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월간색소폰)염재인 기자=

자욱한 무대 위의 화려한 조명,갖가지 악기가 들려주는 현란한 음악 소리. 그들을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들끓는 함성. 그 가운데 귀를 어지럽히는 색소폰의 선율. 여느 아이돌의 무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그곳에 젊은 감성을 뿜어내는 색소포니스트가 있다. 바로 SJ밴드의 SJsax, 김성주다.

 

 

언제부터 색소포니스트의 꿈을 꾸게 되었나.
원래 재즈 아카데미라는 실용음악 교육기관에서 보컬을 배우고 있었다. 당시 군대에 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노래로는 갈 수가 없었다. 음악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생각하다가 악기를 하자고 결심했다. 고등학교 때 1년 반 정도 클라리넷을 배운 경험으로 무작정 색소폰을 선택했다. 6개월 정도 배운 후, 바로 해군 군악대에 합격하여 색소폰을 연주하게 됐다. 하지만 군대에서 허리를 심하게 다쳤고,제때 치료하지 못해 하반신 마비까지 와서 결국 중간에 제대를 했다. 다행히 기적적으로 치료가 잘 되어서 계속 색소폰을 할 수 있었다.


일본 유학을 했다고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
내가 교회에서 연주를 했을 때 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선교를 통해 좋은 정보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유학 결심을 했다. 일본에서 따로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고,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서 일본 유학을갔다.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일본의 <이시모리 관악기사>에서 운영하는 색소폰 스쿨에서 배우게 됐다.실은 작년 말부터 <이시모리 관악기사>의 엔도저(악기 제조사에서 유명 아티스트에게 악기를 제공하는것)를 받고 있다. 내가 초창기에 색소폰을 배운 곳이 곳이고,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연주 활동을 고 있는 부분에서 <이시모리 관악기사>가 특별한 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공연에서 사용하게 될 소폰과 관련 액세서리 후원을 통해 추후 연주 활동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일본에 계시다가 돌아오고 난 후에 바로 색소포니스트로 방향을 잡은 것인가.
일본 유학 시절에서도 색소폰을 늦게 시작했고,1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프로가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역시나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일이 전혀 없었다. 의도치 않게 8개월 정도를 쉬었다. 일은 없었지만 계속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인을 통해 처음 세션을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그때 활동 덕분에 가수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국내 유명 뮤지션과 함께 많은 공연을 해오고 있다.2년 전까지는 이것저것 겸해서 활동했다. 내 공연도월 3~4회 이상 꾸준히 했고, 여러 아티스트들의 공
연도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10차례 이상 진행했다.이후에는 나만의 무대를 만들고 싶어서 단독 공연을기획했다. 보통 재즈 공연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사람들이 많은데, 가수들의 공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공연을 모티브로 퍼포먼스 위주의 재미있는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작년 연말에 단독 공연으로 진행한 전국 투어 를 성황리에 마쳤다.


밴드를 결정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
내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일본은 색소폰 연주자들도 정말 많고, 색소폰 연주자들이 솔로나 유닛으로 뭉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클럽도 많았다. 그걸 보고 나도 한국에서 밴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컬이 없는 밴드를 구성하다 보니, 처음에는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당시 친한 지인들과 함께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

 

특히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바탕으로 활발한 공연을 하고 있다. 그 비결이 있나.
일본은 유학 생활을 계기로 연결된 부분이 있다.3~4년 전 아는 분을 통해서 일본에 있는 회사에 오디션을 보러 갔다. 아이돌을 키우는 회사였는데, 아이돌 공연 중간에 무대에 설 게스트가 필요한 것이었다.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무대여서 정중히 거절을 했다. 그렇지만 미래를 생각했을 때 일본 시장에서도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다. 이후 그전에 일본 활동을 연결해줬던 분들이 자리를 마련해줘서 소소하게 일본 활동을 시작했다.그때의 활동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앞으로 공연 계획이 있나.
올해 하반기에 전국 투어 공연을 준비 중이다. 평소 다른 가수들의 공연을 통해 그들의 장점을 내 공연에 어떻게 접목시킬지 유심히 보는데, 최근 브루노마스(Bruno Mars)의 공연을 보고 기존에 진행하던 앨범 기획을 뒤엎었다. 당초 계획하던 일정보다는 조금 늦어질 것 같다.


많은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
내 단독 전국 투어 공연인 파이널 공연이 서울이었다. 그때 일본 팬들이 10명 이상 오신것과 만석으로 공연할 수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일반인들에게 비주류인 공연일 수 있는데, 사람들이 공연을 보면서 굉장히 즐거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재즈 클럽에서도 공연을 하고 있는데, 재즈 클럽과 일반 공연과의 차이점이 있나.
일반 공연은 공연이라는 확실한 타이틀 아래에서 진행하다 보니 집중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재즈 클럽같은 경우는 와인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다. 연주자도 일반 공연보다는 좀 더 편하게 연주할 수 있다. 어떨 때는 공연보다는 더 자연스러워서 훨씬 다이내믹한 공연이 나오기도 한다.

 

현재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을 만들 때 어떠한 기준으로 작업을 하나.
평소 바쁜 스케줄 때문에, 곡 작업 위주로 진행하진 못한다. 때문에 곡을 만들기 전, 만들고 싶은 스타일의 레퍼런스를 많이 듣는 편이다. 멜로디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으면 그 멜로디를 녹음해서 코드를 입혀놓고, 나중에 코드 정리를 해서 앨범 작업을 한다.


주로 알토와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한다고 들었다. 두 종류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테너를 좋아한다. 하지만 예전에 다친 허리 때문에 무게가 나가는 테너는 내 공연 때 거의 연주하지 못한다. 보통 세션을 할 때만 테너를 사용하고, 공연 때는 알토와 소프라노를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연주 스타일을 그렇게 굳히기도 했다.


본인이 추구하고 싶은 음악 기준이 있나.
나는 소울 재즈 펑크의 흑인음악을 굉장히 좋아한다. 실은 이게 세계적으로 비주류 음악이어서 공감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팝을 해야 한다는 강제적인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다. 지금까지 나온 음악들은 비주류적이었는데, 편곡하는 분들이 대중적으로 바꿔줬다. 그런데 이후 나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다. 커크 웰럼(Kirk Whalum)이라는 유명한 가스펠 테너 색소폰 연주자와 대화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소리를 잘 낼 수 있냐고 묻는 내게 역으로 질문을 하더라. “너는 누구를 위해 연주를 하냐” 그 당시에는 왜 저런 말을 하나 의아했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하면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평소에 어떤 음악 장르를 즐겨 듣나.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편이긴 한데, 상황에 따라 다르다. 아무 생각 없이 들을 때는 어려운 스타일의 재즈를 듣는다. 애드립이나 연주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제대로 듣고 싶을 때는 주로 팝을듣는다.


색소폰을 연주할 때 감성이나 기술적인 측면 등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음악을 추구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연을 할 때는 퍼포먼스 위주인 경우가 많다.대부분 퍼포먼스 위주의 곡들이 공연 흐름상 좋기 때문이다. 감성적인 곡들은 중간이나 마지막에 한두곡 정도 넣는다.


본인의 곡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SJ밴드 이전에 처음으로 한 <뉴비>라는 밴드에서 냈던 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은 내가 일본유학 생활에 쓴 곡이다. 일본에서 혼자 외롭게 보내다 보니 내 성격에 맞지 않게 우울증이 왔다. 당시‘워렌 힐’이라는 색소포니스트를 굉장히 좋아했는데,그 연주자의 곡 중에 라는 곡이 있었다.
그 곡은 비틀스가 원곡인데, 그 곡을 들으며 곡명을 똑같이 라고 지었다. 워렌 힐이 내한했 을 때 내가 작곡한 가 담긴 CD를 전해줬다.


앨범 중 <전능하신 나의 주>와 <더 웨딩송>이 이색적이다. 이 앨범들을 만든 계기는.
<더 웨딩송> 같은 경우 결혼식 때 연주 요청이 많이들어오는데, 다른 곡들을 연주하고 있자니 어울리지 않는 곡도 많고, 특히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은느낌이었다. 색소폰 연주자들이 마땅히 연주할 곡이 없는 점과 지인들에게 괜찮은 연주를 해주고 싶은 생각에 두 곡을 만들었다. 실제 다른 색소폰 연주자들이 요청을 주면 MR을 주기도 한다.
<전능하신 나의 주> 같은 경우는 개인의 신앙적인 부분 때문에 만든 앨범이다. 가스펠 연주자라는 꿈이있었기 때문이다. 첫 앨범을 가스펠 앨범으로 내고 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와중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큰 수술을 해야만 했다. 그때 들었던 곡이기도 하다. 신기했던 건 이 곡을 편곡하던 친구의 지인이 선교사였는데, 그분이 이 곡을 작곡했던 분을 만났다고 한다. 나중에 앨범이 나오면 들려 달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색소포니스트로서 가지는 음악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원래 다양하게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금방 질리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색소폰이라는 악기를만나서 계속 연주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정말 좋아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연주자로서, 창작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싶다.
또한 개인적으로만 만족하는 음악이 아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연주자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더불어 케니지와 데이브 코즈처럼 나를 기억할 수 있는 음악을 많이 만들고 싶다.


좋아하는 색소포니스트가 누구인가.
제가 영향을 받은 색소포니스트가 데이브 코즈(Dave Koz)와 워렌 힐(Warren Hill) 그리고 커크웰럼(Kirk Whalum)이다. 초기에 세 연주자한테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내 연주에도 그들의 스타일이 묻어있다. 특히 <애인있어요>라는 앨범에서 감성적인 부분은 데이브 코즈와 커크 웰럼의 음악 스타일이 믹스된 느낌으로 녹음했다.


아마추어 연주인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색소폰 문화가 시작되게 된 것이 아마추어 연주인들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그분들의 관심이 있어야만 우리 색소폰 연주자들이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연주적인부분에서 조언을 드리자면, 나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마인드와 기초적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추어라는 생각에 기초적인 부분을 소홀히 생각하면 얼마 가지 못해 결국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기초적인 부분들을 확실히 다지고 나서 기술적인 부분에 다가서면 월등한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생각한다.


색소포니스트로 꿈을 이룬 지금 이 시점에서의 김성주의 꿈이 궁금하다.
사실 목표로 세운 몇 가지가 굉장히 빠른 시일에 이루어졌다. 앨범을 처음 발매하는 것, 클럽 공연을해보는 것, 가수 세션을 해보는 것 등. 이런 것들이단기간에 이루다 보니 초반에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왔다. 처음 색소폰을 시작했을 때 주변의 반대도 심했고, 불가능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때는 철이없어서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생각만 했고, 또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볼 때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한다. 그들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많이 만들고, 연주 활동도 활발히 하고 싶다. 더불어 나만의 색깔을 갖고 싶다.


젊은 감성의 퍼포먼스형 연주자가 드문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색소포니스트 김성주. 모두가 고개를갸웃거리는 순간, 자신에 대한 믿음만으로 생소한 분야를 개척해 나간 젊은 연주자. 모두의 의문은 확신이 되어 색소폰계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그의 열정적인 색소폰 선율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이 흠뻑 적셔지길 기대해본다.

 


글 | 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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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선율 속에 비친 감성 색소포니스트 '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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