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월간색소폰)남은별 기자=

당신이 가진 예술가의 단상은 무엇인가. ‘자유’의 의미가 더해진 다소 과잉된 이미지는 아닐지 감히 추측해 본다. 폴 부르제의 생각처럼 오히려 예술가의 단상에 엄격함을 추구하는 색소포니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색소포니스트는 멜로디 메이커가 돼야 한다”
“색소포니스트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는 색소포니스트 강승용의 확고한 예술철학이다. 대한민국색소폰연주자협회의 협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색소포니스트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이다. 대한민국 명반이라 일컫는 신촌블루스와 김희갑 악단 등의 결과물 속 세션으로 참여한 그는 대중음악에 대중들의 감성 명맥을 이어온 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다. 예술가는 결과물이 곧 그 자신이다. 인터뷰 전날 들은 신촌블루스 ‘아쉬움’의 색소폰 세션이 그의 첫 인상이나 다름없었다. 문정동의 한 지하 색소폰 연습실에서 진한 믹스커피 한 잔을 두고 그와 두 번째 인상을 마주했다. 

 

 

처음 색소폰을 품에 안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음악을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기타를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가요를 좋아하시던 양친 덕분에 어릴 적부터 가요와 익숙한 유년시절을 보냈죠. 본격적으로 색소폰을 접한 때는 고등학교 1학년 재학 당시 브라스 밴드를 시작하면서 입니다. 매일 등·하교 길에 음악을 들으며 하루에 한 곡씩 암기했죠. 그러다 보니 이미 교내에서는 ‘강토벤’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만큼 음악을 잘하는 학생으로 알려졌습니다. 2학년 때 본격적으로 연주가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음악에 빠져 보낸 학창시절을 거쳐 어떤 계기로 프로에 입문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프로 입문을 위해 연습에 매진한 하루하루가 떠오릅니다. 전주태생이며 광주에서 수학하였기에 처음에는 지방극단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극장에서 쇼를 하는 극단 중 양대 산맥이라 일컫는 ‘낙랑쇼’와 ‘중앙쇼’가 있었지요. ‘낙랑쇼’는 가수 혜은이씨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단체였습니다. ‘중앙쇼’ 또한 유명인을 키운 악단과 견줄만한 정도니 지방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곳이었죠. 저는 ‘중앙쇼’에서 악단생활을 시작하여 대전의 비어홀을 거쳐 대구 미군부대 등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후에 서울의 청계천, 종로의 비어홀, 카바레,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연주했습니다. 1986년에는 명동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김희갑 악단의 단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KBS 김강섭 악단장을 비롯하여 길옥윤 선생님과 가수 패티 김 등 소위 탑 클래스라 일컫는 이들의 공연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기억이었죠.

 

‘고고사운드’, ‘김희갑 악단’의 구성원으로 활약한 이력이 눈길을 끕니다. 긴 시간 앨범의 완성도에 공들였으리라 짐작됩니다. 

김희갑 선생님은 탄탄한 기초 이론을 기반으로 한 ‘대중가요 작곡가’면서 섬세한 기타리스트로 정평이 난 인물이시죠. 기타리스트가 악단장을 맡았다는 것 또한 대단한 이력이 아니겠습니까? 1968년에 김희갑 선생님 추천으로 이른바 ‘마장동(유니버샬)스튜디오’에서 세션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로 수많은 곡의 세션에 참여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인정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한 방송사에서 주최한 경음악경연대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였지요. 당시 경연대회의 특성상 경음악 연주와 함께 화려한 볼거리가 마련된 공연이 주를 이뤄 사랑받았습니다. 우리 악단도 출전하였고, 제가 음악 중간 솔로 연주를 했습니다. 연주하는 사람들이 저의 연주를 처음 보셨던 게 계기가 됐죠. 연주를 잘 한다는 입소문을 타고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었던 기억이 납니다.

 

솔로와 빅밴드 안에서 본인의 연주 양상에 다른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앙상블과 솔로의 연주는 다르지요. 빅밴드는 정확한 비트와 음정에 충실하여 합주에 최적한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솔로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면서 자기만이 가진 테크닉 요소를 더욱 강화하여 들려주어야 하지요. 개인적으로 같이 녹음한 색소포니스트 중 최석재 선배님의 연주에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테크닉적인 요소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색소폰을 배우는 이들이 궁금증을 표하는 부분일 겁니다. 

먼저 정확한 비트(박자)를 몸에 붙이는 일입니다. 그 다음은 정확한 음정을 찾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곡마다 다른 연주주법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또한 뮤지션이라면 음악을 편중해 듣기보다 클래식 . 가요 . 재즈 등 다양하게 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뮤지션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한다면 곡의 해석에 도움이 되겠지요. ‘찰리 파커’의 곡을 들으면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찾아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색소폰을 하는 이들에게 ‘노래를 듣자’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가요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인수 . 배호 . 조용필 등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이 탁월한 보컬리스트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부른 곡 중 선별하여 집중해서 듣습니다.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목소리를 듣다보면 색소폰을 연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악보대로 연주하기보다 직접 듣고 ‘채보’하는 습관을 통해 본인만의 연주기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들으며 채보를 많이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최근 집중해서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요즘도 변함이 없습니다. 경음악보다 노래를 더 많이 듣습니다. 아마추어 가수들의 노래자랑 프로그램이나 K-pop 등에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자주 듣는 음악은 일본의 엥카(연가 演歌)나 배호의 노래 등입니다.    

 

선생님의 레퍼토리를 소개해 주세요.

라이브 때에는 ‘진정 난 몰랐네’와 ‘리멘시타’ ‘님은 먼 곳에’ ‘별이 빛나는 밤에’ 등이 있습니다.    

 

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악기에 대해 소개를 해주신다면.(악기 . 리드 . 조리개 . 마우스피스 등)

애용하는 알토색소폰은 1946년 10월에 제작된 올드 모델로 셀마(Selmer)사의 슈퍼 발란시드 액션(Super Balanced Action)이고 일련번호(serial number)는 33588입니다. 마우스피스는 메이어 브로스(Meyer Bros5), 리드는 리코(Rico 2.5)를 사용 중입니다. 조리개(리가춰)의 경우는 셀마 올드 모델입니다. 조리개는 색소폰의 부품에서 차지하는 범위가 2-3%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이들은 엄청난 값을 지불하며 쓰고 있지요. 오히려 마우스피스 선택에 신중을 기할 것을 권합니다. 무조건 비싼 비용을 들여 구입하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음색과 톤을 표현하고 싶은 지가 기준이 돼야 합니다. 

 

색소폰연주자협회 활동은 색소포니스트로서 어떠한 이력으로 남기를 원하시나요. 

가족을 만드는 것입니다. 올해로 6년째 협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협회가 발전하는 모습이길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계기로 하여금 긍정적인 자극을 받아 마음을 다그쳐 바로잡기도 합니다. 한 예로 작년 포천의 ‘아트빌리’에서 색소폰경연대회 심사를 본 것입니다.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엉터리로 연주하거나 독학으로 충분히 뛰어난 연주를 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연습의 흔적이 눈에 띄었던 4명의 색소폰 앙상블 또한 깊은 감동을 준 참가자들이었습니다.  

 

요즘 색소폰을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최근의 경향에 우려하는 점이 있으시다면.

요즘 많은 분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독학을 하시거나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는 방법을 선택하십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잘못된 상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허다합니다. 전문가 교육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갖기 바랍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색소폰 교육에 있어 누군가 앞장서 올바른 이론을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색소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반주기로 솔로 연주부터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앙상블로 시작하면 누군가 말해 주어 개인의 실수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색소폰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 제대로 된 강습이 더욱 필요한 실정입니다. 

 

본인의 연주에 있어 영향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혹은 그 외의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샘 테일러’의 연주입니다. 앨범 명 ‘Sam Taylor in Japan’으로 1961년 일본 공연 실황을 담은 앨범입니다. 팝송이 정식 라이선스를 통해 수입되지 않던 시절이라 속칭 백판(불법복제판)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음질은 떨어지더라도 그때 받은 감동은 충분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어떤 길로 가야하나’ 고민할 때 색소폰을 선택하게끔 이끌어주기도 한 셈이지요. 

‘할렘 녹턴(Harlem Nocturne)’으로 유명한 그가 일본 관객을 위해 연주한 일본 곡 두 곡을 들었는데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비의 블루스’와 ‘남천행’이라는 곡이었지요. 훗날 재발매된 앨범을 들어보니 이곡들이 빠져 있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 현재 그 연주곡들을 디지털 음원으로 복원 요청해 놓았습니다. 샘 테일러가 동양의 감성을 해석하고 연주했다는 것이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음악이론에 관해서는 대한민국 재즈계의 대부라 칭송하는 ‘이판근’ 선생님께 재즈 이론을 배웠습니다. 버클리 음대에서 4년 동안 가르치는 원서를 입수하여 요점만 정리한 내용으로 3-4개월 만에 끝냈습니다. 총 1년 4개월 정도 그분께 배웠습니다. 박학다식한 분이라 지금도 교육에 임하시지요. 요즘은 일대일로 교육을 하신다는데 저희는 열댓 명이 함께 필기하며 공부했죠. 그 외에도 많은 영향을 주신 분들은 길옥윤 . 김희갑 . 이유신 . 최석재 . 심성락 님이 계십니다. 

색소폰 명곡을 추천하신다면.

많은 이들이 색소폰 명곡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한 곡의 음악이 다른 장르와 분위기로 새로워질 수 있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어떤 곡이든 명곡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본기에 충실한 다양한 연주 방법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색소포니스트 황천수씨는 ‘고향의 봄’을 자기 나름대로의 색깔로 연주했습니다. 동요를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동요가 아닌 다른 장르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양한 연주기법을 숙지한 후보다 폭넓게 음악을 즐겨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크게 나눠서 가요는 발라드와 트로트, 이 두 가지 장르입니다. 트로트는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음악 장르로 트로트와 비슷한 장르가 있는 나라는 일본과 대만 정도입니다. 발라드는 서양의 팝을 가요화한 장르이지요. 근래에 느끼는 점은 가요의 경우 트로트가 세련되지 못하고 시시한 음악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상당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입견에 의해 한 장르만 고집하여 배우는 이들도 많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드시 아셔야 할 점은 이 두 가지를 같이 공부해야 하며 연주곡도 유명한 곡이 아니라 ‘연주 방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대한민국 색소포니스트를 자부하는 이들을 위해 한 말씀해 주세요.

1991년 당시 길옥윤 선생님의 곡(난 정말 빌고 있어요)을 제가 편곡, 연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곡을 가수 정소희 씨가 일본에서 일본어로 다시 음반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마에다 토시아키(前田俊明)’의 편곡에 ‘사노 히로미(佐野廣美)’라는 알토 색소포니스트가 간주를 연주하였습니다. 당시 길옥윤 선생님이 두 음반을 비교해 들으시고는 ‘일본 측이 편곡과 믹싱에서 훨씬 앞섰다. 그러나 색소폰만은 강승용이 훌륭하다’는 칭찬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역량을 다해 색소폰 연주를 하시길 바랍니다. 기본기를 위한 연구와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고 감정이나 곡 해석을 위한 공부도 권합니다.

1995년에 길옥윤 선생님께서 저에게 색소포니스트로써 꼭 ‘기록을 남기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 후로 색소폰 교본을 위한 채보와 글쓰기, 음반 작업 등 기록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시간을 갖고 기록해 보기를 바랍니다. 

 

어떤 색소포니스트로 남고 싶으신가요?

앞서 말했듯이 처음보다 중간이 더 좋고 중간보다 마지막의 연주가 더 좋은 연주자. 시간이 흐를수록 최근의 연주가 더욱 감동적인 색소포니스트로 남고 싶습니다.  

 

현재 강습도 하고 계십니다. 강습으로부터 받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가르치는 일은 10-12년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강습을 비롯해 이론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일찍 알고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교습법과 과정 중 겪는 시행착오를 통해 더욱 많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색소포니스트로써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지금까지 해왔듯이 악보와 음반으로 기록하는 일과 공연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색소포니스트를 발굴하고 그들이 흔적을 기록하도록 그 과정도 도울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색소폰 연주와 공연에 더욱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색소폰을 사랑하는 여러분과 만나게 돼 감사한 마음입니다.

 

글. 남은별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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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속에 더욱 원숙함을 추구하는 색소포니스트 강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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