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안개 낀 장춘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글씨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춘단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의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 가면서
떠나가는 장춘단공원


안개 낀 장충단공원 - 1967년 최지우 작사/ 배상태 작곡

 

불세출의 가요 황제, 배호의 가슴 아린 비련의 절창, <안개 낀 장충단공원>을 색소폰 스브톤으로 연주하는 그대들에게 바친다. 이 구성진 연주를 접하면 가수 배호와 색소폰 발명가 벨기에 출신 아돌프 삭스(Adolphe Sax,1814~1894)의 얼굴이 오버레이 된다. 불우하게 성장한배호의 가방 끈은 중학교 2학년 중퇴. 삭스는 악기제작자이면서 연주자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악기소리를 들었고, 자라면서 왕립음악학교(브뤼셀 왕립음악원)에서
정통적인 음악교육을 익혔다. 하지만 배호가 부른 노래와 삭스가 발명한 색소폰의 궁합은 천생연분이다. 대중예술 마니아적인 끼는 가방 끈과는 무관하다는 묵시이기도 하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 지난 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 돌아서는 장충단공원’(안개 낀 장충단공원, 1절)


이 노래 배경지는 서울 남산 북쪽기슭 장충단공원이다. 남산은 해발고도 270미터, 목멱산(木覓山)·인경산(引慶山)·열경산(列慶山)·마뫼(馬山) 등으로 불렸다. 이는 1392년개성에서 고려왕조를 34대로 마감시키고, 왕씨 성을 이씨로바꾸는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한양천도를 하면서 풍수지리상 남쪽의 안산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충무로와 진고개로 이어지던 이곳 장충단공원은 청춘남녀들 추억의 로망이 아로새겨진 곳이다.


이 산은 우리민족 5천년 역사 궤적 속에서 사연도 많고 한도 많다. 그래서 대중문화예술 소재로 다양하게 등장한다.1967년 최치수가 노랫말을 얹고 배호의 3종숙 9촌 아저씨뻘인 배상태가 작곡한 이 노래, <안개 낀 장충단공원>도 그런 류다. 당시 배호는 25세, 요절하기 5년 전이다. 노래 속 화자의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다. 마른 잎 서걱거리는 늦가을 공원, 고목에 새겨놓은 옛사랑 이름을 찾아온 사랑의 실루엣이 눈에 어른거린다. 대중가요는 화자의 인생, 가수의 운명. 같은 시대를 살아 낸 민초들의 이념이고감성이다.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주인공이된다.


배호의 본명은 배만금, 아명 배신웅. 1942년 중국 산동성제남시에서 독립투사 배국민과 김금순 사이에 태어난 1남 1녀 중 장남. 해방 후 1946경부터 서울 창신동에서 생활하다가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5년 서울로 와서 영창학교(성동중) 1학년 1학기를 마친다. 이후 부친별세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이모집 모자원에서 부산삼성중학교 2학년 1학기를 수료했다.


그는 1956년 서울로 다시 상경하여 외삼촌 김광빈(1922~2008, MBC 초대 악단장) 아래서 드럼을 배우며노래에 입문하였다. 1966년 신장염 발병으로 투병생활과노래를 병행하면서 인기정상을 누리지만, 1971년 10월 20일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 중 감기 증세로 입원했다가, 11월 7일 30세로 요절하였다.


장충단공원은 한양을 수비하던 남소영이 있던 곳.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패들에게 살해(을미사변)된 5년 뒤, 고종은 이곳에 추모 단(壇)을 건립했다. 이 제전은 6.25전쟁때 소실되고, 지금은 장충단비가 남아 있을 뿐. 비에 새겨진장충단(奬忠壇) 글자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황태자때 쓴 글씨다.


아돌프 삭스는 1846년 색소폰 특허권을 신청한다. 색소폰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841년 벨기에 산업전시회였다. 이 행사 카탈로그에 ‘황동으로 만든 베이스 색소폰’(saxophone basse en cuivre)이란 문구가 실려 있다.
이 악기가 170여 년이 흐른 오늘날 당신의 암부슈어를 통하여 <안개 낀 장충단공원> 선율을 허공 중에 띄우고 있다.

 

글Ι유차영 (한국콜마 상무이사)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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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STORY]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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