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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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AZZ CLUB] 우리나라 최초의 재즈클럽 "ALL THAT JAZZ"
    (월간색소폰)염재인 기자= 어느 누구도 밟지 않은 눈 내린 대지,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살이 에이는 그 눈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한국 재즈 1세대가 우리나라에 재즈를 선물했다면, 올댓재즈는재즈가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올댓재즈가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은 곧, 한국 재즈카페 역사의 발자취이다.거장들이 선사하는 열정적인 무대는 자칫 가벼운 마음으로 올댓재즈에 방문한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올댓재즈에서는 자신이사랑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감내하며 피 나는 노력을 했을 거장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About ALL THAT JAZZ올댓재즈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문을 연 재즈 클럽이다. 1976년 오픈한 이래 한국의 재즈 역사와 그 길을 함께 걸어 온 올댓재즈는 매일 마다 새로운 재즈 공연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2번 출구를 나와 해밀턴호텔 옆길을 직진하다 보면 작은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때 우측으로 30미터 정도 길을 걸으면 올댓재즈를 만날 수있다. 올댓재즈의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흡사 미국의 어느 유명한 재즈바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블루노트라는 명성이 어색하지 않다.거장의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곳우리나라 최초라는 타이틀을 걷어 내더라도 올댓재즈는 특별하다. 다른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재즈 거장들을 올댓재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라틴 타악기의 거장인 류복성 같은 아티스트가 바로 그 예다. 그는 한국 재즈 1세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에도 출연한 바 있다. 거장들이 선사하는 열정적인 무대는 자칫 가벼운 마음으로 올댓재즈에 방문한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올댓재즈에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감내하며 피나는 노력을 했을 거장들의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ALL THAT JAZZ, 제대로 즐기자!올댓재즈는 우리나라 재즈 클럽을 대표하는 만큼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다. 주말 같은 경우 조금이라도 늦으면 한참 기다려야 하니 참고한다. 매일매일 출연진들이 바뀌기 때문에, 방문 전에 미리 올댓재즈 홈페이지에 들러 출연진들을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댓재즈에서는 공연을 관람하면서 식사가 가능하며, 주로 메뉴는 피자나 파스타, 샐러드 종류이다. 주류는 칵테일이나 와인, 위스키까지 다양하다. 1인 당입장료 5,000원이면 재즈 신예의 신선한 연주부터 거장의 혼이 담긴연주까지 즐길 수 있다. 단, 입장료는 현금만 가능하다. 글 | 염재인 기자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3-01
  • 영혼을 울리는 색소폰 선율의 소유자 테너 색소포니스트 '박정호'
    (월간색소폰)염재인 기자=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는 사람을 수없이 울고 웃게 한다. 그 오르내리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기도, 절망하기도한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좌절의 폭풍우 한가운데서 때로 우리는 뜻밖의 행복을 마주한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이가 또 있을까. 양궁 선수에서 사업가로 이제는 색소포니스트로 우리 곁에 서 있는 그를 만나본다. 현재 10년 경력의 색소포니스트이지만, 학창시절에는 운동선수였다고 들었다.중학교 때 양궁을 시작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체육특기생으로 다녔다. 내 성격이 다소 자유분방한 편이었기 때문에 양궁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때문에 성적이 괜찮았지만 포기하고 이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운동선수를 그만둔 후, 색소포니스트가 되기 전의 박정호 씨의 삶이 궁금하다.백화점에서 스포츠용품 관련 사업을 했다. 당시 의류 쪽으로 사업 확정을 하려다가 무리하는 바람에 40억짜리 부도가 나고 말았다. 내 욕심이 실패의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시 나쁜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힘이 들었다. 기분 전환 겸 강원도 일대를 다니다가 월정사에 갔는데 입구 쪽에서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렸다. 어떤 분이 색소폰 소프라노를 불고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색소폰 소리인지도 몰랐다. 그 분도 사업에 실패하고 시름에 차 있던 중 색소폰 연주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동변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6개월 정도 잊고 있다가 30만원짜리 색소폰 하나를 샀다. 이후 동호회에 들어가 처음 색소폰을 불게 되었다. 당시 부도가 난 뒤 1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산이 완전히 되지 않았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색소폰을 불 때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그는 “아득한 절망의 길 끝에서 들었던 색소폰 소리가 그를 색소폰 연주자의 삶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운명처럼 색소폰을 불때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다른 소리를 만들어낼 때는 희열감마저 들었다고한다. 어느덧 위안의 도구였던 색소폰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되고 있었다.‘박정호’ 하면 색소폰 동호회 색소피아를 빠뜨릴 수 없다. 처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현재 색소피아 부회장직을 맡은 지 5~6년째이다. 처음 색소폰을 배운 지 10개월정도 되었을 때 색소피아가 창설되었다. 당시 색소피아 동호회의 지역장을 뽑고 있었는데 내가 인천 지역장을 맡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동호회들끼리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동호회와 학원 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지역장이 되고 나서 이런 분위기를 깨보자고 생각했다. 각 동호회와 학원을 돌아다니며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인천 지역 색소폰 모임을 추진했다. 주위에서는 “많이 와 봐야 2~30명 정도 모일 것이다”라며 만류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송도에 있는 큰 식당에 100명 예약을 했는데 140여 명이 모인 것이다. 아마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이 인천 색소폰 동호회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연주자 활동과 색소피아 활동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사실 연주자 활동에 비중을 두고 싶어 작년에 부회장직 사의를 밝혔다. 하지만 후임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1년 만에 다시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맡아달라는 요청이 계속되어 다시 맡게 되었다.그는 색소피아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색소피아 정기모임 때 후원업체 선정이나 프로 연주자 섭외 등 행사 전반을 진행하고, 색소피아 지역장 선출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힘들긴 하지만 색소피아에 애정이 많은 만큼 즐겁게 일하고 있다”라며 웃음지었다.색소피아 부회장이 아닌 프로 색소포니스트로서도 많은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그중 <3인3색 콘서트>에 2016년과 2017년에 두 차례 참여했다. 이 콘서트만의 매력은 무엇인가.<3인3색 콘서트>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예전부터 내 이름을 건 공연을 갖고싶었다. 콘서트 이름처럼 세 명의 색이 다른 연주자들을 섭외해 진행하는 작은 콘서트이다. 출연진은 가능한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한쪽성별로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젊은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출연진도 젊은 친구들을 주로 섭외하고 있다. 처음 공연을 기획했을 때 후원을 요청하기 위해 반주기회사 엘프를 방문했는데, 다행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기획했을 때는 연 2회였는데 너무 바빠 연 1회만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3인3색 콘서트>가 시작되었다.공연 준비할 때 힘들었던 점이나 보람 있었던 점이 있다면.공연 준비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음향이다. 연주자들에게 음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음향기기가 고가이기 때문에 비용과 음질 모두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3인3색 콘서트> 같은 경우, 세 명의 색소폰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음향팀과 조율이 꼭 필요하다. 이 부분도 내가 공연을 진행할 때마다 신경 쓰는부분이다.더불어 <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 ‘작은 콘서트’가 기억에 남는다.<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은 한 5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5년 전에는 콘서트가 아니라 강의였다. 국내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들을 초대해 강의를 듣고, 한 두곡 정도 색소폰 연주를 듣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유명 연주자들의 강의가 끝나 휴식기에 들어갈 때쯤 남진우 프로의 공연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남진우 프로의 공연은 재즈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른 장르 연주자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때문에 다양한 장르로 진행하자는 큰 뼈대를 세웠다. 더불어 남진우 프로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와인을 제공해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무르익게 했다.<3인3색 콘서트>가 젊은 컨셉이라면, <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은 원로 선생님 중심으로 계획했다. 6~70대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은 상당한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러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공연은 수익이 거의 남지 않지만, 원로 선생님들의 설 자리를 마련한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더불어 아마추어 연주인도 매 공연 시 한 명씩 뽑아 게스트 자격으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원래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려고 했던 <맛있는 식당>은 인천의 색소폰 코리아가 예정했던 공연과 겹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서로 협의하여 격월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인천에서는 매달 다양한 색소폰 공연이 열리게되었다며 기뻐했다.이전에 개인 앨범 <꿈>을 발표했다고 알고 있다. 두 번째 앨범 발표 계획이 있나.내가 색소폰을 처음 잡았던 시기가 10년 전 9월이었다. 올해 9월 발매를 목표로 10주년 기념 2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색소포니스트로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나 자신의 장점을 말해달라니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다른 연주자들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력이 짧다. 때문에 연습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일례로 내가 처음으로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다. 3개월 정도였지만 실질적으로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았다. 당시 선생님의 색소폰 연주를 흉내 내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다. 내 색소폰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연주라고 착각할정도로 비슷하게 흉내를 냈다. 그는 자신이 기교가 화려한 연주자는 아니라며, 다만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덕분인지 그의 색소폰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느낀다.함께 공연하는 동료들의 연주를 들었을 때의 감상이 있다면.색소폰 연주를 들었을 때 배우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연주자들이 몇몇 있다. 예를들어 정용수 연주자 같은 경우 트로트를 연주하다 보니 특유의 트로트적인 느낌이있다. 장르가 발라드인 나와는 연주 방법이 맞지 않지만, 듣기에 상당히 좋고 닮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김미영 연주자의 경우에는 클래식을 전공했다. 그 때문인지 트로트를 연주해도 본연의 클래식함이 묻어 나오는 데 상당히 매력적이다.색소포니스트로서 롤모델이 있다면.사실 해외 유명 연주자들 중에는 롤모델이 없다. 그분들의 실력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나의 롤모델은 첫 번째 스승인 김정음 선생님이다. 실은 선생님과는 동갑내기이다. 김정음 선생님께 오랜 기간 동안 레슨을 받진 않았지만, 그분의 연주를 관찰하고 똑같은 소리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다. 화려하면서 감성을 울리는 점이 정말 좋아서 저 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향후 계획에 대해서 알고 싶다.올해 3월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초·중급 지도교수로 강의할 예정이다. 새로 시작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쓸 생각이다. 또한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여러 공연들을 잘 준비해서 성황리에 마치고 싶고, 힘이 닿는 대로 후배들을 비롯해 색소폰 연주인들에게 도움을주고 싶다. 후배 연주자들의 경우 그들의 연주 활동이 직업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원로 선생님들의 경우 그분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마련해주고 싶다. 더불어 훌륭한 색소폰 연주를 위해 정진하는 것, 이 모든 활동들을 할 수 있도록 건강 유지에 힘쓰는 것이 목표이다.그는 엄청난 개런티를 받는 화려한 연주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접하기 힘든 연주자보다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연주자가 되어,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는 그. 절망의 나락에서 우연히 건져 올린 색소폰은 그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과 뜨겁게호흡할 수 있는 연주자를 꿈꾸는 색소포니스트 박정호. 앞으로도 그만의 깊은 울림을 기대한다. 글 | 염재인 기자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3-01
  • 영혼을 울리는 색소폰 선율의 소유자 테너 색소포니스트 '박정호'
    (월간색소폰)염재인 기자=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는 사람을 수없이 울고 웃게 한다. 그 오르내리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기도, 절망하기도한다. 이 예측할 수 없는 좌절의 폭풍우 한가운데서 때로 우리는 뜻밖의 행복을 마주한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이가 또 있을까. 양궁 선수에서 사업가로 이제는 색소포니스트로 우리 곁에 서 있는 그를 만나본다. 현재 10년 경력의 색소포니스트이지만, 학창시절에는 운동선수였다고 들었다.중학교 때 양궁을 시작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체육특기생으로 다녔다. 내 성격이 다소 자유분방한 편이었기 때문에 양궁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때문에 성적이 괜찮았지만 포기하고 이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운동선수를 그만둔 후, 색소포니스트가 되기 전의 박정호 씨의 삶이 궁금하다.백화점에서 스포츠용품 관련 사업을 했다. 당시 의류 쪽으로 사업 확정을 하려다가 무리하는 바람에 40억짜리 부도가 나고 말았다. 내 욕심이 실패의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시 나쁜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힘이 들었다. 기분 전환 겸 강원도 일대를 다니다가 월정사에 갔는데 입구 쪽에서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렸다. 어떤 분이 색소폰 소프라노를 불고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색소폰 소리인지도 몰랐다. 그 분도 사업에 실패하고 시름에 차 있던 중 색소폰 연주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인지 동변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6개월 정도 잊고 있다가 30만원짜리 색소폰 하나를 샀다. 이후 동호회에 들어가 처음 색소폰을 불게 되었다. 당시 부도가 난 뒤 1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산이 완전히 되지 않았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색소폰을 불 때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그는 “아득한 절망의 길 끝에서 들었던 색소폰 소리가 그를 색소폰 연주자의 삶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운명처럼 색소폰을 불때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다른 소리를 만들어낼 때는 희열감마저 들었다고한다. 어느덧 위안의 도구였던 색소폰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되고 있었다.‘박정호’ 하면 색소폰 동호회 색소피아를 빠뜨릴 수 없다. 처음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현재 색소피아 부회장직을 맡은 지 5~6년째이다. 처음 색소폰을 배운 지 10개월정도 되었을 때 색소피아가 창설되었다. 당시 색소피아 동호회의 지역장을 뽑고 있었는데 내가 인천 지역장을 맡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동호회들끼리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동호회와 학원 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지역장이 되고 나서 이런 분위기를 깨보자고 생각했다. 각 동호회와 학원을 돌아다니며 화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인천 지역 색소폰 모임을 추진했다. 주위에서는 “많이 와 봐야 2~30명 정도 모일 것이다”라며 만류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송도에 있는 큰 식당에 100명 예약을 했는데 140여 명이 모인 것이다. 아마 그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이 인천 색소폰 동호회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연주자 활동과 색소피아 활동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사실 연주자 활동에 비중을 두고 싶어 작년에 부회장직 사의를 밝혔다. 하지만 후임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1년 만에 다시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고사했지만 맡아달라는 요청이 계속되어 다시 맡게 되었다.그는 색소피아에서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색소피아 정기모임 때 후원업체 선정이나 프로 연주자 섭외 등 행사 전반을 진행하고, 색소피아 지역장 선출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힘들긴 하지만 색소피아에 애정이 많은 만큼 즐겁게 일하고 있다”라며 웃음지었다.색소피아 부회장이 아닌 프로 색소포니스트로서도 많은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그중 <3인3색 콘서트>에 2016년과 2017년에 두 차례 참여했다. 이 콘서트만의 매력은 무엇인가.<3인3색 콘서트>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예전부터 내 이름을 건 공연을 갖고싶었다. 콘서트 이름처럼 세 명의 색이 다른 연주자들을 섭외해 진행하는 작은 콘서트이다. 출연진은 가능한 남자 두 명에 여자 한 명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한쪽성별로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젊은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출연진도 젊은 친구들을 주로 섭외하고 있다. 처음 공연을 기획했을 때 후원을 요청하기 위해 반주기회사 엘프를 방문했는데, 다행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기획했을 때는 연 2회였는데 너무 바빠 연 1회만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3인3색 콘서트>가 시작되었다.공연 준비할 때 힘들었던 점이나 보람 있었던 점이 있다면.공연 준비할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음향이다. 연주자들에게 음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음향기기가 고가이기 때문에 비용과 음질 모두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특히 <3인3색 콘서트> 같은 경우, 세 명의 색소폰 음색이 다르기 때문에 음향팀과 조율이 꼭 필요하다. 이 부분도 내가 공연을 진행할 때마다 신경 쓰는부분이다.더불어 <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 ‘작은 콘서트’가 기억에 남는다.<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은 한 5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다. 5년 전에는 콘서트가 아니라 강의였다. 국내 유명한 색소폰 연주자들을 초대해 강의를 듣고, 한 두곡 정도 색소폰 연주를 듣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유명 연주자들의 강의가 끝나 휴식기에 들어갈 때쯤 남진우 프로의 공연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남진우 프로의 공연은 재즈 중심이었기 때문에 다른 장르 연주자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때문에 다양한 장르로 진행하자는 큰 뼈대를 세웠다. 더불어 남진우 프로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와인을 제공해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무르익게 했다.<3인3색 콘서트>가 젊은 컨셉이라면, <박정호의 맛있는 음악식당>은 원로 선생님 중심으로 계획했다. 6~70대 연주자들의 연주 실력은 상당한데,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러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공연은 수익이 거의 남지 않지만, 원로 선생님들의 설 자리를 마련한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더불어 아마추어 연주인도 매 공연 시 한 명씩 뽑아 게스트 자격으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원래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려고 했던 <맛있는 식당>은 인천의 색소폰 코리아가 예정했던 공연과 겹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서로 협의하여 격월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인천에서는 매달 다양한 색소폰 공연이 열리게되었다며 기뻐했다.이전에 개인 앨범 <꿈>을 발표했다고 알고 있다. 두 번째 앨범 발표 계획이 있나.내가 색소폰을 처음 잡았던 시기가 10년 전 9월이었다. 올해 9월 발매를 목표로 10주년 기념 2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색소포니스트로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나 자신의 장점을 말해달라니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다른 연주자들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력이 짧다. 때문에 연습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일례로 내가 처음으로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다. 3개월 정도였지만 실질적으로 한 달 정도 수업을 받았다. 당시 선생님의 색소폰 연주를 흉내 내기 위해 많은 연습을 했다. 내 색소폰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연주라고 착각할정도로 비슷하게 흉내를 냈다. 그는 자신이 기교가 화려한 연주자는 아니라며, 다만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덕분인지 그의 색소폰연주를 들은 사람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느낀다.함께 공연하는 동료들의 연주를 들었을 때의 감상이 있다면.색소폰 연주를 들었을 때 배우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연주자들이 몇몇 있다. 예를들어 정용수 연주자 같은 경우 트로트를 연주하다 보니 특유의 트로트적인 느낌이있다. 장르가 발라드인 나와는 연주 방법이 맞지 않지만, 듣기에 상당히 좋고 닮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김미영 연주자의 경우에는 클래식을 전공했다. 그 때문인지 트로트를 연주해도 본연의 클래식함이 묻어 나오는 데 상당히 매력적이다.색소포니스트로서 롤모델이 있다면.사실 해외 유명 연주자들 중에는 롤모델이 없다. 그분들의 실력이 상당히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나의 롤모델은 첫 번째 스승인 김정음 선생님이다. 실은 선생님과는 동갑내기이다. 김정음 선생님께 오랜 기간 동안 레슨을 받진 않았지만, 그분의 연주를 관찰하고 똑같은 소리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다. 화려하면서 감성을 울리는 점이 정말 좋아서 저 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향후 계획에 대해서 알고 싶다.올해 3월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초·중급 지도교수로 강의할 예정이다. 새로 시작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쓸 생각이다. 또한 지금까지 진행해왔던 여러 공연들을 잘 준비해서 성황리에 마치고 싶고, 힘이 닿는 대로 후배들을 비롯해 색소폰 연주인들에게 도움을주고 싶다. 후배 연주자들의 경우 그들의 연주 활동이 직업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원로 선생님들의 경우 그분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마련해주고 싶다. 더불어 훌륭한 색소폰 연주를 위해 정진하는 것, 이 모든 활동들을 할 수 있도록 건강 유지에 힘쓰는 것이 목표이다.그는 엄청난 개런티를 받는 화려한 연주가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접하기 힘든 연주자보다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연주자가 되어,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는 그. 절망의 나락에서 우연히 건져 올린 색소폰은 그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주었다. 사람들과 뜨겁게호흡할 수 있는 연주자를 꿈꾸는 색소포니스트 박정호. 앞으로도 그만의 깊은 울림을 기대한다. 글 | 염재인 기자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2018-03-01
  • 아름다운 인생을 연주하는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묵직한 색소폰의 소리처럼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이다. 색소폰 선율에 이끌려 동호회를 찾은 그들은 자신들만의 연주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색소폰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윤활유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다. 그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인생 속을 들여다본다. 함께 나누는 기쁨,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올해로 창단한 지 8년째인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처음 다섯 명의 소규모 동호회로 시작한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이제 회원 수 40여명을 가진 제법 큰 규모의 동호회로 성장했다. 색소폰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동호회 안과 밖에서 그 빛을 발한다.고양시 일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연주회 무대에 선 것만 해도 40회가 넘고, 주말마다 진행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100회를 훌쩍 넘겼다.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고양시 내의 다른 동호회와 연합하여 정기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 또한 올해 연말에는 관현악 대신 색소폰으로만 구성한 단독 합주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듯 고양시에서 열리는 행사는 어김없이 그들의 차지가 될 만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비좁은 지하 연습실에서 키운 열정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처음 다섯 명이 모여 지하 연습실에서 시작했다. 미약한 시작과는 달리 현재는 60평 규모의 연습실을 가지고 있는 제법 큰 동호회로 성장했다. 이렇게 동호회가 발전하기까지는 동호회 회원들의 노력이 컸음은 물론이다. 지하에서 연습하는 회원들을 보다 못한 최해순 회장은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대출받아 지상에 있는 연습실을 구했다. 회원들 역시 연주회나 봉사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등 동호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현재 음향실과 합주실그리고 개별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개인 방 열네 개와 직접 만든 무대까지 갖추게되었다.서툰 첫 무대, 그 설레었던 기억이제는 여유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색소폰 연주 무대.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한 곳은 행주산성 선착장이었다. 자신들만의 시간을 만끽하러 나온 타인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첫 색소폰 연주를 시작했다. 어느새 무관심한 눈빛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뀌었고, 그들이 연주하는 서툰 색소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박수 세례는 그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동호회 회원들은 그때의 벅찼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색소폰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 그들은 이 일을 계기로 큰 용기를 얻어 첫 무대였던 행주산성 선착장뿐만 아니라다양한 무대에 계속해서 오를 수 있게 되었다.봉사, 나에게 주는 행복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에게 있어서 연주 봉사활동은 삶의 일부이다. 100회가 넘는 봉사활동 횟수가 그들이 봉사활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말해 준다. 무지개요양병원, 일산현대요양병원, 효그린요양병원 등, 그들이 주말마다 찾아다닌 곳 중 에는 특히 요양병원이 많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갇혀 지내시는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는 이유다. 처음 봉사활동을 할 때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또한 단어 그대로 그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봉사활동을 하면 할수록 다른 분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것보다, 자신들이 행복한 기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동호회 회원, 그 이상의 의미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은 함께 동호회를 일구어 나갔기 때문에 그만큼 서로에 대해 애정도 남다르다. 회원들은 저녁이 되면 회원들끼리 색소폰을 들고 나가서 연주하고, 공연이 끝나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직접 음식을 장만해 음향장비와 발전기를 들고 야유회를 떠나기도 한다. 매년 3월 24일마다 창단연주회를 개최하고, 연말에는 송년연주회도 개최하는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들에게고양하모니색소폰 동호회 회원은 회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색소폰을 사랑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치관까지 닮아 있는 그들이기에, 서로에 대한 따뜻한마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해순 회장)前 하늘소리 색소폰 오케스트라 단장이었던 최해순 회장은 딸이 자신의 졸업연주회 때 색소폰 연주를 부탁한 것을 계기로 색소폰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현재 지도농협 능곡역 지점장인 그는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를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24일에 동호회를 만든 이후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동호회 회원 숫자도 어느덧 5명에서 40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키웠다. 그는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뿐만 아니라 덕양구에 있는 색소폰 동호회 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는데, 경기도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덕양구 색소폰 연합 <정기연주회>도 주관했다.색소폰 동호회를 만든 이후 그의 일상은 색소폰으로 가득 찬 모습이다. 정기 공연으로는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서정공원에서 매년 5~10월까지 매월 넷째주 토요일에, 일산 호수공원 수변무대에서는 1년에 두세 번 공연한다. 첫 공연 무대를 가졌던 행주산성 선착장에서도 1년에 서너 번 정도 공연을 진행하는 등 색소폰과 떨어질 날이 없다. 그의 삶에서 봉사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요양병원에서 첫 연주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직까지도 봉사활동을 쉬지 않고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봉사활동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열정을 대변해준다. 그는 그와 동호회 회원들의 시간이 허락되는 한 연주활동과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해순 회장은 올해 연말에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색소폰 단독 합주공연을 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이기재 회원)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있다. 일흔 넷의 이기재회원은 사업을 하던 중 위암 선고를 받았다. 결국 작년 7월에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위를 많이 절제한 수술이다 보니 소식을 해야 하는 등의 힘든 상황이 많았다. 그동안 하던 사업마저 정리하고 건강 회복에 힘쓰던 그는 색소폰 연주를 계속하고 싶었다. 의사에게 문의한 결과, 색소폰이 심폐 기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에 안도했다. 그는 색소폰이 그에게 신체적으로도 좋은 효과를 주지만, 정서적으로도 큰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덕분에 좋은 곳에서 많은 사람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고, 본인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그는 건강을 위해 그리고 인생의 행복을 위해 색소폰 을 늘 곁에 둘 생각이다.(오세욱 회원)오세욱 회원은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창단 멤버이다. 그는 어릴 적 중학교 음악 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이 피아노를 배웠다. 그 덕분에 색소폰을 연주할 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색소폰의 음색이 사람과 가장 가까운 악기라고 생각한다. 비록 색소폰 연주에는 가사가 없지만, 색소폰의 소리와 다양한 테크닉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 사업을 하는 탓에 바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시간을 쪼개서라도 틈나는 대로 연습실에 나와서 연습을 한다.그의 연습이 빛을 발할 때는 바로 공연과 봉사활동을 할 때다. 특히 처음 봉사활동을 할 때는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계속 진행하다 보니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더 많이 느낀다. 부족한 솜씨지만 앞으로 연주 실력을 조금 더 키워서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고 한다.(이시은 회원)이시은 회원의 경우, 그녀의 삶 자체가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다. 2003년에 그녀의 아들 친구가 누군가의 괴롭힘 끝에 세상을 등진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을 본 후 그녀는 자치센터에서 청소년지도협의회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저녁때마다 야광봉을 들고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는 등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다. 현재 사단법인 미래라는 단체에 속해 있는 그녀는 어르신들을 돌보거나, 집 청소를 해주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색소폰을 배우게 된 계기 역시 요양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악기 연주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색소폰을 연주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녀에게 있어서 색소폰은 봉사활동을 위한 수단이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루어주는 매개체이다.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일산 현대재활요양병원> 연주 봉사활동2018년 2월 10일 토요일 오후 1시, 일산 현대재활요양병원에서 흥겨운 색소폰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로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소리이다. 그들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나타난다. 주로 어르신들이 계시는 요양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동호회가 만들어진 지 8년 동안 100회가 넘게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병원 역시 이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인 듯 동호회 회원과 병원 직원, 환우들 간에 매우 친숙한 모습이었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자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공연 전 연습삼아 부는 색소폰 소리에도 흥에 겨운 듯 손으로 박자를 맞추어 공연에 대한 설렘을 엿볼 수 있었다.오후 1시 30분, 사회자 김광현 회원의 인사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기재 회원의 <목포의 눈물>을 시작으로 김은주 회원의 <무조건>, 박상혁 회원의 <진또배기> 그리고 이시은 회원의 <마포종점> 순으로 진지하게 연주했다. 특히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의 공연에서는 동호회 회원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무대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공연 중간에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에 관객들은 더욱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시간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할 만큼 열정적인 무대였다. 모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글 | 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3-01
  • 아름다운 인생을 연주하는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묵직한 색소폰의 소리처럼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들이 있다. 바로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이다. 색소폰 선율에 이끌려 동호회를 찾은 그들은 자신들만의 연주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 색소폰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윤활유이기에 더없이 소중한 존재이다. 그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인생 속을 들여다본다. 함께 나누는 기쁨,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올해로 창단한 지 8년째인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처음 다섯 명의 소규모 동호회로 시작한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이제 회원 수 40여명을 가진 제법 큰 규모의 동호회로 성장했다. 색소폰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동호회 안과 밖에서 그 빛을 발한다.고양시 일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연주회 무대에 선 것만 해도 40회가 넘고, 주말마다 진행하고 있는 봉사활동은 100회를 훌쩍 넘겼다.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고양시 내의 다른 동호회와 연합하여 정기연주회도 개최하고 있다. 또한 올해 연말에는 관현악 대신 색소폰으로만 구성한 단독 합주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이렇듯 고양시에서 열리는 행사는 어김없이 그들의 차지가 될 만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비좁은 지하 연습실에서 키운 열정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처음 다섯 명이 모여 지하 연습실에서 시작했다. 미약한 시작과는 달리 현재는 60평 규모의 연습실을 가지고 있는 제법 큰 동호회로 성장했다. 이렇게 동호회가 발전하기까지는 동호회 회원들의 노력이 컸음은 물론이다. 지하에서 연습하는 회원들을 보다 못한 최해순 회장은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대출받아 지상에 있는 연습실을 구했다. 회원들 역시 연주회나 봉사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등 동호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는 현재 음향실과 합주실그리고 개별적으로 연습할 수 있는 개인 방 열네 개와 직접 만든 무대까지 갖추게되었다.서툰 첫 무대, 그 설레었던 기억이제는 여유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색소폰 연주 무대.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한 곳은 행주산성 선착장이었다. 자신들만의 시간을 만끽하러 나온 타인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그들은 떨리는 손으로 첫 색소폰 연주를 시작했다. 어느새 무관심한 눈빛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뀌었고, 그들이 연주하는 서툰 색소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박수 세례는 그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동호회 회원들은 그때의 벅찼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색소폰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 그들은 이 일을 계기로 큰 용기를 얻어 첫 무대였던 행주산성 선착장뿐만 아니라다양한 무대에 계속해서 오를 수 있게 되었다.봉사, 나에게 주는 행복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에게 있어서 연주 봉사활동은 삶의 일부이다. 100회가 넘는 봉사활동 횟수가 그들이 봉사활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말해 준다. 무지개요양병원, 일산현대요양병원, 효그린요양병원 등, 그들이 주말마다 찾아다닌 곳 중 에는 특히 요양병원이 많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갇혀 지내시는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는 이유다. 처음 봉사활동을 할 때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한다. 또한 단어 그대로 그들에게 봉사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봉사활동을 하면 할수록 다른 분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것보다, 자신들이 행복한 기운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동호회 회원, 그 이상의 의미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은 함께 동호회를 일구어 나갔기 때문에 그만큼 서로에 대해 애정도 남다르다. 회원들은 저녁이 되면 회원들끼리 색소폰을 들고 나가서 연주하고, 공연이 끝나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직접 음식을 장만해 음향장비와 발전기를 들고 야유회를 떠나기도 한다. 매년 3월 24일마다 창단연주회를 개최하고, 연말에는 송년연주회도 개최하는 등 기회가 될 때마다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그들에게고양하모니색소폰 동호회 회원은 회원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색소폰을 사랑하는 이유뿐만 아니라 인생의 가치관까지 닮아 있는 그들이기에, 서로에 대한 따뜻한마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해순 회장)前 하늘소리 색소폰 오케스트라 단장이었던 최해순 회장은 딸이 자신의 졸업연주회 때 색소폰 연주를 부탁한 것을 계기로 색소폰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현재 지도농협 능곡역 지점장인 그는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를 있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24일에 동호회를 만든 이후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동호회 회원 숫자도 어느덧 5명에서 40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키웠다. 그는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뿐만 아니라 덕양구에 있는 색소폰 동호회 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는데, 경기도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덕양구 색소폰 연합 <정기연주회>도 주관했다.색소폰 동호회를 만든 이후 그의 일상은 색소폰으로 가득 찬 모습이다. 정기 공연으로는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서정공원에서 매년 5~10월까지 매월 넷째주 토요일에, 일산 호수공원 수변무대에서는 1년에 두세 번 공연한다. 첫 공연 무대를 가졌던 행주산성 선착장에서도 1년에 서너 번 정도 공연을 진행하는 등 색소폰과 떨어질 날이 없다. 그의 삶에서 봉사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요양병원에서 첫 연주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직까지도 봉사활동을 쉬지 않고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봉사활동을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열정을 대변해준다. 그는 그와 동호회 회원들의 시간이 허락되는 한 연주활동과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해순 회장은 올해 연말에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색소폰 단독 합주공연을 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이기재 회원)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있다. 일흔 넷의 이기재회원은 사업을 하던 중 위암 선고를 받았다. 결국 작년 7월에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위를 많이 절제한 수술이다 보니 소식을 해야 하는 등의 힘든 상황이 많았다. 그동안 하던 사업마저 정리하고 건강 회복에 힘쓰던 그는 색소폰 연주를 계속하고 싶었다. 의사에게 문의한 결과, 색소폰이 심폐 기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에 안도했다. 그는 색소폰이 그에게 신체적으로도 좋은 효과를 주지만, 정서적으로도 큰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덕분에 좋은 곳에서 많은 사람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고, 본인을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그는 건강을 위해 그리고 인생의 행복을 위해 색소폰 을 늘 곁에 둘 생각이다.(오세욱 회원)오세욱 회원은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창단 멤버이다. 그는 어릴 적 중학교 음악 교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이 피아노를 배웠다. 그 덕분에 색소폰을 연주할 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는 색소폰의 음색이 사람과 가장 가까운 악기라고 생각한다. 비록 색소폰 연주에는 가사가 없지만, 색소폰의 소리와 다양한 테크닉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 사업을 하는 탓에 바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시간을 쪼개서라도 틈나는 대로 연습실에 나와서 연습을 한다.그의 연습이 빛을 발할 때는 바로 공연과 봉사활동을 할 때다. 특히 처음 봉사활동을 할 때는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계속 진행하다 보니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더 많이 느낀다. 부족한 솜씨지만 앞으로 연주 실력을 조금 더 키워서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고 한다.(이시은 회원)이시은 회원의 경우, 그녀의 삶 자체가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다. 2003년에 그녀의 아들 친구가 누군가의 괴롭힘 끝에 세상을 등진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을 본 후 그녀는 자치센터에서 청소년지도협의회 회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저녁때마다 야광봉을 들고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는 등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다. 현재 사단법인 미래라는 단체에 속해 있는 그녀는 어르신들을 돌보거나, 집 청소를 해주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색소폰을 배우게 된 계기 역시 요양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악기 연주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가 색소폰을 연주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녀에게 있어서 색소폰은 봉사활동을 위한 수단이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루어주는 매개체이다.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일산 현대재활요양병원> 연주 봉사활동2018년 2월 10일 토요일 오후 1시, 일산 현대재활요양병원에서 흥겨운 색소폰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로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회원들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소리이다. 그들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나타난다. 주로 어르신들이 계시는 요양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동호회가 만들어진 지 8년 동안 100회가 넘게 진행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병원 역시 이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인 듯 동호회 회원과 병원 직원, 환우들 간에 매우 친숙한 모습이었다. 공연시간이 가까워지자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과 병원 관계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르신들은 공연 전 연습삼아 부는 색소폰 소리에도 흥에 겨운 듯 손으로 박자를 맞추어 공연에 대한 설렘을 엿볼 수 있었다.오후 1시 30분, 사회자 김광현 회원의 인사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이기재 회원의 <목포의 눈물>을 시작으로 김은주 회원의 <무조건>, 박상혁 회원의 <진또배기> 그리고 이시은 회원의 <마포종점> 순으로 진지하게 연주했다. 특히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의 공연에서는 동호회 회원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무대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공연 중간에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모습에 관객들은 더욱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시간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할 만큼 열정적인 무대였다. 모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글 | 염재인 기자 suyeon@keri.or.kr
    • 월간색소폰
    • Focus
    2018-03-01
  • 2018년 03월(21호)
    - 아름다운 인생을 연주하는 '고양하모니색소폰동호회' - 영혼을 울리는 색소폰 선율의 소유자 테너 색소포니스트 '박정호' - [MUSIC ESSAY] 그리스 지중해 선상으로의 '색소폰초대' - [JAZZ CLUB] 우리나라 최초의 재즈클럽 "ALL THAT JAZZ" - [JAZZ AGE] 세계 재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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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 03월
    2018-03-01
  • 다함께 연주하는 앙상블 색소폰 - 어쩌다 마주친 그대
    곡 연주 시 유의점 [A]부분- Intro 없이 바로 시작됩니다. Alto 2nd의 멜로디를 제외한 나머지 파트들은 모두 8분음표의 쿵짝쿵짝 리듬으로 진행되므로 서로 빨라지지 않게 주의하여 연주합니다. [B]부분- Alto 2nd, Tenor, Baritone에서 나오는 리듬이 조금 까다롭기 때문에 합주 전에 개인리듬 연습이 필요합니다.- [A]부분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음량을 키워서 연주합니다. [C]부분- Tenor의 멜로디는 A부분의 Alto 2nd과 거의 유사합니다.- 22마디에 Baritone을 제외한 나머지 파트가 화음으로 연주되므로 서로의 호흡을 잘 살피면서 연주합니다. [D]부분- 중간 Interlude 부분입니다. 만약 곡이 시작할 때 Intro를 넣고 싶다면 이 부분을 사용해도 됩니다.- Alto 1st의 음역대가 조금 높기 때문에 고음 연습이 필요합니다. [E]부분- [B]와 멜로디가 동일한 부분입니다.- [B]부분에서는 역동적으로 연주했다면 이 부분에서는 차분하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연주합니다. [F]부분- 마지막 마무리 부분입니다. [C]와 거의 비슷하며 마지막 두 마디만 다릅니다.- 맨 마지막 음이 네 파트가 동시에 나올 수 있도록 연주시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사인을 주고 받습니다. (월간색소폰)김동현 뉴아더스 작곡가= suyeon@keri.or.kr
    • Lesson
    • 앙상블
    2018-02-08
  • 다함께 연주하는 앙상블 색소폰 - 너의의미
    연주 시 유의점 [A]부분- Alto 2nd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부분입니다. 나머지 파트는 무겁지 않고 통통 튀는 느낌으로 연주합니다. [B]부분- [A]부분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음량을 줄여서 연주합니다.- Alto 1st는 멜로디 텅잉을 부드럽게 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합니다. [C]부분- Alto 1st를 제외한 나머지 파트 특히 Alto 2nd와 Tenor의 리듬이 어려우므로 연주 전 개인 연습을 꼭 하도록 합니다.- 21마디에 모든 파트들은 디크레센도(점점 여리게) 악상을 잘 지켜서 mp(메조 포르테)로 잘 도달할 수 있게 연주합니다. [D]부분- Tenor의 멜로디를 시작으로 점차 쌓여가는 형태의 부분입니다. 전체적으로 커지지 않고 일정한 음량을 유지하며 곡을 마무리 하는 게좋습니다. (월간색소폰)김동현 뉴아더스 작곡가= suyeon@keri.or.kr
    • Lesson
    • 앙상블
    2018-02-05
  • 가슴 깊이 울리는 재즈 색소폰 A, B, C - 어텀리브스(Autumn Leaves,1980년대)
    그럼 곡의 설명으로 들어가겠습니다.- (A)1번 C#은 Em의 6음, 8번 F#은 Em의 9도입니다.- 11번은 D7의 B음, 즉 D7의 13도, B♭은 ♭13도입니다.- 12번의 F#은 코드 Gmajor 7도 음, A음은 9도입니다. 즉 11-12번까지 긴장감(tension)을 사용하여서 13번에서 잘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음의 진행이 재즈의 매력이며, 특징이지요.- 21번은 Em의 고음인 E, E♭, D, D♭까지 반음계(cromatic)를 사용하였으며, 31번 마지막 ending에서 프리템포로 코드톤B7( B, D#, F#, A)을 사용하고 부르스스케일 적으로 E음으로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이음 F#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또는 저음인 F#Em의 9도로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Emi(e g. B) Em6(C#), Gmajor 9(G b d F# A), D7(D, F#, A,C), E(9th), G(11th), B(13th), B♭(♭13th). (월간색소폰)정창균 칼럼니스트=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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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
    2018-02-05
  • 트로트와 함께하는 색소폰 연주 – 지평선은 말이 없다
    이번호에는 트로트 매니아들이 좋아 하는 S미디어의 ‘강승용 명작 색소폰’ 14번째 곡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 곡, 이미자 노래의 ‘지평선은 말이 없 다’를 가수 배호 버전으로 연주한 알 토색소폰 연주를 설명합니다. 이 곡의 어려운 부분은 프레이싱입 니다. 원곡과 배호의 해석과의 차이 점을 찾아 이해하면 가요의 수준을 높여가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 합니다. 다음 페이지의 악보는 제가 레코딩 때 사용한 그 악보입니다. 반드시 가수 배호의 노래를 들어 보신 후 연주하시길 바랍니다. 1. 9번째 소절의 세 번째 박자 F#음을 정박보다 약간 늦추어 연주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가사 표현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번째 소절의 첫 번째 박자와 11번째 소절의 첫 번째 박자는 프레이싱을 위하여 반의 반 박자 늦추어 연주하였습니다. 2. 7번째 소절의 두 번째 박자부분은 1절에는 악보대로 연주하지만, 2절에는 C#음을 추가하여 연주합니다. 홈페이지의 기사내용은 일부 내용만 보여지며 전체기사(내용과 사진, 악보)는 월간색소폰에 실려있습니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월간색소폰)강승용 KSA대한민국색소폰연주자협회 명예회장= suyeon@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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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트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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