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월간색소폰)남은별 기자= 

‘시그니처(Signature)’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색소포니스트 이은용.

삶 속에는 무수히도 많은 선택의 기로가 있다.
심지어 자판기 버튼 앞에서도 선택의 순간이 있다.
넘쳐나는 생각과 고민에 힘겨워하는 현대인에게 ‘시그니처’는
참으로 현명하고 가치 있는 단어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만의 고유한 본질을 추구하며 고고히 자신을 빛내는 것이 더욱 귀히 여겨지는 오늘날. 색소폰 음색을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넘쳐서 허황된 음들이 부담이라면 ‘시그니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이은용 씨의 색소폰 멜로디에 위로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권한다. 

‘Beyond the Road’ 그녀의 앨범은 삶의 알맹이를 보여준다. 의미를 담았을 때 더욱 세심한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그녀를 만나고 덕분에 참으로 감사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앨범 커버의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곡 작업을 하다 보니 앨범 타이틀 콘셉트가 ‘길’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디자이너 분을 만나서 다행입니다.(웃음) 앨범을 펼치면 뒷부분이 하나의 사진으로 이어져있어 더욱 멋지니 한 번 펼쳐서 봐주세요. 앨범 사이즈가 독특해 다른 앨범들 가운데 편안하게 빼서 들어볼 수도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앨범을 듣고 어떤 이야기들을 해주셨나요.
제 딸을 생각하면서 만든 곡인 ‘Dana, My Love’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주세요. 다른 곡들도 작곡자 분께서 도와주셔서 편곡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인 분들은 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인상 깊었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색소폰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여느 아이들과 비슷하게 피아노를 접하게 되면서 재미를 느끼다보니 집중해서 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선생님이셨던 어머니께서는 동네에서 아이들에게 하모니카도 가르쳐 주시는 등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제가 음악에만 너무 집중한다고 느끼셨는지 일부러 멈추게까지 하신 적도 있었어요. 어느 날은 수영장에 갔는데, 튜브를 잘 부는 제 모습에 ‘호흡도 좋고 음악을 좋아하니 일찌감치 악기를 하나 시켜볼까’하는 마음이 드셨답니다. 그대로 낙원상가에 갔고, 그땐 이름도 모르고 선택한 그저 예쁘다고 생각한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하겠다고 졸랐죠.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여건들이 많았습니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선생님을 찾기가 힘들었던 거죠. 기다림 끝에 한예종 1학년에 입학한 분을 만나 레슨을 받고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색소폰으로 대학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알토 색소폰으로 연주를 줄곧 하셨는데 앨범은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를 하셨습니다. 주로 어떤 색소폰으로 연주를 즐겨 하시나요.
알토 색소폰은 대학 진학을 위해 거쳐야 하는 준비 과정에서 필수였습니다. 그렇지만 알토는 알토대로, 소프라노는 소프라노대로 그만의 매력이 있어요. 어느 하나만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프라노 색소폰은 대개 케니 지(Kenny G)의 영향으로 직관 색소폰을 많이 쓰는데, 곡관 색소폰 또한 그 작고 매력적인 모양새 안에서 풍부한 울림이 인상적으로 다가와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앨범을 내신 만큼 대중과 함께 하는 무대를 기대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무대에서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티스퀘어’라는 밴드를 통해 스탠다드 재즈곡을 연주하며 관중들의 반응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떨리지만 재미있고 흥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대학교 때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것이 즐거웠고, 콘서트나 기업 강의 등을 할 때에도 색소폰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재즈를 소개하는 일에 생각보다 부담을 덜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대학시절부터 함께 한 ‘밴드’의 경험이 가장 큰 계기가 됐던 거죠. 무대에 서게 되니 주법이나 사운드가 상황에 맞게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냥 경험만 하기에는 욕심이 채워지지 않았고,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인생의 또 한 번 큰 결정인 미국 유학을 결심했지요. 타지 생활이라는 게 음식 같은 부수적인 것들로 힘들지만, 음악 하나만으로 너무나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일을 하던 중에 유학을 계획한 터라 더욱 의미가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린 이미지이신데 도전 의식과 함께 강단 있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그러한 시간들로 인해 지금의 앨범이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곡마다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 또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가족에 대한 생각들이요. 지금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보니 앨범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 힘든 부분이 얼마나 많던 지요. 그래서 곡 작업을 할 때는 이것만 생각하자고 또 한 번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는 했습니다.

앨범을 살펴보면 윤호기 작곡가의 이야기를 빼놓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이신가요.
작곡가이며 회사도 운영하고 계시죠. 음악적으로 천재가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웃음) 그만큼 아이디어도 많아 콜라보레이션의 결과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분도 색소폰 전공을 하셨기에 제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주시기도 했습니다. 큰 재능을 갖고 계신 분이며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앨범에 실린 ‘희나리’와 관련한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희나리를 처음 알게 해준 동급생 언니와는 아직도 만나고 계시나요.
네, 가끔 만납니다. 그런데 그 기억은 저만 하고 있었다는 게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주변 친구들은 ‘곡 선정이 너무 올드한 거 아니냐’며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저만의 스타일로 해석하여 나온 곡이어서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고 만든 것 자체만으로 그분께는 이벤트가 되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기대되는데, 다음 앨범은 언제쯤 또 만나볼 수 있을까요.
다음 앨범 계획은 작곡자와 프로듀싱 해주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입니다. 앨범을 발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반응이 괜찮은 것 같으니 차차 준비하자는 분위기라 기분이 좋습니다.


앨범 출시와 함께 계획하고 계신 공연이 있으신가요.
기회가 되는 대로 앨범을 준비하면서 연주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주로 음악 봉사 취지의 공연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무대보다 주변 분들과 감사 인사를 나누는 차원의 공연 또한 머릿속에 그리고 있습니다. 최근 토크 콘서트를 많이 하더군요. 음악콘서트를 진행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먼 훗날 ‘색소폰 타운’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곳이자 공연과 쉼터가 충분히 가능한 복합 문화 공간을 꿈꿉니다. 색소폰으로 최대한 좋은 일을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색소폰 연주곡 레퍼토리는 무엇인가요?
공연할 때는 항상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I Will Always Love You’예요. 어린 시절 감명 깊게 본 영화이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무대의 감동을 전하기에는 호소력 짙은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Beyond the Road’에서 꼭 들려드리고 싶은 곡을 소개해주신다면.
공연에서는 역시 앨범 타이틀인 ‘Beyond the Road’를 우선으로 들려드리고 싶네요. 또, ‘Dana, My Love’와 ‘Starlights’를 꼭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색소폰 교육에도 힘쓰고 계신데요, 연주만 고집하는 행보가 아닌 어떤 계기로 하여금 교육을 생각하게 되셨나요.
대학 시절 학원과 같은 곳에서 출강을 했습니다. 교사인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아서인지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큽니다. 한 아이를 가르치기 시작하다보니 한 명 한 명 학생이 늘어났고 음악 교육 쪽으로 기회가 많이 찾아온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히 교재도 준비하게 되고 책도 내게 된 것이죠.

운영 중이신 학원에서 어떤 교육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연령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오십니다. 동호회 활동을 주로 하시다가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국제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재즈밴드 클래스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만큼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강사의 역량도 중요하지요. 전문 지식을 갖춘 강사들을 채용하고 함께 교육 과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 자체가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가깝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현재 60여 명의 회원들이 있는데 모두 다른 색소폰 소리를 냅니다. 색소폰 소리만 듣고도 ‘아, 그분이 연습하고 계시는구나’ 알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색소폰부터 시작해서 마우스피스, 리드까지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는 지 궁금해 하십니다.
호흡으로 소리를 내다보니 사람마다 고유의 소리가 있는 것이지요. 같은 마우스피스와 리드의 조합을 하더라도 다른 소리가 납니다. 간혹 어떤 분은 유튜브 등을 찾아보면서 어떤 조합으로 어떤 소리를 내는지 궁금해 하십니다. 최대한 비슷한 소리를 내고 싶으신 거죠. 결론은 연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클래식과 재즈 사운드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많이 불어보고 경험해봐야 하지요. 연주자의 신체조건으로 봤을 때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 번 시도하며 맞춰가는 것이지요. 안타깝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각자에게 맞는 마우스피스와 리가춰가 있는데 한 사람의 선택에 줄줄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선생님께서 쓰시는 색소폰과 마우스피스는 무엇인가요.
화려한 기교가 드러난 연주를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담백하며 순수한 소리를 추구합니다. 저 또한 마우스피스와 리드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여 앨범 색깔을 나타내려 했지요. ‘Beyond the Road’에서는 ‘디오웨인’과 ‘셀렉재즈’의 조합으로 소리를 담았습니다.

이번 월간색소폰 8월호에는 리드에 대해서 다루는 섹션이 있습니다. 독자 분들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리드는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관하는가도 중요한 팁이 될 수 있습니다. 물에 불린 다음 잘 말린 후 번호를 매기고 순번대로 사용한다고 해도 그 순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개인적인 견해로는 하나의 리드에 집중하다보면 이물질이 낄 수도 있어요. 호흡을 만들거나 소리를 만들 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무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리드를 바꿔가면서 쓰는 게 도움이 되더라구요.

색소폰과 관련된 시간 외에 관심 있으신 건 무엇인가요.
여행입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또, 밴드와 함께 연습하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딸의 이름을 따서 결성한 ‘단아밴드’에서 재즈피아노를 하시는 분과 스무스 재즈(Smooth Jazz)를 하고 있습니다. 가요나 팝을 편곡해서 들려드리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시다면.
색소폰 애호가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재즈 음악 자체가 우리보다 10-20년 정도 앞서 있다고 하지만 그건 마인드 차이인 것 같습니다. 간혹 어르신들이 색소폰을 ‘딴따라 악기’라는 조금은 비하하는 듯이 표현하시기도 하지만 색소폰은 재즈의 꽃이라고 부르는 귀한 악기이지요. 색소폰을 연주하시는 분들은 악기 자체를 귀중히 생각하고 존중하는 자세로 다루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너무 한 가지 장르에만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사랑해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어떤 색소포니스트가 되고 싶으신가요.
이번 앨범 콘셉트처럼 편안한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케니 지의 ‘Loving You’가 10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걸 보면 그래요. 그런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현재는 아카데미 운영에 조금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로 보면 자기 개발도 많이 되었고 앨범 또한 준비를 제대로 했을 때 대중에 잘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공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 또한 음악으로 잘 연결이 되어 배운 점이 많았습니다. 테크닉 외에도 마음가짐 등 배우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앞으로도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색소폰의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나가고 싶습니다.

 

글. 남은별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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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의 본질을 찾아가는 노력가, 색소포니스트 이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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