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월간색소폰)남은별 기자=

“떠올릴수록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을 갖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마음속의 도덕법칙이다.”
철학자 칸트의 묘비에 쓰인 글귀이다. 칸트는 모두가 인정하는 도덕법칙 안에 자유를 실천할 때 우리가 가진 자유가 진정한 것이 된다고 여겼다.

대한민국 재즈 아티스트 1세대, 이정식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 있어 늘 곁에 두고 지켜 나가야 할 ‘도덕법칙’은 ‘재즈’인 듯 했다. 재즈를 운명, 나아가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그에게 최근 생긴 고민은 ‘어떻게 하면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였다. 재즈 거장이라는 그를 수식하는 표현과 다르게 순수한 고민에 놀라웠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무언가 새로이 시작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Take it easy!”
충분히 준비가 됐다면, 마음 편히 그 안에서 ‘자유롭게’ 즐기라고 말이다. 

 

 

얼마 전 일본 공연을 다녀오시느라 이제야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공연은 어떠셨나요.
일본에서 재즈는 본토인 미국보다 활발하게 연주되며 또 사랑을 받는 곳입니다. 미국 연주자들이 어떻게 하면 일본에서 인지도를 얻고 활동할 수 있을지 고민할 정도이지요. 그만큼 일본은 재즈의 천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름이면 항상 재즈 페스티벌이 성행하는 곳인 만큼 저 또한 매년 공연을 위해 찾고 있습니다. 2-3개월 내내 일본 열도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훑어 내려오며 축제를 즐기려 해도 다 못 다닐 정도로 아기자기한 공연이 많습니다. 규모보다 콘셉트를 중시하는 문화라 더욱 주목할 만하죠. 열흘간 도쿄와 미야자키, 삿포로, 나고야에서 연주했습니다.

이번 일본에서의 공연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되셨나요.
일본 연주자들의 요청으로 함께 공연을 하게 됐습니다. 이번 공연은 섹스텟 밴드로 ‘히노 테루마사(日野皓正)’라는 트럼피터와 함께 협연하였죠. 제가 팀을 만들어 참가하는 개념이 아닌 그쪽에서 팀원으로 필요로 해 불러주신 거라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국 연주자 중 많은 수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지만,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서 다양한 곳에서 초청 연주를 펼쳤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일본 공연 중 기억에 남는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아오모리(靑森)의 ‘난고(南鄕) 서머 재즈 페스티벌’입니다. 정말 시골이더군요. 리허설 때에도 이런 곳에 사람들이 올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웃음) 그런데 공연 당일 인산인해를 이루었어요. 비가 오는데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 모습에 재즈 마니아층이 두텁다는 것을 알았죠. 관객들 대부분이 연령대가 높아 재즈 침체기로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연령 제한 없는 축제 성격에 따라 길게 보면 ‘재즈의 뿌리가 계속 이어 가겠구나’라는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해외 굴지의 아티스트들과 협연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협연을 결정할 때 어떤 점이 가장 큰 기준이 되나요.
우선 ‘공유하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콜라보레이션을 결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단절돼있는 연주자들도 많이 보았죠. 그러나 시도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음악의 어떤 분야든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스스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마음자세가 아닐까요? ‘괜히 망신당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봅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매 순간 이색적인 콜라보였을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열린 마인드로 대해야죠. 최근의 페스티벌만 해도 ‘밴드 스타일이 정말로 다양하구나’를 느끼고 왔습니다. 재즈에서 드럼과 베이스 없이 비트박스로 리듬을 채운다던가, 바이올린·디제잉·피아노가 어우러진 새로운 시도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지금의 연주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되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신 많은 연주 가운데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이 있으시다면.
이색적인 것으로 꼽는다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진행한 국악과 양악의 콜라보레이션입니다. 전자바이올리니스트 김권식 님, 국악계의 조갑용 님, 장구에 이부산 님과 함께 프리 재즈 스타일로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습니다.
기억에 남는 거라면 블루노트에서 한 녹음과 호주 오페라하우스, 미국 LA 돌비 극장(Dolby Theatre 구 코닥 극장)에서의 공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처음 블루노트에서 녹음할 당시엔 부담을 느끼셨겠죠?
그렇죠. 당시 제 나이 또한 연륜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에요. 처음 카세트테이프를 보내며 같이 해줄 수 있냐고 청했죠. 그 사람들이 ‘한국에도 재즈가 있느냐’ 물으며 신기해 하더군요. 재즈 피아니스트인 케니 배런(Kenny Barron)과 트럼피터 히노 테루마사 등 뉴욕의 거장들과 한국인 최초로 ‘이정식 in New York’을 녹음을 함께 하고나니 ‘내가 역사적인 분들과 함께 하는구나’란 생각에 감격스러웠습니다.

호주 오페라하우스나 LA 돌비 극장에서의 공연은 어떠셨나요.
역시 그런 큰 무대들은 나이가 들어도 긴장되더라구요. 작년, 무대에서 윤복희 선생님과 함께한 LA 돌비 극장에서도 역시나 긴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이것이 참 고민입니다. ‘긴장하는 것을 없애는 것도 연주에 임하는 자세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오히려 신경을 끄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려고 하다 보니 괜찮아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무대든 편안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협연하는 이가 누구이건, 장소가 어떠하건 그걸 떠나 내 능력껏만 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역시 연주인이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가 중요하지요?
그렇습니다. 색소폰 동호회 분들께서 한강 다리 밑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연주를 들으며 어떤 면에서는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정말 자신감이 넘치신다’는 생각에 ‘그래, 저렇게 내 능력 안에서 자신감 있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코 부정적인 게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니 본인들도 배워보고 싶다면 그걸로 되는 겁니다. 전부 잘하는 사람만 있으면 누가 색소폰을 배우려 하겠어요.

현재 수원여자대학 실용음악과에서 강의도 하십니다. 새로운 것에 협조적이며 능동적인 예술가로서의 모습과 달리 모두가 인정할 만한 보편적인 교육의 장에서 교육자의 태도는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은 항상 새롭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 연장자에게는 우리가 새로웠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학생)이 하는 것을 지켜봐 주고 칭찬을 해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주입식으로 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저는 ‘그래그래’하며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 위주로 교육하고자 합니다. 또한 새로운 시도로 사운드를 만드는 그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받습니다. 곧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생을 그린 ‘마일스’라는 영화가 개봉합니다. 방송국에서 ‘명반’이라며 ‘타임캡슐에 넣어야 한다’는 표현에 마일스가 전화해서 욕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타임캡슐에 들어가는 것은 골동품이 아니냐’며 “멈춰 있는 음악은 죽은 음악이다”라는 말을 남겼죠. 그 말에 동감하며 저는 나이가 들수록 사이드 맨은 ‘새로움’이 느껴지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어떤 새로운 사운드에 심취해 계신지 궁금합니다. 추구하는 사운드와 연주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대중과 소통이 잘되고 무대에 자주 서기 위해서 고민하는 연주인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프리스타일 재즈입니다. 그렇지만 너무 제멋대로이면 안됩니다. 규격화된 그 안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프리스타일 재즈이지요.

중학교 때 연주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트럼펫에서 색소폰으로 전향하셨다고 하는데, 트럼펫을 시작한 계기와 어떤 이유로 오롯이 색소폰에만 몰두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시작했습니다. 트럼펫은 주법이 정교해야 하는 악기인데 그저 힘으로만 시작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실 트럼펫이나 색소폰이나 마찬가지로 세심히 다뤄야 하는 악기인데 그걸 모르니 더욱 고됐죠. 선배들이 색소폰을 자유롭게 부는 모습에 쉬울 거란 생각과 동경하던 차에 졸업한 선배의 빈자리를 채울 기회를 잡아서 색소폰으로 바꾸었죠. 인생에 있어 평생 잊지 못하는 첫 느낌이란 게 있지 않나요. 선배가 불던 색소폰 소리를 처음 듣고 너무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중학생 선배가 연주한 색소폰 음색이 좋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처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색소폰 음색에 대한 고민은 어릴 적 처음 색소폰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늘 하실 것 같습니다. 연주를 들었을 때 이 음색은 어떤 아티스트의 것인지 확실히 알아챌 때가 있습니다. 악기의 음색이 연주자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하지요?
자기 소리를 확실하게 내 소리로 만드는 것은 수십 년이 걸립니다. 이게 확실히 나의 것이다 만들어놓고, 삐끗하면 다른 소리를 내지요. 스스로 따뜻하고 포근한 소리를 추구한다고 해놓고, 어떤 곳에 가서 휘날리듯 날카로운 칼 톤의 연주를 듣게 되면 유혹에 못 이겨 그렇게 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계속 무너지고 다시 채우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연륜이 쌓이면 되는 거구나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존 콜트레인이 그만의 음색을 찾기 위해 수많은 마우스피스를 사용했듯이 이것저것 해보는 시도가 중요합니다.

색소폰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아마추어가 처음 배우기에는 굉장히 쉽다는 점입니다. 깊이 들어가면 어렵습니다. 리코더 운지와 같고 불면 소리가 나고, 다장조를 연주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프로 연주자로서 느끼는 색소폰의 매력은 또 다를 것 같습니다.
선뜻 말씀드리기가 머뭇거려지는 게 사실입니다. 유럽의 어느 첼리스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지인이 ‘평생을 연주했으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느냐’는 말에 ‘70세의 나이까지 했는데 색소폰 외에 무엇을 더 하겠소’라며 색소폰을 켤수록 새로운 소리가 들린다고 했답니다. 색소폰이 그렇습니다. 음색이 더욱 깊어지고 예전엔 느끼지 못한 소리도 들리곤 합니다. 현란한 기술의 연주가 아닌 갈수록 새로운 음색을 발견하는 게 제가 느끼는 색소폰의 매력입니다.

뮤지션 후배들에게 미래의 다양한 방향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전하신다면.
월간색소폰이니 독자가 색소폰을 전공하는 젊은 뮤지션들이 많겠죠. 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도중에 힘겨워 결국은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누군가는 사회와 타협하기도 하죠.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의 방향이 있지만 누군가는 원하는 길을 걷지 않을 수도 있죠.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 뉴욕에선 ‘우리 오늘 밤에 연주하자’라는 말 속에 어느 창고에서 몇 명이 모여 합주하자라는 의미로 통하기도 합니다. 직업은 따로 가진 채로 말이죠. 지금은 다른 일을 하며 연주를 하는 상황이 익숙해졌습니다. 현실적인 이해를 우선으로 하고 접근해야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프로 뮤지션으로 가겠다고 하면 다양한 조언을 받아들이고 롱런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도록 다른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오래 하다보면 결국엔 될거야’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말이죠.

색소폰 문화 발전을 위해 색소폰 애호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제 바람이지만 색소폰을 좋아하는 이들 중 현실적인 경제·문화적으로 뒷받침이 가능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이 젊고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육성하기 위한 문화를 가꿔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도 국가가 아티스트를 키우는 게 아닌 기업의 사장이 음반 문제나 적절한 무대와 매칭을 돕는 일, 또는 음악을 위한 해외 유학 지원 등의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음악을 즐기면서 문화 발전에 이바지 하는 좋은 일이죠.
그리고 저는 재즈 연주인인데 색소폰을 연주한다는 생각에 다른 장르와 비교하여 평가해 주시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색소폰 애호가 분들이 다양한 음악 장르에 열린 마음으로 즐기고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글. 남은별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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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새로운 시도가 기대되는 재즈아티스트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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