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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
    야탑동에 위치한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색소폰 연주자 이성만이 만든 지 올해로 8, 9년이 되어가는 이름난 동호회다. 3,40대 젊은 연령대부터 7, 80대 고연령층까지 두루두루 활발하게 활동하는 올뮤직색소폰동호회는 이 일대는 물론이고 서울 저 멀리에서 오는 사람들로 빈번하다. 회원 수 50명을 가까이 바라보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야탑 올뮤직색소폰동호회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이성만 원장)동호회를 운영하며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동호회를 운영하는 데에 나의 역할은 우리 회원님들이 즐겁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본다. 회원님들의 즐겁고 다채로운 경험을 위해서 동영상이나 연주회를 만들어 재미있는 상황들을 자꾸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는 즐거운 부담감이 있다.색소폰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레슨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항상 상주하면서 매일 레슨을 한다. 금요일에는 좀 특이하게 오전반을 만들어 오전에만 시간이 가능하신 분들을 모아서 연주회를 한다. 보통 우리가 음악회를 한다고 하면 저녁에 하지 않나. 저녁 시간대에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오전 연주반을 만들었다. 오전연주회는 오전 11시에 모여 1시간 정도 하고 근처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진다. 또한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회원님들을 대상으로 격주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다.동영상 촬영을 하는 것이 동호회 운영에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은데?많이 작용한다. 인터넷을 보면 많은 동호인들이 사진도 올리고 동영상도 올리고 하는데 사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몇 군데 정도밖에 없더라. 이전에 사진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 예쁜 사진, 정확한 동영상을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편집기술을 익혀서 동영상을 예쁘게 편집한다거나 소리를 만드는 법을 배워서 우리 회원들이 연주하는 것을 깔끔한 음질로 녹음해 유튜브나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혹은 핸드폰으로 전송해드리면 회원님들이 간직하고 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하면 다들 좋아하신다.자료화가 굉장히 잘 돼 있을 것 같다.얼마 전에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수를 따져보니 1,300개 정도를 올렸더라. 회원님 중에 한 분은 자신의 동영상을 100개 넘게 갖고 계신 분도 있다. 그 정도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자료화하여 잘 간직하고 있는 편이고 회원님들과도 잘 공유가 되는 편이다. 그런 부분들 때문에 회원님들 또한 고마움을 많이 표현하신다.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대상으로 녹음하고 동영상을 찍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처음에는 틀리면 끊고 “어우 나 다시 갈게!”이러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틀려도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그냥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교육을 한 점도 있는데,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도 관객이라고 생각해라. 우리가 앉아서 구경하고 듣고 있는 만큼 그만큼의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마이크 꽂고 뿌뿌 불어 보는 것도 자제를 시키는 편인데, 가수가 마이크를 잡고 목을 가다듬지 않지 않나. 이제는 우리 회원님들도 앞에 몇 명이 앉아 있지 않더라도 무대라고 생각을 하고 관객에 대한 예의를 철저하게 지킨다.(올뮤직색소폰 최연장자 ‘한종희’ 회원)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평상시에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당시 70, 80년도였을 때 길호균 씨나 이봉조씨가 색소폰 연주하는 것을 보고 많이 좋아했었고, 소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직접적으로 색소폰을 만난 것은 일본에 살았던 동생과 서로 색소폰에 대한 얘기를 종종 하곤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 생일선물로 색소폰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던 터라 당시에는 하지 못했고 시간이 흘러 주변에 한 두 명씩 색소폰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나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색소폰을 연주하며 어떤 것들을 느끼나?좋아하는 노래를 색소폰으로 연주할 수 있어 재미있고 보람을 느낀다. 또 올뮤직색소폰 동호회에서 연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좋고, 부가적으로는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다 보니 치매 예방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도 있다. 여가 활동으로는 최적인 것 같다.색소폰을 한 지는 얼마나 되었고, 올뮤직동호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색소폰을 한 지는 5년 정도 되었다. 처음부터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서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와서 연주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향상음악회’에 참여하여 연주한다. 또 동호회 회장님이 특별히 만든 실버들 모임이 있어 그 실버 멤버들이 모여서 분기별로 야유​회를 나가기도 한다.연주회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나?매주 금요일 무대에서 연주하고, 녹화는 2주에 한 번씩 한다. 녹화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많이 떨렸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떨리는데다가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간 나머지 손가락도 엄청 아팠었다. 그렇게 녹화한 것을 보면 부끄러운 부분, 고쳐야 하는 부분이 피부로 와 닿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그것이 피드백되어 실력증진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 그렇게 잘 안 되다가 2년 정도 지나니 자연적으로 힘이 빠지고 호흡 조절도 좀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특별히 연습하고 있는 곡이나 목표로 하는 곡이 있나?요즘은 새로 나온 곡 ‘소풍 같은 인생’ 등 여러 가지를 연습하는데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곡은 가수 ‘조용필’의 <친구여>이다. 이 곡을 연주하다 보면 가슴에 와 닿는게 많고 느낌이 남다르다. 같이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예전에 산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 하나둘씩 나보다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많이 생각난다.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 먼저 간 경우가 있다. 보기에는 엄청 건강할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먼저 그렇게 가면 “참 아쉽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제 올해로 여든 살이다. 팔순 잔치를 하게 되면 가족들을 위해 색소폰을 연주할 계획을 갖고있다. 곡명은 <동해>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사랑해요> 이렇게 두 곡을 하고 싶다.(동호회장 ‘박준우’)동호회 회장을 맡게 된 사연이 있나?보시다시피 우리 동호회에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다. 나와 띠동갑인 분들도 있고 일흔이 넘는 분들이 많다 보니 “이 형님들을 위해서 할 게 뭐가 있을까…”하는 마음으로 동호회 회장을 맡았다.회원들끼리의 사이가 돈독해 보이는데?우리는 두 달에 한 번씩 야외로 나간다. 야외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연주도 하고 그런다. 체계가 잘 잡혀 있는 편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다. 다만 우리 동호회가 사람이 많다 보니 어느 정도의 트러블은 피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런 것을 잘 중재하는 것이 동호회 회장으로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말에는 여느 동호회와 다르지 않게 장소를 빌려 모두의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색소폰의 즐거움이 언제 느껴지나?처음에는 도레미의 도자도 몰랐었다. 내가 속한 모임에 있는 형님들 네댓 명이 색소폰을 하는데 그게 정말 좋아 보였다. 그래서 색소폰을 배우게 된 거다. 배운 지 1년 만에 악기를 들고 제주도에 여행까지 갔었다. 색소폰 부시는 분하고 3박 4일 동안 신나게 놀았다. 온 제주도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하니까 정말 좋더라. 지금은 그렇게 색소폰 분 지 6년차 정도 된 것 같다.밖에서 연주할 때 무섭거나 떨리진 않았나?밖에서 연주하는 건 무섭지가 않다. 이곳 앞에 서서 연주하는 게 최고로 무섭다. 우리가 서로의 실력을 다 알고 있어서인지 여기에만서면 자꾸 버벅거리는데 일단 나가면 그런 게 하나도 없다. 나가서 무대에 서면 거기서는 신이 나는데 여기에 있는 오 센티미터짜리 무대에서는 덜덜덜 떨게 된다.(김종빈, 김명숙 회원 부부)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김종빈 회원) 탄천에 운동을 나갔다가 탄천에서 누군가 색소폰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색소폰을 할 만한 가까운 곳이 어디에 있나 찾다가 우연히 이곳 올뮤직색소폰동호회에 들르게 되어 그 날 바로 등록을 하고 악기를 구입하여 시작했다.(김명숙 회원) 남편이 하는 것을 따라다니며 지켜보다 같이 하게 되었다. 옆에서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쳐 기본적인 음감이 있어서 즐겁게 색소폰을 배울 수있었던 것 같다.색소폰 연습은 얼마나 어떻게 하나?(김종빈 회원) 나는 노력을 많이 하는 노력형이다. 지금 현재 같은 경우는 녹음기를 사서 연주할 때마다 꼭 녹음한다. 오늘 연주하며 녹음한 곡들을 매일 출퇴근하면서 듣고 또 듣고 하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 또 녹음하는 식으로 계속 연습을 한다.(김명숙 회원) 남편은 정말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인터넷 강의 같은 것을 항상 찾아보고 그것을 바로 해보기 위해 퇴근하자마자 연습실로 간다. 그런 모습에 나 또한 저절로 그렇게 연습하게 되는 것 같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꼭 와서 연습하려고 한다.<2015년 야마하 아마추어 색소폰대회> 금상을 받은 이력이 있던데?(김명숙 회원) 이성만 선생님의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만한 실력이 될까 싶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만류하다가 선생님의 거듭된 권유로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가서 본의 아니게 금상을 타서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상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사실 그것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이 지금은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 악보도 외우고, 또 그것을 변형해서 악보를 직접 그리면서 연습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던 것 같다. 올뮤직색소폰동호회를 위한 이성만 원장의 ‘기록’은 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아닐까 싶다. 단지 색소폰의 소리나 음색이 아닌 그들의 추억과 존재의 향기를 담아내는 것일 테니 말이다. 열정과 사랑으로 뭉친 이성만 원장 그리고 올뮤직색소폰동호회 회원 모두를 응원한다. 글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사진Ι이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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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01
  • 나팔소리 울려 퍼지는 클래식 향연 '코리아색소폰하모니 2018 정기연주회'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느릿하게 다가오는 여름의 더운 공기 사이로 장맛비가 쏟아졌던 6월 30일 토요일, 비에 젖은 옷가지를 털며 꽃다발을 소중히 안은 채 <코리아색소폰하모니>의 연주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의 열기로 밀알학교 대강당이 후끈했다. 실내에 스며든 비 내음과 사람들의 열기가 감수성을 자극하여, 왠지 그 날은 평소보다 더 몰입하여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2004년에 창단되어 아마추어 단원과 전문 연주자로 구성된 색소폰 오케스트라이다. 수석 단원제도를 도입하여,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물고, 퀄리티 있는 음악과 체계적인 구성력 그리고 전문 작·편곡자에게 곡을 의뢰하여 자신들만의 레퍼토리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코리아색소폰하모니>의 연주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운명의 두드림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졌다. 1부 첫 곡은 ‘미완성’이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 슈베르트의 였다. 원곡의 도입부에 나오는 오보에와 현악기로 표현되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을 색소폰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운명 교향곡’으로 잘 알려진 베토벤의 의 1악장 도입부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다. 훌륭한 편곡과 지휘자의 역할이 있었다고는 하나, 운명 교향곡 1악장의 강렬한 주제와 몰아치는 표현이 현악기 못지않게 구현되었다. 서울 색소폰 앙상블인터미션이 끝난 후 2부 첫 곡은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만든 영화 <플래툰>의 주제가인 이었다. 서울대 학교 음대 출신으로 구성된 ‘서울색소폰앙상블’이 현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을 색소폰 음색으로 편곡하여 연주했다. 영화 <플래툰>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해석과 표현을 통해 음악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연주한 는 첫 곡과는 달리 빠른 템포의 율동적인 곡으로, 빠르고 기술적인 부분이 많았음에도 잘 다듬어진 음색으로 노트 하나하나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바리톤 색소폰의 베이스 선율은 너무나도 맛깔스러웠다. 10년 전통의 색소폰 오케스트라<코리아색소폰하모니>의 지휘자 ‘김기선’은 “우리나라에서의 색소폰이란 가요, 재즈와 같은 대중음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교향곡과 같은 순수 클래식 연주를 색소폰만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 ‘Louis Prima’의 과 ’을 연주하겠다”며 2부의 시작을 알렸다. 지휘하면서도 관객과 소통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어가는 그의 매력에 관객들은 즐거워했고, 신뢰했다. 마지막에는 다시 클래식으로 돌아와 를 연주함으로써 10년이 넘은 전통을 가진 클래식 색소폰 오케스트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연주가 끝난 후에 관객들은 감동의 기립박수로 환호를 보냈고 한참동안 계속 되었다. 그에 화답해 준비한 앙코르 곡은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동요였다. 모두가 동심 속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지휘자가 지휘자의 어머니이자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한 ‘황우금’의 손을 잡고 무대 뒤로 사라질 때까지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박수로 인사했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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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 나팔소리 울려 퍼지는 클래식 향연 '코리아색소폰하모니 2018 정기연주회'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느릿하게 다가오는 여름의 더운 공기 사이로 장맛비가 쏟아졌던 6월 30일 토요일, 비에 젖은 옷가지를 털며 꽃다발을 소중히 안은 채 <코리아색소폰하모니>의 연주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의 열기로 밀알학교 대강당이 후끈했다. 실내에 스며든 비 내음과 사람들의 열기가 감수성을 자극하여, 왠지 그 날은 평소보다 더 몰입하여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2004년에 창단되어 아마추어 단원과 전문 연주자로 구성된 색소폰 오케스트라이다. 수석 단원제도를 도입하여,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물고, 퀄리티 있는 음악과 체계적인 구성력 그리고 전문 작·편곡자에게 곡을 의뢰하여 자신들만의 레퍼토리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코리아색소폰하모니>의 연주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운명의 두드림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졌다. 1부 첫 곡은 ‘미완성’이라는 부제로 더 유명한 슈베르트의 였다. 원곡의 도입부에 나오는 오보에와 현악기로 표현되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을 색소폰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운명 교향곡’으로 잘 알려진 베토벤의 의 1악장 도입부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다. 훌륭한 편곡과 지휘자의 역할이 있었다고는 하나, 운명 교향곡 1악장의 강렬한 주제와 몰아치는 표현이 현악기 못지않게 구현되었다. 서울 색소폰 앙상블인터미션이 끝난 후 2부 첫 곡은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만든 영화 <플래툰>의 주제가인 이었다. 서울대 학교 음대 출신으로 구성된 ‘서울색소폰앙상블’이 현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을 색소폰 음색으로 편곡하여 연주했다. 영화 <플래툰>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해석과 표현을 통해 음악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연주한 는 첫 곡과는 달리 빠른 템포의 율동적인 곡으로, 빠르고 기술적인 부분이 많았음에도 잘 다듬어진 음색으로 노트 하나하나를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바리톤 색소폰의 베이스 선율은 너무나도 맛깔스러웠다. 10년 전통의 색소폰 오케스트라<코리아색소폰하모니>의 지휘자 ‘김기선’은 “우리나라에서의 색소폰이란 가요, 재즈와 같은 대중음악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교향곡과 같은 순수 클래식 연주를 색소폰만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 ‘Louis Prima’의 과 ’을 연주하겠다”며 2부의 시작을 알렸다. 지휘하면서도 관객과 소통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어가는 그의 매력에 관객들은 즐거워했고, 신뢰했다. 마지막에는 다시 클래식으로 돌아와 를 연주함으로써 10년이 넘은 전통을 가진 클래식 색소폰 오케스트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였다. 연주가 끝난 후에 관객들은 감동의 기립박수로 환호를 보냈고 한참동안 계속 되었다. 그에 화답해 준비한 앙코르 곡은 관객들과 함께 부르는 동요였다. 모두가 동심 속에 잠기는 시간이었다. 지휘자가 지휘자의 어머니이자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한 ‘황우금’의 손을 잡고 무대 뒤로 사라질 때까지도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박수로 인사했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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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 루카스, 임민택, 정용수, 이레의 4인4색 ‘버든색소폰 콘서트’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2018년 6월 29일 올림픽 공원에서 <버든색소폰 콘서트>가 있었다. ㈜엘프와 색소폰나라에서 후원하고, 버든색소폰의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번 콘서트는 버든색소폰의 화려한 소속 아티스트진 ‘임민택’, ‘루카스’, ‘정용수’, ‘이레’ 그리고 초대가수 ‘한승기’, ‘박상민’의 출연으로 공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4인의 색소포니스트 등장사회자의 등장에 관객들은 기다림과 설렘을 환호와 박수로 표현했다. 첫 무대는 <연인>이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가수 ‘한승기’였다. 통기타를 치며 열창하는 모습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뒤이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4명의 아티스트가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첫 곡은 4명의 색소폰 연주자가 전부 나와 를연주했다. 발산하는 무대본격적으로 4인의 아티스트들의 색깔을 볼 수 있는 솔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정용수’는가수 ‘박상철’의<무조건>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웠는데, 연주중 무대에서 내려와 팬서비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뒤이어 ‘루카스’와 ‘이레’가 듀오로 <인연>을 연주하였고, ‘임민택’은 나훈아의 <무시로>를 자신의 편곡 버전으로 선보였다. 특히 ‘임민택’은 트로트 곡에 재즈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관객들에게 팬서비스하였고, 팬들은 그에 화답하여 그의 이름이 쓰인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가수 박상민의 ‘버든’사랑4인의 화려한 연주와 무대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공연은 후반부로 접어들었고,가수 ‘박상민’이 등장했다. ‘박상민’은 “버든이라는 회사는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회사인만큼 그에 소속된 연주인들도 너무나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그중 한 멤버인 ‘이인성’(루카스) 씨는 20년 가까이 제 밴드의 리더로 도와주고 있고, 실력도 있고 잘생기기까지하다”라고 멘트했다. <하나의 사랑>, <그대 웃어요> 그리고 그의 히트곡인 <무기여 잘 있거라>를 ‘루카스’의 연주와 함께 열창하며 분위기를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버든색소폰의 행보무대를 마무리 지으며 4명의 색소폰 아티스트는 <빗속의 여인>을 연주하며 관객들의 아쉬운 마음을 위로하였다. 이번 공연의 주최 버든색소폰의 ‘이상목’ 대표는 “이 공연을 통해 서울과 경기 지역의 많은 색소폰 동호인들이 공연을 즐기며, 동시에 그들의 색소폰 라이프에 동기를 부여해 색소폰 대중화에 힘쓰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버든색소폰은 매년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각종 색소폰 초청연주회를 하고 있고 더불어 <버든색소폰콘서트>를 중국 전 지역에서 개최하여 중국 현지의 다양한 문화공연과 함께하여 한국 색소폰과 그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이바지 하는 만큼 앞으로의 버든색소폰과 그 소속 아티스트들의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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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 루카스, 임민택, 정용수, 이레의 4인4색 ‘버든색소폰 콘서트’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2018년 6월 29일 올림픽 공원에서 <버든색소폰 콘서트>가 있었다. ㈜엘프와 색소폰나라에서 후원하고, 버든색소폰의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번 콘서트는 버든색소폰의 화려한 소속 아티스트진 ‘임민택’, ‘루카스’, ‘정용수’, ‘이레’ 그리고 초대가수 ‘한승기’, ‘박상민’의 출연으로 공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4인의 색소포니스트 등장사회자의 등장에 관객들은 기다림과 설렘을 환호와 박수로 표현했다. 첫 무대는 <연인>이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가수 ‘한승기’였다. 통기타를 치며 열창하는 모습에 모두가 빠져들었다. 뒤이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4명의 아티스트가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을 부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첫 곡은 4명의 색소폰 연주자가 전부 나와 를연주했다. 발산하는 무대본격적으로 4인의 아티스트들의 색깔을 볼 수 있는 솔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정용수’는가수 ‘박상철’의<무조건>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띄웠는데, 연주중 무대에서 내려와 팬서비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뒤이어 ‘루카스’와 ‘이레’가 듀오로 <인연>을 연주하였고, ‘임민택’은 나훈아의 <무시로>를 자신의 편곡 버전으로 선보였다. 특히 ‘임민택’은 트로트 곡에 재즈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관객들에게 팬서비스하였고, 팬들은 그에 화답하여 그의 이름이 쓰인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가수 박상민의 ‘버든’사랑4인의 화려한 연주와 무대에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공연은 후반부로 접어들었고,가수 ‘박상민’이 등장했다. ‘박상민’은 “버든이라는 회사는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는 회사인만큼 그에 소속된 연주인들도 너무나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며 “그중 한 멤버인 ‘이인성’(루카스) 씨는 20년 가까이 제 밴드의 리더로 도와주고 있고, 실력도 있고 잘생기기까지하다”라고 멘트했다. <하나의 사랑>, <그대 웃어요> 그리고 그의 히트곡인 <무기여 잘 있거라>를 ‘루카스’의 연주와 함께 열창하며 분위기를 열광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버든색소폰의 행보무대를 마무리 지으며 4명의 색소폰 아티스트는 <빗속의 여인>을 연주하며 관객들의 아쉬운 마음을 위로하였다. 이번 공연의 주최 버든색소폰의 ‘이상목’ 대표는 “이 공연을 통해 서울과 경기 지역의 많은 색소폰 동호인들이 공연을 즐기며, 동시에 그들의 색소폰 라이프에 동기를 부여해 색소폰 대중화에 힘쓰고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버든색소폰은 매년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각종 색소폰 초청연주회를 하고 있고 더불어 <버든색소폰콘서트>를 중국 전 지역에서 개최하여 중국 현지의 다양한 문화공연과 함께하여 한국 색소폰과 그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이바지 하는 만큼 앞으로의 버든색소폰과 그 소속 아티스트들의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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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 [JAZZ CLUB]도심 속 재즈 오아시스 '디바야누스 DIVA JANUS'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교대역 가까이에 위치한 <디바야누스>에는 유독 직장인들이 많았다. 주변에 회사가 많은 이유도 있고, 근처에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디바야누스가 적합해 보였다. 각자의 치열했던 하루를 뒤로 한 채 사람들은 와인을 즐기고, 연주자의 선율을 즐겼다. 재즈 선율에 모든 것을 맡긴 그 순간만큼은 그날의 노고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듯했다. DIVA JANUS1978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한류 재즈의 대모 ‘박성연’의 재즈클럽 에서 새로운 이름 로 재즈보컬 ‘말로’와 ‘에반스’가 함께 만들어가는 재즈 보컬 전문클럽이다. 디바야누스라는 이름에는 박성연의 정신을 이어받고, 국내 재즈 보컬의 발전에 일조한다는 다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디바야누스의 큰 장점 중의 하나는 한국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인 ‘말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컬리스트 말로는 객석을 압도하는 화려한 스캣(의미 없는 음절을 이어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특유의 섬세함과 카리스마로 무대를 압도하는 아티스트로 불린다. 또한 재즈를 한국화 하는 선구적 뮤지션으로 한류 재즈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해 그녀가 노래하는 날에 꼭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음악을 위한 공간디바야누스의 내부 느낌은 노란빛이 도는 나무 벽면으로 되어 있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다른 재즈 클럽에 비해서 무대와 객석이 매우 가까운 편에 속했고, 그런 부분은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며 연주자들의 액션이 더 생동감있게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대 중앙에는 마이크가 놓여 있어 “재즈 보컬 전문클럽이 맞구나!”를 실감케 한다. 음료와 간단한 비스킷 정도만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조그마한 테이블은 디바야누스라는 공간이 음악을 위한, 음악에 의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철훈트리오라이브공연은 8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공연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이날은 ‘이철훈트리오’와 드럼연주자 ‘이도헌’의 조인연주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의 날이기도 했다. 객석과 가까운 무대 덕분에 연주자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미묘한 코끝의 떨림까지도 전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은 환상적으로 합이 잘 맞았고, 그들이 깔아 놓은 길 위에서 기타와 피아노는 춤을 췄다. 보컬 ‘강윤미’와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날 밤의 가장 빛나는 디바로 남았을 것이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8-01
  • [JAZZ CLUB]도심 속 재즈 오아시스 '디바야누스 DIVA JANUS'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교대역 가까이에 위치한 <디바야누스>에는 유독 직장인들이 많았다. 주변에 회사가 많은 이유도 있고, 근처에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는 디바야누스가 적합해 보였다. 각자의 치열했던 하루를 뒤로 한 채 사람들은 와인을 즐기고, 연주자의 선율을 즐겼다. 재즈 선율에 모든 것을 맡긴 그 순간만큼은 그날의 노고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듯했다. DIVA JANUS1978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한류 재즈의 대모 ‘박성연’의 재즈클럽 에서 새로운 이름 로 재즈보컬 ‘말로’와 ‘에반스’가 함께 만들어가는 재즈 보컬 전문클럽이다. 디바야누스라는 이름에는 박성연의 정신을 이어받고, 국내 재즈 보컬의 발전에 일조한다는 다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디바야누스의 큰 장점 중의 하나는 한국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인 ‘말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컬리스트 말로는 객석을 압도하는 화려한 스캣(의미 없는 음절을 이어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특유의 섬세함과 카리스마로 무대를 압도하는 아티스트로 불린다. 또한 재즈를 한국화 하는 선구적 뮤지션으로 한류 재즈를 이끈 장본인이기도 해 그녀가 노래하는 날에 꼭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이 좋다. 음악을 위한 공간디바야누스의 내부 느낌은 노란빛이 도는 나무 벽면으로 되어 있어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다른 재즈 클럽에 비해서 무대와 객석이 매우 가까운 편에 속했고, 그런 부분은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며 연주자들의 액션이 더 생동감있게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대 중앙에는 마이크가 놓여 있어 “재즈 보컬 전문클럽이 맞구나!”를 실감케 한다. 음료와 간단한 비스킷 정도만 올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조그마한 테이블은 디바야누스라는 공간이 음악을 위한, 음악에 의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철훈트리오라이브공연은 8시 반부터 시작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공연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이날은 ‘이철훈트리오’와 드럼연주자 ‘이도헌’의 조인연주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의 날이기도 했다. 객석과 가까운 무대 덕분에 연주자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과 미묘한 코끝의 떨림까지도 전부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은 환상적으로 합이 잘 맞았고, 그들이 깔아 놓은 길 위에서 기타와 피아노는 춤을 췄다. 보컬 ‘강윤미’와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그날 밤의 가장 빛나는 디바로 남았을 것이다. 글·사진Ι안지인 기자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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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 하늘이 보내준 나팔수 '색소포니스트 최종걸'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는 색소폰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세가 있는 팀이다. 1992년에 창단되어 벌써 26년째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인 만큼 사연도 많다. 자칫 사라질 수도 있었던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를 여기까지 끌고 온 데에는 지휘자 ‘최종걸’이라는 사람의 역할이 컸다. 이미 색소폰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연주자로 알려져 있고, 14년째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의 연주소식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볼 때 지휘자가 되기까지의 색소포니스트 최종걸의 행보가 자연스레 궁금해졌다.​12살 소년의 빛나는 재능최종걸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아홉 살 때가 음악과의 인연의 첫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열두 살 때 색소폰을 처음 만났다. 지금이야 조기교육이라는 것이 흔한 말이지만 그때로선 흔치 않은 일이다. 그가 어린 시절에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워낙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었고, 그를 음악 신동으로 키우려는 친척의 권유도 있었다. “미8군에 친척이 있었어요. 그분이 내게 기타를 가르쳐서 꼬마 가수로 키워 미8군 쇼 악단에 세우려고 했었죠. 그러나 좀 배우다가 말았었죠.” 어쩌면 그때부터 그에게 음악이란 자신의 삶에서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자연스러움으로 각인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중학교에 갓 들어간 열두 살 소년의 인생에는 또 다른 음악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의 날 교내 노래자랑에서 가수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불러 1학년 전교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 그의 음악적 자질을 알아본 밴드부 선배들은 그를 단숨에 영입한다. 젊은 예술가의 시련 그리고 희망밴드부에서 처음 그가 잡은 악기는 클라리넷이었다. 그러다 곧 색소폰도 같이 불게 되었다. 이렇듯 음악은 그에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생의 일부분이 되어갔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때가 왔고, 그는 음대 진학을 결심하지만 형편상 음대에 갈 수 없는 시련에 맞닥뜨리게 된다. 주변에서 종종 누군가의 합격 소식이 들려오곤 했지만, 그는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룹사운드와 악단에 들어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주활동을 했고, 돈을 벌었다.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고생도 했고, 나름대로 즐거운 일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의 최종걸을 있게 한 중요한 발자취가 되는 과정이었다. 악단 생활을 하며 공부했던 무수한 장르의 음악들과 무대 경험은 지금으로선 돈 주고도 살 수도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재즈계의 대부 ‘이판근’을 만나다연주생활을 하고 있던 와중에 그는 그의 스승인 재즈계의 대부 ‘이판근’을 만나게 된다. 지금처럼 실용음악학원같은 것이 없었고 재즈를 배울만한 곳도 마땅히 없었던 당시에는 재즈를 배우기 위해 모두가 이판근 선생님에게 갔었다. 같은 팀의 기타 치는 친구가 마침 이판근 선생님에게서 재즈를 배우고 있던 터라 그 친구 따라 처음으로 재즈라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기자촌에 자리한 이판근 선생님의 집에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웠다. 제대로 배우려니 적잖이 어려웠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그날 배운 것은 그날 적용해 연주하며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단국대의 전설로 남다날로 커져만 가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 큰 배움을 필요로 했다. 1996년 그는 음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는다. 노량진 입시 학원에 다니며 수능을 준비했고, 교수에게 정식 레슨을 받으며 실기 시험을 준비했다. 가정을 꾸려가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의 낙방 끝에 그 이듬해 그는 젊은 경쟁자들의 틈에서 단국대학교 기악과에 정시로 당당히 합격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 셋이었다. 음대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을 해낸 그는 장학금을 받으며 4년 동안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단국대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최종걸이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건 2005년도였다.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단체였고, 기존에 그곳에서 활동도 했었다. 다만 중간에 중단이 되었었는데 최종걸을 통해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그 이전에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주로 전공자들 위주였다면, 지금은 아마추어들과 프로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팀이라는 것이다. 10년간 무보수로 지도하며 심혈을 기울인 끝에 지금의 단체를 만들었다. 2013년에는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 지휘 서울시장상>을 수상하고, 2015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창단20주년>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명문 색소폰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한다.그는 지금의 단체로 오기까지 14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단원들과 주위의 모든분들 덕분이라고 말한다.이루어진 꿈어려서 어디선가 보았던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그의 잔상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마음으로 간직했던 어린 소년의 꿈은 오늘날 운명처럼 이루어졌다. 그는 모두 기적 같다고 말했다. 음대에 가게 된 것도, 자신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매사에 임한다. 자신이 받은 것들을 감사의 마음으로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말을 그는 인터뷰 내내 여러번 반복했다. 14년간 오케스트라 합주단 연습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던 그의 행보가 더해져 무게가 실리는 말이었다. 하늘에 바친다기억에 남는 연주를 묻는 질문에 그는 <최종걸 50주년 콘서트>라 답했다. 2016년에 자신의 연주 인생 50년을 돌아보며 KBS홀에서 연주한 콘서트였고 같은 해에 음반도 발매하였다. 현재는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가 명 색소폰 연주자라는 것은 그의 연주를 보면 알 수 있다. 간혹 그가 연주할 때 하늘을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하늘에 바친다ʼ라는 의미가 있다. 찬송가를 연주할 때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의미로, 또 다른 의미는 그의 대표 연주곡이기도 한 <열애>라는 연주를 할 때 그렇다. <열애>는 최종걸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부산 MBC 라디오방송 DJ였던 백영모가 암으로 고인이 되기 전에 작사한 곡이다. 그를 회상하며 그가 하늘에서 연주를 듣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주 전에 그런 제스처를 한다고 말했다. 영혼이 담긴 연주최종걸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연주하다 쓰러질 것 같아요ʼ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연주를 보면 모든 걸 다 쥐어짜서 연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쓰러질까 걱정하는 우려가 나올만하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라는 말에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연주자들이 하는 음악에는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음악의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 더 몰입하게 되고 열정적으로 연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많은 청중이 좋아하고 감동하고,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그래서 연주할 때에는 언제나 혼을 담아 최선을 다해서 관중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더 잘해야 하는데…ʼ라는 생각도 들고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봉사하는 마음으로현재 최종걸은 목동에 소재한 <코리아색소폰학원>의 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꿈을 갖고 미래에 훌륭한 연주자가 되도록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색소폰을 통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사회에 봉사하는 연주인으로 양성하고 있다. 더불어 외지나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뮤직필드>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더 많은 사람이 쉽고 간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섭외를 허락했고, 또 그런 부분에서 강의하는 것이 보람차다고 말한다. 좋은 연주자의 길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더 노력하여 더 좋은 연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알기에 항상 노력한다는 것이다. 젊은 신인 연주자에게 들을 법한 얘기를 이미 베테랑 연주자인 그의 입에서 들으니 어딘지 모르게 감동을 주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해요. 내 욕심보다는 남을 위해 돕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게 되겠죠.” 최종걸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감사하다’와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수줍게 이어나가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그의 정체성이 베여있었다. 사실 몇 시간 동안 진행했던 그와의 인터뷰보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그의 음악을 듣고 ‘최종걸은 이런 사람이었구나ʼ하고 이해된 부분도 많았다. 그는 늘 꿈을 꾸고 살았고, 지금도 그 꿈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길을 걸으며 꿈꿀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가 어린 시절에 어디선가 봤던 미국의 카네기홀에서 연주할 날을 기다리며,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글 Ι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8-01
  • 하늘이 보내준 나팔수 '색소포니스트 최종걸'
    (월간색소폰)안지인 기자=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는 색소폰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세가 있는 팀이다. 1992년에 창단되어 벌써 26년째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인 만큼 사연도 많다. 자칫 사라질 수도 있었던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를 여기까지 끌고 온 데에는 지휘자 ‘최종걸’이라는 사람의 역할이 컸다. 이미 색소폰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나 있는 연주자로 알려져 있고, 14년째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의 연주소식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볼 때 지휘자가 되기까지의 색소포니스트 최종걸의 행보가 자연스레 궁금해졌다.​12살 소년의 빛나는 재능최종걸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던 아홉 살 때가 음악과의 인연의 첫 시작점이었다. 그리고 열두 살 때 색소폰을 처음 만났다. 지금이야 조기교육이라는 것이 흔한 말이지만 그때로선 흔치 않은 일이다. 그가 어린 시절에 음악을 접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다. 워낙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었고, 그를 음악 신동으로 키우려는 친척의 권유도 있었다. “미8군에 친척이 있었어요. 그분이 내게 기타를 가르쳐서 꼬마 가수로 키워 미8군 쇼 악단에 세우려고 했었죠. 그러나 좀 배우다가 말았었죠.” 어쩌면 그때부터 그에게 음악이란 자신의 삶에서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자연스러움으로 각인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중학교에 갓 들어간 열두 살 소년의 인생에는 또 다른 음악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의 날 교내 노래자랑에서 가수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불러 1학년 전교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 그의 음악적 자질을 알아본 밴드부 선배들은 그를 단숨에 영입한다. 젊은 예술가의 시련 그리고 희망밴드부에서 처음 그가 잡은 악기는 클라리넷이었다. 그러다 곧 색소폰도 같이 불게 되었다. 이렇듯 음악은 그에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생의 일부분이 되어갔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때가 왔고, 그는 음대 진학을 결심하지만 형편상 음대에 갈 수 없는 시련에 맞닥뜨리게 된다. 주변에서 종종 누군가의 합격 소식이 들려오곤 했지만, 그는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룹사운드와 악단에 들어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주활동을 했고, 돈을 벌었다. 음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고생도 했고, 나름대로 즐거운 일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의 최종걸을 있게 한 중요한 발자취가 되는 과정이었다. 악단 생활을 하며 공부했던 무수한 장르의 음악들과 무대 경험은 지금으로선 돈 주고도 살 수도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그는 말한다.재즈계의 대부 ‘이판근’을 만나다연주생활을 하고 있던 와중에 그는 그의 스승인 재즈계의 대부 ‘이판근’을 만나게 된다. 지금처럼 실용음악학원같은 것이 없었고 재즈를 배울만한 곳도 마땅히 없었던 당시에는 재즈를 배우기 위해 모두가 이판근 선생님에게 갔었다. 같은 팀의 기타 치는 친구가 마침 이판근 선생님에게서 재즈를 배우고 있던 터라 그 친구 따라 처음으로 재즈라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기자촌에 자리한 이판근 선생님의 집에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웠다. 제대로 배우려니 적잖이 어려웠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그날 배운 것은 그날 적용해 연주하며 하나씩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다. 단국대의 전설로 남다날로 커져만 가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더 큰 배움을 필요로 했다. 1996년 그는 음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는다. 노량진 입시 학원에 다니며 수능을 준비했고, 교수에게 정식 레슨을 받으며 실기 시험을 준비했다. 가정을 꾸려가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의 낙방 끝에 그 이듬해 그는 젊은 경쟁자들의 틈에서 단국대학교 기악과에 정시로 당당히 합격하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 셋이었다. 음대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을 해낸 그는 장학금을 받으며 4년 동안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단국대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최종걸이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건 2005년도였다.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단체였고, 기존에 그곳에서 활동도 했었다. 다만 중간에 중단이 되었었는데 최종걸을 통해서 부활하게 된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그 이전에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주로 전공자들 위주였다면, 지금은 아마추어들과 프로 연주자들이 함께하는 팀이라는 것이다. 10년간 무보수로 지도하며 심혈을 기울인 끝에 지금의 단체를 만들었다. 2013년에는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 지휘 서울시장상>을 수상하고, 2015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창단20주년>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며 명문 색소폰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한다.그는 지금의 단체로 오기까지 14년 동안 함께하고 있는 단원들과 주위의 모든분들 덕분이라고 말한다.이루어진 꿈어려서 어디선가 보았던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그의 잔상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마음으로 간직했던 어린 소년의 꿈은 오늘날 운명처럼 이루어졌다. 그는 모두 기적 같다고 말했다. 음대에 가게 된 것도, 자신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맡은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매사에 임한다. 자신이 받은 것들을 감사의 마음으로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말을 그는 인터뷰 내내 여러번 반복했다. 14년간 오케스트라 합주단 연습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던 그의 행보가 더해져 무게가 실리는 말이었다. 하늘에 바친다기억에 남는 연주를 묻는 질문에 그는 <최종걸 50주년 콘서트>라 답했다. 2016년에 자신의 연주 인생 50년을 돌아보며 KBS홀에서 연주한 콘서트였고 같은 해에 음반도 발매하였다. 현재는 <코리아윈드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가 명 색소폰 연주자라는 것은 그의 연주를 보면 알 수 있다. 간혹 그가 연주할 때 하늘을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하늘에 바친다ʼ라는 의미가 있다. 찬송가를 연주할 때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의미로, 또 다른 의미는 그의 대표 연주곡이기도 한 <열애>라는 연주를 할 때 그렇다. <열애>는 최종걸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부산 MBC 라디오방송 DJ였던 백영모가 암으로 고인이 되기 전에 작사한 곡이다. 그를 회상하며 그가 하늘에서 연주를 듣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주 전에 그런 제스처를 한다고 말했다. 영혼이 담긴 연주최종걸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연주하다 쓰러질 것 같아요ʼ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연주를 보면 모든 걸 다 쥐어짜서 연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쓰러질까 걱정하는 우려가 나올만하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라는 말에 그는 웃으면서 답했다. “연주자들이 하는 음악에는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음악의 진정성을 전하기 위해 더 몰입하게 되고 열정적으로 연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많은 청중이 좋아하고 감동하고,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그래서 연주할 때에는 언제나 혼을 담아 최선을 다해서 관중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니 ‘더 잘해야 하는데…ʼ라는 생각도 들고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봉사하는 마음으로현재 최종걸은 목동에 소재한 <코리아색소폰학원>의 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꿈을 갖고 미래에 훌륭한 연주자가 되도록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색소폰을 통해 삶의 활력소가 되고 사회에 봉사하는 연주인으로 양성하고 있다. 더불어 외지나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뮤직필드>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더 많은 사람이 쉽고 간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섭외를 허락했고, 또 그런 부분에서 강의하는 것이 보람차다고 말한다. 좋은 연주자의 길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더 노력하여 더 좋은 연주자가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인 것을 알기에 항상 노력한다는 것이다. 젊은 신인 연주자에게 들을 법한 얘기를 이미 베테랑 연주자인 그의 입에서 들으니 어딘지 모르게 감동을 주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해요. 내 욕심보다는 남을 위해 돕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게 되겠죠.” 최종걸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감사하다’와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이었다. 수줍게 이어나가는 단어 하나하나에는 그의 정체성이 베여있었다. 사실 몇 시간 동안 진행했던 그와의 인터뷰보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그의 음악을 듣고 ‘최종걸은 이런 사람이었구나ʼ하고 이해된 부분도 많았다. 그는 늘 꿈을 꾸고 살았고, 지금도 그 꿈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길을 걸으며 꿈꿀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가 어린 시절에 어디선가 봤던 미국의 카네기홀에서 연주할 날을 기다리며,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글 Ι 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8-01
  • 클래식 색소폰 오케스트라 명가(名家) '코리아색소폰하모니'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의 적막을 깨우며 색소폰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연습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방음시설이 갖추어진 녹음실과 연습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스튜디오였다. 아직 다 시들지도 않은 꽃을 버려놓았다며 한 송이씩 꽃병에 꽃을 꽂는 정미정 단원의 마음처럼 내부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색소폰을 통해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그들과의 인터뷰가 더욱 기대되었다.​동호회? NO! 아카데미? YES!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2004년에 창단한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에서부터 시작했다. 2013년에 단명을 코리아색소폰하모니로 변경하면서 한국종합예술학교 석좌교수인 ‘박경삼’ 초대단장과 새 출발을 했다. 이곳만의 특이점이라면 단연 수석 단원제를 도입하였다는 것인데, 수석 단원들로부터 파트별로 지도를 받고 난 다음에 전체 합주 연습을 하여 전체적인 밸런스를 밀도 있게 끌어 올렸다. 또한 그밖에 스케일 연습, 화성학, 스윙과 블루스 리듬 같은 재즈 이론도 같이 공부를 한다. 이런 부분으로 미루어 볼 때 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동호회라기보다는 색소폰 스쿨 혹은 색소폰 아카데미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KSH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어떤 음악 단체든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깔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유니크한 구성의 합주단 같은 경우는 레퍼토리 확보에 더 많은 공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코리아색소폰하모니같은 경우는 이런 부분이 아주 잘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편곡료를 따로 지불하여 코리아색소폰하모니만의 색소폰앙상블 연주곡집을 발간한 것.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주는 이들에게서만 들을 수 있다는 독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프로와 아마추어의 조화코리아색소폰하모니는 프로와 아마추어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 프로와 아마추어의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양쪽 모두의 발전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휘자와 단원들의 생각이다. 아마추어의 저변이 넓어져야 프로들이 설 자리도 많아지고, 서로 적극적으로 다가가 도움을 주고 받아야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프로색소포니스트로 구성된 서울색소폰앙상블과 교류하고 있다. 이들이 수석 단원으로 합주연습 때 각 파트를 지도하고 필요시에 개인레슨을 진행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연령대어떤 단체에서 다양한 연령대가 이토록 조화롭게 갈 수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이곳의 연령대는 꽤 차이가 난다. 20대 초반부터 80세가 넘은 단원까지 세대 스펙트럼이 넓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음악이나 연습하는 과정을 볼 때 세대차이의 갭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음악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팀의 모범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성연욱 단장)많은 악기중에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유독 매력을 느꼈던 이유가 있는가. 색소폰은 연주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연주환경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난다. 그래서 감정표현이 자유롭다. 관악기는 연주자의 호흡기관과 연결되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연주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몸통도 악기가 된다. 그래서 색소폰을 연주할 때는 악기의 소리가 곧 나의 소리라는 생각이 들고, 나를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매력이 있다.일본의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의 협연을 한 적이 있다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식해서 용감했었다는 생각만 든다. 2003년도에 오사카 교민 행사에 초청되어서 미베몰색소폰앙상블과 협연을 했는데, 미베몰앙상블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앙상블인지도 모르고 갔었다.어떤 계기로 진행되었는가. 2002년도부터 여기저기서 색소폰을 배우던 사람들이 모여서 아마추어 색소폰 앙상블을 창단했는데 아마 국내 최초일 것이다. 실력보다는 의욕이 대단했었다. 정기연주회뿐만 아니라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관악축제에도 참여했고, 부산 MBC에도 초청되었다. 실력이 받쳐줘서 초청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색소폰 앙상블이었고 또 단원 중에는 사회 각 처에 발이 넓은 분이 많았다.일본 공연은 어땠었나.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미베몰앙상블의 소리는 아름답고 깨끗했으며, 속삭이듯 잔잔하다가도 격정적인 울림을 주기도 하는 환상적인 화음이었는데 반해, 우리는 그저 크게만 불면 되는 줄 알고 거친 소리를 마구 불어댄 것이다. 우리 가요를 연주했기 때문에 교민들에게 박수는 더 받았지만,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 충격과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앙상블이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2004년에 단원 중의 서울대 ‘성굉모’ 교수님이 서울음대에서 색소폰을 전공하신 분들을 지휘자로 모셔왔고, 클래식을 연주하는 코리아색소폰필하모니(KSP)를 창단했다. 그때부터 비로소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워가면서 제대로 된 앙상블을 하게 되었다. 단명은 2013년도에 코리아색소폰하모니(KSH)로 변경하였다.자신만의 음악 철학이 있나. 처음에는 음악이든 악기연주든 혼자 즐기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도 혼자 했고 스스로 즐기는 수준까지만 하면 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기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나쁜 습관이 들었고 그게 아직도 고쳐지질 않아서 애를 먹고 있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혼자 연주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남에게 들려주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기쁨과 여럿이 같이 연주하면서 화음을 통해서 하나가 되는 기쁨과 행복, 이런 것들이 훨씬 보람이 있다.색소폰과 관련된 자신만의 에피소드가 있나.10여 년 전에 ‘정인채’ 회원과 둘이서 토요일 저녁마다 양재천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가로등이 켜진 양재천의 가을밤, 밤안개 하얗게 낀 봄날 저녁, 물소리 풀벌레 소리 합창하던 여름밤, 심지어 흰 눈 내린 겨울밤에도 언 손을 녹여가며 토요일마다 다리 밑에서 연주했다. 지금은 너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문화가 없었다. 그때 양재천에서의 연주는 우리나라 길거리 연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산책하던 사람들이 가로등 밑에 둘러앉아 조용히 듣고 가기도 하고, 우리 연주를 듣고 색소폰을 사서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근처에 살던 전문연주자들도 가끔 나와서 듣곤 했는데, 연주가 끝나면 다가와서 참 잘 들었다며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본인들은 직업의식을 갖고 연주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의 연속이지 행복하게 연주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점이 바로 아마추어 연주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자 행복이 아닌가 싶다. (정미정 단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37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교직에 있다가 작년에 명예퇴직했다. 지금은 외손자 보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하고 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색소폰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색소폰은 12, 13년 전에 둔촌고등학교에 있었을 때 체육 선생님으로 계셨던 분을 만나 시작하게 되었다. 그분이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고 전부터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굉장히 잘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교를 목적으로 색소폰을 배워두면 앞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노후에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야마하 색소폰을 구입하여 배우기 시작했다.색소폰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어느 날 교회에서 캄보디아로 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캄보디아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가서 색소폰으로 복음성가를 연주했었고, 마지막 돌아오기 전날은 프놈펜 광장에서 현지 교인들의 워십과 함께 복음성가를 연주했었다. 그게 지금까지도 스스로 의미가 컸고 은혜로웠다. 색소폰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있고, 그 은혜를 음악을 통해 나눈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다.KSH 단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KSH 여러분과 함께해서 감사드린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번은 아프리카 여행 때 어느 공항에서 이런 글귀를 봤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천천히 멀리 가고 싶으면 친구와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인데, 그 말이 매우 와 닿았었다. KSH도 함께라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있을 것 같다. 이종택 단원 교향곡을 주로 많이 연습할 텐데 연습하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았나. 상대방 소리를 듣고 음의 폭이 큰지 작은지를 잘 봐가면서 조절을 해야 하는데 연습 부족이나 어떤 한계로 인해서 제대로 조화를 못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개인 연습을 더 하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맞춰지는데, 그래도 차이는 있다.앞으로 KSH가 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그 단체가 오래도록 지속되기 위해서는 대개 그 구성원들 모두가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연습, 혹은 규정을 잘 따르는 것 등이다. 그래야 그 조직이 오래 유지되고 또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즐겁지 않으면 나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기본인 그런 자세를 가져야 오래갈 수 있고, 스스로 더 잘하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하모니가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어 갈 것으로 생각한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현재 알토색소폰 파트를 맡고 있는데, 소프라노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우리 KSH 단원들 각자 모두가 건강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잘 이루어 갔으면 좋겠고, 나 또한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정인채 단원) 색소폰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해달라. 38세 때이다. 일도 많이 하고 여유도 좀 생기고 그러다 보니 이른 나이에 일찍 안정을 찾았었다. 그러다 보면 술을 마신다든지 담배를 핀다든지 조금 엇나가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그런 것보다는 건전하고 좋은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었다. 한번은 아내에게 농담으로 “내가 나이도 40도 다 돼가고 색소폰이나 좀 배워볼까?”하며 색소폰 이야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는 곧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내 말을 기억했던 아내가 감사하게도 미국여행 길에 색소폰을 사 온 거다. 그래서 색소폰 배울 만한 곳을 찾다 마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색소폰 강좌가 있어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단장님을 처음 만났다.색소폰을 하면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단장님하고 둘이서 매주 토요일마다 학여울역 다리 밑에서 8시부터 10시, 어떤 때에는 1시까지도 연습을 했었다. 거기가 12차선이라 다리가 굉장히 넓고,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보니 밑에서 색소폰을 불면 소리가 올라가 공명이 생기면서 맑은소리가 나온다. 아는 교수님이 우리 얘기를 듣고 오셔서 소리를 들어보시더니 그 다리에 대해 칼럼을 쓸 정도로 소리가 좋았다. 아무튼 그렇게 연습을 하는 와중에 갑자기 VJ특공대가 찾아와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지역별로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관한 내용으로 나왔는데, 우리는 서울 편에서 다리 밑에서 색소폰을 불며 여름을 나는 것으로 나갔다. (차은경 단원) KSH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점이 좋은가. 일단 배워간다는 즐거움이 크다. 사실 클래식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면 잘 안 듣게 되고 그랬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클래식을 연주하면서 클래식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또 더 잘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이전에는 전체적인 멜로디만 들었다면, 여기서 앙상블을 하면서 다른 파트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한 달에 한 번씩 꼭 직접 음악당에 가서 교향곡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참 좋은 취미를 또 하나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KSH에서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면서 음악적으로 어떤 부분이 증진되었는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화음을 맞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 소리만 더 크게 들리고 혹은 내 소리만 들렸었다. 그러나 타인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음악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있고, 남에 대한 배려심도 절로 생기게 된 것 같다. 글Ι안지인 기자 jii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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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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