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아버지도 꿈이 있는 어린 청년이었다. 당연한 걸 텐데 궁금해 여쭤본 적도, 제대로 자리 잡고 앉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때 그대로 상상한 것 중 얼마나 덜어내며 살아오셨을 지 부끄럽지만 나는 잘 모른다. 선택의 고통을 짊어지고, 덜어내고 덜어낸 끝에 어느 날 갖고 싶은 것 하나가 생기셨단다. 두 손으로 감싼 색소폰 하나에 설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광화문 연가’의 색소폰 멜로디가 흘러 나오는 한강색소폰 동호회를 찾았다. 방음 부스 안에서 광화문 연가를 홀로 연주하는 분의 색소폰 소리가 날씨와 잘 어우러진다. 건너편 오케스트라 연습 공간에서는 열 명 남짓한 단원들이 모여서 한창 연습 중이었다. 파트별로 자리 잡고 앉아 진지하게 연주에 임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들이 연습하는 곡은 스페인어로 ‘그대 있는 곳까지’라는 뜻의 ‘에레스 투(Eres tu)’였다.

 

* 한강색소폰의 인터뷰는 주로 김상영 부회장과 진행하였다. 오케스트라 연습으로 모인 여러 회원들과 한마디 씩 주고받은 이야기들도 함께 모아보았다.

 

 

4인의 어벤져스가 진두지휘 하는 한강색소폰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오케스트라가 정기적으로 모여 연습하는 시간이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오케스트라 연습을 한다. 1부에서는 윤인기 지휘자가, 2부에서는 김청 단장이 지휘를 맡았다. 1부 연습이 진행 중인 터라 김상영 부회장과 김청 단장이 먼저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매년 회장 선출을 하지만 부회장은 바뀌지 않는다는 독특한 관례가 있는 한강색소폰. 올해 회장으로 선출된 박종하 회장과 김상영 부회장은 동호회를 관리하며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아하며 회원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주인이 따로 없는 스스로 발전하는 색소폰 동호회

장마가 시작됨을 알리듯 쏟아지는 폭우에도 오케스트라와 개인 색소폰 연습을 위해 찾아온 회원들. 김상영 부회장은 “나이, 종교를 초월하고 색소폰 하나로 모였어요. 우리 나이엔 동창회 모임이 열리면 반도 오지 않을 때가 있지요. 그런데 여긴 자발적으로 옵니다. 스스로 좋아서 오는 곳이죠. 그래서 우리들끼리는 ‘동네 사랑방’이라고 부릅니다”라며 동호회에 담긴 애정을 끊임없이 표현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희망이 된 색소폰연주

아버지가 마음을 쉬는 곳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김상영 부회장은 평균 연령대가 높은 한강색소폰에 대해 이야기 하는 도중 베이비부머(baby boomer)들에게 색소폰이 갖는 의미를 들려주었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들에게 ‘무료한 시간이 문제’입니다. 등산하고 골프만 칠 게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시작하다보니 월등히 성장하며 성취감도 느낄 수 있는 색소폰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내 어머니, 아버지의 말 못할 속내인 것만 같다. 정성호 씨의 ‘중년의 사회학’이라는 책에서는 베이비부머들을 “부모님에게 무조건 순종했던 마지막 세대이자 아이들을 황제처럼 모시는 첫 세대,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해 처와 부모 사이에서 방황하는 세대, 가족을 위해 밤새 일했건만 자식들로부터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고 따돌림 당하는 비운의 세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색소폰과 같은 악기 연주가 삶의 만족도와 심리적인 고독감을 해소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는 것을 한강색소폰에 방문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양재천 정기 공연과 재능기부 공연 참여

한강색소폰 동호회는 착하다. 참으로 마음 좋은 일들을 위해 동호회 사람들은 재능을 아끼지 않는다. 특출난 연주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갈고 닦은 솜씨를 기꺼이 발휘하는 데 스스럼이 없다. 한 달에 한 번씩 양재천에서 무료 공연을 펼친다. 병원에서도 환우들을 위한 공연을 많이 했다. 특히 요양원 공연 시 적적하셨을 노인분들을 위한 공연 등을 통해 ‘우리가 큰 힘이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꿈의 무대 ‘세종문화회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다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자들에게는 꿈의 무대 ‘세종문화회관’. 한강색소폰은 이곳에서 꿈을 이루었다. ‘공간’이 담는 특별함은 이들에게 색소폰 오케스트라 연주에 몰두하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수십 개 단체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오디션을 거쳐야만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불과 몇 달만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 배나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란 걸 알게 됐죠. 회원들이 쏟은 노력과 시간에 보상은 공연 당일 가족들을 초대하고 연주하였을 때 받았습니다.” 

이날 한강색소폰 동호회는 ‘헨델의 사라방드(Saraband)’와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을 연주했다. ‘동백아가씨’도 세련되게 편곡하여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한껏 보여주었다. 이 공연 이후 강남구청을 통해 재능 기부 봉사를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쉽지 않은 오케스트라, 가능한 이유는

색소폰 동호회는 많다. 그러나 “동호회가 수익의 목적을 갖지 않을 때 그곳은 더욱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김상영 부회장은 말한다. 또한 음악적인 기초를 충분히 다지고 연습에 매진하는 이들이 많다. 윤인기 지휘자는 “최소 3년 정도 연습을 거친 이들이 오케스트라 입단이 가능합니다. 빨리 하시는 분들은 2년 안에도 가능하더군요”라고 한다. 오케스트라 연습의 경우 초반 워밍업의 개념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나가 후반에는 틀린 부분을 함께 고쳐나가고 예술적인 부분으로 완성한다.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더라도 ‘즐기는 것도 목적’이라는 점은 회원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부분이다. 

 

한강색소폰 동호회는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연습을 거듭할수록 나아지는 실력, 매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목표로 삼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다는 한강색소폰 동호회. 김청 단장은 “반주기로 혼자 연습할 때는 연습으로 끝납니다. 오케스트라는 어떤 곡이든 화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연주 후의 황홀해지는 느낌을 공유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로 보람도 느끼니 이런 색깔로 운영하는 동호회가 흔치는 않지요”라고 말한다.

 

어벤져스를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차근차근 색소폰을 통한 자신의 바람들을 일구어나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베이비부머의 그늘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나고 싶은 색소포니스트 강연을 신청하여 함께 워크숍을 꾸리기도 한다는 한강색소폰 동호회. 즐겁고 기쁜 일에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이들이야말로 국내 색소폰 동호회 문화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선구자이며, 주인공들이다.

 

글. 남은별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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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의 선율이 닿는 곳까지 연주를…, 강남 도곡동 한강색소폰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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