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여행은 다르게 살아보기이다. 나의 배낭과 색소폰은 언제나 신선한 이야깃거리를 가져다준다. 낯선 문화에 대한 동경과 음악적 환상은 길 위에서 해소되거나 길 위에서 생겨난다. 이런 이유로 나의 방랑벽은 아마도 지속될 것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비행기가 이륙할 즈음이면 흥얼거린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일상을 벗어나는 순간 꿈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에 젖는다. 여행자에게 행복한 시간은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리스본은 항구다

포르투갈은 서유럽 이베리아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나라다. 대지가 끝나는 곳, 바다가 시작되는 곳. 바다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정복의 대상인 동시에 영감을 주는 요소다. 그 옛날 대항해 시대 바스코 다가마와 같은 탐험가들의 얘기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들은 황금과 명예를 위해 목숨 걸고 바닷길을 개척했다. 15세기 인도항로를 발견하고, 아프리카 연안, 남미 브라질까지 진출했던 것이다. 그들의 성과로 당시 포르투갈은 자국보다 큰 식민지 영토를 경영하며 제국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해외식민지 정복과 무역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에 맞서는 힘을 과시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로 전락했다. 지난날 화려한 역사와 부귀영화는 빛바랜 지 오래다. 국민들은 소박하게 살면서 과거의 영광을 반추하며 아쉬워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포르투갈 인들이 자존심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니다. 세계로 수출되는 전통적 포트 와인과 빵의 종주국,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대변되는 최강의 축구팀 등을 내세우며 부활을 꿈꾼다. 특히 생선요리에 어울리는 베르데 와인(Vinho Verde)은 포르투갈만의 특색 있는 와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빵이란 말은 원래 포르투갈에서 왔다. 빵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디저트로 먹는 달콤한 빵부터 호밀이나 곡물로 반죽한 바게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달걀을 통째로 넣거나 부드러운 커스터드 크림을 넣은 에그 타르트는 포르투갈이 오리지널이라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황혼 무렵, 리스본에 도착했다. 초행길 운전이라 어둡기 전에 숙소를 찾아야 했다. 이 오래된 도시에는 유난히 경사진 언덕들이 많다. 나는 서민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할 요량으로 구시가지 알파마에 숙소를 정했다. 알파마 구역은 저렴하고 깨끗하게 리모델링한 아파트 호텔들이 많았다. 나는 내비게이터가 알려주는 대로 알파마 지구에 들어섰다. 그런데 예약한 호텔이 지척에 있는 듯한데 영 접근하기 어려웠다.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들을 겨우 빠져나가면 일방통행이 진행을 막았다. 오간 길을 반복해 지나며 거리 이름을 살폈다. 한참 만에 숙소 아탈라이아 레지던트를 찾았다. 숙소는 허름한 3층 아파트의 2층에 있었다. 입구의 비밀코드 번호를 누르니 덜컹 문이 열렸다. 바로 정면에 가파른 좁은 계단이 나왔다. 올라가 열쇠로 방문을 따니 잘 정돈된 아담한 실내였다. “여기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녁에 드실 수 있도록 포트 와인과 빵, 잼, 에그 타르트,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맛있게 즐기세요.” 식탁 위에 꽃병과 함께 관리인 조안나가 써놓은 메모가 보였다. 금세 여로의 피곤함이 가시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아파트를 예약하기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 투숙객의 높은 평가점수 를 확인한 터였다. 비록 단칸방이었지만 깔끔했고 공간에 물건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한 것이 맘에 들었다. 부엌, 식탁, 침대, 화장실, 냉장고, 세탁기에 인터넷 서버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식사 후 색소폰을 들고 거리 산책에 나섰다. 낮에 보니 어젯밤 헤맸던 골목들이 아름답게 보였다. 가지런한 높이의 아파트들은 낡았고, 벽엔 낙서투성이였지만 저마다 독특한 색깔에 난간엔 빨래들이 널려있고, 발코니엔 화분이 장식돼 있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 냄새가 풍기는 듯해 정감이 갔다. 레일이 깔린 차도 위로 자동차와 트램이 곡예 하듯 번갈아 지나갔다. 내 앞으로 승객들을 태운 노란 트램이 덜컥거리며 다가오자,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 서울 동대문 근처에서 보았던 전차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래, 저걸 한 번 타봐야겠어! 겉모습이 아주 인상적인걸.” 트램은 리스본 시내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빼곡한 건물들 사이를 비집고 느릿느릿 잘도 다닌다. 나는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E28번 노선을 탔다. 알파마 뒤쪽의 그라사에서 바이루 알투(언덕 지구)의 쉬아두까지 시내 구경을 실컷 할 수 있었다. 리스본은 여느 대도시의 화려함은 없지만 고상한 매력을 지녔다. 유행에 아랑곳 않고 빈티지한 양복을 걸친 노신사의 느낌을 풍겼다. 난 지금 그 노신사와 함께 리스본 거리를 산책하는 중이다. 쪽빛 하늘에 파스텔 톤의 건물들,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노니는 새들, 광장의 벤치에서 담소하는 사람들이 조화롭게 보였다. 현실의 삶은 녹녹하지 않아도 도시 곳곳에 낙천성이 배어 있었다. 트램은 이곳 시민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동시에 여행자를 위한 관광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어느덧 리스본 스토리센터 앞에 도착했다. 트램에서 내려 이 도시의 상징인 호시우 광장으로 걸었다. 광장 중앙에는 독립 브라질의 첫 번째 왕인 동 페드로 4세 동상이 서있다. 이 광장은 13세기부터 국가의 주요 행사가 거행된 곳으로 언제나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광장 한가운데 청동분수에서 솟아나는 물줄기들이 햇살에 반짝였다. 또한 광장은 리스본 최고의 중심 상가 코메르시우 거리와 길 건너 태주 강변을 잇는 통로이기도 하다. 주변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노천카페들이 있어서 관광객뿐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버스킹을 하는 악사들도 곳곳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서양으로 흐르는 태주 강을 바라보며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을 연주했다. 2월 초의 강바람이 제법 차갑고 매서웠지만 노천카페에서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은 따듯해보였다.


파두의 집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고유한 노래와 가락이 있다. 프랑스에 샹송, 이태리에 칸초네, 스페인에 플라멩코가 있듯이 포르투갈엔 파두가 있다. 파두의 노랫말은 인간의 운명이나 역경, 사랑과 이별의 아쉬움을 테마로 한다. 파두는 숙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파생되었다. 거기서 비롯한 진한 향수와 한을 포르투갈 말로 사우다데(saudade)라고 하는데, 이 나라 사람들의 비극적 정서를 대변한다. 파두는 박자와 코드가 단순하고 섬세한 가락과 구슬픈 선율이 특징이다. 노래 중간에 들어간 당김음은 가수의 음색과 해석하는 스타일에 따라 심오한 정취 를 자아낸다. 포르투갈의 전통기타인 12현의 기따라(guitarra)와 만돌린으로 반주하는데 구성진 화음이 일품이다. 파두 가수를 파디스타라고 하는데, 그(녀)는 검은 드레스에 검은 숄을 두르고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노래한다. 목을 뒤로 젖혀서 성량을 최대로 발산하는 멜리스마 창법을 구사한다. 파두는 ‘파두의 집(Casa do Fado)’이라는 소규모 술집에서 파디스타, 연주자, 관객이 일체감을 이루며 완성된다. 파두의 집은 리스본 어디에나 있다. 특히 알파마 지구에 모여 있는데, 저녁 무렵이면 골목마다 파두 공연을 홍보하는 “파두 라이브 fado live”라고 쓰인 팻말과 파디스타의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내부를 흐릿한 색색의 조명으로 밝힌 파두의 집들을 기웃거리다보니 골목들이 한데 모이는 광장에 도달했다. 나는 서둘러 광장 저편의 <파두박물관Museo do Fado>으로 달려갔다. 폐관 시간이 임박해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2층 안쪽 벽면에 그려진 파두 가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영혼의 소리’를 지닌 가수라고 알려진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배경으로 인증 샷을 찍었다. 그녀의 공연 사진들과 음반, 기록물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눈을 감고 기도하듯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노래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노래들을 몇 곡 선택해 들었다. 파두박물관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비록 헤드폰을 끼고 음반으로 들었지만 음악이란 어디서 어떻게 듣는가의 현장감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녀의 섬세한 감성과 폭발적 가창력은 나의 머릿속에 하나의 청각영상으로 깊이 박혀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절규하듯 부르는 <검은돛배>의 구절이 귓전에 어른거린다.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이 지친 두 팔로 내게 손짓하는 것을 보았어요. 내게 손짓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바닷가 노파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 난 당신의 사랑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떠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의 노래에서 여인의 비장미가 느껴진다. 언제 바닷속에 침몰해 사라질지 모르는 뱃사람들의 운명이지만 주어진 바닷길을 당당히 헤쳐 나가는 그들의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파두란 우리들이 결코 마주하고 싸울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아무리 발버둥 치며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 왜 라고 물어도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것,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파두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을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공헌으로 인식한다. 파두박물관을 나와 숙소 쪽 언덕을 오르면서, 잠시 뒤돌아보니 마치 바다처럼 거대한 태주 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때마침 훅하고 불어오는 해풍이 비릿한 냄새를 풍긴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 배들이 떠다니고 뱃사람들은 고기잡이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눈을 감으니 동화 속 어부 이야기가 오버랩된다. 옛날 바닷가 갯마을에 가난한 어부가 살았다. 그 부부는 궁핍했지만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냈다.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갔던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 아내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 빌었다. 하늘이시여,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도록 도와주세요! 어느 날,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검은 물체가 보였다. 아, 남편의 배다! 기다림에 지쳐있던 아내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배, 그러나 그 배에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었다. 검은 돛,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녀의 남편은 영영 돌아올 수 없었다. 호드리게스의 <검은 돛배>는 이러한 뱃사공들의 슬픈 운명을 노래한다. 여행자의 눈에는 바다가 낭만과 환상으로 비춰지지만 바다에서 생활하는 어부에겐 죽음과 공포의 대상일지 모른다. 

 

포르투의 색소폰 선율
포르투갈의 수도는 리스본이지만 과거 한 때 포르투가 수도였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명도 포르투에서 나왔다. 대항해 시대부터 이 도시는 경제, 무역의 거점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왔다. 전통적 방식을 고수하는 포트 와인의 산지로 유명하다. 이 와인은 부드러우면서 달콤하고 강한 포도 향을 지녔다. 도루 강을 따라 와인 저장고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강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유람선들, 오크통을 싣고 오가는 와인 운반선 라벨로(Ravelo)들이 시선을 끈다. 강의 양쪽은 동 루이스 다리로 이어져 있다. 이 다리는 아치형 철교로 하층은 자동차와 보행자용이고 상층은 도시철도의 철로와 역시 보행자용 도로로 쓰인다. 내가 다리 위에서 석양의 풍경을 바라보고 걷는데 때마침 전동차가 스치듯 지나간다.앗, 위험해요! 아내가 내손을 잡아끌었다. 다리 아래의 도루 강 풍경은 그림 속에 정지된 듯 마냥 느릿하고 평화로웠다. 도루 강의 저녁노을 풍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의 채색화였다. 밤에 조명이 켜진 다리의 모습은 주변의 색과 어울려 더욱 아름다웠다. 아침식사 후 숙소를 나와 도루 강으로 향했다. 역시 낯선 거리는 발로 걸어야 제 맛이다. 이방인의 눈엔 모든 게 신선하게 보인다. 언어, 사람들, 건물, 가로등, 자동차, 공기의 냄새까지. 희귀한 사물들을 보면 즉각 카메라 셔터를 누르거나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았다. 옛 성터, 오래된 성당, 낡은 건축물 등의 고고학적 가치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가. 나 자신이 오래된 거리 풍경의 일원이 되어 그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렇지. 과거의 현재, 현재의 과거라는 말이 있지. 지나간 시간은 역사다. 그리고 과거 속을 걷는 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드나들었는지 닳아빠진 문고리의 쇠붙이는 까마반지르했다. 성당 건너편에 허물어진 성벽이 보인다. 그 아래쪽으로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어진다. 아내는 기념품 가게들을 기웃거리더니 결국 머플러와 아줄레주 장식품들을 샀다. “색깔이 좋아요. 머플러가 이 골목의 추억을 증거할거야.” 이곳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어두운 뒷골목도 고상하게 보인다. 건축양식도 색깔도 도로의 포석도 모두 일종의 설치미술이다. 예술품이 별 것이던가, 여행자의 마음속을 미적으로 자극해 영감을 준다면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탄의 언어는 시가 될 것이고, 소리로 흥얼거리면 노래가 될 것이다. 어느새 언덕 아래의 도루 강에 이르렀다. 도루 강변에 동아시아 관광객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일본인 신혼부부인 듯 커플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남자는 재일교포, 여자는 일본인인데 그들 역시 아마추어 색소포니스트란다. 나의 색소폰을 가리키며 어서 한 곡 연주하라고 부추긴다. 나 역시 여행의 추억을 담기 위해 어디서 연주할까 탐색하던 중이었다. 그들의 제안대로 강을 등지고 색소폰을 연주한다면 멋진 그림이 탄생할 듯싶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색소폰을 꺼내 들었다. 내가 색소폰 연주에 심취해 있는 동안 중국인들이 몰려와 박수치며 환호했다. 그 때 근처의 레스토랑 <토끼집 Chez Lapin>의 종업원이 다가왔다. 이런, 나의 연주가 식당 손님들에게 방해가되었나. 언제나 그렇듯이 길거리 색소폰 연주는 음악인 동시에 소음일 수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종업원 앙드레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를 식당으로 안내하는 것 아닌가. 나와 아내는 노천에 마련된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앙드레가 추천한 바칼라우라는 요리를 주문했다. 바칼라우는 말린 대구로 요리한 것인데,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란다. 앙드레의 말에 따르면 바칼라우는 우리말로 대구인데 옛날 대항해시대 배가 출항하기 전 양식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그것을 햇빛에 말린 것에서 비롯했단다. 그는 오늘날 포르투갈의 바칼라우 요리는 백가지가 넘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포르투의 상벤투 역을 들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고 가이드북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원래 베네딕트회 수도원(Mosteiro de São Bento de Avé-Maria)이 있던 곳인데 화재로 사원이 소실되자 그 자리에 역을 세웠다고한다. 보자르(Beaux-Arts) 양식에 따른 건축물이라 모습이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다. 리스본, 브라가, 코임브라 등 포르투갈의 주요도시로 가는 중앙역이다. 역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높은 천장과 거대한 청백색의 아줄레주 벽화에 압도당했다. 내부의 벽이 온통 청백색의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벽화의 내용은 이 나라의 역사적 사건들을 모자이크해 붙여놓은 것이란다. 아줄레주는 “표면이 매끄럽고 빛나는 돌”이란 뜻인데, 통상 주석 유약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 만든 독특한 타일장식을 말한다. 농담(濃淡)의 조절만으로 완성된 타일 예술의 절제미를 느낄 수 있다. 하얀 타일 위에 청색의 이미지들이 매우 청아하고 고급스럽다. 아줄레주는 수백 년 전부터 생산되어 일상생활에 폭넓게 쓰이며 오늘날 포르투갈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유명한 건축물과 미술관뿐만 아니라 성당 내부, 아파트 외벽, 표지판, 팻말, 화장실, 계단, 벤치등 어디에나 쓰인다. 나는 올드 타운을 가로질러 볼량 시장으로 향했다. 100년 전통의 포르투 최대 재래시장이란다. 시장 구경도 하면서 필요한 식재료도 사보고 싶었다. 시청사가 정면에 있는 리베르다드 대로는 지날 때마다 새로웠다. 알면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발길이 닿는 곳 마다 고색창연한 분위기에 시간의 흔적들이 묻어났다. 시장 내부에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 식품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업종에 따라 늘어서 있고, 외부에는 옷가게, 커피숍, 향수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있었다. 한국의 재래시장에서처럼 주로 나이든 아줌마들이 야채, 과일, 감자, 곡물 등을 팔았다. 한 끼 양의 쌀, 딸기, 상추등을 팔면서도 저울로 잰 후 가격을 매기고, 이어서 한줌 더 얹혀주고는 했다. 이 나라 시장사람들의 후한 인심과 미소, 친절함은 삶속에 녹아있는 듯하다. 레스토랑이나 슈퍼마켓, 베이커리 등에 서도 느꼈지만 생활물가는 다른 대도시보다 저렴했다. 내일은 포르투를 떠난다. 마지막 밤, 여느 때 같으면 근사한 야경의 레스토랑에서 고급요리와 와인을 놓고 세레모니를 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뜨거운 쌀밥에 된장국, 상추쌈이 유달리 그리웠다. 그리움은 노스탤지어에서 비롯한다. 나는 볼량의 재래시장 상인들에게서 어떤 한국적 풍토를 느꼈을지 모른다. 한반도 남쪽 끝 부산과 이베리아반도 서쪽 끝 포르투는 지리적으로 멀다. 하지만 바다의 비릿한 냄새와 전통시장의 분위기에서 두 도시가 너무도 닮았다. 향수병은 이렇게 우연한 것에서도 도진다. 오늘은 된장국에 쌈장으로 향수병을 달래야겠다.

 

 

글 | 박형섭 부산대 불문과 교수
사진 | HAM.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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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ESSAY] 포르투갈의 파두와 아줄레주 속의 색소폰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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