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1(월)
 

 

색소폰 인구가 늘면서 다양한 아마추어 경연대회가 지자체, 기업과 매체에서 생기고 있다. 색소폰은 다른 관악기에 접근성이 좋아 남녀노소가 입문하기 좋고, 클래식부터 대중가요까지 다양한 장르를 연주할 수 있다. 색소폰 악기 하나로 연주할 수 있어 버스킹도 할 수 있다. 색소폰 공연과 경연대회 무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다.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무대를 준비하는지 연재하고자 한다.

 

흰 파머 머리 장발에 콧수염이 잘 어울리는 그는, 색소폰과 음향장비를 싣고 전국 팔도로 사람을 찾아 떠난다. ‘팔도버스킹’ 명함에 적힌 ‘장소불문’이 눈길을 끈다. 색소폰에 대한 열정의 삶은 ‘좌로는 건강, 우로는 색소폰’이라는 그의 인생목표에 진득하게 녹아있어서 앞으로 더 행복한 무대를 꿈꾸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선교음악활동의 꿈을 키우다

 

그는 1957년생으로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났다. 동네 선배들에게 기타를 배웠고, 그룹사운드에 들어가 밴드활동으로 바쁜 시절을 보냈다. 1982년에는 활동하던 호텔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하는 충격적 사건이 있었고, 1988년 범죄와의 전쟁으로 인해 많은 연주인들이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 당시 그도 처갓집 식구들과 아내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끝내는 음악활동을 접게 되었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는 등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열심히 사업을 했다. 2013년에 귀국하게 되었는데, 손아래 동서로부터 뜻밖에 값진 색소폰을 선물 받았다. 음악을 다시 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는 오랜 기간 선교음악활동을 꿈꾸어왔는데, 색소폰을 해보면 좋겠다는 아내의 응원도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2년 동안은 고통스런 병원생활로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연주하기엔 최악의 조건

 

2016년 58세에 병원을 퇴원하자마자 본격적으로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에 3~4시간 연습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연습했던 그 시기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과정 자체는 너무도 힘들었다. 왜냐하면 색소폰을 연주하기엔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과 협심증, 당뇨 등을 앓고 있었다. 양손의 근육을 사용해서 연주를 해야 되는데, 양쪽 팔 이두박근 근육을 절단하는 수술을 1년에 4번을 했으니 오죽했을까. 가벼운 물건조차도 들기 어려웠기 때문에 연습을 하려면 팔이 너무 아파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해야 했다. 계단을 오르려면 숨이 차서 주저앉게 된다. 우울증이 심해졌다. 그러나 꼭 색소폰을 배워야겠다는 굳은 마음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더 열심히 했다. 신기하게도 색소폰만 잡으면, 그 시간만큼은 모든 고통과 근심이 사라졌다. 마침내 우울증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러한 악조건은 오히려 더 빨리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전국 색소폰경연대회 대상 수상

 

그는 색소폰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지 2년도 못되어 전국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7년 제1회 보은 대추축제 전국 아마추어 색소폰경연대회 장년부 대상, 2019년 태안에서 개최한 제3회 전국 아마추어 색소폰경연대회 대상을 받은 것이다. 이런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자의 연주를 많이 듣고 따라 마스터하십시오. 그게 최고의 스승입니다.”라고 답했다. 또, 그는 첫 번째 대상을 받은 대회에 임했던 심정을 소개한다. 이번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못 받으면 색소폰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한다. 과거에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 오롯이 발동했던 것이다. 그가 어떤 마음자세로 색소폰 배워왔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팔도버스킹, 1년에 100회 이상


그는 2017년부터 회원들과 함께 버스킹을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당시 악기를 잘 들 수도 없는 관계로 서서 연주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모임에서 자신도 모르게 서서 연주를 하더라는 것이다. 연주를 마친 후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버스킹을 위해 낙원상가에 가서 고가의 음향장비를 구입하고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코로나 있기 전엔 1년에 100회 이상 전국을 다니면서 각 지역 회원들과 함께 버스킹을 했습니다. 어떤 날은 혼자 여섯 시간을 연주하고, 기타 치며 노래한 적도 많았고요.”

 

2019년 9월에는 현지인들의 요청으로 베트남 하노이까지 날아가 호안끼엠 저수지 앞에서 버스킹을 했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서 4박 5일은 너무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작년 봄에는 〈팔도버스킹〉이란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공연 중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낸 돈을 불우이웃을 위해 적법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다. 코로나가 잠잠해진다면 올해 모금액과 합하여 개안수술이 필요한 사람 또는 정말로 어려운 분들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이렇게 많은 버스킹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색소폰 음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연을 못하면 몸이 아프니 몸을 혹사시키더라도 병마를 이겨야 된다는 마음이 앞선다. 언제나 장소불문, 두둑한 배짱으로 공연을 추진한다. 매일 30여알의 약을 먹으며 겨우겨우 지탱해나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악기 드는 것조차 힘겹다가도 음향장비를 세팅하고 정리할 때는 전혀 아픈 것을 모르니 놀랍기만 했다. 하지만, 집에 오면 팔의 통증으로 인하여 진통제를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삶이 너무도 즐겁다고 말했다. 요즘은 코로나가 길어져서 버스킹을 못하고 있다. 너무도 안타깝다. 빨리 종식되어 예전처럼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좋은 음향, 좋은 무대

 

좋은 무대를 위해서 좋은 음향장비를 갖추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무엇보다도 관객들이 연주를 듣기에 편안해야 한다. 어떤 야외행사를 보면 너무 크고 거친 음으로 인하여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본다. “좋은 음향이라 하면, 깨끗한 음질에다 정확한 전달력이 있어야 합니다. 음향 장비를 다루는 사람마다 듣는 소리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좋은 무대준비를 위해서는 음을 잘 분별하는 좋은 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음향장비를 보면 오디오믹서는 ‘YAMAHA MGP-16X’, 앰프는 스페인제 ‘Master Audio’이다. 따뜻한 감성이 우러나는 풍부하고 부드러운 음색이 특징이다. “저는 연주할 때마다 색소폰 음색에 취해 저절로 흥이 납니다.” 자연스러운 음향은 제일 먼저 연주자를 즐겁게 한다. 연주자가 즐거워야 관객도 즐겁다. 그러면 관객들의 공연 몰입도가 높아진다. 그는 디지털 형보다는 아나로그 형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아나로그 형이 각각 다른 현장에 맞게 세팅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그는 매번 좋은 무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좋은 음향장비를 갖추고 버스킹을 하는 데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관객과 만나는 설렘


“내일은 어떤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른 봄 첫 출조하는 낚시꾼처럼 버스킹 전날부터 무척 마음이 설렌다. 어떤 모자를 쓸까? 어떤 옷을 입을까? 앙코르 곡은 무엇으로 준비하지?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는, 늘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목적지로 가는 당일, 카니발 자동차에 육중한 음향장비를 실은 트레일러를 연결하고 네비게이션을 설정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며 꽃들이 저마다 반갑게 환영하는 듯하다. 드디어 공연장에 도착. 설렘이 가득하다. 회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장소를 체크한다. 믹서기와 앰프의 적당한 거리와 위치를 잡은 후 전원을 연결하는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고 했다. 공연 중에는 관객들과 하나 됨에 집중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채 흥겨운 무대가 지속되기도 한다. 이렇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공연을 끝낸 후 음향 장비를 정리할 때까지 남아있는 여운은 진한 커피처럼 향기롭다. 이것이야말로 버스킹을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힘이다. “내가 가야할 곳이 정해져있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어디든지 장소불문하고 간다.” 그는 다음 행사를 준비하면서 말하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

 

“2019년 여름 일주일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과 광안리해수욕장에서 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수천 명의 관객들이 운집했고, 호응도 뜨거워 재미있었다고 한다. 유원지에는 술 취한 행패 객들이 있기 마련인데, 몸집 좋은 부산 회원들이 앞장서서 잘 막아주어서 공연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소망은 “대전이 중심에 있는 만큼 전국에 있는 많은 연주인들과 함께 하고 싶다”라며, “앞으로 코로나19가 진정되면〈팔도버스킹〉을 통하여 계속 전국 투어를 하면서 회원들과 함께 멋진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감사

 

그는 아내가 최고의 스폰서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언제나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서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늘 웃으며 맘껏 공연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장소불문’ 달려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불굴의 투혼과 소망을 보여주는 멋진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기를 기대해본다.

 

(월간색소폰)최도현 객원기자= msp@ke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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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노규완 음향전문가가 말하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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