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밀양으로 들어서는 길목 어귀마다 익숙한 아리랑 가락이 들리는 듯, 환청인가 싶다.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밀양아리랑의 흥은 세월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아리랑 가락에 젖어온 지 수백 년. 그 뿌리 깊은 풍류의 전통을 이어, 지금 새로운 가락과 악기로 또 다른 흥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다. ‘밀양색소폰봉사단’이 바로 그 분들이다.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색소폰

베이비부머 세대인 중장년 사이에서 색소폰 배우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일궈낸 주역들이다. 젊은 시절에는 먹고살기 위해 일에 쫓겨 자신을 되돌아 볼 여유나 내면을 성찰할 기회도 없었다. 이제는 경제적 안정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여가활동에 적극적이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배우고 즐기는 게 색소폰이다. 색소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지 채 20년도 되지 않았다. 한 세대 이전만 하더라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가의 악기였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에서 생산한 보급형 악기 덕분에, 중년들이 색소폰의 매력에 쉽게 빠지게 되었고 대중들과 친숙한 악기가 되었다. 매력을 하나 더 꼽자면 색소폰은 배우기 쉽다. 초보자도 6개월 정도 배우면 웬만한 곡을 연주할 수 있다. 중년들의 문화적 욕구, 자아성취욕을 도와줄 도구로 색소폰만 한 악기가 또 있을까 싶다.

한적한 농촌도시인 밀양의 면소재지에도 이런 색소폰의 매력에 흠뻑 빠져 풍류와 더불어 봉사정신을 발휘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색소폰 동호회가 있다. 

 

밀양의 풍류객들

밀양,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밀양아리랑일 게다. 영남루에 얽힌 아랑전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는 곳으로 나오는 얼음골도 있다. 동쪽으로는 울산광역시·양산시, 서쪽으로는 창녕군, 남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김해시·창원시,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청도군과 접하고 있다.

밀양색소폰봉사단(단장 김장희)은 창단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 중 하나다. 밀양시 산외면 산외로425에 연습실을 두고 열심히 기량을 닦고 있다. 모든 회원들이 창단의 주역이지만 손건상 초대단장의 노고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주 활동지인 경남,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색소폰 행사와 세미나에는 거의 빠지지 않는 열정을 소유하고 있는 분이다. 

 

깊어가는 가을에 어울리는 색소폰 공연

가을이 깊어갈 무렵에는 알록달록 오색단풍이 산야를 물들인다. 산속, 공원, 시골과 도시를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는 각종 음악회 가운데 정확한 통계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색소폰 음악회가 차지하는 비율이 아마도 절반은 되리라 짐작된다. 

올해는 10월 22일 경남 밀양시 해천구 상설무대 분수공원에서 ‘제3회 밀양시민과 함께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색소폰 동호회가 이렇게 알차고 규모 있는 음악회를 진행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번에는 필자 혼자만이 아니라 눈과 귀를 호강시키기 위해서 연습실 회원들과 함께 밀양으로 나들이 삼아 나섰다.

‘해천구’라 해서 구(區) 이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밀양강으로 흘러가는 해천구라는 도랑 위에 꾸며진 상설무대였다. 일반적으로 상설공연무대는 한적한 공원이나 문화공간 안에 설치되어 있는데 반해 해천구 상설무대는 주택가가 위치한 도랑 위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주민들에게 소음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주민 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는 행정지원과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있었기에 상설무대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였다. 일반적으로 색소폰 동호회 행사 시 소음 관련 민원이 제일 난감한데 주택가 한복판 도랑 위에 설치된 상설무대라니!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무대가 아닐까 싶다. 해천구에는 생태하천 복원사업으로 분수도 설치되어 있고, 하천 수질을 정화하는 식물도 심어놓았다. 이날은 계절 탓에 분수 쇼는 볼 수 없었지만 대신 화려한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밀양 전통시장을 가로질러 해천구에 다다르니 리허설 중인지 간간이 색소폰 선율이 들려왔다. 공연을 기다리는 사이에는 주최 측에서 나눠주는 식권을 받아서 식당으로 찾아갔다. 이미 행사 진행요원과 외부 손님들로 인해 벅적거렸다. 식당 안에서부터 행사 열기가 시작되는 듯했다.

 

주택가에서 울려퍼진 색소폰 연주

우리나라 색소폰 행사 진행자로 단연 으뜸인 색소포니스트 황금나팔 윤정현 선생이 사회를 맡아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다. 이날 아쉽게도 명품 연주를 들려주진 못했지만 함께 자리한 사람들이 마치 개그콘서트에 온 것마냥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해주셨다. 함께 공연을 보러 간 동호회 회원 중에 유방암 환자분이 계셨는데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것도 잠시 잊고 웃음꽃을 피웠다. 두 시간여 진행된 음악회 내내 색소폰의 선율에 행복해 하고, 황금나팔 윤정현 선생의 재치 있는 멘트에 웃음으로 소통하면서 힐링타임을 누렸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차에 같이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나팔 윤정현 선생은 색소폰 행사 진행자로서 독보적인 존재이자 재치 있는 입담과 겸허한 품성으로 많은 색소폰연주자와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해피메이커다. 봉사단의 특별회원으로서 진행을 맡아주시는 것만 봐도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된다.

행사 1부에서는 회원들의 솔로 연주가 있었다. 그동안의 연습을 짐작케 할 만한 연주였고,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낌없는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2부에서는 앙상블 연주와 프로 연주자들의 연주가 있었다. 이날 역시 절도 있는 동작과 함께 명품 연주를 하신 신현길 프로, 현란한 스케일로 연주의 품격을 높이는 김성하 프로, 대곡을 파워풀하고 호소력 있게 연주하신 이현식 프로, 그리고 사모님이신 음파 김실장의 수준 높은 가창력으로 무인도와 색소폰의 세션 연주는 가히 일품이었다. 송진경 프로의 연주는 이날 처음 들었는데 ‘역시나, 프로는 다르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수준 높은 연주였다.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남상일 프로의 연주였다. 빗질 하지 않은 듯한 머리와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와이셔츠에 빛바랜 청바지, 다소 엉거주춤한 꾸밈없는 겉모습이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감이 든다. 하지만 색소폰만 잡아들면 야수 같이 변해 신들린 듯한 연주로 영혼을 뒤흔든다. 이날 역시 온몸으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관객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열광의 환호성이 터져나오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대였다. 

 

수준 높은 동호회 문화를 이끌어가는 밀양색소폰봉사단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지방도시 단위의 색소폰 동호회 치고 밀양색소폰봉사단만큼 알차고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동호회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연주회를 하면서 팸플릿을 제작하고 외부 손님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또 많은 프로 연주자를 초청해 연주회를 꾸린 단장의 리더십과 봉사단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밀양색소폰봉사단은 평소에도 부산은 물론이고 대구, 서울, 창원 등 전국 어디라도 프로들의 색소폰 연주회는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열의를 가진 곳이다. 매년 봄과 가을에 1회씩 정기 연주회를 열고 있다. 거기에 프로 연주자를 초청하여 회원들의 연주 수준 향상을 위해서 워크숍을 실시한다. 매월 1회 이상은 찾아가는 음악봉사로 수용시설, 요양시설 등을 찾아가는 등 각종 행사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봉사회라는 이름에 알맞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밀양색소폰봉사단이 되어서

색소폰 경력 2년 이상이면 누구나 입단 신청이 가능하다. 운영위원회를 거쳐 입단을 하면 입회비 10만 원(연회비 24만 원)을 내게 되는데 매주 봉사단 연습실에서 단체연습과 수업을 받게 된다. 평소에도 단원들은 학원이나 개인 연습실, 동호회 연습실에 모여 연습하기도 한다. 또 6명의 단원들은 매주 화요일이면 진해에 있는 체리블라썸 앙상블에서 수업을 한다. 내년에 있을 전국 합주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량을 닦고 있다.

밀양색소폰봉사단은 26명의 단원과 8명의 특별회원이 있다. 이 특별회원은 김성하.김정음.남상일.박태박.손혜식.송진경.오석근.윤정현(가나다 순) 프로들로, 해마다 1~2회 이상 초청 특강을 해준다. 그리고 특강 영상을 촬영해서 참석하지 못한 회원들과 색소폰 동호인들이 볼 수 있게 유튜브에 올려놓는다.

단원들 대부분이 낮에는 일터에서 본업에 충실하다가 저녁에 연주 연습을 하고 있다. 취미생활뿐 아니라 봉사활동에도 단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글. 최종운 / 정리. 김설경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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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울려퍼지는 깊은 색소폰 소리, 밀양색소폰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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