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 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 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조각달은 흘러 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지나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 1935년 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

 

 

 

오래 전해 온 곡은 오래 이어져간다. 이런 노래가 애창곡이고 국민가요다. 애창곡은 히트곡과 명곡과는 다르다. 선율과 멜로디가 통속적이고 대중성을는 띠는것이 그 특징인데, 1935년 불려진 이래로 세기를 이어져 오는 ‘목포의 눈물’은 당시 시대상황과 민족 감성을 가장 잘 아우른 노래다. 단연코 색소폰 연주곡의 백미 (白眉)라 해도 된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목포의 눈물, 1·2절)
이 노래는 1934년 전국 6대 도시 애향가사모집에서,함흥 출신으로 일본유학을 하고 돌아와 목포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던 문일석이 ‘목포의 사랑’으로 출품하여 1등한 가사다. 여기에다 손목인의 ‘갈매기 우는 항구’ 멜로디를 입히고, 일제의 검열에 통과하지 못한 제목, ‘목
포의 사랑’을 ‘목포의 눈물’로 고쳐서 이난영이 불러서 대히트를 한다. 당시 일본에 본사를 둔 오케레코드 조선지사장 이철 사장의 기획 산물이다.
당시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25년째 이어지던 시기다. 무단통치(武斷統治)와 문화통치(文化通治)를 거쳐,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꾀하던 시절.이난영은 18세, 문일석(본명 윤재희)은 20세, 손목인(본명 손득렬, 1913~1999)은 22세였다.

‘목포의 눈물’ 노랫말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궤를 같이한다.
춘원 이광수는 1921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이순신(李舜臣)을 연재하였으며, 1930년대 초반에도 성웅 이순신을 연재했었다. 1591년 전라좌수사 부임으로부터 1598년 순직하여 안장
되기까지 7년 동안을 망라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 이것이이 노랫말을 작사한 시대적 배경이다. 2절에 ‘삼백년 원한 품은’ 구절은 임진왜란 종전 336년이 지나서 다시 나라를 빼앗긴 식민치하의 한을 노랫말로 읊은 것. ‘님자취’는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16일 명량대첩(13척:133척의 승리)으로 왜적을 물리친 후, 목포 앞바다 고하도(보하도)에 진을 치고, 노적봉에서 지휘를 하던 흔적을 말한다. 노적봉에 가면 장군의 동상이 늠름하게 목포해역을 굽어보고 있다. 그해 10월 29일부터 1598년 2월 17일 완도 고금도로 이진을해갈 때까지 107일 동안 8천 여 조선수군과 1천 여 가구의 피란민이 이곳에 주둔했었다.
본명 이옥례, 이옥순. 이난영은 1916년 목포 양동에서 태어나 목포공립보통학교를 4학년까지 다니다가 엄마와 함께 제주도로 이주를 한다. 이때 극장을 경영하는 주인집 아이를 돌보면서 흥얼거리는 노래실력을 높게 평가한주인이 그녀를 막간 가수로 활동하게 해주었으며, 이때가 1932년 열여섯 살 때였다.
그녀는 비음창법이 특징이며, 1935년 ‘목포의 눈물’로 엘리지의 여왕이 된 후 1936년 오카란코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하며, 그해 KPK악단장 김해송과 결혼하였다. 목포가요제에서 만난 두 살 연하의 첫사랑 남인수와의 생이별이었다. 김해송과 이난영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김시스터즈(숙자, 애자)와 김보이스가 그들이다.
1968년부터 목포에서 난영가요제가 열렸다. 1965년 49세로생을 마감한 이옥례를 추모하는 행사다. 2006년부터는 삼학도 부지에 조성된 난영공원에서 개최한다. 그녀의 타계일, 4월 11일과 연계하여 이난영의 유해는 3월 25일 파주에서 4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안장됐다. 600여 평의 부지에 마련된 공원에는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고 그녀의 유해를 품은 난영나무가 자라고 있다.


글 | 유차영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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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STORY] 이난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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