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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야마하, 색소폰 클리닉
그러니까, 뭐든 앞서나갈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다. 업계 최초로 색소폰 클리닉을 개설하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하는 비결이. 음악계의 트렌드에도 민감해서 디지털 악기 분야를 선점한 기술력이. 야마하뮤직코리아(이하 야마하)의 슬로건인 ‘메이크 웨이브즈(Make Waves)’의 뜻 그대로, 음악을 통해 새로운 물결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성실하게 이행 중인 이 브랜드의 비결이 알고 싶었다. 그 해답의 실마리를 최근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야마하 색소폰 클리닉’에서 찾을 수 있었다. ▶기사 전문은 월간색소폰 3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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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계의 흐름이 변한다, 아마추어 연주 트렌드 심층 분석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인들의 연주 트렌드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솔로에서 앙상블로 연주 형태가 확장 됐고, 비주류였던 클래식이나 영화 음악의 인기가 높아졌다. 색소폰에서는 아마추어이지만, 작곡이나 노래 등 타 분야에서 활약하는 프로 뮤지션들의 유입도 돋보인다. 2024년 새해부터 그 변화가 더욱 두드러질 아마추어 연주 트렌드를 함께 살펴보자. 2000년대 후반 중년 남성을 중심으로 시작됐던 ‘색소폰 붐 (boom·어떤 사회 현상의 갑작스러운 유행)’은 이미 오래전부 터 다양한 연령층과 성별로 확대됐다. 여성 연주자는 물론 젊은 연주자들이 속속 등장했고, 제4회 엘프 색소폰 콘테스트에서 야마하상을 수상한 안세린양처럼 일찍이 색소폰에 입문한 사례 도 찾아볼 수 있다. <월간색소폰>에도 소개된 바 있는 김포 대 명초등학교의 색소폰 앙상블과 배문중학교의 색소폰 오케스트 라도 색소폰 인구 다양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기사 전문은 월간색소폰 2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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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색소폰 필진 좌담회
<월간색소폰>이 2024년 새해를 앞두고 악보 필진 좌담회를 열었다. 이번 좌담회는 독자들에게 더욱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의견을 수렴할 목적으로 마련됐다. <월간색소폰>은 앞으로 필진 좌담회를 시작으로, 독자 간담회 등 다양한 소통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글ㅣ 박은주 기자 <월간색소폰> 필진 좌담회가 지난 12월 12일 서울 송파의 한 식당에서 열렸다. 이날 좌담회에는 악보 필진인 ▲이정식 연주자(쉽게 배우는 재즈 색소폰) ▲이수연 연주자(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 색소폰), 이번 1월호부터 가요 악보를 담당하게 된 ▲김성길 연주자(김성길의 감성 K-POP )가 참석했다. 아울러 악보 대신 ‘스폰툰’과 ‘색소폰 런앤톡’을 맡게 된 ▲임민택 연주자, 그리고 월간색소폰 유튜브 방송을 함께 하고 있는 ▲김슬기 연주자까지 자리했다. 이렇게 총 5명의 필진이 모인 가운데 <월간색소폰>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사 전문은 월간색소폰 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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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거위’들의 첫 비행, 브랜든 색소폰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
클래식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국내 최초의 클래식 색소폰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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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으로 타오르는 재즈…18세 청춘들의 '블루 자이언트(Blus Giant)'
블루 자이언트 특별 시사회에서 공연 중인 색소포니스트 김성주씨 일본에 이어 미국 관객까지 사로잡은 재즈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가 10월 18일 국내 개봉했다. 동명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만큼 국내 재즈 마니아들의 뜨거운 관심이 계속되고 있다. 개봉 전부터 주요 재즈 클럽을 중심으로 각종 이벤트가 열렸고, SNS에서도 관련 게시물이 쏟아지는 중이다. <월간색소폰>은 그중에서도 지난 10월 9일 ‘천년동안도 강남’에서 열린 특별 시사회에 참석해 ‘블루 자이언트의 재즈’를 미리 만나봤다. 사방으로 푸른 빛이 튄다. 한계를 넘어 뜨겁게 달아오른 온도는 붉은빛을 내뿜다 못해 서슬 퍼런빛으로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렇게 반짝이는 별을 가리키는 말인 ‘블루 자이언트’. 엄청난 무대를 펼친 재즈 플레이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혼신의 힘을 쏟아부은 연주는 관객을 매료시키고, 공연장을 달군 열기는 강렬한 스파크처럼 번쩍인다. 그 압도적인 기세가 영화 블루 자이언트의 매순간에 깃들어있다. 블루 자이언트 그 자체인 주인공 ‘다이’도, 열정만큼은 다이 못지않은 동료들도, 거장의 손길이 담긴 음악도, 성장 만화의 정석인 스토리도, 모두 숨이 막힐 듯한 맹렬함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중략- 물론 목표가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언제나 찬사만 받던 유키노리가 한 사건을 계기로 슬럼프에 빠졌다가 이를 극복하거나, 쏘 블루의 무대를 앞두고 큰 위기가 닥치는 등 여러 고비가 등장한다. 여느 성장 드라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클리셰다. 그러나 그 클리셰가 진부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주인공들의 진심 어린 열정 때문이 아닐까. 때로는 세련된 말보다 촌스럽고 투박한 고백이 마음을 울리 듯,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세 사람의 의지는 뭉근한 감동을 준다. 아무리 진부해도, 결말이 예상돼도, 가난한 청년의 자수성가 스토리를 응원하게 되는 것처럼, 어느샌가 이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장까지 까보이는 연주”로 온 마음을 다해 열정을 토해내는데, 그 진심에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사 전문은 월간색소폰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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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대학에서 꽃피우는 ‘만학의 기쁨’…강릉영동대학교 실용음악예술과
강릉영동대학교 실용음악예술과 색소폰 전공 학생들이 합주 연습을 하고 있다. 강릉영동대학교 실용음악예술과를 방문한 9월 13일.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전 10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인데도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던 이들은 실용음악예술과의 색소폰 전공생들. 그중에서도 인생의 중반기, 혹은 황혼기에 접어들어 음악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만학도들이다. 이들의 지도 교수는 강릉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색소포니스트 장용국씨. 이날 장씨의 안내에 따라 색소폰 전공 수업과 합주 연습을 차례로 참관했다. 이날 처음으로 만나 본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있는 색소폰 전공생 ▲이정연 ▲황미자 ▲장종석씨였다. 예비 졸업생의 연주를 듣고 한 명 한 명 세심하게 피드백을 주는 실습수업이기 때문에 대게 소규모의 정원으로 진행된다. 한명씩 무대에 올라 연주를 선보이면, 장씨가 보완할 점을 가르쳐주는 식이다. 장씨는 수업이 진행되는 내내 날카로운 시선으로 학생들의 연주를 분석했다. 구체적인 연습 방법부터 선곡에 대한 조언, 마이크의 위치를 제대로 선정하는 방법까지. 학생들의 연주를 듣는 동안 피드백 내용을 적는 장씨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반대로 잘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칭찬했다. 지난 수업 때에 비브라토가 좋아진 학생에게 연습량을 칭찬하는 등 세심한 모습이었다. 뒤이어 진행된 합주 수업. 기타, 피아노, 드럼, 보컬, 색소폰 등 각 파트의 학생들이 전부 무대로 나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작은 실수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다시 호흡을 맞춰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피아노 전공생들과 기타 전공생들의 수준급 연주 덕분에 무사히 합주가 마무리될 수 있었다. 현재 강릉영동대학교는 실용음악예술과 외에도 다른 학과에서 만학도 입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학도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더라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커리큘럼을 밟는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 만학도의 특성상 학교생활에 무리는 없을까. 수업 참관이 마무리된 뒤 실용음악예술과 학과장인 이상규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Mini Interview 실용음악예술과 학과장 이상규 교수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저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릉영동대학교 실용음악예술과 학과장 이상규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한 뒤, 이탈리아의 밀라노 국립음악원에서 성악과와 오페라과를 전공했습니다. 국립음악원이 이탈리아 전역에 있는데, 밀라노에서는 최초로 5년 과정을 1년 8개월 만에 조기졸업한 뒤 최고 연주자 과정까지 밟았습니다. 이후 유럽에서 활동하며 10편 이상의 오페라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는데요. 귀국 후 서울대학교와 경북대학교에서 성악을, 백석예술대학교에서 뮤지컬을 가르쳤습니다. 현재 강릉영동대학교에서 오페라, 성악,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학과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을까요? 만학도 분들이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젊은 시절 음악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시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 꿈을 접게 된 많은 분들이 강릉영동대 실용음악예술과를 찾아주고 계세요. 비수도권 지역이라서 인구가 많지 않은 편인데,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정말 많더라고요. 지역 자치센터나 학원, 동호회 등을 통해서 음악 활동을 하실 수도 있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과 만나 뵙고 있죠. 만학의 열정과 기쁨은 남다를 것 같아요. 그분들을 지도하시는 건 어떠세요? 생업을 유지하면서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거겠죠. 저는 그동안 20대 전공생들을 주로 가르쳐왔는데, 이렇게 음악을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분들과 만나고,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현역 학생들뿐만 아니라 만학도 분들의 열정까지 계속 북돋아주기 위해 힘쓰고 있는 중입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도 있나요? 아무래도 늦은 나이에 시작하신 전공 공부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도 교수님들에게 항상 ‘맞춤형 수업’을 강조하거든요.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학생 분들이 더욱 즐겁게 학업에 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고, 또 기본기가 부족할 수 있어서 기초 수업에도 더욱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편입니다. 만학도 분들과 현역 학생들이 서로 북돋아주면서 좋은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참 감사한 것 같아요. 실용예술음악과가 생긴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죠? 홍보에 대한 고민도 있으시겠어요. 아무래도 그게 아쉬운 부분이에요. 아직 많은 분들이 모르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더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죠. 그래서 저희만의 공연 브랜드를 만들었는데요. 이름이 ‘빠따떼’예요. 어감이 좀 센 편이죠?(웃음) 이탈리아어로 감자라는 뜻인데요. 강원 영동 지역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이 지역에 감자나 옥수수가 많이 난다는 얘기를 듣고 착안해냈죠. 이름이 너무 귀여운데요? 입에 착 붙는 것 같아요.(웃음)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열고 있는 건가요? 맞아요. ‘빠따떼 더 리허설’과 정식 공연인 ‘빠따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는데요. 일단 저희만의 공연 브랜드를 만들었던 가장 큰 취지가 학생들이 무대를 더욱 즐길 수 있도록 무대 경험을 많이 쌓아주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빠따떼 더 리허설’ 때는 관객 분들을 초대하지 않아요. 갑자기 무대에 서면 학생들이 압도될 수 있어서요. 그보다 여태까지 열심히 연습한 것을 마음껏 뽐내면서 ‘무대는 놀이터’라는 생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죠. 이후 학기 말에 ‘빠따떼’, 그러니까 정기 공연을 열어요. 지난 학기에 첫 연주회를 열었는데요. 학생들이 긴장감 있게 공연을 준비하더라고요. 열심히 하다 보니 실력도 향상되고, 기억에 남는다는 좋은 피드백도 많았고요. 그래서 졸업 시즌에는 ‘빠따떼 더 졸업’이라는 타이틀로 졸업 연주회를 열어보려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학과장으로 계시면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각자 다양한 색깔을 가진 학생들이 한곳에 모여 학교생활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학생들이 강릉영동대학교 실업음악예술과라는 하나의 타이틀 아래 마음이 모여질 수 있도록 가장 신경 쓰는 것 같아요. 그래야 합주 같은 걸 할 때도 더 좋은 호흡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학생 상담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어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즐거움을 느꼈으면 하거든요. 학과장으로 계시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것도 있을까요? 아무래도 학과가 생긴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널리 알리는 게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고민을 했는데, 음악 전공이다 보니 공연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그런 취지로 빠따떼도 만든 건데요. GNL이라는 저희 교수진 밴드도 만들었어요. 강릉의 약자인 GN에 라이프(Life)의 L을 따온 거예요.(웃음) 저희가 빠따떼 연주회 때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강릉 시내의 라이브 공연장에서 공연도 하고, 강릉 mbc 라디오에도 홍보 차원에서 나가는 등 여러모로 학과 홍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현재 입시철이에요. 학과장으로서 학과가 부흥했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가슴 한 구석에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언제든지 강릉영동대학교 실용음악예술과의 문을 두드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강릉영동대학교 2024학년도 신입생 모집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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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Inside]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 - Dr. Philip’s 18M T 105
- 링 위의 격투기 선수들은 강한 펀치와 킥으로 경기하는 스탠딩 위주의 선수와 주짓수와 같이 관절을 꺾는 기술을 주요기술로 사용하는 선수로 나뉜다. 선수의 화려한 언변이나 패션 감각은 경기승리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닥터 필립(Dr. Philip’s) 18M 테너 색소폰 마우스피스는 화려한 외형은 아니지만 스탠딩 위주의 스타일로 치열한 색소폰 마우스피스 링 위에 섰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마우스피스를 뒤집으면, 리드가 닿는 테이블(Table)은 마치 수작업을 알리듯 불규칙하게 만들어진 몇 개의 스크레치가 선명하게 보이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부드럽게 마무리해 리드와 잘 밀착된다. 사이드 레일(Side Rail)과 팁 레일(Tip Rail)은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로 선명하게 라인이 연결되어 있다. (사진 ➑) 18M의 광고에서 과데라 펫보이를 모티브로 제작했다고 말했듯 배플이 펫보이와 비슷한 형상으로 길게 뻗어있다. 하이 배플(Hi Baffle)로 배플의 끝에서 완만하게 챔버로 떨어진다. (사진 ➒) 외형은 전체적으로 몸통이 짧고 생크를 길게 만들었다. 살짝 솟은 이마가 반짝이는 은도 금으로 마무리되어 너무 튀거나 반대로 밋밋한 모양이 아닌 18M만의 개성 있는 외형이다. 아무리 다양한 색채를 가진 마우스피스라도 레스터 영(Lester Young)의 〈Stardust〉라는 곡에서 들려준 포근하고 편안한 음색부터 마이클 브래커(Michael Brecker)의 〈Some Skunk Funk〉의 포효하는 음색까지 만들 수 없다. 물론 중간적인 성향의 마우스피스도 있지만 결국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양쪽 다 놓친다. 한쪽을 과감히 포기하고 본인이 잘하는 나머지 부분을 더 개발해서 특화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테너 색소폰 18M 마우스피스의 첫 시연을 마치고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펫보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서 목표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중음과 저음에서 표현되는 무게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큰 볼륨으로 연주하지 않아도 음표들이 하나하나 이어져 굵은 선으로 바뀌어 연주할수록 색소폰 주변을 감싸나갔다. 여기에 호흡을 보태 크게 연주하면, 굵던 선이 사슬처럼 단단해지며 파괴력이 더해진다. 밴드와 연주하는 퓨전 락(Fusion Rock)의 강한 비트(Beat)에서 색소폰의 움직이는 솔로 라인이 뚫고 나온다. 격투기 선수의 파괴력 넘치는 묵직한 킥처럼 저음 파워도 인상적이지만 특히 중, 고음에서 힘을 실어 연주할 때 강렬히 쏟아져 나오는 음들은 마치 화염방사기에서 나오는 불꽃처럼 터져 나온다. 앙브슈어(Embouchure)에 압력을 높이면 호흡의 저항감이 조금 높아지며 노멀톤(Normal-Tone)의 거칠던 파장이 응집되며 호소력 깊은 또 다른 음색으로 바뀐다. 팝 발라드를 연주하면 마치 가수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이 〈When A Man Loves Woman〉을 노래할 때 짙고, 허스키한 음색의 매력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른 음색으로 바뀐다고 해서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드라마틱하게 따뜻한 커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음의 밀도가 높아지며 안정감이 생기는 정도다. 앙브슈어의 변화에도 음의 가장자리 엣지(Edge)에 거친 파형은 계속 남아있어 청량하고 맑은 음색, 혹은 가볍고 따스한 음색을 기대하긴 어렵다. 스탠딩 위주로 훈련한 선수에게 주짓수의 관절 꺾는 유연한 기술로 이기길 바라기는 어려운 것과 같다. 테너 색소폰 마우스피스에서 서브톤(Sub-Tone)을 빼고 얘기한다면, 태권도라는 종목을 말하면서 대한민국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배플이 높은 하이 배플 마우스피스는 서브톤 테크닉은 많이 필요하고, 사용하면 그 효과가 좋다. 16M 마우스피스를 구매할 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배플의 높이와 상관없이 마우스피스에 따라 서브톤 테크닉이 불편한 제품이 종종 있다. 다행히 16M 마우스피스의 서브톤 사용에는 불편함이 없다. 여기서“불편함이 없다”는 서브톤에서 텅잉도 잘 받아주고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서 소리를 만들어주어 연주 중 당황하게 만드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저음에서 단단하고 거칠던 음색이 서브톤 영역으로 들어서면 그 단단하던 얼음 같은 소리가 갈아놓은 빙수 얼음으로 바뀌어 소복이 쌓인다. 한없이 포근하고 부드러운 음색은 아니지만 경기장에서 무서워 보이던 격투기 선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편안한 동네 형처럼 출연해 전혀 다른 모습에서 매력을 느끼듯, 16M 테너 마우스피스의 서브톤 역시 반전 매력이 있다. 팜 키(Palm Key) 영역과“가 포지션”(알티시모 – Altissimo)의 고음은 살짝 작아지고 밝아지지만 하이배플 마우스피스답게 내어주는 고음은 시원하게 쭉 뻗어나간다. 16M 테너 마우스피스에서 주의할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리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마우스피스는 어떤 리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음색부터 볼륨과 저음, 고음의 반응까지 달라진다. 16M을 테스트하는 동안 선택의 예민함이 다른 마우스피스에 비해 더 많이 나타났다. 처음 테스트에서 사용했던 리드는 밝은 성향의 리드가 아님에도 16M에서는 심하게 밝고 거친 음색으로 나타났다. 이후 몇 번의 리드를 바꿔가며 테스트하는 동안 리드에 따라 음색 변화 폭이 컸고, 브랜드마다 미세한 리드의 호수 변화에도 컨트롤 자체가 불편했고 심지어 음이탈도 있었다. 정확한 궁합(?)이 맞는 리드를 찾는 순간, 이전에 들려주지 않던 16M이 가진 본연의 음색과 제어 능력을 보여주었다. 16M 테너 마우스피스를 사용하고 있거나 사용하려는 연주인들은 하나의 리드보다 다양한 브랜드의 리드나 다른 호수의 리드를 꼭 체험해 보기를 권한다. 리드만 바꿔도 그동안 본인이 알고 있던 16M이 아닌 전혀 새로운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마우스피스와 함께 동봉된 리가처는 가장 고전적 방식인 리드가 있는 아래쪽에 두 개의 나사를 조이는 방식으로 요즘 나오는 리가처만큼 특별하거나 외형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리가처가 해야 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큰 단점은 없다. 18M 마우스피스의 툭 튀어나온 몸통의 윗부분에 딱 맞게 제작되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점도 좋다. (사진 ➓) 단, 애프터 마켓용의 다른 리가처를 사용하려면 특이한 외모 때문에 유연한 가죽 재질의 리가처를 사용하거나 메탈 재질의 리가처는 반드시 장착이 가능한지 확인 후 구매하기를 권한다. 격투기 종목에서 펀치와 킥으로 승부하는 화끈한 스탠딩 위주의 선수가 있고 주짓수와 같이 관절을 꺾어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유연한 스타일의 선수가 있다. 그 어느 쪽도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승부는 늘 흥미진진하기에 관객들은 열광한다. 닥터 필립(Dr. Philip’s) 18M 테너 색소폰 마우스피스는 빠른 스피드의 펀치와 강한 킥이 주요기술인 스탠딩 스타일의 훈련을 받고 색소폰 마우스피스 링 위에 올랐다. 다양하게 관절을 꺾어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기술은 없으나 스탠딩에서 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이길 자신이 있어 보인다. 링 위에서 화끈하게 킥과 펀치로 K.O 승리를 하듯 무대에서 특기를 잘 살려 화려하며 강렬한 음색으로 연주인들에게 환호받기를 바란다. * 본 글은 마우스피스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월간색소폰)구민상 색소포니스트= sax0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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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Inside]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 - Dr. Philip’s 18M T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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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류복성 현역 연주자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
- 한국 6,70년대에 색소폰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의 풍경은 어땠을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이켜보면 빛바랜 듯 서글픈 그 시절에 대한 감상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열정이었고, 꿈이었고, 사랑이었기에 가슴 아픈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전쟁과 해방을 겪으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로 인해 피어난 미8군에서의 한국 대중가요 전성기는 우리 음악의 뿌리이자 우리 음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류복성은 1941년 생으로 지난 6월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는 뉴트로 재즈바 ‘버텀라인’이 관록의 국내 아티스트들과 함께 재즈공연을 선보였다. 그는 중학교 밴드부 드러머로 음악을 시작했다. 18세 때 미8군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세계적 타악인 아기 콜론을 사사했고, 이봉조 악단, 길옥윤 재즈올스타즈 등을 거쳤다. 1967년 ‘류복성 재즈메신저스’를 창단하며 본격적인 음악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70년대 인기리에 방송됐던 MBC 드라마 ‘수사반장’의 타이틀곡 덕분이다. 직접 작곡하고 라틴 타악기 봉고로 연주한 ‘수사반장’의 OST 선율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재즈는 내 운명 류복성은 중학교 2학년에 우연히 라디오에서 재즈 음악을 들었다. AFKN 라디오에서 가수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 (Miles Davis Quintet)이 캐논볼 애덜리 (Cannonball Adderley, 알토 색소폰)와 존 콜트레인 (John Coltrane, 테너 색소폰)과 함께 연주한 곡. 이 음악이 류복성의 인생을 바꾸고 말았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 재즈를 배울만한 곳이 없었다. 주로 라디오와 앨범을 들으며 혼자 익히는 것뿐이었다. 드럼 경연대회에서 이봉조 선생님과 연이 닿아 8군 밴드에 입단하여 다양한 음악을 접한다. 미군은 다양한 국적으로 꾸려졌다. 그들이 찾는 클럽은 재즈(미국의 흑인 음악에 클래식, 행진곡 등이 섞여서 발달한 대중음악), 팝, 록(흑인 특유의 리듬 앤드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 음악의 요소를 곁들인 강한 비트의 음악), 컨트리음악 (미국 농촌에서 살던 백인들의 대중음악으로 동부의 민요에서 발생)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했다. 하지만 그는 8군 밴드에서 재즈보다는 대중성 있는 스탠더드 팝을 연주했다. 이봉조 악단은 그 당시 엄토미, 최상용 악단과 함께 많은 활동을 했다. 이봉조 악단은 명동 미도파 백화점, 21카바레, 아스토리아 호텔, UN센터와 방송국, 정동 MBC라디오 (경음악순례 프로그램)에서 쉴 새 없이 연주했다. 이봉조는 영화 〈잃어버린 태양〉, 〈맨발의 청춘〉 등의 영화 음악에도 참여했고, 거기서 류복성은 드럼 세션으로 활동했다. 덕분에 경제적인 여유는 생겼지만, 재즈를 마음껏 할 수 없어 늘 갑갑했다. 재즈 LP음반 “미8군 정문 인근에 ‘라디오 방’이라 불리는 전파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고장 난 기계를 고치며 그 옆에서 LP음반도 같이 판매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클래식, 엘비스 프레슬리(당시 최고의 인기), 팝 등의 순서로 진열했습니다. 인기 있는 앨범은 진열된 반면, 인기 없는 앨범은 바닥에 쌓아뒀습니다. 그 당시 재즈는 비인기장르로 제가 찾는 앨범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오아시스와 지구레코드 등의 음반사에서 바닥에 쌓아둔 앨범을 구매해서 앨범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제가 찾던 앨범이 여러 장 있었지만, 주인에게 애써 티내지 않고, 퉁명스레 얼마인지 물었습니다. 한 장에 150원이라 답했고, 재료로 판매하려던 앨범이니 싸게 달라고 말했더니 한 장에 100원에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돈이 생기면 전국의 ‘라디오 방’에 들러 앨범을 사 모았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앨범을 추린 후, 나머지 앨범은 깨끗하게 세척해서 연주자 대기실을 찾아가 연주자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당시 앨범이 귀한 시절이라 연주자들에게 원판이라고 말하면, 서로 구매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돈이 없어서 앨범을 되팔아 모은 돈으로 다시 ‘라디오 방’을 방문하며 구매했습니다.” 힐탑바 1962년 워커힐은 외국인을 위한 대형 위락시설로 W자를 이용한 역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인 ‘힐탑바(현재 피자힐)’를 짓는다. “힐탑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긴 재즈 클럽으로 24시간 운영했습니다. 재즈를 연주할 드러머를 모집해서 힐탑바 연주자로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 워커힐은 미8군 지정호텔로 주요 고객은 미국인이었습니다. 미군 위문단으로 당시 최고의 코미디언 밥 호프(Bob Hope)와 빅밴드 악단장 레스 브라운(Les Brown)이 힐탑바에 방문했습니다. 레스 브라운에게 색소폰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톤과 음색이라고 답했습니다. 레스 브라운은 재즈잡지 〈다운비트(DownBeat)〉에서 봐서 알고 있어서 먼저 인사드렸죠. 힐탑바에서 1년 6개월 계약 기간이 끝나고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했는데,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나이트클럽은 유흥업소로 손님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춤추기를 원했는데, 저는 오리지널 재즈를 연주했습니다. 그 이후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류복성 재즈 메신저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쫓겨나 놀고 있을 때 한국연예협회가 주최하는 전국경음악 경연대회에 〈류복성 재즈 메신저스〉로 출전한다. 〈류복성 재즈 메신저스〉는 색소폰연주자 정성조, 기타 연주자 김혜원, 베이스 유상봉으로 4인조 밴드다. 1964년 창단한 밴드로 재즈와 록을 했다. 당시는 재즈 음악을 제대로 연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1970년 이후 서울 이태원에 ‘올 댓 재즈’와 ‘야누스’ 등의 재즈 클럽이 생긴다. 재즈에서 라틴음악으로 그 당시 재즈는 대중에게 어렵고 시끄러운 곡이었다. 류복성은 재즈를 널리 알리겠다는 욕심에 1972년 국제프로덕션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류복성 라틴 코리아나〉라는 앨범명으로 첫 LP음반을 발매한다. 트리오로 그와 2명의 가수로 그 중 한 명의 가수는 ‘강병철과 삼태기’의 강병철이다. 라틴팝과 재즈 위주의 곡을 수록했다. 그 후 내국인을 위해 〈유복성과 신호등〉 앨범을 발매한다. 정성조 편곡, 정성조 빅밴드와 함께 녹음했다. 〈혼자 걷는 명동길〉은 그가 자신의 버전으로 처음 수록한 음반이다. 그러나 대중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저는 또 다른 방법으로 TV를 선택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재즈 전문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지 않았죠. 그런 현실은 지금도 변치 않았습니다. TV에서 정통 재즈 대신 대중가요의 퍼커션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록, 포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에 퍼커션 세션으로 그 무렵 가수 음반 녹음에 참여하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영화 〈고무신〉과 〈여치의 죽음〉, 앨범 〈나미와 머슴아들〉, 〈코리나재즈퀸텟〉, 〈무지개퀸텟〉등에서 퍼커션 연주자로 참여했습니다.” 당시 봉고나 여러 타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류복성이 유일했다. 라틴 음악은 라틴 아메리카 음악의 줄임말로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에 속하지 않는 제3세계의 민속음악을 말한다. 라틴 음악을 연주하는 라틴 퍼커션은 주로 쿠바계 타악기가 많은데, 콩가, 봉고, 팀발레스, 마라카스, 클라베스, 귀로 등이 이에 속한다. 한국 재즈의 역사 그는 언제나 재즈 대중화를 소망하고, 실현하고자 많은 재즈 공연을 기획하고 참여한다. 1992년 ‘대한민국 재즈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1997년 ‘서머 재즈 페스티벌’, 1999년 ‘아듀 재즈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국내에서 활동하는 재즈 연주자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가 연출했던 재즈 페스티벌은 재즈 클럽 연주를 대규모 무대에 올린 첫 번째로 한국 재즈 역사에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는 최세진, 신관웅, 정성조 연주자와 더불어 ‘재즈 1세대’라고 불리지만,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색소폰 대가는 신지철 선생님과 고인이 된 이정식 선생님이라며, 손성제 색소포니스트와 같이 연주했는데, 내가 연주한 색소폰 연주자 중 으뜸이라고 했다. 그는 “20대는 멋모르고 북을 두드렸고, 30~40대는 정통재즈만 고집하느라 세월을 보냈고, 50대 이후는 자신의 음악을 하고 살았다”고 말하며, “매월 2회 정기적으로 클럽에서 연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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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류복성 현역 연주자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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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한상훈 색소포니스트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
- 한국 6,70년대에 색소폰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의 풍경은 어땠을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이켜보면 빛바랜 듯 서글픈 그 시절에 대한 감상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열정이었고, 꿈이었고, 사랑이었기에 가슴 아픈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전쟁과 해방을 겪으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로 인해 피어난 미8군에서의 한국 대중가요 전성기는 우리 음악의 뿌리이자 우리 음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한상훈(58) 색소포니스트는 초등학교 4학년에 사회사업을 하는 구세군 단체(자선남비)의 브라스밴드로 활동하면서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저는 트럼펫을 연주하고 싶었으나 입술을 보고 큰 악기인 튜바를 연주하게 됐다. 튜바는 3~5개의 밸브를 갖는 큰 나팔 모양으로 장중한 저음을 내는 금관 악기로 베이스 파트입니다. 저는 튜바 특기생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다 24세에 음악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 색소폰과 전자오르간이 인기가 좋았습니다. 학창시절 관악기를 오래 연주한 경험으로 색소폰을 선택했습니다. 24살에 색소폰을 시작하며,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의 새음악기에서 미국산 알토색소폰 ‘마틴’을 구매해서 이론과 실기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연주교본 한 권을 구매해서 지방에서 트럼본과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좋은 직장을 갖는다는 목표로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1985년에 지방에서 시작해서 1988년도에 상경했습니다.” 극장식 카바레에서 대형 스탠드바로 “1980년대 극장식 카바레가 대형 스탠드바로 바뀝니다. 극장식 카바레는 공연을 본다면, 스탠드바는 유명 연예인 쇼와 손님들이 직접 노래하고, 춤추며 참여하는 형태였습니다. 노래방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서울에 스탠드바가 지금의 커피전문점 만큼이나 많았습니다. 스탠드바는 면적은 1,983.47㎡ (600평) 이상으로 100여개의 테이블이 있는 대형 규모였습니다. 1부는 연예인이 공연하고, 2부 공연이 있기 전 40분 동안 손님들이 노래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연주자는 손님들이 노래 부르면 연주하고 돈을 받았습니다. 한 곡은 3천원, 1절은 2천원으로 사전 예약을 받았습니다. 연주자에게 그 시간을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으로 접수된 손님의 곡을 다 할 수 있도록 간주를 줄이고, 빠르게 연주해서 신청곡을 다 연주했습니다.” 극장쇼와 노래방 “1998년 서울 명동에 위치한 홀리데이 인 서울은 가족이 오는 극장쇼로 16명의 연주자가 있었는데, 연주자 모두 3사 방송국 악단 출신으로 사회는 개그맨 최병서, 출연가수는 심수봉, 조항조, 태진아, 설운도 등 당대 인기 가수가 출연했습니다. 같이 연주했던 연주자가 드럼 강윤기, 피아노 송재철, 베이스 박한진, 퍼커션과 드럼 임길상 연주자 등이 함께 연주했습니다. 색소폰 연주자는 3명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저 혼자 연주했습니다. 노래방 기기가 나오면서 드럼, 베이스 등은 기계로 대체되면서 연주자가 연주할 곳이 줄었습니다. 아직까지 기타나 색소폰은 기계로 대체되지 않아서 녹음실에 녹음할 때 색소폰과 기타 연주자는 녹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24살에 전자오르간을 선택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방송국 입사 “2001년도에 SBS 방송국에 입사했습니다. SBS 오케스트라 김정택 단장님과 함께 활동했으며, 패티김, 태진아, 송대관, 장윤정 나훈아 밴드로 활동했습니다. SBS에서 이민 100주년 행사로 미국 뉴욕, 워싱턴, LA에서 음악회를 했고, 연주자로 참여했습니다. 2013년 하얏트 호텔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임기를 끝내고, 강연을 오셨습니다. 빌 클린턴은 색소폰 연주자로 국악의 피리 김성은 연주자와 실 오스틴의 '데니 보이(Danny boy)를 합주했습니다. 색소폰과 국악의 합주로 김정택 단장님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강연장이라 무대가 크지 않아서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연주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리드(Reed) 목관악기는 '리드'를 통해 소리를 낸다. 목관악기는 스스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악기 입구에 공기 흐름에 따라 진동하는 얇고 작은 나무 조각이 없으면 악기로선 무용지물이다. 그 나무 조각이 ‘리드(Reed)’다. 색소폰,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은 목관악기로 리드가 필요하며, 플루트와 하모니카는 리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리드의 재료는 ‘아룬도 도낙스’라는 이름의 키가 3m까지 자라는 갈대로 대나무처럼 속이 빈 원통형 나무다. 지중해와 남미의 농장에서 대량 재배한 갈대가 숙성 과정을 거쳐 리드로 탄생한다. 갈대의 굵기에 따라 어떤 악기와 짝이 될지 결정된다. 가장 가는 갈대는 오보에의 리드가 되고, 클라리넷, 바순, 색소폰 순서다. 색소폰과 클라리넷은 한 장의 리드를 사용하고, 오보에와 바순은 두 장으로 된 겹 리드를 사용한다. 리드의 원재료를 한국에선 구하기 어렵다. 갈대를 얇게 대패질한 뒤 리드의 기본 모양을 잡은 ‘케인(Cane)’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사용한다. 연주자들은 케인을 직접 깎아 다듬는다. 스케이트 선수가 직접 스케이트의 날을 다듬듯 목관악기 연주자는 리드를 찾아 헤매는 대신 직접 만든다. “저는 색소폰 연주자로 음정에 민감했습니다. 특히, 리드는 색소폰 소리를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다 똑같은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연주자들에겐 0.1%의 차이도 중요합니다. 리드를 한 상자 구매하면, 같은 제품인데 음색이 달랐습니다. 과일 상자의 당도가 다르듯, 리드도 농작물과 같습니다. 나무의 건조과정과 연도에 따라 타고나는 성격이 달라 텐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리드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직접 다듬어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는데, 텐션은 조정할 수 있지만 나무가 가지고 있는 소리 성격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련을 갖지 않고 버립니다. 리드로 많은 고민을 하다 직접 만들게 됐습니다.” 악기 박람회 한상훈 색소포니스트는 리드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지만, 시장조사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평소 알고 지내던 새음악기 박대식 사장을 찾아갔다. 그는 리드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모아뒀다. 박대식 사장님이 모아둔 자료를 주면서 “리드는 나 같은 악기판매사보다 전문 연주자가 만드는 것이 좋다”라며, “큰돈은 벌지 못할지라도 이름 석 자는 남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많은 조언을 듣고, 2013년 프랑크푸르트의 악기 박람회에 갔습니다. 리드 만드는 공장을 견학하고, 기술제휴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 리드를 만드는 회사가 30여개로 많지 않습니다. 국내는 슬론(Slonn) 뿐입니다.” 슬론(Slonn) 한상훈 색소포니스트는 2014년 리드를 만드는 슬론(Slonn)을 창업한다. 슬론(Slonn)의 어원은 아일랜드 말로 “표현하기 적당한”이란 뜻으로 색소폰은 감정표현을 하는 악기로 리드도 그렇기에 회사명을 슬론으로 지었다. 한상훈 대표는 창업하면서 회사 이름을 짓는 것부터 어떤 기준으로 호수를 나눠야하는지 등 다양한 것을 결정할 일이 많이 생겼다. 독일 박람회에서 리드 만드는 회사 대표를 만나서 물어봤다. 그 기업 대표가 “당신이 사장이니 당신이 기준을 정하면 된다”라며,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답했다. 한상훈 대표는 리드의 호수를 타 브랜드의 텐션을 참고해서 슬론만의 기준을 정했다. 봉사연주 “저는 구세군 단체의 도움으로 연주자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색소폰 학원을 운영하면서 회원들과 매년 12월, 서울 명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정문 앞에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코로나가 있기 전까지 8년 동안 참여했습니다. 특히, 회원 가족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고 즐겁습니다.” 색소폰의 매력 저는 중학생 때 기타를 연주했습니다. 기타로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색소폰도 기타와 같이 자유자재로 연주자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음역대가 사람 목소리와 비슷한 부분이 매력 있습니다. 색소폰은 음정에 민감해서 어려운 악기로 연습할 때 항상 튜너기를 옆에 두고 연습합니다. 스케일 연습과 계명창 연습으로 음에 대한 감을 익힙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 한상훈 대표는 2019년부터 마우스피스도 제작하고 있다. “Slonn T19”는 월간색소폰 2020년 6월호에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에 소개됐다. 마우스피스는 ‘Slonn’ 마크가 찍혀있는 검정 종이 박스에 담겨, 케이스를 열면 붉은색 속지 안에 도금되어 반짝이는 금장의 마우스피스가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24k 골드 도금으로 깊은 색감과 고급스러움이 마치 영화제 트로피와 같다. 2021년 “Slonn A21S”를 출시했다. 월간색소폰 2021년 8월호에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에 소개됐다. 현재 한상훈 대표는 앞으로 더 좋은 마우스피스를 만들어 미국 악기 박람회에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상훈 대표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한상훈 Profile - 김원용 선생님 사사 - SBS 오케스트라 색소폰 수석 역임 - KBS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연주 - LA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공연(미국공연) - 워싱턴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공연(미국공연) - 정주영 체육관 준공기념(평양공연) - 다수 공연 녹화방송 - 가수 콘서트 세션공연 나훈아, 김수희, 패티김, 이미자, 장윤정, 최진희, 송대관, 태진아, 정수라, 박상성, 조관우, 윤종신, 박현빈, 남진, 진성, 신유 외 다수 가수 - 현) 일산 필색소폰 전문학원 원장 - 현) 리얼마스터 녹음세션 - 현) SLONN(리드, 피스) 회사 대표 - 현)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대의원 - 현) (사)한국색소폰협회 고양시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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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한상훈 색소포니스트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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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Inside]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 - "Kanee, Song 8"
- 매는 하늘의 상위 포식자로 무서운 동물이지만 사람의 손에 잘 조련된 매는 먹잇감을 발견하는 순간 힘차게 창공을 날아 무서운 속도로 하강해 강한 날개만큼 힘센 다리로 정확히 목표물을 움켜잡아 돌아온다. 훈련을 받으면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는 매처럼 잘 조율된 카니 송(Kanee Song) 테너 마우스피스 역시 연주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반응한다. 카니(Kanee) 마우스피스는 중국에서 만드는 마우스피스로 색소폰부터 클라리넷까지 다양한 마우스피스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색소폰 마우스피스의 종류는 Florida, New York, Classic, Studio, Song, Ming, Tang, Qin으로 총 8개로 오늘 소개하는 것은 송(Song)이란 이름의 테너 색소폰 메탈 마우스피스다. 마우스피스는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CNC 제조 방법으로 만들고, 꼼꼼한 검수를 통해 우리 손에 전해진다. 마우스피스를 담은 종이상자의 겉에는 카니에 대한 정보가 있고 마우스피스와 리가처가 스펀지에 고정되어 있다. (사진➊) 송 마우스피스 몸통 중앙에는 화려한 문양과 함께 카니의 로고가 새겨있다. (사진 ➋) 생크에는 두 줄의 라인이 있고 위쪽에는 모델명인 송(宋:송나라 송)이 있으며 (사진 ➌) 아래를 보면 영문으로 송(Song)과 오프닝이 표기되어 있다. (사진 ➍) 리드가 닿는 테이블(Table)도 매끄럽게 마무리되어있고 테이블에서 연결된 사이드 레일(Side Rail)은 얇게 뻗어 나와 팁 레일(Tip Rail)까지 이어지며 양쪽의 균형도 좋다. (사진 ➎) 베플은 길게 뻗어있는 롱 스텝 베플(Long Step Baffle)로 베플의 끝부분에 약간 라운드 처리가 되어있다. (사진 ➏) 장시간 연주에서 중요한 윗니가 닿는 비크(Beak)의 각도 역시 너무 낮거나 높지 않은 적당한 두께가 편안한 앙브슈어(Embouchure)를 할 수 있도록 잘 만들었다. (사진 ➐) 전체적인 모습은 화려한 문양과 생크에 있는 두 개의 가로줄, 거기에 금도금이 어우러져 적당한 화려함을 뿜어낸다. 손으로 들어보면 무게감이 느껴져 마치 묵직한 소리를 내줄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송 마우스피스의 베플은 데이브 과데라(Dave Guardala)에서 만든 슈퍼 킹(Super King)의 베플과 비슷한 모습이다. 이런 형상의 베플을 참고해 만든 몇 개의 마우스피스는 특정 부분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친 경험으로 필자는 유사한 종류의 마우스피스를 선호하지 않는다. 송 마우스피스는 잠깐의 테스트에서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주었다. 우선 필자가 주로 사용하는 마우스피스의 오프닝은 송 마우스피스와 같은 8호인데, 테스트 시 더 높은 호수의 리드를 장착해 테스트해야 비슷한 오프닝으로 체감되는 것을 보면 페이싱(Facing)의 커브(Curve)가 잘 조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호흡이 마우스피스로 편안하게 들어가 저항감이 높지 않고 각 음의 컨트롤이 쉬워 베플이 있는 메탈 마우스피스를 처음 접하는 분이나 과거 하이베플 마우스피스에 일명 삑사리라 부르는 음 이탈 현상들로 포기한 분들도 오랜 적응 시간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편한 컨트롤을 보여준다. 송 마우스피스가 가진 노멀톤(Normal-Tone)은 소리의 밀도가 높아 꽤 단단하다. 일단 큰 볼륨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그 어떤 테너 마우스피스도 부럽지 않을 묵직한 음들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저음에서 강한 어택(Attack)은 허공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도끼가 장작을 반으로 가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파괴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시 일반적인 볼륨으로 돌아오면 유연성이 높아지며 무겁지 않은 밝은(Bright) 성향으로 돌아선다. 저음과 마찬가지로 중음에서도 큰 볼륨의 송 마우스피스는 거대한 바닷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불을 비추는 등대와 같이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는데 보통의 볼륨에서 겉은 단단하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대나무 숲과 같이 소리의 직진성이 살짝 줄어들며 멜로디의 흐름에 따라 매끄럽게 표현된다. 특히 카니의 송 마우스피스는 작은 볼륨에서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강한 파괴력이나 큰 볼륨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마우스피스들은 작은 볼륨에서 평범하거나 약간의 불편함을 보이는데 송 마우스피스는 크고 작은 볼륨 사이를 분주히 왕복하는 동안 작은 소리에서 섬세함을 놓치지 않아 연주하는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게 만든다. 마치 학창 시절 누군지 모르는 마니또에게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전혀 기대하지 않던 작은 볼륨의 부드러움이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해준다. 카니 송 마우스피스의 밝고 힘찬 음색은 고음으로 올라가도 유지된다. 강한 표현을 해야 할 때면 볼륨이 심하게 줄지 않고 중, 저음에서 보이던 직진성을 유지해 그 어떤 악기들 사이에서도 또렷하게 전달한다. 다시 고음에서 섬세한 터치를 요구하면 이내 직진으로 뻗어나가던 소리가 녹아내리며 연주자가 원하는 모양으로 이리저리 구부러져 새로운 그림을 그려준다. 테너 색소폰은 알토나 소프라노 색소폰에 비해 저음 악기다보니 고음의 사용 빈도가 높아 팜 키(Palm Key)를 포함한 “가포지션”(알티시모–Altissimo)의 수월한 컨트롤이 중요한데 송 마우스피스는 F# 이상의 고음에서도 특별한 예민함 없이 노래할 수 있어 고음의 부담감이 높지 않다. 필자는 매달 본지에 글을 쓰기 전, 리뷰하는 마우스피스를 몇 주간에 걸쳐 테스트하고 아울러 최소 1번 이상 공연에서 연주하고자 노력한다. 연습실에서 보지 못하던 마우스피스의 전혀 다른 성향을 무대 위 예기치 못한 극한 상황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 마우스피스는 2번의 다른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는 동안 가 포지션을 포함한 고음에서 필자의 예상을 크게 엇나가는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유독 한 개의 음에서만 극한의 표현이 불편해지는 현상이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리드를 사용해 보거나 다른 마우스피스들과 비교해보아도 확실히 한 개의 음에서 같은 현상이 반복됨을 확인했다. 물론 필자가 이야기한 불편해지는 현상이라는 것은 마우스피스를 최대로 밀어 붙일 때 다른 고음들에 비해 불편하다는 것이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일반적인 연주 상황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힌다. 연주자에 따라 테너 색소폰 마우스피스에서 서브톤(Sub-Tone)이 갖는 의미는 라면에 김치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무리 맛있는 라면을 먹어도 김치가 있어야 우리가 아는 그 환상적인 맛이 나는 것처럼 서브톤이 불편한 마우스피스는 반쪽짜리 마우스피스일 뿐이다. 이에 비유하면 송 마우스피스는 아주 잘 익은 아래 지방의 김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라면의 맛을 충분히 살려주는 맛있는 김치다. 극한의 서브톤을 이용해 저음으로 한 음씩 내려가서 제일 아래의 Bb음에 도달할 때까지 연주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튀거나 끊기는 일이 없으며 안정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이 마우스피스가 조금 전까지 Funky한 연주곡의 솔로를 강렬하고 매끄러운 음색으로 채우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만큼 놀라운 반전을 보인다. 마우스피스와 함께 동봉된 리가처는 특별한 것은 없으나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마우스피스와 동일한 금도금을 입혔다. 리가처의 한쪽 면에 카니(Kanee) 마크를 새겨, 깨끗한 마감이기에 행여나 마우스피스에 스크래치가 생길 걱정은 안 해도 괜찮다. (사진 ➑) 리가처 장착시 센터에 정확히 체결되고 리드와 마우스피스가 만나는 옆면에 리가처가 뜨지 않게 리드가 닿는 면을 고려해 양쪽에 살짝 굴곡을 만들어 놓은 배려도 눈에 뛴다. 이로 인해 리가처가 마우스피스에 완전히 밀착되어 리드의 흔들림을 막는 효과가 있고 실제로 사용하다 보면 이 작은 배려가 있고 없고 것에 따라 리가처를 장착할 때 은근히 신경 쓰일 때가 있다. 리가처는 리드를 가로로 두 줄이 잡고 있으며, 그 안에 낮은 4개의 돌기가 (Dot)가 있어 리드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시켜 울림은 최대화하는 형식의 리가처다. 리드가 있는 아래에서 나사를 조이는 전통방식이 점차 사라지고, 단점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에 이런 형식의 리가처가 늘어나고 있다. 카니 송 리가처 역시 마우스피스의 울림을 잘 받아낸다. 단, 리가처를 마우스피스의 정상 위치나 조금 뒤쪽으로 장착하는 경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조금 앞쪽으로 장착하는 연주자는 나사를 끝까지 조여야 겨우 고정된다. 만약, 조금 앞쪽으로 세팅하는 연주자라면 연주 중 리드가 이탈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다른 리가처를 사용할 것을 권한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중국에서 만든 물건에 대한 거부감이나 품질에 대한 불신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알게 모르게 중국에서 만든 수많은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상상 초월의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때도 있고 고가의 제품이 중국에서 제조된 것을 모른 채 구매할 때도 있다. 카니에서 만든 송 마우스피스는 태생적으로 크고 강한 소리를 갖고 태어났다. 이런 성향의 마우스피스는 자칫하면 거칠고 큰 볼륨에 치우쳐 정작 가져야 할 필수 항목을 놓치기 쉽지만, 다행히 송 마우스피스는 잘 조율되어 큰 볼륨부터 작은 볼륨을 쉽게 제어하는 컨트롤 능력과 거기에 표현력을 높여주는 유연성을 더했다. 전체 음역의 통일된 음색까지 두루두루 다 갖춰 잘 훈련받은 매가 주인에게 충성하듯 연주자에게 반응한다. 금도 금의 정교한 마감까지 마친 신품 가격은 그 어떤 브랜드도 쉽게 책정하기 어려운 가격으로 우리가 자주 이야기하는 가성비를 뛰어넘어 색소폰 세상에서 이미 카니 송 마우스피스만의 새로운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며 날아오르고 있다. * 본 글은 마우스피스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월간색소폰)구민상 색소포니스트= sax0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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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Inside]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 - "Kanee, Song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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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Inside]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 - “Get A SAX” GS Reso 7*
- 어린 시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영화를 보며, 영화 속 주인공에 빙의되어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때가 있었다. GS Reso 마우스피스는 어린 시절의 상상력을 부활시키며 1940년의 재즈가 풍미했던 미국과 현재를 오가는 행복한 시간 여행을 선사해주는 신기한 마우스피스다. Get A Sax는 색소폰 연주자 브라이언 커리(Brian Curry)가 만든 빈티지 색소폰 악기사로 지금은 악기부터 마우스피스, 액세서리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후 그가 보유한 최고의 빈티지 마우스피스를 똑같이 재생산한 GS 마우스피스를 모델별로 만들고 있다. 알토는 뉴욕 메이어 브로스(New You가 Meyer Bros)를, 테너는 오토링크 슬랜트 시그니처(Otto Link Florida Slant Signature)와 오늘의 주인공인 오토링크 레소 챔버(Otto Link Reso Chamber) 마우스피스를 제작, 판매 중이다. 뉴욕 메이어 브로스나 오토링크 슬랜트 시그니처 마우스피스는 워낙 인기가 높은 빈티지 마우스피스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마우스피스 제작사에서 복제품을 만들며, 오리지널 마우스피스 가격은 아직도 고공행진 중이다. 1940년대 만들어진 오토링크 레소 챔버 마우스피스는 해외에선 오래전부터 최고의 테너 마우스피스로 사랑받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좋은 상태의 마우스피스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진 ➊) 유명한 테너 색소폰 연주자인 시무스 블래이크(Seamus Blake)도 1994년부터 2017년까지 모든 공연과 그의 앨범 녹음에 오리지널 오토링크 레소 챔버를 사용했으나 불행하게 한 공연장에서 마우스피스를 떨어트려 깨졌다. 그 이후 좋은 상태의 레소 챔버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다른 마우스피스로 옮겨간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필자도 예전부터 레소 챔버에 관심이 있었으나, 해외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던 차에 GS Reso 마우스피스를 만나게 되어 테스트 전부터 기대가 컸다. 마우스피스는 원통형의 긴 종이상자에 담겨있으며 상자의 겉면에 마우스피스의 정보가 프린트 되어있다. (사진 ➋) 몸통의 위쪽을 보면 오리지널 Reso 마크와 다르게 GS가 크게 있고 그 아래 모델명으로 Reso가 새겨있다. (사진 ➌) 바디의 옆에는 마우스피스 오프닝 7* 가 작게 있고 (사진 ➍) 생크의 윗부분에 Made in USA를, 아랫부분엔 제작 연도인 2021을 새겨놓았다. (사진 ➎, ➏) 마우스피스의 색상이 밝아, 새겨진 정보가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얼핏 플라스틱으로 만든 저가의 마우스피스처럼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새겨진 글씨에 진한 색의 페인팅 마감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몇 배 이상의 좋은 첫인상을 줄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제작자 브라이언은 “그가 가진 최고의 오리지널 레소 챔버 페이싱과 똑같이 깎고 정밀하게 다듬어 오리지널과 같은 편안한 컨트롤을 만들어 냈다”라고 말했다. 이 결과 GS의 소리는 불어내는 호흡을 가볍게 올라타고 평야를 달리는 말들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노멀톤(Normal-Tone) 음색은 기본적으로 어두운(Dark) 소리를 베이스로 가지고 있어 재즈에 최적화되어 있다. 너무 깊고 무거운 음색은 아니기에 스윙(Swing)부터 메인스트림 재즈(Mainstream Jazz)까지 잘 녹아드는 음색이다. 마치 추출한 콜드브루(Cold-brew)의 어둡고 진한 원액을 투명한 얼음잔에 부으면 아름다운 형체로 섞이며 어두운 색상의 원액이 얼음 사이로 아름답게 투영되며 부드러운 다크 브라운(Dark Brown)으로 변하는 것처럼 GS Reso 마우스피스는 적당히 조율된 어두운 색채가 일품이다. 다음은 소리의 가장자리 부분이 조금 퍼지는 효과가 있기에 서브톤(Sub-Tone)을 함께 사용하지 않아도 발라드를 연주할 땐, 충분한 부드러움을 제공하며 거기에 서브톤을 더하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마카롱처럼 달콤한 음색을 남기며 멜로디에 녹아내린다. 많은 하드러버 마우스피스는 팜 키(Palm Key)부터 시작되는 고음에서 밝아지고 얇아진다. GS 레소 마우스피스는 신기하게 중저음에서 보이던 적당한 어두운 음색이 고음에서도 밝아지지 않고 잘 유지되는 덕분에 중음에서 주는 안정감을 고음까지 이어준다. 알토 색소폰과 비교해서 더 저음 악기인 테너 색소폰은 아무래도 “가 포지션”(알티시모 – Altissimo)의 사용이 빈번하기에 알티시모 연주가 얼마큼 편한지에 따라 결과가 뒤집히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도 GS 레소 챔버는 필자에게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알티시모 영역에서도 가볍게 노래하며 스타카토(Staccato)까지 쿨(Cool)하게 소화해냈다. 또한, 색소폰에서 볼륨도 상대적으로 불리한 오프닝이 큰 마우스피스나 메탈 마우스피스에 비해 크게 밀리는 것 없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한다. 볼륨과 함께 따라다니는 펀치력도 MB와 같은 하이배플 마우스피스가 쏟아내는 어마 무시한 파괴력은 아니지만 로우배플과 하드러버의 조합에서 낼 수 있는 그 이상은 표현한다. 마라탕의 1, 2, 3단계 매운맛에서 3단계의 매운 정도가 아닌 우리나라 매운 라면과 비슷한 2단계 정도의 매운 정도로, 많은 이들이 큰 거부감 없이 2단계를 먹는 것과 비슷하다. 이 결과로 GS Reso 마우스피스 음색과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로크(Rock)나 펑키(Funky)한 곡들까지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GS Reso 마우스피스 역시 정교한 완성률을 가진 핸드 피니시임에도 불구하고 판매 가격이 낮아 리가처나 캡 없이 마우스피스만 단품으로 판매한다. 다행히 일반적인 테너 하드러버용 리가처는 다 맞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바디가 약간 뚱뚱한 편이라 리가처에 따라 마우스피스 뒤쪽에서 결합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또한, 밝은 색상의 마우스피스가 가진 몇 가지 특이점이 있는데 첫 번째, 리드와 마우스피스 팁 레일의 색이 비슷해서 리드를 팁 레일에 정확히 결합하는 데 약간의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 연주 후 리가처를 분리하면 리가처 안쪽에 프린팅이나 메탈 리가처 안쪽의 산화된 녹이 마우스피스에 잘 묻고 쉽게 안 지워져 눈에 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연주자에 따라 전통적인 검은 색상이 아닌 다른 색의 마우스피스가 정서상의 이유로 불편하거나 연주 시 신경 쓰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요소들이 필자에겐 단 한 번의 연주로 다 잊혀졌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과거에 존재했던 공룡의 DNA을 찾아 다시 살려낸다는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1940년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오토링크 레소 마우스피스를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복원한 Get A Sax의 GS Reso Chamber 마우스피스는 상상하지 못했던 음색에서 놀라움을 전해주고 현재 빈티지 오리지널 가격의 1/10도 되지 않는 판매 가격에 또 한 번 놀라움을 선물한다. 아직 국내 정식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아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해야 하는 불편함과 비싼 국제 배송료를 내야 하는 억울함(?)은 있으나 이렇게라도 손에 넣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GS Reso 마우스피스를 써보기 전엔 오리지널 오토링크 레소 챔버 마우스피스가 어떤 음색일지 궁금했다. GS Reso 마우스피스의 잘 다듬어진 페이싱에서 오는 편안한 컨트롤 능력과 재즈를 넘나드는 균형 잡힌 음색을 접하고 난 이후, 오리지널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지고 앞으로 GS Reso와 함께 할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준비해 본다. * (사진 1) theowanne.com 사이트 발췌 (월간색소폰)구민상 색소포니스트= sax0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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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Inside] 구민상의 마우스피스 맛보기 - “Get A SAX” GS Reso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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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장인표 색소포니스트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
- 한국 6,70년대에 색소폰 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의 풍경은 어땠을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했고, 어떤 삶을 살았을까. 돌이켜보면 빛바랜 듯 서글픈 그 시절에 대한 감상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열정이었고, 꿈이었고, 사랑이었기에 가슴 아픈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전쟁과 해방을 겪으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그로 인해 피어난 미8군에서의 한국 대중가요 전성기는 우리 음악의 뿌리이자 우리 음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장인표(76) 회장은 중학교 1학년에 클라리넷으로 악기를 시작했다. 친형(장인로)이 고등학교 밴드부 활동을 했다. 형을 보면서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됐다. 클라리넷 연주자는 소프라노, 알토, 바리톤, 테너 4개의 색소폰을 연주할 수 있지만 색소폰 연주자는 클라리넷을 연주할 수 없다. 피아노 연주자는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지만 오르간 연주자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클라리넷과 색소폰의 관계가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와 같다. 그는 트럼펫, 트롬본 등 다양한 악기를 익혔고, 고등학교 2학년말에 후배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며, 밴드부 단장으로 활동했다. 미군클럽 장인표 회장은 군악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그가 군인시절, 군사령부 및 사단 단위로 군인들의 사기와 정서 순화를 돕고자 문화선전대를 운영했다. 대중예술 중심으로 가수, 무용수, 연주자 등이 활동했다. 그는 1960년 말, 제대 후 미군 클럽에서 활동했다. 미8군은 국내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였고,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산실이다. 한국전쟁으로 30여만 명의 미군이 주둔했고, 1953년 베트남 전쟁으로 미군은 5만 여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 주한미군(G1)을 대상으로 하는 무대 '미8군 쇼'는 전성기였다. 미국은 1950년부터 UN군을 위한 위문 공연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부상병 위문 공연을 했고, 한국전쟁이 끝난 겨울 대구 동촌비행장에 마릴린 먼로가 군용 잠바를 입고 위문공연을 했다. 미8군 쇼는 1953년 7월, 휴전과 함께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전국 각지의 미군캠프 내 미군클럽을 중심으로 연주와 노래, 댄스, 코미디, 마술 등 다양한 공연을 했다. 미8군 쇼단은 5~7명의 악단, 2~3명의 가수, 3~5명의 무용수에 코미디언과 MC, 음향, 조명, 매니저 등 17명 이내로 군용 트럭 한대로 다 함께 이동할 수 있는 규모다. 초창기에는 개런티를 화폐 대신 미군 생필품으로 줬고, 단장은 남대문시장 등에서 현금으로 교환해 단원들에게 나눠줬다. 미8군 쇼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달러박스'로 부상했고,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미8군 쇼 연예인 명단이 수록된 공연자수첩에 오른 단원들로 구성된 쇼단이 다섯 개 이상 운영됐다. 미8군 쇼의 대부 베니 김(김영순)은 연예인 공급회사인 KEAA(Korea Entertainment Agency Association, 한국연예대행연합회)를 출범시킨다. 이 KEAA가 500여 명의 단원이 소속된 화양흥업(한국흥행주식회사)다. 여기에 유니버셜, 삼진, 공영, 대영 등의 연예기획사가 등장하고, 소속 가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시작된다. 가수들이 몰리다보니 오디션을 봤고, 등급을 매겨 개런티를 조정했다. 미8군 쇼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60년대 대행업체 소속 쇼단은 20여개, 밴드는 40여개였다. 베니 김(김영순)의 베니 쇼를 비롯하여 김희갑의 스페셜 A(더블A)급의 에이원 쇼, 최태원의 탑드로워 쇼, 김인배의 뉴스타 쇼, 박성원의 뉴요커 쇼, 블랙아이스 쇼, 박선길의 쇼오브 쇼, 최태국의 스피링 버라이어티쇼, 최성용의 썸머타임 쇼, 김인영의 파피 쇼, 이봉조의 헐리우드 쇼 등이 있었다. 쇼는 전체 흐름과 구성, 편곡과 영어까지 심사하여 결과에 따라 스페셜A(AA), A, B, C, D 클래스로 등급을 나눴고, D는 탈락으로 활동할 수 없었다. 3개월마다 한번 씩 오디션을 봤으며, 그 결과에 따라 지급액이 달랐다. 대부분 A나 B 등급을 받았다. 등급에 따라 서는 무대도 달랐다. 미군클럽은 계급에 따라 장교들이 출입하는 장교클럽, 하사관들이 이용하는 하사관클럽, 일반 병들이 출입할 수 있는 사병클럽과 가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클럽으로 구분됐다. “1960년대는 연주인들이 호텔보다 미군 부대에서 많이 활동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위치한 선린상업고등학교 인근에 화양흥업에 소속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미군부대 클럽이 100여개 있었고, 5~6인조가 한 팀으로 활동했습니다. 부산, 동두천, 의정부, 파주 등에 각 4~5곳, 군산 비행장은 2~3곳의 클럽이 있었습니다. 클럽과 한 달 단위로 계약해서 인근에서 하숙했고, 매월 클럽을 옮겨 다니며 연주했습니다. 화양흥업에는 빅쇼(연주자 4~5명과 무용수 3~4명, 가수 여러 명이 한 팀)와 패키지(연주자 4~5명과 가수 1명이 활동) 두 그룹이 있었습니다. 가수 윤항기는 패키지 연주자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흑인은 재즈 음악을 백인은 컨트리 음악을 선호했습니다. 서울 용산구 삼각지에 있는 캐슬클럽은 흑인이 많아서 재즈를 연주하면 좋아했습니다. 클럽별로 선호하는 음악이 달랐고, 사전에 정보를 받아서 준비하기보다 연주자가 현장에서 상황에 맞춰 연주했습니다. 1960년대에 미군 클럽에서 15,000~20,000원의 월급으로 시작해서 그만둘 무렵 4만원을 받았습니다.” 장인표와 돈키호테 “미군부대에서 연주활동을 그만두고, 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연각 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닐바나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 가수 윤항기가 색소폰 연주자가 필요하다며, 같이 활동하자고 제안해 윤항기와 키브라더스로 활동합니다. 미8군에서 4만원 받았는데, 7만원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73년 미8군 연주자들과 장인표와 돈키호테라는 그룹을 만들었고, 드럼 한철 연주자, 트럼펫 최영운 연주자, 기타 권오진 연주자, 베이스 김휘복 연주자와 같이 활동했습니다. 풍전호텔, 센트럴호텔, 하얏트호텔, 백남호텔 등에서 계약금을 미리 받고 활동했습니다. 1960년대 서울에만 60~70곳의 카바레가 있었습니다. 한 카바레에 연주자가 12~15명이 활동했습니다. 1970년대 고고클럽에서 1980년대 디스코클럽에서 스탠드바로 바꿨습니다. 스탠드바 이전에는 춤을 위주로 운영됐고, 스탠드바는 앉아서 술 마시면서 신청곡을 들을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가수들은 하루에 1만원을 받으며 활동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스탠드바가 많이 생겨서 한집 건너 한집 있을 정도로 지금의 커피전문점과 같이 많았습니다. 전자음악이 나오면서 빅밴드의 활동은 줄어들었습니다. 반주기가 등장하면서 5인조 악단 대신 2~3명이나 혼자 연주하게 되면서 드럼 연주자가 다른 악기로 바꿔서 연주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디지털 음악을 재생하고 정리를 도와주는 오디오 플레이어인 리듬박스가 등장하면서 연주자의 활동을 녹음실 세션정도로 크게 줄게 됩니다.” 경찰악대 장인표 회장은 1975년 경찰악대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당시 경찰악대는 1차에서 군악대 출신이면서 연예인협회 자격증 소지자에 한해 선발하고, 2차에서 실기시험으로 선발했습니다. 당시 같이 활동했던 연주자들은 방송국에 진출했는데, 저는 자녀가 1~2살로 자녀가 학교에 가면 학자금 지원 등을 받을 수 있어서 경찰악대에 지원했습니다. 1978년부터 서울경찰청음악단장으로 각 기업체와 가수 등을 직접 섭외했고, 이봉조, 길옥윤, 최진희, 현철 등 가수 반주는 직접 했습니다. 당시 유명 가수 대부분은 출연료 없이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대신 출연가수에게 명예경찰증을 줬습니다. 경찰악대는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가 아닌지라 기업체에서 연주협조공문이 오면, 일반 연주단체보다 저렴한 비용(식대와 연주자 이동 차량비용 정도)을 받고 연주를 했습니다. 많은 기업체에서 연주요청을 받았고, 기업체 행사 일정을 경찰악대 일정에 맞춰서 잡기도 했습니다. 바쁠 때는 하루에 3회 공연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포돌이 송 작사 경찰의 공식 캐릭터 ‘포돌이’, ‘포순이’는 만화가 김현세가 그린 것이다. 2001년 장인표 회장은 ‘국민과 함께 포돌이와 함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포돌이 노래를 제작했다. “포돌이 송의 작곡은 제가 했으며, 작사는 안동역 작사가 김병걸씨가 했습니다. 공모전에서 1등을 수상하며, 경위로 특진하게 됩니다. 당시 경찰서에 1년에 50~60명이 경위가 되던 시절입니다. 저와 김병걸 씨는 각 100만원을 받았고, 저는 불우이웃 돕기에 헌금했습니다.” 그는 여의도 윤중로에서 1만3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벚꽃축제에서 연주회를 열어 축제분위기를 돋아주고, 한강고수부지에서 사흘 밤에 걸쳐 열대야 음악연주회를 개최해 시민들의 여름더위를 식혀주며 서울경찰의 이미지를 향상시켰다. 1년에 200회 이상 연주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신지식 경찰에 뽑히며,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장인표 회장은 "표창을 쫒기보다 표창이 나를 찾아오게 업무에 충실했다“라며, "신지식 경찰이란 자신의 업무를 개선, 개발, 혁신하여 고부가가치, 고능률화 하고 표창을 위해 쫓아가지 말고 표창이 나를 쫓아오게끔 열심히 업무에 충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기능재향경우회 대한민국기능재향경우회는 경찰악대 출신이 정년 후 만든 단체로 1989년 3월 1일 창설됐다. 회원은 경찰악대 출신과 군악대(해군, 해병대, 공군, 육군 등) 출신으로 30년 이상 연주활동을 한 분들로 현재 143명이 활동 중이며, 회원에게 평생회원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회원 대부분은 실력이 출중한 연주자들로 70세 전에는 모이기 힘들고, 74세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장인표 선생은 2003년에 정년퇴임 후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2018년부터 대한민국기능재향경우회 회장을 맡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2018년 한강열대야 페스티발, 서울함공원 평화음악회콘서트, 안성3.1운동 기념관행사, 대한민국문화체육공헌대상과, 2019년 김포아트홀 더드림 콘서트, 구미문화예술회관 소소한 행복음악회, 서초문화예술회관 금요음악회, 여의도 물빛무대 기념공원, 충주문화예술회관 음악이 있는 밤(힐링콘서트), 세종문화회관 음악이 있는 밤, 충주어울림 음악회, 구미새마을금고 힐링음악회, 영주 풍기인삼축제, 평창리조트 행복음악회, 봉화군 열린음악회 등의 행사에 참여했다. 2020년에 코로나로 현재까지 행사는 멈춘 상태다. 장인표 색소포니스트는 연주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관객을 배려한 연주를 하고자 노력합니다. 행사에 참석하는 관객의 연령대와 성향, 행사의 목적과 장소 등을 고려합니다. 대부분 1부는 클래식과 소프라노, 테너 가수로 하며, 2부는 대중가수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 장인표 회장은 2006년 종로공연장에서 300여명의 서울 종로예술단체와 매일 파고다공원에서 연주했다. 현재는 코로나로 행사가 중단된 상태다. 2013년 서울 구로시에서 1년에 한번씩 각 동별로 400명의 어르신들에게 음식과 공연하는 행사에 지금까지 동참하고 있다. 2017년부터 매년 1960년대에 활동했던 연주자 100여명의 모임을 주최, 주관하고 있다. 작년과 재작년은 코로나로 개최하지 못했다. 3년 전부터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종로상가에 송해 사무실에서 매월 연주자와 가수 등 50여명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장인표 Profile - 1960년대 미8군 쇼 - 1970년 윤항기와 키브라더스 - 1973년 장인표와 돈키호테 - 1975년 경찰악대 특채 - 1978~2003년 서울경찰경음악단장 - 2000년 경찰악대부대장 - 2001년 포돌이송 작곡상(작사 김병걸) 경위 특진 - 2003년 노무현 대통령상 - 2007~현재 과천 시니어팝스오케스트라 단장 - 2013~현재 구로구청 팝스오케스트라 단장 - 2018~현재 상명대 시니어아카데미 색소폰학과 교수 - 현) 대한민국기능경우회 회장 - 현) 경우윈드오케스트라 단장 - 경음 시니어아카데미 원장 - 가수 윤항기 콘서트 세션 - 쟈니리 콘서트 지휘 - 가수 김수희 김포 드림콘서트 경우오케스트라 지휘 - 가수 김연숙 충주 문화회관 지휘 - 가수 우동하 전국투어콘서트 경우오케스트라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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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흩어진 기억을 찾아서] 장인표 색소포니스트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