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1(월)

Music Essay
Home >  Music Essay

실시간뉴스

실시간 Music Essay 기사

  • [Music Essay]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아다모 ‘눈이 내리네’
    글·사진 l 박형섭 부산대 인문대 불문과 명예교수/색소포니스트 hsubpark@pusan.ac.kr 삿포로는 일본 북쪽 섬 홋카이도의 도청소재지이다. 인구 약 200만의 대도시로 이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을 이룬다. 여름에는 시원한 날씨, 겨울에는 아름다운 설경으로 유명하다. 메이지 시대에는 혼슈와 가깝고 무역으로 번성한 하코다테(函館)가 제일 큰 도시였다. 그러나 홋카이도 개척이 본격 진행되자 삿포로는 미국식 계획도시로 변화하여 인구집중이 가속화되었다. 특히 1972년 아시아 최초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서 교통 인프라 정비, 시가지의 근대화, 도시의 국제화가 비약적으로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삿포로는 일본의 대표적인 대설지역이다. 매년 2월에 눈 축제가 열리는데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2024년은 2월4일부터 2월11일까지 8일간 진행된다. 이때 국제 눈조각 콩쿠르도 개최되는데 여러 나라에서 참가하여 각 팀이 직접 제작한 작품으로 경합한다. 축제의 주요 행사 장소는 오도리 공원과 스스키노, 츠토무에서 열리지만 시내 전역이 축제 분위기 속에 있다. 이 도시는 음식•문화•예술 등과 함께 풍부한 녹지와 휴식공간이 잘 갖춰져 있어 매력적이다. 홋카이도에 10월부터 눈이 많이 온다고 하니 삿포로는 겨울 내내 눈으로 덮여 있을 것이다. 나는 11월28일부터 4일간 이 지역을 방문했다. 도착 당일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버스로 시내 호텔까지 가는 동안 곳곳에 쌓인 눈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투숙한 게이오 플라자 호텔은 삿포로역과 지척에 있다. 홋카이도 대학, 다이마루 백화점, 오도리 공원 등 주요 방문지를 걸어서 도달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사방이 온통 눈으로 하얗다. 밤사이에 이어 아침부터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난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삿포로 여행을 결심한 것은 바로 눈 내리는 풍경을 보기 위함이었다. 난 서둘러 홋카이도 대학으로 달려갔다. 오래전 부산대 재직할 당시 이 대학을 방문했었다. 여름이었는데 울창한 거목들로 숲을 이룬 대학 캠퍼스가 너무도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눈으로 뒤 덮힌 캠퍼스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철 눈이 오는 것은 일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부산에 사는 나로서는 이국적인 진풍경을 보는 것이다.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에 쌓인 하얀 눈과 그 사이로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나는 잠시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 한동안 눈을 맞으며 교정을 거닐었다. ▶칼럼 전문은 월간색소폰 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Music Essay
    2024-01-02
  • [Music Essay] 미국 뉴저지 호보켄…프랭크 시나트라 '마이 웨이(My Way)'
    프랭크 시나트라(1915-1998)는 미국 뉴저지 호보켄 출신의 가수이자 영화배우다. 그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20세기 대중음악의 가장 위대한 가수들 중 한 사람이었다. 호보켄 시는 허드슨 강을 사이에 두고 뉴욕 맨해튼과 마주 보고 있다. 이 도시는 스티븐스 공과대학을 비롯해 다양한 역사와 문화적 유산들, 레스토랑과 바, 공원 등이 있어 방문객들이 많다. 특히 허드슨 강변을 따라 프랭크 시나트라 기념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호보켄 시 당국은 2021년 시나트라 탄생 106주기를 맞아 공원 입구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나는 미국 뉴욕을 여행하면서 색소폰 버스킹을 위해 이 공원을 방문했다. 글·사진 l 박형섭 부산대 인문대 불문과 명예교수/색소포니스트 hsubpark@pusan.ac.kr 2023년 4월 초 뉴저지의 날씨는 화창한 봄날이 무색할 정도로 바람이 서늘했다.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연분홍 벚꽃 이파리들이 흩날렸다. 난 시나트라 동상 앞 벤치에 앉아 확 트인 강 건너 맨해튼을 바라보았다. 파노라마처럼 영상들이 스쳐 갔다. 초현대식 고층빌딩들, 다양한 피부의 인종들, 각양각색의 자동차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 들, 베이커리와 카페, 레스토랑들, 패션을 창조하는 젊은 뉴요커들 등 지난 며칠 동안 맨해튼에서 보았던 이미지들과 함께 상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 빙그레 웃고 있는 시나트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살아 있을 때처럼 중절모에 멋진 슈 트 차림으로 가로등에 살짝 기댄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 뛰놀던 먼로 거리를 향해 <마이 웨이>를 흥얼거리고 있는 듯했다. 그는 <마이 웨이> 노랫말이 새겨진 돌판 위에 서 있었다. ▶칼럼 전문은 월간색소폰 11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 Music Essay
    2023-11-01
  • [Music Essay] 파리 몽마르트르 물랭루즈, 봄날은 간다
    파리의 봄 날씨는 대체로 맑고 선선하지만 일기는 변덕스럽다. 맑은하늘에 불시에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뿌리고 지나간다. 자주 내리는 비 덕에 공기는 매우 투명하다. 이렇게 대지를 적시는 봄비는 생명체를 일깨운다. 가로수와 정원에 푸릇푸릇 새싹들이 돋는다. 센 강의 부둣가를 걷는 산책자도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도 분주하다. 아름다운 봄날이 간다. 나는 파리지앵처럼 외투를 걸치고 거리로 나선다. 오늘은 파리 북쪽 피갈 몽마르트르 물랭루즈 앞에서 버스킹을 할 것이다. 몽마르트르 지역은 잘 알려진 명소이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특히 이 지역은 색소포니스트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근처에 색소폰 명가 반도랭(Vandoren) 본사가 있고, 색소폰 발명가 아돌프 삭스가 잠들어 있는 묘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프렌치 캉캉과 함께 샹송 가수들이 활동했던 카바레 물랭루즈가 있으니 파리를 여행한다면 빼놓을 수 없다. 몽마르트르는 20세기 초반까지 세탁소와 빨래터가 밀집해 있었다. 가난한 화가들은 이 동네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들 가운데 피카소,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반 고흐와 같은 유명한 화가들도 있다. 그들은 이곳의 일상적 풍경에 매료되어 화폭에 담았다. 그 그림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가 그중 하나다. 무명의 돈 없는 화가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 팔면서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에 화가들이 정착하기 시작한다. 세탁선(Le Bateau Lavoir)은 버려진 선술집을 화가들이 개조하여 아틀리에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도 당시 이곳에서 창작되었다. 바토 라부아르와 테르트르 광장은 오늘날 관광 객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몽마르트르의 명소가 되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오르는 르픽(Lepic) 거리 입구에 물랭루즈가 있다. 물랭루즈는 프랑스어로 Moulin Rouge, 빨간 풍차란 뜻이다. 1889년 문을 연 카바레로 역사적 장소가 되었다. 건물 지붕 위에 커다란 빨간 풍차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고급식사와 함께 스펙터클을 즐기려는 방문객은 예약이 필수다. 무엇보다도 프렌치 캉캉의 화려한 무대를 즐길 수 있다. 조세핀 베이커, 프랭크 시나트라, 이베트 길베르, 잔느 아브릴, 에디트 피아프 등 이름난 가수들이 활동했다. 후기인상파 화가 툴루즈 로트랙은 물랭루즈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아카데미작품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영화 〈물랭 루즈〉도 바로 여기서 제작되었다. 나는 물랭루즈 앞 광장에서 색소폰을 꺼내든다. 지하철 피갈 역 출구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온다. 오가는 인파 속에서 연주를 하려니 신경이 쓰인다. 즉흥적인 암보 연주는 연주자의 집중력이 필수다. 난 소음 때문에 망설이다가 K-pop 〈봄날은 간다〉를 연주했다. 심호흡을 하고 마우스피스를 깊이 물었다. 색소폰 소리가 울리자 사람들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평소대로 노래의 마지막 프레이즈를 끝냈다. 나도 모르게 감흥에 빠져들었다. 우리 가요는 노랫말도 멜 로디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뜻대로 된 연주는 아니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파리의 봄날에 어울리는 노래를 연주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언젠가 물랭루즈에서 혹은 파리의 공연장에서 한국가수가 K-trot로 심금을 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연주를 준비할 때부터 한 젊은 친구가 주위를 서성거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난, “좋아요. 멋지게 찍어보세요.”라고 답했다. 그는 내가 연주를 마치자 웃으며 다가와 연주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틱톡에 올릴 거에요!” 거리 연주를 하면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몇 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이 노래를 연주할 때 있었던 일이다. 연주를 마치자 한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연주를 들으면서 매우 슬프고 서정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내용의 노래인지, 제목은 무엇인지, 심지어 노래를 부른 가수 이름까지 물었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답하면 서 유튜브 채널에서 다양한 한국의 노래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버스커에게 대중의 반응은 큰 힘이 된다. ▲프렌치 캉캉 이미지(물랭루즈 입구) ▲반도랭 전시장 ▲반도랭 본사 나는 색소폰 명가 반도랭 본사로 향했다. 물랭루즈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색소폰이나 클라리넷 연주자라면 반도랭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도랭은 클라리넷 연주자 외젠 반도랭이 1905년 설립했다. 이 회사는 클라리넷과 색소폰 리드, 마우스피스, 액세서리에서 빠르게 선두주자가 되었고, 오늘날 생산량의 90퍼센트를 100개 이상의 나라에 수출한다. 회사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1층에 리드, 마우스피스, 리가춰 등의 진열대가 보였다. 악기 종류별로 선택할 수 있도록 설명을 곁들여놓았다. 반도랭의 노하우는 전 세계 과학자들과 음악가들의 협력으로 완성되었다. 연구와 실험을 거쳐 생산된 새 제품들은 생산과 동시에 공개된다. 연주자들은 새로운 제품들을 반도랭 시연실에서 테스팅할 수 있다. 나는 알토색소폰 반도 랭 마우스피스 Java55, 녹색자바리드 3호, 옵티멈 골드리가춰 등을 셋팅해 시연했다. 반도랭 리드의 원료인 갈대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지역의 갈대밭에서 재배된 100% 천연식물이다. 블루보사 리듬 몇 소절을 연주해보니 과연 반도랭 제품답다.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위한 스페이스 파티션과 강의실을 포함한 스튜디오도 구비되어 있다. 이런 스튜디오는 유럽은 물론 일본(도쿄), 미국(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북경)에도 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역시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아들 로버트 반도랭에 이어 현 회장인 버나드 반도랭으로 승계되었다. 나는 근처 몽마르트르 공원묘지로 향했다. 이 묘지는 파리 18구에 있는 묘지로 페르라셰즈, 몽파르나스 묘지와 함께 파리의 3대 묘지 중 하나이다. 에밀 졸라, 에드가 드가, 니진스키, 스탕달, 베를리오즈등 예술가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각각의 무덤에는 묘지 주인의 개성과 삶을 보여주는 독특한 조각과 동상들로 장식되어있다. 아돌프 삭스의 묘는 6구역에 자리잡고 있다. 그는 석재로 지은 가족 납골당에 잠들어 있다. 납골당 오른쪽 벽에 색소폰 그림과 함께 삭스에 대한 정보가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벨기에 디낭에서 1814년 11월 6일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1894년 2월 4일 죽다.’ 그와 절친했던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가 베를리오즈의 묘도 몇 구역 떨어진 곳에 있었다. 베를리오즈는 삭스가 파리에서 색소폰 특허를 등록하고 파리 음악계에 입문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이다. 그의 도움으로 색소폰은 프랑스 군악대에 편성되어 베이스 음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삭스는 파리 악기제조자들의 견제와 소송에 휘말려 파산하고 말았다. 나는 발명가 삭스에게 경의를 표했다. 삭스의 묘를 떠나면서 “벨기에 디낭의 삭스박물관도 방문해야지”하고 생각했다. 울창한 숲속의 묘지를 산책하다 보면 유명인들의 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툴루즈 로트랙의 그림에 등장했던 프렌치캉캉 댄서 라 글뤼의 묘도 눈에 띄었다. 물랭루즈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이 저세상에서도 물랭루즈 근처 묘지에 함께 잠들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지금 여기서’ 대화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있을지 모른다.
    • Music Essay
    2023-05-01
  • [Music Essay] 간몬해협, 비에 젖은 색소폰
    일본은 홋카이도·혼슈·시코쿠·큐슈 등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 가운데 혼슈와 큐슈 사이의 바다가 바로 간몬해협(関門海峡)이다. 이 해협을 향해 두 항구도시가 마주 보고 있다. 바로 혼슈의 남쪽 끝 시모노세키(下関)와 큐슈의 북쪽 끝 모지(門司)다. 간몬해협은 두 포구의 지명에서 한 글자씩 취해 만들어진 명칭이다. 이 두 도시는 역사적 장소로 유명하며 간몬교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쉽게 왕래할 수 있다. 현수교로 설계된 간몬교는 1973년 11월에 개통됐다. 시모노세키는 일본 국내 교통요지일 뿐 아니라, 한국과 교류하는 중요한 창구이다. 특히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여객선 부관페리는 매일 운행되고 있다. 시모노세키는 예부터 일본의 거점 역할을 하는 항로이다. 애도 시대부터 기타마에부네의 기항지로 번창했고, 메이지 시대 이후 대조선(朝鮮) 무역 중심지였다. 우리에겐 한양을 출발한 조선통신사가 부산에서 뱃길 따라 대마도, 시모노세키를 거쳐 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조선통신사 행렬은 그 자체로 대규모의 문화공연이었다. 앞에는 조선의 악대가 장엄한 곡을 연주하고 뒤에는 조선의 명물인 마상재 공연이 펼쳐졌다.” 조선통신사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아카마 신궁도 시모노세키 부두에 인접해 있었다. 무수한 조선의 문화예술인들이 머물다 간 곳, 일제 식민지 시절 고통을 당하던 우리민족에게 애환이 서려 있는 부두에서 비바람 부는 간몬 해협을 바라보니 격한 감정이 일었다. 나는 2023년 1월 12일부터 3일간 후쿠오카 지역을 돌아보았다. 시모노세키와 모지코를 방문했을 때, 겨울비와 함께 세찬 바닷바람이 불었다. 색소폰 버스커에게 우천은 최악의 날씨다. 비 오는 날에는 거리공연을 할 수 없다. 소음이나 바람은 연주에 장애요인이기는 하지만, 연주 그 자체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적당히 부는 바람을 선호하기도 한다. 색소폰 연주를 스마트폰 영상으로 찍은 후 재생하면 때로 바람소리가 연주음과 어우러져 묘하게 매력적으로 들린다. 음향 효과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버스킹의 현장성과 생동감을 준다. 물론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녹음하는 작업은 다른 차원이다. 이 경우 외부 소음은 단연 피해야 할 대상이지만, 거리 연주는 현장음을 적당히 활용하는 게 더 멋스럽다. 비가 좀 잦아들면 색소폰을 연주할 셈이었다. 비에 젖어 축축한 부둣가 계단에 걸터앉았다. 이런 날씨에 연주가 제대로 될까 걱정되었다. 나의 연주 여행은 대부분 낯선 곳에서 즉흥적이고 즉각적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주변의 상황과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부두에서 바라본 간몬교의 풍경,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해협을 질러가는 다양한 배들의 모습은 여행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좋아! 해협을 향해 힘차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자!” 나는 일본열도 어디서나 색소폰 버스킹을 한다면,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가장 어울리는 K pop일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 노래는 김연자, 계은숙 등 일본에서 활동했던 한국 가수들 덕분에 일본에서도 인기곡에 속한다. 일본 기네스북에서 “리메이크가 가장 많이 된 외국 가수의 노래”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일본 가라오케의 한국가요 인기 순위에서 지금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해협을 통과하는 부관페리의 승객들을 떠올리며 힘껏 숨을 내지르며 마우스피스를 깨물었다. 연주가 끝나고, 가라토(唐戶)시장을 거쳐 해변식당에서 토라후쿠(복어) 사시미를 맛보았다. 여기는 복어의 본고장이었다. 일본 복어생산량의 80%가량이 이곳을 거쳐 유통된다고 한다. 곳곳에 복어 동상과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가라토시장은 부산의 자갈치시장과 같은 곳이다. 특히 초밥 마니아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한국의 어시장에서 볼 수 있듯 각종 해산물과 수산 가공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식사 후 모지항으로 이동했다. 이 도시는 과거 국제무역항으로 매우 번성했었다. 지금의 모습은 옛날 화려했을 때를 재현한 것이다. 그래서 모지코레트로(門司港レトロ)라는 이름이 붙었다. ‘레트로Retro’는 일본식 영어 표현으로 ‘복고풍’이란 뜻이다. 모지코 역에서 해협으로 통하는 길목에 붉은 벽돌의 옛 오사카 상선 빌딩이 있다. 그 옛날 간몬해협을 누비던 대형 선박들의 본부인 것이다. 그 옆에 미츠이 구락부(클럽)가 있는데 유럽풍의 오래된 건물이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 박사 부부가 모지항을 방문했을 때, 여기에 묵었다고 한다. 지금도 정문에 ‘미지코 미츠이 구락부’라는 대리석 문패가 붙어있고, 아인슈타인 박사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모지항에는 여전히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오후 5시를 넘기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마다 불빛이 반짝이고 고풍스러운 부둣가 가스등이 서서히 밝아왔다. 일렁이는 바닷물에 비친 모습은 움직이는 풍경화였다. 거기에 어렴풋이 내 모습이 보이자 난 순간 넋이 나가 나르시시스트가 되었다. 어스름한 항구, 비바람을 맞고 있는 이방인은 금세 음유시인이 되었다. “그렇지, 지금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는 〈적과 흑의 블루스〉야”라고 중얼거리며 악기를 꺼냈다. 이 노래는 일본의 츠루디 코지의 히트곡으로 미국의 테너 색소포니스트 실오스틴이 일본에서 재즈 스타일로 연주해 더욱 유명해졌다. 그의 연주곡 〈적과 흑의 블루스〉는 경음악 음반으로 발매되어 우리나라에도 유행했다. 블루스 특유의 끈적한 리듬이 색소폰 선율과 잘 어울린다. 나의 빗속 연주는 초저녁 적막한 모지항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엔카이니 듣는 이가 있었다면 마음속으로 따라 불렀으리라. 아마추어거리 연주자는 이런 상상에 빠질 때 가장 행복하다. 버스킹, 길거리 연주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퍼포먼스는 행위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이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육체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연주 퍼포먼스는 육체로 만들어내는 공간의 시이다. ‘때와 장소’, 즉흥성과 순간성이 소리와 함께 고스란히 기록된다. 이 경우 돌발적 상황이 해프닝의 주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아마추어 색소포니스트의 버스킹은 언제나 자유로운 플레이로 끝난다. 개인적 삶의 체험은 그렇게 우주 속에 지나가는 바람처럼 새겨질 것이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비에 젖은 색소폰은 하이라이트다. 훗날 영상을 본다면 당시의 생생한 느낌이 되살아날 것이다.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시모노세키와 모지코, 이 지역은 우리에겐 가슴 아픈 곳이다. 일제의 강제 노역으로 한 맺힌 과거가 스며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여전히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 그러나 가장 가까워야 할 이웃이기에 미래지향적인 해법이 나오리라 희망한다.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만남과 왕래가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지 모른다.
    • Music Essay
    2023-03-01
  • [Music Essay] 마조레 광장 Piazza Maggiore과 〈광화문 연가〉
    이탈리아 동쪽 리미니 해변에서 발사믹 명가 레오나르디(1871)가 있는 모데나로 향하던 중 잠시 볼로냐에 들렀다. 볼로냐는 세계 역사상 최초의 대학이 세워진 교육·청년·자유의 도시다. 색소폰 버스커로서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옛 고고학적 분위기의 도시에서 k-pop을 연주하고 싶었다. 시 전체가 오래된 붉은 건물들,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또한 볼로냐는 도시 이름을 딴 볼로네제 파스타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나는 볼로냐에 도착하자마자 시내 중심 마조레 광장으로 향했다. 유럽의 대도시는 중앙광장 주변에 관공서, 성당, 대학, 시장과 백화점 등이 운집해 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다.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 로마의 포룸forum, 중세 교회 앞 광장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시민들은 휴식 혹은 식사하면서 이곳에서 여유롭게 머문다. 노천 바에서 커피나 와인을 마시는 시민들 모습이 평화스럽다. 책을 읽거나 대화하는 사람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도 흔하게 보인다. 도시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우선 광장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마조레 광장에는 평일 오후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잠시 앉아 쉬기도 했다. 나는 이탈리아 국기, 유럽연합기, 볼로냐 깃발이 펄럭이는 시청을 마주보고 광장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 누구도 내가 색소폰을 꺼내 세팅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옆에 앉아 책을 보던 신사가 힐끗 곁눈질을 했다. 마치 색소폰을 연주하면 들어줄테니 마음껏 연주해보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노래를 부를까 잠시 생각했다. 불현듯 서울의 광화문광장이 떠올랐다. 지금 여기가 시민들이 모이는 광장이 아니던가. “그렇지 이문세의〈광화문 연가〉를 연주해보자.” 이국땅에서 한국의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은 의미 있어 보였다. 더구나 케이팝발라드이니 큰소리로 연주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광화문 연가〉를 앉은 자리에서 나지막하게 연주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역시 나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푸른 하늘과 바람, 성당 꼭대기의 십자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랫말이 이곳의 분위기에 어울렸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들과 사라진 사물들, 성당 주변에서 사랑을 속삭였을 연인들, 개와 고양이, 비둘기들… 나는 이들을 관객으로 여기고 지긋이 눈을 감고 연주했다. 광장의 사람들이 마치 청중이라도 되는 듯이 “이봐요, 우린 당신이 연주하는 노래를 모르오. 하지만 감미롭게 들리네요. 칸초네도 한 번 연주해줘요.”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여러분이 청한다면 한 곡 부르지요.”라고 속으로 화답했다. 나는 야외 공연이기라도 하는 듯이 광장 한복판으로 나아가 〈리멘시타〉를 힘껏 연주했다. 이탈리아 산레모가요제 입상곡으로 도렐리, 밀바가 불러서 크게 사랑받았고, 한국에서는 번안가요로 한경애, 배호가 불러 역시 히트한 노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곡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리멘시타〉와 함께 〈오 솔레미오〉를 여행하기 전부터 열심히 연습했다. 물론 머릿속으로 암보했다고 길거리에서 뜻대로 연주되지는 않는다. 연주자는 누구나 악보 기억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무대에 선다. 버스킹은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상황에 매우 민감하다. 예기치 않은 주변의 소음에 박자, 음정을 놓칠 수 있다. 실수는 언제나 가능한 일이고, 그 실수를 요령껏 극복하는 수완도 묘미다. 이때 버스킹 경험은 매우 유용하게 작용한다. 연주가 중단된다면 프로든 아마추어든 연주자로서 최악이다. 멜로디는 물론, 노래의 조성에 따른 스케일 패턴을 연마해 두어야한다. 이것은 즉흥연주에 필수적이다. 비록 연주 중 일부 틀려도 주 멜로디와 조화를 이루며 곡이 흘러가면 다행이다. 완벽한 연주란 존재하지 않는다. 실수를 인식했다면, 그 다음 연주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게 상책이다. 아마 본의 아니게 내 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모른 척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귀에는 “오, 칸초네를 연주하다니, 반갑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색소폰 선율은 광장 하늘 저 높이 울려퍼졌다.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시장상인들,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성당이나 관공서 근무자들 등 주변의 사람들이 흥얼거렸을 것이다. 마조레 광장 입구에 넵튠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삼지창을 들고 있는 넵튠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세이돈, 즉 바다의 신이다. 이 삼지창은 볼로냐 시의 상징이자 이탈리아 슈퍼카 마세라티의 엠블럼으로 쓰인다. 볼로냐에서 창업한 고급차 메이커 마세라티의 자부심이 거기 새겨져있다. 시청 옆 건물에는 피아트계열의 알파로메오 자동차 광고판이 보였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알파로메오 등 고급 자동차 브랜드를 보유한 콧대 높은 나라 아니던가. 나는 광장을 벗어나 볼로냐 대학으로 향하는 잠보니 거리로 들어섰다. 이 도시는 포르티코(Portico)로 유명하다. 포르티코는 건물을 확대해 지붕 있는 기둥을 세운 회랑을 말한다. 시내 거의 모든 건물에 포르티코가 있다. 즉 어디서나 기둥이 늘어선 길, 지붕 있는 보행로를 볼 수 있다. 이 길의 높이는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2.66m로 통일했다고 한다. 볼로냐는 세계에서 가장 긴 포르티코를 보유한 도시다. 시 가장자리에서 마돈나 디 산 루카 수도원에 이르는 포르티코의 길이는 18km이다. 비와 눈, 햇빛을 피할 수 있으니 보행자 천국인 셈이다. 볼로냐가 이처럼 포르티코의 도시가 된 것은 볼로냐 대학과 관계가 있다. 그 옛날 유럽 각지에서 온 유학생들 수가 많아지자 시내에 방이 부족했다. 그래서 인도 위에 기둥을 세워 포르티코를 만들고 위층은 학생 기숙사로 사용했던 것이다. 고풍스러운 대학 건물 벽에 '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 Alma Mater Studiorum'이라는 구절이 씌어있었다. 볼로냐대학이 교육기관으로 공식 문서에 등장한 것은 1088년이다.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 지식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 가운데 하나다. 그 덕에 일찍 인문학이 꽃피게 되었고, 법학, 의학, 철학, 신학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 대학은 교회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최초로 인체 해부실험을 감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데카메론〉의 저자 보카치오, 〈신곡〉의 단테, 〈우신예찬〉의 에라스무스,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특히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교수로 재직했다. 공간, 혹은 장소는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과 함께 추억 속의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볼로냐에 사는 사람들, 이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광장은 저마다의 이미지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에게 이곳은 지난날 예술과 지성을 꽃피운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들, 광장과 골목, 카페에는 아직도 신화들이 꿈틀거린다. 학문을 좇던 중세 젊은이들의 발걸음, 근대와 현대의 사상가 및 예술가들의 지적 산물이 곳곳에 배여 있다. 나는 대학가 잠보니 거리를 걸으면서 “나의 노래가 볼로냐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아있기를 희망하며” 지성의 향기가 섞인 공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오늘날 볼로냐 시는 클래식부터 전자·재즈·포크·오페라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활성화되어 있다. 시민들과 방문객들은 언제든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볼로냐는 그 공로로 2006년 유네스코 ‘음악의 도시’로 선정됐다. 이 국제적인 음악의 도시에서 K-pop은 물론 한국의 전통 음악도 더 자주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 Music Essay
    2023-01-01
  • [Music Essay] 푸치니 〈나비부인〉과 〈동백아가씨〉
    이탈리아 옛 도시 루카Lucca는 음악도시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자코모 푸치니(1858~1924)와 루이지 보케리니(1743~1805)가 태어난 곳이다. 푸치니는 〈라 보엠〉, 〈나비부인〉, 〈토스카〉, 〈투란도트〉 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이고, 보케리니 역시 뛰어난 작곡가이자 첼로 연주자로 명성이 높다. 특히 그의 첼로 소나타, 첼로 협주곡 등은 잘 알려져 있다. 두 음악가의 존재만으로도 루카는 음악의 성지로 손색이 없다. 루카는 음악을 좇아 이탈리아로 떠나는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나는 프랑스 동쪽 국경을 넘어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리비에라 해안을 따라 산 레모, 레노바를 거쳐 루카로 향했다. 푸치니의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대가의 음악적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다. 거기서 색소폰 버스킹을 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2020년 2월 어느 늦은 오후 제법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하지만 고색창연한 루카 시내 거리의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다.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성문을 들어서자 제일 먼저 주교좌성당(두오모)인 산마르티노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고딕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결합된 웅장한 모습이다. 루카의 성당들은 대부분 비슷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산조반니 성당은 푸치니와 각별한 곳이다. 푸치니 집안은 푸치니 부친까지 5대째이 성당의 성가대장은 물론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푸치니 생가는 작고 아담한 광장을 끼고 있었다. 짙은 적갈색의 예스러운 건물들로 둘러싸인 피아자 시타델라 광장, 그 한가운데에 푸치니 동상이 있었다. 그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음악 감독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지긋이 웃는 얼굴, 멋진 슈트에 나비넥타이를 맸고 구두는 빛이 났다. 생전에 부와 명예를 한껏 누린 격조 높은 예술가 모습이다. 실제로 그는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해서 언제나 최신 모델의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호화 요트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의 동상 오른쪽으로 푸치니 박물관의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동백아가씨〉의 노랫말은 나비부인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동백아가씨와 나비부인-초초상의 운명이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푸치니는 〈나비부인〉을 쓰면서 동아시아 시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다뤘던 것이다. 동시대 서양인들 눈에 비친 오리엔탈리즘의 일단을 음악가의 시선을 통해 보는 듯하다. 알토색소폰으로 〈동백아가씨〉 연주를 마치자, 한 부인이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색소폰 소리가 고즈넉한 동네를 시끄럽게 한 것 아닌가 걱정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신을 안젤리카라고 소개하면서 나의 연주에 찬사를 건넸다. 나는 한국인 여행객으로 색소폰 버스킹을 즐기는 아마추어 연주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광장의 벤치에 앉아 K-pop에 대해, 그리고 〈동백아가씨〉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자기도 나비부인의 내용을 잘 안다며 조심스럽게 앙코르 송을 청했다. 난, 잠시 망설이다가 이문세의 〈옛사랑〉을 떠올렸다. 나비부인 역시 옛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며 서럽게 울지 않았던가.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특히 이 노래는 내가 국내외 여행하면서 즐겨 부르던 것이라 익숙했다. 인간의 정서는 비슷하다. 한국의 발라드풍 가요를 연주하면 유럽인들도 대체로 좋아한다. 때로 노래에 관한 정보를 물어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한국 가요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다. 음악은 인간의 보편적 소통언어다. 이 기적 같은 소리의 울림은 무엇인가. 어떤 과정을 거쳐 힘을 발휘하는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소리는 단지 공기의 진동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고막과 내이신경을 거쳐 대뇌피질의 청각영역에 이르는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감정의 언어, 즉 슬픔과 기쁨, 위안, 희망, 치유의 효력의 언어가 되는 것이다.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동백아가씨〉를 엮어서 얘기하다니 좀 지나친 느낌이 든다. 그러나 푸치니는 먼 나라 이방인의 너스레를 너그럽게 들어주리라 믿는다. 그가 없었다면 나의 루카 방문도, 루카에서의 〈동백아가씨〉 연주도 없었을 것이다. 이 경험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 그것은 내 안의 보헤미안적 기질을 자극한다. 여행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푸치니 선생님, 영광입니다!” 푸치니의 작품들은 ‘푸치니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세계 오페라 공연 무대에서 언제나 볼 수 있다. 푸치니의 예술적 천재성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의 영향을 받은 여타 문화·예술 장르도 허다하다. 베트남 전쟁이 배경인 뮤지컬 〈미스 사이공〉(1989)은 미군 병사와 베트남 여인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현대판 〈나비부인〉인 것이다. 〈렌트Rent〉(1996)는 〈라 보엠〉을 모티브로 한 록 뮤지컬이다. 그뿐 아니다. 영화 〈M.버터플라이〉(1993), 미국의 TV드라마 〈프렌즈Friends〉에서 빅뱅이론에 이르기까지 푸치니의 상상력은 끝없이 이어진다.
    • Music Essay
    2022-11-0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