다. 교감신경계는 색소폰 연주의 메이저 스케일로, 부교감신경계는 마이너 스케일로도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즐겨 연주하는 곡은 메이저 스케일로 만든 곡과 마이너 스케일로 만든 곡이 있습니다. 따라서 색소폰 연주를 통해 음양의 조화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이루며 건강한 신체로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카타르시스 체험으로 인한 온전한 건강상태서양의학에서도 음악을 듣거나 연주를 하면 맥박이 촉진되고, 심장이나 위 등의 순환기와 소화기 계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특히 신경계, 호흡기와 관련이 깊습니다. 색소폰 연주를 비롯한 음악 활동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생리적으로 진정시키는 효과와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색소폰 연주를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카타르시스는 억압되고 우울한 감정을 정화 혹은 배설함으로써 가슴속을 시원하게 하는 청량제와 같은 효과를 줍니다. 대중들 앞에서 멋진 독주 그리고 합주를 마치고 난 후,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 차는 감정이 카타르시스를 맛보는 순간입니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무형의 음악적 가치입니다. 카타르시스는 천연 마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색소폰 연주와 동호회 활동을 통해서 개인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과 사회적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은 카타르시스를 체험하고, 온전한 건강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음양화평,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조화로움으로 인해 행복이 증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월간색소폰)최종운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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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31
  • [SPECIAL] 세계 재즈 페스티벌
    스위스 몽트뢰에서는 매년 7월경 16일간의 재즈 대장정이 펼쳐진다. 전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는 음악과 아티스트들이 열광의 무대를 채운다. 사진Ι구글이미지 음악사의 기념비“이것은 재즈와 블루스 록을 포함한 음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념비이다.”퀸시 존스(Quincy Jones, 1933~)는 20세기가 낳은 음악적 기념비 중 하나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기록물’의 보존 및 복원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이와 같은 말을 남겼다. 1967년에 시작된 만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역사는 어느덧 50년을 바라보고 있다.예술가들이 사랑한 몽트뢰스위스의 리비에라로 불리며 제네바 호수를 끼고 있는 몽트뢰는 주변에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가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곳이다. 아담한 휴양지인 몽트뢰는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의 흔적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문학가 ‘헤밍웨이’는 몽트뢰에 머물면서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기여잘 있어라>를 남겼고,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이곳에 머물며 <봄의 제전>을작곡했다. 그밖에 몽트뢰를 사랑했던 이들 중에는 영화감독 겸 배우 ‘찰리 채플린’과 문학가 ‘바이런’ 등이 있다.그룹 QUEEN의 제2의 고향특히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생전 몽트뢰의 아름다움에 반해 즐겨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몽트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코딩 스튜디오인 마운틴 스튜디오가 있었다. 퀸이 이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마침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락그룹으로 유명한 퀸은 그때 제작한 앨범명을라고 이름 지을 만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가 에이즈로 생을 마감할 때도 이곳에 머무를 정도로 몽트뢰를‘제2의 고향’으로 여기기도 했다. 사후 몽트뢰 시정부에서 그를 기리는 동상을 세웠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이곳 몽트뢰를 찾고 있다.세계적 고유성과 대체불가능성1967년부터 2012년까지 개최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라이브’ 음악 레코드 컬렉션은 보편적 중요성과 다양한 문화의 접촉이라는 차원에서 세계에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다. 이 컬렉션은 재즈와 블루스, 록 장르의 발전에 있어 핵심적인 뮤지션의 영향을 반영하며, 세계 음악에 있어서의 특정한 지적 발전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음악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컬렉션은 초기스타일의 재즈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스타일의 시류를 추적하여 기록하고 있다. (월간색소폰)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0
  • [SPECIAL] 세계 재즈 페스티벌
    스위스 몽트뢰에서는 매년 7월경 16일간의 재즈 대장정이 펼쳐진다. 전 세계인의 축제인 만큼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는 음악과 아티스트들이 열광의 무대를 채운다. 음악사의 기념비“이것은 재즈와 블루스 록을 포함한 음악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념비이다.”퀸시 존스(Quincy Jones, 1933~)는 20세기가 낳은 음악적 기념비 중 하나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기록물’의 보존 및 복원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이와 같은 말을 남겼다. 1967년에 시작된 만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역사는 어느덧 50년을 바라보고 있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몽트뢰스위스의 리비에라로 불리며 제네바 호수를 끼고 있는 몽트뢰는 주변에 포도밭이 펼쳐져 있고,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가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곳이다. 아담한 휴양지인 몽트뢰는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의 흔적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문학가 ‘헤밍웨이’는 몽트뢰에 머물면서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무기여잘 있어라>를 남겼고,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이곳에 머물며 <봄의 제전>을작곡했다. 그밖에 몽트뢰를 사랑했던 이들 중에는 영화감독 겸 배우 ‘찰리 채플린’과 문학가 ‘바이런’ 등이 있다. 그룹 QUEEN의 제2의 고향특히 퀸의 ‘프레디 머큐리’는 생전 몽트뢰의 아름다움에 반해 즐겨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몽트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코딩 스튜디오인 마운틴 스튜디오가 있었다. 퀸이 이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마침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락그룹으로 유명한 퀸은 그때 제작한 앨범명을라고 이름 지을 만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가 에이즈로 생을 마감할 때도 이곳에 머무를 정도로 몽트뢰를‘제2의 고향’으로 여기기도 했다. 사후 몽트뢰 시정부에서 그를 기리는 동상을 세웠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이곳 몽트뢰를 찾고 있다. 세계적 고유성과 대체불가능성1967년부터 2012년까지 개최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라이브’ 음악 레코드 컬렉션은 보편적 중요성과 다양한 문화의 접촉이라는 차원에서 세계에 그 무엇과 견줄 수 없다. 이 컬렉션은 재즈와 블루스, 록 장르의 발전에 있어 핵심적인 뮤지션의 영향을 반영하며, 세계 음악에 있어서의 특정한 지적 발전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음악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컬렉션은 초기스타일의 재즈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스타일의 시류를 추적하여 기록하고 있다. (월간색소폰)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0
  • [JAZZ CLUB] 재즈 향 가득한 비밀공간 '라 끌레(La cle)'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삼청동의 좁은 길 어느 골목에 아늑히 들어앉은 <라끌레>. 삐걱삐걱 내려가는 나무 계단 소리는 마치 과거로 안내해 주는 주문 같다. 각자의 추억을 가지고 오르내렸을 나무 계단에는 세월이 묻어있다. <라끌레>는 프랑스어로 ‘열쇠ʼ라는 뜻이다. 어쩐지 비밀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 공간과 잘 맞는 이름이다.​영감이 절로 떠오르는 편안한 공간너무 모던한 느낌의 재즈바가 살짝 부담스럽다면 라끌레를 추천한다. 라끌레는 너무 편한 나머지 그 공간에 들어가는 즉시 나를 놓아두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에 과거의 언저리에 두었던 기억들까지도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두운 실내에 오직 테이블에만 조명이 비쳐, 모든 것을 잊고 음악감상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좋다.매일 흘러나오는 라이브 재즈라끌레는 매일 라이브로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즈 클럽 중 하나이다. 재즈클럽이라면 매일매일 라이브음악이 들려야 한다는 사장님의 신념 때문이다. 주로 젊은 연주자들이 연주하는데, 클럽의 빈티지한 정경과 묘한 세대의 어울림이 형성된다. 무대와 테이블이 가까워 연주자의 숨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공연은 매일 저녁 8시 반에 시작되어 10시 반에 끝난다. 빈티지한 감성의 소품과 인테리어라끌레가 주는 따뜻함은 나무로 이루어진 내부 인테리어의 몫도 있다. 손길이 자주 닿아 반들 거려진 테이블 앞에는 마치 비비킹이 시가를 들고 앉아 있을 것만 같은 가죽시트 의자가 놓여 있다. 주인장의 손길이 닿은 작은 소품들도 마치 전시되어 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느껴질 정도.가끔은 세상의 모든 게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정지한 시간 속에서 오직 나만이 유유자적 거리를 누비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를 감독하는 시간은 잠시 뒤로 두자. 그리고 라끌레에서 흘러나오는 재즈의 음 하나하나에 귀를 맡기고 와인의 향기와 치즈의 부드러움에 모든 감각기관을 맡겨보라. 당신은 어느새멈춰진 시간 속에 와있을 것이다. 글 | 안지인 기자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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