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1910년대, 재즈의 태동
재즈는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의 흑인 브라스밴드(Brass band)를 통해 생겨났는데, 주로 관악기에 타악기를 곁들인 형태이다. 브라스밴드의 솔리스트가 반주에 맞춰 즉흥 연주(Improvisation)를 하는 형식으로 춤과 퍼레이드를 위해 연주했다. 1914년경 재즈는 Jass, Jas, Jaz, Jazz 등 그 명칭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또한 재즈의 어원에 대해서도 흑인들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은어라는 등의 다양한 설들이 있다.

 


처음 흑인 밴드는 백인 밴드를 본 따 유럽 음악의 기법에 따라 연주를했으나, 점차 행진곡, 래그타임(Rag Time) 등의 연주에 흑인 특유의 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래그타임이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남부의 크리올(흑인과 프랑스인의 혼혈) 사회에서 유행한 춤과 춤곡 등을 말하며, 래그(Rag) 또는 래그타임(RagTime)이라고 한다. 스콧 조플린, 조지프 램, 제임스 스콧의 연주를들어보면 래그타임에 대한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점차 흑인 특유의 리듬감에 래그타임의 영향이 곁들여지고, 멜로디와 하모니 등을 외워 원곡을 쉽게 연주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런 약간의 원곡 변형은 클래식의 변주(Variation)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래그타임 연주 방식의 클래식 변주가 재즈의 즉흥 연주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트럼펫과 클라리넷, 트롬본의 트리오 편성으로 하는 집단 즉흥 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가 많았다. 이 스타일로 백인들이 연주하는 스타일을 딕시랜드 재즈(Dixieland Jazz)라고 부르게 되었고, 본격적인 재즈 시대가 열리게 된다.

 

딕시랜드 재즈 밴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는 머리글자만을 딴 ‘ODJB’로 부르고있다. ODJB는 뉴욕에 재즈 음악의 진수를 소개한 최초의 밴드로 인정받고 있으며, 대부분 연주자는 백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ODJB는1905년부터 뉴올리언스의 시카고를 무대로 활동해왔으며, 초창기에는 딕시 재즈 밴드라고 불렸다. 뉴욕에 진출한 이들은 대규모 레스토랑인 라이젠 베버에서의 연주를 통해 서서히 명성을 쌓아갔다. 1917년 2월 ODJB는 기존 명칭에서 ‘오리지널 딕시랜드 재즈 밴드’로 팀명을 바꾼다. ODJB의 가장 큰 의미는 스탠다드 재즈(당시 유행가들을 재즈로 연주한 장르) 곡들을 최초로 녹음했다는 점이다. ODJB 이전의 음악 활동 자료는 녹음 기술의 부재로 인해 남아 있지 않아, ODJB의 연주가 최초의 재즈 연주 자료가 되는 셈이다. 1920년대 들어서 ODJB는 밴드의 인원이 커지면서 재즈 빅 밴드로 발전하게 된다. 초창기 빅밴드는 즉흥 연주보다는 악보에 의존한 연주가 대부분이었다. 플레처헨더슨(Fletcher Henderson)이 탄생시킨 재즈 빅 밴드는 비슷한편성에 연주자의 즉흥 연주 요소를 크게 부각시켜, 비로소 재즈 빅 밴드 솔리스트들이 주목 받는 시대가 오게 된다. 이로써 본격적인 재즈시대가 열린 것이다. 연주자들은 자유로운 솔로 연주를 통해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낼 수 있었으며, 솔리스트의 역량은 곡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주었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나 콜맨 호킨스(ColemanHawkins) 같은 걸출한 연주자들이 명성을 얻게 했다. 콜맨 호킨스의 성공은 색소폰을 솔로 악기로서의 자리를 탄탄하게 만들어주는계기가 되었고, 이후 많은 재즈 색소포니스트들에게 큰 동기를 부여했다.


1920년대, 재즈 번영의 시대
192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현대 재즈다운 스타일이 탄생하게 되었지만, 이 시절 밴드나 소규모 캄보 밴드는 어렵고 난해한 스타일의 재즈가 아닌, 술 한 잔을 걸치고 춤을 추면서 플로어에 있는 예쁜 아가씨에게 추파 던지기 좋은 정도의 대중음악이었다. 1920년대까지는 세계적인 경제 부흥에 힘입어 카바레(Cabaret) 같은 문화 공간을 중심으로 연주자들이 활동했다. 카바레는 재즈를 세계적인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게 했다. 이는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중 예술 전반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루이 암스트롱은 재즈를 미국 음악에서 세계적인 음악으로 소개시킨대표적인 연주자이다. 탁월한 혼(Horn) 연주는 기본이고 노래에 코미디까지 섭렵했다. 일부 사람들은 그가 스캣(Scat)의 창시자라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고, 스캣(Scat)을 연주곡에 접목해 대중화를 이룬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인종차별이 심했던 상황에서 흑인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긴 위대한 엔터테이너이다. 그는 초창기 재즈 시대부터 70년대 모던 재즈 시대까지 살면서 재즈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자타가 공인하는 재즈 레전드 이기도 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루이 암스트롱은 13세 무렵 친척 집에서 훔친 권총으로 장난을 치다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소년원에서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 당시 비행청소년들에게 교화를 목적으로 음악교육을 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계기로 코넷을 연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시대도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으려면 부유한 집안 환경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루이를 비롯한 여러 재즈 뮤지션들을 보면, 재즈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꽃을 피우는 야생화 같은 느낌이 든다. 당시 백인우월주의 사상이 팽배했던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의 성공은 많은흑인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루이 암스트롱은 미국 근대 사회의 문화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다.그는 사치모(Satchmo)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데, 다름 아닌 그의 큰 입을 비유해서 부르는 별명이다. 디퍼마우스(Dippermouth)라는 별명도 있는데, 후에 라는 재즈 스탠다드 곡이 나오기도 한다. 윤복희 씨가 어릴 적 루이 암스트롱의 성대모사를하며 노래하는 레퍼토리가 있었다. 내한한 루이 암스트롱이 일부러 찾아와 듀엣을 제안했고, 이후 미국으로 데려가 음악 공부와 공연을 한 일화가 유명하다.


세계대공황, 재즈를 휩쓸다
1920년대는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재즈의 대중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진 시대이다. 라디오의 발명은 재즈를 세계에 소개하는 발판이 되었고, 이후 전 세계적인 대중음악이 되었다. 몇몇 지역의 음악으로 머물 수도 있었던 재즈는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그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은 체계적인 음악을 받고 자란 부유한 사람이 아닌, 상대적으로 약자와 빈곤한 흑인들이 많았다. 이렇듯 재즈는 1910년대에 태동하여, 1920년대에 이르러서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이때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복잡한 코드가 난무하는 어려운 재즈가 아닌, 술 한 잔 걸치면서 흥겨운 리듬에 취할수 있는 그런 음악이었다. 이후 1929년 세계대공황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재즈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글 | 이종우 경성대 동주대 외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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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AGE] 세계 재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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