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월간색소폰)염재인 기자=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는 사람을 수없이 울고 웃게 한다. 그 오르내리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기도, 절망하기도한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좌절의 폭풍우 한가운데서 때로 우리는 뜻밖의 행복을 마주한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이가 또 있을까. 양궁 선수에서 사업가로 이제는 색소포니스트로 우리 곁에 서 있는 그를 만나본다.

 

 

현재 10년 경력의 색소포니스트이지만, 학창시절에는 운동선수였다고 들었다.
중학교 때 양궁을 시작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체육특기생으로 다녔다. 내 성격이 다소 자유분방한 편이었기 때문에 양궁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때문에 성적이 괜찮았지만 포기하고 이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운동선수를 그만둔 후, 색소포니스트가 되기 전의 박정호 씨의 삶이 궁금하다.
백화점에서 스포츠용품 관련 사업을 했다. 당시 의류 쪽으로 사업 확정을 하려다가 무리하는 바람에 40억짜리 부도가 나고 말았다. 내 욕심이 실패의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시 나쁜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힘이 들었다. 기분 전환 겸 강원도 일대를 다니다가 월정사에 갔는데 입구 쪽에서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렸다. 어떤 분이 색소폰 소프라노를 불고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색소폰 소리인지도 몰랐다. 그 분도 사업에 실패하고 시름에 차 있던 중 색소폰 연주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동변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6개월 정도 잊고 있다가 30만원짜리 색소폰 하나를 샀다. 이후 동호회에 들어가 처음 색소폰을 불게 되었다. 당시 부도가 난 뒤 1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산이 완전히 되지 않았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색소폰을 불 때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그는 “아득한 절망의 길 끝에서 들었던 색소폰 소리가 그를 색소폰 연주자의 삶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운명처럼 색소폰을 불때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다른 소리를 만들어낼 때는 희열감마저 들었다고한다. 어느덧 위안의 도구였던 색소폰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되고 있었다.


‘박정호’ 하면 색소폰 동호회 색소피아를 빠뜨릴 수 없다. 처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현재 색소피아 부회장직을 맡은 지 5~6년째이다. 처음 색소폰을 배운 지 10개월정도 되었을 때 색소피아가 창설되었다. 당시 색소피아 동호회의 지역장을 뽑고 있었는데 내가 인천 지역장을 맡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동호회들끼리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동호회와 학원 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지역장이 되고 나서 이런 분위기를 깨보자고 생각했다. 각 동호회와 학원을 돌아다니며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인천 지역 색소폰 모임을 추진했다. 주위에서는 “많이 와 봐야 2~30명 정도 모일 것이다”라며 만류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송도에 있는 큰 식당에 100명 예약을 했는데 140여 명이 모인 것이다. 아마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이 인천 색소폰 동호회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연주자 활동과 색소피아 활동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사실 연주자 활동에 비중을 두고 싶어 작년에 부회장직 사의를 밝혔다. 하지만 후임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1년 만에 다시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맡아달라는 요청이 계속되어 다시 맡게 되었다.


그는 색소피아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색소피아 정기모임 때 후원업체 선정이나 프로 연주자 섭외 등 행사 전반을 진행하고, 색소피아 지역장 선출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힘들긴 하지만 색소피아에 애정이 많은 만큼 즐겁게 일하고 있다”라며 웃음지었다.


색소피아 부회장이 아닌 프로 색소포니스트로서도 많은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그중 <3인3색 콘서트>에 2016년과 2017년에 두 차례 참여했다. 이 콘서트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3인3색 콘서트>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예전부터 내 이름을 건 공연을 갖고싶었다. 콘서트 이름처럼 세 명의 색이 다른 연주자들을 섭외해 진행하는 작은 콘서트이다. 출연진은 가능한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한쪽성별로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젊은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출연진도 젊은 친구들을 주로 섭외하고 있다. 처음 공연을 기획했을 때 후원을 요청하기 위해 반주기회사 엘프를 방문했는데, 다행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기획했을 때는 연 2회였는데 너무 바빠 연 1회만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3인3색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공연 준비할 때 힘들었던 점이나 보람 있었던 점이 있다면.
공연 준비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음향이다. 연주자들에게 음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음향기기가 고가이기 때문에 비용과 음질 모두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3인3색 콘서트> 같은 경우, 세 명의 색소폰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음향팀과 조율이 꼭 필요하다. 이 부분도 내가 공연을 진행할 때마다 신경 쓰는부분이다.


더불어 <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 ‘작은 콘서트’가 기억에 남는다.
<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은 한 5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5년 전에는 콘서트가 아니라 강의였다. 국내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들을 초대해 강의를 듣고, 한 두곡 정도 색소폰 연주를 듣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유명 연주자들의 강의가 끝나 휴식기에 들어갈 때쯤 남진우 프로의 공연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남진우 프로의 공연은 재즈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른 장르 연주자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때문에 다양한 장르로 진행하자는 큰 뼈대를 세웠다. 더불어 남진우 프로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와인을 제공해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무르익게 했다.
<3인3색 콘서트>가 젊은 컨셉이라면, <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은 원로 선생님 중심으로 계획했다. 6~70대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은 상당한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러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공연은 수익이 거의 남지 않지만, 원로 선생님들의 설 자리를 마련한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더불어 아마추어 연주인도 매 공연 시 한 명씩 뽑아 게스트 자격으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원래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려고 했던 <맛있는 식당>은 인천의 색소폰 코리아가 예정했던 공연과 겹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서로 협의하여 격월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인천에서는 매달 다양한 색소폰 공연이 열리게되었다며 기뻐했다.


이전에 개인 앨범 <꿈>을 발표했다고 알고 있다. 두 번째 앨범 발표 계획이 있나.
내가 색소폰을 처음 잡았던 시기가 10년 전 9월이었다. 올해 9월 발매를 목표로 10주년 기념 2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색소포니스트로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 자신의 장점을 말해달라니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다른 연주자들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력이 짧다. 때문에 연습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일례로 내가 처음으로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다. 3개월 정도였지만 실질적으로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았다. 당시 선생님의 색소폰 연주를 흉내 내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다. 내 색소폰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연주라고 착각할정도로 비슷하게 흉내를 냈다. 

 

그는 자신이 기교가 화려한 연주자는 아니라며, 다만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덕분인지 그의 색소폰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느낀다.


함께 공연하는 동료들의 연주를 들었을 때의 감상이 있다면.
색소폰 연주를 들었을 때 배우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연주자들이 몇몇 있다. 예를들어 정용수 연주자 같은 경우 트로트를 연주하다 보니 특유의 트로트적인 느낌이있다. 장르가 발라드인 나와는 연주 방법이 맞지 않지만, 듣기에 상당히 좋고 닮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김미영 연주자의 경우에는 클래식을 전공했다. 그 때문인지 트로트를 연주해도 본연의 클래식함이 묻어 나오는 데 상당히 매력적이다.


색소포니스트로서 롤모델이 있다면.
사실 해외 유명 연주자들 중에는 롤모델이 없다. 그분들의 실력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나의 롤모델은 첫 번째 스승인 김정음 선생님이다. 실은 선생님과는 동갑내기이다. 김정음 선생님께 오랜 기간 동안 레슨을 받진 않았지만, 그분의 연주를 관찰하고 똑같은 소리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다. 화려하면서 감성을 울리는 점이 정말 좋아서 저 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 알고 싶다.
올해 3월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초·중급 지도교수로 강의할 예정이다. 새로 시작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쓸 생각이다. 또한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여러 공연들을 잘 준비해서 성황리에 마치고 싶고, 힘이 닿는 대로 후배들을 비롯해 색소폰 연주인들에게 도움을주고 싶다. 후배 연주자들의 경우 그들의 연주 활동이 직업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원로 선생님들의 경우 그분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마련해주고 싶다. 더불어 훌륭한 색소폰 연주를 위해 정진하는 것, 이 모든 활동들을 할 수 있도록 건강 유지에 힘쓰는 것이 목표이다.


그는 엄청난 개런티를 받는 화려한 연주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접하기 힘든 연주자보다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연주자가 되어,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는 그. 절망의 나락에서 우연히 건져 올린 색소폰은 그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과 뜨겁게호흡할 수 있는 연주자를 꿈꾸는 색소포니스트 박정호. 앞으로도 그만의 깊은 울림을 기대한다.

 


글 | 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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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울리는 색소폰 선율의 소유자 테너 색소포니스트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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