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서구문명의 원천지 그리스와 지중해는 뗄 수 없는 사이다. 지중해(地中海)는 말 그대로 그리스 땅(유럽)과 아프리카 땅 사이의 바다란 뜻이다. 고대로부터신화의 물줄기는 모두 지중해로 통했다. 나는 그 신화의 메카인 아테네, 델피, 크레타, 산토리니를 색소폰과 함께 순례했다. 크레타에서 영원한 자유인 카잔차키스의 족적을 따라가며, 산토리니에서 아틀란티스의 전설을 확인하고, 지중해 동쪽 에게해 선상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여정이었다.

 

 

신(神)들의 땅
8월의 그리스는 여행자의 열기로 더욱 뜨겁다. 이 계절의 아테네인들은 주로 태양이 저무는 저녁에 활동한다. 늦은 시간, 노천카페나 식당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중해 유역의 나라들의 여름 낮잠을 시에스타(siesta)라고 말한다. 그것은 낮이 길고 뜨겁기 때문에 생긴 생활습관이다. 그들은 시에스타를 게으름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기후적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지혜로 생각한다.
이른 아침 햇빛을 등지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올랐다. 그리스의 태양은 유난히 크고 불덩이처럼 타올랐다. 아테네에 와서 먼저 신들의 무대 파르테논 신전을 찾았다. 신전은 신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아테네는 고대도시답게 어디가나 고고학의 현장이다. 시내 여기저기 유물 발굴 현장으로 땅을 파헤쳐놓았거나 보수 혹은 복원 공사 중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한 돌기둥은 규모에서 압도했고 우아한 기품이 돋보였다. 골동품은 아무리 낡은 것이라도 고고하게 보인다. 그것이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적 영감은 언제나 옛 것에서 잉태된다. 시간은 켜켜이 삶의 두께를 형성하여 역사가 되고, 역사는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history)의 원천으로회귀한다.
아테네 여행 이틀째, 북쪽 델피의 파르나스 산으로 향했다. 산기슭에 신화 속의 신탁이 내리는 장소가 있다. 고대인은 가파른 산 중턱에 성소(聖所)를 마련하고 신들의 예언을 기다렸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거나 인간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신탁에 의존했던 것이다. 신들이 살았던 올림포스 산은 허구의 장소지만 파르나스 산은 현실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곳이다. 델피는 언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주위의 험준한 계곡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신성한 기운이 전율로 감싸온다. 델피의 신탁과 관련된 일화들은 무수히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오이디푸스 신화이다. 바로 이곳 델피가 무대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왕비의 아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한테 죽임을 당하리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왕은 아기가 태어나자 발목을 묶어 산에 버린다. 한 목동이 아기를 발견하고, 아기는 무사히 청년으로 자란다. 그는 훗날 자신의 슬픈 운명을 알고 방랑한다. 어느 날 그는 노인 일행과 좁은 산길에서 누가 먼저 지나갈 것인가 시비 끝에 노인을 죽인다. 노인은 자신의 아버지인 왕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채 그는 고향 테베로 향한다. 왕비이오카스테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로 골머리를 앓던 중 스핑크스를 물리치면 왕위를 주고 혼인하겠다고 선언한다.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풀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왕이 된다. 아뿔사,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인데 말이다. 신들은 근친상간에 분노하여 역병을 퍼뜨린다. 오이디푸스는 모든 사실을 알고 괴로워한다. 결국 그는 스스로 눈을 뽑아 장님이 되고 왕비도 자살한다. 비극이다. 이 신화에서 사내가 어릴 때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겨 질투하며 어머니에게 애착을 갖는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나왔다.
델피는 작은 마을로 분위기가 한적했다. 델피의 신탁으로 유명한 아폴론 신전에 올랐다. 멀리 코린트 만(灣)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에게해 크레타와 <그리스인 조르바>
아테네 남서쪽 항구 피레우스에서 크레타로 가는 크로노스 팰리스 호에 올랐다. 밤열시에 출발해 다음 날 아침 크레타 이라클리온 항에 도착했다. 크로노스 팰리스 호는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대형 크루즈였다. 선실은 마치 호텔에 투숙한 것처럼 완비되어 있었다.
팰리스 호는 지중해의 검푸른 망망대해를 유유히 순항했다. 색소폰과 함께 선상에 올랐다.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밤바다를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렁이는 파도 위에달빛이 어른거리는 모양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북아프리카의 시로코(sirocco)인듯 습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살갗을 스쳤다. “아, 내가 지금 지중해를 항해하고 있구나!” 야릇한 전율이 일었다. 선상에서 마시는 그리스 맥주의 맛이 일품이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노래를 불렀고, 난 색소폰을 연주했다. 하늘 높이 떠올랐던 달이 저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동녘이 밝아올 즈음 크레타에 닿을 것이었다. 크레타는 13세기 베네치아 식민지 시대 미노아 문명의 발생지였지만 혼란스런 땅이었다. 이라클리온 앞바다엔 끊임없이 포를 앞세운 탐욕의 배들이 출몰했다. 먼 바다에서 오는 자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대학살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정교회 신자와 회교도들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섬은 누가 지배하든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크레타인의 이중성은 태어날 때부터 숙명이었다. 그들은 그리스인인 동시에 크레타인이었다. 바다 사람이었지만 바다에서 오는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대학살과 내전은 자신이 죽거나 가족과 이웃을죽이고 묻어야했다. 영원한 자유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창조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들의 아들이자 아버지였다. 조르바의 역동적 생명력은바로 동시대 그리스인의 이중성을 대변한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 출신이다. 그가 태어날 당시 섬은 터키의 지배하에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외적에 대항한 독립투사였고, 아버지 역시 포도농장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과 이슬람국의 종교적 박해를 겪었다. 그런 역사적 환경에서 자랐기에 절대적 자유에 대한 갈망이 몸에 뱄다. 소설 속의 조르바는 그의 분신이다. 주인공조르바의 영적 투쟁을 통해 카잔차키스의 삶을 읽을 수 있다.
이야기는 젊은 지식인 ‘나’가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다 자유인 조르바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는 친구에게 책벌레라는 조롱을 받은 후 새로운 삶을 결심한다. 그리하여 ‘나’는 동반자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 섬의 폐광을 빌려 사업을 벌인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일기>에 썼다.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나의 우상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사나이였다.” 하지만 카잔차키스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의 노여움을 샀다. 작품의 내용이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어떤 이데올로기도 표현의 자유를 구속할 수 없다. 예술은 자유, 그 자체이므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은 에게 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베네치안 성벽 위에 있다. 그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말했다.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여자, 과일... 이 세상에 기쁨이 얼마든지 있다.” 그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자이다.
“ 한번 마음먹으면 밀고 나가라. 후회도 주저도 하지 말라. 그 고삐는 다시오지 않는 젊음에게 주어라.”그리스인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는 영원한 자유영혼의 표상이 되었다. 그의 소설은 20세기 크레타 섬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뛰어넘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만든다. 지금 나의 영혼이 자유를 찾아 어디론가항해하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날씨와 침묵, 고독 등에 따라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이지만 조국에서 외면당했다. 그는 치열하게 사유하며 온전한 인간의 모습, 즉 아폴론의 이성과 디오니소스의 열정을 추구했다. 한때 그리스 과도정부의 장관이 되어 정치인으로 살았고, 또한 스스로 정한 운명인 자유로운 방랑자로 살았다. 그가 생전에 남긴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아침식사 후 크노소스 궁전으로 향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미노타우로스, 즉 머리는 황소, 몸은 인간인 괴물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제우스의 시대에 크레타 왕권을 놓고 미노스가(家) 형제들이 다툰다. 미노스는 백성의 신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황소를 보내달라고 간청했다. 물론 돌려줄 것을 약속하고 말이다. 포세이돈은 그에게 튼튼한 황소 한 마리를 보냈다. 황소는 새로운 문명의 창조와 생산 수단의 상징물이다. 미노스는 마침내 지도자의 능력을 인정받아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미노스는 포세이돈에게 황소를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는 비슷하게 생긴 거짓 황소를 보냈다. 대가는커녕 은혜를 배신한 것이다. 신화의 비극은 언제나 운명적으로 자신의 행동 속에서 비롯한다. 포세이돈은 분노했다. 그는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에 빠지도록 복수했다. 왕비가 황소와 사랑에 빠지다니! 정욕에 휩싸인 왕비, 그것은 비윤리적이고 타락의 극치를 의미한다. 이 상황을 먼발치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다이달로스다. 그는 황소와 사랑에 빠진 왕비를 빗대어 나무로 황소의 형상을 제작했다. 마침내 왕비는 인간 세상에서 저주받을 생명체를 낳는다. 그가 바로 황소의 머리를 한 인간 미노타우로스다. 포세이돈의 저주를 깨달은 미노스 왕은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신화는 우리 인간사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아그네스 발차,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카테리니행 기차는 영원히 내게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않으리, (…) 비밀을 품은 당신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그리스 여행 내내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애잔한 선율과 함께 했다. 이 곡은 그리스의 민중음악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Theodorakis)의 작품이다. 역시 그리스의 여류성악가 아그네스 발차의 목소리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의 조수미도 불렀다. 나치에 저항한 그리스의 청년 레지스탕스가 노래의 주인공이다. 그리스는 발칸의 화약고다. 오랜 역사만큼 무수히 전쟁을 치루거나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반도국가인 탓이다 전쟁은 끝났는데 사랑하는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여인은 매일 카테리니 기차역에 나가서 기다리지만 연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한 심정이 가사에 짙게 배어있다. 멜로디 그 자체로도 애절하고 애잔하다. 이 노래의 유명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별하는 곳은 어디든 카테리니가 되었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장면들, 사랑을 애절하게 그리워하는 사람의 뒤에는 언제나 쓸쓸한 기차역이 있을 테니까.
우리의 생은 흐르는 시간과 함께 서서히 소멸된다. 누구든 사랑과 열정, 기억과 망각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희망을 읊조리지만 덧없다. 노래를 들으며 어떤 이는 과거의 쓰라린 상처를, 또 어떤 이는 떠난 사랑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고, 또 어떤 이는 사라지는 것들을 회상할 것이다. 기차는 바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싣고 있다. 막 떠난 기차는 역에 쓸쓸한 흔적을 남기지만, 또한 기다림의 여운도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카타리니행 열차는 늘 우리 맘속에 존재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토리니의 꽃노을
에게 해의 섬들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산토리니의 사진 속 풍경은 유난히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보인다. 바다에 떠있는 듯 크고 작은 두 섬은 얼핏 초승달 모양새다. 이섬에서 고대 키클라데스 문명이 번성했다. 그런데 화산 폭발로 한 순간 멸망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어느 날 바닷속으로 사라진 아틀란티스라고 믿는다. 바로 그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
산토리니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이오마을의 석양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집들이 그림처럼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섬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가파른 절벽 위에 하얀 집들, 푸른색 돔형 지붕의 교회들. 교회는 여행자의 휴식처인 동시에 성스러운 장소이다. 누구든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이끈다. 섬은 다양한 색깔의 모래밭들로 둘러싸여 있다. 화산에 따른 용암에 세월의 흔적이 더해져 빚어진 자연현상이다. 특히 붉은 모래밭의 레드비치, 검은 자갈들의 블랙비치, 백사장의 화이트비치가 유명하다.
해가 기울기도 전에 풍경을 보려는 사람들로 아우성이다. 저마다 시야가 트인 장소를 찾느라 분주하다. 이 순간의 미학을 위해 열정을 받칠 수 있는 여행자는 로맨티스트임에 틀림없다. 에게 해의 일몰은 살아 있는 그림이다. 푸른 바다와 붉은 노을이 시시각각 놀라운 색조를 창조한다. 그야말로 꽃노을이다. 태양이 바다에 매순간 덧칠하는 색채의 일렁임,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 간 석양은 서서히 파랗게 물들어갔다. 일몰의 숭고한 여운 속에 <썸머 타임>의 선율이 귓전에 울렸다. 나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썸머 타임>의 음을 색소폰으로 짚어갔다.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일몰 풍경이 색소폰 선율로 하나가 되고 있었다.
음악은 무엇보다도 감각의 환희를 위해 존재한다. 음악은 미지의 곳으로 영혼을 이끄는 힘이 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산토리니의 풍경은 실제적인 동시에 환상적이다. <썸머 타임>의 마지막 음을 끝으로 노을이 사라진 바다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글 | 박형섭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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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SSAY] 그리스 지중해 선상으로의 '색소폰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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